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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미례, <엄마...>

드디어!!!

"하이퍼텍 나다"에서 알엠님의 신작-_- <엄마...>를 봤습니다.

20분 정도 일찍 도착했지만 동숭아트센터는 너무 오랜만에 가는 거라

평소대로-_- 길을 잃는 바람에 겨우 영화 시작에 맞춰 들어갈 수 있었죠.

6시 50분에 시작하는 것을 보고 연달아 최양일의 <피와 뼈>를 봤는데

다 보고 나오니 머리가 어질어질하더군요.ㅎㅎ

 

일단 영화를 보고 나서 놀란 것이 있었는데

바로 영화가 재미있었다는 점!

사실 별로 재미는 기대하지 않았었는데(핫 알엠님 쏘리~)

여러 번 관객들과 함께 웃을 수 있는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야옹이님도 언급하셨던 "푸른영상" 관련 부분에서는

어떤 단체-_-가 생각나서 계속 혼자 좋아하며 웃었죠.ㅋㅋㅋ

 

산오리님과는 좀 다르게 가족 영화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한 가족을 중심으로 가족사와 함께 다큐가 진행되긴 하지만

이야기의 핵심은 어머니와 딸 사이의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셋째 언니의 이야기가 중요하게 다뤄지게 된 것은

셋째 언니가 엄마와 자신의 관계를

자신과 자신의 딸들 사이의 관계와 중첩시키면서

동질성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구요.

알엠님이 하은이에게 느끼는 감정 역시 마찬가지의 맥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이끌어가야 하면서도

육아라는 무거운 책임을 동시에 져야만 하는 어머니라는 존재와

어머니는 어머니의 인생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상대적으로 사랑받지 못한다는 결핍을 느끼는 딸의 감정이

알엠님이 느끼고 있는 현실이며,

이러한 모순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는 노력을

<엄마...>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알엠님, 맞나요? ㅎㅎ)

 

영화 끝 부분에서 셋째 언니는

어머니와 자신의 관계, 자신과 딸들의 관계를 이야기하면서 눈물짓는 장면이 나오는데

저도 하마트면 눈물 나올 뻔 했어요.

어쩌면 저는 느끼지 못할 관계이지만

왠지 셋째 언니가 말하려는 바가 무척이나 와 닿아서.

 

영화관을 나올 때에는 정말 잘 만든 다큐라는 생각을

진심으로(!) 했답니다. :)

알엠님, 담에 만나면 싸인 해 주세요.ㅋㅋㅋ



<엄마...>를 보면 다들 그렇겠지만

나의 가족이 생각났다.

 

난 지금 외할머니와 여동생 부부-_-와 함께 살고 있다.

부모님은 외국에 나간지 4년쯤 되어서 현재 멤버는 4명이다.

 

어릴 적에는 나와 정반대로

동생과 엄마는 사이가 그렇게 좋지 않았다.

아주 오래 전에 포스트를 쓴 적이 있지만

동생은 어릴 적에 오빠인 내 존재로 인해 많은 것을 희생당한 경험이 있고

그것에 대해 엄마에게 서운한 감정도 역시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간 이후 동생과 나의 권력 관계는 역전되었고

지금와서는 그렇게 엄마에게 서운해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오히려 나와 동생을 키울 때 엄마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회상할 때가 많으니-_-

 

그러고보니 엄마는 초등학교 교사였었는데

출산 이후 일을 포기하고 전업주부의 길로 들어섰었다.

2년 전인가에 엄마한테 일 포기한 거 후회하지 않냐고 물어봤었는데

확실하게 후회한다고 얘기하지는 않았으나

말 속에서 뭔가 아쉬움을 느낀 적이 있다.

 

외할머니는 한국전쟁 때 외할아버지를 잃고 그 후 계속 혼자 지내셨다.

혼자의 힘으로 엄마와 외삼촌을 키워내고

지금은 나름대로 풍요로운 노년 생활을 보내시는 듯 하다.

외할머니는 노인정과 게이트볼 모임, 교회 등의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데

가끔 정체모를 할아버지에게 걸려오는 전화에서 작업-_-의 포스-_-를 느낄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남자친구 아니냐고 할머니를 놀리는데

뭔가 남사스럽다고 생각하는지 극구 부인하시곤 한다.

할머니는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자신을 위해 뭔가를 한다는 것을 굉장히 어색해 하고

그럴 때마다 너무나 안타깝다.

 

가끔 부모님이 한국에 들어오실 때

외할머니-엄마-동생이 모여앉는 재미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이들 세 모녀가 둘러앉으면 서로 잔소리를 하며

끊임없이 수다를 떠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이 속에 들어가 있으면 정말 재미있다.)

그러다 이 그룹에 아버지가 참여하게 되면

발언권은 아버지에게 넘어가고

대화의 중심은 아버지가 꺼낸 화제로 정리된다.

할머니도, 엄마도, 동생도

이런 관계가 너무나 일상적이라 자연스레 그렇게 되는 것 같단 느낌이다.

이럴 때에도 너무나 안타깝다.

 

동생은 올해 취직을 했다.

아직 가족 계획은 없지만 언젠가는 아이를 가질 것이 분명하다.

그 때 동생은 어떤 선택을 할 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엄마...>에서 보여주는 고민을 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런 상황이 생긴다면

아마 주저없이 <엄마...>를 보라고 추천해 줄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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