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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장애인?

페이스북에 썼던 글. 2012.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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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판에 큰 집회가 있을 때에는 여러 높으신 분들이 오셔서 발언을 한다. 그 때마다 내가 의도치 않게 발언에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한 사람,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 예전에 노동절 집회에서 '반신불수 정권' 발언으로 공개적으로 사과까지 한 후에, 규모가 작은 장애인 집회에서도 발언섭외가 오면 항상 애써서 발언하는 것 같아 그래도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기도 했지만, 사실 항상 거슬리는 단어를 듣게되서 고민하던 차에 몇 마디 적어본다.

예비장애인. 김영훈 위원장은 꼭 이런 표현을 쓴다. 노동자들 집회할 때, 우리는 모두 예비 비정규직이다, 뭐 이런 표현을 즐겨 쓰니까 별 생각 없이 받아들일 수도 있는 말 같지만, 사실 '예비장애인'과 '예비비정규직' 또는 '예비 노동자'는 전혀 다른 의미를 담는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예비 비정규직'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비정규직'과 같은 어떤 위험한 상태에 비정규직이 아닌 사람들도 내몰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뜻을 내포한다. 같은 방식으로 '예비 장애인'이라는 말도 장애인이라는 단어에 위험하고 불안하고 삶의 벼랑끝으로 내몰린 상태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예비 장애인'이라면, 장애인이 되지 않도록 예방대책을 잘 세우면, 그 뿐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장애인이 왜 장애인이 되었는지, 그를 장애라고 명명된 감옥으로 밀어넣은 사회적 폭력을 볼 수 없게 만든다.

우리가 '비정규직 철폐'라고 말할 때, 그 대안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할 수는 있지만, '장애인 차별 철폐'를 말하면서 장애인의 비장애인화를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것이 바로 재활 패러다임이고, 우리의 장애인운동은 이 재활 패러다임을 넘어서자고 주구장창 얘기해 왔던 것 아닌가?

예전 페북 글에도 쓴 적이 있는 얘긴데, 쌍용차 노동자와 용산 구속자들의 DNA를 채취하려한 정부의 시도는 정확히 지금 이 사회가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와 일치한다. 정리해고와 강제철거에 저항한 사람들을 유전적 질환자로 대하려는 태도, 이것은 장애가 의학적 기준이 아니라 정확히 사회적 기준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라는 장애학의 가장 중요한 명제를 떠오르게 한다.

내가 김영훈 위원장님과 페북 친구가 아니어서 전할 방도는 없지만... 혹시나 어쩌다 이 글을 보신다면,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예비 장애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지금 이 땅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배제된 자들'이라는 동질성으로 함께하자고. 그것만으로도 연대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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