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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

처음 미루를 목욕시킬 때는

굉장히 긴장했었습니다.

 

혹시 떨어뜨리면 어떡할까

손에서 놓쳐서 물 속에 빠뜨리면 어떡할까 등등

안 좋은 상상은 다 했었습니다.

 

처음 목욕시키던 날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좀 더웠기 때문에

큰 아기 욕조에 시원한 물을 잔뜩 받아 놓고

책에서 본대로 일단은

물 속에 넣기 전에 머리 감기고 세수도 시켰습니다.

 

미루는 진작부터 울기 시작합니다.

 

'애들은 물을 좋아한다고 했으니까

물 속에 넣으면 그때부턴 안 울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꿋꿋하게 얼굴, 머리를 씻긴 다음

물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더 웁니다. 

 

욕조에는 물이 너무 많아

미루의 움직임 때문에 생긴 파도가

다시 미루를 덮칩니다.

몸이 휘청휘청 거리고,

파도 밖의 두 어른도 덩달아 휘청휘청 거렸습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참 많이 나아졌습니다.

 

처음엔 물 속에 들어간 다음에 옷을 벗겼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벗긴 옷을 배 위에다 올려놔줬습니다.

안 그러면 불안해져서 빽빽 울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냥 처음부터 옷을 홀라당 벗겨서 들고 들어갑니다.

 

처음엔 뽄때나게 애기 욕조에 시켰지만 

지금은 2000원 짜리 대야 두개를 사서

하나는 본 목욕, 하나는 헹굼용으로 씁니다.

미루도 이걸 더 편해라 합니다.

 

맨 처음 목욕시켰을 때 마구 울었던 건

미루 덥다고 '시원한 물'을 넣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애들은 38~40도 사이의 온도를 좋아한답니다.

온도계를 사고, 물 온도를 정확히 맞춰주니까

그때부터 미루는 결코 울지 않습니다.

 

38도에는 눈을 말똥말똥 뜨고 목욕을 즐깁니다.

 

39도에는 미루의 표정 옆에 말풍선을 달아준다면

"어...시원하다.."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40도가 되면, 눈을 있는대로 크게 뜨고 "후..후..."합니다.

우리가 뜨거운 탕 속에 들어갈 때 내는 소리랑 똑같습니다.

이때는 바로 몸을 완전히 뒤로 젖히는데

사우나에서 아저씨들이 이러는 거 많이 봤습니다.

 

그런데 37도에 집어 넣으면

미루는 그 미묘한 차이를 알아차리고 바로 울기 시작합니다. 

굉장히 정교한 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귀신 같습니다.

 

주선생님과 저는 이런 미루를 보고

이렇게 얘기해줍니다.

 

"민감하기는~~"

 

지난 주엔 전반적으로 순탄해지던 미루의 목욕에

최대의 난관이 닥쳤습니다.

 

너무 더워서 물 속에 넣다 빼자면서

대야 하나에만 물을 받아서 씻기는데

미루가 느닷없이 막 웁니다.

 

곧이어, 물에 뭐가 둥둥 뜹니다.

물 속에서 똥을 싼 겁니다.

 

"으..어떡해, 어떡해..빨리 씻기고 나가자"

 

마지막으로 몇 번만 끼얹어주면 되는 상황이어서

우리는 손으로 바가지를 만들어서 

미루 목과 가슴에 물을 퍼올렸습니다.

 

마음이 급했던 모양입니다. 

주선생님이 끼얹은 물이 

미루 입속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으악~어떡해애애~~"

너무 너무 당황한 저는 머리 속이 하얘졌습니다.

미루를 뒤집어서 등을 쳐주고 난리가 났습니다.

똥물을 먹으면 십중팔구 장염에 걸리는데 큰일 났습니다.

 

그러나 주선생님

예상치 못했던 과학적인 분석을 내놓으며 저를 안심시켰습니다.

 

"미루가 울고 있었잖아? 근데 울 때는 기도가 열려..

그 상황에서 입으로 물이 넘어갔으면 그때는 먹는 걸 걱정하는 게 아니라

기도로 넘어가서 폐로 가는 걸 걱정해야 해..

근데 우리가 미루를 곧바로 뒤집었고, 미루가 켁켁 거렸잖아?

그러니까 폐에까지는 그 물이 안 갔다고 봐야지..걱정마 장염 걸릴 일은 없을 거야..."

 

결과적으로 주선생님의 분석은 맞았습니다.

미루한테는 아무일도 없었습니다.

 

아..그나저나

우리의 미루

요즘 못 먹을 걸 너무 많이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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