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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진짜 사람 같다

어쨌거나 시간은 가고

미루는 무럭 무럭 크고 있습니다.

 

"하루 하루가 달라~"

 

저희 어머니께서

언젠가 하신 말씀입니다.

 

하루하루가 다른 것까진 아니지만

정말 눈에 띄는 변화들이 많이 보입니다.

 

얼마전까진 한 손이 다른 손을 잡았습니다.

주로 입으로 달려가는 오른손을 왼손이 가로 막았습니다.

 

미루는 짜증을 냅니다.

손가락을 빨고 싶은데 못 빨기 때문입니다.

 

하여튼 그때까지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몰랐습니다.

 

그런데 최근엔 두손을 사이좋게 꼭 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꽤 자유롭게 사용합니다.

 

젖 먹을 때 엄마 가슴을 긁거나

약 먹일 때 약숟가락을 쳐냅니다.

빠르고 정확한 동작입니다.

 

 

지난 3일간 혀도 놀랍게 발전했습니다.

 

"내가 진짜 이게 무슨 꼴이냐...미치겠다, 정말.."

 

계속 우는 미루 옆에서

너무 힘들어서 신세한탄을 하는데

갑자기 미루가 우는 걸 멈춥니다.

 

웬일인가 하고 쳐다보니

미루가 혀를 쏙 내밀고 저를 쳐다봅니다.

누가 봐도 약올리는 표정입니다.

 

그 날 이후로 혀의 움직임은

날로 현란해졌습니다.

 

3일만에 지금은 혀를 있는 대로

다 내놓고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립니다.

어른 하는 짓 하고 똑같습니다.

 

"미루야~~"

 

부르면 열번 중에 일곱번은 쳐다 봅니다.

사실은 다섯번 정도 쳐다 보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예전에 눈길도 안 주던 때와는 비교할 바가 아닙니다.

 

주선생님 얘기로는

미루가 드디어 한 인간으로 느껴진답니다.

 

"누워 있을 때 얼굴을 만져 보면 진짜 사람 같애..."

 

저도 비슷한 걸 느꼈습니다.

 

트림시킬려고 안았는데

정말 한 인간을 안고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독립된 존재의 호흡과 체취가

여느 사람과 똑같은 무게감으로 느껴집니다.

 

이런 느낌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드디어, 사람됐구나~"

이건 철든 어른한테 하는 소리입니다.

 

"인제 좀 인간같네~"

이건 일주일 동안 머리 안 감은 사람이

머리 감고 나서 하는 말입니다.

 

"에구, 우리 애기 다 컸네~"

이 말은 아직 안 큰 애의 사기진작용입니다.

 

어쨌든 미루는

인제 진짜 사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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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밤새 한숨도 못 잤다는 말은

간밤에 자다가 자주 깼을 때 흔히 씁니다.

 

진짜 밤을 꼬박 샌 건 아니지만

컨디션이 영 안 좋을 때 씁니다.

 

어제 밤에 한숨도 못 잤습니다.

 

미루가 거의 한 시간에 한번씩 깼습니다.

 

낮잠을 반납하고 왕성한 보채기로

주선생님과 저를 매일 녹초로 만들더니

 

이제는 밤잠의 황제 자리까지 내놓았습니다.

 

악다구니를 써가면서 울고

안아줘도 울고

달래줘도 웁니다.

 

어떻게 해서 다시 재웠는지 기억도 안 납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밤새 두들겨 맞은 것처럼 욱신거리고

눈은 퉁퉁 부어있습니다.

 

"콜록, 콜록..."

 

근데 미루는 감기에 걸려 있었습니다.

 

미루 앞에 가서

좀 불쌍하기도 하고

어제 우리가 뭘 잘못했길래 감기에 걸렸을까도 생각하면서

앉아 있었습니다.

 

주선생님은

"아이고..허리야.."를 연발하면서 일어나더니

 

제 등 뒤에서

바닥에 널린 기저귀를

주섬주섬 치웁니다.

 

"미루 체온 한번 재봐야지.."

겨드랑이 체온을 재니 37.2도입니다.

 

"괜찮네, 그 정도는.."

 

"애들은 원래 6개월까지는 날 때 받은 엄마 항체로 버틴다면서?

그 이후에 감기 된통 걸린다고 했든가, 현숙아? "

 

"응...그때는 열이 40도씩 올라간대...

37.2도는 열도 아니다.."

 

예전에 미루가 한번 37.5도까지 갔을 때

우리는 미루 옷을 다 벗기고

물을 온 몸에 적신다 뭐한다 하면서 호들갑을 떤 적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37.5도는 귀체온계로 쟀을 때 그런거였는데

그걸 겨드랑이로 재면 36.5도에서 37도쯤에 해당하는 거라서

매우 정상적인 체온이랍니다.

 

그때, 하나도 안 아픈 미루를 데리고

오도방정을 떨었던 겁니다.  그 일만 생각하면 미루가 참 안쓰럽습니다.

 

이 경험 때문에 우리는 이제

약국에서 산 몇 천원짜리 체온계로 겨드랑이 체온을 잽니다.

 

37.2도면 별로 열 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기침하는 것만 좀 나아지면 될 듯 했습니다.

 

저는 계속 앉아서 미루를 봤습니다.

 

그러다가 어제 한숨도 못 잤기 때문에

좀 졸았습니다.

한참 졸았나 봅니다.

 

그때까지 제 등 뒤에서 뭔가를 하던 주선생님이

한마디 하십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열 조금 나는 거..그건 미루가 감기랑 싸우고 있는 중이라는 거잖아.

좀 있으면 더 건강해지고, 더 크고 그럴거야..."

 

이런 아름다운 분위기에서

더 졸 수가 없어서 정신을 차렸습니다.

 

오늘 하루 내내 기침감기 박멸을 위해서

온도도 적당히, 습도도 적당히 맞춰주는데 신경을 썼습니다.

 

미루는 전 세계 감기 걸린 애기 중

가장 큰 목소리로 하루 종일 보채고 울었습니다.

 

주선생님은 나름대로 자기만의 방법으로

미루를 위해 애썼습니다.

 

"나, 지금 미루감기에 좋은 것만 먹고 있다~~

아까는 생강차..지금은 매실차.."

 

감기에 좋은 차를 마시면

그게 젖을 통해 나와

미루 감기를 낫게 하리라는 주장입니다.

 

어떻게든 감기만 나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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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한테 말걸기

저와 주선생님이

서로한테 할 얘기를

미루한테 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거 신기한 습관입니다.

 

"미루야, 엄마 준비 됐다. 젖 먹자~~!!"

 

미루를 쇼파로 데리고 오라는 소리입니다.

 

"자, 엄마가 업어줄께 이리 와~"

 

아기띠를 멨으니까

미루를 안아 올려달라는 얘기입니다.

 

주선생님은 주로 저에게

미루한테 뭔가를 해주라고 할 때

이런 식으로 말을 합니다.

 

"미루, 트림할래?"

 

저는 졸다가도 달려가서 그 무거운 애를 번쩍 들고 트림을 시킵니다.

 

미루한테 말걸기는

'티격태격'이 심각해지지 않도록 하는

용도로도 쓰입니다.

 

주선생님이 유난히 피곤해 해서

거의 점심시간이 다 돼서 일어났습니다.

 

때마침 미루도 일어나서 보챕니다.

 

아침부터 일어나서 기다렸던 저는

주선생님한테 왜 늦게 일어났냐고 말할 순 없으니까

괜히 미루를 구박합니다.

 

"아침부터 울지 마~~어휴, 진짜....

아빠..배고파 죽겠단 말야, 이놈아~~"

 

"미안해..."

 

주선생님이 대답합니다.

 

제가 개발한 이 방법이

저에게 그대로 돌아올 때도 많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는데

마사지 시간에 또 늦은 지난 금요일 아침,

아무래도 제가 깔끔 떤 것 때문에 시간이 지체된 듯한 상황이었습니다.

 

주선생님 역시 미루한테 얘기합니다.

 

"미루야...빨리 가자~

오늘은 일찍 일어났는데도 늦었네..."

 

 

미루한테 말걸기는 때때로,

심각해진 분위기를 푸는 데도 쓰입니다.

 

미루가 하도 안 자서

제 신경질이 섭씨 100도를 넘었을 때의 일입니다.

 

주선생님이 갑자기 물었습니다.

"미루 왜 이렇게 안 잘까?"

"그러게 말야.."

"사람은 왜 그렇게 뭐든지 오래 걸려?"

"내 말이..사슴은 태어나자마자 걷드만...

"동물들은 불면증 없지?"

"글쎄..."

"부엉이는 불면증인가? "

 

주선생님, 우리 집에서 금기시되는

썰렁한 유모어를 합니다.

 

귀찮아서 그냥 대답했습니다.

 

"아마, 아닐거야.."

 

"미루야~이거 봐..

내가 썰렁한 개그 했는데, 아빠가 진지하게 대답하잖아..

저게 피곤하다는 증거야..

그러니까, 울지 말고 자...알았지~?"

 

어이가 없어서 화를 풀었습니다.

 

두 사람이었다가

세 사람이 되니까

이런 건 좋은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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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의 증거4

"아저씨..이 오징어 한 마리 얼마예요?"

"1500원이요.."

"그럼, 한 마리만 주세요.."

 

오징어를 사다가

오징어볶음을 해 먹었습니다.

 

착한 주선생님은

너무 맛있다고 잘 먹습니다.

 

저도 맛을 봤습니다.

이런. 정말 맛있습니다.

 

요리의 원리를 점점 깨우쳐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근데 희한하게

장 볼 때 가격은 잘 신경을 안 씁니다.

배가 불렀습니다.

 

주선생님이 마트에 가서

오징어를 사왔습니다.

두 마리에 2천원이랍니다.

 

"어..그럼, 한 마리에 천원이네.."

 

가격에 신경을 안 쓰던 저는

그 전에 제가 산 오징어 보다

주선생님이 산 오징어가 500원 싼 것을 알고

갑자기 정신이 집중되는 걸 느꼈습니다.

 

그러다 말았습니다.

 

지칠 줄 모르고 보채는 미루를 달래기 위해

공원에 나갔다가 방송을 들었습니다.

 

"오징어...열마리에 5천원..5천원.."

 

제 눈과 귀가 한꺼번에 그 곳으로 향합니다.

 

"그렇다면, 한 마리에 5백원..."

 

역시 세상은 알면 알 수록 새롭습니다.

1500원이면 참 싸다고 생각했던 오징어가

천원짜리도 있고, 5백원짜리도 있습니다.

 

주먹을 불끈 쥐고 옆에 있던 주선생님께 얘기했습니다.

 

"우리, 저거 열마리 살까~?"

 

제 알뜰함이 매우 대견했습니다.

주선생님, 호응하면서 대답합니다.

 

"열 마리 다 뭐 할라고?"

 

"...알았어.."

 

하지만, 가격비교를 하기 시작한 건

역시 발전한 겁니다.

자신감이 생깁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이전에도 뭐, 딱히 싼 물건 놔두고 비싼 물건을

산 적은 없었던 것도 같습니다.

더욱 자신감이 붙습니다.

 

그날 저녁 두유 한 박스를 사온 주선생님이 묻습니다.

 

"상구..그 동안 베지밀 사오다가, 삼육두유 사오다가 그랬잖아.."

"응.."

"가격 봤었어?"

"아니...두 개가 비슷하겠지 뭐.."

"삼육두유가 5000원이나 비싸구만...지금까지 가격 한 번도 안 보고 사왔었단 말야?"

"...응"

"가격 좀 보고 사오지..."

 

가격 봤다고 할 걸

괜히 솔직히 말했다가 혼났습니다.

 

가격비교 분야에

막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는데

불의의 일격입니다.

 

그 동안 가격표 안 보고 마구 장을 봤던

뼈아픈 과거를 우선 반성부터 해야겠습니다.

 

그래도, 가격 신경 쓰기 시작한 건

주부의 증거가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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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청

미루가 하도 안 자니까

재우는 게 중노동이고

자고 나서도 좌불안석입니다.

 

요새는 낮에 1시간 30분 고생해서

40분쯤 재우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안 자는 것 보다는 백번 낫습니다.

 

다만 중간에 20분쯤 자고 일어나는 일이

몇 차례 있었는데

 

그때부터는 몸의 모든 안테나가

미루가 자는 방으로 향해 있습니다.

 

겨우 재우고 나와서 설거지를 합니다.

 

온갖 소리가 다

미루가 깨서 보채는 소리

앵앵거리는 소리로 들립니다.

 

밖에서 부는 바람 소리

바람에 창문이 살짝 움직이는 소리 정도는

미루가 깨는 소리랑 헷갈렸다가도

"아, 무슨 소리였구나"하고

금방 알아내지만

 

그렇지 않은 소리들이 많습니다.

아파트가 살아서 움직이는 소리들입니다.

 

도저히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는

온갖 소리들이

하여튼 여기저기서 무지하게 납니다.

 

온 신경은 더욱 미루가 자는 방에

집중됩니다.

 

그나마 이런 소리들은 딴데서 들리는 소리입니다.

 

심각한 건 제가 내는 소리들입니다.

 

설거지라도 할라치면

하여튼 조심성 없게

꼭 그릇 부딪히는 소리를 크게 냅니다.

 

그러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주변에서 나는 작은 소리들이 

전부 미루가 깨서 내는 소리로 들립니다.

 

설거지 하다가 몇 번씩

물을 끄고 귀를 기울입니다.

 

가만히 가서 방문에 귀를 댑니다.

 

문을 열어볼 용기는 안 생깁니다.

잘 자고 있는 데 괜히 문 여는 소리 때문에 깨면

진짜 손해이기 때문입니다.

 

"에이~인제 환청이 들리네~"

 

주선생님의 말씀입니다.

 

드디어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미루가 보채는 소리가 귀에서 맴도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저는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주선생님도 그렇답니다.

 

"미루 깬 것 같은 소리가 들려..환청이야...환청.."

"너도 그래? 나도 그런데..."

"어? 나도 그렇고 너도 그러면...이건 진짜 깬 거 아냐?"

 

다행히 미루는 깨지 않고

잘 자는 경우가

중간에 깨는 경우보다는 많습니다.

 

근데 우리는

계속해서 미루의 우는 소리가 귓가에 맴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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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

백일쯤 되면

애들 머리카락이 다 빠진다더니

 

미루 머리카락도

꽤 많이 빠지고 있습니다.

 

젖 먹이고 나서 보면

수유쿠션에 머리카락이 여기저기 붙어 있습니다.

 

누워있던 자리에도

머리카락이 몇 올씩 떨어져 있습니다.

 

너무 무성해서

머리 속이 전혀 안 보였었는데

이제는 드문 드문 머리 속도 보입니다.

 

그런데 미루는 처음 날 때부터

워낙 머리숱이 많아서

웬만큼 머리가 빠져서는 티가 안 납니다.

 

분명히 많이 빠지고 있긴 한데

그래도 3살된 애들 보다 머리 숱이 많습니다.

 

주선생님도 비슷합니다.

 

한 열흘 전쯤 전에

친한 후배가 아이를 데리고 집에 왔었습니다.

미루랑 10일 정도 차이 나는 아이의 엄마입니다.

 

제가 잠시 밖에 뭘 사러 갔다 왔더니

얘가 부엌 한 구석에 서서 자기 머리를

막 쥐어 뜯고 있었습니다.

 

"너...뭐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사실 무척 놀랐습니다.

 

자기 집에서 어떤 여자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자기 머리카락을 한 움큼씩 뽑고 있는 장면을

발견하면 보통은 심장에 큰 무리가 갑니다.

 

하지만 저는 그 와중에도

휴머니즘 정신을 발휘해서 물었습니다.

 

"너..어디 아퍼?"

 

그 친구가 대답했습니다.

 

"아니요...이 쯤 되면 산모는 머리가 많이 빠진대요.."

 

전혀 몰랐었는데

정말 머리가 많이 빠진답니다.

 

방에 있던 주선생님이 나오더니 한 마디 합니다.

 

"백일 지나면 애도 머리 빠지고 엄마도 머리 빠진대.."

 

처음 안 사실입니다.

 

"근데, 넌 왜 안 빠져?"

 

이상하게 주선생님은

아직 머리가 안 빠집니다.

 

어쩌면 산후조리를 잘 해서 그럴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생각과 동시에 주선생님한테 얘기했습니다.

 

혹시 제가 열심히 한 덕분이라면

이런 건 짚고 넘어가줘야 합니다.

 

"음...그럴 지도 몰라. 근데 우리 동생도 5개월 지나서 머리 빠졌대.."

 

산후조리를 잘해서라기 보다는

그냥 집안 내력이 그런가 봅니다.

 

저도 고생하는데

머리카락 좀 빠졌으면 좋겠습니다.

덥수룩한 건 참 귀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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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교통

유모차를 가지고 밖에 나가보니

이만 저만 불편한 게 아닙니다.

 

오전에 병원에 갔다가

백화점으로 옮기려고 잡은 택시 트렁크에

접은 유모차가 안 들어갔습니다.

 

트렁크 문 연 체로 그냥 덜렁덜렁 매달고 갔습니다.

 

공원에서 잠시 쉬면서 우리는

맨날 버스랑 지하철만 타지 말고

우리도 차나 한 대 살까 하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주선생님 갑자기 상상의 나래를 폅니다.

 

"이야~정말 차 한대 있으면 좋겠다.

유모차도 싣고, 아예 돗자리랑 먹을 것도 싣고

돗자리에 깔 수건이랑, 음...우리 읽을 책이랑 가방도 챙기고

소풍겸 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거야..

맞아~자전거도 싣고 다니자, 이런 데 와서 자전거 타면 좋잖아.."

 

제가 대답했습니다.

"트럭 살려고?"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에 어떻게 돌아올까를 궁리했습니다.

 

"마을 버스 탈까?"

 

집까지 한방에 가는 마을버스가 있긴 한데

유모차를 가지고 타는 건 못 할 짓입니다.

다른 사람들 눈치도 보일 것 같습니다.

 

"공원 가로질러서 버스 정류장 가면

150번 버스 다니는 데 그 중에 저상버스 몇 대 있거든?

그거 기다렸다 탈까?"

 

그러면 좋은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겁니다.

몸이 피곤해서 그렇게는 도저히 못 할 것 같았습니다.

 

"에이...그냥 또 택시 타자.."

 

택시를 잡고 타는데

택시 뒤에 따라오다 멈춰 선 차들의 눈치가 보입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습니다.

한 팔에 매달려 있던 가방이랑

이것저것 장 본 물건들 먼저 싣고

유모차에서 애 꺼내서 안고

유모차 접어서 트렁크에 싣는 데

시간이 한참 걸렸습니다.

 

택시 한번 타는 데 정신이 없습니다.

 

어른 혼자나 둘이 택시 탈 때랑은

타는 속도가 완전히 다릅니다.

 

집에 도착해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갑자기 주선생님이 외치셨습니다.

 

"애하고 같이 다니는 방법을 알았어~~!!!"

"뭔데?"

"슬로우~~!!"

 

어차피 혼자가 아니니까

느릴 수밖에 없고,

그럴거면 당당하게 느리게 움직이자는 겁니다. 쫄지말고.

 

아까 택시 탈 때, 그리고 내릴 때

제가 자꾸 눈치보고, 신경쓰여 하는 걸 알았나 봅니다.

 

'슬로우'는 우리 마음 가짐으로

괜찮은 것 같긴 합니다.

 

하지만, 유모차가 맘 편히 다닐 수 있는

교통 체계가 만들어지는 게 훨씬 중요합니다.

 

돈도 없는데, 차 사게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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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재우기 위해 집을 나서다

오늘은 아침 10시부터

미루가 보채기 시작했습니다.

 

어제 결심한대로 미루를 번쩍 들어 안아서

유모차에 태우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너무 보채는 게 걱정이 돼서

병원으로 먼저 갔고 아픈 데는 없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인제 어디 갈까?"

 

택시를 타고 백화점엘 갔습니다.

 

평일 대낮에 백화점에는

대체 어떤 사람들이 올까 궁금했었는데

 

그곳은 유모차의 세상이었습니다.

 

수십만대의 유모차가

저희들 앞에서, 뒤에서 지나갑니다.

저 앞쪽 코너를 돌아나오고, 길을 건넙니다.

 

떡볶이를 사먹는 엄마들 4명 뒤엔

유모차 4대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아이스크림 사달라고 보채는 애를 달래면서

유모차를 끌고 가는 엄마도 있습니다.

"응~아이스크림이 아직 꽁꽁 안 얼었대.."

별 뻥을 다 칩니다.

 

자기 유모차를 자기가 끄는 애들도 있습니다.

엄마가 좀 편해보입니다.

 

이런 저런 모습을 보면서

육아가 여자에게 일방적으로 맡겨져 있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그렇게 백화점 이곳 저곳을

3시간 동안 왔다갔다 했습니다.

 

"인제 집에 갈까~?"

"지금 들어가면 또 울것 같애.."

"그럼, 조금만 더 있자.."

 

둘 다 피곤해서 죽을 지경이 됐습니다.

너무 집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완전히 집에서 쫓겨난 사람들 신세입니다.

 

"그러지 말고 우리 좀 편하게 쉴 수 있는 데를 찾아보자.."

 

백화점 옆 공원을 갔습니다.

그 사이에 미루는 놀랍게도 잠이 들었습니다.

 

공원 안에서 벤치를 찾은 우리는

혹시 다른 사람이 앉을까봐

서둘러서 벤치를 차지했습니다.

 

주선생님은 옆으로 누워서 잠을 청했고

저는 그 옆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집에서 쫓겨난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마침 아주머니 한 분이 유모차를 끌고 지나가더니

자는 미루와 안 자고 있는 자기 아이를 번갈아 보면서 말합니다.

 

"애기 자네...너도 자라...휴..."

 

아, 그 심정이 이해가 갑니다.

 

30분 쯤을 그렇게 앉아 있었습니다.

벤치를 덮고 있던 나무그늘이 옆으로 옮겨갈 때 쯤

인제 일어나서 장을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아까 그 아주머니가 다시 우리 앞을 지납니다.

애기는 아직도 안 자고 있습니다.

 

마트에 장을 보러 들어가니

그곳 역시 엄마와 아이들이 총출동입니다.

 

한 엄마는 유모차를 끌고

한 손엔 장바구니를 들었습니다.

 

애가 둘인 엄마는 한 손으론 큰 아이 손을 잡고

끌고 온 유모차의 의자 앞쪽으로 작은 아이를 앉히고

의자 뒤쪽에 물건을 이것저것 놓습니다.

 

우리는 제가 유모차를 밀고, 주선생님이 카트를 미니까 훨씬 낫습니다.

시식 코너에서 강세를 보입니다.

 

그럭저럭 장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싱크대엔 설거지 거리가 그대로 있고

기저귀도 여기저기 널려 있습니다.

아침에 잠깐 켰던 컴퓨터는 켜진 체이고

먹고 남아서 냉장고에 넣어두려던 가지볶음은 식탁 위에 그대로 있습니다.

 

아침의 참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합니다.

그래도 집이 편합니다.

퉁퉁 부은 다리로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살 것 같았습니다.

 

...

 

30분 후에

우리는 보채는 미루를 안고 다시 밖으로 나가서

백화점 보다 배는 시원한 공원 공기를

1시간 30분 동안 실컷 마시고 들어왔습니다.

 

온 삭신이 다 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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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잠자는 게 문제다

3달간 빛나는 노력으로

미루 잠을 재웠었는데

 

요새 미루가 낮잠을 안 자기 시작했습니다.

 

일주일째 낮에 보채는데

주선생님과 저는 거의 완전히

녹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써봤던

모든 방법들이 안 통합니다.

 

물소리, 세탁기 소리..안 들리나 봅니다.

다리 흔들어 주기를 하면

발을 막 차면서 싫어합니다.

 

안아주면 조금 진정이 되지만

7kg이 넘는 사람을 계속 안아주는 건

산모한테나 저 한테나 별로 안 좋아서

다른 방법이 낫겠다 싶습니다.

 

물티슈 포장지 뽀시락 소리는 조금 효과가 있긴 한데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막 비벼야

겨우 반응을 보입니다.

20초 정도만 해도 팔 근육이 땡겨서 오래 못합니다.

 

결국 우리는

'외출'을 택했습니다.

 

오늘 낮에도 미루가 보채기 시작하자

저는 미루를 번쩍 들어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오늘은 오전에 샤워 좀 하고

이쁘게 면도도 좀 해야겠다.."

 

집에 있으니까

자꾸 세수도 안 하고

수염도 덥수룩합니다.

 

아침에 정신없어서

세수하는 걸 놓칠 때도 있지만

맨날 사무실 나가다 안 나가니까

예전에는 일요일날만 하던 버릇을

매일 합니다.

 

어쨌든 그래도

오늘은 좀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싶어서

샤워하고 면도해야겠다고 맘 먹었었는데

 

생각보다 일찍 미루가 보챘습니다.

 

머리는 여기저기 떠 있고 눌리고

수염은 그대로여서

어린 애기 몰래 데려가는 나쁜 사람 인상이지만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현숙~~쉬고 있어~

내가 어떻게 해볼께..."

 

유모차에 태웁니다.

미루는 이내 울음을 그칩니다.

 

공원을 한 시간을 돌았습니다.

공기도 좋고 괜찮았습니다.

 

주선생님 좀 쉬었는지

아예 외출 준비를 다 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결국 우리는

근처 여성사전시관에 가서

아무도 없는 전시관 구경도 하고

외식도 하고

또 괜히 서성거리기도 하다가

 

6시가 다 돼서 집에 들어왔습니다.

 

미루는 안 울었습니다.

중간에 잠도 30분쯤 잤습니다.

 

오늘은 매우 성공적인 날입니다.

그러나 내일부터는 또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입니다.

 

일단은 들고 나갈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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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한 두려움

" 상구가 침대에서 자면 안돼~?"

 

미루를 침대에서 재우기로 하고

저는 바닥에서 자야겠다고 얘기하니까

주선생님이 보인 반응입니다.

 

제가 바닥에서 자는 게

안쓰러운 거면

 

"괜찮아..내가 바닥에서 잘께~"

라고 해야 정상인데

이상하게 얘기합니다.

 

"왜~?나는 바닥에서 자도 괜찮아..."

"아니, 그게 아니라..나 무서워서 그래.."

 

자기가 자다가 미루를 깔아뭉개거나

팔을 휘둘러서 때릴까봐 걱정이랍니다.

 

생각해보니까

좀 크면 전혀 안 할 걱정들을 참 많이 합니다.

 

대부분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인데

자꾸 머리속에서 상상을 합니다.

 

옆에서 자다가 애를 눌러버리면 어떡할까 하는 걱정은

저도 몇 번씩이나 했었습니다.

 

꿈인지 사실인지 구분은 잘 안 가는데

잠결에 한번 팔꿈치로 찍은 적이 있기도 합니다.

제 양심의 목소리한테 물어보니까

꿈이 아니랍니다.

 

제가 원래부터

인생의 좌우명이 '안전제일'이어서

다치는 문제는 굉장히 신경 쓰는 편인데

그런 습관 때문이 아니더라도

하여튼 애기는 신경이 많이 쓰입니다.

 

옷 입히다가도

혹시 손가락이 꺾이면 어떡하나

조심조심합니다. 엽기적 상상입니다.

 

귀에 조금이라도 물이 들어가면

중이염 걸린다고 호들갑입니다.

 

자다가 베게 같은게 얼굴 위로

쓰러지면 안 되니까 주변 정리를 다 합니다.

 

미루가 자다가

몇 번 "커어억~~" 소리를 냈는데

저와 주선생님은 서로 얼굴을 쳐다 보면서

"미루 숨쉬나 봐봐..."하고는

꼭 확인을 합니다.

 

 

결국 미루 옆에서 잠을 잔 주선생님

아침이 됐는데 두눈이 쾡합니다.

 

"에이~그냥 내가 침대에서 잘래~"

 

힘차게 얘기하더니

밤새 무지하게 신경이 쓰였던 모양입니다.

 

"내려 와서 잘래?"

"응~~~"

 

바닥으로 내려오더니 말합니다.

 

"어휴~~인제 좀 편하게 잘 수 있겠다..."

 

주선생님은 이내 잠이 들었습니다.

한결 편한 얼굴입니다.

저는 혹시 미루가 어디 멍든데는 없는지

살펴봅니다.

 

요즘은 미루한테 새로운 습관이 생겼습니다.

 

낮에는 안 자는 대신

밤잠 자기 황제로 등극했는데

12시 방향으로 재우면 아침에 일어날 때는

머리가 3시를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 비상입니다.

자면서 움직이기 시작한 건데

하루하루가 다른 애기라서

또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모르니까

혹시 침대에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상상을 합니다.

사방을 베개로 바리케이트를 쳐줍니다.

 

안전이 제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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