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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술은 옛가죽부대에

옛술은 옛가죽부대에

 

1. 오는사람 막지않고 가는사람 잡지말자

 

어떤 모임에도 당장 해야할 일이 있고,  긴호흡으로 준비해야하는 일이 있다. 일반 참여자들은 요구되는 일을 감당하며 수행하고 그속에서 보람을 얻으면 된다. 하지만 모임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은 그것외에 할일이 있다. 그 하나는 모임의 중,장기적 길을 잡아나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모임의 구성원을 새로 만드는일이다. 새로 신입회원들을 받는것은 물론 기존의 회원들을 모임의 중심으로 키우는것도 필요하다.

처음 독립진료소를 시작할땐 한의대생 반, 한의사 반이었다. 젊은 학생들이 접수,안내도 하고 진료보조도 하고 북적북적하였다. 학생대상으로 장애인권교육도 하고 앞으로 이 친구들이 졸업하고 한의사가 되면 활동이 더 활발해지겠지하는 기대도 많았다. 몇년이 지나고 그때 함께했던 친구들이 다 졸업을 하여 한의사가 되었다. 올해 그나마 하나 있던 후배마저 졸업을 하니 위기의식이 새삼 들었다.  학생들 만나는 일은 한동안 쉬었지만, 다시 학교로 가기로 했다. 같이 학교앞에서 이야기도 하고, 산에도 같이 가고,, 어쩌다 만나는 후배들마다 꼭 독립진료소에 한번 오라고 요청을 했다. 반응이 좋았다. 아 아직 내가 학생들에게 받아들여지네,,, 아직 젊구만 하고 속으로 좋아했다.  한데 막상 독립진료소를 여는날 아무도 안온다. 2-3명은 꼭 오기로 했고 많이오면 5-6명도 올것같았다. 혹시 10명이상와서 제대로 못챙겨주면 어쩌나하는 걱정도 했다. 하지만 아무도 안오고, 안온다는 문자한통 없다. 완전히 잘못 판단한것이다. 그 친구들은 한참위의 선배,아저씨가 간곡히 부탁을 하니 차마 드러내서 거절은 못하고 완곡히 돌려서 힘들겠다는 응답을 한것이다.

 

 평소에 좋아하던 말이 있다.

"오는사람 막지않고, 가는사람 잡지말자.  하지 않으려면, 하겠다는 사람 발목은 잡지마라."

물론 가만히 있는다고 사람이 오진 않는다. 억지로 끌고오진 않더라도 몇번이건 찾아가서 우리가 하는일을 알려야 한다. 사실 이러한 일들은 집단적인 열정과 진정성이 있으면 저절로 되는일이다. 다만 어떤 모임이든,일이든 에너지가 늘 넘쳐나지는 않는다. 우리가 평소 준비해야하는것은 잘될때에 이를 어떻게 누릴것인가가 아니라 에너지가 없어지고 힘들어질때 어떻게 대처할것인가? 이다.

 

2. 옛술은 옛가죽부대에

 

새술은 새부대에 담아야한다는 유명한 말씀이 있다.

  "또 낡은 가죽부대에 새 포도주를 넣는 사람도 없다.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다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마가복음 4장)

늘 새롭게 변화해야한다는 말씀이다. 하지만 가끔은 이 말씀이 버겁고 힘겹다. 더 이상 새회원이 들어오지 않는 오래된 모임은 어떻게 할것인가? 정신적으로 새롭다고 우기면 되는것인가?

그러는중 우연히 어떤분이 생일선물로 보내주신 도마복음 해설서  '또 다른예수'에 나오는 도마복음구절을 읽었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넣는자가 없나니,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가죽부대를 터뜨리게 되리라. 묵은 포도주를 새 가죽부대에 넣는자가 없나니,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상할것임이라.”(도마복음 47절)

아하~~ 무릎을 탁 치었다. 무언가 빠져있는것이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영어판을 보니 새 포도주는 new wine 묵은 포도주는 old wine이다. 낡은 가죽부대는 old  wineskin이다. 아마 포도주를 담는 가죽부대가 따로 있었는가보다.  영어도 잘못하며 굳이 영어판을 찾아본것은 낡은 가죽부대가 웬지 마음에 탁 막혀서이다.  '낡은 가죽부대'보다 '옛 가죽부대'로 하는게 더 나은것 같다.

 

사실 필요한것은 그릇이 아니라 그 안의 내용물이다. 조직,단체보단 그 안에 모여있는 한사람,한사람이 소중할것이다. 하지만 내용물도 그릇이 없으면 계속 존재할 수가 없다. 물이 없이 물고기가 살 수 없듯이, 인간은 모임(공동체,조직,가족등등)속에서 살아간다.  새로운 열정과 기개가 있는 사람들은 그러한 변화를 만들어가는 진취적인 모임을 만들고,, 오래된 경험과 지혜를 가진 사람들은 포근하고 따뜻한 모임을 만들며 살아가면 될것 같다.

 

3.  수납장을 들여놓으며

 

지난주 독립진료소에는 그동안 숙원해왔던 진료용품 수납장을 들여놓았다. 아주 기분이 좋았다. 그동안 독립진료소의 의료장비,비품,소모품,의약품등 많은 의료용품들을 여러 박스에 넣어서 보관해왔는데,, 이번에 이것들을 하나로 모아서 싹 정리했다. 기분이 좋다. 그동안 나름 깔금하게 정리하려고 노력은 했지만 여기저기 분산되어 놓여 있는 진료용품들이 늘 마음에 걸렸다. 가능한 빨리 깨끗하게 정리해야지 마음은 먹고 있었지만, 그게 그리 쉬운일은 아니다. 의료팀간의 의견조정도 어려운것이지만, 가뜩이나 비좁은 공간에 적당한 자리를 만드는 것도 쉽지않다. 더구나 그동안 담당하는사람이 여러번 바뀌며 담당자스타일에 맞추어 비품이나,의약품이 배치되어 이를 정돈한다는것이 쉽지는 않다. 물론 일로만 따지면 마음먹으면 금방 할수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중요한것은 함께 의견을 모아나가서 같이 결정하는과정이다. 그간의 경험속에서 수없이 확인한것이지만, 같이 의견을 모아 결정하지 않고 질러가면 당장은 능률적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금방 탈이나게된다.

 

독립진료소는 들풀,노들,발바닥등 여러단체가 같이 운영한다. 여러단체가 함께 운영하니 몇년간의 함께해온 신뢰가 있다해도 서로간 '다름'은 언제나 존재한다. 다른 존재들이 함께 일을 해나갈 때 중요한것은 서로간에 솔직하게 상황을 공유하고, 일을 해나가며 상대를 수단으로 만들지 않는것이다. 그런면에서 우리 독립진료소는 여러 '좌충우돌''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잘 헤쳐나왔다.  물론 앞으로 지금까지보다 더 힘겨운 어려움이 있을것을 안다. 그럴수록 새술/새가죽부대와 옛술/옛가죽부대가 잘 어우려져 신명나는 잔치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  독립진료소는 노들장애인야학,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한방의료활동 들풀이 함께 운영하는 장애인대상  진료소 이름입니다. 대학로 노들센터에서 격주로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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