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날짜 가는 걸 자꾸 잊어 먹는다

출근할 때는

언제나 정신없이 집을 나서지만

 

오늘이 몇일인지,

뭘 해야 하는 날인지 등등을

잊어먹진 않았는데

 

집에만 있다보니까

날짜 가는 것도 잊고

다른 것도 많이 잊습니다.

 

처음 육아휴직 하고 나서

한 달 정도는 세수를 거의 안 하고 살았었습니다.

 

이것으로 제 깨끗한 이미지는 끝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랬습니다.

 

나갈 일이 없고

잠도 자는 둥 마는 둥에

계속 전쟁 상태이니

세수를 할 겨를도

특별히 얼굴이 깨끗해야 할 일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가끔 세수를 하고, 면도도 하면

 

황사 먼지 앉은 자동차 창문을

걸레로 쓰윽 닦았을 때 나타나는

깨끗한 유리창 같은 느낌이 

 

얼굴에서 느껴졌습니다.

제가 보기엔 분명히 그랬습니다.

 

계속 밖에 안 나가니까

얼굴이 점점 하얘져서 더 그랬습니다.

 

하루 내내 약간 어두컴컴한 집에서

지지고 볶고 하다

오후 2~3시쯤 되면

항상 두통이 왔었는데, 전 그게 육아가 너무 힘들어서 그런 걸로만 알았습니다.

 

근데, 그 두통이

나중에 환기 좀 시키고

잠깐 햇볕 좀 쬐니까 금새 없어졌습니다.

 

맨날 나돌아 다니다가

집에 갇혀 지내다보니까 별 증상이 다 생겼던 겁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정말 멍하게 지냈습니다.

 

오전 2시간을

미루를 재우기 위해 실랑이하다가

바톤을 주선생님에게 넘겨줬습니다.

 

링 위에 올라선 주선생님은

아주 꽉 껴안기와 엉덩이 퍽퍽 때리기로 미루를 제압했는데

전 그 사이 잠이 들었습니다.

 

실랑이 했던 그 두시간이 워낙 힘들어서

자는 내내 악몽을 꿨습니다.

 

"흐흐흑...상구~큰 애가 나 한테 매달려 있어..."

 

주선생님은 며칠 전에

거의 공포 영화 수준의 꿈을 꾸다가 잠꼬대를 했었는데

그 심정이 이해가 갔습니다.

 

점심을 먹고

'이른 오후 잠' 재우기에 돌입했습니다.

 

그 실랑이는 오후 3시 30분까지 계속됐고

미루는 겨우 잠이 들었습니다.

 

5시쯤 셋이서 같이 외출을 했습니다.

 

유난히 맑은 날씨가

몸을 감쌉니다.

 

"오늘이 무슨 날인데, 저 집에 태극기가 걸려있지?"

 

눈이 있는대로 풀려서 주위를 두리번 거리던 제가 물었고

주선생님이 대답합니다.

 

"오늘? 오늘 개천절이잖아.."

"그래? 몰랐네...하여튼, 날짜 가는 걸 몰라..."

"오늘 10월 3일, 개.천.절..월요일.."

"그렇구나, 나도 오늘이 월요일인 건 알았는데.."

 

주선생님 그 정도 얘기했으면 됐지

뭘 그걸 또 확실히 입증할려고

핸드폰을 꺼내서 달력을 보여줍니다.

 

"자~봐~~...어?"

 

오늘은 10월 2일 월요일이었습니다.

 

"에이~개천절 아니구만.."

"저 집은 왜 태극기를 달고 그래...? 궁시렁 궁시렁"

 

주선생님은 비겁한 핑계를 댔지만

전 매우 인정 많게도 날짜가 헷갈릴 수도 있다고 해줬습니다.

 

오늘은 10월 2일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많이 컸다

미루가 많이 컸다는 게

여기 저기서 느껴집니다.

 

1.

 

오늘 낮에 미루를 재우려고

침대에 눕혀 놓고

 

다양한 잠재우기 의식을

진행 중이었습니다.

 

주선생님, 저를 응원하기 위해서 들어왔다가

미루의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더니

미루 옆에 와서 살짝 누웠습니다.

 

그러더니, 집에 굴러다니는 네모난 쿠션을

미루 옆에 세운 다음

살짝 건들어서 미루쪽으로 넘어지게 했습니다.

 

그 쿠션은 미루 얼굴을 덮쳤고

주선생님은 쌤통이라는 얼굴로

씨익 웃었습니다.

 

그러나

곧이어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미루가 쿠션을 밀쳐내서

쿠션이 주선생님 얼굴을 덮친 것입니다.

 

힘이 대단하기도 하고

이렇게 반응하는 게 재밌기도 합니다.

 

"어~?"

 

주선생님 다시 쿠션을 툭 밀어서

미루한테 보냅니다.

 

미루도 지지 않습니다.

다시 주선생님의 얼굴을 쿠션이 덮습니다.

 

쿠션은 마치 고개가 왼쪽으로 까딱, 오른쪽으로 까딱하듯이

한번은 왼쪽으로 한번은 오른쪽으로 두 사람의 얼굴을 덮칩니다.

 

주선생님은 원래 이런 걸 재밌어 하는 사람이고

미루도 신나서 팔딱팔딱 거렸습니다.

 

 

2.

 

여전히 뒤집을 생각이 전혀 없는 미루를

번쩍 들어서 엎어놨습니다.

 

고개를 들고 여기저기를 보는데

좀 힘들어 하는 것 같애서

앞에서 애벌레 인형을 흔들어주었습니다.

 

그런데 미루가 갑자기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더니

몸을 휙 틀어서

다시 누운 자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뒤집기 하는 애들이

그 다음 과제로 삼는다는

'재뒤집기'를

미루가 해버린 것입니다.

 

더하기를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빼기부터 해내는 놀라운 장면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미루는 정말

대단한 아이라는 식으로 자랑할 일은 아니고

그냥 좀 신기합니다.

 

생각 같아서는 그냥

뒤집기부터 좀 빨리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엎어 재울려고 했는데

뒤집기는 안 하고 하도 누워만 있어서

머리통 하트 모양 영영 굳어지게 생겼습니다.

 

 

 

3.

 

미루는 손도 많이 커졌습니다.

 

"상구~~이거 봐, 이거~~"

 

주선생님이 절 애타게 찾는 걸 보니

또 별 일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가봤습니다.

 

"이거 봐봐~~나, 미루랑 깍지 꼈다!!"

 

주선생님이

정말로 미루랑 깍지를 끼고 있었습니다.

 

주선생님의 손가락 사이 사이로

미루의 손가락 끝부분이 아주 조금씩

뽀글뽀글 나와 있었습니다.

 

어쨌든 깍지 낀 건 맞습니다.

 

미루는 별 의미를 두지 않는 표정으로

딴 짓이었지만

 

주선생님과 저는 둘 다 또 한차례의 호들갑으로 호흡을 맞췄습니다.

 

 

 

4.

 

저녁에 쓰레기 봉투에

어떻게든 쓰레기를 많이 넣어보려고

 

손으로 봉투 옆면을 따라

쓰레기를 우겨 넣다가

 

"퍼억~" 하고

봉투가 터졌습니다.

 

"현숙아.."

 

터진 봉투 사이로

종이 기저귀를 움켜쥔 제 손이

삐져 나와 있고

 

달려온 주선생님은

얼굴 표면 곳곳에서 웃음이 분출되는 걸

참으면서 저를 위로해주는 무슨 말인가를 했습니다.

 

"그게 정녕 나를 위로하는 표정인가?"

 

주선생님은

제가 생활 곳곳에 구멍이 참 많다고 합니다.

 

뭘 해도 매끄럽고 때깔나게

못하는 제 생활실력은

미루의 발달에 비하면 좀 느리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로맨틱한 주선생님

두 달도 더 된 이야기입니다.

 

"상구, 상구~"

 

주선생님은 꼭 아쉬울 때면

저를 두 번씩 부릅니다.

 

"왜?"

 

주선생님은 대답 대신

 

손으로 잡아 늘려도

그 만큼은 안 늘어날 정도로

입을 양쪽으로 쭉 찢은 웃음을 하고

눈은 가늘게 뜬 채로 저 한테 접근합니다.

 

"또 무슨 사악한 부탁을 할려고~~?"

 

"헤헤~있잖아..나 할 말 있어..."

 

"뭔데?"

 

"블로그 있잖아..."

 

"나, 육아일기 쓰는 거?"

 

"응, 그거...거기에 왜 나는 맨날 엽기적으로 나와?

그리고 나는 왜 항상 잠만 잔다고 써?

그런 거 말고 나의 로맨틱한 면들을 좀 강조해주면 안될까?"

 

그럴 줄 알았습니다.

가증스러운 웃음 뒤엔 항상 뭔가가 있습니다.

 

"지금 로비하는 거야?"

 

"아니...로비라기 보다는..."

 

"나한텐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가 있고,

내가 원하는 걸 쓸 양심의 자유가 있으니까..로비하지 마셔..."

 

"알았어...피..."

 

주선생님 의외로 쉽게 물러납니다.

 

그날 밤.

 

미루랑 놀고 있는데

주선생님이 저를 부릅니다.

 

"상구~저기 달 봐봐~~"

 

"달? 응...봤어...왜?"

 

"뭐, 보이는 거 없어?"

 

밤에 하늘에 달 말고 달리 보이는 게 있을리 없었지만

그래도 시선을 이리 저리 움직여가며 뭐가 또 있나 살펴봤습니다.

 

"보여?"

 

"우헤헤헤~~사람이네~~"

 

주선생님이 베란다 창문에다가

입김을 분 다음 손가락으로 사람을 그려놓았습니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

그 사람은 꼭 달 위에 서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나, 로맨틱하지?"

 

내가 그럴 줄 알았습니다.

쉽게 포기해서 이상하다 했었습니다.

 

"그래~너 로맨틱하다~~"

 

"히히~~"

 

주선생님,

좋다고 다시 베란다로 갑니다.

 

어느새 달 주위엔

별도 뜨고 UFO도 한 대 날아갑니다.

 

"알았어, 알았어~~ 블로그에다 너 로맨틱하다고 써 줄께..

근데, 달에 토끼도 한 마리 있으면 좋겠다..방아 찧는 걸로.."

 

"그래? 알았어~~"

 

주선생님은 신나 하면서

토끼를 그리기 위해 벌떡 일어납니다.

 

근데 가만히 보니까

주선생님 오른손에 매직이 들려 있습니다.

 

"현숙아...너 아까 그 그림들 입김 불어서 그린 거 아냐?"

 

"아니? 이걸로 그린 건데.."

 

"창문에다가?"

 

"응.."

 

주선생님은

이번에는 방아찧고 있는 토끼를

아주 정교하게 그려 넣었습니다.

 

입김과 손가락으로는 도저히 그려 넣을 수 없는

세밀화입니다.

 

로맨틱해지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하는 주선생님이 그린

그 그림들은

아직도 베란다 창문 위에 그대로 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집중력

애들은 뭐 하나를 하면

참 집중을 잘 하는 것 같습니다.

 

미루도 그렇습니다.

 

이 시기 쯤 되면 아이들은

잡히는 건 뭐든 입으로 가져가는 데

 

요새 미루가

'뭐든 입으로 가져가기'를 하면서

보이는 집중력이 정말 대단합니다.

 

처음에는

입고 있는 옷을

자꾸 손으로 걷어 올려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배가 차면 안돼서

천 기저귀나 수건으로 배를 덮어주면

그것도 손으로 끌어 올려서

입에 집어 넣었습니다.

 

자기 머리 보다 큰 주사위 인형도

어느새 손으로 잡더니

입으로 가져갑니다.

 

키가 비슷한 애벌레 인형을

배위에다 올려주면

이것 또한 입으로 끌어 당깁니다.

 

그 큰 애벌레 인형을 입으로 가져가봐야

애벌레 더듬이 하나도 입에 다 못 넣을 뿐더러

 

실컷 자기 손으로 끌어 당겨놓고서는

애벌레의 습격에 당황한 병사의 얼굴을 하고

이번에는 애벌레를 밀쳐 내려고 낑낑 댑니다.

 

이렇게 입으로 뭘 빠는 습관이

이제는 다양하게 응용되고 있습니다.

 

"미루야, 인제 자야지~? 자장, 자장~우리 애기~"

 

잘 한번 재워볼려고

미루를 번쩍 안아서 노래를 불러줬는데

갑자기 왼쪽 팔이 스물스물 간지러워집니다.

 

미루가 제 알통을 열심히 빨고 있습니다.

 

"아이고....미루 너 혹시 배고픈 거냐? 젖 먹은지 얼마 안됐잖아..."

 

자세를 바꿔서

미루를 세워 안았습니다.

 

"쪽~쪼옥~~쪼옥쪼옥"

 

포기하지 않는 미루

이번에는 제 어깨를 열심히 빱니다.

 

이래저래 미루를 안정시키고 난 후

침대에 눕혔습니다.

 

마음에 여유가 생겼는지

미루가 팔 다리를 이리 저리 움직입니다.

 

덩달아 긴장이 풀린 우리는

미루 옆에서 촐싹 대다가

큰 베개를 미루 위로 쓰러뜨렸습니다.

 

미루 보다 훨씬 큰 베개가

미루를 덮쳐서 순간 놀래기도 했지만

 

이미 신생아 단계를

훌륭하게 졸업한 미루가

그깟 베개에 눌려서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 것이라서

 

저는 거의 아무 반응 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고

 

제 옆에 있던 주선생님이

고개를 숙여

베개 밑에 있는 미루를 쳐다봤습니다.

 

"상구~~~미루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 줄 알어?"

 

주선생님은

놀라움 반,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 지 모르는 표정 반의 얼굴로

저를 보더니 입을 쩌~억 벌렸습니다.

 

그리고 마구 입을 오므렸다 폈다 합니다.

 

"미루가...깔려 있는 상태로 ...베개를 빨고 있어...."

 

정말 놀라운 집중력입니다.

 

저는 순간,

바닥 청소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

실수로 수영장에 빠졌는데 물에 안 떠서 구하러 들어갔다가

그 사람이 열심히 수영장 바닥을 닦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뭘 해도 그렇게

열심히 하면 후회는 안 됩니다.

 

미루는 인제

또 다른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손으로 자기 발 잡기'입니다.

 

일어나자 마자

발을 잔뜩 들어올려서

손으로 잡고 있습니다.

 

목욕시키는데 물 속에서도

기어이 몸을 웅크려서

발을 잡습니다.

 

목욕 끝나고 눕혀 놓고 수건으로 닦아 줄때에도

다 닦고 나서 로션을 발라줄 때에도

미루는 결코 잡은 발을 놓지 않습니다.

 

'집중하기' 두 번째 라운드가 시작됐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말걸기 육아

주선생님께서

'베이비 토크'라는 책을 사서 읽더니

 

어제 밤에 저한테 한참

책 내용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핵심은 아이한테

열심히 말을 걸어주라는 겁니다.

 

대신 유의할 점이 있는데

 

짧고 간단한 문장으로 말하고

"손가락 하나, 손가락 둘"과 같이 반복을 많이 하고

아이가 내는 소리는 같이 따라 해주고

풍부한 표현으로 맛깔스럽게 말해야 한다 등이었습니다.

 

또 미루처럼 4개월쯤 되면

주위 사물을 쳐다보는데

 

그때 아이가 쳐다보는 사물이 뭔지를

열심히 얘기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아침,

주선생님이 미루를 데리고

방에 들어간 후

 

전에는 안 들리던

대화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거? 모.기.장~모.기.장~~"

주선생님의 실천이 시작됐습니다.

 

"모기~애애앵~퍽! 모.기.장~"

 

주선생님은

미루가 쳐다본 사물, 모기장을

 

모기가 날라오다가

모기장에 부딪히는 장면으로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미루가 반응합니다.

 

"어이~~"

 

주선생님이 따라합니다.

 

"어~이~~"

 

또 반응합니다.

 

"오..오..."

"오오...오오...."

 

"하아...히이..."

"하아아...히이..."

 

비슷한 상황이 계속 반복되더니

어느새 미루는 졸려합니다.

 

"으...으......"

 

그런데 주선생님은

계속 미루를 따라 합니다.

 

"으...으....."

 

이제 미루는 힘들어 합니다.

 

"으에...으에...으아..."

 

하지만 주선생님은

결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으에..으에...으아....."

 

그러더니 이제는 미루 발가락을 셉니다.

 

"발가락 하나~발가락 두울~발가락 세엣~~"

 

발가락이 열개 뿐이라서

주선생님은 곧이어 다른 걸 해야 했습니다.

 

이번엔 뭘 하나 가만히 들어봤습니다.

 

"두두두두두두두둥~~~"

 

주선생님.

되는 대로 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오호~~미루가 손으로 발가락을 잡았어요~~"

 

급기야 대사에 리듬을 붙이더니

혼자 너무 신나하면서

이번엔 '발'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발은 미루 몸에 붙어 있는 다리에 붙어 있는 발이예요~~

우와~~~발이다아아~~~~"

 

진작부터 졸려하던 미루는

이제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된 듯 했습니다.

 

"으으아아으아~~~"

 

인제 좀 재우면 좋겠구만

주선생님 이성을 잃고

계속 미루를 따라 합니다.

 

"으으아아으아~~~"

 

"이야..으으..."

"이야..으으응...."

 

미루 울음소리는 점점 짜증스러워지고

주선생님 소리는 더욱 커졌습니다.

 

"으으아..."

"으으아..."

 

"끼잉...끄..응..."

"끼잉...끄...응...."

 

 

"...."

 

 

미루가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어? 잠들었나? 그럴리가...'

 

제 생각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미루는 이제 주선생님이 도저히 따라할 수 없도록

보채기 시작했습니다.

 

주선생님 정신이 번쩍 든 모양입니다.

 

"어~미루야..인제 잘려고? 그래..그래~~"

미루를 어르고 달래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방안이 조용해졌습니다.

주선생님이 최후의 수단으로

미루한테 젖을 물린게 틀림없었습니다.

 

어느새 두 사람은 잠이 들었습니다.

 

말걸기 육아 첫날

'미루의 상태를 봐가면서 하자'고

혼자 생각했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상처

미루는 손톱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자랍니다.

 

저와 주선생님이 번갈아가면서,

생각날 때마다 미루 손톱을 깎아주기는 하는데

 

생각의 속도보다 손톱의 속도가 빠릅니다.

 

미루는 아직도 잠자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잠을 못 자고 보챌 때 이 긴 손톱이

문제를 일으킵니다.

 

졸리다고 눈을 비비다가

손톱으로 눈 주위를 긁는 건

하도 자주 있는 일이라 그러려니 합니다.

 

그저께는 기저귀를 갈아주다 보니까

오른쪽 허벅지에 상처가 3줄이나 나 있었습니다.

 

인류역사에서 허벅지는 뭔가 참을 일이 있을 경우

송곳으로 찌를 때 주로 이용되었는데

 

미루는 졸려서 그랬는지

아니면 그냥 좀 힘차게 놀다 그랬는지

손톱으로 상처를 참 선명하게도 냈습니다.

 

어제는 명실공히

상처의 날이었습니다.

 

오전에 온 몸을 꼬며 보채는 미루를

주선생님이 재우려고 노력하다가

깜짝 놀랍니다.

 

"상구~얘 이거 피 아냐?"

 

세상에 미루 오른쪽 입가에 피가 묻어 있고

 

배를 덮어준 천기저귀를

미루가 손으로 끌어다 얼굴 근처에서 갖고 놀고 있었는데

그 천기저귀 여기저기에도 피가 묻어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까

혼자 손을 빨려고 손가락을 입속에 넣으려는데

그게 잘 안되면서 손톱이 입가의 피부를

여러 차례 긁었었나 봅니다.

 

여기 저기 묻어 있는 핏자국.

이건 좀 충격이었습니다.

 

오후엔 유모차 타고 산책 나갔다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언제 그랬는지 왼쪽 볼이 눈 옆부터 입 옆까지

쭉 긁혀 있습니다.

 

회칼이나 야구방망이를 벗삼아

어렵게 생계를 유지하시는 분들에게나 있을 법한

참으로 굵고 긴 상처입니다.

 

잘 신경 써주지 않아서 자꾸 상처 나는게

많이 미안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미안한 마음을

사상 최악으로 키워놓은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역시 잠을 안 자고 보채는 미루를

요새 주선생님이 미루 재우느라고 너무 고생이 많아서

이번에는 제가 한 번 재워보겠다고 나섰습니다.

 

4달간 써먹었던 모든 방법을 동원합니다.

 

하지만 미루는 난공불락입니다.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았고

미루는 급기야 샤우팅 창법으로 울어댑니다.

인내의 한계를 느낀 저는 애타게 주선생님을 찾았습니다.

 

주선생님, 얼른 미루를 받아 안았습니다.

미루는 이제야 겨우 진정이 됩니다.

 

하지만 덩달아 열이 올라놓고 그때까지 분이 안 풀린 저는

천정을 향해 "으아아아악~~~"

소리를 질렀습니다. 딱 두번.

 

근데 이게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제 절규에 놀란 미루가

온 몸의 에너지를 집중시켜 울어댔습니다.

 

얼굴은 벌개지고,

눈물, 콧물, 땀으로 범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손가락을 입으로 집어넣었습니다.

손가락을 입에 넣는 건 자기 위안을 위한 행위입니다.

이게 제대로 되면 좀 진정이 됩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손가락을 제대로 빨리가 없었습니다.

 

대신, 미루는 그 손가락으로

아직 이빨이 나지 않은 자기 잇몸을

집어 뜯었습니다.

 

잇몸에서 피가 많이 났습니다.

 

주선생님은

미루를 안고 있다가

좀 많이 놀랐습니다.

 

저는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가슴에 큰 구멍이 뻥 뚫렸습니다.

 

미루한테 미안하고

주선생님한테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습니다.

 

이번에 생긴 마음의 상처는

좀 오래 갈 것 같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동네 아줌마들

동네를 왔다갔다 하면

많은 아주머니들을 만납니다.

 

제가 워낙 소심한 성격인데다가

상대방도 남자한테 말 걸 일은 없으니까

대화를 하는 편은 아닙니다.

 

대신, 주선생님이

미루를 데리고 한번 나갔다 오면

스쳐지나가는  모든 사람과

한마디씩 나누고, 그 결과를 저한테 얘기해줍니다.

 

 

 

1. 커피점 아주머니

 

"아이고~애가 너무 이뻐, 너무 이뻐~~"

"애는 이쁜 데, 저는 배가 안 들어가서 걱정이예요. 이거 어떡하죠, 이거?"

"아니, 뭘 그걸 들여보낼려고 그래~~그냥 놔둬..."

 

인생을 통달한 사람만이 보여주는 여유가 묻어납니다.

제가 보니까 그 분도 그냥 놔두셨습니다.

 

 

 

2. 분식집 아주머니 

 

"이야..남편이 유모차도 끌어주고...자상하네~~"

"아..네..."

"나는 애 업고 밥 먹고, 애 업고 머리 감고 그랬어..

남편이 하도 안 도와줘서 자상한 남편 보면 부러워~~"

 

주선생님은 저 자상하신 분이

현재 육아휴직 중이란 말까지는 못하셨다고 합니다. 

아주머니 컨디션에 별로 도움이 안되는 말입니다.

 

 

 

3. 공원에서 만난 힘 하나도 없어 보이는 엄마

 

"우리 애는 돌인데, 아직도 밤 중 수유해요...

자다가 몇 번씩 깨는 지 몰라요..."

 

산모들의 첫번째 소원은 '잠 한번 실컷 자보는 것'입니다.

1년이 넘어도 이 소원을 못 이루는 사람이 태반입니다.

 

모유 수유하는 엄마들이

실컷 잘 수 있도록

주변에서 많이 도와줘야 합니다.

 

 

 

 

4. 공원에서 만난 또 다른 엄마

 

"어..? 아빠는 어디 가셨어요? 아까 같이 계시더니..."

"밥 하러 들어갔어요..."

"정말이요...?"

 

 

 

5. 마사지에서 만난 엄마

 

"나 둘째 임신해서 만삭일때 시어머니 생신이라고

큰 애 데리고 내려가서 시장 가서 장 다~보고, 하루 종~일 음식 하고 왔어요..."

 

말하는 엄마의 눈에 정말 눈물이 맺혔답니다.

 

"애 처음 낳고 손목이 너무 아파서

바닥에서 일어날 때 손목 말고 팔꿈치로 짚고 일어나고 했었는데

나중에는 팔꿈치도 상했어요..."

 

"남편이 그러는데 애 5살 넘으면 자기가 키우겠대...

나는 그냥..억울해 죽겠어요...내가 실컷 고생해서 그때까지 키워놓으니까

지는 쉽게 애 키울려고..."

 

 

 

6. 그 옆에 있던 엄마

 

"남편은 뭘 하라고 구체적으로 딱 안 정해주면 그냥 가만히 있어요...

자기 보는 앞에서 내가 그렇게 고생해도, 그냥 꿈쩍도 안 해..

여보~이 장난감 집어서 저기 상자에 넣어줘요..이런 식으로 얘기해야 겨우 한다니까.."

 

 

 

7. 임신했을 때 같이 수영장 다녔었는데 오늘 우연히 만난 엄마

 

"좋겠다~~나는 주말만 기다리는데...

그때나 돼야 남편이 좀 봐주지..."

 

"남편이 밥을 해요~? 밥 해주면 정말 좋지...

모유 먹이니까 대충 라면 같은 걸로 떼울 수도 없고...너무 힘들어요..."

 

 

 

8. 병원 의사 선생님

 

"육아휴직 냈다구요~? 이야 이 집은 정말 민주적이네...뭐, 먹고 살어?"

"그래서 요새 굶고 있어요..."

 

 

 

9. 밤에 주선생님이 전화 통화한 장모님

 

"어디 가니?"

"응, 엄마...수영장...애 낳고 처음 가는 거야..."

".....역시 애는 둘이 키워야 겠다.."

 

 

동네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들 육아 때문에 힘들거나 힘들었던 기억을

마음에 몸에 가지고 있습니다.

 

장모님은 요새,

남자가 왜 육아휴직을 해야 하는지를

진심으로 아시는 분위기입니다.

 

저는 요즘 남자의 육아휴직을

법으로 의무화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애가 울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애가 울면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일찌기 육아 초반에

애 우는 소리를 구분하는 경지에 올랐지만

 

요즘은 미루가 크기도 하고

울음 소리도 좀 달라진 것 같고

 

아무튼 울음소리 구분하는게 다시 어려워졌습니다.

 

게다가 한 번 울기 시작하면

주선생님이나 저나

정신을 못 차려서 적절한 대처를 못하고 허둥대는게 문제입니다.

 

주선생님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렇고

저는 좀 괜찮은 듯 하다가 다시 정신없다가 그렇습니다.

 

한때는 이 문제 때문에

제가 주선생님을 구박도 많이 했습니다.

 

"제발 정신 좀 차려...애가 그렇게 우는 데 자꾸 젖만 물릴려고 하면 어떡해..?"

 

미루를 확 뺏어서 등을 퍽퍽 치면

"꺼억~" 트림을 합니다. 울음을 그칩니다.

 

이런 경우가 정말 여러번 있었습니다.

 

그래도 주선생님은 미루가 울면

애 우는 거 처음 본 사람처럼 당황합니다.

 

"아까 젖먹일 때..미루가 계속 우는 거야...

왜 젖 안 먹고 우나 ..계속 달래도 울어...한참 그러다가 보니까 세상에

오줌을 잔뜩 싸놨더라구..."

 

다른 애들은 오줌 싸도 하루 종일

모르고 잘만 논다더만

 

미루는 오줌싸면 그걸 못 참고

곧바로 예민함을 과시합니다.

즉시 갈아주지 않으면 피곤해집니다.

 

"왜 미루가 울면 정신이 하나도 없어지지? 기저귀 보면 되는 건데

그걸 그렇게 계속 젖만 먹일려고 했으니...."

 

"그러게..나라도 정신 차려야 하는데, 나도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새 더 그래..."

 

미루가 우는 건

졸리거나, 배고프거나, 트림을 해야 하거나, 똥오줌을 쌌을 때니까

4가지만 확인하고 적절하게 문제를 해결해주면 되는데

그걸 못합니다.

 

게다가 요즘엔 4가지 이유 말고도

예를 들면 더울 때나 자기 노는 데 옆에 없을 때

칭얼대고 울고 그럽니다.

 

"정신 좀 차리고...잘 해봐야 겠다. 예전처럼..."

 

다시 한번 마음을 다집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미루를 목욕시키고

젖을 물려 재우려고 했습니다.

 

미루가 또 꽥꽥 웁니다.

 

"어휴~~진짜.. 얘 왜 또 젖 안 먹고 울어~~"

 

주선생님 너무 짜증이 나나 봅니다.

 

이불 뒤집어 쓰고 소리라도 지를 것을 권하고 싶은 분위기입니다.

 

저도 속에서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일단 참고

 

재빨리 달려가서 미루를 안아 올려서

좀 달래주려고, 등을 토닥여줬습니다.

 

"꺼억~~"

 

미루는 트림을 안해서 운 것이었습니다.

 

잘 해보자고 마음을 다져 놓고

또 이유를 모르고 정신 없어 했습니다.

 

애 낳고 키우는 엄마들을 보니까

대부분 애가 울면 자동적으로 정신이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저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겠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버스 안에서 아이가 울 때

밖에 나갔다 집에 돌아오면서

버스를 탔습니다.

 

미루는

그 전부터 비몽사몽으로

아기띠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다른 빈 자리가 없어서

할 수 없이 햇볕 비치는 쪽 의자에 앉았습니다.

 

주선생님은 책으로 미루 얼굴을 가려서

햇볕을 막고

 

저는 혹시 잠에서 깰까봐 미루 엉덩이를

계속 토닥토닥 해줬습니다.

 

근데 오늘 날씨가 은근히 더웠던 데다

햇볕까지 받으니까

몸 온도가 슬슬 올라갑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미루도 조금씩 더워지는 모양입니다.

 

칭얼대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은 희한하게도

차를 탔는데 차가 멈추면 자주 웁니다.

차가 출발하면 울음을 멈춥니다.

 

미루도 그렇습니다.

 

칭얼대는 소리가 조금씩 커졌습니다.

창문을 열어 바람을 쏘이게 해줬습니다.

점점 긴장이 되서 엉덩이를 더욱 열심히 토닥여줬습니다.

 

"낑..낑..으에..으에.....응에...."

 

차가 좌회전 해서 큰 길로 나갔을 때

앞쪽을 보니 완전히 도로가 꽉 막혀 있습니다.

 

절망적입니다.

미루는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어..미루야...괜찮아...괜찮아..."

 

사람들 눈치가 보여서

달래는 목소리에 벌써 자신감 상실의 기운이 묻어납니다.

 

미루는 보챘다 울었다를 반복하고

 

바로 앞에 서 있던 사람부터

저 멀리 운전사 아저씨 옆에 앉아있는 사람까지

죄다 우리쪽을 쳐다 봅니다.

 

"미루가 많이 더운가봐.."

"아기띠 풀러줄까?"

 

아기띠에서 애를 꺼내는 것도 만만치 않습니다.

정신이 하나도 없고, 제 등은 땀으로 흥건합니다.

이마에서 흐르는 땀은 아예 민망하기까지 합니다.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아이고 많이 더운가보네.."하시면서

아기띠 푸는 걸 도와주셨습니다. 눈물나도록 고마웠습니다.

 

뒷자리의 젊은 여자분은

"차 출발하니까 안 우네~아이 이뻐라~~"하셨습니다.

미루보다는 우리한테 힘이 됩니다.

 

미루는 아기띠에서 탈출한 후로도

계속 울었습니다.

 

저는 이 자세 저 자세 고쳐가면서

미루를 안아보고

온갖 방법으로 달래도 봤습니다.

 

옆에서 같이 달래는

주선생님 얼굴도 까맣습니다.

 

이럴 때 가장 적당한 말은

'정말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입니다.

 

내릴 곳에서 3 정류장 쯤 남았을 때

버스에서 내려서 차라리 걷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구도 그랬어? 나도 그랬는데.."

나중에 집에 와서 주선생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근데 난 옆에 상구가 있어서 그냥 버텼어...혼자 있었으면 그냥 내렸을 거야..."

 

어쨌든 우리는 끝까지 버텼습니다.

우리를 내려주고 출발하는 버스를 보면서

아기띠 푸는 데 도와준 아주머니께 꾸벅 인사를 했습니다.

 

오랜만에 진짜 고마워하면서 하는 인사입니다.

 

제가 예전에 자주 김제 시골집에 내려갈 때

처음에는 주로 버스를 타다가 나중에는 꼭 기차만 탔었습니다.

 

버스 탔다가 애라도 한명 타는 날에는

3시간 내내 애 우는 소리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았었는데

그게 그렇게 싫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까

우는 아이 부모는 차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심정이었겠다 싶습니다.

 

애 울린다고 뒤에서 궁시렁 댔던 저의 잘못을

이제야 뉘우칩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나도 토라지다

오늘 중으로 제가 해야 할 일이 좀 있어서

어제 주선생님하고 의논을 했습니다.

 

"나..낮에 2시간이나 3시간쯤

서점엘 좀 갔으면 좋겠는데..."

 

"내일 마사지 시간 있잖아...그때 갔다와..

마사지는 나 혼자 갈께~~"

 

이 말이 저를 슬프게 했습니다.

 

오늘 마사지가 마지막 시간인걸 알면서

나한테 빠지라는 소리를

주선생님이 아무렇지 않게 하는데

기분이 안 좋아졌습니다.

 

'그래도 그 동안 쌓인 정이 있지

마지막 시간인데, 서로들 애 잘 키우라는 얘기는 하고 헤어져야지...'

 

속으로만 이렇게 얘기하고

그냥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아침 10시가 다 돼서

허겁지겁 주선생님은 병원으로

저는 마을 버스를 타고 근처 서점으로 향했습니다.

 

근데, 서운함이 전혀 가시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스트레스가 확 쌓여서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햄버거 큰 걸 하나 사서

길거리에서 막 씹어 먹었습니다.

 

높은 건물 사이로

바람이 휭~하고 불었습니다.

 

길 건너에 엄마 하나가 아기띠를 메고

건물앞 화단에 앉아 있습니다.

왼손에는 가방이 오른손에도 가방이 들려 있습니다.

 

괜히 가서 말 걸고 싶은 데 참았습니다.

 

그렇게

고통의 시간이 가고

주선생님이 왔습니다.

 

"누구 왔었어? 현선이 엄마 왔어?"

"아니.."

"어, 오늘 마지막 날인데 왜 안 오셨지?

"몰라...애가 어디 아픈가?"

 

"나 왜 안 왔냐고 물어보는 사람 없었어?"

"선생님이 물어보셨어.."

"응~그래~?"

 

"지윤 엄마는 왔어?"

"응..왔더라.."

"걷기 운동 잘 하시냐고 물어봐야 되는데...나도 갈 걸 그랬다..."

 

"나, 마사지 끝나고 엄마들 두명이랑

커피 마시면서 얘기하다 왔다~"

"어..그래? 나도 가서 얘기 했어야 되는데..."

"너 있었으면 얘기 안 하지..."

 

안 그래도 서운한데 속을 긁습니다.

"왜 얘기 안해..내가 같이 수다 떨면 다 얘기 하지..."

 

"근데, 선아 엄마는?"

"선아 엄마? 지난 번에 얘기한 그 책 샀대..

그리고 니가 얘기해 준 대로 애 일찍 재워봤는데..안 잘 줄 알았는데 잘 자서 너무 좋대..."

 

항상 얼굴이 안 좋아 보였는데

애가 잘 잔다니 다행이었습니다.

 

"근데..있잖아.."

"뭐?"

"다른 사람들은 나 왜 안 왔냐고 안 물어봐?"

"선생님이 물어봤어.."

"아니, 선생님 말고..."

"음...생각해보니까 선아 엄마가 물어봤다..지호 엄마도 물어보고.."

"그래?"

 

약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육아 스트레스는

아이키우는 아빠한테도 똑같습니다.

아빠도 비슷한 사람들이랑 수다 떨고

같이, 미운 사람 욕도 좀 해줘야 정신이 맑아집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