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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중

아렌트는 망명 유대인의 자살 충동을 분석하고, "(그들은) 싸우는 대신에 또는 어떻게하면 저항할수 있을지 생각하는 대신에, 친구나 친척의 죽음을 바라는 것에 익숙해져버렸다"고 진술했다. 그 때문에 그들은 "누군가 죽으면 이제야 그 사람이 완전히 어깨의 짐을 벗었구나 하고 쾌활하게 생각하"곤 한다. 결국에는 "자신도 얼마나마 어깨의 짐을 벗을 수 있길 원하게 되고, 그래서 실제로 자살하고 만다"는 것이다. "이 표면상의 쾌할함과는 정반대로 그들은 항상 자신에 대한 절망감과 싸운다. 그리고 결국 일종의 자기 본위로 죽음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

톨러나 벤야민이 '투쟁하는 대신' 자살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가혹하며 사실에 반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단지 내 나름대로 이 싯점에서 그녀의 심정을 헤아려보자면, 그녀는 어래도록 지속될 절망적인 투쟁을 각오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것은 인류가 이제까지 역사에서 경험한 바 없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사악함과의 투쟁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더욱 망명 유대인들의 자살에 동정과 공감을 표명하지 않고, 그것을 '일종의 자기 본위'라고 말한 것이 아닐까?

(...)

'저 사람은 이제야 완전히 어깨의 짐을 벗었다'고 생각하는 것, '자신도 조금이나마 어깨의 짐을 덜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 즉 아렌트는 자신 안에서도 조짐이 보이는 절망과 자살에 대한 충동에 저항했던 것은 아닐까. 나는 그런 고난한 삶과 거기에 내재한 죽은 자들에 대한 통한의 정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30-33쪽)

 

 

'이해'에 대한 간절한 욕망, 그것은 소년 시절부터 변함없이 쁘리모 레비의 생애를 관통하고 있다. 과학정신은 파시즘에 대항하기 위한 무기였다. 그는 비합리적인 정신주의에 대한 경멸과 혐오감을 통해 파시즘에 의한 부식으로부터 자신의 혼을 지켰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아우슈비츠라는 이해할 수 없는 역(逆)유토피아의 세계에 던져졌을 때, 역유토피아를 지상에서 실현한 '독일인'을 '이해'하고 싶다는 욕망으로 이어져갔다.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그 상대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욕망은 생환한 우에도 증폭되었다. 그것은 생명을 위토롭게하는 욕망이었다.

(61쪽)

 

 

'인간이라면 이렇게까지는 할 수 없을 것'이라는 통념, '인간이라면 여기까지 추락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 그것들이 가차 없이 배반된 장소가 아우슈비츠였다. 거기는 '인간'이라는 척도가 철저하게 파괴된 역유토피아였다.

살아남은 극소수의 사람들은 "강제수용소의 지옥조차 소멸시킬 수 없었던 인간성"의 증인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 자신이 '아우슈비츠 이후'의 시대에서 '인간'의 척도이기도 한 것이다. 그들은 지상에서 현존한 역유토피아의 살아 있는 증인일 뿐만 아니라, '인간'이나 '문명'과 같은 관념이 파괴된 후에 다시금 '인간'이라는 척도를 재건하는 역할을 짊어진 사람들이기도 하다.

(156쪽)

 

 

 

이탈리아 유대인은 19세기 중엽의 국민국가 형성과 보조를 같이 하여 중세적인 신분 차별에서 해방되면서 이딸리아 국민으로서 사회에 통합되었다. 바꿔 말하자면, 이탈리아에서 유대인의 신분 해방과 이탈리아 국민화는 거의 동의어였다. '동화 유대인'으로 태어나 자란 쁘리모 레비에게 단테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로 상징되는 '이탈리아 문화'는 바로 자신이 가진 이탈리아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이루는 기초였다. 그렇기 때문에 파시스트의 반유대 조치라는 촉매에 의해 이탈리아 사회에서 '불순물'로 색출되어 배척되어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야만적인 파시즘'에 대한 '문명적인' 이탈이아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가 강화되어갔다고 생각된다. 게다가 그 아이덴티티는 단순히 한 민족 한 국민으로서의 아이덴티티가 아니라 인문주의 내지 계몽주의의 맥락에서 '보편적인 인간'으로서의 아이덴티티로 연결된다. 이런 의미에서 레비가 가진 이탈리아인으로서의 아이덴티티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는 데 대단히 큰 힘이 되었다. 단테의 [신곡]을 암송하는 장면은 그것을 상징한다.

(162-3쪽)

 

 

 

레비는 토리노를 '진정한 고향'이라 생각했고, 그곳으로 다시 살아 돌아왔다. 아메리의 경우는 고향인 빈에서 자신을 길러준 '독일 문화'가 바로 '독일 문화'의 자식인 그를 손바닥 뒤집듯이 바깥 세계로 추방해버렸다. 아메리는 전후에도 오스트라아에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고향과 그 사이에는 영원히 서먹서먹함만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

그러나 나는 레비의 경우에도 고향으로 살아 돌아올 수는 있었지만, 그 고향 아니 고향이라기보다 아우슈비츠 이후의 '세계'자체가 이미 예전과 같지는 안핬으리라고 생각한다. 일단 '불순물'을 분류하고 배척한 전력이 있는 사회가 또다시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그 의 아이덴티티가 근거한 서양문명은 나찌즘이라는 괴물을 낳아 자기 붕괴에 임박해 있었다. '저편'에서 살아 돌아온 그의 눈에는 '이편'의 세계에서 한없이 진행되는 수복 불능의 균열이 잘 보였을 것이다. 틀림없이 그 광경은 아프도록 신경을 건드리며 그를 한없이 불안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172쪽)

 

 

 

이런 사상의 희생자들은 멸시당하고, 굴욕적인 대우를 받고, 들볶이고, 노예로 혹사당하다 못해 아예 살육되었다. 그 각각의 장면에서 그들은 '같은 인간인데 왜?'라고 낮은 목소리로 신음했던 것이다. 근원적인 물음이다. 굴욕이나 고통과 함께 몸 안에 새겨진 이 근원적인 물음이 그들을 움직였고, '같은 인간'이라는 척도를 재건하는 어려운 위치로 그들을 내몰았다.

차별하는 자에게 '같은 인간'이라는 관념은 그냥 단순한 표어 정도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이지만, 차별받는 자에게는 자신의 육체나 정신을 지키는 투쟁의 근거이며 무기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피해자 측은 언제나 가해자를 포함한 새로운 보편성의 틀을 재구축하는 역할을 짊어지게 된다. 그것이 인류의 역사를 관통하는 변증법이다.

(183쪽)

 

 

 

"옆 사람에게서 빵 4분의 1 조각을 빼앗기 위해 그의 죽음을 기다리는 것은, 그것이 자신의 죄가 아니더라도, 가장 야만적인 피그미(Pygmy, 아프리카 원주민의 한 종족)나 가장 잔인한 새디스트보다도, 사고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규범에서 벗어나 있다." 쁘리모 레비의 말이다. 나찌 인종주의의 희생자였던 그의 입에서 '야만적인 피그미'라는 말이 나왔다는 사실에 복잡한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 없다.

(...)

쁘리모 레비는 나찌즘과의 싸움을 '문명' 대 '야만'이라는 대립 구도로 파악했던 측면이 크다. 레비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탈리아 저항운동의 유서]의 서문을 쓴 아뇰레띠도 파시즘을 "야만이며 문명과는 거리가 먼 잔혹한 것"이라고 형용한다. 당시의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레지스땅스 운동 자체가 전반적으로 유럽중심주의적 발상을 취했으며, 파시즘이나 나찌즘을 서구 '문명'에 대립하는 '야만'이라고 파악했다. 대부분의 유럽 지식인이 그렇듯이, 쁘리모 레비 또한 적어도 [아우슈비츠는 끝나지 않았다]를 쓴 시점, 전쟁이 끝난 직후 그가 아직 젊었을 때는 자기 내부의 유럽중심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듯하다.

(...)

다만 나는 쁘리모 레비에게 '문명'을 전적으로 부정하라거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등의 요구를 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나는 아우슈비츠의 '야만' 세계에서 온갖 균열 속에 있는 '문명' 세계로 생환해온 그에게서 이 '문명' 세계의 자기 모순을 짊어지고, 새로운 보편적 문명의 구축이라는 난제의 무게를 견뎌내어 일어서는 동시대인의 모습을 보게 된다.

(192-4쪽)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은 여기에서 아렌트가 주장한 바가 독일이라는 정치 공동체의 성원, 즉 '독일 국민'의 정치적 책임을 면책할 수 있다고 오독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아렌트는 그후에 쓴 [집단의 책임]이라는 논문에서 '죄'와 '책임'의 개념을 명확히 구별한다. 그녀는 "우리 전부에게 죄가 있다"라는 호소가 현실에서는 실제 죄를 지은 자를 무죄방면하는 데 일조할 뿐이었다고 말한다. '죄'는 법적 개념이며, "엄밀한 의미에서 개인과 관련된다." 그와 다르게 정치 공동체의 선원이라면 누구나 짊어져야 할, 정치적 의미에서의 '집단적 책임'이 있다. 바꿔 말하면 '독일인'이라는 집단 중에서 '죄'를 지은 개인은 있지만 '독일인' 전체에 '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독일인 전체의 죄'라는 생각은 오히려 죄를 지은 개인을 은닉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독일 국민이라면 누구나 독일이라는 정치 공동체의 행위에 '집단적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런 '집단적 책임'을 면할 수 있는 사람은 난민이나 망명자 등 '국가가 없는 사람들'뿐이다.

그런데 태연하게 '독일인'임을 수치스러워하지 않는 독일인이과 만났을 때 한나 아렌트는 뭐라고 말했을까? 흥미로운 문제다.

(211-2쪽)

 

 

 

아우슈비츠에서 해방된 지 20년 이상이 지나 유령처럼 나타난 뮐러, 정직하고 무기력한 평균적인 독일인인 그는 '과거의 극복'을 말하는 한편, I.G. 파르벤을 변호하고 유대인이 학살된 사실은 "몰랐다"고 한다. 부나에 있을 때조차 유대인인 레비에게 "왜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느냐?"고 물은 인물이었다. 말살의 위협에 노출된 강제수용소의 수인이 매일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측의 사람에게 자신이 왜 불안한지 설명하기를 요구받는 것이다. 게다가 상대는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그런 부조리르 전혀 "모른다"고 한다. 그런 인물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

(...)

지금에 와서 독일인들은 '독일인'이란 것이 실체가 없는 관념에 불과하다고 해명한다. 죄는 '독일인' 전체가 아니라, 히틀러나 아이히만 그리고 그밖의 특정한 개인에게 있다고 목소리 높여 주장한다. 혹은 죄는 '독일인'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에 있다고 무거운 어조로 설교한다.

그런 언급 하나하나는 너무 자주 들어서 진절머리가 날 정도며, 너무도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누가 누구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인가. 독일인 중에서도 예외적으로 나찌즘과 싸우느라 희생을 무릅쓴 극소수의 사람이 있는데, 그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한다면, 피해자의 귀에 그것은 책임 회피를 위한 수사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만약 책임 회피가 아님을 증명하려면, 상상할 수조차 없는 역유토피아를 지상에 불러온 그들의 '전통, 관습, 역사, 언어, 문화의 총체'를 독일인들 스스로가 히 흘릴 정도의 노력으로 해부하고 개조해가야 하지 않겠는가.

(227-9쪽)

 

 

 

쁘리모 레비 같은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도 김학순 할머니 같은 과거 '위안부'들도 모두 이 폭력의 세기에서 살아남은 귀중한 증인이다. 하지만 증인들은 자기 자신의 이해를 초월하고 표현 가능성을 초월한 경험을 증언해야만 한다. 이해 불능의 경험을 이해하고, 표현 불능의 상황을 표현하고, 전달 불능의 상념을 전달한다는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부조리하게도 증인들에게 부과된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증인들은 부당한 의심과 무관심한 시선에 둘러싸여 고립된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2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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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조 아감벤, <목적없는 수단> 1부 요약

▶ 『목적없는 수단』(조르조 아감벤, 난장)1부 요약 ◀

 

 

1. 삶-의-형태

 

1) 그리스인들에게는 우리가 오늘날 생명vita이라는 말로 이해하는 것을 표현하는 단일 용어 없었음. 생명체가 살아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표현하는 조에, 개인이나 지단에 고유한 살아가는 방식이나 형태를 의미하는 비오스. ‘생명’은 조제와 비오스 사이의 공통된 벌거벗은 전제를 가리키고, 저 공통된 전제를 무수한 삶의 형태 각각 안에 고립시켜버리는 것은 언제든 가능. 반대로 삶-의-형태라는 용어를 통해서 우리는 그 형태와 결코 분리할 수 없는 삶, 그것으로부터 벌거벗은 생명 같은 것을 결코 고립시킬 수 없는 삶을 가리킴.

 

2) 그 형태와 분리될 수 없는 삶이란, 살아가는 방식 속에서 삶 자체가 문제가 되는 삶, 살아가는 와중에 무엇보다 살아가는 방식 자체가 문제가 되는 삶이다. 이 표현은 무슨 뜻인가? 이 표현은 어떤 삶(인간의 삶)을 정의한다. 이 삶에서는 살아가는 모든 방식, 모든 행위, 모든 과정이 결코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항상 무엇보다 삶의 가능성이며, 항상 무엇보다 역량이다. (...) 그러므로 인간은 삶에 있어서 행복이 문제가 되는 유일한 존재이며, 인간은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울 정도로 삶이 행복에 부여되어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그렇지만 이 사실 자체가 곧 삶-의-형태를 정치적 삶으로 구성한다.

 

3) 이와 반대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정치권력은 항상 최종심에서는 삶의 형태라는 맥락에서 벌거벗은 생명의 영역을 분리해내는 데 기초하고 있다. 생명이라는 용어가 법적인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경우는 딱 한 번뿐이다. 생살여탈권vitae necisque potestas이라는 표현이 그 경우인데, 이것은 아버지가 제 자식을 살리고 죽일 수 있는 권력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생살여탈권은 주권권력의 원초적 중핵을 구성한다. 따라서 토머스 홉스가 주권을 정립할 때 자연상태에서의 삶은 그 존재가 무조건적으로 죽음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만인에 대한 만인의 무제한적인 권리)에 의해서만 정의된다. 국가권력을 정의해주는 절대적이고 영속적인 역량은 결국 어떤 정치적 의지가 아니라, 주권자(또는 법)가 가진 생살여탈권에 복속되는 한에서만 보존되고 보호될 수 있는 벌거벗은 생명에 기초한다.(성스러운sacer이라는 형용사의 원래 의미)

 

4) “억압받는 자들의 전통은 우리가 그 속에 살고 있는 예외상태가 규칙이 됐음을 가르쳐준다. 우리는 이에 상응하는 역사의 개념에 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발터 벤야민) 벤야민의 진단이 시의성을 잃지 않은 것은 주권의 감춰진 토대를 구성했던 벌거벗은 생명이 그동안 도처에서 지배적인 삶의 형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것이 되어버린 예외상태에서 삶은 모든 영역에서 삶의 형태가 단일한 삶-의-형태로 응집되지 못하도록 그 형태 자체를 분리해내는 벌거벗은 생명이다. 칼 맑스가 말한 인간과 시민의 분열은 이렇게 주권의 궁극적이자 불투명한 담지자인 벌거벗은 생명, 그리고 전적으로 이 벌거벗은 생명에 기초해 있지만 법적-사회적 정체성 등 추상적으로 재코드화된 여러 삶의 형태 사이의 분열로 대체된다.

 

5) 권력체계에서의 의학적-과학적 이데올로기가 결정적인 기능을 차지함. 정치적 통제를 목적으로 과학을 빙자하는 사이비 개념의 사용이 증가하고 있음. 즉, 주권자가 각각의 상황에서 삶의 형태에 대해 조작해왔던 벌거벗은 생명의 추출과 똑같은 추출이 오늘날에는 신체, 질병, 건강에 관한 사이비-과학적 표상에 의해, 또한 삶과 개인의 상상력이라는 보다 광범위한 영역을 의료화함으로써 대대적이고 일상적으로 실현되고 있다. 벌거벗은 생명의 속화된 형태인 생물학적 생명은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불가침적이라는 점에서 벌거벗은 생명과 고통점이 있다. 그리하여 생물학적 생명은 현실의 삶의 형태를 문자 그대로 생존이라는 형태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생물학적 생명은 폭력, 외국인 신분, 질병, 사고 속에서 곧바로 현실화될 수 있는 불분명한 위협마냥 그 생존의 형태 속에 생각되지 않은 채 남아 있게 된다. 이 생물학적 생명은 권력자들의 바보 같은 가면 뒤에서 우리에게 시선을 보내는 보이지 않는 주권자이다. 권력자들은 이것을 알든 알지 못하든 이 생물학적 생명의 이름으로 우리를 통치한다.

 

6) 정치적인 삶, 즉 행복이라는 관념으로 정향되고 삶-의-형태 안에 응집되는 그런 삶은 이런 분열에서 해방됨으로써만, 일체의 주권으로부터 돌이킬 수 없는 엑소더스를 감행함으로써만 사유될 수 있다. 따라서 비국가적인 정치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은 반드시 다음과 같은 형태를 띤다. 오늘날 삶-의-형태 같은 뭔가를 파악할 수 있는가? 즉, 살아가는 와중에 삶 자체가 문제가 되는 삶, 곧 역량의 삶이 가능한가?

단지 내가 항상 그저 현실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과 역량을 가질 수 있다면, 그리고 단지 내가 겪고 이해한 것 속에서 매번의 삶과 이해 자체가 있을 수 있다면, 달리 말해 이런 의미에서 사유가 있을 수 있다면, 삶의 형태는 그 자신의 사실성과 사물성에 있어서 삶-의-형태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이런 삶-의-형태에서는 벌거벗은 생명 같은 뭔가를 고립시키는 일이 전적으로 불가능해질 것이다.

 

7) 여기서 논하고 있는 사유의 경험이란 항상 공통된 역량의 경험이다. 공동체와 역량은 여지없이 완전히 서로 동화된다. 왜냐하면 각자의 역량에 공동체의 원리가 내재한다는 것은 모든 공동체가 가진 필연적으로 잠재적인 특성의 기능이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잠재적인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을 통해서만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 모든 소통은 무엇보다 이미 현실태로 있는 공통된 것의 소통이 아니라 잠재적인 소통가능성의 소통이다. 따라서 근대 정치철학은 사색, 사변적인 삶bios theoreticos을 분리되고 고독한 활동(“혼자의 다른 혼자에 대한 망명”)으로 만들어버린 고전적 사유를 가지고 시작했던 것이 아니라 아베로에스주의, 다시 말해서 모든 인간들에게 공통된 유일하게 가능한 지성의 사유를 가지고 시작했던 것이다.

 

8) 사회적 역량으로서의 지성과 맑스가 말한 일반지성은 이런 경험의 전망속에서만 그 의미를 획득한다. 일반지성은 사유의 역량 그 자체에 내재하는 물티투도를 명명한다. 지적 능력, 사유는 삶과 사회적 생산을 절합하는 여타의 다른 삶 중 하나의 삶의 형태가 아니라, 다양한 삶의 형태를 삶-의-형태로 구성해내는 통일의 역량이다. 모든 영역에서 벌거벗은 생명을 삶의 형태와 분리함으로써만 자신을 긍정할 뿐인 국가의 주권성에 맞서, 지적 능력과 사유는 삶과 그 형태를 끊임없이 다시 묶어주고 삶으로부터 형태가 분리되는 것을 막아주는 역량이다.

 

 

2. 인권을 넘어서

 

1) 이제 멈출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 국민국가의 쇠퇴와 전통적인 법적-정치적 범주의 전반적인 해체 속에서, 난민은 어쩌면 오늘날 생각할 수 있는 인민의 유일한 형상이다. 그리고 적어도 국민국가와 그 주권의 와해과정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이상, 난민은 오늘날 도래하는 정치공동체의 형태와 그 한계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범주이다. 만일 우리가 맞닥뜨린 완전히 새로운 과제를 처리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정치적인 것의 주체를 대표해 온 근본 개념들(인간, 권리를 가진 시민들, 또한 주권자로서의 인민, 노동자 등)을 지체 없이 포기하고, 난민이라는 이 둘도 없는 형상에서 우리의 정치철학을 재구축해야 할 것이다.

 

2) 난민이 대규모 현상으로서 처음 출현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이다. 그때는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오스만 제국의 붕괴, 그리고 평화조약에 의해 창출된 새로운 질서가 중부․동부 유럽의 인구와 영토의 상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 국민국가를 모델 삼아 평화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세운 새로운 국가조직(예를 들어 유고슬라비아와 체코슬로바키아)의 인구 중 30% 정도가 대개 사문화된 채로 있었던 일련의 국제조약에 의거해 보호받아야만 하는 소수민족이었다는 사실을 덧붙여야 한다. 불과 몇 년 뒤에 독일의 인종차별법과 스페인 전쟁을 거치면서 다수의 새로운 난민이 유럽 전역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

여기에서 중요하게 지적해야 하는 것은 제1차 세계대전 때부터 많은 유럽 국가들이 자국 시민의 귀화국적박탈과 국적박탈을 허용하는 법을 도입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프랑스는 1915년에 ‘적성국가’ 출신의 귀화시민에 관한 법을 선포했다. 잉어 1922년에는 벨기에가 전쟁 동안 ‘반국가적/반민족적’행위를 저지른 시민의 귀화를 철회했다. 1933년에는 오스트리아의 차례였고, 자국 시민들을 모든 권리를 지닌 시민과 정치적 권리가 없는 시민으로 분할한 독일의 뉘른베르크법은 1935년까지도 계속됐다. 이런 법들(그리고 그 결과 생겨나게 된 대량의 무국적자)은 근대 국민국가의 삶에서 어떤 결정적인 전환점을 표시하는 거시자, 인민과 시민이라는 소박한 관념으로부터의 결정적인 해방을 나타낸다.

 

3) 아렌트는 난민 문제에 할애한 『제국주의』의 5장에 「국민국가의 몰락과 인권의 종말」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우리는 인권의 운명과 근대 국민국가의 운명을 뗄 수 없이 연결시키는 이 정식화를, 국가의 쇠퇴는 필연적으로 인권의 위축을 함축한다는 방식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여기에서 역설은 그 무엇보다 인권을 구현해야 할 형상인 난민이 거꾸로 그 개념의 근본적 위기를 표식하게 됐다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실존한다는 가정에 기초한 인권 개념은, 이 개념을 앞장서서 외쳤던 사람들이 인간이라는 순수한 사실(벌거벗은 생명으로서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제외한 여타의 모든 성질과 특정한 관계를 상실한 사람들과 처음 대면하자마자 파산할 것”이라고 아렌트는 말했다.

있는 그대로의 순사한 인간 같은 존재가 들어설 수 있는 자율적인 공간이 국민국가의 정치 질서에 없다는 것은 적어도 다음 같은 사실 때문에 분명하다. 심지어 최선의 사례에서도, 난민의 지위는 항상 귀화 또는 본국송환에 이를 수밖에 없는 일시적인 조건으로 여겨져 왔다는 사실 말이다. 있는 그대로의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안정적인 법적 지위는 국민국가의 권리 안에서는 생각할 수 없다.

 

4) 1789년에서 오늘날에 이르는 권리선언들의 목표가 초법적인 영원한 가치를 선포해 입법자로 하여금 권리를 존중하게 만드는 것이었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건 그만두자. 이제는 근대 국가에서 수행한 실질적 기능에 따라 그 권리선언들을 이해해야 할 때이다. 사실 무엇보다 인권은 벌거벗은 자연적 생명이 국민국가의 법적-정치적 질서에 등록됐다는 시초의 형상을 나타내는 것이다. (...) 선언은 구체제의 붕괴에 뒤이어 나타난 새로운 국가질서에 삶이 편입되도록 보장해줬다. 선언을 통해 신민studdito시민cittadino으로 전환됐다는 사실은 출생, 즉 자연적인 벌거벗은 생명 자체가 여기에서 처음으로 주권의 직접적인 담지자가 됐음을 의미한다.

 

5) 난민이 국민국가의 질서에서 이처럼 걱정스러운 요소를 대표하게 된 까닭은 무엇보다도 난민이 인간과 시민의 동일성, 출생과 국적의 동일성을 깨뜨림으로써 주권의 원초적인 허구/의제를 위기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 난민이라는 주변적인 형상은 국가-국민-영토라는 낡은 삼위일체를 파괴한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오히려 우리 정치사의 중심적인 형상으로 간주될 만한 가치가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애초 수용소란 난민을 통제하기 위한 공간으로서 유럽에 세워졌다는 것이며, 강제수용소-집중수용소-몰살수용소로의 계승이 완벽한 진짜 계통을 재현한다는 점이다. 나치가 ‘궁극의 해결책’을 실행하던 때에 드물게도 꾸준히 준수했던 규칙 중 하나는, 유대인과 집시에게서 국적을 완전히 박탈한 다음에 이들을 몰살수용소로 보낸다는 것이었다. 인간은 그/녀가 가진 권리가 더 이상 시민의 권리가 아닐 때 지정으로 성스럽다sacro. 고대 로마법에서 그 단어가 가졌던 ‘죽음에 바쳐진’이란 의미에서 말이다.

 

6) 난민 개념을 인권 개념으로부터 과감하게 해방시켜야 한다. 난민은 국민국가의 원리를 근본적으로 위기에 빠뜨리는 동시에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범주상의 혁신을 위한 터를 닦아주는 한계 개념이나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산업국들이 직면하고 있는 것은 안정적으로 거주하는 대규모의 비시민들이다. 이들은 국적을 취득할 수도 본국으로 송환될 수도 없으며, 또한 그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가끔이 비시민들이 출신국의 국적을 갖기도 하지만, 본국의 보호를 누리고 싶어 하지 않을 때부터 이들은 마치 난민처럼 ‘사실상 무국적’ 상태에 놓이게 된다.

 

7) 주지하다시피, 예루살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려된 선택사항 중 하나는 예루살렘을 어떤 영토적 분할도 없이 동시에 다른 두 국가조직의 수도로 삼는 것이었다. 이 방법에 내포된 상호간의 바깥영토(혹은 오히려 비영토성)라는 역설적 조건은 새로운 국제관계 모델로 일반화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두 국민국가가 불확실하고 위협적인 경계선으로 분리되는 대신 두 정치공동체가 똑같은 지역에서, 일련의 상호간의 바깥영토를 통해 절합되어 상대 공동체로 서로 엑소더스하는 것도 상상해볼 수 있다. 이런 상호간의 바깥영토에서 주도적 개념은 더 이상 시민의 법/권리jus가 아니라 오히려 개인의 피난처refugium가 될 것이다. 비슷한 의미에서 우리는 유럽을 불가능한 ‘국민들의 유럽’이 아니라, 오히려 비영토적 공간 또는 상호간의 바깥영토를 위한 공간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 공간에서 유럽 국가의 모든 거주민(시민과 비시민)은 엑소더스나 피난의 상태에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유럽인의 지위란 (물론 이동하지 않으면서도) ‘엑소더스 중에 있는’ 시민을 뜻하게 될 것이다.

 

 

3. 인민이란 무엇인가?

 

1) 한나 아렌트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 용어의 정의 자체는 동정심에서 생겨났으며, 이 말은 불운과 불행의 동의어가 됐다. 로베스피에르는 ‘인민, 이 가련한 자들이 나에게 갈채를 보내네’라고 말했으며, 심지어 프랑스혁명에서 가장 감상적이지 않았고 가장 명석했던 인물 중 한 명인 시에예스조차도 ‘늘 불쌍한 인민’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장 보댕에게 이 개념은 정반대의 의미에서 이중적이었다. 보댕은 민주주의나 인민국가를 정의한 『국가론』의 어느 장에서 주권을 보유하는 인민체peuple en corps와 서민menu peuple을 대립시켰다. 지혜는 이 후자를 정치권력으로부터 배제하라고 권고했다.

 

2) 우리가 인민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단일한 주체가 아니라 오히려 대립하는 양극 사이를 오고가는 변증법적 진동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에는 총체적이자 일체화된 정치체로서의 (대문자) 인민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가난하고 배제된 자들의 부분적이자 파편화된 다수로서의 (소문자) 인민이 있다. 또한 한편에는 나머지라곤 없는 듯이 보이는 포함적 개념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아무런 희망도 주지 못한다고 생각되는 배제적 개념이 있다. 한 쪽 극에는 주권과 일체화된 시민들의 완전한 국가가 있고, 다른 쪽 극에는 비참한 자․억압받는 자․정복당한 자로 구성된 금지구역이 있다. (...) 인민이라는 개념에서 우리가 본래의 정치구조를 규정하는 짝패 범주들을, 즉 벌거벗은 생명(소문자 인민)과 정치적 실존(대문자 인민), 배제와 포함, 조에와 비오스를 손쉽게 알아볼 수 있다는 뜻이다.인민이라는 개념은 그 안에 근본적인 생명정치적 균열을 이미 언제나 담고 있다. 인민은 자신이 이미 언제나 포함되어 있는 전체에 속할 수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자신이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전체에 포함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인민 개념은 정치 무대에 불려와 작동되는 매 순간 모순과 아포리아를 발생시킨다. 인민의 실현은 자신의 폐지와 존재하기 위해서 인민은 자신의 대립물을 통해 스스로를 부정해야만 한다.(그러므로 노동운동 특유의 아포리아는 인민을 향하는 동시에 인민의 폐지를 목표로 한다.) (...) 사실상 맑스가 말한 계급투쟁은 모든 인민을 분할하는 내부의 전쟁이자, 계급 없는 사회나 메시아적인 왕국에서 (대문자) 인민과 (대문자) 인민이 일치하게 될 때에만, 정확히 말해서 어떤 인민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때에만 종식되는 내부의 전쟁 외에 다른 무엇도 아니다.

 

3)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배제된 자들인 인민을 근본적으로 제거함으로써 인민을 분할하던 분열을 메워보려는 집요하고도 체계적인 시도에 불과하다. 이런 시도는 상이한 양상과 지평에 따라 우파와 좌파, 그리고 자본주의 국가들과 사회주의 국가들 모두가 단이하며 분할되지 않는 하나의 인민을 창출하려는 계획에 협력하도록 만들어왔다.

이렇게 보면 나치 독일에서 이뤄진 유대인 몰살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된다. 국민적인 정치체로의 통합을 거부한 인민인 유대인들은 (사실상 유대인의 동화는 실제로는 시늉에 불과하다고 간주됐다) 무엇보다 인민, 즉 근대성에 의해 그 내부에서 불가피하게 창출될 수밖에 없었으나 더 이상 어떤 방식으로도 용납하기 힘든 존재가 되어버린 벌거벗은 생명의 전형인 동시에 살아 있는 상징이다. 우리는 독일 민족Volk(그 무엇보다도 더 일체화된 정치체로서의 인민을 보여주는 훌륭한 전형)이 (대문자) 인민과 (대문자) 인민을 분리하는 내부 투쟁의 최종 국면으로서 유대인들을 영원히 말살하고자 했던 그 분명한 광기를 인식해야만 한다. 궁극의 해결책을 통해 나치즘은 이 용납할 수 없는 어둠으로부터 서구의 정치무대를 막연하고 쓸데없이 해방하려 함으로써 마침내 원초적인 생명정치적 균열을 메우는 인민으로서의 독일 민족을 만들어냈다(나치의 우두머리들이 유대인과 집시를 제거함으로써 자신들이 사실상 다른 유럽의 인민에게 봉사하고 있다고 그렇게 집요하게 되풀이해 주장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근대적인 생명정치가 “벌거벗은 생명이 있는 곳에 (대문자) 인민이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는 주장에 따른 원리에 의해 뒷받침된다고 말할 수 있다면, 이 원리는 “(대문자) 인민이 잇는 곳에 벌거벗은 생명이 있을 것이다”라는 그 반대 정식에서도 유효하다고 곧 덧붙여 말할 수 있다. 유대인이 그 상징인 (소문자) 인민을 제거함으로써 메울 수 있다고 여겼던 균열이 이처럼 새롭게 재생산됐으며, 이에 따라 전체 독일 인민을 죽어야만 하는 성스러운 생명이자 (정신적 질병과 유전적 질병의 보균체들을 제거함으로써) 무한히 정화되어야만 하는 생물학적 몸으로 바꿔놓았다.

 

 

4. 수용소란 무엇인가?

 

수용소란 무엇인가? 수용소의 법적-정치적 구조는 무엇인가? 어째서 그런 사건들이 일어날 수 있었는가? 이런 물음은 수용소를 하나의 역사적인 사실, 과거에 속하는 하나의 변종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가 여전히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정치공간의 감춰진 모체이자 노모스nomos로 바라보게 해줄 것이다.

수용소란 일반적인 법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예외상태와 계엄령에서 생겨난 것이다. 나치 법률가들은 프로이센에서 유래한 보호검속 제도를 간혹 예방적인 치안조치로 간주했다. 형법상 처벌받아야만 하는 행동과는 전혀 무관하게 그저 국가안전에 대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 개인을 ‘구류’시키는 것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보호검속에서 문제가 된 자유의 ‘보호’는 아이러니하게도 긴급사태의 특징인 법의 중지로부터의 보호였다. 여기에서 새로운 것은 이제 이 제도가 자신이 근거하는 예외상태에서 이탈해 정상상태에서도 효력을 지닐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수용소란 예외상태가 규칙이 되기 시작할 때 열리는 공간이다.

주권권력이 예외상태를 결정할 수 있는 능력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이라면, 수용소는 예외상태가 안정적으로 실현되는 구조인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적 지배를 지탱하고 있는 원리이자 여간해서는 상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원리, 즉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원리가 수용소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봤던 의미에서 수용소는 법이 전면적으로 중지되고, 거기에서 정말 모든 것이 가능해지는 예외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수용소에 대한 훨씬 더 정직하고 유용한 물음은, 인간 존재가 어떤 법적 절차와 정치적 장치를 통해서 자신의 권리와 특권을 완전히 빼앗겨버렸기에, 더 이상 범죄처럼 보이지 않게 될 정도로 이들에 대해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는 지점(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진정 모든 것이 가능하게 된다)에 이르게 됐는가를 주의 깊게 탐구하는 것이다. 만일 수용소의 본질이 예외상태의 물질화이자 또 그 결과로서 벌거벗은 생명 자체를 위한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었다면, 우리는 이런 구조가 창출될 때마다 매번 잠재적으로 수용소와 대면하고 있음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 시대에 수용소가 탄생한 것은 근대성의 정치적 공간 자체를 결정적인 방식으로 특징짓는 사건처럼 보인다. 생명(탄생 또는 국민)을 자동으로 등록해주는 규칙이 매개하는 장소확정(영토)과 질서(국가)의 기능적 연관을 토대로 세워진 근대 국민국가의 정치체계가 지속적인 위기에 들어섰을 때, 그리고 국가가 국민의 생물학적 생명에 대한 관리를 자신의 직접적인 임무로 떠맡기를 결정했을 때, 바로 이때 수용소가 탄생한다. 의미심장하게도 수용소는 시민권이나 시민의 국적박탈에 관한 새로운 법이 공표된 것과 동시에 나타났다. 본질적으로는 질서의 일시적 중지였던 예외상태가 이제 새롭고 안정적인 공간 배치가 되며, 바로 이곳에 벌거벗은 생명이 거주한다. 그리고 벌거벗은 생명은 점점 더 질서에 등록될 수 없게 된다. 탄생(벌거벗은 생명)과 국민국가 사이에서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간극은 우리 시대 정치의 새로운 사실이며, 우리는 바로 이 간극을 ‘수용소’라고 부른다. 장소를 벗어난 장소확정이라고 할 수 있는 수용소는 우리가 그 안에서 여전히 살고 있는 정치의 감춰진 모체이며, 우리는 그것이 어떻게 변신하더라도 그것을 인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수용소는 국가-국민(탄생)-영토라는 오래된 삼위일체를 깨뜨리면서 그것에 덧붙는 네 번째이자 분리 불가능한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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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미스, <힐러리에게 암소를> (녹색평론 2001년 3-4월 호)

 마리아 미스가 그의 동료 베로니카 벤홀트-톰센과 함께 쓴 The Subsistence Perspective:Beyond the Globalized Economy(1999)의 서문에서 발췌.

 

 

___________________________

 

 

 1995년 4월 북경에서 '유엔 세계 여성회의'가 열리기 몇달 전 미국의 퍼스트레이디 힐러리 클린턴이 방글라데시를 방문하였다. 그녀의 방문목적은 방글라데시 시골마을들에서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들어온 '그라민은행'(Grameen Bank=풀뿌리 민중의 자립적 삶을 지원하기 위해 가난한 시골마을 사람들, 특히 여성들에게 소액의 사업자금을 무담보로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 . 운영중에 있는 은행 ― 역주)의 사업이 정말 소문대로 잘되고 있는지를 몸소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그라민은행의 소액대출은 방글라데시에서 농촌여성들의 상황을 놀랄 만큼 향상시켜온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클린턴 부인은 정말 이 여성들의 힘이 소액대출 때문에 커졌는지를 알고 싶었다. 그라민은행이나 개발지원 기관들에게는 '여성의 힘이 커진다'는 것은 한 여성이 자기자신의 소득을 가지고, 얼마간의 자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힐러리 클린턴은 마이샤하티 마을을 방문하였고, 거기서 그곳 여성들의 상황에 대하여 몇몇 여성들과 회견을 가졌다. 여성들은 대답하였다. "네, 우리는 이제 우리 자신의 수입이 있어요." 그들은 얼마간의 '자산'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암소, 닭, 오리 등이라고 했다. 아이들도 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그들은 말했다. 이러한 대답을 듣고 클린턴 부인은 만족스러웠다. 마이샤하티 마을에서 여성들의 힘은 분명 커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질문하는 사람이 방글라데시 여성이 되고, 힐러리 자신이 대답을 해야 될 차례가 되었을 때 미국의 퍼스트레이디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질문과 대답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아파[자매님], 당신은 암소가 있어요?"
"아뇨, 나는 암소가 없는데요."
"아파, 당신은 자기 소득이 있어요?"
"실은, 전에는 내가 직접 벌었는데요, 그런데 남편이 대통령이 되어 백악관으로 옮긴 다음부터는 내가 직접 돈버는 일을 그만두었답니다."
"아이들은 몇 있나요?"
"딸 하나예요."
"아이들을 더 갖고 싶진 않나요?"
"네, 하나나 둘쯤 더 갖고 싶긴 해요. 하지만 우리는 우리 딸 첼시와 함께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요."
마이샤하티 마을 부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참 안됐네! 힐러리 부인은 암소도 없고, 자기 소득도 없고, 아이도 딸아이 하나뿐이라는군." 방글라데시 농촌여성들의 눈에 힐러리 클린턴은 결코 힘이 있는 여성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녀에게 동정심을 느꼈다.

 

- [녹색평론] 2001년 3-4월호 中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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쁘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中 (2010년 8월 발췌독)

 

 

하지만 슈타인라우프가 내 생각을 가로막는다. 그는 세수를 다 했고, 무릎 사이에 끼워두었던, 나중에 걸칠 아마포 상의로 몸의 물기를 닦는다. 그러고는 나에게 제대로 된 가르침을 주는데, 그 와중에도 자기가 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그의 분명하고도 단호한 말들을, 과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하사관으로서 1914~1918년 전쟁에서 철십자훈장을 받은 슈타인라우프의 말들을 잊어버려 마음이 아프다. 그의 서툰 이탈리아어와 훌륭한 군인다운 단순어법을 믿음없는 인간인 나 자신의 언어로 옮겨야 하다니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나는 그 당시에나 나중에나 그 말의 뜻만큼은 잊지 않았다. 그건 바로 이런 뜻이었다. 수용소는 우리를 동물로 격하시키는 거대한 장치이기 때문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동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곳에서도 살아남는 것은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똑똑히 목격하기 위해 살아남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는 최소한 문명의 골격, 골조, 틀만이라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가 노예일지라도, 아무런 권리도 없을지라도, 갖은 수모를 겪고 죽을 것이 확실할지라도, 우리에게 한가지 능력만은 남아 있다. 마지막 남은 것이기 때문에 온 힘을 다해 지켜내야 한다. 그 능력이란 바로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당연히 비누가 없어도 얼굴을 씻고 윗도리로 몸을 말려야 한다. 우리가 신발을 검게 칠해야 하는 것은 규정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한 존중과 청결함 때문이다. 우리는 나막신을 질질 끌지 말고 몸을 똑바로 세우고 걸어야 한다. 그것은 프로이센의 규율을 따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쓰러지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다.

 

- 57~8쪽

 

(아, 이것이 프리모 레비 자유정신의 정수!!)

 

 

 

여기 내 누이가 있다. 그리고 정확히 누구인지 알수 없는내 친구들 몇명과 다른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 모두 내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이야기는 이렇다. 세 가지 음으로 이루어진 경적 소리, 딱딱한 침대, 옆으로 밀어버리고 싶지만 나보다 훨씬 히이 세기 때문에 잠을 깨울까 두려운 내 옆 사람 이야기다. 우리의 허기, 이 검사, 내 코를 주먹으로 때렸다가 피가 나니까 가서 씻고 오라고 한 카포에 대해 산만하게 이야기한다. 내 집에 돌아와 친한 사람들 속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강렬하고 구체적이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다. 그러나 청중들이 내 말을 득고 있지 않다는 게 빤히 보인다. 그뿐 아니다. 그들은 완전히 무관심하다. 그들은 내가 그 자리에 없는 것처럼, 자기들끼리 전혀 다른 이야기를정신없이 나눈다. 누이가 나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아무 말 없이 그곳을 떠난다.

마음속에서 황폐한 슬픔이 서서히 자라난다. 현실감각이나, 갑자기 침입하는 외적 요인 따위에 길들여지지 않는 순순한 상태의 고통이다. 어린아이들을 울리는 것과 비슷한 아픔이다. 다시 한 번 표면으로 헤엄쳐 올라가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단호히 눈을 뜬다. 내가 실제로 깨어 있음을 확인해줄 어떤 것을 내 눈앞에서 찾기 위해서.

아직도 따뜻한 꿈이 내 앞에 있다. 잠을 깨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 꿈의 고통에 사로잡혀 있다. 그때 이것이 우연한 꿈이 아니라 내가 이곳에 온 이후로 이미 꿨던 꿈이라는, 상황이나 세부 사항들도 거의 바뀌지 않고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꿨던 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나는 완전히 맑은 정신을 되찾는다. 이 꿈 이야기를 이미 알베르토에게 했던 것이 생각난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가 자기도, 또 다른 많은 사람들도 그런 꿈을 꾼다고 털어놓았던 것도 생각난다. 그는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그런 꿈을 꿀지도 모른다고 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왜 매일매일의 고통이, 우리가 이야기를 하는데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장면으로 거듭해서 꿈으로 번역되는 걸까?

 

- 88-89쪽

 

 

 

우리는 명백하고 손쉬운 추론을 믿지 않는다. 모든 문명적 상부구조가 제거되면 인간의 행동은 기본적으로 잔인하고 이기적이고 우둔하다는 추론 말이다. 이러한 추론에 따르면, '해프틀링'은 거리낌이 없는 인간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 생각에 도출될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은, 궁핍과 지속적인 육체적 고통 앞에서 수많은 사회적습관과 본능이 침묵에 빠진다는 것뿐이다.

 

- 132쪽

 

 

 

 

유대인 특권층들이 만들어내는 인간상은 슬프면서도 주목할 만하다. 현재, 과거, 고래古來의 고통들, 이방인에 대한 전승되고 학습된 적개심이 그들 안에서 하나가 되며, 이 모든 것들이 그들을 비사교적이고 무례한 괴물로 만든다.

그들은 독일 수용소가 구조적으로 만들어낸 전형적인 작품이다. 노예 상태에 있는 몇몇 개인에게 특권을누릴 수 있는 자리, 어느 정도의 편안함과 높은 생존 가능성이 제공되는데, 대신 그들은 동료들과의 자연스러운 연대감을 배신하라는요구를 받는다. 물론 몇몇은 그 요구를 받아들인다. 그 사람은 일반 규정을 면제받고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그래서 밉살스럽다. 사람들로부터 증오를 받으면 받을수록 그에게는 더 큰 힘이 주어질 것이다. 불행한 사람들의 소대를 지휘하는 책임이 그에게 맡겨져 그가 그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권리를 갖게 되면 그는 잔인하고 포악해질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그 자리에 훨씬 더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다른 사람이 자기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을 압제하는 사람들에 대한 욕구불만의 찌꺼기를 자신이 압제하는 사람들에게 비이성적으로 퍼붓는다. 위에서 받은 모욕을 밑에 있는 사람에게 증오의 형태로 폭발시키면서 쾌감을느끼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사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피억압자들에 대해 갖는 이미지와는 일치하지 않는다. 이 피억압자들은 저항을 하면서,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고통을 참으면서 서로 결속한다. 억압이 일정한 한도를 넘지 않았을 대, 혹은 억압자가 경험이 없거나 관대해서 그것을 용인하거나 조장했을 경우에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음을 우리는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이민족의침략을 받은 모든나라에서, 지배를 당한 사람들끼리 적대감과 증오심을느끼는 유사한 상황이 전개된 것은 사실이다. 다른 인간적 틀성들과 마찬가지로, 이 역시 수용소에서 특별히 잔혹한 증거들을 포착할 수 있다.

 

-137-8쪽

 

 

 

[부록 1: 독자들의 물음에 답한다]

 

Q. 당신의 책에서는 독일인들에 대한 증오도 원한도 복수심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을 다 용서한 것인가?

 

A. (...) 당시 우리를 박해했던 사람들은 이름도 얼굴도 갖고 있지 않았다. 이 책에서도 그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멀리 있었고, 눈으로 볼 수 없었으며, 접근할 수도 없었다. 나치스 체제는 용의주도하게 노예와 주인이 최소한의 접촉만 하도록 마련되어 있었다. 이 책에서도 주인공인 필자와 SS와의 만남은 딱 한 번만 요사되며 그것도 나치스 체제가 붕괴되고 수용소가 해체되던 그 마지막 며칠 사이에 일어났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 만일 내가 실제로 우리의 박해자들 중 한 명을, 아는 얼굴을, 그 오래전 거짓말을 다시 마주쳤다면 아마도 증오와 폭력의 유혹에 굴복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파시스트가 아니다. 나는 이성과 토론이 진보를 위한 최선의 도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의를 증오 앞에 놓는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이 책을 쓸 때 의도적으로, 희생자의 한탄 섞인 어조나 복수심을 품은 사람의 날선 언어가 아닌, 침착하고 절제된 증언의 언어들을 사용하고자 했다. 나는 내언어가 객관적일수록, 지나치게 흥분하지 않을수록 신뢰를 주고 유용하게 쓰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할 때에만 정당한 증언이 제 기능을 할 것이며 바로 그 때 심판의 장이 마련될 것이다. 심판관은 바로 여러분이다.

 

Q. 독일인들은 알고 있었나? 연합군은 알고 있었나? 수백만 명의 집단학살이 어떻게 유럽 한복판에서 아무도 모르게 진행될 수 있었나?

 

A. (...) 히틀러 치하의 독일에는 특별한 불문율이 널리 퍼져 있었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과, 모르는 사람은 질문하지 않으며, 질문한 사람에게 대답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해서 독일인들은 자신들의 무지를 획득하고 방어했다. 그런 무지가 나치즘에 동조하는 자신에 대한 충분한 변명이 되어주는 것 같았다. 그들은 입과 눈과 귀를 다문 채 자신들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환상을 만들어갔고, 그렇게 해서 자신은 자기 집 앞에서 벌어지는 있는 일의 공범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는 것, 그리고 알리는 것은 나치즘에서 떨어져 나오는 방법(결국 그리 오래지 않아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는 방법)이었다. 나는 독일 국민이 전체적으로 이런 방법에 의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바로 이런 고의적인 태만함 때문에 그들이 유죄라고 생각한다.

 

Q. 유대인에 대한 나치스의 광적인 증오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A. (...) 어쨌든 반유대주의의 본질에는 거부라는 비이성적 현상이 자리잡고 있다. 기독교 국가에서 기독교가 국교로 굳어져가기 시작하던 때부터 반유대주의가 종교적인,아니 신학적인 옷을 입게 되었다. 성聖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에 따르면, 유대인은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디아스포라의 형벌을 바았다고 한다. 이유는 두 가지이다.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형벌을 받았다는 것이 그 중 하나다. 또 하나는 유대인들이 사방에 존재하는 것이, 역시 사방에 있는 기독교 교회에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독교 신자들이 도처에서 형벌을 받으며 불행하게 살아가는 유대인들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죄를 저지른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영원히 증명해야만 하고, 그 결과 기독교 신앙의 진리를 증명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존재는 없어서는 안 되며, 유대인들은 박해는 받아도 살해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교회가 항상 이렇게 온건한 모습만 보여준 것은 아니었다. 초기 기독교 시대부터 교회는 유대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한 장본인, 간단히 말해 '신을 죽인 민족'이라고 심각하게 비난했고 그것은 영원히 지속되었다. (...) 유대인들이 독을 풀어 페스트를 퍼뜨렸다, 습관적으로 성체에 신성모독을 가한다, 부활절에 기독교도 어린아이들을 납치해다가 아이들의 피를 발효시키지 않은 빵에 섞어 먹는다. 이런 신앙은 수많은 피의 학살을 벌러오는 핑곗거리가 되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먼저 프랑스와 영국에서 유대인들이 집단으로 추방을 당했고, 그 후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다.

 

(...) 이와 같은 일은 어쩌면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해되어서도 안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정당화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내 말은 이런 뜻이다. 인간의 의도나 행동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원학적으로도) 그것을 수용한다는 것, 그 행동의 주체를 수용하고, 그의 입장이 되어보고, 그와 자신을 동일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정상적인 인간 중에서 히틀러, 힘러, 괴벨스, 아이히만 등등과 자신을 동일시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를 당황스럽게 하지만 안도감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그들의 말(이는 안타깝게도 행동으로 옮겨졌다)이 이해 불가능하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기도 하니까. 사실, 그것들은 인간적인 말과 행동이 아니다. 역사에서 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고, 생존을 위한 가장 잔인한 생물학적 투쟁과도 비교가 어려운 것이다. 전쟁을 이런 투쟁과 연결짓는 것은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우슈비츠는 전쟁과는 아무련 관련이 없다. 그것은 전쟁의 에피소드가 아니다. 전쟁의 극단적인 형태가 아니다. 전쟁은 항상 끔찍한 사건이다. 유감스러운 사건이지만 우리의 내부에 포함되어 있다. 전쟁에는 이유가 있고, 우리는 그것을 '이해한다'.

그러나 나치즘의 증오 속에는 이유가 없다. 그 증오는 인간의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밖에 있다. 파시즘이라는 유해한 나무에 열린 유독한 열매지만, 파시즘 밖에 그것을 뛰어넘는 곳에 있다. 우리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해야 하며 경계해야만 한다. 그것을 이해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인식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과거에 벌어졌던 일이 되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며 의식이 또다시 유혹을 당해 명료한 상태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식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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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 <소유냐 존재냐>, 홍신문화사

안식일은 육체적 혹은 정신적으로 노력하지 않는다는 의미로서의 휴식 그 자체는 아니다. 그것은 인간들 사이의, 그리고 인간과 자연 사이에 완전한 조화를 회복한다는 의미에서의 휴힉이다. 어떤 것도 파괴되어서는 안 되고 어떤 것도 건설되어서는 안 된다. 안식일은 세계와 인간 사이의 싸움에 있어 휴전(休戰)의 날이다. 사회적 변화도 발생하면 안 된다. 풀잎 하나를 뜯는 일까지도 이 조화를 깨뜨리는 것으로 간주되며, 성냥 한 개비를 켜는 일 또한 마찬가지다. 자기 집 정원 안에서는 무거운 짐을 운반하는 것이 허용되는 반면 거리에서는 어떤 것(비록 그 무게가 손수건 하나 정도로 가벼운 것일지라도)의 운반도 금지되는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요컨대, 짐을 운반하는 노력이 금지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이 사유하는 땅으로부터 어떤 물건을 다른 사람의 땅으로 옮기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원천적으로 재산의 이동을 뜻하기 때문이다.
안식일에는 개인은 그가 마치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것처럼 생활하며, 기도하고, 공부하고, 먹고, 마시고, 노래부르고, 사랑을 하는 등, '존재', 즉 자기의 본질적인 힘만을 표현한다.

 

 

 

 

즉, 존재는 생명이며 활동이며 탄생이며 재생(再生)이며 유출(流出)이며 횡일(橫溢)이며 생산성이다. 이런 의미에서의 존재는 소유의 반대이며, 자아구속 자기중심주의의 반대이다. 에크하르트에게 있어 존재는 능동적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능동적이라는 것은 분주하다는 현대적 의미가 아니고, 자기의 인간적 힘을 생산적으로 나타내는 고전적 의미이다. 그는 이것을 여러 가지 어구로 표현한다. 즉, 그는 존재를 '끓는' 과정, '낳는' 과정, '그 자체 안에서, 그리고 그 자체 밖으로 자꾸 흐르는' 무엇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때로 그는 능동적 성격을 나타내기 위해 '달린다'는 상징을 사용한다. '평화를 향해 달려들어가라! 달리는 상태, 평화 속으로 끊임없이 달려들어가는 상태에 있는 사람은 성스러운 인간이다. 그는 끊임ㅇ벗이 달리고 움직이며, 달리면서 평화를 추구한다.' 농동성의 또 하나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능동적이고 활발한 사람은 '가득 참에 따라 늘어나므로 결코 가득 채워지지 않는 그릇'과 같다는 것이다.
모든 진정한 능동성의 조건은 소유양식을 파괴하는 것이다. 에크라르트의 윤리체계에 있어서 가장 높은 미덕은 생산적인 내적 능동성의 상태이며, 이 내적 능동성의 전제는 모든 형태의 자아구속과 갈망을 넘어서는 것이다.

 

 

 

 

소유적 감정은 다른 관계, 예를 들면 의사, 치과의사, 변호사, 사장, 노동자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나타난다. 사람들은 흔히 우리 의사, 우리 치과의사, 우리 일꾼 등등의 표현을 쓴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소유적 태도 이외에도 사람들은 무수한 물건, 때로는 감정까지도 재산으로서 경험한다. 건강이나 병을 예로 들어보자. 사람들은 내 병이니, 내 수술이니, 내 치료니, 내 식이요법이니, 내 약이니 하고 자기의 건강을 소유적 감각으로 얘기한다. 그들은 확실히 건강과 병을 자기 재산으로 생각하고 있다. 나쁜 건강에 대한 그들의 소유관계는 폭락하는 주식시장에서 원가 이하로 떨어지는 주식에 대한 주주(株主)의 관계와 비슷하다.

 

 

 

 

116쪽

 

소외되지 않은 능동에 있어서는 나는 '나 자신'을 내 능동의 '주체'로서 경험한다. 소외되지 않은 능동은 무엇인가를 생산하는 과정이며, 내가 생산한 것과 나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과정이다. 이것은 또한 나의 능동성이 내 힘의 표현이며, 나와 나의 능동성과 그 결과가 하나라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이 소외되지 않은 능동성을 '생산적 능동'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쓰는 '생산적'이란 말은 예술가나 과학자의 경우와 같이 새롭고 독창적인 무엇을 창조하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또 내 등동의 산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요, 그 특질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림이나 과학적 논문은 지극히 비생상적인, 다시 말해 불모의 것일 수도 있다. 한편, 깊이 있게 자신을 인식하는 사람들, 나무를 그저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보는 사람들, 또는 시를 읽으며 시인이 언어로 표현한 감정의 움직임을 자신 속에서 경험하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잇는 과정은 비록 거기서 아무것도 '생산된 것'은 없지만 매우 생산적인 과정이다. 생산적 능동성은 내적 활동의 상태를 나타낸다. 그것은 곡 예술작품이나 과학 같은 '유용한'어떤 것의 창조와 연관을 갖지는 않는다. 생산성은 정서적으로 불구가 아닌 한 모든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성격지향이다. 생산적인 사람들은 그들이 접하는 것은 무엇이든 그거세 활기를 불어넣는다.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탄생시키며, 다른 사람들이나 물건에도 생명을 불어넣는다.

 

 

 

 

159쪽

 

참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밖에 없다--- 그것은 석가, 예수, 스토아 학파 철학자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가르친 방법이다. 그 방법은 '삶에 집착하지 않는 것, 삶을 소유물로 경험하지 않는 것'이다. 죽음의 공포는 얼핏 삶의 정지에 대한 두려움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죽음은 우리와 관계가 없다고 에피쿠로스가 말했다. "왜냐하면, 우리가 존재하는 동안은 죽음은 아직 우리 곁에 없으며, 죽음이 닥쳐왔을 대는 우리는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분명히 죽음에 앞서 일어날지도 모르는 고통과 아픔에 대한 두려움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은 죽음의 공포와는 다른 것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이와 같이 불합리한 것으로 보이지만 삶이 소유로서 경험될 때에는 그렇지 않다. 그 경우의 공포는 죽음에 관한 것이 아니고 '소유한 것을 잃는 데' 대한 것이다. 내 육체를 잃는 두려움, 내 자아, 내 재산, 내 주체를 잃는 데 대한 두려움이며, 비주체의 심연을 대해야 하는 두려움, '잃어버려짐'에 대한 두려움이다.

 

 

 

 


204쪽

 

나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존재한다면 인간의 성격에 '변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1. 우리는 고통받고 있으며, 그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다.
2. 우리는 불행의 원인을 인식하고 있다.
3. 우리는 우리의 불행이 극복도리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4. 우리는 불행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정한 생활규범을 따라야 하며, 현재의 생활습관을 바꾸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위의 네 가지 조건은 석가의 가르침의 바탕이 되는 '네 가지 진리'와 부합한다. 그러나 그 '네 가지 진리'는 특수한 개인적, 사회적 환경에 기인한 인간 불행의 사례들이 아닌 인간존재의 일반적 조건을 다루고 있다.
석가의 가르침의 특성이 되고 있는 변혁의 원리는 또한 마르크스의 구제사상의 기초가 되고 있다. 그것을 이해하려면 다음의 사실을 알아야 한다. 즉, 마르크스 자신이 말한 것처럼 그에게 있어 공산주의는 최종 목표가 아니라 인간을 비인간화시키는, 즉 인간을 물질과 기계, 그리고 인간 자신의 탐욕의 노예로 만드는 정치, 경제, 사회적인 제조건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 가는 역사 발전의 한 단계였다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제시한 첫번째 단계는 그 시대의 가장 소외되고 비참한 노동자계급에게 그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그는 노동자 자신의 비참함을 알지 못하게 하는 모든 환상을 파괴하고자 애썼다. 두번째 단계는 이 고통의 '원인'을 밝히는 것이었다. 그는 그 원인이 자본주의의 본질과 자본주의 체제가 낳은 탐욕과 허욕과 의존적 성격에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녿오자들의 고통의 원인에 대한 이러한 분석에서 마르크스 저작의 요체, 즉 자본주의 경제분석이 나왔다.
세번째 단계는 이 고통을 낳는 조건이 제거되면 그고통도 제거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네번째 단계에서 그는 새로운 생활의 관습, 즉 낡은 체제가 필연적으로 만들어내지 않을 수 없었던 고통으로부터 해방된 새로운 사회체제를 제시하였다.
본질적으로는 프로이트의 치유방법도 같은 것이었다. 환자들이 프로이트를 찾아와 진찰을 받은 것은 그들이 고통을 다앟고 있었기 때문이며, 또 자기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대개 '무엇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지를 몰랐다. 정신분석학자들이 보통 처음 하는 일은 환자들이 자기들의 고통에 관해 갖고 있는 환상을 버리고 그들의 불행의 참다운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개인적 혹은 사회적 불행의 원인에 대한 진단은 해석의 문제이며, 서로 다른 여러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불행의 원인에 관한 환자 자신의 상상은 대개는 진단을 내리는 데 있어서 믿을 만한 데이터가 되지 못한다. 정신분석과정의 본질은 환자가 자신의 불행의 '원인'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그 결과, 환자는 다음 단계, 즉 원인이 제거되면 그들의 불행은 치유될 수 있다는 통찰에 이를 수 있다. 프로이트의 견해로는, 그것은 어떤 유아기 사건의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전통적인 정신분석가들은 내가 위에서 제시한 조건 중 네번째 조건의 필요성에는 본질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것 같다. 많은 정신분석학자들은 환자가 억압받고 있는 것에 대한 통찰 그 자체가 치료효과를 갖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확실히 그런 경우는 흔히 있다. 환자가 히스테리나 강박관념 등 한정적인 증상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을 때는 특히 그렇다. 그러나 일반적인 고통을 받고 있어서 성격의 변화가 필요한 사람들은 '그들이 달성하고자 하는 성격의 변화에 따라 생활의 습관을 바꾸지 않는 한' 어떤 지속적인 효가를 얻을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예를 들면, 개인의 의존성에 관한 분석은 언제까지나 계속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분석의 결과로 얻어진 모처럼의 통찰도 그들이 그 전에 생활해 오던 실제적인 상황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한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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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로와

언제부턴가 나는 투쟁가가 나올때 팔뚝질도 안하고 구호외칠때 소리도 안내는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그게 뭐 잘했다는 건 아니고, 언제부턴가 그럴 기운이 안생겨 버렸다. 나의 그런 태도가 약간 분위기 깨는 것 같을 때도 있어서 사실 나 자신도 그런 마음이 불편하긴 하다.

 

얼마 전 레디앙에 한 대학생 독자가 '옳음을 추구한다면 플라톤을 읽어라'라는 글을 기고했던데, 제목부터가 별로 공감이 안되었다. (그래서 안 읽었다.) 무슨 옳음을 추구하길래 플라톤을 읽어야 한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사실 플라톤이 추구한 옳음이라는 것은 '탁월함'과 비슷한 의미의 것이 아닌가? 플라톤 뿐만이 아니라 그로 대표되는 서양 고전철학이 사실 '탁월함'의 세계를 추구했던 것이고...

 

모든 민중가요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끔 불려지는 노래들 중에 우리들의 '강함'을 이야기하고 '단단한' 연대를 노래하는 것들에서 나는 항상 공허함을 느꼈던 것 같다.

 

사실 우리는 강하기 때문에 연대하는 것이 아니라, 약하기 때문에 연대한다. 한없이 연약하고 불안하기 때문에.

 

그래서 요즘 '달로와'의 노래가 좋은가보다. 달로와는 노래패 우리나라 출신이다. 달로와는 우리나라에서의 노래와는 다르게 속삭이고 읊조린다. 그러나 달로와의 노래가 속삭이고 읊조리기 때문에 좋은 것은 아니다. 인간의 불안함과 연약함 그 외면할 수 없는 우리의 내면에 대해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려는 태도에 끌리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강함과 투쟁의 의지를 드러내는 것보다, 외면하기 쉬운 슬픔과 연약함을 직시하고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 아닐까?

 

섣부른 해석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다.

 

 

 

<뿌리> 달로와


이 푸른 잎을 제 진심이라 생각지 마소서
이 늘어진 가지를 제 기쁨이라 생각지 마소서
그대 눈에 마냥 푸른 빛 비추려고
그대 마음에 마냥 우거진 행복만을 비추려고
이렇게 흙빛으로 천갈래 만갈래 속이 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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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평화 절 명상 백대서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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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철, <중론, 논리로부터의 해탈 논리에 의한 해탈> 중에서

나는 모든 욕심과 분노의 구심점이다. 좋은 것을 나를 향해 당기는 마음이 욕심이고, 싫은 것을 나에게서 밀어내는 마음이 분노심이다. 욕심과 분노는 그 힘의 방향이 반대다. 불교 전문용어로 욕심을 '탐(貪)', 분노를 '진(瞋)'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런 '탐'과 '진'의 마음은 모두 '내가 존재한다'는 어리석음 때문에 일어나며 이런 어리석음을 '치(痴)'라고 부른다. 이런 세 가지 마음, 즉 탐진치가 바로 '독과 같이 우리는 해치는 세 가지 마음(三毒心)이며 이를 제거하는 것이 불교 수행의 최종 목표가 된다.
겉으로 분노심과 욕심을 억누를 수는 있지만, '내가 존재한다'는 어리석음을 제거하지 않는 이상 우리 암속에서 분노심과 욕심은 다시 발생한다. 따라서 삼독심 가운데 가장 뿌리가 깊은 것은 '내가 존재한다'는 어리석음이다.

- 148쪽

 

 

"지식은 쌓아서 이룩되고 지혜는 부수어서 얻어진다"
- 몇 쪽인지 몰라.

 

 

 

중론, 논리로부터의 해탈 논리에 의한 해탈 - 108게송으로 새롭게 중론 읽기
중론, 논리로부터의 해탈 논리에 의한 해탈 - 108게송으로 새롭게 중론 읽기
김성철
불교시대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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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프레이리, <문화적 행동으로서의 교육> 중에서

문맹자들이 가장자리 인간이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의 가장자리란 있을 수 없는 얘기므로 무엇인가의 <가장자리>, 무엇인가의 <바깥>에 있는 존재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자리, 또는 바깥의 존재라 할 때 거기에는 가장자리 인간이 중심부로부터 가장자리로 옮겨간 <움직임>이 함축돼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그 움직임의 발동자와 발동자의 작인(作因)들을 전제로 한다. 누가 이들을 중심부로부터 가장자리로 옮겨가도록 했는가. 가장자리인간들 스스로가 사회의 가장자리로 가기로 결정을 내렸는가. 만약 그러하다면, 가장자리로의 이동은 가난, 질병, 고통, 정신이상, 범죄, 절망, 존재불능성에의 선택이었던 셈이 된다. 그렇지만 브라질인의 40%, 하이티인의 60%, 볼리비아인의 60%, 페루인의 40%, 멕시코인과 베네주엘라인의 30%, 과테말라인의 70%가 문맹자라는 가장자리로가겠다는 비극적 <선택>을 스스로 취했다고는 믿기 곤란하다. 그러고 보면 가장자리로의 이동은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의 바깥으로 추방된 결과이며 따라서 가장자리 인간들은 폭력의 대상인 것이다.
하지만, 사실상 하나의 사회구조는 누구도 '추방하지' 않으며 가장자리인간 또한 사회구조의 '바깥에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사회구조 '안에 있는 존재'이며 우리가 허위적 자율인, 가짜 자치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종속돼 잇는 '종속적 상호관계 안에 있는 존재'이다. - 23

 

 

 

사실 우리는 성인문맹퇴치교육이나 교육 일반을 지식습득 행위로서 고려할 때 교육자의 최대로 체계화된 앎(knowing)과 학습자의 최소로 체계화된 앎 간의 대화를 통한 통합을 옹호한다. 교육자의 역할은 학습자들로 하여금 보다 더 예리한 안목으로 자기네 현실을 직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편찬물의 형태로 제시된 실존적 상황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 32

 

 

 

지배자가 침묵문화를 만들어 피지배자에게 부과하는 것이 아니다. 침묵문화는 지배자와 피지배자간의 구조적 관계의 결과이다. (호세 루이스 피오리) - 51

 

 

 

한국민중교육론 - 학민글밭 23
한국민중교육론 - 학민글밭 23

학민사,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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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봉,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 중에서

"만약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단순히 그를 개념적으로 파악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인식하는 주체 앞에서 다른 사람의 운명이 내 앞의 술잔의 운명과 다를 수가 없습니다. 그 때 타인을 이해하다는 것은 타인을 해부한다는 것과 다른 일이 아닙니다. 그리하여 내가 개념적 사유를 통해 타인을 모두 규정할 수 있다면, 나는 누더기가 된 타인의 시신 앞에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런 것을 두고 이성의 신봉자들은 타자를 이해하는 것이라 부르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요? 그것은 내가 나 속에 타인을 받아들이는 것, 타인이 내 속에 들어와 머물고 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 그리하여 때로는 내가 곧 네가 되어버리는 것, 그런 것이 아니던가요? 그러나 타인은 언제 내 속에 들어와 머무를 수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오직 타인의 슬픔이 내 속에 쉴 때뿐입니다. 오직 내가 타인의 슬픔이 내 속에서 머무를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한에서 타인은 내 속에 들어와 고요히 쉴 수 있습니다. 내가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내 속에서 타인의 슬픔이 고요히 움직이는 것을 느낄 때인 것입니다." (260쪽)

 


"오랫동안 나는 세상에 왜 이토록 받아들일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이 널려 있는지 묻고 또 물어왔습니다. 지금 나는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왔던 그 오랜 물음에 대해 이렇게 대답하려 합니다. -- 오직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그 많은 슬픔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사랑은 만남에 존립합니다. 그리하여 신은 만남과 사랑을 완성하라고 인간에게 이 ㅁ낳은 슬픔을 넘치도록 허락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단지 고통을 핑계로 우리가 삶을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에피쿠로스의 신들이 아무리 완전하 행복을 누리고 산다 하더라도 내가 그들의 삶을 조금도 부러워하지 않는 것은, 만남 없는 삶의 행복이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내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인간의 삶에 널려 있는 슬픔과 고통 앞에 몸서리치면서도 인간의 가난한 삶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 것은 오직 고통과 슬픔 속에서만 우리는 서로에게 손내밀고 서로에게 말건네며 서로서로 온전히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그대, 우리에게 삶은 얼마나 신비한 선물인지요? 푹풍우치는 이 깊은 고통의 바다 위에서도 삶은 깃털처럼 가볍고, 마음은 파랑새처럼 명랑할 수 있으니...." (313쪽)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 - 김상봉 철학이야기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 - 김상봉 철학이야기
김상봉
한길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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