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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 선생님의 <장산곶매 이야기>

오늘 낮에 잠깐 아트앤스터디에서 무료강좌로 제공하는 백기완 선생님의 <장산곶매 이야기> 강의를 들었다. 언젠가 학교앞, 지금은 철거된 로터리 앞을 지날 때, 우연히 까만 한복 정장(?)을 입고 지나가는 그 분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 때도 느낀 거지만 백 선생님은 여기저기 깊이 패인 주름들 사이로 왠지 불기운 같은게 느껴지는 사람이다.

 

아닌게 아니라, 정말 오늘 들은 강연에서도 점잖게 얘기하다가 잡자기 불호령같은 목소리를 질러대신다. 가히 한편의 연극을 보는 듯.

 

이 강연은 그야말로 할아버지의 옛날이야기 전해주는 시간이었다. 백기완 선생님도 장산곶매 설화를 어렸을 때 할머니를 통해 들었다고 하는데, 그야말로 '구전설화'인 것이다. 일전에 대충 줏어들은게 있어서 장산곶매에 대해서는 대강 알고 있기는 했지만, 구월산 마을 사람들을 돕는 것부터 시작해서 중원의 천자와도 맞섰던 장산곶매의 이야기의 스펙터클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었다.

 

그런데 강의를 듣다가 갑자기 내가 찌그러드는 기분이 드는 부분이 있었다. 장산곶매는 수리라는 적과 싸움에 나가기 전에 자신의 둥지를 부순다. 결연한 싸움에 나서는데 두고가는 미련때문에 망설여지지 않기 위해서. 그런데 이 때 둥지를 부수는 매의 부리 쪼는 소리가 온 마을에 울려퍼지는데, 마을사람들도 함께 둥지를 부순다고 한다. (사람들이 둥지를 부순다는 게 구체적으로 뭘 의미하는지는 설명을 안 해 주셨다.)

 

그리곤 장산곶매는 날카롭게 솟은 발톱으로 둥지터를 박차고 날아, 작두같은 날개를 편다. 미련없이 싸운다.

 

그냥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엇을 버릴 수 있는 존재인지. 장산곶매처럼 둥지를 박차고 오를 '준비'라도 되어 있는지... 나는 이미 한번 그 기회를 날려버리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그 다음은 가능하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에 미치자 갑자기 몸이 바르르 하고 움츠러 들었다.

 

갑자기 밀려온 부끄러움 때문에 대낮부터 소금기 낀 액체가 얼굴에 번질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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