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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

 

얼마전에야 이름도 거창한 보르헤스 "전집" 중 한권을 가까스로 다 읽었다. 내가 소설을 많이 읽는다고 절대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사람 소설은 읽어왔던 소설에 비해 좀 특이하다. 허구와 사실을 뒤죽박죽으로 섞어 놓고 천연덕스럽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건 뭐 그렇다고 치자. 소설이란 그럴 수도 있는 거니까. 하지만 고대 로마, 아랍, 중세 유럽, 당연하지만 남미를 오가며 역사적 사실에 구체적인 장소까지 들먹이며 주석이 페이지의 반을 차지하는 소설을 읽고 있자면, 하, 뻥 한 번 제대로 칠려고 이렇게까지 지적인 열정을 쏟아부어야 하나. 하는 약간은 허무한 생각이 든다. 뭐 그래도 재미있긴 재미있다.

 

보르헤스 "전집"(백과사전이냐)은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 특이하다 생각한 것은 "절대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인물의 이야기가 많다는 점이다. "불사"를 추구하는 사람("죽지 않는 사람들")이나 "절대적"인 동전("자이르"), 재규어의 무늬로 나타난 "신의 암호"("신의 글"), "알렙"("알렙") 등. 신비주의적인 소재로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일이 많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결국 이렇게 절대적인 가치들을 찾거나 찾아 나서는 사람들의 결말은 항상 허무하다. 종종 비참해지기도 하고. 어쩌라구요...

 

그래서 그런지 아침마다 지하철에서 눈빠지게 보르헤스를 읽고 난 느낌은 그다지 깔끔하지가 못하다. 누구나 그러한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래도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절대적인 가치는 있다고 생각하는데(그게 뭔지 설명하긴 아주아주 힘들지만), 보르헤스를 읽고 나니 뭔가 허무해 진다고나 할까나. 뭐 혼자 멋대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긴 소설이 삶에 활력을 주는 경우는 아주아주 드무니까. 일단 재미있었다는 점에서는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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