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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l me, call me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호칭에 대해 상당히 민감한 편이다.

오래 전에 반말에 대한 포스트를 쓴 적이 있는데

존대말/반말을 쓸 때와 비슷하게 누군가를 부르는 호칭 역시

어떤 관계를 의미할 때가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어릴 적 부르는 별명이 그런 경우에 속한다.

그 시절 기억을 떠올려 보면 우리 모두는 별명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는데

집단 내에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애들은 무난한 별명을 선점했고

싸움을 못하거나, 공부를 못하거나, 별나게 생겼거나, 키가 작거나 등등의 이유로 인해

권력 관계의 하층에 거주하는 인민들은 하나같이

땡칠이, 땅콩, 똥파리, 오리, 저팔계, 이티 등의 많이 쓰는 별명부터 시작해

차베스-_-, 춘자-_-, 소장 등의 이상하기 짝이 없는 별명까지 달아야 했다.

(이 중 차베스는 성이 "차"씨라는 이유로 차베스가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그런 개연성이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하다.

덕분에 베네주엘라의 차베스 정권 얘기를 첨 들었을 때 이상하게 웃겼다는-_-)

 

이런 권력관계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특별히 어떤 이름으로 자신을 불러주길 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특히 개명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 자신의 이름 뜻을 설명해 주면서

왜 바뀐 이름으로 자신을 호명해야 하는지를

차근차근 이야기해 주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그 의미는 곧 까먹게 되고

별 생각없이 바뀐 이름에 적응하는 게 대부분이지만)



난 XX씨라고 호명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회사에서 노동자의 입장으로 그렇게 불리는 것에는 불만없다.

(지금 회사에서는 XX님-_-이지만)

어짜피 직장 내에서의 관계란 자본가와의 계약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 이상을 바라지도 않고 있으니까.

문제는 스스럼없이 이름을 부르는 친구 사이는 아니지만

형식적인 직장 동료 이상의 의미를 갖는 사람들이다.

 

블로그를 쓰게 되면서 알엠님의 센스로 인한 아주 우연한 계기

난 "레니"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되었고

XX씨라는 호칭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 새로운 이름을 적극적으로 홍보-_-하기로 했다.

기존에 관계를 맺은 사람들은 이미 실명이 익숙해져버린 상태이니 할 수 없지만

진보넷 안에서도 새로 관계를 맺게 된 사람에게는

XX씨보단 "레니"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하곤 했는데

아무래도 이건 내가 좋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이 편하게 부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 결과가 언제나 성공적이지만은 않았다.

 

재미있게도 XX씨와 레니를 동시에 알고 있는 사람의 경우

대화하는 도중 두 이름을 혼용해서 사용할 때가 있는데

듣고 있다 보면 "XX씨"와 "레니"를 각각 쓸 때마다

뭔가 의미가 다를 것 같단 생각이 든다.

물론 쌩뚱맞게도 그것을 직접 물어본 적은 없지만

내 입장에서는 레니라고 불러줄 때의 말이 더 호감이 가게 되더라구.ㅎㅎ

 

겨울 동안의 정리 기간을 거치면서 새로 결심한 것 중 하나는

나의 활동 공간에서는 "레니"라는 이름만을 쓰기로 하겠다는 것이다.

일단 XX씨라는 호칭 자체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어감이 싫고

직장이라는 공간에서 느껴지는 지독한 비현실성과

활동에서 느껴지는 현실감을 어느정도 분리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반말을 할 수 있는 관계가 될 것을 대비하여-_-

미리 반말에 자연스러운 호칭에 적응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ㅋ

 

물론 XX씨의 기존 사용자-_-들이 불편해 할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본인이 싫다는데. :)

호칭을 듣는 사람의 강력한 의사를 무시하고

XX씨, XX야 등의 실명을 사용하거나

레니씨(아아 이건 절망이다. OTL), 레니님(이건 좀 낫군-_-) 등의

엽기적인 돌연변이를 생산하는 분에게는

5초간 침묵하기, 못 들은 체 하기, 또는 생까기-_- 등의

다양한 스킬을 적극 활용할 생각이다.ㅎㅎㅎ

 

...는 위의 말들은 농담이고-_-

왜 레니라는 이름을 쓰려고 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겠지.

(저러다가 순식간에 왕따되기 쉽상일 듯 하군)

뭐 노력하기 나름 아니겠어요. :)



♪ Cowboy Bebop OST - Call me call 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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