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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r Is A Gift

논쟁이나 토론을 할 때 어떤 사람들은
냉정을 유지해야 한다고 믿는다.
어느 시점에서 감정을 드러내거나 하면
불필요한 것을 논의에 개입시킨다고 비난받기 일쑤고
심지어는 감정을 가라앉히지 않으면
논의를 계속할 수 없다고 하기도 한다.

갑작스러운 감정의 분출이 논쟁의 지속을 막는 경우는
분명 존재한다.
술자리에서 벌어진 뜨거운 논쟁이
결국은 뒤집어진 탁자와 나뒹구는 의자들, 날아다니는 술잔과 함께
비극적인 종말을 맞게 될 때. 이건 물론 극단적인 경우지만.
또한 분노 게이지가 높아지면서 상대의 말을 잘 듣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리하여 "감정은 이성을 마비시킨다"고 믿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게 별로 이상하진 않다.

하지만 이런 근대적인 이분법이 언제나 적용되긴 힘들다.
매우 흥분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논리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며
차분함 속에서도 분노를 드러내며 설명이 가능하다.
이들이 드러내는 감정은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공감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언어로서 드러나는 말 이면의 진실을 설명해 준다.
왜 이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어떤 지점에서 차이가 생성되고 차이를 넘어설 수 있을지.
논리로는 평행선을 달릴 운명이지만. 감정을 이해하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하여 "감정을 드러낼 때 보다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말하는 사람와 말하는 바가 분리될 수 없단 것이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똑같은 결론을 똑같은 논리로 똑같은 설명방식을 빌려 이야기 할 때
두 이야기가 받아들여지는 바는 서로 다를 가능성이 높은 것처럼.
논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감정은 논리와 마찬가지로 말하는 그 사람의 일부이고
그 사람의 논리 전개 과정과 논리를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감정에 공감하거나 만약 공감할 수 없다면 감정을 이해하려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건 내가 함부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분명 아니지만)
성매매특별법 등의 논쟁에서 여성들이 보여주는 분노에 대해
"이성적으로 접근하자"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완전한" 제3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말이다.
큐브 밖에서
관망하며 예측하고 나름대로 상상하여 결론을 내릴 수는 있겠지만
큐브 안의 현실 속에서
얽히고 섥힌 문제들에 대해 분노하는 사람들과 공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짧은 문장을 쓰는 것이 너무나 힘든 게 사실이다. 언젠가 스트라이프를 그을지 모르겠군.)

오히려 제대로 분노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도 하고
제대로 분노해 본 적이 있던가라는 의심이 들기도 하고
어쩐지 내가 서 있는 현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누구나 분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전에 "Freedom"을 올려버려서.ㅡㅡ;;; 
♪ Nirvana - You Know You're Right ♪

ps. 역시나 조금 지쳐 있는건지
      요즘 쓰는 포스트들은 하나같이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군.
      내가 봐도 재미없다. ㅡㅡ;;

      하긴. 언제는 또 재미있었냐만은. :)

 

ps2. 글을 쓰고 다시 보니까

      빽빽한 글자의 압박이 장난아니다.

      아 어쩐지 토할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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