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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밥 먹기

오늘 일이 있어서

시골에 내려 갔다 왔습니다.

 

"가만 있어봐, 말 나온 김에 전화 한 번 해보자.."

 

어머니께서

두 달 전에 애 낳은 막내 동생의 부인,

그러니까 제수씨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지금 쯤이면 한참 힘들 때인데

역시나, 오후 3시가 넘었는데도

애가 안 자서 점심도 못 먹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정말 많이 힘들었습니다.

 

벌써 미루가 6개월째라고,

2개월 쯤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희한하게 잘 생각이 안 나지만

그래도 그 '느낌'은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아직 밥도 못 먹었단 얘기를 들으니까

몸이 그때 일을 기억합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애 때문에 밥 시간을 놓치는 경우는 없습니다.

 

밤 9시 넘어서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집에 들어서는데,

주선생님 얼굴이 많이 힘들어 보입니다.

 

"오늘 힘들었지...내가 돼지머리랑, 홍어회랑 얻어왔는데 먹자~"

 

주선생님은

오늘 저녁에 뭘 먹었는지

그걸 먹으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저한테 열심히 이야기합니다.

 

"나갔다 들어와서 미루 재우고 짜장면 시켰거든...?

근데 40분이 지나도 안 오는 거야..."

 

미루가 자는 동안 저녁을 해결하려던

주선생님의 계획은 짜장면이 50분만에 오고

미루는 그 전에 깨는 바람에 수포로 돌아갔답니다.

 

"처음에 시킬려고 보니까

우동도 먹고 싶고, 짜장면도 먹고 싶은거야..

그래서 고민하다가 우짜면을 시켰어...."

 

"어.. 그랬어..."

 

"중국집에 전화를 했는데...아저씨 우짜면이요~그러니까"

 

전화 저쪽에서 "볶짜면이요?" 이러더랍니다.

 

"아니, 우짜면이요.." "볶짜면이요?"

 

"사람들이 우짜면은 잘 안 시키나봐...암튼, 난 우짜면을 시켰지..

근데 미루 젖 다 먹이고 나서 짜장면부터 먹을려고 하니까 다 불어 터진 거야..."

 

진짜 울고 싶더랍니다.

저녁 시간은 한참 지나서 배는 고프고,

근데 짜장면은 불어터지고.

 

"그래서, 우동을 한 번 먹었는데..이건 완전히 진짜..면발이 풀어져버린거야.."

 

눈물이 글썽입니다.

믿었던 우동은 더 했으니, 얼마나 상심했을까 싶습니다.

그냥 볶짜면 시키지...

 

"짜장면 먹다가...너무 불어서 우동은 좀 낫겠지 하고 먹었는데 이건 더 불고..

그래서 좀 덜 불은 짜장면이라도 먹어야겠다 하면서 다시 짜장면을..."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합니다.

입이 일그러졌습니다.

씹다만 돼지머리가 밖으로 나올려고 합니다.

 

서러움이 복받쳐 오르는 모습.

웃겨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주선생님은 

짜장면은 다 먹었답니다.

 

애를 옆에 두고 혼자 밥 먹는 건

6개월이 됐어도 여전히 힘든 일입니다.

 

오늘 이것저것 얻어 오길 정말 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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