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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2/08
    [영화]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
    겨울철쭉
  2. 2008/02/08
    [독서]삶의 한가운데
    겨울철쭉

[영화]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임순례 감독은, 전작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처럼, 어쩌면 진부한 소재를 진부하지 않게 그려낸다. 한국 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 기껏해야 지하철에서 자리를 냉큼 차지하는 존재로 밖에 이해되지 않는 "아줌마"들의 삶에 대해서 말이다.

이 영화에 대한 좋은 이야기는 여기저기 많으니 한 가지만 이야기해보자.

국제 체육대회(국가대표)라는 소재는 사실 위험하다. 자칫하면 민족-국가에 인민들을 동원하는 상징으로서의 역할을 그것을 소재로 다룬 영화도 반복하기 쉽다.(그것은 소재 자체에 각인된 것이기도 해서, 밑에서 말하겠지만, 다른 방식으로 그것을 다루려고 해도 민족-국가는 끊임없이 복귀한다.)

그런 점에서 임순례 감독은 솜씨있게 다른 방식으로 소재를 다룬다. 영화에 등장하는 선수들은 어떤 민족적인, 국가적인 영광이 아니라, 자신의 삶 혹은 꿈을 위해서 뛰어든다. 그것이 잘 어울리는 이유는,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어차피 민족-국가가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으며 앞으로도 이들에게서는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는 '아줌마'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올림픽 시즌에 잠깐 주목받고, 금메달 카운트로만 집계되는 경기의 뒷면에는 그녀들의 삶이 있다.

임순례 감독은 그 금메달의 '뒷면'을 현실과 단락시킨다. 그녀들은 경기가 끝난 이후에도 뉴코아, 홈에버에서 물건을 파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일 것이고, 동네식당 "아줌마"(달리 그녀들을 부르는 어떤 용어가 있담?)일 것이고, 딸을 둔 이혼녀일 것이다.(한미숙-송정란-김혜경) 우리 옆에 있는 그녀들이다. 감독은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 전에 실제 선수들과 감독의 인터뷰를 붙여넣는다. 영화는 다시 "올림픽이 끝나면 돌아갈 팀이 없는" 그녀들의 현실로 난폭하게 돌아온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국가"대표선수들에게조차 "국가"가 무엇인지, 혹은 그보다는 그녀들의 삶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대항의 국제 스포츠 경기에는 '경기'를 일으키는 나 같은 이도 그녀들의 결승전을 응원하면서 볼 수 있다. 그 경기는 민족-국가의 영광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그녀들이 생존을 위해서 싸우는 또 다른 삶의 현장으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얼마전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올림픽 등 각종 세계대회에서 국위선양을 하고 있는 국가대표 선수들과 함께 이 영화를 관람"했다고 한다. 이명박에게는 그녀들의 삶이 아니라 "국위선양"이 보였던 모양이다. 소재의 위험은, 영화보다도 더 현실과 거리가 있는 그런 식의 상징조작도 가능하게 한다. 그러니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 노파심에서 말하자면, 이 영화를 보고나서 그녀들에게 "민족-국가의 영광"을 위해 베이징 올림픽에서 열심히 뛰라는 얼빠진 이야기는 하지 말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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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삶의 한가운데


삶의 한가운데
루이제 린저 지음, 박찬일 옮김 / 민음사


지금, 단테의 신곡(코메디아)을 읽고 있다. 지옥편,

우리 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
어두운 숲에 처했었네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무엇보다 지난 2007년을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서른다섯, 장기간의 병가와 휴직, 여행, 그리고 이혼까지, 인간의 자연적 수명이 일흔이라는 잠언(89:10)의 구절이 아니라도, 나의 영혼의 수명은 아마 일흔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삶의 한가운데"를 지나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애니어그램 성격 테스트의 지표까지 모든 것이 송두리채 변했던 것이다.. 작품의 주인공 니나는, 오늘 서른일곱을 마무리한다. 나 혹은 그녀처럼, 말 그대로 "삶의 한가운데"를  지나왔다고,  생각하게 된다.

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를 읽게 된 것은, 아마도 이런 정황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미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이야기되었던 책이라고는 하지만, 공대생, 운동권으로 20대를 보낸 나의 독서 목록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루이제 린저는 이 작품 속에서 전후무후한 인물들을 창조한다. 그러나 그 인물들은 마치 작가, 그녀의 여러 변신
變身들 같다. 일인칭 서간체의 소설이어서일까? 어느 소설에서보다, 이 책의 인물들, 누구보다 니나, 그리고 슈타인은 그녀의 일부로 느껴진다.

니나는 자신의 경험 속에서 좌절하고 무능하게 된 한 남자 교수의 이야기를 한다. 이 에피소드의 결말은 (나의 다소 보수적인 도덕관념으로는) 좀 경악스럽기는 하지만, 니나의 표현으로는 이 사람의 부인은 이런 사람이다. "짐작하기에 부인은 착하고 현명한 여자 같았어, 아울러 마치 간호사들처럼 정확하고 친절은 하지만 남자들에게 꿈을 주는 못하는 부류의 여자였던 것같아. 언니, 이해해? 이 세상엔 그런 여자들이 많아."

19세의 니나를 처음 만나고 치료한 의사인 슈타인은 18년 동안 그녀를 원했지만, 짧은 기회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안정적인 연애관계를 갖거나 결혼하지는 못한다. 평생을 모호한 관계를 유지하지만 말이다. (이 작품은 그 과정을 기록한 슈타인의 일기로 이어지면서, 또한 니나의 회상으로 구성된다. 그것은 직소 퍼즐같이 연결된다.) 그것은 슈타인 자신의 말대로 너무 우유부단하거나 신중해서일 수도 있다. 한편으로 그것은 그녀의 정치적 이상에, 혹은 그보다는 그녀의 솔직한 행동주의에 슈타인이 다가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간접적으로는 기여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어떤 점에서, 슈타인은 나와 비슷하게도 느껴진다. 나도 한편으로는 우유부단하며, 지나치게 신중하기도 하다. 또한 시간 속에 길을 잃지만, 잊을 수는 없다. 슈타인은 니나를 이렇게 말한다. 그녀는 이런 모습이다.
"니나는 엘베 강과 같은 존재다. 유혹적이고 순진하며 도덕이 얽매여 있지 않고 본능적으로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멀고 낯설게 느껴져 붙잡을 수 없다"(123)

이런 성격이 이 책이 출간된 이후에, 니나에게 많은 젊은이들이 열광하게 만든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같다. 그러나 다만, 이것이 그저 젊은 사람들의 반항적인 한때의 기질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행동에 까지 이르는, 자신의 사라지지 않는 본질이라는 점을 함께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녀는 이미 서른 여덞이니 그것은 젊은 한 때의 혈기만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다시 나 자신을 떠올리게 된다. 이 작품은, 모든 구절에 나의 존재를 대입하게 되는 신기한 매력이 있다. 그래서 작품을 일반화하고 거리를 두기 보다는, 작품의 그 안에 나를 위치시키고 생각하게 된다. 작품 속에서 순간 순간 슈타인이 되거나 니나가 되어서 혹은 알렉산더이든, 퍼시이든 그 등장인물 중 하나가 되어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특히 슈타인에 대해서라면, 그의 "내밀한" 일기는 마치 나의 일기에도 쓰지 못한 말들을 그가 대신 쓴 것처럼 느껴진다. (여성 작가인 루이제 린저가 어떻게 이렇게 한 남성의 영혼 자체를 창조할 수 있는 것일까?)

하지만 나는 슈타인과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온갖 위험들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정치적으로 행동하고, 아마도 또 그렇게 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관념이 그 자체로만 존재하고 물질적으로 실현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그것은 알튀세르를 내가 깊이 공감하면서도 다른  부분이다. 알튀세르는 수용소 탈출 계획을 세운 것으로 만족했지만[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비록 엄청나게 동요하더라도 결국은 나는 그것을 실행하는데 충동을 느낄 것이다. 혹은 실행하지 못한다면 참을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느낄 것이다. 어떤 컴플렉스?)  정치에 대해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나 자신이 니나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렇다.

한편으로 위안은, 모든 관계의 고통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람의 자연적 수명을 넘어설수는 없을 것이라는, 절대적인 물리적 한계에 대한 것이다. 슈타인에게 그것은 18년이었다. 나에게 그것이 얼마일지는 모르겠지만 니나, 그녀의 온갖 삶의 굴곡을 넘어선 어떤 시간일까..? 여튼 그것은 어떤 식이든 나의 물리적 존재의 한계라는, 끝이 있는 과정이다. 그러니, 그리 절망하지 않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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