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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 연구

'애기는 울려야 한다.'

'우는 걸 자꾸 안아주면 버릇 나빠진다.'

 

어른들이 흔히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실,

애가 우는 건 뭔가 할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이 애들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까

어쩔 수 없이 그냥 놔두는 것 뿐입니다.

 

 

"응애~응애~!!"

"응...그래, 우리 미루 ..인제 잘려구~~?"

"응애~응애~켁 켁"

"어..우리 미루 알았어~자장, 자장..우리 아가.."

"응애~응애~으앙~으아앙"

"아이고, 이 놈의 자식 왜 이렇게 울어...에라~그냥 울어라~"

"으앙~으앙~으아아아앙~"

 

이걸 통역해 보겠습니다.

 

"배고파요...밥 줘요~~!!"

"응...그래, 우리 미루 ..인제 잘려구~~?"

"정말, 배가 고프다니까요~~"

"어..우리 미루 알았어~자장, 자장..우리 아가.."

"왜 밥 달라니까 자꾸 자라고 그래요~~배 고파아앙~~"

"아이고, 이 놈의 자식 왜 이렇게 울어...에라~그냥 울어라~"

"으앙~밥 달라니까, 밥도 안 주고, 아빠 싫어~~"

 

어른이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애기는 정말 많이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러면 더욱 더 악악 거리면서 울 수 밖에 없습니다. 

 

미루는

'켁켁' 거리면서 울거나 '응애, 응애'하면

배가 고파서 우는 겁니다.

그걸 그냥 놔두면 나중에는 힘들어서 '음메, 음메~'하고 울기도 합니다.

깜짝 놀랍니다.

 

짜증스럽게 울어대면 어김없이 똥을 싼 겁니다.

많이 싸면 뭉개면서 좋아라 하는데

울때는 꼭 조금만 싸고 깔끔한 척 할 때입니다.

 

느닷없이 자지러지게 울면

젖먹고 트림을 안해서 입니다.

이 때는 최대한 빨리 등을 토닥여주면 트림을 하고, 금방 웃습니다.

 

고양이처럼 울다가, 점점 보채면

졸려서 우는 겁니다.

"자장, 자장~"은 이 때 합니다.

 

그 이외에 우는 경우가 있는데

조금 달래주면

"앗~! 이건 내가 우는 4대 이유에 해당 안되는데.."이런 표정으로

금새 그칩니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게 인간관계의 중요한 덕목이고

아이의 울음을 잘 듣는게 아빠, 엄마의 기본인 것 같습니다.

 

...

 

참, 그런데 미루가 가끔은, 마구 울어대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때 저는 마음을 차분히 먹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이고, 이 놈의 자식 왜 이렇게 울어...에라~그냥 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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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와의 전투

1.

 

"어...이거 봐...목에 이게 뭐야..?"

주선생님께서 미루를 정밀 관찰하시던 중 뭔가를 발견했습니다.

 

"그러게, 이거 빨간 게 이게 뭐지?"

"모기 물린 거 아냐?"

"모기?"
"집에 모기 들어왔나보네.."

"에구 불쌍한 우리 미루 ...되게 아팠겠다.."

"그러게.."

"어! 여기 팔도 물렸네.."

"어떡해~다리에도 두방이나 물렸어.."

 

자고 일어났더니 모기가 미루를 5방이나 물었습니다.

모기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습니다.

 

"아니, 무슨 모기가 이렇게 양심도 없냐?"

"그러게 말야, 어른들 다 놔두고 왜 애를 물어, 애를~~"

 

한참을 얘기하다 주선생님

점점 화가 나서 못 견뎌하더니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며 방으로 뛰쳐들어갑니다.

 

"나쁜 새끼들, 다 죽여버릴거야~~"

 

조금있다 따라들어가 봤더니

주선생님은 모기는 안 잡고 침대에 누워서 잡니다.

충격에 마음을 달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2.

 

"뭐해?"

 

제 물음에 주선생님이 대답합니다.

 

"응, 인터넷으로 모기장 사는 중이야.."

"어, 그래..모기장...빨리 알아봤어야 하는데.."

"그러게.. 밤마다 모기 있나 보고 ..모기약도 피우고 했는데 완전 당했다.

모기장이 제일 확실한 데 방심했어..."

 

모기에게 5방이나 물린 미루가 너무 걱정이 돼서

소아과 의사선생님한테도 여쭤봤습니다.

 

"5방이나 물렸는데, 우리 애..괜찮을까요?"

"괜찮아요~~"

소아과 선생님이 피식 비웃는 듯 말했는데,

그래서 더 안심이 되긴 했습니다.

 

우리는 모기장을 현관에다 걸었다가

미루 침대를 아예 덮었다가 하면서

가장 효과적으로 모기의 공격을 차단하기 위해 골몰했습니다.

 

 

3.

 

"아~이거 진짜~~"

"정말 미치겠다.."

"미루 괜찮은지 한번 봐봐"

"퍽, 팍~, 퍽"

 

밤새 모기 때가 주선생님과 제 머리 맡을

윙윙 날라다녔습니다.

 

불 켜기를 몇 차례씩 하면서

이놈들을 때려잡으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

 

"에이, 그냥 자자..

우리가 희생양이 돼서 미루를 지키면 되지~

이 놈들아 우리를 물어라~~!!"

 

결국 침대를 통째로 모기장으로 덮기도 했고

 

우리가 모기들을 유인하면

미루는 안전하겠다는 생각에

이불을 걷어 치우고 잠을 잤습니다.

 

 

4.

 

"나, 모기 여섯방이나 물렸어...가려워 죽겠어..

상구는 몇 방이나 물렸어?"

 

"...나? ..찾아볼께"

 

사실, 저는 평소 모기에 물렸는지 안 물렸는지

잘 모르는 스타일입니다.

물려도 가렵지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애초에 모기가 잘 물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어제밤에 모기가 그 난리를 쳤는데

나도 좀 물렸겠거니 하면서

모기 물린 자국을 찾아 봤습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없습니다.

 

'아..이거 한방이라도 물렸어야 하는데..괜히 현숙이 한테 미안하잖아..'

속으로 이런 마음이 들어서 열심히 찾아봤지만

아무리 찾아도 없습니다. 

 

"저기...한 방도..안 물린 것 같은데.."

 

주선생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엉엉...그럼, 나 혼자 미루를 지킨 거야?"

 

모기와의 전투에서 주선생님은 혼자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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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세월에...

어제 우리집 세 사람이 미용실에 갔습니다.

 

36년간 오직 전통의 헤어스타일 한 가지만을 고집하던 저에게

주선생님께서 혁명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며 파마를 하자고 해서 간 겁니다.

 

미용실에 들어서자

거기서 좀 높아보이는 여자분이 와서

이것 저것 참견합니다. 그러다가 하는 말.

 

"어머, 애기 코에 이거 자기 손으로 긁었나 보네..

손톱을 잘 깎아줘야지...

아빠가 화 나겠다..엄마 뭐했어~"

 

순간 주선생님 얼굴에 열이 확 뻗칩니다.

저는 그 사람이 뭐라고 하는 지 못 들었다가

주선생님한테 얘기를 듣고, 뒤늦게 열이 확 뻗쳤습니다.

 

'아니, 애 손톱은 꼭 엄마가 깎아주라는 법이라도 있어요?

그리고...얼굴 긁었으면 아빠가 엄마를 위로해주지는 못할 망정 왜 화를 내요?

직장 나와서 일하시는 분이 본인도 다 겪어봤을 거면서

애는 무조건 여자가 키워야 한다는 겁니까?'

 

저는 그 사람에게 이렇게

속으로 말했습니다.

 

미용실에 있는 내내

주선생님은 많이 불편해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데 애 데리고 나왔다고 구박하는 눈치까지

이 여자 저 여자 한테서 받았다고 하더라구요.

 

이런 일들은 정말 우리를 우울하게 만듭니다.

 

육아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

맨날 집에만 있으면

잠깐이라도 밖에 나오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굴뚝 같은지

 

여자들은 서로 이해할 줄로 생각했었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미용실의 그 높은 분은

직장 일은 직장 일 대로

집안 일은 집안 일대로 이중으로 하는 여자이면서

말은 꼭 남자의 관점으로 얘기했습니다.

 

이런 저런 핑게로

애 키우는 데는 하나도 신경 안 쓰면서

뭔 일만 있으면  "아니, 대체 집에서 애를 어떻게 키우는 거야?"

이렇게 얘기하는 남자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여자 할 일 따로 있고, 남자 할 일 따로 있다 이겁니다.

애 키우는 일 같은 건 여자들이 책임져야 할 일이다 이런 겁니다.

전형적인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입니다.

 

주선생님과 저는 집에 돌아와서

이래가지고 어느 세월에 여자와 남자 사이의 불평등이 없어지나

뭐, 그런 종류의 얘기를 하면서

서로를 달래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어제의 일을 잊고 활기찬 하루를 시작하면서 밖에 나갔습니다.

저는 미루를 안고 주선생님은 몇 발 앞서 걸었습니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주선생님에게 말씀하십니다.

"저게 뭐야~애기 배가 다 나왔어~~옷 잘 입혀야지"

 

애를 안고 있는 건 전데, 여전히 세상 사람들은

애에 대해서 엄마에게 책임을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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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 전쟁

"으악~~"

 

"왜 무슨 일이야?"

 

얼마전 일입니다.

 

주선생님이 미루 젖을 먹이는 동안

다른 곳에 앉아 있던 저는

느닷없는 비명 소리를 듣고 달려갔습니다.

 

"현숙아, 왜 그래..괜찮어?"

 

"으...피가 나.. 어떡해..."

 

주선생님께서는,

피부가 딱 저를 닮아서 안 그래도 땀을 많이 흘리는데다

하필이면 여름 직전에 태어난 미루가 불쌍하다면서

 

귀 뒤, 목, 팔꿈치 반대편, 무릎 반대편 등

주로 미루 몸 중 '접히는 부분'에 대해 부쩍 신경을 많이 쓰던 참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젖을 먹이다

마침 귀 뒤가 좀 지저분하다 싶어서

거즈로 닦아 낸다는 것이, 아마도 벅벅 문질렀나 봅니다. 피가 날 정도로...

 

안 그래도 이런 저런 걱정이 태산인 주선생님,

굉장히 괴로워합니다.

 

저는...그 와중에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때 목욕탕에 갔었는데

 

같이 간 아버지가

"야, 상구야~너 때 한번 밀어달라고 해보까?"하시면서

저를 때밀이 아저씨한테 맡기셨습니다.

 

취직한 지 얼마 안됐는지, 의욕이 넘치던 그 아저씨는

3학년 짜리를 무슨 어른 다루듯이 하면서

두 손모아 힘차게 때를 밀었습니다.

 

그러다가 어이없게도 제 옆구리 피부를 홀랑 벗겨버리고 말았습니다. 피가 낫죠.

그때 참 많이 아팠었습니다.

 

갑자기 미루가 무척이나 안쓰러운 마음이 들더군요.

 

사실, 미루의 피 사건이 있기 전에

이미 한 차례 난리가 나긴 했었습니다.

 

어느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미루의 '접히는 부분'이 온통 새빨개지고 짓물러서

무덤덤한 저도 깜짝 놀랄 정도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병원으로 달려가서

의사 선생님한테 상담을 받고, 약 받아 오고

집에 돌아와서 목욕 시켜주고

그리고 정말 큰 맘 먹고 장만한 에어콘을 튼 다음에야 안심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까지 저는

주선생님께서 미루가 땀띠가 좀 심한거 아니냐고 하면

 

"괜찮아, 괜찮아..나도 어릴 때 땀띠 맨날 몸에 달고 살았거든?

근데 지금 봐봐~이 백옥 같은 피부~"

하면서 신경 안 써도 된다고 했었는데

 

이 때문에 사실은 아무 대책도 안 세우고 있다가

크게 당한 것입니다.

 

"어머, 이거 봐..귀에서 발 냄새가 나..."

"목이 또 왜 이래 이거...어휴 이 땀띠 좀 봐.."

 

이럴 정도가 되도 무심하게 있다가

미루를 그 지경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 이후 우리의 경각심은 계속 최고조 상태입니다.

 

주선생님께서 오늘 아침에는

자고 일어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꿈에...산후조리원에 있었는데

애가 눈이랑 얼굴에 두드러기가 왕창 난거야

의사가 와서, 애를 왜 이렇게 방치했냐고 뭐라고 하고..

어휴...암튼 디게 시달렸어.."

 

그 말을 듣고 전 생각했습니다.

 

'잠만 잘 자드만...'

 

아무튼

그 날 이후 우리는 정말 열심히

미루의 피부를 관리해줍니다.

 

목욕도 열심히 시켜주고

보습제도 발라줍니다.

짓무르는 곳은 적당한 수준에서 연고도 발라줍니다.

 

아직 목을 가누지 못해서 늘상 접혀 있는 목에

최대한 공기가 통하도록 이런 저런 노력을 합니다.

 

우리의 소원이 있다면

빨리 이 놈의 더운 여름이 가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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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유수유의 어려움

트랙팩님의 [아기가 자라고 있어요.] 에 관련된 글.

평소 존경하는 진경맘과 다섯병님께서

제가 집에 없는 사이

놀러오셨다 가셨습니다.

 

두 분께서는 놀러오시면서

미루에게 필요한 옷이며 장난감 같은 것들을

한 박스 담아오셔서,

한 여름의 산타클로스 분위기를 잠시 연출하셨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쁜 선물은

역시 수유쿠션입니다.

 

저희 집에도 수유쿠션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희가 또 다른 훌륭하신 분에게 받은 수유쿠션은

워낙 그 역사가 오래돼놔서

눌리고 또 눌려 아주 납작해진 상태였습니다.

가히, 수유쿠션계의 쥐포라고 불릴만 했습니다.

 

주선생님께서는 그 동안 이 쥐포 위에 미루를 올려놓고

젖을 먹이느라고 그야말로 고생 또 고생을 했습니다.

 

주선생님께서는 일찌기

모유수유의 고통을 다음과 같은 행동을 통해 저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어느날 저는 너무 덥고

어디 밖에 나갈 일도 없어서 웃통을 벗고

모유수유 중인 주선생님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선생님이 갑자기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제 젖꼭지를 꽈~악 꼬집었습니다.

 

"아앗~~ 왜 그래?"

너무 기습적인 공격에 저는 몸을 파르르 떨며 물었습니다.

 

무덤덤한 표정으로 주선생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응...고통을 같이 나누고 싶어서.."

 

그냥 말로 해도 될텐데..그렇게까지 하는 걸 보니

혼자 아픈 게 좀 억울했던 모양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전날 밤에

주선생님께서는 수유하는 데 젖꼭지가 얼마나 아픈지를

저에게 말로 한참 설명하긴 했었습니다.

 

"빨래집게로 젖꼭지를 꽉 찝으면 어떨까? 많이 아프겠지?"

"으....정말 아프겠다.."

"그러고 나서 빨래집게를 빼.."

"..그리고..?"

"그러다가 그 아픔이 다 사라지기 전에..다시 꽉 찝어..어때?"

"으으으..생각만 해도 소름이 쫙 끼친다.."

"바로 그런 아픔이야..요즘 내가 아픈게.."

 

이렇게 힘이 드니까

특히 아침에 수유를 하고 나면 완전히 뻗어서 잠을 잡니다.

 

오늘 아침엔 6시에 수유를 했는데

가슴이 아파서 잠을 잘 수가 없다며 한참을 낑낑거렸습니다.

 

수유쿠션 하나로 모유수유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순 없고

또 주선생님이 아픈 게 꼭 수유쿠션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전 보다 훨씬 나아질 것 같습니다. 

 

오늘 받은 수유쿠션은

어릴때 길을 가다가 정말 충격적으로 뚱뚱한 배추벌레가

옆으로 말려 누워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걸 그대로 확대해 놓은 모양입니다.

 

우리 미루가 이 위에서 주선생님 아프지 않게

잘 먹고 잘 크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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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받고 싶은 욕구

옛날 일입니다.

 

어찌어찌 해서

제가 주선생님 앞에서  댄스를 추게 됐습니다.

 

가볍게 몸을 흔들면서 매혹적인 눈빛을 날리자

 

제 화려한듯 하면서도 절제된 춤을 보고

주선생님은 그게 무슨 춤인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물었습니다.

 

"상구, 왜? 오줌 마려워?"

 

그 날 이후 저는 다시는 춤을 추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하는 일을 누가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는데

이게 안되니까 참 괴롭더군요.

 

근데

최근에는 제가 하는 일을

여기 저기서 알아주기 시작했습니다.

 

주선생님의 동생,

그러니까 처남이 어느날 전화가 와서 집에 놀러오겠다고 했는데

장모님이 말려서 안 온 일이 있었습니다. 

 

"야~형부가 살림하는데, 너 가면 형부만 힘들어~

나야 가면 내가 밥 해 먹으면 되지만 넌 니가 해먹을거냐?"

 

처남한테 장모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주선생님의 집은 주선생님과 바로 아래 동생이 여자이고 처남이 막내인데

위 두 사람의 영향을 받아서 처남은 저를 자꾸 '형부'라고 부릅니다.

 

아무튼, 그 말을 전해 듣고 전 기분이 꽤 괜찮았습니다.

드디어 인정을 받기 시작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저께는 주선생님께서 또 저를 추켜세워주셨습니다.

 

"어...인제 부엌에서 움직이는 게 굉장히 여유 있어, 부드럽고..." 

"전에는 어땠는데?

"전에는 뭔지 모르게 분주해 보이고 그랬는데 인제 안 그래~~"

 

사실, 예전에는 부엌에서 혼자 바빠서 팔딱팔딱 거리긴 하는데

빨리 되는 건 없고 그랬었습니다.

 

근데 인제는 뭐 별로 움직이는 것 같지도 않은데

식사 준비가 딱딱 되니, 제가 봐도 실력이 많이 나아졌습니다.

이걸 주선생님이 또 적절한 때에 칭찬으로 날려주셨구요.

인정 받는 건 역시 좋은 일입니다.

 

오늘 지하철을 잠깐 탔는데

할머니가 자기 옆자리가 비니까 저를 가리키면서 말씀하셨습니다.

"학생 여기 앉어~"

 

36살 먹은 사람이라고 학생이 아니란 법은 없지만

할머니는 저의 지나치게 동안인 얼굴을 보고 그렇게 말씀하신게 틀림 없었습니다.

 

요즘..너무 인정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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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판 싸우다

미루 엄마와 미루 아빠가 대판 싸웠습니다.

저와 주선생님이 싸웠다는 얘기입니다.

 

미루가 자지 않고 우는 데

미루 아빠는 그냥 놔두자고 했고

미루 엄마는 그러는 건 싫다고 했습니다.

 

미루 아빠는 미루 엄마가 너무 과민하다고 생각했고

미루 엄마는 그렇게 생각하는 아빠가 못 마땅했습니다.

 

근데 사실 따지고 보면 이런 싸움은 정말 산후에나 있을 법한 일입니다.

서로 힘들고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할 때 말입니다.

 

며칠 전 주선생님께서 하루 종일 무한한 짜증을 부린 날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놀랍게도 그 짜증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 넘기며 하루를 잘 보냈었습니다.

 

밤에 주선생님이 책상 위에다 메모를 남겼더군요.

 

'할 말이 있소. 뒤를 보시오'

 

저는 주선생님이 저를 놀라게 하려고

제 뒤에서 무서운 얼굴로 서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더 무서운 얼굴을 하고 "획~"하니 뒤를 돌아봤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더 무서웠습니다.

 

알고 보니, 종이의 뒤를 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냥 '뒷면을 보시오'라고 하지.

 

뒷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자꾸 짜증내서 미안하오.

아직 인간이 덜 돼서 그러오.

산모는 인간이 아닌 듯 하오.

얼렁 인간이 되어 상구에게 짜증 안내도록 하겠소. 졸리네..

(여기서 갑자기 존대말로 바뀌었습니다. 정말 졸렸나 봅니다.)

많은 양해 바랍니다.

글고 사실 많이 고맙고 자랑스럽고 안쓰럽고 그렇소.

힘냅시다!'

 

이렇게 주선생님은 나름대로 노력 중이었는데, 결국은 우리가 싸우고만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어제의 싸움은 제가 진 겁니다.

왜냐하면, '게임의 법칙'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꽥~'소리를 질렀거든요.

 

이래저래 수습이 안돼서 우리는 5분 안에 화해하는 원칙을 깨고 그냥 자버렸습니다.

 

다음날 아침, 이번에는 제가 편지를 썼습니다.

 

<앞장>

"뒤를 보시오.."

 

<뒷장>

"현숙아 미안해..어쩌고 저쩌고...주저리 주저리..온갖 변명, 핑계 등등" 

 

결국, 우리 두 사람은 금새 화해를 했습니다.

 

역시 두 사람의 대화와 타협 능력은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정도는 훌륭하다고 해도 괜찮을 듯 합니다. 

사실, 아이를 키우는 상황에서 인격 수양은 불가능하지만, 어쨌든 앞으로는 좀 더 잘해야겠습니다.

 

그나저나, 화가 풀리고 주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셨는데

자기도 뒤를 돌아봤다고 합니다. 꽤 무서웠을 것 같습니다.

 

또 지난 밤 얘기도 해주었는데

화가 난 걸 표현하기 위해, 안방으로 안 들어오고 거실에서 자다가 모기에 물렸다고 합니다.

참, 불쌍한 주선생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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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도 피곤하다

"지가 뭘 한게 있다고 피곤해, 피곤하긴~"

 

한참 전에 고모님이 오셔서 남기고 가신 말입니다.

 

책에 보니까

젖을 먹은 다음 40분쯤 놀다가 피곤해하면

그때부터 재우면 된다고 하길래

 

그대로 설명하다가 들은 이야기입니다.

 

사실, 뭐

저도 비슷한 생각이었습니다.

 

'지가 뭘 했길래..

...피곤하면 아빠랑 엄마가 훨씬 피곤하지

저는 그냥 먹고 놀기 밖에 더 했어?'

이게 제 속에 있는 '악마'의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속의 '천사'는 이렇게도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작은 애기니까 조금만 안 자고 깨어 있어도 피곤할거야..그럼, 그럼'

 

근데 미루는 젖을 먹은 다음에 한번 놀면

한 시간씩 놀았습니다.

 

그 한 시간 동안 미루는

다리를 막 움직여서 걷는 시늉도 하고, 손으로 만세를 불렀다가

랩 가수 처럼 희한하게 손을 꼬고

한쪽 손을 번갈아 가며 양쪽으로 쭉 뻗고

또 길거리 시위대처럼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

권투선수처럼 두주먹을 위아래로 쥐고

손을 빨려고도 하고, 그러다 지 손에 얼굴을 몇 대씩 맞고 그럽니다.

 

참, 별 짓을 다합니다.

 

그러다가 피곤해지면,

손으로 귀를 쥐어뜯고, 눈두덩이가 빨개지고 하면서

금새 알아볼 정도로 방금 전하고 얼굴이 달라집니다.

 

'아..미루가 피곤하구나. 인제 재워야지...'

 

이런 생각을 하고 항상 재우는 시도를 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이의 피곤함이 딱히 이해가 가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집에 놀러온 친구랑 있다가

애기는 조금만 놀아도 피곤하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미루는 한 시간만 놀면 피곤해서 거의 미쳐버릴라고 그래..

이 때 안 재우면 난리가 뒤집어져~~"

 

친구가 대답했습니다.

 

"당연하지~!!"

 

애도 없으면서 다 아는 것처럼 대답하길래 좀 더 설명하길 기다렸습니다.

 

"어른한테 누워서 한 시간 동안 팔다리 흔들고 있으라고 해봐, 얼마나 피곤한가..."

 

아, 정말 일리가 있는 설명이었습니다.

 

친구가 간 다음에, 누워서 미루랑 똑같이 해보았습니다.

 

5분도 안 했는데, 숨이 턱에 닿았습니다.

힘들어서 더 이상 못했습니다.

혼자 누워서 그러는 제가 좀 미친 것 같기도 했습니다.

 

이 힘든 일을 한 시간씩이나 해 내는 미루는 참 대단한 앱니다.

 

게다가 요즘은 움직이면서 이상한 소리까지 내는데... 정말 대단한 앱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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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의 증거 2

부엌에서 살다 보니까 좋은 일도 있지만

안 좋은 일도 있습니다.

 

가장 안 좋은 일은

자꾸 손이 데는 겁니다.

 

오늘 아침에도 그랬습니다.

 

"아휴..씨..또 디었네..."

 

보리차 끓인다고 물 올려놨다가

끓는지 안 끓는지 순간적으로 분간이 안 가서

주전자 뚜껑을 열었는데

뜨거운 김이 새끼손가락을 덮쳤습니다.

찬물을 틀어놓고 손을 한참 대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이게 몇 번째야..이거.."

 

조심을 한다 한다 해도 자꾸 뎁니다.

덕분에 손가락 끝은 점점 단련되고 있습니다.

 

정신 놓고 있다가

뜨겁게 달권진 냄비를 잡는 건 인제 안 하지만,

이것 말고도 데는 방법은 많습니다.

 

전자렌지에 음식 뎁힐려고 넣었다가 꺼낼 때

접시가 뜨거워서 손가락을 데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접시가 안 뜨거워야 하는데 암튼 전 데었습니다.

 

닭가슴살 익힌 다음 손으로 찢는데

처음엔 괜찮은 듯 싶더니 점점 뜨거워집니다.

억지로 참고 하다가 또 데었습니다.

 

사골국을 폭삭 끓인 다음 국그릇에 옮겨 담는데

그걸 하나 제대로 못해서

찰랑거리는 국 속으로 손가락이 들어갔습니다.

 

당근하고 햄하고 섞어서 볶다가

당근조각 하나가 하늘을 날라서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무심코 그걸 손가락으로 집어들었는데...아, 이거...이것조차 뜨거웠습니다.

 

가장 괴로웠던 일은 이겁니다.

 

햄을 아주 잘게 잘라서 볶고 있는데

이게 갑자기 통통 튑니다.

 

신기해서 "야~이게 통통 튀네~"하고 바라보고 있다가

그 중 하나가 긴 포물선을 그리더니

제 팔뚝에 사뿐하게 안착하는 걸 못 피했습니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습니다.

 

이 모든 걸 꿋꿋하게 참아내던 저는

그러나 정말 죽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지글지글 기름에 뭔가를 볶고 있다가

제가 정말..정말 아무 생각없이

후라이팬에 물을 좀 뿌렸습니다.

 

"파지지직..파파파파파팟~~"하면서,

기름인지 아니면 그새 뜨거워진 물인지가 튀어 올라와서

마침 더워서 웃통을 벗고 있던 제 배로 튀었습니다.

 

아...조선시대에 인두로 지지는 고통이 이쯤되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예전에 몇 번 아주머니들이

"괜찮아~이 생활 몇년인데"를 외치시면서

뜨거운 냄비 같은 걸 팍팍 잡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조금만 훈련하면 저도 그 경지가 될 지도 모릅니다.

 

전국의 부엌에서 지금도

기름으로 몸을 단련하고 계시는 많은 분들에게

조심하시라는 메시지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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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 2

주선생님께서 잠깐 밖에 나갔다 오시더니 말씀하십니다.

 

"공원에 보니까 조그만 애가 아빠랑 공 차는데..진짜 잘 차~

우리 미루도 빨리 그랬음 좋겠다..."

 

저는 대답했습니다.

 

"일단, 목부터 가누고..."

 

애가 어서 빨리 훌쩍 커버렸으면 하는 바램이 자꾸 생깁니다.

하지만 크는 것도 순서가 있는 법입니다.

 

돌이켜보면,

지금 이만큼 큰 것도 참 잘 해오고 있는 겁니다.

 

처음엔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일 때문에

'어서 빨리 컸으면..'하고 바라기도 했었습니다.

 

태어나고 2-3주간은 미루 콧구멍이 작아서

코딱지가 코에 꽉 차는 일이 많았습니다.

 

이것 때문에 숨을 잘 못 쉬기도 했습니다.

 

특히 젖먹을 때

계속해서 "쉭~쉭~" 소리를 내면서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는 건

참 괴롭기까지 했습니다.

 

"헉..헉..저..저기, 나 좀 도와줘요.."

"아니, 이봐요..왜 그러세요? 무슨 일이예요?"

"수..숨을 쉴 수가 없어요"

"숨을 못 쉬겠다고요?...이..이런, 이걸 어쩌죠?"

"코에 코딱지가 꽉 차서, 수..숨을..커어억.."

 

만약 어른이 이랬다면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미루는 처음에 이랬습니다.

 

약국에서 코빼는 이상한 기구를 사다가 미루 코에 대고 씨름을 하기도 하고

주선생님의 지시로, 제가 직접 미루 코에 입을 대고 코딱지를 빨아내기도 했었습니다.

모두 실패였습니다.

 

근데 어느 덧 미루는 벌써 많이 컸습니다.

코도 커지고 콧구멍도 넓어졌습니다.

어른 코딱지만한 게 항상 코 속에 있지만 숨만 잘 쉽니다.

 

이런 것 말고도 미루가 참 많이 자랐다는 증거는 여러가집니다.

 

아침엔 몇 차례나 활짝 웃었습니다.

다리 힘도 많이 세져서, 안다가 잘못 맞으면 가슴이 아픕니다.

머리는 두발규제에 반대하는 학생 마냥 긴데다 헝클어져 있습니다.

 

경륜이 붙은 것도 있습니다.

하도 젖을 빨아서 입술에 굳은살이 박혔습니다.

미루 생애 첫 굳은살입니다.

 

사실 평생 이 때 말고는 입술에 굳은살 박힐 일은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중에 아무리 밥을 자주 먹어도, 아무리 뽀뽀를 많이 해도 이 정도는 아니겠죠

미루 입술의 굳은살은 2달짜리 젖먹이의 경륜의 표현입니다.

 

낮에 잠깐 슈퍼에 갔는데,

심부름 온 꼬마애가 똑부러지는 게 참 예뻤습니다.

 

미루가 심부름 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목을 가누는 게 당장의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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