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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 - 박영근

결핍
             박영근

1
너무 뜨겁다
내 몸은 온통 결핍의 자리

내가 살고 있는 골목길
봄날 대낮의 시간에
허공에 터져오르는 백목련
눈부신 흰빛을 바라본다

지상의 그늘을 딛고
타는듯 하늘을 빨아들이고 있는
꽃의 환한 자궁

저 밝은 꽃숭어리들은
겨우내 목말랐던 나무의 몸이
제 살을 찢고 피워낸
뜨거운 숨덩어리들

나는 안다, 빈방의 허기와
욕정과 구겨진
원고지와 바람벽에
지친 형광등 불빛에 말라비틀어져
툭 떨어지는
꽃대가리, 결핍은
견딜 수 없는 비등점에서
주검으로 타버리는 것

그리고 갈증으로 허공에 토해놓은 욕망의 흰빛
비와 바람에 이내 사라져버릴 황홀한 꽃자리
그 한없는 반복

너무 뜨겁다
불탄 마음의 자리에 백목련 저 흰빛의
불안한 꿈

한낮이 가고
흰빛도 스러진뒤
나는 나에게 쓸 것이다

결핍은 욕망의 감옥이라는 말

2
나는 저 꽃가지 위에 새 한 마리를 올려놓는다

날개짓도
울음소리도 잊어버린,
저 몸속에
타고 있는 불덩어리

대낮 뜨거운 하늘길에
눈이 멀고 있는

홀로 미쳐가고 있는
맹목조(盲目鳥) 한 마리

* 박영근 유고시집 '별자리에 누워 흘러가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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