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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15
    [펌-김원]아직도 진보정당 실험할 게 남아있나 + 덧붙여 (1)
    겨울철쭉
  2. 2007/05/30
    [독서]반자본주의(3)
    겨울철쭉

[펌-김원]아직도 진보정당 실험할 게 남아있나 + 덧붙여

김원 선생의 인터뷰가 오마이뉴스에 실렸군요.
 
 
문제의식에 많이 공감합니다. 마침 지난 주말에 김원 선생 등이 신병현 선생 등과 작업해서 발간했던 <사라진 정치의 장소들>을 읽고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던 상황에서 반갑기도 합니다.(오랜만이 리뷰라도 써야할 것같다는;;)
 
 
 
글을 읽고 나서 찾아보니, <지행네트워크>라는 곳에 관련된 글을 이미 쓰신 적이 있군요.
 
http://jihaeng.net/blog/111 (촛불은 계속 타오를 것인가)
 
 
 
한달 넘은 글이긴 하지만, "긴박한" 정세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사점이 생생한 글입니다.
 
 
한편, 아래 제가 쓴 참세상 기고와 관련해서 사회진보연대 게시판에 이런 글을 썼었습니다. 또 보니, 김원 선생의 글을 보면서 한번 더 생각하게 되는군요.
 
 
다만 저는 여전히 활동가입장인지라, 현재 정세에 사회운동이 어떻게 "전술적으로" 개입해야하는지가 더 고민이긴 합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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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나서 생각해보니, 자연스럽게 참세상에 올라온 다른 기고문들과 모종의 쟁점을 형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원영수(노힘)씨의 글
그리고
 
김강기명 씨의 글
과 그렇습니다.
 
후자는 자율주의에 가까운 입장이라면 전자는 (원영수씨의 원래 포지션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신좌파적 입장일텐데,  둘다 촛불의 승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보다는 촛불 안에 있는 모순적 요소를 봐야하고, 그렇기 때문에 사회운동이 자신의 역할을 가진다는 입장입니다. 역설적으로 좌파들이 완전히 무관심하거나 혹은 이런 방식으로 열광하거나하는 사이에 가장 영리한 대응을 하는 것은 여연 등의 NGO들입니다. 자신들이 어느 지점에 개입해야하는지 알고 있지요.
 
그래서, 이번 촛불국면에서 충분히 배워야하고 싸움에 최선을 다해야하지만, 그렇다고 맹목적이어선 안될 것이고, 무엇보다 사태를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열광보다는 과학적 분석과 이해)
 
이런 식으로 말하면 뻔하게 "좌파 먹물들 운운"하는 얘기가 나올 수도 있겠군요. ㅋㅋ
하지만, 참여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참여"가 더 중요하게되는 시점이니, 좀 봐주시면 좋겠습니다.ㅎ
 
여튼간에 자율주의자들의 반응은 뻔하다고 치고, 다소 놀라운 것은 (이미 리보위츠의 글[21세기 사회주의]을 번역할 때부터 그랬던 것같기는 하지만) 원영수씨의 이런 입장은 좀 놀랍기도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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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좀 긴 사설.
 
 
 
아래는 퍼온 글입니다.
 
 


  아직도 진보정당 실험할 게 남아있나
  [촛불논쟁-거리정치인가 정당정치인가?⑥] <여공 1970…>의 저자 김원 박사
    
촛불에 상찬을 늘어놓은 다른 지식인들에 비해 그는 차분했다.
 
<여공 1970, 그녀들의 반역사(2006년)>란 책으로 주목받았던 김원 박사(정치학)는 6월 중순께 발표한 글에서 "아이들의 촛불을 보며 지나치게 부끄러워하거나 환호해서는 안된다"며 침착하고 냉정한 시선을 주문했다.
 
"우리는 이미 2002년 촛불이 어떻게 잦아들었으며, 당시 촛불을 든 아이들이 88만원세대가 되어 고용불안 속에서 '경제를 살려준다'는 보수정당에 투표하는 것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김 박사는 '촛불이 일상으로 들어왔을 때'를 언급하며 비판적 시각을 이어갔다.
 
"한달 전 뉴타운 건설에 열광했던 집단이 갑자기 촛불 속에 자신을 불태울 수 있을까? 한국정치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거리의 정치가 순간 잦아들면서 일상으로 대중들이 돌아갈 때, 시민사회의 '풀뿌리 보수주의'는 다시 강력한 흡인력을 보이며 대중을 빨아들였다. 이 점에서 촛불로 한국 시민사회의 풀뿌리 보수주의가 변화했다고 판단한 것은 경솔한 판단이다."
 
심지어 김 박사는 "(2002년 촛불에 이어) 2008년 촛불에도 '민족주의'는 지속적으로 존재하며 힘을 발휘하고 있다"며 이를 "민족적 자존심에 기초한 멘탈리티의 재생"이라고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촛불 독자성은 강화되고, 사회운동 영향력은 약해져"
 
그동안 미시사의 관점에서 사회운동을 연구해온 김원 박사는 11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만나서도 "촛불시위를 주도한 중고생들을 '촛불세대'로 규정하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촛불시위의 양상·분위기·아우라가 과거 거리정치와는 분별되는 측면이 있다. 가족단위로 촛불시위에 나오는 경우가 많지 않았나? 전선을 쳐놓고 미느냐 밀리느냐는 문제로 치환되지 않고 잔치 혹은 페스티벌 성격이 상당부분 더해졌다.
 
중고생들이 인터넷 등을 통해 초기에 주도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이들은 더 두고 봐야 한다. 세대라기보다는 광우병 문제와 자신의 교육현실이 겹치고, 문자세대와는 다른 인터넷세대의 감수성이 결합돼 초기에 적극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김 박사는 중고생들의 촛불시위 참여 양상이 기성세대에게 충격을 주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정치에 무관심하고, 신자유주의적·시장주의적 교육에 복종하는 애들로만 알았는데 스스로 의사표현을 하는 것이 기성세대에게는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이들이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사유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성찰한 것이다."
 
이어 김 박사는 민족주의의 재현이라는 '촛불의 낡음'에 대비되는 '촛불의 새로움'을 이렇게 설명했다.
 
"사회운동의 영향력이 더욱 더 약해졌다. 2002년 촛불시위 때는 사회운동이 한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2008년 촛불시위 현장에는 대중들이 자발적으로 깃발을 만들어 나왔다. 거리정치에 대한 사회운동의 영향력이 퇴조한 것이다. 2002년과 대비했을 때 가장 눈에 띄는 점이다."
 
즉 "촛불의 독자성은 한층 더 강화되고 사회운동의 무능력함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김 박사는 "이는 2002년 촛불을 경험하면서 운동진영이 학습효과를 가진 결과이기도 하다"고 분석했다. 
 
"더 이상 깃발을 내세워 일방통행적인 주장을 관철하는 것이 대중운동으로 전화하는 데 근본적 한계가 있음을 자각한 것이다. 오히려 대중의 바다에 뛰어 들어가 거기서 토론하고 결정하는 것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새로운 운동의 가능성, 정치적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진보정당 실험할 게 더 남아있나"
  
또한 김 박사는 "사회운동과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이 촛불시위로 분출됐다"며 촛불시위가 한국사회에 '두 가지 성찰'을 가져다 주었다고 말했다.
 
 "하나는 더 이상 한국사회의 변화는 기존의 제도화된 정당이나 정당정치를 통해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촛불은 촛불이고 제도정치가 시민사회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앞으로 한국사회의 변화는 촛불시위든 거리정치든 대중지성이든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질 것이다.
 
 다른 하나는 더 이상 기존의 사회운동 패러다임을 고집했을 때 사회운동이 대중과 소통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대중의 호민관'이라는 패러다임으로는 대중을 이해할 수도 없고, 대중이 복무할 수 있는 언어공간도 확보할 수 없고, 그들을 사회적·정치적 변화의 장으로 끌어올 수도 없을 것이다. 이제 사회운동은 대중의 호민관으로서 역할을 포기해야 할 상황이다. 사회운동 활동가들도 이번 촛불시위에서 그런 점을 학습했다고 본다." 
 
이런 분석의 연장선상에서 김 박사는 최근 촛불논쟁의 단초를 제공한 최장집 전 고려대 교수의 '대의제 민주주의론'과 관련 "현상 유지적인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최장집 선생이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최대치는 친노동자정당의 집권인 것 같다. 국가권력이나 정부행태의 변화·집권 등을 통해서만 좀더 풍부한 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친노동자정당의 집권을 돕는 시간에 상상력을 발휘해 다른 다양한 가능성을 사회 각 부분에서 추진하는 게 (새로운)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대의제 민주주의는 대중의 판단과도 부딪친다. 대중들이 투표와 선거에 참여해 자신의 이익을 반영할 수 있느냐?"
 
이 대목에서 김 박사는 "정당정치는 대안으로 쓸 수 있는 카드가 아니다"라며 '진보정당 무용론' 혹은 '정당정치 무용론'으로 비칠 수 있는 도전적인 주장을 내놓았다. 이미 "촛불집회에 대한 많은 해석들을 보면, 진보정당과 노동운동이 필요없는 이론들"(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작년이 87년이 20년 되는 해였다. 좋은 정당, 진보정당의 실험을 더 할 게 남았나? 더 이상 거기에 목을 매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파산 선고까지는 아니더라도 분명히 한계가 있다는 것을 경험하지 않았나? 대중들이 자신들의 일상적 문제를 자기문제로 표출하기에는 정당은 너무 낡았다. 그런 것들이 명백한데 계속 (진보)정당에 목을 매야 하느냐? (진보) 전당이 대안이라고 얘기해야 하느냐?"
 
이어 김 박사는 "대중의 우발성과 예측불가능성이 한국정치를 관통하는 특징이 아닌가 싶다"며 "한국사회에서는 여전히 아래로부터 대중투쟁에 근거했을 때 형식적 민주주의가 실질적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계기가 마련된다"고 주장했다.
 
김 박사는 "대중의 우발성과 예측불가능성을 제도정치로 통제할 때 민주주의가 공고화된다는 주장은 현상유지적이고 보수적"이라며 거듭 '최장집 사단'의 견해를 비판했다. 
 
"대공장 남성 정규직 중심의 진보정당 노선을 재검토해야"
 
김 박사의 도전적인 주장은 '진보정당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핵심사업장인 대공장 노조  조합원들은 이랜드 투쟁은 물론이고 촛불시위에도 관심이 없다. 현재 노동운동의 상태가 이러하기 때문에 민주노조운동이 얼마나 생명력을 갖고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공장 정규직 (남성)노동자들은 비정규직·여성·실업 등의 문제를 수수방관하고 있다. 진보정당은 대공장 남성 생산직 노동자를 주요한 조직대상으로 하는 현재의 정당운동의 패러다임을 재검토해야 한다. 노조운동이 지역·산업·계층을 달리하는 소수자와의 연대를 통해 사회적 변화를 꾀해야 한다."
 
김 박사는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의 생산직 노동자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이들의 지지가 취약하기 그지없다"며 '지지층 외연의 확장'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진보정당 원내 진입) 초기에는 '거대한 소수'를 운운했지만 지금은 지지기반이 얇아졌고 노동자층의 적극 지지도 사라졌다. 그래서 기존 기지층의 외연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촛불에서 제기된 이슈들을 중심으로 지구당 차원이든 지역투쟁 사례를 통해 촛불시위에 참여한 다양한 층들을 지지층으로 흡수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밑으로부터 지지층을 확산하고, 정당의 일상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채널과 소통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그런 작업이 사회운동과 진보정당 양쪽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특히 김 박사는 "지역에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풀뿌리 보수주의를 깨지 않으면 진보정치를 할 수 없다"며 "수도권이든 비수도권이든 아래로부터 풀뿌리 보수주의를 일상에서 깨는 노력과 실험을 하지 않는다면 보수가 주도하는 한국적 정당체제 속에서 진보정당이 장기적인 생존력을 갖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박사는 "촛불이 잦아들고 다시 일상이 조성됐을 때 촛불을 지지한 사람들은 자기 일상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와 관련, 그는 새로운 대안으로 검토할 만한 사례로 '이랜드 투쟁'을 언급했다.
 
"이랜드 파업이라는 비정규직 파업이 지역을 중심으로 소비자·노조·정당·사회운동과 동시에 결합됐다. 그래서 이랜드 투쟁은 지역화·집중화·전국화될 수 있었다. 이랜드 투쟁을 거치면서 '시민·비정규직·소수자 등의 일상적 정치활동을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사회운동 활동가들이 깨달은 것 같다. 촛불도 그런 활동의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 박사는 "촛불만 따라다닐 것이 아니라 촛불이 던진 변화를 읽으면서 대중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정치활동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런 게 없는 상태에서 매주 촛불시위 하러 나가는 게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꼬집었다.
 
"촛불은 대중투쟁의 정형화된 양식으로 자리잡았다. 이명박 정권이 악수를 두면 촛불시위는 5년 내내 계속될 수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자기 생각을 사회운동과 결합하고 의식을 끌어올릴 때 (촛불시위처럼) 사회운동을 강화시키는 대중투쟁이 제자리를 잡을 수 있다. 기존의 사고를 바꾸고 대중과 소통하기 위한 실험을 이명박 정권 내내 계속 한다면 '진지를 갖는 사회운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원 박사는 서강대 사학과를 졸업한 뒤 동대학 정치외교학과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성공회대 사회문화연구원 연구교수,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편집위원, 대안지식연구회 연구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 한국 대학생의 하위문화와 대중정치>, <여공 1970, 그녀들의 반역사>(김진균학술상 수상작) 등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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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반자본주의


反자본주의
사이먼 토미 지음, 정해영 옮김 / 유토피아


반자본주의라는 제목의, 다소 초정세적인 자본주의 반대운동을 다룰 것같은 이 책은 그러나 최근의 정세에서 반자본주의라는 정치적 지향이 가지는 의미를 소개한다. 20세기 후반부터 다시 활성화된 반자본주의 정치적 실천들을 개괄한다. 초보자를 위한 안내서라고 하지만, 정작 정세에 둔감한 고참 활동가들에게도 매우매우 유용한 책이다.

이 책은 현재의 반자본주의는 반신자유주의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보다 내용을 정확히 반영하는 책의 제목은 '반신자유주의'일 수도 있다.) 이 점은 중요한데, 왜냐하면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대중운동은 이전 시기의 반자본주의 운동으로서 좌파 운동을 한편으로는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특징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운동들에, 하나의 새로운 경향들이 활성화된다.

저자는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신자유주의가 가지는 의미를 설명하는 데서 시작한다. 특히 두 가지 관점이 눈에 띄는데, 하나는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 내에서 모순으로 작동하던 하나의 경향-시장의 절대적 우위를 관철하려는 시도라는 관점. 신자유주의를 자본주의 내부의 모순의 작동으로 제기하는 셈이다. 또 하나는, 신자유주의가 정치의 종말(혹은 후쿠야마식으로 역사의 종말)을 주장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것은 곧이어, 신자유주의자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정치 양식이 출현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정치'에 대해서 사고할 수 있게 해준다.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시애틀 전투로부터 눈에 띄게 전면화된 반자본주의/반세계화운동에서 사파티스타, 세계사회포럼으로 이어지는 운동의 출현과 성장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 이 운동들 속에 어떠한 경향이 있는지, 그 지형을 보여준다.

그것을 크게 개혁주의-근본주의로 나누고 그 아래의 여러 경향을 소개한다. 개혁주의 진영에는 이 운동 스팩트럼의 가장 오른쪽에 있는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자유주의적 개입주의, 미국에서는 민주당식의 국제주의=개입주의니까.)에서부터 '민족주의적 국제주의'로서의 사민주의, 전지구적 사민주의 등이 소개된다. 근본주의에는 구좌파적 마르크스주의에서부터 자율주의, 평의회 공산주의, '비-정통'급진주의 조류들, 아나키즘, 급진적 환경주의 등이 소개된다.

다만 이 과정에서 다소 거친 분석은 이러한 분류기준을 횡단하는 사고와 입장들을 포착하지 못한다는 점이 단점이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주의 좌파들이 모두 당을 전제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대안세계화라는 논리를 저자는 초국적 시민권+세계정부라는 구도의 지구적 사민주의의 것으로 설명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사민주의와 무관하게(그러나 초민족적 시민권에 대해서는 긍정할 것이지만) 아래로부터의 세계화, 대안을 세계화하는 국제주의적인 근본주의 운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2003년에 나온 이 책에 붙인 2007년, 한국어판 후기에서는 일관되게 '대안세계화운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지구적 시민성'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언급한다.)

별도로 강조되는 것은 사파티스타. 사파티스타는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가 나타났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열광한다.) 저자는 사파티즘가 탈이데올로기 정치를 구현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어떤 거대담론을 운동의 지침으로 삼는다기 보다는 대중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특히 이 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제도들이 약속해왔지만 언제나 배신해왔던 대중의 실질적인 정치참여를 가능하게 하고 '자유민주주의'와 다른 판본의-그러나 더 민주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한다. (이 점은 '소수자'-정치의 논리와도 이어진다. 이 개념에 대해서는 아래  문단 참고. 그러나 저자도 지적하고 있듯이 제도화를 배제하는 것이 능사는 아닌데, 제도화없이는 오히려 목소리 큰 일부가 득세하는 등 비민주적인 상황이 초래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저자는 현재의 반자본주의/반세계화 운동을 "운동들의 운동"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포괄하는 범위가 매우 넓으며 통일적인 이데올로기-강령에 기초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다양한 운동들이 만나고 상호 작용하면서 자신들의 독자적인 존재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운동을 밀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구 좌파 운동과 다르게 현재의 반자본부의/반세계화운동이 당적 구조를 지향하지 않는다는 점, 각각의 운동을 국가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단일한 정치 프로그램에 종속시키는 것을 거부한다는 특징으로 이어진다. (물론 모두가 그런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다. 따라서 운동의 단층선이 발생하는데, 저자는 다소 거칠게 이것을 ['다수자'-정치]의 논리, ['소수자'-정치]의 논리로 구분한다.)

정치의 위기와 새로운 정치의 부활에 대한 지적은 눈여겨볼만하다. 저자는 각국에서 제도정치가 위기에 처하는 상황을 분석하면서 이는 자유민주주의의 위기라고 지적한다.(월러스틴의 지적과 통하는 부분일 텐데, 여기서 저자는 새로운 대항정치로 더 나간다.) 이것은 신자유주의자들이 자신의 승리라고 간주했던 이데올로기의 위기와 관련이 있다. 68년 이후, 그리고 구 사회주의권이 붕괴 이후 저항정치의 공백 속에서 대중들은 새로운 정치─능동적인 직접행동을 중심으로하는─을 재발견한다.
 
이런 지점들 요약해서 저자는 한국어판 후기(2007)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용해보자.
"새로이 거듭난 반자본주의 운동이란, 목소리와 현전의 정치이자 대화와 소통의 정치이고, 저마다의 꿈을 나누며 구체화하는 정치인 셈이다. 그것은 민주주의라는 낡은 간판을 달고 있지만 전에 없이 새로운 유형의 정치를 펼치고 있다. 말하자면 대표와 엘리트들의 민주주의가 아닌, 다채로운 무늬를 지닌 민중들의 민주의의다."

이렇게 '성장중인' 반자본주의/반세계화 운동은 성공할 수 있을까? 혹은 몇번의 시위 이외에는 너무 힘이 미약할 뿐인 것은 아닌가? 저자는 전자의 질문에는 답변할 수 없지만, 후자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말한다. 이미 신자유주의와 함께 역사가 끝났다는 주장, '대안은 없다'는 주장들이 이 운동의 과정에서 시효만료되었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도 몰락 중이다. 더 많은 변화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

* 그런데 이 책의 말미에 왜 이재영(민주노동당 전 정책실장)씨의 글("자본주의를 넘어서-한국에서의 도전")이 실렸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재영의 글은 결론이 없는데, 내가 보기에 그것은 기껏해야 현재 민주노동당의 좌충우돌과 혼란을 변명하는 논리가 될 뿐이다.
 어찌보면 <反자본주의>의 저자인 사이먼 토미도 결론이 없는 것이 아니냐고? 아니다. 오히려 신자유주의 반대 속에서 대안세계화운동으로 성장한 반자본주의 운동의 고유한 양식-성격과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지적한다. 그것은 논쟁도, 운동의 새로운 양식-성격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민주노동당 내의 상황과는 전혀 다른 추상수준의 문제인 것이다. 한국에서의 반자본주의, 대안세계화운동은 민주노동당을 골백번을 들여다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동당을 대상으로 한 글이 그런 제목을 달고 들어가다니 참.
이재영의 글은 레디앙에도 실려있다. :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5923
 
* 글을 쓰고 나서 보니, 독일에서 아셈과 G8회의에 반대하는 투쟁이 전개되고 있다는 소식이 참세상 블로그에 올라왔다. 책의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매일매일, 어느곳에서나, 세상이 예전과는 다르게 돌아가는 흐름이 지하에서부터 움직인다.
 [속보] 함부르크 아셈 반대! G8반대! 6000명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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