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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
박영근
1
너무 뜨겁다
내 몸은 온통 결핍의 자리
내가 살고 있는 골목길
봄날 대낮의 시간에
허공에 터져오르는 백목련
눈부신 흰빛을 바라본다
지상의 그늘을 딛고
타는듯 하늘을 빨아들이고 있는
꽃의 환한 자궁
저 밝은 꽃숭어리들은
겨우내 목말랐던 나무의 몸이
제 살을 찢고 피워낸
뜨거운 숨덩어리들
나는 안다, 빈방의 허기와
욕정과 구겨진
원고지와 바람벽에
지친 형광등 불빛에 말라비틀어져
툭 떨어지는
꽃대가리, 결핍은
견딜 수 없는 비등점에서
주검으로 타버리는 것
그리고 갈증으로 허공에 토해놓은 욕망의 흰빛
비와 바람에 이내 사라져버릴 황홀한 꽃자리
그 한없는 반복
너무 뜨겁다
불탄 마음의 자리에 백목련 저 흰빛의
불안한 꿈
한낮이 가고
흰빛도 스러진뒤
나는 나에게 쓸 것이다
결핍은 욕망의 감옥이라는 말
2
나는 저 꽃가지 위에 새 한 마리를 올려놓는다
날개짓도
울음소리도 잊어버린,
저 몸속에
타고 있는 불덩어리
대낮 뜨거운 하늘길에
눈이 멀고 있는
홀로 미쳐가고 있는
맹목조(盲目鳥) 한 마리
* 박영근 유고시집 '별자리에 누워 흘러가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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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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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근 시인은 '취업공고판앞에서'라는 시를 80년대 발표한 대표적인 노동자시인중의 한사람입니다. 그런데 얼마전 서점에서 시집을 훑어보고있는데 그의 유고시집이 나와 있더군요. 아 돌아가셨구나.. 생각을 하고 연보를 보니 58년 생입니다. 06년에 작고했으니 50년을 채우지 못하고 가셨군요.'결핍'이라는 제목의 이 시는 04년도 발표작입니다.
'허기', '욕정', '갈증'이라는 본능적욕망이 '빈방', '골목길','구겨진 원고지','지친 형광등'이라는 삶의 상황속에서 생생하게 드러납니다. 이를 시인은 '내몸은 온통 결핍의 자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핍은 무언가 부족하다는 말입니다. 내몸에 물이부족하면 목이마를것이고, 영양분이 부족하면 배가고플것입니다. 다른존재와의 연이 부족하면 외로울것이구요..
즉 몸의 결핍은 욕망의 원인이 됩니다. 이는 무언가로 충족되야 할텐데, 상황은 이를 채우지 못합니다. (생활의)'결핍은 욕망의 감옥'이 되었습니다.
두번째 부분을 보죠.
"나는 저 꽃가지 위에 새 한 마리를 올려놓는다
날개짓도
울음소리도 잊어버린,
저 몸속에
타고 있는 불덩어리
대낮 뜨거운 하늘길에
눈이 멀고 있는
홀로 미쳐가고 있는
맹목조(盲目鳥) 한 마리"
시인이 솔직하게 자신의 모습을 이야기합니다.
너무하다할 정도로 속모습을 다 드러내고 있어 무어라 덧붙일 말이 없네요
가슴이 저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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