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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선생님 토라지다

"미루야, 엄마 봐봐~~"

 

미루의 왼쪽에는 주선생님이

오른쪽에는 제가 앉아 있었습니다.

 

어찌어찌하여

주선생님이 미루한테 한참 동안

젖주고, 몇 번씩 기저귀 갈아 준 뒤의 일입니다.

 

미루는 주선생님쪽을 보더니

바로 고개를 획 돌려서

저를 바라봅니다.

 

제가 씩 웃자

미루도 씩 웃습니다.

 

"미루야, 엄마 봐~~"

 

주선생님은 있는 대로 입을 찢어서 웃습니다.

미루는 다시 고개를 휙 돌려버립니다.

 

여유만만 해진 저는 살짝 미소를 날렸습니다.

미루가 이번에는 활짝 웃습니다.

 

"미루야~~여기 엄마~~"

 

이번에는 아예 주선생님쪽을 쳐다 보지도 않습니다.

고개가 돌아가다가 중간에 멈춥니다.

 

"미루야~~"

 

이번엔 제가 불렀습니다.

미루가 고개를 재빨리 돌려 저를 쳐다봅니다.

 

3:0이 됐습니다.

 

도저히 역전이 불가능해진 게임

주선생님은 울상이 됩니다.

 

그 이후로 서너번 같은 일이 반복됐습니다.

 

"내가 너 젖 주는 사람이고..오늘은 기저귀도 그렇게 많이 갈아줬는데..."

 

왠지 위로를 해줘야할 것 같아서 말했습니다.

"그러게, 오늘 따라 나를 유난히 쳐다보네.."

 

"아냐..미루는 아빠만 좋아해..."

"에이...아냐, 그럴리가..."

 

문득 머리속에서

미루가 혹시 저한테 분리불안을 느끼면 어떡하나

걱정이 슬슬 되기 시작했습니다.

 

몇 달 지나서

하루 종일 제 다리에 매달려 있을 미루를 생각하니

주선생님과 좀 더 친해지도록 만들 필요가 있겠다 싶었습니다.

 

"한번만 더 불러봐..."

"싫어..안 해..."

"에이 한번만..."

"안해...궁시렁 궁시렁.."

 

평소 '25'인 주선생님의 목소리 볼륨이

'5'로 떨어졌습니다.

 

미루는 이제 제가 부르지도 않는데

손발을 움직이면서 "끼약~끼아악~"소리까지 지르고

저를 향해 웃습니다.

 

주선생님 잔뜩 삐쳤습니다.

 

"어제 인터넷으로 사과 시켰으니까...내일 오겠다.."

 

갑자기 딴 소리를 합니다.

"느닷없이 그 얘기를 왜 해~~"

 

"미루가 나 한테는 관심도 없고...사과 오면 사과나 먹으면서 살려고..."

볼륨 '3'입니다.

 

미루는 여전히 저를 쳐다 봅니다.

 

주선생님은 미루가 놀던 아기 체육관을 발로 건듭니다.

"이거나 가지고 놀아야 겠다.."

볼륨 '2'가 됐습니다.

 

이제 말 하는 소리가 잘 안 들립니다.

얼굴은 불평불만이 가득차서 잔뜩 부풀어 올랐습니다.

 

"두유 먹을까?"

"두유를 먹든지 말든지..." 볼륨이 거의 꺼졌습니다.

 

 

미루는 젖 먹기 직전에만

자기를 좋아한다고

주선생님은 생각했습니다.

 

"내가 젖 짜줄테니까...앞으로 니가 대신 먹여.."

 

그러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어딘가로 갑니다.

 

그래봐야 좁은 집안에서

어디 갈 데도 없습니다. 

 

"휴...나는 다큐멘터리나 만들어야겠다.."

 

독립다큐감독이신 주선생님은

미루가 자기를 안 봐주니까

일이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그러고 나서

하루 종일 주선생님은

볼륨을 높일 생각을 안 했습니다.

 

장난 비슷하게 시작했는데

잘 웃지도 않는 걸 보니까

조금 심각한 것 같기도 합니다.

 

승자는 패자의 마음을 모르는 법이라서

전 그냥 무덤덤 했는데

아무래도 잘 위로를 해줘야 할 것 같았습니다.

 

"미루가 원래 오른쪽을 잘 보잖아..

아까 너 앉아 있던 방향이 왼쪽이고 내가 오른쪽에 있어서

고개를 나 한테 잘 돌린 것 아닐까?"

 

미루의 평소 습성을 정확히 간파한

대단히 과학적인 위로의 말입니다.

 

"위로가 안 돼..."

 

실패입니다.

 

아무래도 내일쯤

미루가 한 번 웃어줘야 할 것 같은데

될 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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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의사 선생님

아침에 봤더니

미루 얼굴에 뭐가 많이 났습니다. 

 

똑같은 게 팔에도 나고 다리에도 났습니다.

 

게다가 오전에만 똥을 5번 쌌습니다.

 

"이게 뭐지?"

"글쎄 모기 물린거 아냐?"

"근데 현숙이 넌 왜 안 물렸어? 니가 안 물린 거 보니까 모기가 아닌 것 같은데?"

 

주선생님은 미루가

모기에 물린 것 같다고 했고

 

항상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모기에 물림으로써

모기가 나타났다는 걸 알려주시는,

 

살아있는 경보기인 주선생님이

모기에 안 물린 것으로 봐서

저는 미루 몸에 뭐가 난 걸로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똥을 5번이나 싸대는 걸 봐서

어디 아픈 게 아닌가 걱정이 됐습니다.

 

특히 처음 쌌던 똥은 냄새가 가히

한 여름에 생선 3일 썩은 냄새를 능가했기 때문에

더 걱정이 됐습니다.

 

'뭘 잘 못 먹었나?'

 

혼자 생각도 해 봤지만

모유 말고 특별히 딴 걸 먹었을리는 없었습니다.

더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미루 데리고 나가서 바람 좀 쐬다가

혹시 병원 가게 생겼으면 가자"

 

공원을 돌면서 미루는 똥을 두번 더 쌌습니다.

 

만나는 동네 엄마들은

"어머, 얘 얼굴이 왜 이래요~?"

"얘..모기 물린 거봐..."등등의 반응으로

우리의 신경을 자극 했습니다.

 

"병원 가자~!!"

 

유모차를 끌고

무슨 일만 있으면 가는

동네 소아과 병원으로 향하는 와중에

주선생님은 이건 분명히 모기 물린 게 틀림 없다고 주장했고

저는 그래도 일단 가보자고 주장했습니다.

 

처음에 우리는 미루를 낳은 산부인과에 딸린

소아과를 다녔었습니다.

 

그 소아과는 사람이 무척 많았습니다.

 

"어~~!! 미루 왔네~~!"

 

이렇게 반갑게 맞아주는

천사 같은 소아과 선생님을 기대했던 우리는

 

항상 2분 정도 안에 진료와 처방을 끝내는

공장 같은 분위기가 싫어서

다른 소아과를 찾았습니다.

 

주선생님은 상담도 제대로 안 해주고

연고도 스테로이드가 최고로 많이 들어간 걸로

처방해준 그 병원을 되게 싫어했습니다.

마음의 상처도 많이 받았습니다.

 

지금 다니는 소아과는

제가 우리 동네를

샅샅이 뒤져서 찾았습니다.

 

이 병원에 다니고 부터는

주선생님이 마음의 평안을 찾았습니다.

 

어디 갈 데 없으면 병원에 갑니다.

 

그리고 병원에 갈 때마다 의사선생님께서는

미루의 증상이 별거 아니라는 정확한 진단으로

우리의 파도치는 마음을 잔잔하게 만드십니다.

 

오늘도 그랬습니다.

 

"선생님, 이게..얼굴이 이게 왜 이러죠?"

"뭐에 물린거네..."

"혹시 뭐가 난 건 아닐까요?"

 

의사선생님은 우리에게

요즘 보기 드문 아주 과학적인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옷 입은 데는 안 났죠? 그럼 뭐에 물린 거예요..."

 

저는 거부할 수 없는 명쾌함에 잠시 주춤했지만

다시 한번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얘가 오늘만 똥을 7번 쌌거든요? 그거랑 무슨 관계가 있지 않을까요?"

"똥을 7번이나 쌌어요..?"

"그렇다니까요."

 

1초 정도 생각에 잠기셨던 선생님은

항상 하시는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놀기는 잘 놀아요?" "네.."

"엄마 보고 잘 웃고?" "네..."

 

결정적인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 끝나자

선생님은 미루가 똥을 7번이나 싼 이유를

담담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젖을 많이 먹었나 보지.."

 

또 다시 거부할 수 없는

명쾌한 설명입니다. 

 

집에 오는 길에 주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맞아 맞아~미루가 어제 새벽에

2시랑 4시에 두번이나 깨서 젖먹었잖아..그런 적이 없었는데, 그치?"

 

역시 환자들과 환자 보호자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시는 분이

훌륭한 의사선생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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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풍경

낮에 셋이서 마트에 갔다가

출출해서 떡볶이랑 오뎅, 잔치국수 등등을 파는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식당에는

어른 남자 2명, 어른 여자 10명, 아이 7명이 있습니다.

거의 모든 테이블에 아이가 딸려 있습니다.

 

우리가 앉은 자리에서 대각선으로 오른쪽 앞에는

덩치는 미루랑 비슷한 여자아이가

혼자서 숟가락으로 아주 밥을 잘 먹습니다.

참 기특합니다.

 

앞쪽 3번째 건너 테이블에 앉아 있던 애는

뭐가 심통이 났는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가 났습니다.

아빠가 손을 확 잡아 끌더니 화장실로 데리고 갑니다.

엄마는 떡볶이가 먹고 싶은데 아빠랑 같이 먹으려는 듯 열심히 참습니다. 힘들어 보입니다.

 

바로 앞 테이블엔 어른 2명, 아이 2명, 유모차 2대가 있습니다.

한 아이는 유모차에 앉아 혼자 도리도리 하고 있고

또 한 아이는 엄마가 떠넣어주는 밥을 열심히 먹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필이면

입구 쪽 좁은 통로 옆의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미루가 탄 유모차 옆으로

사람들이 계속 지나다닙니다.

 

누군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잔치국수를 들고 가면 저는 바짝 긴장합니다.

 

어묵꼬치를 뜨거운 국물에 담아가는 사람이 지나가도

바짝 긴장합니다.

 

떡볶이, 순대가 담긴 쟁반이 지나가도

역시 긴장되는 건 똑같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다들 위태위태해 보입니다.

 

저는 젓가락질을 멈추고 사람이 다 지나갈 때까지

움직임을 예의주시합니다.

 

한참 동안 잠을 안 자고 있던 미루는

주방에서 나는 컵이랑 그릇 부딪히는 소리

수십개의 숟가락이 싱크대 개수대에 떨어지는 소리 때문에

눈이 더 말똥말똥해지더니

이제는 제가 먹는 걸 보고 입맛을 다십니다.

 

이건 이유식을 할 시기가 오는 신호입니다.

 

안 그래도 6개월째 되는 첫날부터

이유식을 하기로 했습니다.

 

주선생님은 어제 밤에 이미

이유식 조리기 세트에 대한 사전 조사를

인터넷으로 한 차례 하셨습니다.

 

저는 옆에서 멍하게 지켜봤는데

별게 다 있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건

어떤 조리기 세트 설명에

'변심해서 반품시 왕복택배비 본인 부담'이라고 적혀 있었고

또 어떤 그릇세트에는

'지구최저가격'이라고 적혀있었다는 것 정도입니다.

 

우리가 밥 먹던 식당에도

이상한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빈그릇은 셀프'

 

식사를 마친 주선생님은 그 문구에 따라

빈그릇을 직접 치웁니다.

 

저는 잔치국수의 마지막 국물을 시원하게 마실 요량을 하며

일단 미루를 한번 쳐다봤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주선생님이 자기 젓가락과 제 젓가락을 모두

잔치국수 그릇에 집어 넣어버렸습니다.

 

저는 고개를 번쩍 들어 주선생님을 쳐다봤습니다.

 

"아...미안 미안~, 난 다 먹은 줄 알았어..."

 

기어이 잔치국수 국물을 마시고

저는 물을 한 모금 들이켰습니다.

 

한 모금만 더 마시면 식사는 끝이 납니다.

 

이때 주선생님이 제 컵을

자연스럽게 가져가더니

자기 컵의 물을 제 컵에 쭈욱 따르고

컵을 포개려고 합니다.

 

다시 고개를 들어 주선생님을 쳐다봤습니다.

 

"어..."

 

당황한 주선생님

이유를 말합니다.

 

"미루가 정신없는 것 같아서 빨리 나갈려고 하다 보니까..

마음이 급해서..미안해...물 더 마실래?"

 

애 핑게를 대다니..

 

아무튼 식당 밥 먹기 참 힘듭니다.

 

그 와중에도 미루는 입맛을 계속 다십니다.

이유식의 계절이 코앞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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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뿐인 영광

산모는 몸도 안 좋은데 할 일도 많거니와

아무도 챙겨주지 않아서 더 힘듭니다.

 

별 어려움 없이 아이를 낳은 주선생님도

몸이 여기저기 안 좋습니다.

 

그래서

그냥 한번 만들어봤습니다.

 

어떤 건 주선생님한테도 해당이 되고

어떤 건 해당 안되지만

보통의 아이키우는 엄마들한테 흔히 나타나는 증상들입니다.

 

 

 


 

 

 

<주부 그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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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서 기저귀 갈기

외출할 때 가방 속에는

기저귀가 하나 가득입니다.

 

미루가 언제 어디서 어떤 식으로

우리한테 구원을 요청할 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처음 3달 정도는

외출할 일이 많지도 않았지만

외출하더라도 미루는

기저귀에다 오줌을 싼 티를 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4달째로 접어들면서

이제는 오줌뿐만이 아니라 그 보다 더 한 것도

마음 푹 놓고 쌉니다.

 

덕분에 저랑 주선생님은

시시때때로 비상이 걸립니다.

 

병원이나 마트, 백화점 같은 곳 중에

기저귀 교환대가 잘 갖춰진 곳은

마음 편하게 기저귀를 갈면 됩니다.

 

그런데 교환대가 없는 그런 곳에서는

그냥 화장실 세면대 앞쪽 같은 곳에서

매우 어정쩡한 자세로 기저귀를 갑니다.

 

어느 식당에 갔을 때는

탁자 위에 눕혀 놓고 기저귀를 갈아서

그 식당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줄뻔 하기도 했지만

워낙 어수선해서 그냥 잘 넘어간 적도 있습니다.

 

화장실에서 교환대 없이 갈 때는

주로 그냥 유모차 안에

미루를 눕힌 상태에서 기저귀를 가는데

이게 참 힘듭니다.

 

그래도 외출이라고

밖에 나갈 때는 항상 바지를 입혀 가기 때문에

 

일단 바지를 벗깁니다.

 

그리고 나서

물티슈를 꺼내서 한 손에 들고,

새 기저귀도 채우기 직전의 상태로 펴서 손 잘 닿는 곳에 놓습니다.

 

다리를 들어서 차고 있던 기저귀를 반 접어 엉덩이 밑에 깐 다음

물티슈로 닦아줍니다.

귀찮으면 기저귀 반 접는 과정은 생략하기도 합니다.

 

그런 다음에 기저귀를 빼내고

새 기저귀를 채우고 나서

다시 바지를 입힙니다.

 

이 순서는 미루가 오줌을 싸서

별로 닦아줄 것이 많지 않을 때 입니다.

 

많은 걸 닦아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는

기저귀를 반 접어서 엉덩이 밑에 깔기 전에

왼손으로 미루 다리를 잡고 번쩍 들어올립니다.

 

그 상태에서 기저귀를 반드시 반으로 접는데

안 그러면 닦아주다가, 기저귀에 고여 있는 물질에

손을 담그는 수가 있습니다.

 

여전히 왼손은 미루 다리를 번쩍 들어올린 상태입니다.

닦기 시작합니다.

 

닦아야 할 게 많을수록

손은 부들부들 떨립니다.

 

그 사이 다리가 많이 무거워졌습니다.

 

애 다리가 무거워봐야 얼마나 무거울까 싶지만

정말 식은땀이 흐릅니다.

 

게다가 이런 일련의 행동을

남자들 왔다갔다 하는 화장실에서

유모차에 고개 쳐박고 하고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관심을 가져줍니다.

 

저는 얼굴이 벌개집니다.

 

그런데 오늘

주선생님은 저보다

더 강렬한 일을 당했습니다.

 

며칠 좀 자는 듯 하더니

또 다시 지칠 줄 모르는 체력으로

울고 있는 미루를 재우기 위해서

 

주선생님이 유모차에 미루를 싣고

공원으로 나갔습니다.

 

한참 유모차를 끄는 데도

미루는 안 자고 버티더니

결국 똥을 쌌습니다.

 

이럴때 쓰는 도량형의 최고 단위는

'바가지'입니다.

 

미루는 똥을 바가지로 싸놨습니다.

엄청 많이 쌌다는 얘기입니다.

 

순간, 판단력을 잃은 주선생님은

공원으로 들어오는 입구에서

미루 기저귀를 갈아줬답니다.

 

공원의 공기는 유난히 맑았고

이 때문에 냄새는 유난히 선명했을 겁니다.

 

한참 부들부들 떨면서

기저귀를 갈아주고 있을 때쯤

 

느닷없이 남자들이

주선생님의 왼쪽과 오른쪽을

줄 지어서 지나가더랍니다.

 

2명이나 3명이 아니고

나중에 공원에 모여 있는 걸 세어봤더니

무려 50명쯤 되는 젊은 남자들이었습니다.

 

"어..애네...", "애기다..", "애기 봐..."

 

아무도 거기 있는 게 애라는 사실 이외에

다른 사실을 말하는 사람은 없더랍니다.

다들 속으로만 한 마디씩 했을 겁니다.

 

주선생님은 그 사람들이 속으로 하는 얘기가

다 들렸던 모양입니다.

 

좀 처럼 부끄러움을 모르는 주선생님은

단순히 사람들이 자기 옆을 주욱 지나간 것 뿐인데

창피함으로 호흡곤란을 겪었습니다.

 

저는 설거지 하다가

재빨리 공원으로 내려가서

만신창이가 된 주선생님을 위로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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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와 시어머니

주선생님과 저희 어머니는

그 유명한 고부관계이십니다.

 

이 관계에서

어머니는 '악역'을 맡으셨습니다.

 

처음 주선생님이 저랑 결혼하고 나서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이거였습니다.

 

"얘..나는 너를 딸처럼 생각하기로 했어..."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하신 어머니께서는

주선생님이 임신 8주째 되는 어느날

 

시간이 그때 밖에 안 되신다면서

당신 주도로 가족들을 15명쯤 초대해서
저희집 집들이를 하셨습니다.

 

주선생님은

임신 12주까지는 유산의 위험이 있으니까

절대 무리해서는 안되고

 

무거운 것은 결코 들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다 알았지만

 

시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10시간 동안 부엌일을 했습니다.

 

"현숙아..이거 김치냉장고에 넣어라..

이건 저쪽으로 좀 가져다 놓고...이 통에 있는 건 저기다 옮겨 담고.."

 

어머니는 그 10시간 동안 주선생님께

괴력을 가진 제가 들어도 힘든

김치통 등 이것저것을 나르도록 시키셨습니다.

 

막내동생의 부인도 그 10시간 내내

부엌일을 했지만

 

주선생님은 큰며느리인 죄로

얼굴 한번 못 찡그리고 그 일을 다 했습니다.

 

처음부터 부엌 옆에 바짝 붙어서

'같이 일하고 같이 쉰다'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심초사하던 저는

 

"넌, 이 근처 있으면 방해만 되니까 그냥 좀 앉아 있어~~"

라고 하시는 어머니 덕에

바늘방석 위에서 편히 휴식을 취했습니다.

 

8시간 쯤 식사 준비를 하고

사람들이 막 밥을 먹으려 할 때

저는 고생한 주선생님과 제수씨, 그리고 제일 고생하신 어머니가

당연히 같이 상에 앉을 줄 알았습니다.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됐으니까, 많이들 드세요..."

 

주선생님은 얼굴이 까매졌고

제수씨는 밖에 나가 울었습니다.

 

어머니는 잘 차린 상에서 맛있게 밥을 먹는 사람들을 보며 뿌듯해 하셨고

저는 콧구멍으로 밥을 먹었습니다.

 

그날은 마침 여의도에서 불꽃축제를 하던 날이었습니다.

집이 여의도 근처라서 사람들은 모두 축제를 보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집에는 임신 8주의 주선생님 혼자만 남았습니다.

거실에 놓인 2개의 큰 상 위에는 집에 있는 모든 그릇이 다 올라와 있었고

그 그릇 위에는 먹고 남은 밥과 반찬의 잔해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불꽃축제는 신났습니다.

축제를 마음껏 즐긴 우리는

집에 돌아와서 깨끗하게 치워진 거실에서

즐겁게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그날은 그렇게 지났습니다.

 

다음날 아침 7시쯤

저는 별 생각없이 부엌에 가서 쌀을 씻었습니다.

어머니께 아침 식사를 잘 대접해드려야겠다는

훌륭한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너, 이리 좀 와봐..."

 

어머니는 1시간 40분 동안 저에게

지난 30여년 간 어머니가 얼마나 고되게 시집살이를 하셨는지

아들 셋 키우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하셨는지 말씀하셨고

 

그리고 그 중 제일 큰 아들이 집에서 쌀이나 씻는 걸 보니

속이 뒤집어진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주선생님은 귀한 딸이지만

그 보다 만배는 더 귀한 아들을 위해

밤낮없이 밥해서 바치고, 청소하고 빨래해야 할 운명이란 걸

그날 아침에 제가 잠결이라 깜박 잊었던 게 잘못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딸처럼 여긴다는 며느리를

그렇게 대하셨습니다.

 

하기야, 이런 일이

주선생님한테만 일어나는 건 아닐 겁니다.

 

주선생님이 아는 어떤 사람도

시어머니한테서 딸처럼 여기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어느날

몸이 안 좋다고 얘기하니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아이고, 그럼 우리 아들 힘들어서 어쩌냐...."

 

며느리가 아프니까

아들이 고생할 게 더 걱정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저희 어머니는 아주 좋은 분이십니다.

 

치매 걸린 할머니를 할머니 아들보다도

백배는 더 챙겨주시는 게 우리 어머니이십니다.

 

성실성, 생활력 등에서

저는 우리 어머니를 능가하는 사람을

별로 못 봤습니다.

 

조금 늦게 태어나셨더라면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시어머니가 되는 순간

그 모든 좋은 점은 사라지고

가부장제 지킴이가 돼버리십니다.

 

한국에서 며느리는

딸 보다 해야 할 일은 많지만

결코 딸처럼 대우 받을 순 없습니다.

 

그건 며느리로서의 우리 어머니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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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의 할머니

미루의 할머니는

저희 어머니이십니다.

 

미루 할머니가

제 아버지일리는 없으니까

하나마나한 소리입니다.

 

미루 할머니가

미루를 무지하게 이뻐하십니다.

 

지난 번에 한번 오셨을 때도

7kg에 육박하는 미루를

번쩍번쩍 안고 다니시더니

몸살로 드러누우셨다고 전화가 왔었습니다.

 

근데 이번에도

미루를 열심히 안아주십니다.

미루는 그새 8kg이 됐습니다.

 

"이리와 보세요..미루 옹알이 하는 거 보여드릴께요.."

 

저는 불현듯 아부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요즘 부쩍 시끄러운 옹알이의 현장으로

어머니를 모셨습니다.

 

"미루야~옹알이 해보자~따라해~

'옹'~~~

'알'~~~

'이'~~~"

 

한마디도 따라하지 않고

미루는 소리만 계속 지릅니다.

 

"에이..미루야 다시 해보자, 옹~알~이~"

 

초등학교 학예회에서도

채택되지 않을 만한 개그를 하자

어머니도 어이가 없어 하십니다.

 

미루는 "끼야~" "꺅~~" "호오~호오~" 등등

한글로 옮길 수 없는 각종의 옹알이를 선보입니다.

어머니 기분이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사실, 저희 어머니는

기분전환이 좀 필요합니다.

 

제 할머니

그러니까 제 아버지의 어머니께서

지금 치매가 심각하십니다.

 

할아버지는

최근에 무릎 수술을 하시고

집에만 계십니다.

 

어머니는 매일 두 분의 집으로 가셔서

저녁을 해드리고, 빨래감을 잔뜩 짊어지고 오십니다.

 

벌써 일년이 넘었습니다.

 

60이 다 되셨는데

아직도 시집살이 중이십니다.

 

주선생님이 일찌기 말씀하시길

가부장제 안에서 가장 하층민은 며느리라고 하셨는데

우리 어머니가 지금 그런 처지십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돌볼 수 있는

수 많은 방법을 찾을 수 있지만

 

결국은 어머니가

일방적으로 희생하시는 방법이

선정이 됐습니다.

 

이 때문에 어머니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물론 그 힘든 일을

다 참아 내시지만

 

이런 걸 가지고 "그런 효부가 없다"는 식으로 칭찬하는 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자식 8남매 중 아무도

두 분을 돌보지 않습니다.

 

정부나 사회는 언제나 그렇듯이

도움이 안 됩니다.

 

그리고 모든 책임은 큰 며느리인 저희 어머니한테 떨어집니다.

'효도'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폭력입니다.

그것도 여성에게만 일방적으로 부과되는 폭력입니다.

 

"밥을 해드릴거면 아버지도 가셔서 함께 하시지요"

 

만약 제가 이런 얘길 했다면

"역시 넌 너무 이상적이야~"란 소리를 들었을 겁니다.

 

"올 겨울에 며칠 놀러 갔다 올려고 생각 중이야...

그래야 나도 이번 겨울 버티지..."

 

어머니가 하신 말씀입니다.

 

미루가 좀 크면 같이 놀러가야겠다는 생각이

평소에 말 안 듣기로 유명한 제 맘 속에서 생겼습니다.

 

어머니가 이런 상황이시니

미루의 역할은 매우 지대합니다.

 

"미루야~이 녀석..할머니 가시는 데 잠만 자네.."

 

부모님이 가실 시간이 됐는데

마침 잘 시간이라서 유모차에서

곯아떨어진 미루가 좀 서운하셨던 모양입니다.

 

어머니는 미루 발을 잡고 흔들고

손을 꽉 쥐었다 놨다 하시더니

급기야는 뺨을 톡톡 칩니다.

 

그래도 미루는 잡니다.

 

"에이..그냥 가야겠다. 추석 때 보자~~"

 

인사를 마치고 아버지가 차 시동을 거셨습니다.

근데 미루가 그 소리에 눈을 번쩍 떴습니다.

 

어머니는 반가워라 하시면서

차에서 내려서

한껏 미루한테 인사를 하시고

다시 차에 타십니다.

 

내려가시는 데 미루가 잠시라도 잠이 깨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모님이 가시고

미루는 한 시간 내내

열과 성을 다해서 울어제꼈습니다.

 

곤하게 자다가 깬게 너무 억울했나 봅니다.

 

달래느라고 죽는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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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금일봉

주선생님과 저는

적은 생활비로 버티기 분야에서

남부럽지 않은 실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수입이

육아휴직 전보다 더 적어져서

그 실력을 더욱 마음껏 발휘 중입니다.

 

한국에서 독립다큐멘터리 감독이

딱히 거액 연봉자일리가 없고

 

육아휴직 쓰는 남자한테

정부가 장하다고 돈을 듬뿍 주지도 않습니다.

 

누군가한테 지금 육아휴직 중이라고 말했다가

"마누라가 돈 잘 버나 보네..."라는 소리를 들었었는데

속이 좀 상했었습니다.

 

돈 걱정 없어서 육아휴직한 게 아닌데

이해 받지 못하니까 속상한 것도 있었고

 

실제로 생활비가 쪼들리기도 한 것이

좀 신경이 쓰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엊그제 서울 올라오시기 2, 3일 전에

아버지께서 전화를 하시더니 말씀하십니다.

 

"상구야, 너 먹고 살만은 한 거냐...?"

 

아니,

굶어죽어가면 어떻게 이런 힘찬 목소리로

통화를 하겠습니까? 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냥, "에이..그럼요..그런 것 신경 좀 쓰지 마세요..."

이러고 말았습니다.

 

근데 부모님은 이 점이 계속 걸렸던 모양입니다.

 

서울 올라오셨는데

저를 좀 측은한 눈빛으로 보십니다.

 

그런 분위기를 더욱 심각하게 만든건

두 장의 종이 덕분입니다.

 

현관 입구 신발장 위에

어느 월간지 구독료를 일주일 안에 내라는

고지서가 놓여 있었습니다.

 

사실, 좀 게을러서 못 냈던 데다가

우리가 깜빡하고 못 치워서 거기 있었던 건데

 

아버지께서 들어오시다가

그걸 보셨습니다.

 

눈빛이 흔들리는 걸 봤습니다.

 

게다가 제 책상 위에

상하수도 요금 고지서가 있었는데

공과금 낼 게 많아서 어떤 건 내고 어떤 건 안 내다가

빠뜨린 게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버지는 그걸 또 어떻게 발견하고

한참 동안 보셨습니다.

 

아, 이것 참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저와 주선생님이

가난한 부부의 표준형이 되는 분위기입니다.

 

"왜 이렇게 로션을 자주 발라주냐~?"

 

"아....이거요? 미루가 아토피 기운이 좀 있어서

시도때도 없이 로션을 발라줘야 되거든요.

인제 거의 괜찮아졌어요..."

 

"이렇게 많이 바르면 로션값도 많이 들겠다...

에구, 우리 미루... 할머니가 로션값이라도 줘야겠네.."

 

부모님은

내려가시면서

'금일봉'을 놓고 갔습니다.

 

로션을 한 30개는 살 수 있는 큰 돈 입니다.

 

다음에 오실 때는

온갖 고지서를 집에 뿌려놓고

미루 로션도 좀 더 비싼 걸 발라주면

훨씬 기쁜 일이 생기겠다는 사악한 마음이 잠시 생겼다가 사라졌습니다.

 

"우리 미루 내일 예방 접종 해야 되는데

접종비 생겼네..."

 

주선생님의 이야기입니다.

 

가부장제 안에서 사는 부모님.

성평등을 외치는 자식.

어울리지 않는 구석이 많아서

맨날 다툼이 많지만

 

이 와중에도

그 고집스러운 내리사랑은

여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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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의 입맛

집에서 하루밤 주무신

어머니 아버지께서

 

점심 때가 되자

뭐 맛있는 걸 먹으러 밖에 나가자고 하셨습니다.

 

유난히 스테이크를 좋아하는

주선생님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힘차게 외쳤습니다.

 

"패밀리 레스토랑 갈래요?"

 

사실 1년에 한번이나 갈까 말까 한

패밀리 레스토랑입니다

 

그리고 주선생님이 원래부터

스테이크를 좋아했던 것도 아닙니다.

 

특이하게도 주선생님과 저는

입맛이 정반대였습니다.

 

저는 갈비를 좋아하고 주선생님은 회를 좋아합니다.

저는 물냉면을 먹고 주선생님은 비빔냉면을 먹습니다.

저는 하얀 크림스파게티를 시키고 주선생님은 토마토소스 들어간 스파게티를 시킵니다.

저는 백도를 사고 주선생님은 천도 복숭아를 삽니다.

 

입맛이 달라도 이렇게 다를까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뭘 먹을까를 놓고 다투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냉면집에 가면

각자 시키면 되고

 

복숭아는 천도, 백도

골고루 사오면 됩니다.

 

스파게티 집은 자주 갈 일도 없고

가끔 가는 경우엔 역시 따로 시키면 됩니다.

 

가장 큰 협상이 필요한 때는

갈비집을 갈 것이냐 회집을 갈 것이냐 결정할 때입니다.

 

갈비집이나 회집 가는 건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라서

양보하는 데 커다란 사랑이 필요한 일이지만

그냥 회집에 주로 갔습니다.

 

육지고기 보다는 바다고기가

몸에 좋다고 하니까

회집을 가는게

전체적으로 봐서 이익이 크다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저에게 한 동안

기쁜 시절이 찾아왔습니다.

 

주선생님이 임신하더니

느닷없이 그러는 겁니다.

 

"나, 소고기가 먹고 싶어..."

 

임신하면 특히 먹고 싶어지는 게 생긴다던데

주선생님은 그게 소고기였습니다.

 

돼지고기나 닭고기도 맛있는데

하필이면 비싼 소고기를 그렇게 먹고 싶어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등심하고 스테이크를 좋아했습니다.

 

돈은 없지만

임신했을 때 먹고 싶은 것 못 먹으면

평생 한이 될 것 같아서

부지런히 소고기를 사다 날랐었습니다.

 

덕분에 저도 덩달아 소고기 많이 먹었습니다.

 

이 밖에도 주선생님은

물냉면, 크림스파게티, 백도 복숭아를

좋아라 먹었습니다.

완전히 제 입맛으로 돌변한 겁니다.

 

저는 제가 좋아하는 걸

잔뜩 사다가

주선생님과 같이 실컷 먹었습니다.

 

참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결국 주선생님은 진통이 5분 간격으로 오는 시점에

등심을 구워먹고 애를 낳으러 가는

놀라운 입맛을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그 좋은 시절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패밀리 레스토랑 가자고 했던 건

주선생님이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도 그걸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주선생님 입맛이 좀 천천히 원래대로 돌아가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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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의 증거5

막내 동생이 애를 낳아서

저희 부모님이 서울에 다녀왔다 가셨습니다.

 

오시기 며칠 전부터

주선생님과 저는

작전을 짰습니다.

 

"현숙아 김치도 없다고 하고

밑반찬도 다 떨어졌다고 해..

하여튼 최대한 불쌍하게..알았지?"

 

제가 전화해서 반찬 얘기하면

어머니가 싫어하실게 틀림없어서

대신 주선생님이 몇 차례 어머니와 통화를 했습니다.

 

"상구야~우리 도착했다..내려와라~!!"

 

차 트렁크가 열리자

그 안에는 아예 커다른 아이스박스가 들어 있었습니다.

 

김치 한 박스, 마늘 짱아치 한 통, 깻잎 한 통, 고구마 순 한 다발

멸치 조림 2종류, 외할머니가 밭에서 키우셨다는 다량의 상추

조기, 소고기

 

그리고 제주도에서 김제까지 공수과정을

나중에 상세하게 설명하시면서 꺼내놓으신

은갈치까지...

 

특히 은갈치는 어머니가 밤새 토막토막 잘라서

손질을 다 해서 가져오셨습니다.  자식이 웬수입니다.

 

가져오신 짐의 규모로는

아예 이사를 오신 분위기셨습니다.

 

원래 뭘 해도 제대로 하시는 저희 어머니는

이번에도 기대를 져버리지 않으신 겁니다.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집에만 내려가면

뭘 그렇게 바리바리 싸주시는지

귀찮아 죽는 줄 알았었는데

 

이제는 무슨 반찬만 주신다면

좋아 죽습니다.

 

이렇게 한방에 많은 반찬들이 오면

당분간 밥 차릴 때는 꺼내놓기만 하면 되니까

세상 그렇게 편할 수 없습니다.

 

사실 이런 기질은

제가 육아를 하면서 좀 심해지기도 했지만

20대 중반 이후 조금씩 나타나긴 했었습니다.

 

10년 쯤 전에 같은 과에 있던

공익근무요원 전체가 같이 삼겹살 파티를 하고

고기가 좀 많이 남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야~나 그거 가져갈께~"하고

고기를 신문지에 대충 싸서 버스를 탔었는데

고기에서 나온 물 때문에 신문지가

다 찢어진 일이 있었습니다.

 

버스 안에서 생고기를 손으로 들고 있는

젊은이의 모습은 정말 가련했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들고 있는 고기가 탐나는지

저를 자꾸 힐끗힐끗 쳐다봤습니다.

그냥 좀 달라고 할 것이지.

 

근데 요즘은 이런 기질이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 없을 정도로

확고해졌습니다.

 

냉장고 안에 반찬이 그득하면

참 마음이 편하고 좋습니다.

 

고단한 육아 중에

이런 일은 생활의 활력입니다.

 

그나저나 계속 똑같은 반찬을 내놓을 순 없으니까

반찬에 약간의 변형을 주는 연구를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면 주선생님한테 그냥 참고

계속 같은 반찬 먹으라고 할 생각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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