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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27
    김상봉 교수 한겨레 기고글에 달린 댓글(1)
    구르는돌
  2. 2009/05/27
    그를 위한 통성기도를 강요하지 말라!(13)
    구르는돌

김상봉 교수 한겨레 기고글에 달린 댓글

 

 

 

   
2009/05/26 17:14:44 신고하기

이 정도의 자기성찰조차 왜 고해성사를 요구하냐며 진보신당은 노무현에게 빚진 거 없다고 하다니 참으로 강팍하고 편협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그리고 왜 하필 콕 꼬집어서 "진보신당"입니까? 그냥 "진보세력"이라고 해도 될텐데말이죠. 그런데 hkcsp님, 노동자 농민들에게 진보신당 민노당 당신들이 어떻게 비추는지 아십니까? 녹슨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봐도 부끄러움을 못느끼는자가 가장 끔찍한 자입니다.

 
 
 
 
   
2009/05/26 17:14:19 신고하기

김상봉교수님의 글은 이런 저의 부끄럽고 착잡한 여러 감정들을 다 함께 녹여 주는 가장 감동적인 글이었습니다. "진보신당은 노무현에게 빚진거 없다"며 "고해성사를
요구하지 말라"는 글을 남긴 이도 있지만, 우리는 모두 척박한 이 사회의 피해자이자 동시에 공모자이기도 합니다. 악의 자양분은 방관과 침묵이니까요.

 
 
 
 
   
2009/05/26 17:13:00 신고하기

노무현의 죽음을 보며 여러 감정이 교차했습니다. 슬프고 안타까운 한편 명박이 검찰넘들 큰일났네 쌤통이다 고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드는 의문과 찝찝함, 노무현 정권때 죽은 노동자들, 난 그들의 죽음에 얼마나 관심을 가졌었나? 세상은 하나도 변한게 없는데 그들이 죽지 않았았다면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2009/05/26 16:33:36 신고하기

동 시대를 살아온 한 사람으로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태에 대하여 분노와 좌절을 함께 느끼며 후대에 어떤 말로 이 상황을 설명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순수하고 정제된 관념으로 추이를 명확하게 말하는 분들이 우리 사회에 건재함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감사하다.

 
 
 
 
   
2009/05/26 16:33:12 신고하기

부디 이 나라에 광명한 날이 도래하여 도도히 흐르는 정의의 물결에 몸을 실어 만민이 함께 가슴을 부둥켜 안고 함박웃음을 지을 그 날이 오길 두 손 모아 기도드린다.

 
 
 
 
   
2009/05/26 15:34:00 신고하기

hkcsp//젊은 사람 같은데... 아는지 모르겠지만... 님 같은 경우를 두고 좌익소아병이라 한다오... 그의 소속집단이 개인의 훌륭함을 보장하는 건 아니지 않소...

 
 
 
 
   
2009/05/26 12:24:08 신고하기

도대체 교수님이 그의 죽음을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이유가 뭐란 말입니까? 살아남은 다른 진보세력에게 고해성사를 요구하지 마십시오. 그의 죽음과는 무관하게 그에 대한 평가는 냉정하게 이뤄져야 합니다. 적어도 그간 민주당 세력을 비판해 왔던 진보세력은 노무현에게 빚진거 없습니다.

 
 
 
 
   
2009/05/26 12:23:22 신고하기

참으로 황당한 글입니다.
김상봉 교수님은 진보신당 당원으로서 강령작성의 총 책임을 맡기도 하셨던 분입니다. 그런 교수님의 정치적인 위치에서 이런 글이 합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한 생명의 죽음이 안타까운 것과 그로 인해 고인을 추앙의 대상으로 만드는 일은 전혀 별개이며, 후자는 앞으로 전개될 정치에 오히려 해악일 뿐입니다. 다름 아닌 죽은 정치인의 유령이 산 정치를 지배하는 사태가 올 것이 두렵습니다.

 

 

맨 밑에 두개가 내가 단 댓글이다.

그 위에는 대부분 나의 댓글에 대한 공격.

 

아무래도 저 사람들의 댓글로 봐선 아무래도 김상봉 교수의 글이

사람들에게 엄청난 심리적 위안이 되었나 보다.

 

그런데 어쩌나.... 저렇게 한 번 위안 받고 나면 하룻밤 잠은 편히 잘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현실은 전혀 바뀌지 않는데... 노무현이 남기고 간 파괴적인 유산은 그대로인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인을 추앙의 대상으로 만들어 자신들을

토닥토닥 어루만져주는 심리적 위안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다. 죽은 노무현과 산 이명박, 두 괴물의 쌍두마차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한국 사회의 정치를 질식시키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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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위한 통성기도를 강요하지 말라!

그를 위한 통성기도를 강요하지 말라!
 
 
고등학교 2학년 때, 잠깐 교회를 다닌 적이 있었다. 그 때까지는 나도 순수한 마음이 조금은 남아있던 터라 그냥 봉사활동같은 걸 여러사람들과 함께 다니고 싶다는 마음에 짝궁이 다니던 교회에 따라갔다. 그런데, 한 두어번 갔을때쯤에 교회에 발길을 뚝 끊어버리게 만드는 일을 겪게되었다. 그것은 바로 통성기도 때문이었다. 목사의 지시에 따라 신도들이 다같이 일어나더니 옆사람과 손을 잡고 목놓아 울부짖으며 기도를 한다. 여러사람이 한꺼번에 울부짖으니 각자의 기도내용이 뭔지 알 수도 없다. 다들 ‘용서하소서’라는 말은 반복하고 있는 것 같기는 했다. 이런 ‘과격한’ 기도 행위가 낯설었던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남들 다 울면서 간절히 기도하는데 나만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으려니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 나도 뭔가 하나님께 용서받아야 할 일을 생각해 내려고 애를 썼다. 결국 엄마, 아빠, 누나한테 잘못했던 것들을 생각해 내어 조금씩 목소리를 내 보았다. 아, 그런데 끝까지 눈물은 안 났다. 좀 억울하다 싶으면서도 그 많은 사람들이 함께한 ‘간절한 기도’에 함께하지 못한게 못내 찝찝했다. 그러나 그 일 이후로 한달도 안되어 교회에 발길을 끊었다. 있지도 않은 슬픔을 쥐어 짜낼만큼 내 감정의 상상력은 풍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8년 후인 2009년 오늘, 나는 또 다시 통성기도의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은 많은 시민들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흘린다. 그 수도 봉하마을에만 60만, 전국적으로는 200만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인터넷에서는 ‘지못미’ 바람이 불고 있다. 사회원로인사라는 사람들은 앞다투어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고 읊조린다. 친노인사라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그와 정치적으로 대립각을 세워오던 (주로 진보진영) 인사들도 그의 죽음을 막지 못한데 대한 죄스러움을 드러낸다.
 
 
나는 왜 이 ‘통성기도’가 불편한가?
 
8년 전 내가 마주쳤던 그 교회의 통성기도 현장에서처럼, 지금의 한국사회는 나를 비롯해 그의 죽음에 울부짖지 않는 사람들을 참으로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인터넷에 오가는 글들을 보면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참으로 매정할 뿐만 아니라, ‘당신의 생각이 한나라당의 그것과 무엇이 다른지 생각해 보라“는 사상검증을 받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이런 네티즌들의 공격적인 태도보다 내가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진보진영 인사들의 신앙고백이다. 통성기도를 할 때, 단상에 선 목사는 신도들의 죄의식을 북돋기 위해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울부짖는다. 있는 힘껏 목소리를 쥐어짜고 몸을 부들부들 떨기도 한다. 이를 통해 신도와 목사 모두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전능하심에 감동받고 성령의 충만함을 느낀다. 지금 진보진영 인사들이 보이고 있는 작태가 이런 공허한 믿음을 강요하는 목사들의 모습과 다를바가 뭔가?
 
무엇보다도 노무현 대통령 임기 당시 온갖 진보적 운동단체의 대표는 다 맡아왔던 오종렬씨의 언사는 분노를 자아내게 한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서민후보’였다고 추켜세우고는(프레시안은 이 기사를 전하면서 처음엔 ‘민중후보’라는 표현을 썼다가 ‘서민후보’라는 표현으로 바꾼 이유가 뭔지 해명해 주길 바란다), ‘장렬히 산화’했다고 말한다. 그가 수도 없이 한 집회장 발언들을 생각해 볼 때, ‘장렬히 산화’했다는 표현은 노동·민중열사들의 분신에나 쓰는 표현이다. 그런데 그는 노무현도 ‘장렬히 산화’했다고 말한다. 즉 ‘노무현 열사’라는 것이다. 오종렬씨에게 묻는다. 그는 이 표현을 쓰는데 한 점의 망설임도 없었는가? 비정규직의 삶에 비관하여 목숨을 끊고도 노무현에게 ‘민주화된 시대에 낡은 투쟁방식을 고집한다’고 비난을 들어야 했던 이용석 열사의 얼굴을 대하고도 감히 ‘장렬히 산화’했다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노무현은 왜 자살을 선택했는가? 수사과정에서 의문점이 많이 남는 것이 사실이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는 권력형 비리에 대한 수사를 받다가 자살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함이었든 자신을 믿었던 이들에 대한 미안함에서 였든지 간에 말이다. 자유, 평등, 정의, 평화 등 이 모든 숭고한 가치들은 그의 마지막 선택과는 어떠한 연관성도 없다. 그런 그에게 열사의 지위를 부여하려는 오종렬씨의 발언에 분노를 금치 못하는 것이 오직 나뿐일까?
 
또 김상봉 교수가 한겨레에 기고한 칼럼(<한 시대의 종말을 애도함>)을 보자. 그는 “그(노무현)가 권력이 청와대에서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말했을 때, 나는 깊이 좌절하고 실망했으나, 생각하면 그것은 그 개인의 한계가 아니라 우리 시대의 한계였다. 자본이 절대 권력이 된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그 한계 앞에서 변절하거나, 세치 혀로 한계를 넘어갈 때, 그는 자기 방식으로 시대의 한계와 끊임없이 부딪혔고, 결국 좌절했다.” 라고 말한다. 이 무슨 궤변인가?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노무현의 당당한 자기고백이 ‘우리 시대’(대체 이 ‘우리’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386인가?)의 한계였다고 말하며 그에게 면죄부를 주고는 그의 삶은 치열했다는 찬사로 마무리짓는다. 그리고 글의 말미에서 “뜨겁게 사랑했으므로 내가 미워했던 마음의 벗이여, 잘 가오. 그대 영전에 오래 참았던 울음 우노니, 그대 나 대신 죽어, 내 마음에 영원히 살아 있으리.”라고 뜨거운 연정을 표시한다. 이로써 2003년부터 2007년까지 그 ‘시대’의 잔혹함을 못이겨 목숨을 버려야만 했던 수많은 열사들의 이야기는 노무현이 ‘시대의 한계와 끊임없이 부딪치는’ 동안 벌어진 한낱 에피소드로 전락하고 말았다. 또한 이 사랑고백에 담긴 무한한 ‘용서와 화해’의 정신은 침몰하는 듯 보였던 자유주의 개혁세력에게 힘찬 찬송가가 되어 입에서 입으로 불려질 것이다.
 
 
누가 노무현의 무덤 앞에 무고한 제물을 갖다 바치는가?
 
김상봉 교수의 말대로 그가 한 시대의 상징이었다면, 그 상징은 진작에 스러졌어야 했다. 그의 일생, 적어도 90년대 이후 ‘정치인 노무현’의 일생이 상징하는 바는 민주도, 정의도, 평등도 아닌 오히려 그 훈장을 밟고 일어서 기지개를 편 탐욕과 착취의 시대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2007년, 많은 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외부 충격을 통한 개방과 성장’이라는 미명하에 추진된 한미FTA에 반대하며 스러져간 어느 평범한 택시 노동자의 삶이 고스란히 증명하고 있다.
 
그의 죽음 앞에, 그가 진작에 버렸던 민주, 정의, 평등이라는 가치를 제물로 갖다 바치지 말라. 그의 죽음 앞에, 이미 이 세상엔 없는 소중한 열사들의 정신을 제물로 갖다 바치지 말라.
 
나는 노무현이 투신했다는 뉴스를 접한 지난 토요일 오후, 시내의 작은 영화관에서 2006년 평택 대추리에서 미군기지 확장에 의해 삶의 터전을 빼앗긴 농민들의 삶을 기록한 ‘길’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봤다. 농민들은 절규했고 울부짖었다. 영화가 상영되는 한 시간 내내 나도 그들과 함께 하염없이 울부짖었다. 그 정직한 농민들에게 눈물을 선사한 자는 대체 누구인가?
 
그러므로, 나에게 노무현을 위한 눈물을 강요하지 말라. 그를 위한 통성기도를 강요하지 말라. 나는 오로지 평택 대추리에서 스러져간 뭇생명들에 안타까워 하는 딱 그 만큼만 노무현이라는 소중한 생명의 (억울한) 스러짐을 애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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