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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2/27
    현장으로부터, 거리.(2)
    겨울철쭉
  2. 2008/02/23
    백기완 선생 강연 중에.(3)
    겨울철쭉
  3. 2008/02/18
    신당파/분당파 유감(23)
    겨울철쭉
  4. 2008/02/11
    [독서]신곡-단테 알레기에리의 코메디아(2)
    겨울철쭉
  5. 2008/02/10
    [독서]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2)
    겨울철쭉
  6. 2008/02/08
    [영화]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
    겨울철쭉
  7. 2008/02/08
    [독서]삶의 한가운데
    겨울철쭉
  8. 2008/02/02
    [독서]만남-서경식 김상봉 대담(2)
    겨울철쭉

현장으로부터, 거리.

지역지부 동지들을 만나서 술을 늦게까지 마시면서, 이런 화제로 이야기를 한다.

오늘 현장간부들과 진행한 신규조합원 상담. 무엇보다, 상담한 노동자는 억울한 상황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기뻐했다고 한다.
노조의 "미조직 비정규직 전략조직화 사업"을 지역에서 유사한 부문의 사업장끼리 같이 진행하기 위한 사업단위를 꾸리자는 제안을 한다. 앞으로 업종을 넘어선 지역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하다.
한 사업장 안에서 정규직-직접고용/간접고용비정규직을 모두 조직할 수 있는 전략 사업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담당자를 어느 정도 시기 동안 집중적으로 배치하면 할 수 있을 것같은데, 그게 쉽지 않다.
해고 투쟁 중인 분회 동지에게 지부 상근 활동을 제안한다. 어렵다고 발을 빼지만 마음 깊이는 설득하면, 하고 싶어 하는 분위기다.
집에 가는 길이 두시간 넘게 걸리는 동지가 술자리 중간에 먼저 간다. 멀다.
내일 한 사업장의 조정회의.  조정회의에서 합의를 만들 것인지, 투쟁을 조직할 것인지 종합적인 판단을 하자는 토론을, 현장의 상황, 활동가들의 고민을 이야기한다. 내일 오후에 지노위 조정회의가 있으니, 오전 중에 다시 이야기해야한다.

그래서, 오후에 있는 한 투쟁 분회 집회 참석 일정을 조정한다.

이런 이야기로 술을 마시고, 새벽 2시, 집에 들어왔다.
이것이 우리 노조, 지역지부 활동의 일상이다.

병가와 휴직 6개월,
그리고 지역본부를 떠나 탁상공론이나 난무하는 노조 정책담당자라는 자리로 복귀한 세달 동안,
이런 조합원들의 삶과, 투쟁에, 불과 몇달 전에 나의 고민이었던 것들과 얼마나 멀어져왔는지,
울컥해지고 말았다.

노조, 노동자운동의 대중조직에서 일한다는 게 뭔지, 생각하다,
나의 상황에 막막해졌다.
 



거의 기적같은 일들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매일 이어지는, 어쩌면 노동운동의 대세에 큰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고, 중대한 사회적 쟁점으로 보이지도 않고, 깔끔하게 어떤 결과로 해결되지도 않을 뿐 아니라, 그리 많은 수의 조합원도 아닌 현장의 하나하나의 쟁점에 매일 부딪히고 끈질기게 싸우는 활동가들이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나만 하더라도, 그런 매일매일의 싸움을 지쳐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열정을 유지하면서 해나간다는 것이 가능할지를 다시 묻게 되는 것이다.

그런 활동가들, 쉽게 찾을 수 없지만 그러나 사라지지는 않는, 그런 유형의 사람들이 세상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어떤 때는 그것이 이 세상의 진짜 "기적"이라고, 신이 있다면 그 축복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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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 선생 강연 중에.

노조 교육에서 오랜만에 백기완 선생 강연이 있었다. 나이가 나이이신만큼 예전처럼 힘이 넘치지는 않았지만, 좌중을 사로잡는 카리스마와 말씀은 여전하시다. 이날 말씀이나 평소의 내용에 모두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러 내용이 있었지만 이 부분은 생각해볼만하다. (아래는 나의 언어로 정리한 것)


"누구나 나누고 고르게 잘 사는 사회라는 이념, 평등사회라는 이념은, 단지 200년짜리의 이념이 아니라 인류 역사 전체를 통해서 형성되고 내재화된 이념이다. 그래서 이것은 어느 시대에나 어느 지역에서나 항상 존재하고 부활한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계급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진보사상의 위기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평등사회를 지향하는 이념 자체의 위기라기보다는 표면적인 것이거나, 운동 주체의 위기이다."



[이날 강연 것을 갖고 있지 않아서, 인터넷에서 찾은 다른 사진. 나중에 이날 사진은 구해서 올려야겠다]


몇가지 생각해볼 부분.

발리바르가 「공산주의 이후에 어떤 공산주의가 오는가?」에서 언급하는 공산주의 운동의 역사와 비교해볼 수도 있다.(번역글 보기) 평등사회라는 유토피아, 이를 실현하기 위한 공산주의 운동이라는 전통. 그것은 (중세적인 형태, 발리바르에 따르면 "첫번째"인 공산주의로서 "청빈형제회(fraticelli) 혹은 급진적 프란체스코주의의 공산주의"처럼) 단지 역사의 어느 시점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훨씬 이전부터, 인류가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가면서부터 만들어진 보편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백기완 선생의 말에 담겨있다. (“천년왕국-메시아”마저도 중세가 아니라 그 천년도 전에 중동에서 제기된 한 시기의 사상이다.)


재미있는 부분인데, 평등사회에 대한 지향은 인간의 사회적 본능 자체의 내용(혹은 그 필수적인 일부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어려운 정세에서도 완전히 압살되는 경우는 없고, 매시기 다시 부활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것은 마치 함석헌-김상봉이 말하는 씨알과도 유사하지만, 민족적이지 않으며, 보편적이다. 인류 전체에 그렇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의, 인류의 보편적인 이념인 평등사회-공산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의식”의 형태를 띤다는 것. 보편적 해방의 주체로서 노동자계급이라는 사고와도 통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노동자 계급의식의 선험적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말하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 백기완 선생의 말씀 안에도 그런 씨앗이 있다.

여기서 더 주목한 부분은, 계급의식이라는 것의 원래의 형태가 인류의 보편적 해방에 대한 사상이라면 그 내용이 그에 걸맞아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계급”이라고 불리는 인구의 특정부분에 특수적인 이해가 아니라 끊임없이 인류의 보편적인 해방을 위한 것으로, 자신의 이념을 보편화시켜 가야한다. (그런 측면에서 전투적인 경제투쟁을 계급의식의 핵심적이고 주된 발현형태인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에는 동의할 수 없는 것이다.)


평등사회-공산주의가 대중들의 정서 속에, 사회적 본능 속에 내재되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현재 다시 표면에 드러날 수 있는 형태로 만들 것인가가 문제이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운동이 매번(장소와 시간에 따라) 같은 형태를 띠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 시대, 우리 장소에서의 그 형태, 그렇지만 보편적인 내용을 채워가는 형태가 무엇일까를 생각해야한다.


강연 끝무렵에는 카프 작가 강경애의 단편소설 “원고료 이백원”을 소개한다.(찾아보니 범우사 판의 <인간문제(외)>에 실려있다.) 한번 읽어보기는 해야겠는데, 사람은 자신의 (자본주의적인) "교환가치“를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되며, ”사회적 가치“를 높여야한다는 소설의 한 부분을 소개한다. 사람에게 어떤 ”가치“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볼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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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파/분당파 유감

1.
"패권주의"에서 "종북주의"로
애초에 대선즈음에 들은 민주노동당 혁신의 문제의식의 핵심은, 당내 민주주의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자주파의 패권주의적 행태였다. 그리고 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패권주의의 원인으로 종북주의가 지목되었을 때만 해도 이해할만한 상황이었다. 스탈린주의적 당노선을 가진 세력들과는 상호 존중하는 정치가 불가능하다는 것도 인정할만했다.
 
그러나, 정작 상황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문제는 패권주의가 아니라, 패권주의의 원인으로서 (민족주의화된) 스탈린주의(주체주의)가 아니라, 곧장 "친북노선"자체가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바로 빨갱이 사냥으로 이어졌다. 최기영 제명안은 비록 나중에 수정되기는 했지만 "편향적 친북행위"가 문제로 지적되었다. 이쯤되면, 쟁점은 애초에 문제의식, 패권주의로 인해 불가능해진 당내 민주주의 수호가 문제가 아니라 북조선에 대한 공격이 된다. 노골적인 반공주의 노선으로 전환.

2.
"신당파"의 반공사민주의
이 과정에서 신당파의 정치적 포지션은? 당장 결성한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의 공동대표는, 박승옥이었다. 92년 전노협 위기논쟁에서 2007년 노동운동위기논쟁에 이르기까지, 시종일관 노동운동의 변혁성과 전투성을 문제삼고 "새로운" 노동운동을 주장했던 사람이다. 그 "새로운"이라는 수사 안에는 이제까지 그나마 민주노조 운동이 만들어왔던 긍정적인 정치적 의미를 모두 폐기하는 운동이 그려져있다. 신당파의 입장이 무엇인지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그런 "새로운 진보정당" 운동이 NL에 비해서 급진적이기는 한가? 신당파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본질을 너무 빨리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렇다고 당내 혁신파가 다른 입장이었나? 비록 그 안에는 당을 보다 왼쪽으로 가게 해야한다는 입장이 있었을지 몰라도, 심상정 비대위가 제안한 내용은 한편으로는 "편향적 친북행위"라는 반공주의 의제를 활용하고 또 한편으로는 "생활 속의 푸른 진보" 운운하는, 생태주의를 핑계로 우경화된 정치노선을 표방했던 것이다. (더 오른쪽에 있는 노회찬은 말할 나위도 없다.) 왜 급진적 생태주의와 반자본주의 변혁으로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퇴행적인 생활정치로 나가는가? 이후 민주노동당내 "자율과 연대"와 같은 사민주의 세력은 노골적으로 신당지지를 선언하고 나선다.

결국 애초부터 신당파, 혁신파 모두가 동일한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처한 공간은 그 프레임 때문에 점점 더 우경화하고 있다. 이제 자신들의 위치를 보면 NL을 "우파"라고 부르기가 쑥스럽지 않나?

어떤 분이 모아놓은 민주노동당 분당관련 신문기사, 사설들을 보라.
http://cafe.naver.com/hamsatam.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1974

3.
대중조직의 분할인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분열이 진행되고 있는 과정에서 책임묻기로 일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가장 중요한 공동의 과제 중 하나는, 당의 분열이 대중조직의 분열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이미 일각에서는 공공연하게 이런 위험을 경고한다. 이미 강승규사태, KT노조, 민공노, 민주연합노조 사태 등 폭약은 쌓여있으니, 뇌관만 있으면 되는 상태일수도 있다.) 이번 민주노동당 분당의 사실상의 정치적 책임이 NL에 있는 것처럼, 민주노총의 위기도 국민파-NL 집행부가 만들고 있다. 이미 실질적으로 진행되는 정치적 분화를 패권으로 막으려는 우매한 행위를 민주노총 집행부가 하고 있고, 이는 역으로 현장의 분할을 촉진한다. (민주노동당 분열의 주된 책임이 NL에 있는 것처럼, 민주노총이 분할의 위기에 빠진다면 그 정치적 책임은 온전히 국민파-NL 집행부에 있다.)

이런 조건에서 양식있는 활동가들은 당의 분할이 민주노총의 분할로 이어지지 않도록 함께 노력해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노총 안에서 정치적 선택의 폭을 여는 것이 필수적이다.(민주노총 정치방침, 민주노동당 배타적지지 방침 개정) 그러나 그러한 방향자체가 민주노총의 정치적 분할을 촉진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되며 매우매우 신중해야한다. 앞으로 예상되는 민주노총 분열위기의 1차적인 책임은 국민파-NL집행부에 있을 것이지만, 중앙파-좌파도 면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4.
그럼 NL--'민족주의화된 스탈린주의'와 동거할 수 있는가?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NL당이 된 민주노동당에 남아있는 것이 가능할까? 그런 점에서 노운협 등의 입장은, 정치적 지형에 대한 진단에서는 올바르지만, 정작 현실의 정치적 지형에서는 무능하다.

자주파/평등파 왜곡된2분법, 민족개량파 공개사과하라
천영세 직무대행이 쿠데타를 꾀하고 있다

민주노동당내 이른바 '평등파'가 분할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스탈린주의자들인 NL이 노선을 혁신하여 분파형성권을 인정하고 당 노선을 수정하지 않는한 그들과 공동의 정치활동에서는 "복종"혹은 "압도"가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그런 측면에서는 애초에 당내 평등파의 문제제기--"패권주의"의 본질이 NL의 "종북주의"정치노선, 당과 수령관을 핵심으로 주체주의에 있다는 비판은 정확했던 것이다.)   NL만이 압도적으로 남은 당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혹은 조선노동당의 우당인 조선사회민주당 같은 포지션은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5.
제 3의 선택지?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신당파의 반공 사민주의도 아니고, 민주노동당에 남은 NL의 스탈린주의도 아닌 다른 정치적 위치가 가능할까? 이것은 마치 냉전시기의 국제적인 사회주의 운동이 처한 것과 유사한 딜레마. (물론 정치적 지형은 분명히 다르고 따라서 다른 사고, 제3의 선택지에 대한 사고도 가능할지 모르지만.) 이런 지형에 대한 "좌익적 비판"은 어떤 내용이 될 수 있을까?

사회주의 정치를 압살하는 두 경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여우의 간지와 사자의 용기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이다.

특히 비-NL 사이에서 민주노동당 분당-탈당파가 "전면적으로 지지"받는 상황, 레디앙만이 아니라 이제는 참세상 기사에도 그런 기사가 탑에 올라오는 작금의 상황에서 그래도 이제는 생각을 좀 해보자. 지금 더 절박한 것은 NL만 남은 (이제 서서 죽은) 민주노동당 공격이 아니라 새로운 당을 만들겠다는 흐름에 대한 비판이다. 비-NL이 올바른 정치노선을 보장해주지는, 전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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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신곡-단테 알레기에리의 코메디아


신곡 -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박상진 옮김, 윌리엄 블레이크 그림 / 민음사


단테의 신곡을 읽으려고 마음을 먹은 직접적인 계기는 서경식의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에 대한 독서다. 책은 신곡 지옥편의 첫 두연으로 시작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아우슈비츠에서 레비는 신곡의 구절을 생각하면서 인간임을 자각한다.

솔직히 말해서, 신곡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그리고 그 켭켭이 쌓힌 각주들까지)까지 모두 읽은 후에도 이 작품이 "인간임을 지탱하게 할" 힘이 있는지 나는 잘 확신할 수는 없다. 위대한 작품이라는데는 전혀 이견이 없지만 말이다. 그것은 아무래도 기질적인 무신론자인 나로서는 기독교 문명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의 감성에 완전히 일치되기는 힘들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레비의 언급을 통해서 신곡을 어떻게 읽어야하는 지를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는 말은 할 수 있다. 이렇게 읽기 시작할 수 있다. 레비는 지옥편의 오디세우스와 관련된 구절(26곡)을 수용소에서 기억한다.(아래 인용한 번역들은 모두 내가 읽은 민음사판의 것)

그대들의 혈통을 생각하라! 그대들은
짐승처럼 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덕과 지혜를 따르기 위해 태어났다

오디세우스는 운명 앞에도 불굴의 의지로,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해 영웅적으로 도전한다. 그러나,

풍랑은 우리 배를 바닷물과 함께 세바퀴 돌게 했다오
네 바퀴째에 선미가 높이 솟아오르더니 뱃머리에서 떨어져
마침내 바다가 우리 위로 덮쳐왔소

하느님께서 원하셨던 대로였다오

레비는 "하느님께서 원하셨던 대로였다오"라는 구절을 되씹는다. 인간의 위대한 행위가 하느님의 섭리 앞에서 좌절할 때, 그러나 지옥에서도 오디세우스는 인간임을 증명하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그것은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죄악, 아우슈비츠라는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운명인가. 그것은 단테가 쓴 의도와는 다른 것일 수 있지만, 단테가 본 지옥도 인간의 눈으로 다시 읽을 수 있다. 신곡은 그렇게 열려있다.

작품 전체는 단테의 구체적인 시대적이고 개인적인 제약 안에 있다. 단테는 자신을 추방한 정적들을 하나씩 지옥편에 등장시킨다. 타락한 성직자들은 교황도 예외없이 지옥에서 끔찍한 고통을 당하는데, 교황청의 금서가 될 만했다. 그러나 이런 식의 비판이 가능했다는 것은 교황청의 권위에 근거한 중세 카톨릭 체제가 이미 붕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당대의 과학지식에 따른 지리적 설명(주로 천국편에 등장하는)은 현대적인 시각으로 보면 단지 지리적인 오류만이 아니라 인종주의적이고 유럽중심주의적인 편견을 담고 있기도 하다. 지옥편에서 이슬람 지도자가 등장하는 장면도 마찬가지이다. 그런 점에서 시대적 한계를 이해하면서 읽는 것은 물론이지만 중간중간 불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그런 제약들에도 불구하고, 혹은 오히려 그런 구체성 때문에 신곡을 읽을만하다고 해야할 것같다. 그런 구체성들이 없다면 지옥-연옥-천국으로 이어지는 길은 따분한 교리문답에 그쳤을 것이다.( 죄송하지만 천국편의 상당부분은 사실 순전히 신학적인 교리문답이기도 하다.;;) 특히 그런 구체성의 핵심에는 베아트리체에 대한 단테의 사랑이 있다.

아홉살에 베아트리체를 처음 본후 사랑에 빠진 단테는 피렌체에서 추방되기 훨씬 전인 1290년, 그녀를 죽음으로 이별한다. 베아트리체의 나이는 스물다섯이었다.


[△사진은 단테가 아홉살에 베아트리체를 처음 만났다고 하는 피렌체의 베키오 다리. 여행할 때 만난  다른 여행자가 나의 작은 호의에 대한 답례로 이 이야기를 가르쳐주었는데, 신곡을 읽지 않고 온 것을 후회한 적이 있다.]

신곡 전체에 가장 가슴떨리는 부분은 연옥편의 후반부(30편~)부터, 연옥의 끝 에덴동산에서 베아트리체를 다시 만나는 장면이다. 그녀는 지옥에서부터 이제까지 순례자(단테)를 인도하던 베르길리우스(로마의 시인)를 대신해 천국을 안내한다. 천국편까지 베아트리체가 등장하는 구절들은, 단테가 이 작품을 무엇보다 자기위안을 위해서 썼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어느 구절보다 생생하게 빛나고, 그 것을 묘사하는 순간에 가장 행복한 사람의 글이라는 것을 700년이 지난 지금도, 다른 언어로 번역된 시로도 느낄 수 있다.

나를 하느님께 인도하던 그녀가 말했다. "이제
다른 생각은 그만 하세요. 내가 모든 고통을 덜어주시는
그분과 함께 있다는 것을 생각하세요"

그 사랑스러운 말에 나는 나의 위안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때 그녀의 거룩한 눈에서 본
사랑은 너무나 거대해서 말로 옮기지 못하겠다.

내 말이 실패할까 두렵기도 하고,
누군가가 위에서 인도하지 않으면 내 정신이
그런 높이까지 오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순간에 대해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그녀를 바라보면서 내 마음이
다른 모든 추구에서 자유로워졌다는 것이다.

그것은 영원한 기쁨이 베아트리체의 얼굴에 곧게
비치고 있었고, 그 반사광이 나를
기쁨으로 채워주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미소의 빛줄기로 나를 압도하면서
말했다. "이제 몸을 돌려 잘 들으세요.
천국은 내 눈에만 있는 것이 아니에요"

- 천국편 18곡 중

단테가 천국의 안내자, 혹은 동행자(그러니 그녀는 진정으로 Soul Mate라고 할만 하다)로 베아트리체를 등장시킨 것은, 그녀가 구원의 여성상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와 함께 있는 곳이 천국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단테의 사랑이 비록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었을지라도 천국을 희망하는 삶의 힘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고, 방대한 신곡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물론 이것이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일방적 판타지라고 말할 수도 있고, 이 판타지는 성녀-창녀의 이분법을 전제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서로의 영혼의 발전에 도움을 주는 관계를 우정이든, 날개달린 에로스든 만들어갈 수 있을테니까.)

한편, 기독교 신자가 아닌 나는 신곡을 통해서 기독교적인 구원에 대해서도 조금 더 이해하게 된다.(한국에서는 교회를 통해 복을 내려주는 기복신앙의 대상이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그것은 절대자를 통해서 영혼의 고양, 완전성으로 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어떻게 보면 하느님이라고 하는 인격신은 이름만 있는 것이지 실제로는 각자의 영혼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매개로 그 자체가 하나의 비유일 수 있다. 다만, 불교와 같은 경우에는 직접적으로 자신안에 있는 부처를 찾으라고 가르치는 데 비해서, 기독교는 하느님을 매개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물론 사소한 차이는 결코 아니다.)

인간은 자기 한계 내에는 결코
완성될 수 없어요. 그러니 계속해서 겸손하고
복종하는 자세로 자신을 낮추지 못하는 것은

거스르려 했던 그만큼 자꾸오르려 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혼자 힘으로
하느님께 이르기 힘든 것입니다.

결국 하느님께서는 말하자면 두 길들 중 하나로,
혹은 두 길 모두를 통해
인간이 완전한 삶으로 이르는 길을 마련하신 것이지요.

그 일을 행하는 자가 더 감사하는 만큼,
그 마음에서 나오는 자비가 더 선하게
우러나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온 세상에 자국을 남긴 영원한 하느님의 덕이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기꺼이 다시 한 번
인간을 끌어 올리고자 하신 것입니다.

- 천국면 7곡 중 베아트리체의 말

비유적인 표현으로서 "하느님"의 표상, 인격신으로서 "야훼"는 이중적인 효과를 가진다. 한편으로는 이해하기 쉬운 인격적 상징으로, 누구나 자신의 영혼을 고양시키는 길을 따라갈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 쉬운 비유 때문에 왜곡되기도 쉽고,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에게 원래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미신의 대상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그러니 그리스도의 말씀이나 성경 자체도 물론이지만 심지어 "하느님"의 표상까지도 일종의 비유일 수 있다는 생각을 열어야, 영혼을 ("천국"으로 불리는 지고의 장소까지) 고양시키는 기독교 안의 위대한 가르침을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신곡은, 지옥에서 연옥으로, 천국까지 길을 걸으면서 인간과 악마, 천사와 신을 만나고 깨달음을 얻어가는 일종의 "여행기"라 할 만하다.(SF영화와도 비교할 수 없을 우주적 규모의 여행기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여행에 신곡의 독서를 통해 동반하면서, 단테가 추구하려고 했던 영혼의 고양을 함께 하거나, 혹은 적어도 그 장면을 구경해 볼 수 있다. 물론, 각자의 베아트리체를 만나는 경험은 현세에서들 하셔야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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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서경식 지음, 박광현 옮김 / 창비(창작과비평사)


아우슈비츠의 생존자 쁘리모 레비는 자살로 삶을 마무리하면서, '침묵과 죽음'을 자신의 마지막 증언으로 남겼다. 서경식은 불가리아 출신의 지식인 츠베땅 토르도프를 인용해 "레비가 1987년에 자살하지 않았다면 모든 것이 단순 명쾌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고난에 대한 인간성의 승리와 구제의 서사로, 그 모든 것은 증언을 듣는 우리에게는 명쾌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불가해한 질문을 던진다. 불가해한 질문에 직면한 그가 죽음으로서 우리는 그 질문에 내던져진다. 오히려 그 이유를 알려고 할 것이 아니라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서경식은 말한다.

글과 여행을 통해서 쁘리모 레비를 찾아가는 이 책에서 두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것" 혹은 "이해해서는 안되는 것"이 또 등장한다.

효율적인 학살을 통한 절멸(노동력이 없는자)이거나 "노동을 통한 절멸"(노동력이 남은자)이라는 프로젝트, 이 아우슈비츠는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한다는 것은 "인정"한다는 것과 닮은 행위이기 때문에, 또 그렇게 연결될 수 있는 위험을 갖고 있다. 그러나 끔찍하지만 우리와 같이 히틀러, 괴벨스, 히믈러, 아이히만과 같은 "독일인들", 그들도 인간의 일부라면, 그들을 "이해"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는 인간 자체에 대한 근원적 질문과 같다.

"그들은 자신들이 '유대인은 인간 이하'라는 사상에 희생된 까닭에, 그 사상을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사상으로 대치해야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독일인'도 물론 '인간'에서 예외는 아니다."(181쪽)
그러나 그것은 결코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모순은 쁘리모 레비와 같이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고자하는 생존자의 삶을 갉아먹는다. 오히려 아우슈비츠의 생존자, 피해자가 "인간이라는 수치"에 시달린다.

레비에게 "독일인"은 그런 존재다. 그들 전체를 인종주의적으로 재단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압도적인 다수가 공범인 행위를 볼 때, 그들이 행한 폭력이 취한 독일적 형식(식사나 노동의 양식, 오락의 취향, 언어감각, 나치식 농담의 센스까지!)을 볼 때 그런 이름을 붙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대다수의 독일인은 아우슈비츠에서 일어나는 일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오히려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의도된 무지는 무죄가 될 수 없다. 자신은 공범이 아니라는 변명은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이다. 스스로의 기억도 조작된다. 마치, 레비가 수용소에 I.G.파르벤의 화학공장에서 만난 민간인 뮐러 박사가 자신이 레비와 "우정을 쌓았다"라고까지 왜곡된 기억을 갖게 되는 것처럼, 본능적으로.

그래서 레비의 죽음은, 피해자는 결코 잊을 수 없고 매순간 노출되는 모순에, 가해자는 오히려 스스로 확신을 갖고 잊고-잊고자하고 "이제는 그만하자"고 말하는 현실을 대면시킨다. 역설적이다. 독일에서, 일본에서 이미 그런 목소리가 높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이스라엘과 미국은 눈감는다. 어떻게 가해자들이 먼저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는 것일까, 그들은 피해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그 "인간"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일까?


[△ 사진은, 독일에 갔을 때 찍은 베를린 인근 작센하우젠 수용소의 처형장]

한편, 서경식은 나치의 유태인 대학살이 왜 벌어졌는지를 물으면서, 그 질문을 유럽인인 쁘리모 레비에게도 되돌린다. 나치의 행위는 "중세 이후의 반유대주의, 히스테리컬한 패권욕과 식민지 획득욕, 약육강식.우승열패의 사회진화론과 우생사상, 인종주의 그리고 '효율'에 대한 물신숭배와 테크놀로지 신앙, 이 모든 요소가 복합적으로 상승작용을 하여 폭발한 것"이면서 동시에, 독일 자본주의의 발전경로와도 연관된다. 독일은 후발 제국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영국, 프랑스 등 다른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유럽의 "바깥"에서 행한 행위를 유럽의 "안"으로 돌리게 되었다.

좀더 부연하자면, 역사적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독일이 영국 헤게모니를 대체하기 위해 (미국과) 벌인 경쟁 과정으로 이 시기를 연관시켜 볼 수 있다. 독일은 부족한 식민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시장을 확대하는 등 내부로 확장의 방향을 추구한다. 중화학공업의 발전과 (힐퍼딩과 레닌이 비판한) 금융과두제는 이렇게 형성된다. 그러나 국내에서의 "영역의 확장"은 한계를 가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생활공간의 확장"이라는 나치식의 구호가 등장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독일 내부에서 정치적 압력을 가중시키고 소수자를 절멸하는 정치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과 함께, 곧이어 인근 국가들에 대한 전쟁으로 나간다. 1차 대전은 식민지 재분할 요구이 성격이 강했지만 2차 대전에서 독일은 유럽대륙을 지배하는 제국을 건설하고자하고 보다 더 직접적인 유럽의 문제가 된다.

아우슈비츠는 유럽의 역사 자체가 만들어온 과정이기도 하다. "야만"이 유럽의 문제가 된 이때, 비로소 근대 유럽의 이념으로서 "인간"의 보편성을 둘러싼 자기모순이 드러난다. 쁘리모 레비조차 아우슈비츠를 묘사하면서 (비유럽적인 것으로서) "아만", "야만적인 피그미"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서경식은,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문명인가'를 물어야하는, 또 다른 과제가 주어진다고 말한다.

다른 책에서처럼 서경식의 장점은, 쁘리모 레비라는 사람을 그의 시간과 공간에 고립된 인물이 아니라 현재에, 그리고 글을 쓰는 자신의 삶에 불러온다는 데 있다. 그래서 쁘리모 레비는 "간첩"협의로 고문받고 투옥된 서승, 서준식 두 형제를, 디아스포라이자 그 투쟁과 고난에의 "외부"에 있다고 느끼는 저자 자신을 만난다. 팔레스타인을 만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우리도, 쁘리모 레비를 그리고 서경식을 지금 현재, 우리의 삶에 불러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타인의 고통에 동참(김상봉)하는 것과 동시에 나의 고통을 통해 타인과 연대할 수 있기 위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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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서경식은 일본과 독일의 상황을 비슷하게 진단한다. 일본의 우익정치인들이 "자학사관"을 넘어서자고 선동하는 것처럼, 독일에서도 "수정주의 사관"은 아우슈비츠를 다른 테러독재, 학살들과 "비교할 수 있는 것"으로 놓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태를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차이가 있다고 느껴진다. 독일에서는 적어도 기억하고 반성하기 위한 시도들이 의미있게 지속되고 학살을 용인하는 것에 대해서는 사회적인 금기가 더 강하다. 베를린의 "유태인 기념관"과 같은 곳은 일본에는 없는 것이다.

여행기에서 베를린에 대한 느낌에서 쓴 것처럼, 독일인들은 스스로의 힘에 대해서 두려워하는 것으로 느꼈다. 일본도 그럴까? 적절한 비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서 "폭주"라는 말이 일본에서 어떤 어감인지 느끼게 되었다.

이 책에는 일본인들이 2차 대전은 잘못된 정치인과 군인들이 "폭주"[暴走]한 것으로 이해한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지금 극장에서 상영하고 있기도 한)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에서 "에바"는 통제불가능하게 "폭주"한다. 자신의 힘을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순간이다.(그래서 에바의 전원장치는 에너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폭주를 '구속'하는 장치이다.) 독일인들이 느끼는 것으로 보이는 자신에 대한 두려움과 유사한 것은 아닐까? 이 경우에는 훨씬 약하게 드러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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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임순례 감독은, 전작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처럼, 어쩌면 진부한 소재를 진부하지 않게 그려낸다. 한국 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존재, 기껏해야 지하철에서 자리를 냉큼 차지하는 존재로 밖에 이해되지 않는 "아줌마"들의 삶에 대해서 말이다.

이 영화에 대한 좋은 이야기는 여기저기 많으니 한 가지만 이야기해보자.

국제 체육대회(국가대표)라는 소재는 사실 위험하다. 자칫하면 민족-국가에 인민들을 동원하는 상징으로서의 역할을 그것을 소재로 다룬 영화도 반복하기 쉽다.(그것은 소재 자체에 각인된 것이기도 해서, 밑에서 말하겠지만, 다른 방식으로 그것을 다루려고 해도 민족-국가는 끊임없이 복귀한다.)

그런 점에서 임순례 감독은 솜씨있게 다른 방식으로 소재를 다룬다. 영화에 등장하는 선수들은 어떤 민족적인, 국가적인 영광이 아니라, 자신의 삶 혹은 꿈을 위해서 뛰어든다. 그것이 잘 어울리는 이유는,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어차피 민족-국가가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으며 앞으로도 이들에게서는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는 '아줌마'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올림픽 시즌에 잠깐 주목받고, 금메달 카운트로만 집계되는 경기의 뒷면에는 그녀들의 삶이 있다.

임순례 감독은 그 금메달의 '뒷면'을 현실과 단락시킨다. 그녀들은 경기가 끝난 이후에도 뉴코아, 홈에버에서 물건을 파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일 것이고, 동네식당 "아줌마"(달리 그녀들을 부르는 어떤 용어가 있담?)일 것이고, 딸을 둔 이혼녀일 것이다.(한미숙-송정란-김혜경) 우리 옆에 있는 그녀들이다. 감독은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 전에 실제 선수들과 감독의 인터뷰를 붙여넣는다. 영화는 다시 "올림픽이 끝나면 돌아갈 팀이 없는" 그녀들의 현실로 난폭하게 돌아온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국가"대표선수들에게조차 "국가"가 무엇인지, 혹은 그보다는 그녀들의 삶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대항의 국제 스포츠 경기에는 '경기'를 일으키는 나 같은 이도 그녀들의 결승전을 응원하면서 볼 수 있다. 그 경기는 민족-국가의 영광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그녀들이 생존을 위해서 싸우는 또 다른 삶의 현장으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얼마전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올림픽 등 각종 세계대회에서 국위선양을 하고 있는 국가대표 선수들과 함께 이 영화를 관람"했다고 한다. 이명박에게는 그녀들의 삶이 아니라 "국위선양"이 보였던 모양이다. 소재의 위험은, 영화보다도 더 현실과 거리가 있는 그런 식의 상징조작도 가능하게 한다. 그러니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 노파심에서 말하자면, 이 영화를 보고나서 그녀들에게 "민족-국가의 영광"을 위해 베이징 올림픽에서 열심히 뛰라는 얼빠진 이야기는 하지 말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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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삶의 한가운데


삶의 한가운데
루이제 린저 지음, 박찬일 옮김 / 민음사


지금, 단테의 신곡(코메디아)을 읽고 있다. 지옥편,

우리 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
어두운 숲에 처했었네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무엇보다 지난 2007년을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서른다섯, 장기간의 병가와 휴직, 여행, 그리고 이혼까지, 인간의 자연적 수명이 일흔이라는 잠언(89:10)의 구절이 아니라도, 나의 영혼의 수명은 아마 일흔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삶의 한가운데"를 지나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애니어그램 성격 테스트의 지표까지 모든 것이 송두리채 변했던 것이다.. 작품의 주인공 니나는, 오늘 서른일곱을 마무리한다. 나 혹은 그녀처럼, 말 그대로 "삶의 한가운데"를  지나왔다고,  생각하게 된다.

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를 읽게 된 것은, 아마도 이런 정황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미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이야기되었던 책이라고는 하지만, 공대생, 운동권으로 20대를 보낸 나의 독서 목록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루이제 린저는 이 작품 속에서 전후무후한 인물들을 창조한다. 그러나 그 인물들은 마치 작가, 그녀의 여러 변신
變身들 같다. 일인칭 서간체의 소설이어서일까? 어느 소설에서보다, 이 책의 인물들, 누구보다 니나, 그리고 슈타인은 그녀의 일부로 느껴진다.

니나는 자신의 경험 속에서 좌절하고 무능하게 된 한 남자 교수의 이야기를 한다. 이 에피소드의 결말은 (나의 다소 보수적인 도덕관념으로는) 좀 경악스럽기는 하지만, 니나의 표현으로는 이 사람의 부인은 이런 사람이다. "짐작하기에 부인은 착하고 현명한 여자 같았어, 아울러 마치 간호사들처럼 정확하고 친절은 하지만 남자들에게 꿈을 주는 못하는 부류의 여자였던 것같아. 언니, 이해해? 이 세상엔 그런 여자들이 많아."

19세의 니나를 처음 만나고 치료한 의사인 슈타인은 18년 동안 그녀를 원했지만, 짧은 기회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안정적인 연애관계를 갖거나 결혼하지는 못한다. 평생을 모호한 관계를 유지하지만 말이다. (이 작품은 그 과정을 기록한 슈타인의 일기로 이어지면서, 또한 니나의 회상으로 구성된다. 그것은 직소 퍼즐같이 연결된다.) 그것은 슈타인 자신의 말대로 너무 우유부단하거나 신중해서일 수도 있다. 한편으로 그것은 그녀의 정치적 이상에, 혹은 그보다는 그녀의 솔직한 행동주의에 슈타인이 다가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간접적으로는 기여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어떤 점에서, 슈타인은 나와 비슷하게도 느껴진다. 나도 한편으로는 우유부단하며, 지나치게 신중하기도 하다. 또한 시간 속에 길을 잃지만, 잊을 수는 없다. 슈타인은 니나를 이렇게 말한다. 그녀는 이런 모습이다.
"니나는 엘베 강과 같은 존재다. 유혹적이고 순진하며 도덕이 얽매여 있지 않고 본능적으로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멀고 낯설게 느껴져 붙잡을 수 없다"(123)

이런 성격이 이 책이 출간된 이후에, 니나에게 많은 젊은이들이 열광하게 만든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같다. 그러나 다만, 이것이 그저 젊은 사람들의 반항적인 한때의 기질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행동에 까지 이르는, 자신의 사라지지 않는 본질이라는 점을 함께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녀는 이미 서른 여덞이니 그것은 젊은 한 때의 혈기만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다시 나 자신을 떠올리게 된다. 이 작품은, 모든 구절에 나의 존재를 대입하게 되는 신기한 매력이 있다. 그래서 작품을 일반화하고 거리를 두기 보다는, 작품의 그 안에 나를 위치시키고 생각하게 된다. 작품 속에서 순간 순간 슈타인이 되거나 니나가 되어서 혹은 알렉산더이든, 퍼시이든 그 등장인물 중 하나가 되어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특히 슈타인에 대해서라면, 그의 "내밀한" 일기는 마치 나의 일기에도 쓰지 못한 말들을 그가 대신 쓴 것처럼 느껴진다. (여성 작가인 루이제 린저가 어떻게 이렇게 한 남성의 영혼 자체를 창조할 수 있는 것일까?)

하지만 나는 슈타인과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온갖 위험들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정치적으로 행동하고, 아마도 또 그렇게 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관념이 그 자체로만 존재하고 물질적으로 실현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그것은 알튀세르를 내가 깊이 공감하면서도 다른  부분이다. 알튀세르는 수용소 탈출 계획을 세운 것으로 만족했지만[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비록 엄청나게 동요하더라도 결국은 나는 그것을 실행하는데 충동을 느낄 것이다. 혹은 실행하지 못한다면 참을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느낄 것이다. 어떤 컴플렉스?)  정치에 대해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나 자신이 니나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렇다.

한편으로 위안은, 모든 관계의 고통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람의 자연적 수명을 넘어설수는 없을 것이라는, 절대적인 물리적 한계에 대한 것이다. 슈타인에게 그것은 18년이었다. 나에게 그것이 얼마일지는 모르겠지만 니나, 그녀의 온갖 삶의 굴곡을 넘어선 어떤 시간일까..? 여튼 그것은 어떤 식이든 나의 물리적 존재의 한계라는, 끝이 있는 과정이다. 그러니, 그리 절망하지 않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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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만남-서경식 김상봉 대담


만남 - 서경식 김상봉 대담
서경식, 김상봉 지음 / 돌베개

나는 이런저런 '이벤트'에 응모하거나 복권을 사거나 하는 성격이 아니다.(사실 거의 해본적이 없다.) 그러나 출판사에서 이 책의 저자들과의 대화 이벤트를 한다는 공지를 보고는, 잡혀있던 회의일정을 연기하면서까지 응모하고, 또 운좋게도 당첨되었다. 아래 이야기는 책으로 만난 대화에 대한 이야기이도 하면서, 저자와의 만남 행사에서 또 한번 만난 기억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시간상의 이유"로 내 질문서는 잘렸지만 말이다 ^^;

***
김상봉은 서경식이 자신의 "걸어다니는 철학문제"라고 말한다. 앞에 <디아스포라>에 대한 포스팅의 덧글에서도 말했지만 서경식은 디아스포라라는 "상태"가 아니라 그 모순이 "작동"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김상봉은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에서 보여준 것처럼, 그 "걸어다니는 모순"을 사고할 수 있는 남한에서 몇 안되는 철학자 중 한명이다. 그러니, 이 만남에 어떻게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을까.

저자와의 만남에서 김상봉은 이 대담이 518 광주 이후 한세대가 끝난 시점에서, 다음 세대에게 문제를 계승하고 제기하는 과정으로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괜한 공언이 아니라, 이 만남 속 대화 전체는 이제 한세대가 지나서 화석화되고 박제화된 이른바 "민주화투쟁"'의 경험을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젊은 세대들에게 제기하기 위한 철학적 일반화의 과정, 매우 치열한 과정이다.

만남의 주제를 요약할 수 있을까? 상징적으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의 제목이 있다. "디아스포라와 서로주체성의 만남" 그리고 "새로운 공동체의 꿈"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디아스포라라는 서경식의 문제의식과 서로주체성이라는 김상봉의 문제의식은 "새로운 공동체"에서 만나는가? 혹은 어긋나는가?

서경식이 디아스포라의 고통에 주목한다면, 김상봉은 그 고통에 참여하는 것을 통해서 새로운 주체성, 이른바 "서로주체성"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러나 긴장이 있다. 서경식에게 그 고통은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한 고통스러운 개인들의 분투인데 비해서 김상봉에게 그것은 소통의 매개이기 때문이다. 디아스포라의 모순, 국민국가를 넘어서고 횡단하는 새로운 주체성을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과 가장 극한의 역사적 고통에 직면한 주체라는 조건에서, 김상봉의 시도는 전자를 의미하는 것일까?



씨알, 선험적 희망?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이들은 대담에서 디아스포라의 경험을 "코스모폴리탄적 자유"라고 말하는 것은 환상이라고말하고 한편으로는 디아스포라의 경험이 일종의 "유산"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김상봉의 경우에는 오히려 디아스포라 일반보다는 재일조선인 서경식의 고통을 한반도 민중의 경험 속에서, 함석헌의 "씨알"개념 속에서 접목하고 해석하려고 한다. 한반도에서는 절대적인 종교적/정치적 권위가 부재한 가운데 민중의 끊임없는 투쟁, 혹은 그 가능성이 존재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김상봉은 역사를 비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씨알에게 언제나 희망이, 선험적으로 있다면 비극이 어떻게 사고될 수 있다는 말인가?[김상봉이 그리스 비극에 대한 책을 썼기 때문에 그것은 더욱  의문이다.] 그것은 일종의 역사에 목적론이고, 그렇게 된다면 비극은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한 것이 되는 게 아닐까? 그러나 나는 또 다른 디아스포라인 벤야민이 말한 "역사의 나쁜 방향"에 우리가 처할 수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이고자하는 주체의 비극적 상황--그러나 주체를 숭고하게 만드는--을 염두에 두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서 서경식의 말에 귀기울이면서 어떤 회의를 갖게 된다. 저자와의 만남에서, 서경식이 말한 것처럼 디아스포라의 경험, 특히 아우슈비츠의 유태인이나 팔레스타인처럼 극한의 고통 속에서는 다른 무엇이 있다. 디아스포라 주체는 그것을 증언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한편으로는 가해자를 "이해-인식"해야한다는 고통속에서 진행되고, 어떤 순간에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그래서 결국 프리모 레비는 자살했다. 그렇다면 다른 누구의 것이 아닌 디아스포라의 고통을 주체들 사이에서 공감하고 이러한 "고통에 참여"하는 것은 가능한가?

디아스포라의 고통에 참여하는 것은 가능한가라는 묻는 것이다. 김상봉의 '서로주체성'이 디아스포라를 예로 하거나 그들에게도 해당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앞선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나에게는 그 고통에 참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진다. 그 주체들에게 조차 항상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고통이 아닌가. (이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디아스포라의 경험은 보편적일 수 있는가?

그렇다면 또한 서경식에게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러한 고통을 교통하고 공감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라면, 증언할 수는 있으나 그것이 단지 언제 누구에게 닿을 지 알 수 없는 "투병통신"(병에 넣은 편지를 바다에 던지는 행위)이라면 디아스포라의 경험은 대중정치에 어떤 의미가 있을 수 있는가? 그것이 기껏, 소수의 디아스포라 자신들과, 아주 예민한 일부의 공감으로, 지식인들의 하나의 지적 유행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정치의 문제는 대중정치의 문제, 대중 이데올로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저자와의 만남에 갔던 이 날, 우연찮게도 나는 단속추방에 반대하는 이주노동자 농성단 동지들과 함께 하는 일정이 있었다. 이주노조 조합원 동지들에게 한국에서 노동자운동의 역사에 대한 강의를 진행했다.(일제시대~80년대 중반까지 1강. 전체 3강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짧은 강의였지만, 진행하면서 나 스스로 생각하게 된 점이 많다. 우리가 운동을, 사회를 바라볼 때 "이주자의 눈으로" 보아야한다는 점.(교육을 통해서 교육자인 나 스스로를 교육하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예를 들어 일제시대 조선의 노동자운동사를 말하려면 일본에 징용된 이주노동자들, 지금도 중국, 러시아, 미국에 이산되고, 다시 "조선족"으로 남한에 돌아오는 이주노동자들의 눈으로 현재를 보아야한다는 것. 그리고 한국이라는 민족국가의 역사의 시각이 아니라 적어도 아시아, 그리고 세계체제의 시각에서 남한이 처했던 위치를 인식해야하고 이러한 자본주의 세계체계 때문에 이주자가 된 노동자의 시각에서 바라보아야한다는 것. 또 그들의 모국이 현실과 변혁의 과제와 남한에 노동자운동의 과제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한다는 점.

90년대 초중반 이후의 계급구성의 변화는 비정규직의 증가만이 아니라, 그것의 필연적 일부인 이주노동자의 증가와 함께 사고해야한다. 98년 imf구제금융 이후의 구조조정과 비정규직 양산과정에도 이주노동자에 대한 도입확산과 통제정책을 함께 생각해야한다, 등등.(한국인 비정규직만이 아니라 이주노동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제까지 내가 얼마나 "내국인"의 시야에 갇혀있었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적어도 내가 생각할 수 있게 된 지점은, 노동자운동의 쟁점에 접근할 때 '내국인''의 시야에 갇혀서는 안되며 그래서 오히려 "이주노동자의 눈"으로 그것을 바라볼 때 온전히 전체를 인식하게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 정도이다. 운동의 이데올로기를 바꾸어가는 끈기있는 노력이 필요한 대목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여전히, 그것이 어떻게 대중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는지(혹은 바꿀 수 있는지)는 아직 답이 없는 문제로 느껴진다. 여전히 노동자주체는 민족국가의 "국민"이며, 투쟁의 과정에서 항상 이 이데올로기는 회귀한다.(이것을 단지 지배 이데올로기=피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것을 넘어서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실천을 통해 가능할까. (혹은 그것은 직접적으로 디아스퍼라의 고통에 대한 참여가 아니라도 매시기 "비국민"이 되는 실천들을 통해서 가능한 것일까? 예컨데 어떤 경로, 실천으로 가능한가?)



새로운 민족국가? 철학인가 정치적 행동주의인가.

저자와의 만남에서 이들은 새로운 국가, "가장 열린 공동체"가 한반도에서 가능할지 묻는다. 김상봉은 한반도의 재통일 과정에서 새로운 민족국가의 가능성에 대해서 그러한 새로운 공동체를 구성할 희망에 대해서 혹은 정치적 과정의 필요성에 대해서 말한다.

그러나 사실 한반도의 재통일과 같은 현실의 정치적 문제에 대해서, 책에서나 혹은 저자와의 대화에서도 언급들은 있지만 모호하고 추상적이기 짝이 없다. 한반도의 정세, 남북이 처한 정세를 볼 때 통일 과정을 어떤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 계기로 생각하는 것은 거의 비현실적이다. 오히려 그것이 현실화되는 시기는 반공주의에 대한 투쟁, 민족주의에 대한 투쟁, 북조선 인민을 이등국민으로 전락시키는 내부 식민화에 대한 투쟁의 계기가 될 것이다.(물론 공동체 간의 관계를 문제삼을 수는 있겠지만, 오히려 전체주의 북조선 체제가 유지될 수 있는가 혹은 어떤 식으로 변용될 것인가가 정치적 쟁점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정작 더욱 문제라고 느꼈던 것은 저자와의 대화에 참석한 독자들의 태도였다. (철학자거나 사상가인) 저자들에게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독자들조차 "새로운 공동체의 구성"은 정치적 프로젝트, 현실의 변화를 위한 실천의 문제가 아니라 순전히 철학적 공론의 문제라고 보여지는 것이다.

독자들의 질의와 토론과정에서도 구체적인 정치전략의 대상이 되어야할 정치의 변혁, 공동체의 변혁이라는 과제에 대해서 추상적인 개념들만 언급되고 있었던 것이다. 철학이 어떤 순간에는 오히려 정치적 사고와 실천을 게으르게 만들 위험, 혹은 그 게으름에 변명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혹은 현실의 정치,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이 <만남>의 대화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일까? 둘 다 다른 문제는 아닐 것이다.)

정치적 실천에는 철학적 방향에 대한 고민이 당연히 전제되어야하지만 거기에 머물면서 정치의 영역, 그리고 실천--정치전략을 실현하는 데로 나가지 않는데서는 그것은 공문구들에 불과하다. 하다못해 디아스포라 개념을 말하면서도 이주노동자 운동에 어떤 물질적이고 실천적인 기여가 없다면 그게 무슨 현실적 의미가 있는가? 개인의 1500cc 두뇌용량 안에 같힌 사고를 넘어서 말이다.

나는 그러한 문제의식을 저자와의 대화에 참가한 독자들만이 아니라 두분 선생에게도 느낄 수밖에 없다. 김상봉 선생은 즉자적인 reaction이 아니라 정신의 유대/연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해고 50일의 GM대우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고공농성에는 정신의 유대/연대가 아니라 몸이 따라가는 실천의 연대가 필요하다. 이랜드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구정매출 제로투쟁의 집회참가가 중요하다. 그것은 서경식 선생에게도, 죄송하지만 마찬가지이다.

선생은 자신의 '외부'에 있으며 ''내부'에 참여하지 못하는 데 부채의식을 가져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미 선생이 서있는 곳은 김상봉 선생의 지적처럼 그 자체가 내부일 것이라는 점을 먼저 언급하자. 게다가 문제는, 정치적 교통을 위해서는, 고통의 증언을 위해서도 그를 넘어선 참여를 조직해야하고, 그것을 위해서는 먼저 그 주체(디아스포라라고 해도) 스스로가 타자의 고통에도 또 한번 먼저 참여해야한다는 것이다. (디아스포라에게 그것이 가혹한 요구일 수도 있다. 그러나, 디아스포라가 아닌 주체들의 책임성을 전제하는 가운데, 둘 다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주노조 동지들은 한국의 비정규투쟁에 가장 열심히 연대하는 주체들 중 하나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서 발언하고, 그것을 '사회운동'으로 조직하거나 참여해야한다. 서경식 선생이 전날 만났다고 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과의 연대와 같은 실천이, 주체들 사이의 교통을 위해서는 필수적이다.(자신의 고통을 증언하는 것으로 어떻게 연대가 만들어질 수 있는가? 연대는 말이나 사고가 아니라 서로 실천속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어떤 "희망"을 위해서

이런 모든 것을 저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철학자들에게는 그의 역할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치인은 아니다. 그러나 독자들도 자신을 철학자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정치적 실천은 이른바 '정치인'들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옆에 앉은 어떤 독자가 자신은 "씨알" 개념 속에서 정치적 희망을 발견했다는 요지의 말을 할 때 황당해졌던 것이다. 김상봉 선생에게 내가 가장 의문스러운 점은 민족 혹은 한반도 인민에 고유한 것으로서 "씨알"개념을 초민족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지, 그것이 단지 '선험적'--타고났다는 점에서--에 불과한 것이 아닌지하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씨알"이, 구체적인 정세에 대면해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대중"을, 따라서 "정치"를 대체할 수 있는가.

그러나 여전히 그 독자들이 어떤 종류의 실천을 통해서 현실을 바꾸는 나름의 실천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면, 이 대화의 시도는 의미있다. 저자와의 대화 마지막 부분에서 서경식 선생의 말을 주목하자. (공동체 내부의 주체인) "우리"에게 희망의 요소가 보이지 않아도 "외부와의" 소통 속에서 그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희망이 소진되어아가는 일본사회의 정세 속에서 더욱 이해되는 말이기는 하지만, 보편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공동체의 변혁을 위해서라도 다른 공동체와 교통하고, 오히려 내부에 존재하는 그들의 시각-- 이주자, 디아스포라의 시각으로 운동을 사고하고 실천해야한다는 점. 교통 자체가 실천이지만, 그것에서 또 다른 실천을 시작할 수 있다면.

김상봉 선생은 또 이렇게 말한다. 도덕, 가치, 그리고 희망이라는 것은 인간의 삶에서 원래-당연히 있는 것이 아니다.(어떤 초월적 주체가 이런 것을 부여해준 적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에 절망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그것을 만드는 것이 과제가 된다. (김상봉 선생은 그것을 "우리 역사"에서 찾자고 말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내가 썩 동의할 수 없는 것은 그 "우리"의 민족적 성격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정치적 희망을 우리는 교통 속에서, 그리고 역사적 경험 속에서 얻자는 제안이다. 그 '희망'이라는 것을 '낙관의 감정적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정치적 실천의 방향으로 생각할 때 현실에서 진짜 희망이 될 수 있다. 두 사람의 대담을 그것을 찾는 과정으로 읽는다면 더 값질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서경식, 김상봉 두 사람의 대화는 여전히 눈부시다. 문제는, 다시 한번 말하자면, 우리에게는 그것을 수동적으로 되뇌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에서 다시 사고할 의무가 있는 것. 이정표가 길을 걸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두 다리가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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