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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조있는 음식

재료는 이것 저것 있는데,

뭔가 딱히 할 음식이 생각 안 나서 

샐러드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감자 삶아 놓은 것

고구마 쪄놓은 것을 으깨었습니다...사실은 짓뭉갰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오이를 좀 길게 네모나게 잘라서 올려놓았다가

무슨 기분이 들었는지, 뭉갠 감자, 고구마와 마구 섞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새로운 샐러드가 담긴 접시를

자랑스럽게 식탁 위에 올려놓고, 그 옆에 소스를 가져다 놨습니다.

 

식사가 시작되고, 별 말없이 샐러드를 드시던 주선생님께서

드디어 입을 여셨습니다.

 

"감자, 고구마를 으깼는데 그 안에다 오이를 이런 식으로 짤라 넣으면 보기가 안 좋잖아."

 

"왠지 좀 균형이 안 맞는 것 같애, 그러니까 감자, 고구마를 한 웅큼씩 떼어서 손으로 둥글게 만들고 그 옆에 오이를 적당하게 얹어 놓은 다음 소스를 뿌려 놓으면 좀 더 격조 높은 음식이 되지 않을까?"

 

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냥 주는 대로 먹지, 쫌'

 

그리고, 이 생각은 곧바로 제 입을 통해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응, 알았어"

 

그 이후로 저는 두부조림을 해도,

그냥 접시에 마구잡이로 안 올려놓고 원을 그려가며 놓습니다.

 

샐러드를 만들어도 양배추에는 방울토마토를 올려놔야 뭔가 완성도가 높다면서 집착합니다.

 

먹으면 어차피 배 속에서 섞이긴 마찬가지고

 

단백질은 단백질대로, 탄수화물은 탄수화물대로 그리고 지방은 지방대로

각자 알아서 소화흡수될텐데 아무튼 이런 것에 자꾸 신경이 쓰입니다.

 

하긴 내용을 정확히 표현하는 이름, 형식, 겉모습..이런 게 중요하기도 합니다.

 

몇 달 전에 프랑스 정부가

26살 미만인 사람들은 2년 내에서 마음대로 자를 수 있도록 하는

최초고용계약법안을 만들겠다고 하자

 

학생들이랑 노동자들이

'크리넥스 법안 반대'를 외치면서 싸워

철회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그 법은 자신들을

한번 쓰고 버리는 크리넥스로 취급한다는 뜻이었습니다.

 

한국 정부하고 열린우리당이 국회에 상정해서 계류 중인 비정규보호법안은

26살 미만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2년 내에 맘대로 자르는 내용도 있고

또 다른 내용도 포함해서 어쨌든 비정규직 양산하는 건데,

 

이름이 '보호법안'이라

사람들이 왜 빨리 처리 안 하나 궁금해 하고

이거 반대하는 민주노동당이나 사회단체사람들을 도리어 욕합니다.

 

아..뭐든 쉬운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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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

사람에겐 확실히 철학이 중요하고, 또 습관이 중요합니다.

 

사람마다 다 처지가 따르고

그래서 똑같은 일에도 반응은 제각각 입니다.

 

또 같은 사람이라도,

똑같은 일에 대해서 옛날이 다르고 지금이 다릅니다.

 

며칠전

햇볕이 아주 좋았던 날이 있었습니다.

 

장마철이라 습도도 높고 눅눅해서

매일매일이 별로 유쾌하지 않았었는데

오랜 만에 볕이 쬐니까 기분이 꽤 좋아졌었습니다.

 

옛날에 햇볕이 좋은 날이면

저는 항상 이렇게 얘기했었습니다.

 

"이야, 오늘 같은 날 소풍 가면 딱 좋겠다"

 

물론, 제가 항상 그렇게 생각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 보다 훨씬 전에

한참 열혈 청년이었을 시절에는

날씨 같은 것에 일일이 반응하기에는

역사가 나에게 요구하는 바가 너무 창대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햇볕 좋은 날

두부 사러 가면서 저는 이렇게 혼잣말을 했습니다.

 

"어, 햇볕 좋네..빨리 가서 빨래 널어야지.."

 

2-3일쯤 비가 와서 빨래감은 넘치는데

빨아서 널어봐야 마르지도 않을 거고

 

벌써 며칠째 건조대에 그대로 걸려 있는 빨래도 많아서

골치가 아플려고 하는 참이어서

 

쫘..악 내려쬐는 햇볕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아...점점 주부가 되어 가는 느낌입니다.

 

대충대충 하는 것 보다는 이러는 편이 훨씬 좋을 것 같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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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뽀삐뽀 119'의 인생

요즘 젊은 엄마아빠들이면 다 산다는 삐뽀삐뽀 119

저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다시 생각해도 뿌듯한 일입니다. 

 

이 책을 선물 받고 처음에는 참 열심히 봤습니다.

 

이 책을 밑거름 삼아

애를 아무 탈 없이 잘 키우겠다는 의욕이 넘쳤습니다.

 

하지만

요새 이 책이 약간 찬밥입니다.

쇼파 옆에 고이 모셔졌던 책이

이제 여기저기 막 뒹굴어 다닙니다.

 

모유수유할 때 엄마의 자세를 완성시키는

발받침으로 가장 많이 쓰입니다.

 

한참 무관심한 후엔

재활용쓰레기 모아놓는 곳 근처에서 발견되기도 했었습니다.

 

 

물론, 두꺼운 책은 예로부터 다양한 용도로 쓰여왔습니다.

 

학교 다닐 때

대표적인 '두꺼운 책'이었던 '전과'는 학습참고서이기도 했지만

 

우리는 그걸 친구 머리 위에 올려놓고 때리면,

상상할 수 없는 충격이 친구 머리에 가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었습니다.

 

여기에는 분명 뭔가 심오한 물리학적 진실이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그 이상 뭘 더 생각하지는 않았고

 

우리는 쉬는 시간 마다

한손으로는 전과를 들고

또 한손은 불의의 공격을 막기 위해 머리 위에 얹고

친구를 쫓아 마구 뛰어다녔었습니다.

 

암튼, 삐뽀삐뽀119의 인생은

옛날 '전과'하고 조금 비슷해지고 있습니다.

제 인생하고 좀 비슷한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다가도 애가 조금만 이상하다 싶으면 어느새 제 손에는 그 책이 들려 있습니다.  

 

미루 땀띠가 좀 심해졌거나, 얼굴이 푸루둥둥 해졌거나, 똥 색깔이 예사롭지 않으면

우리는 다시 그 책을 폅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책을 봐도 잘 모르겠다면서 담주에 병원 가면 물어보자고 결론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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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 재우는 법 연구 2

애기 재우는 법을 부단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아직 완성 단계에는 다다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책에 있는대로 하는데 잘 안됩니다.

 

다양한 정보를 종합적으로 분석해서 방법을 찾아보자는 심정에서

인터넷을 검색해봤습니다.

 

'애기&재우는 법'

이렇게 검색했습니다.

 

여러가지 정보가 떴습니다.

 

애기 재우는 법하고 관계 없는 것들도 많았습니다.

그 중에는 '술 마시고 들어온 아버지 재우는 법'도 있었습니다.

 

애기 재우는 법과 관련해서는 대부분은

그냥 울리라는 것 보다는 울면 안아주라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대신 3개월까지만...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왜 3개월까지지?'

 

뒤에서 제가 갸우뚱하는 모습을 본 주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왜 3개월까진 줄 알아?"

무서운 독심술이었습니다.

 

저는 대답했습니다.

"모..몰라.."

 

3개월 이후 아이들의 심리에

특정한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저는 직감했습니다.

 

따라서 안아주는 것 보다는 다른 방법을 쓰는 것이

유아교육의 차원에서 바람직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또한 했습니다.

 

저는 차분하게 주선생님의 설명을 듣기로 맘먹었습니다.

 

 

"3개월 지나면 무거워서 못 안아줘~!"

 

.

.

.

 

저는 뭔가 크게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아이의 상태와 함께 키우는 사람의 상황도 매우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그러고 보니 새로 산 책에도,

 

산모는 아이에게 휘둘려서는 안되며 자기 시간을 가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니까 그 동안 애만 신경썼지 산모 신경을 많이 못썼습니다.

앞으로 주선생님한테도 좀 잘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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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 재우는 법 연구

낮에 우는 건 맑은 정신으로 어떻게든 견디겠지만

밤에 우는 건 견디기 힘듭니다.

 

그래서, 해가 지면

잠을 재우기 위한 전쟁이 시작됩니다.

 

수 없이 많은 시행착오 끝에 우리는

미루가 느닷없이 울음을 멈추는 두 가지 경우를 발견했습니다.

 

하나는 물티슈 겉봉지를 만질 때 나는 부스럭 소리이고

또 하나는 싱크대 물트는 소리입니다.

 

둘 중에서도 확실한 건 물트는 소리인데

그것도 그냥 틀면 안되고 아래에 대접을 받쳐놓고 물을 틀어야 합니다.

 

이걸로 며칠 해서 확실히 효과를 보고 있긴 한데

슬슬 이번 달 수도요금이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판에

매일 밤마다 10분, 20분씩 물을 틀어놓자니

돈이 그 물에 마구 쓸려 내려가는 기분입니다.

 

"애는 울려야 버릇이 안 나빠져~!" 우리 어머님 말씀입니다.

 

놀러 오신 큰 고모는

아예 미루에게 빳데루 자세를 시키고 머리를 누르면서 외칩니다.

"울어라! 울어라!"

잔인합니다.

 

근데 무작정 울리는 것 보다는

뭔가 그럴 듯한 방법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중에 제가 생각해낸 방법

'물소리를 녹음해서 틀어주기'

돈 안드는 꽤 좋은 방법입니다.

 

고민이 이쯤에 이르렀을 때 주선생님께 전화 한 통화가 왔습니다.

"애기는 젖을 먹은 다음에 30분쯤 놀고..그 다음에는 뭔가 자기 만의 특이한 행동을 하고 ...다음에는 하품을 하는데...그 신호를 잘 포착해서..."

 

먼저 이 일을 경험하신 선배 산모의 조언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일단 지어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그럴듯한 설명입니다.

 

미루가 보내는 신호를 어떻게 포착할 지가 관건입니다.

그냥 멍하게 쳐다보고 있어서는 못 찾을 수 있으니까

비디오로 몇 차례 찍은 다음에

그걸 분석해서 공통되는 특이한 신호를 찾아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며칠전에 주문했던 어떤 책이 한권 왔습니다.

책을 보니까 거기에 자세하게 아기 재우는 법이 나와 있었습니다.

그냥 그 책에 적혀 있는대로 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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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모유수유센터에 갔습니다.

 

여전히 미루가 엄마 젖을 깊게 물지 않아서 젖꼭지가 마구 헐어버렸는데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습니다.

 

모유수유센터에 갔다 올때 마다

자신감이 가득해져서 돌아오는 주선생님은

한 이틀 쯤 지나면 다시 자신감을 상실합니다.

 

"어디까지 물려야 할 지 아직도 모르겠어...ㅠㅠ"

 

 

선생님께서는 이번에야말로 이 문제를 해결해주시겠다는 표정으로

젖꼭지로부터 약 5센티 부근에 매직으로 선을 쭉 그었습니다.

수성은 금방지워져서 유성매직을 쓴 것 같았습니다.

"애기 입이 여기까지 오게 물리면 됩니다"

 

우리는 금새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습니다.

인제 확실히 어디까지 물려야 할지 감이 잡혔습니다.

 

기쁜 마음에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어서 미루가 젖을 먹고 싶어하길 바랬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때가 돼서 젖을 물리려고 했을 때는

유성으로 썼던 그 선이 지워지고 없었습니다.

 

주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그을까?"

 

"일단 한번 먹여보고..."

"계속 헷갈릴텐데, 아예 문신을 할까?"

"문신? 문신으로 선을 쭉 그어놓자고?"

"선으로 그냥 찍 그어놓으면 이상하니까 나비로 문신할까?"

"그냥 '여기까지'라고 쓰는 건 어때?"

 

...

 

갑자기 군대 훈련 받을 때가 생각이 났습니다.

옛부터 문신은 주로 무서운 아저씨들이 하는 것으로서

대표적인 문구로는

"차카게 살자" 와

하트에 화살표를 관통시켜놓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훈련 가서 저는 정말 다양한 문신을 봤습니다.

한 친구가 샤워를 할려고 웃통을 벗었는데 등짝이 온통 그림이었습니다.

십장생도였습니다.

 

주위에 있던 다른 훈련병들은

십장생을 세기 시작했습니다.

"하나, 둘, 셋, 넷..."

 

험악하게 생긴 어떤 훈련병은

이런 문신을 하고 있었습니다.

'효도'

 

어떤 사람은 주먹에 새긴 글씨로

좌중을 압도했습니다.

'복수'

 

하지만,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절대적 카리스마가 있었으니 

그 사람의 문신은 이것이었습니다.

'용서'

 

다 용서하시겠다는 데, 그 대자대비함에 아무도 이의를 달 순 없었습니다.

이 문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정말 대단했었습니다.

 

...

 

주선생님은 쓸데없는 생각 그만하라는 표정으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젖을 먹였고,

저는 옆에서 덥다고 부채질을 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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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복수

낮에 지쳐서 거실 바닥에서 잠깐 잠이 들었는데, 악몽을 꿨습니다.

 

미루(애 이름임^^)가 거실을 열심히 기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제 앞으로 와서는

고추를 내놓고 마구 오줌을 갈겨댔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나가지고

마침 옆에 있던 애기물티슈로 거실 바닥을 닦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미루 옆에 굉장히 많은 애들이 나타나더니

누운 애는 누운채로, 어떤 애는 기어다니면서, 또 어떤 애들은 선 채로

저를 향해 마구 마구 오줌을 갈겨댔습니다.

 

저는 그 작은 물티슈 한장으로 그 많은 오줌들을 막아낼 수 없었고

결국 거실은 오줌이 첨벙첨벙 거리는 오줌바다가 됐습니다.

 

...

 

사실 꿈에서만 이런 악몽을 겪는 건 아닙니다.

 

요즘 가장 큰 고통은 애 울음 소리입니다.

 

애 울음 소리, 이거 장난 아닙니다.

특히 밤에 우는 애 울음 소리는 35년 넘게 쌓아왔던 제 인격을 한방에 무너뜨립니다.

물론 처음에는 안 그랬지만 이게 계속 쌓이니까 그렇다는 겁니다.

 

너무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새벽 3,4시쯤 도저히 견디기 힘들 때 저는 몇번 작은 복수들을 시도했습니다.

 

울면 바로 안 안아주고 10초나 20초쯤 있다 안아주기

 

다시 내려놓을 때 바닥에서 3센티쯤 위에서 툭 떨어뜨려서 충격주기

 

스푼형 젖병이 있는데 이건 젖병 몸체를 손으로 누르면 분유가 많이 나옵니다.

잠깐 분유 먹여야 할 때, 이걸 써서 먹이다가 느닷없이 손가락으로 병을 꽈~악 누르기.

갑자기 늘어난 분유 양에 애가 아주 미세하게 괴로워합니다...

 

"아기는 자기 의사표현을 울음으로 한다. 아이가  우는 건 뭔가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가 왜 우는지 잘 살펴보고 조치를 취해줘야 한다."

이건 육아 안내 책자에 다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

 

 

나중에 애 우는 소리로부터 해방되면

그때는 저도 사람들한테 저런 식으로 이야기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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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

주 선생님께서 어제 선언하셨습니다.

 

"나 내일 외출할거야~!"

 

저는 무덤덤하게 대답했습니다. "어, 그래~"

 

별 생각없이 대답한 저는,

오늘 저를 보기 위해 누가 찾아온다고 해서 안된다고 했다가 하도 봐야 한다고 우기길래 그럼 2시에 보자고 했습니다.

 

그 얘기를 하자, 주선생님 아주 약간 삐진 얼굴로

"그럼 2시 약속 끝나면 외출해야겠네~"라고 얘기했습니다.

 

아...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미루를 낳고 나서 처음 감행하는 '혼자만의 외출'의 감동을 제가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손님을 만나고 3시쯤 집에 들어왔습니다.

 

미루를 안고 있던 주선생님은 바로 외출할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됐다고 하는데도, 인제 몸이 좀 회복됐다면서

빨래를 갰습니다.

배고프다면서 계란을 삶아 달라고 하더니 계란을 먹었습니다.

애가 보채니까 달래고, 목욕을 시켜야 한다면서 또 한바탕 소동을 벌였습니다.

 

그러다가 5시가 됐습니다.

미루는 잠을 자기 시작했고, 그러자 주선생님...갑자기 우울한 모드로 바뀝니다.

 

.

.

.

 

"내가 오늘 외출할 수 있을까?"

 

울려고 합니다.

 

"해 지기 전에 얼른 나가~!!" 저는 있는 힘껏 용기를 북돋워주었습니다.

 

그냥 나가도 될 것 같은데, 목욕탕에 가서 샤워하고, 머리도 감고..

감은 머리 말리고, 옷 이쁘게 입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근데 어디 나갈려고?"

"응, 선물로 포대기 받은 거 있잖아? 그거 아기띠로 바꿀려고.."

 

오랜만에 하는 외출의 이유가 좀 더 거창했으면 제 맘도 더 좋을 뻔 했습니다.

아무튼, 주선생님은 나가는 순간까지 온갖 걱정을 했습니다.

 

"애가 7시 30분까지는 젖 안 먹어도 되니까 걱정마"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

"근데..너무 떨린다.."

 

저는 평온한 표정으로

"걱정말고 다녀와.."라는 믿음직스러운 멘트를 날려주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데에도

안 그래도 천의 표정을 가진 주선생님의 얼굴에는 긴장, 기쁨, 초조 이런 것들이 마구 스쳤습니다.

 

..

 

결국 주선생님은 외출한 지 40분만에 들어왔습니다.

성공적으로 포대기를 아기띠로 바꾸고

옆 식당에서 돈까스도 사왔습니다.

 

그 40분 동안 저한테 5번 전화했습니다.

 

"애 자?"

 

"애는?"

 

"애기는 자?"

 

"나, 벌써 포대기 바꿨어~!"

 

"지금 택시 탔어, 기다려~!"

 

...

 

외출을 잘 끝내고 돌아온 주선생님은 긴장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3박 4일 어디 갔다 온 것 같애"

 

또 이런 말도 했습니다. "몸이 너무 가벼워서 어떻게 걸어다녀야 할 지 모르겠어"

 

 

그리고 미루한테도 말을 걸었습니다.

 

"미루야, 엄마 왔어~!", "나 1시간이나 외출하고 왔다~!"

 

그 동안 배냇짓으로만 웃던 미루가 느닷없이 눈의 촛점을 엄마한테 또렷하게 맞추고

활짝 웃었습니다. 주선생님은 좋아서 입이 얼굴의 반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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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침해

아무리 생각해도 애를 키우기 위해서는 최소 3사람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1번 선수는 애를 먹여야 합니다. 모유수유를 한다고 했을 때, 이건 산모가 하면 되죠. 

모유수유..이거 보통 힘든 게 아닙니다. 산모는 그냥 이거에 집중, 또 집중!

 

2번 선수는 가사노동을 해야 합니다. 밥하고, 설거지 하고, 빨래하기..이건 물론 온전히 한 사람 몫의 일이지요.

 

3번 선수는 아이와 산모를 챙겨줘야 합니다.

아이는 하루에도 트럭 한대분의 기저귀를 생산하니까 이걸 갈아줘야 합니다.

목욕도 시켜줘야 합니다.

안 자면 재워야 합니다.

천 기저귀 쓰면 빨래감이 두배가 되는데 이건 직접 하거나 2번 선수에게 미루면 되겠죠.

또, 산모의 산후조리를 신경 써줘야 합니다.

모유수유하는 산모 팔, 허리 등도 주물러 주고, 체조 같은 것도 좀 시키고, 철분제도 매일 챙겨줘야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3명이 해야 할 일을 산모 혼자서 하는 경우가 무지하게 많습니다.

저희보다 몇 달 빨리 애를 낳은 처제도 혼자 하고 있습니다.

사무실에서 그 동안 애를 낳았던 여자 동료들 중 대다수가 혼자 애를 키웠었습니다.

 

3명이 해야 할 일을 혼자 시키는 것, 그것도 방금 애 낳은 사람한테 다 하라고 하는 것..

이런 걸 뭐라고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좋은 말이 떠올랐습니다.

 

'인 권 침 해'

 

그렇습니다. 이건 인권침해입니다.

 

전에 사무실에서 일하던 친구 중에 하나가 애를 낳고 육아휴직을 쓰는데

저한테 가끔 전화를 했었습니다.

전화를 할 때 마다 저한테 화풀이를 했습니다.

물론 저는 잘못한 게 없었지만 그 화를 다 받아줬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게 미쳤나~"

 

그런데 인제는 그 심정을 알 것 같습니다.

아마 혼자 애 키우게 되는 사람들은 우울증, 신경쇠약..뭐, 이런 종류의 증상에 시달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사실 저도 오늘 낮에 아주 잠깐 저를 찾아온 손님을 만나러 밖에 나갔다 왔었는데

처음 본 사람한테 아주 짜증스럽게 굴었습니다.

돌아오면서 생각해보니, 이게 산후우울증과 유사한 증상이 아니었나 싶더라구요.

 

저출산이니까 애 많이 나으라면서,

낳았으면 2번 선수와 3번 선수는 정부나 사회가 책임졌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애를 낳으면 동사무소나 구청 아니면 보건소나 기타 등등 어디에서라도 산후도우미를 파견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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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봐야 티도 안 나는 일

모유 수유 상담을 받으러 병원에 갔습니다.

 

저는 상담실에 들어가지 못해서 밖에서 기다렸죠.

보통 '여성잡지'라고 부르는 잡지 두 권을 다 볼 동안 주선생님은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조금 지루하긴 했지만

모유 수유에 어려움이 많으니까 빨리 문제를 해결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열심히 잡지를 읽었습니다.

 

옆에 두분의 할머니가 계셨는데

둘 다 아이들을 하나씩 데리고 계셨습니다.

아마 딸이나 며느리가 애를 하나 더 나았거나 하는 이유로 와 있는 것 같더라구요

 

"어휴...저것들 보기는 저렇게 이뻐도 힘들어 죽겄어.."

"글쎄 말여..키워 봐야 티도 안 나고.."

 

맞습니다.

티 안나는 일이 참 많습니다.

티 안나더라도 좀 알아주면 좋은 데 티 안 나는 일은 알아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학교 다닐 때 학생운동하면서는

'대자보' 쓰는 일이 티 안나면서 알아주지도 않는 일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대학'하면은

항상 운동권들이 뭔가를 잔뜩 써서 여기저기 벽에 다닥 다닥 붙여놓은 대자보가 연상이 됐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상적인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누군가는 맨날 바닥에다 큰 종이 펼쳐놓고 바짝 엎드려서 매직으로 글씨를 한자 한자 써내려갔죠.

그거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주로 선전담당 아니면 착한 친구들이 대자보를 썼었습니다. 

 

근데 이렇게 해봐야 티도 안 나는 일들이

안 하면 또 굉장히 티가 많이 납니다.

80년대, 90년대 중반 정도까지 대자보 없는 대학은 잘 상상이 안 가잖아요.

 

...

 

당시에 여성학 책을 읽으면서

주부의 가사 노동이 꼭 대자보 쓰는 일하고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해도 티도 안 나지만, 안 하면 티가 팍팍 나는 일이 어쩜 그리 똑같은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런데, 아까 병원에서 본 그 할머니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옛날 생각이 좀 났습니다.

그리고 그 할머니들 얼굴을 한번씩 더 보게됐습니다.

 

분명히 젊었을 때도 그랬을 그 분들은 나이 들어서 대접 받아도 모자랄 나이에

여전히 티 안나는 일, 안 하면 티 나는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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