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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에서 노동으로 - 노동중심적 복지국가의 비판적 이해』, 김종일 (일신사, 2001)

 

□ 37-40쪽

 

1) 실업의 원인 : 공급부문(즉, 실업자 자신)에서 실업문제의 원인을 찾으려 함. 그래서 노동유인, 고용가능성을 높이는 것을 주요 과제로 함. 비판자들은 이를 본질적으로 희생자를 비난하는 격(blaming the victim)이라고 지적. 실업자를 만들어낸 사회경제적 구조를 그대로 둔 채 그 피해자의 행태를 교정하는 일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는 태도라는 것. 유럽의 사회운동가들은 고용가능성과 같은 편향적인 개념 자체를 거부하고 대안으로 실업자 개개인의 역량강화(empowerment)를 내세운다. 여기서 역량강화란 자신의 상황을 주체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실업자의 개인적 그리고 집합적 능력의 제고를 가리킨다.

==> 이러한 분석은 뒤에서 영미식 노동중심적 복지국가의 특징인 ‘노동력 부착 전략’을 비판하고, 덴마크식 ‘인적자본개발 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밑바탕이 되는데, 그러나 과연 이 두 전략이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전자가 노동자 개인을 ‘비난’하는 사회적 이데올로기에 편승하여 노동자를 처벌적 성격의 노동시장으로 밀어넣는다는 점에서 후자와는 비교되는 비판의 지점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나, 인적자본개발이 고용가능성 증진이라는 노동중심적 복지국가의 본질적 결함과 거리가 멀다 할 수 없다. 노동자의 역량강화, 인적자본개발이라는 논리가 전적으로 노동자 개인의 사회적 욕구를 발현하는 것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으로의 재투입이라는 관점하에서 추동되는 것이라면,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저자는 두 가지 전략이 근본적인 차이를 갖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 그의 분석에서도 (특히 네덜란드의 경우) 두 가지 전략이 혼재되는 양상이 드러나고 있다. 멀리 볼 것 없이 우리나라에서도 노동력 부착 전략(이를테면 공공근로사업)과 인적자본개발전략(각종 평생교육사업이나 고용보험상의 실업자 교육훈련과정 등)이 병행하여 제도화되어 있다. 그런 한국적 상황을 영미식에 가깝냐, 덴마크식에 가깝냐를 구분할 수 있을까? 사회적 여론의 분위기, 즉 복지수급자를 비난하는 풍토만 놓고본다면 영미식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지만, 한국내에서 ‘노동중심적 복지국가’적인 제도의 작동 방식을 놓고 본다면 딱히 그렇게 말 할 수도 없는 것이다.

 

2) 노동연계의 타당성 : 노동연계정책이 수급자의 도덕성을 논란의 대상으로 삼아 시민의 기본적 복지권을 훼손한다. 수급의 전제조건인 노동의무는 사실상의 강제노동으로, 이러한 시도를 방치할 경우 이 제도는 언젠가 또 하나의 구빈법이 되고 말 것이라고 지적. 정녕 복지수급자의 근로경험이 중요하다면, 왜 이들을 정상적인 고용계약을 통해 지역사회 서비스를 담당하도록 하지 못하는가? 또한 수급자들이 의무적으로 행하는 노동에 사회적 낙인이 가해져서, 해당 직업에 종사하는 일반 노동자는 물론 그러한 일 자체를 소외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

 

3) 사회정책의 적극성과 소극성 : 복지급여가 수급자의 삶에 이바지하는 ‘적극적’ 기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됨. 거의 모든나라에서 복지급여는 최소한의 생계비를 넘지 않는다. 이 생계비에 의지해서 수급자들은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기 위한 제반 활동을 수행할 수 있다. 이들을 마치 복지급여라는 아편에 중독된 사람으로 간주하는 사회 일각의 태도는 분명 잘못된 것.

 

 

□ 51쪽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필요성이 복지국가 전반에 걸쳐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문제는 어떠한 성격의 ‘적극성’인가에 관한 것이다. 작금의 추세는 국가의 적극성이 노동시장의 공급 측면에 집중적으로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방 복지국가 전체가 온통 ‘고용가능성’이라는 개념에 매달리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것을 증명해준다. 이 개념은 고용주의 입장에서 나온 말이다. 일자리는 넉넉하다는 전제 아래, 고용주가 ‘채용할 만한’ 사람이 못되는 원인을 해당 실업자에게서 찾아내어 그것을 제거하는 제반 조치를 취하는 것이 바로 고용가능성을 높이는 정책이다. 바야흐로 노동시장 바깥에서 연명하는 사람들에 대한 대대적인 재상품화가 (시장이 아니라) 국가주도에 의해 시작된 것이다.

 

 

□ 59쪽

 

(사민주의 복지국가의) 가장 심각한 모순은 시장기제에 대한 이중적 태도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보편적 사회복지를 통한 탈상품화 전략과 시장의 효율성을 통한 경제성장은 서로 충돌하는 목표였다. 특히, 경제가 어려워질 때 양자의 모순은 더욱 두드러지기 마련이다. 모순을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일부 사민주의 복지국가가 채택한 전략은 노동시장에 대한 적극적 개입을 통하여 성장의 잠재력을 키워나가는 정책이었다.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바로 그것이다. 대부분의 서구 복지국가가 ‘소극적 노동시장정책’을 펼치고 있을 때, 스웨덴을 비롯한 스칸디나비아 복지국가들은 노동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완전고용의 실현과 유지를 위해 노력했다. 이들의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복지에서 노동으로’정책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후자가 공공부조의 개혁이라는 목적 아래 추진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전자는 노동자 전체를 아우르는 보편적인 프로그램이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또한 노동시장의 공급 측면은 물론 수요 측면에도 개입한다는 점에서 후자와 구별된다. 믹국과 영국에서 시행중인 ‘복지에서 노동으로’ 정책의 경우 노동자의 교육, 훈련과 같은 노동공급 측면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활발하지만, 고용창출이나 임금 보조 등의 노동수요 측면은 거의 전적으로 시장논리에 맡기고 있다.

 

 

□ 89쪽 (1996년 미국 복지개혁의 주요 내용)

 

첫째, AFDC를 폐지하고 한시적 구호제도인 TANF로 대체한다. TANF의 수급자에게는 엄격한 근로의무가 주어진다. TANF의 수급기간은 평생 60개월을 초과할 수 없다.

둘째, 공공부조에 관한 모든 권한과 책임을 주 정부에 넘긴다. 과거에 시행하던 JOBS와 연방정부의 대응보조금(matching fund)을 폐지하는 대신에, TANF의 소요예산은 전액 연방정부의 포괄적 교부금(block grant)을 통해 지급한다. 각 주와 지방 정부는 이 돈을 원하는 방식대로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다. 새로운 제도에 따르면, 연방정부의 포괄적 교부금은 각 주의 1994년 지출 수준을 기준으로 책정되었고 이 액수는 2002년까지 변동이 없다. 이와 같은 방식의 지원은 주 정부지출액의 네 배를 무제한 지급하던 과거에 비해 주 정부의 빈민지원재정을 크게 압박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의회는 이러한 우려를 고려해서 1997년에 포괄 교부금과 별도로 주 정부의 노동중심적 복지개혁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위한 특별예산을 마련하였다. 30억 달러의 이 지원금은 TANF 수급자 가운데 취업능력이 가장 뒤떨어지는 집단을 위해 연방 노동부에 의해 시행되었는데, 이것은 이 돈의 사용 목적이 소득지원이 아니라 노동지원임을 명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TANF에 관한 업무가 각 주로 이관되었다고 해서 연방정부가 감독권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아직도 연방정부는 몇 가지 원칙과 기준을 통해 주 정부를 규제할 수 있다. 예컨대, 2002년까지 모든 주는 수급자의 50% 이상을 근로활동에 참여시켜야 한다.

 

 

□ 미국, 영국, 덴마크, 네덜란드에서의 노동중심적 복지국가 정책의 비교 분석

 

지금까지 논의된 복지의존에 관한 담론은 다음 세 가지 관점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첫째는 이데올로기적 관점으로 복지 자체에 대한 부정, 나아가 복지의존의 원인인 빈곤에 대한 개인적/문화적 인식에 입각한 것이다. 요컨대 빈곤은 개인의 결함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므로, 이들의 복지의존을 방치하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라는 시각이다. 미국사회를 지배하는 관점이며, 최근에는 영국에서도 그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둘째는 사회적 배제, 포함이라는 관점이다. 복지의존이 길어지면 복지수급자들이 사회로부터 소외·배제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복지의존의 예방에 힘써야 된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덴마크 사회의 일반적인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복지의존을 주로 경제 현실의 입장에서 다루는 관점이 있다. 이것은 복지의존이 가져올 경제적, 재정적 부담에 일차적인 관심을 갖는다. 네덜란드의 활성화 정책에서 이러한 관점이 드러난다. (191쪽)

 

노동중심적 복지정책이 대상은 미국을 제외하면 대체로 청소년에 집중되고 있다. 영국의 뉴딜은 청소년 뉴딜이 핵심이고 네덜란드의 구직자 고용법도 기본적으로 청소년을 겨냥한 것이다. 덴마크의 활성화 정책 역시 청소년에 대한 관심과 비중이 매우 높다고 하겠다. (...) 대체로 유럽 국가들의 활성화 정책이 청소년 실업자에 대해 관심이 많은 이유는, 이들의 실업률이 매우 높을 뿐만 아니라 장기 실업의 늪에 빠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EU에서도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청소년 실업을 예방하기 위한 각종 조치를 회원국에 권고하고 있다.

이와 달리 믹구의 노동중심적 복지정책은 사회부조에 의존하는 편부모를 대상을 삼아왔다. 아니, 미국의 복지개혁 자체가 바로 이들의 ‘문제’로 인해 촉발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미국의 복지 개혁 역사가 공공부조 개혁의 역사이고, 공공부조 수급 대상자는 대부분 편부모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공공부조에 의지하는 편부모들이 미국 복지개혁의 핵이라는 사실보다 미국 복지국가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없다. (1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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