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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의 여유

산모의 여유는 고3의 여유보다

훨씬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남편이 육아휴직을 쓰면 가끔씩 가능해집니다.

 

때때로 미루가 잠을 자는데

밥도 먹고,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끝낸 경우가 생깁니다.

 

이럴때면 주선생님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혁명가처럼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반드시 그 여유를 표현합니다.

 

 

1.

 

미루가 잡니다.

 

주선생님, 혼잣말을 합니다.

 

"아~~여유를 맘껏 즐겨야지~!"

 

제가 묻습니다.

 

"뭐 해?"

 

"여유를 맘껏 즐기는 걸 표현하고 있어~~"

 

가끔 텔레비젼에서 애들 보는 만화를 보다보면

납작하게 눌린 사람이 벽이나 책상 같은 곳에 바짝 붙어서

흘러내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선생님은 쇼파 중간쯤에 걸쳐 있는 체로

몸을 한 껏 뒤로 젖히고

고개는 그 보다도 더 심하게 뒤로 젖히고

손은 만세를 하고, 입은 벌린 상태에서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참 여유로와 보였습니다.

 

 

2.

 

역시 미루가 잡니다.

 

주선생님은

한 번 한 걸 또 하지 않습니다.

 

이번엔 바닥에 눕더니

손과 발을 위도우브러쉬처럼 왔다갔다 하면서 움직입니다.

물개나 펭귄이 헤엄치는 모습을 찍은 화면을

빠른 속도로 돌리면 똑같은 모습이 나올 것 같습니다.

 

"아~~여유로워라~~!!"

 

 

 

3.

 

역시 미루가 자고 있습니다.

 

주선생님 쇼파에 반쯤 걸쳐 있는 체로

저를 부릅니다.

 

"어...상구~~~!!"

 

집에만 있지만 매우 바쁘게 생활하고 있는 저는

그 바쁜 와중에도 대답을 합니다.

 

"왜~~?"

 

"나 너무 편해서 움직일 수가 없어..

탁자 위에 연고 좀 가져다 줘..."

 

나무늘보가 생각 났습니다. 

 

너무 편해서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은 난생 처음입니다.

 

 

4.

 

이제는 미루가 안 자는 데도 여유를 부립니다.

 

어쩌다 보니 미루 귀가 좀 더러워졌습니다.

귀에서 발 냄새가 났습니다.

 

주선생님께서

걱정하며 말씀하셨습니다. 

 

"하...이거, 페브리즈를 뿌릴 수도 없고..."

 

여유를 넘어서

정신이 풀려가고 있습니다.

 

지난 번에는 미루가 보채니까

주선생님이 이런 말도 했습니다.

 

"갈증나지? 물 주까?"

 

그러더니 자기가 물을 마십니다. 

 

 

 

이 모든 여유는

미루의 생활이 안정되어 가고 있기 때문인데

그건 주선생님과 제가 함께 미루를 키우고 있으니까 가능한 일입니다.

 

...

 

그런데 요즘은 그 모든 여유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미루가 낮에 잠을 안 잡니다.

 

오늘도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거의 한숨도 안 자고,

보채고 보채고 또 보챘습니다.

 

이 사태를 빨리 해결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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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는 배고프면 안된다.

"상구, 나 갑자기 핑 도는 게 어지러워..."

 

주선생님이

미루가 보채는 걸 달래다가

포기하고 저한테 옵니다.

 

"그래? 그럼 니가 저녁 준비 마저 할래?

내가 미루 재워볼께.."

 

미루 달래는 게 너무 힘들었나 싶어

저는 주선생님과 역할을 바꾸었습니다.

 

"우당탕~"

 

부엌에서 일하던 주선생님이

포도씨 기름이 담긴 병을 바닥에 떨어뜨렸습니다.

기름이 와락 쏟아졌습니다.

 

"괜찮어~?"

 

나중에 말하는 걸 들어보니

오전 11시에 밥 먹고 아무것도 안 먹어서

허기가 진 상태였는데,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지더랍니다.

 

그러니까 배가 고파서 정신이 나간 겁니다.

중간에 간식을 먹었어야 했는데

아무것도 안 챙겨준게 실수입니다.

 

육아휴직 하고 처음에는

주선생님이 가끔 너무 배가 고프다면서

정신없어 하는 게 잘 이해가 안 갔습니다.

 

그런데 산모는 수시로 배가 많이 고픈 모양입니다.

특히, 모유수유하고 나면 무지하게 배고픔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한 번은 제가 평소 열심히 간식을 챙기다가

너무 열심히 한다 싶어서 하루쯤 간식을 안 줬는데

 

그 날 주선생님은 마구 울어버렸습니다.

간식을 안 주는 게 그렇게 서러웠답니다.

 

그 사건 이후 저는 정말 열심히 간식을 해줬습니다.

 

각종 빵, 과일 같은 걸 사다가

탁자 위에 항상 쌓아놨습니다.

 

계란도 삶아놓고,

고구마, 감자, 옥수수도 삶아 놨습니다.

 

감자나 고구마 삶은 건 두세번 먹었는데도 남으면

으깨어서 샐러드를 만들었습니다.

 

두유, 우유 같은 마실 거리들도

냉장고에 채워놓고 떨어지지 않게 했습니다.

 

그렇게 안 하면 또 울 게 틀림없었습니다.

 

저의 부단한 노력으로

두번 다시 주선생님이 간식 때문에 우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잠시 방심한 탓인지

허기로 인한 어지럼증이 또 발생한 것입니다. 

 

어찌어찌 해서 겨우 저녁밥을 차려 먹고

밥이 좀 부족했던지 계속 배가 고프다고 해서

빵하고 사과를 사다 줬습니다.

 

미루도 재운 다음

주변이 평화로워지자, 주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아까 나 밥 먹고 나서 상구 밥 먹을 때 

나는 미루 젖 줬잖아..

그때 밥통에 밥 조금 남은 거 있길래

젖 먹이고 나서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상구가 갖다 먹어버리더라..."

 

빵하고 사과 안 사다줬더라면

또 큰 일 날 뻔 했습니다.

 

이런 때 잘 먹여야지,

안 그러면 두고두고 서운하단 소리 듣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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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의 증거3

마사지 수업을 하고

근처에 있는 식당에 갔습니다.

 

식사가 나오고 밥을 먹기 시작합니다.

 

문득 앞에 놓여 있는 숙주나물무침에 눈길이 갔습니다.

 

"이거 숙주나물이지?"

"응"

 

예전에는 콩나물하고 숙주나물을 구분 못해서

몇 번이나 "야, 이 콩나물 무침 맛있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넓은 아량으로 저를 품어주신

주선생님께 지금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말을 했습니다.

 

"가만있어봐..이건 당근이네..

숙주나물은 데쳤을거고..

이건 안 데치고 그냥 채만 썰어서 넣었나?"

 

주선생님 귀찮을텐데 대꾸해줍니다.

 

"그런 것 같은데..어차피 안 익혀도 당근은 먹잖아.."

 

"이건 부추냐, 실파냐..부추구만.."

"그래, 부추 맞네.."

 

"근데, 왜 파는 안 넣었지?

무침하는데 마늘은 당연히 들어갔고, 파도 넣어야 하지 않나?"

"그러게, 이 집에선 안 넣나보네.."

 

"간장은 안 넣고 소금으로 간 한 것 같고..

당근 사 놓고 별로 쓸 데가 없었는데 이거나 한 번 해 먹어봐야겠다.."

 

예전에 식당에 가면

무슨 반찬이 나오든 그냥 먹고 나오면 그만이었는데

요즘은 반찬 하나하나에 관심이 많이 갑니다.

 

밥상에 대한 저의 관찰력이

점점 예리해지고 있는 겁니다.

 

옆에서 퍼져 잔 미루 덕에

맛있게 밥을 먹고 개운한 기분으로 식당 밖을 나왔습니다.

 

주선생님이 말씀하십니다.

"이야~맛있게 먹었다."

 

제가 말했습니다.

"이야~한 끼 때웠다~"

 

저는 밥을 맛있게 먹은 것 보다는

이렇게 해서 한 끼를 또 무사히 해결한 것이 훨씬 기뻤습니다.

직접 안 차리고 밥 먹은 게 기뻤습니다.

 

주선생님 잊지 않고

평가를 해주셨습니다.

 

"오~~주부의 자세~~"

 

이제 확실히 주부가 돼 가고 있습니다.

 

내일 아침은 모시조개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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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이 되는 사람들

주변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 있는 건

산모한테나 아이 한테나 참 좋은 일입니다.

 

미루랑 지지고 볶으면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습니다.

 

주선생님이 영화의 감독이고

제가 스텝이라면

 

이 분들은 조연이기도 하고,

다른 영화의 감독이거나 선배감독이며

관객들 입니다.

 

 

1. 정신적 지주

 

요즘 배우는 마사지 강좌의 선생님이시기도 하신

모유수유센터 선생님은 처음 2~3달간

주선생님께 없어서는 안되는 분이셨습니다.

 

본인은 알까 모르겠지만

주선생님이 모유수유 때문에 지치고 힘들 때

 

센터에 가서

상담하고, 몸 추스리고 나면

그렇게 사람이 달라져 나올 수 없었습니다.

 

수유센터에서 돈을 한다발씩 쥐어주는 지

거기만 갔다 오면

기분이 좋아져서

"인제 잘 할 수 있어~!"를 외쳤습니다.

 

제가 딱 보니까

수유센터 선생님은

괜히 잘 한다고 해주고,

그러는 게 당연하니까 걱정말라고 해주고,

별일 아닌 듯이 웃어주는 특기를 갖고 계십니다.

 

쉬운 거 같애도

이거 잘 하는 사람 별로 없습니다.

 

're'님도

저희들의 정신적 지주이십니다.

 

특히 미루가 아팠을 때,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아무때나 전화해서

상담할 수 있는 결정적 전화 번호를 알려주셨는데

 

그 번호 하나로 우리는

무한 자신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2. 동료들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 역시

큰 힘이 됩니다.

 

맨날 맨날 우리에게

교훈을 주시는 진경맘은

몇 달 있으면 한살이 되는 진경이를 키웁니다.

 

진경이와 진경엄마는

미루와 우리가 겪어야 할 시행착오를

몸소 겪으시고,

우리를 편한 길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이스트 감염일지 모른다는 지적 같은 건

진경맘이 아니었으면 꿈에도 몰랐을 일입니다.

 

미루라고 지을까 아루라고 지을까 고민하다

애 이름을 아루라고 지은 친구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하루'라는 뜻이랍니다.

 

어제 놀러왔었는데,

미루만한 천사아기가 없다는 우리의 자만심을

산산조각내고 갔습니다.

 

집에 있는 동안 아루는

그냥 어른 한 명이 더 있는 것과 비슷했습니다.

그것도 과묵한 어른 한 명

 

미루랑 10일 밖에 차이가 안 나서

경험과 관심사가 완전히 같습니다.

 

이런 사람이 있어야 신나는 수다가 가능합니다.

사실 산모한테는 대화할 사람 한 명이 참 소중합니다.

 

 

 

3. 면회객들

 

가끔 감옥살이하는 두 사람을 만나러

면회객들이 옵니다.

 

필명 모모님께서는

미루 피부의 정상화를 위해

일찍이 알로에를 갖다 주셨습니다.

 

오늘은 필명으로 스머프를 쓰시는 분께서

집에 들러주셨습니다.

 

저는 그때 없었는데

주선생님에게 많은 좋은 말씀과 과자를 선물하고 가셨습니다.

 

매우 고급 과자입니다.

12개 들이 한 상자입니다.

 

근데, 그런 과자를 보면 사실 좀 난감해집니다.

 

하나 먹을 때 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이렇게 이쁜 걸 꼭 먹어서 없애야 하나 싶어집니다.

 

또 다른 고민도 듭니다.

어느 것부터 먹는게 '최대기쁨, 최소아쉬움'을 달성할까 하는 점입니다.

 

솔직한 저는

이런 고민을 주선생님께 이야기했습니다.

 

주선생님 그 해답을 보여주셨습니다.

 

"나 6개, 너 6개~

나는 뭘 먹을 거냐면, 딱 봐서 제일 맛있어 보이는 걸 먹어야지~

그 다음에 먹을 때, 또 그 중에서 제일 맛있어 보이는 걸 먹고~

그 다음에 또 그 중에서 제일 맛있는 것~

이런 식으로 하면 항상 제일 맛있어 보이는 걸 먹게 되지~!!"

 

주선생님

참 현명하고 이상한 생각을 많이 합니다.

 

사실 면회객들의 가장 좋은 점은

누가 오면 하루가 금방 간다는 점입니다.

 

산모한테 이건 꽤 큰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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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 듣기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아주머니가

미루를 보더니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자기 아들한테

말합니다.

 

"에구, 너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인제 다 커 갖고 말을 안 들어"

 

다른 좋은 말도 많은데

하필이면 "말을 안 듣는다" 고 합니다.

 

사실 전국의 수 많은 애들이

맨날 이 소리를 듣습니다.

 

애가 원하는 것 따로

부모가 원하는 것 따로면

어차피 모든 애들은 '말을 안 들을 운명'입니다.

 

대화한다면서

자꾸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는 식이면

역시 애들은 말을 안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남의 집 애한테 어른들이

"엄마 아빠 말 잘 들어~" 라고 말하는 건

별로 좋아보이지 않습니다.

 

택시에서 만난 기사 아저씨가 물었습니다.

 

"뭘로 키울꺼요?"

 

"자유로운 영혼이요" 라고 대답할 수는 없어서

"그냥 자기가 원하는 거요" 라고 말했습니다.

 

"에이~ 부모가 계획 딱 잡고,

매뉴얼 대로 딱딱 키워야지~~!!"

 

다들 이런 식입니다.

 

요즘 주선생님이 보는 책에서는

'아이의 얘기를 적극적으로 듣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부모가 다 정해놓고

꿰어 맞추고 막 시키고

못하면 혼내고 할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저도 사실은 지금까지

'매뉴얼' 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었습니다.

 

밤 늦게 집 앞 공원에서 운동을 하고 돌아오는데

어떤 엄마가 중 3쯤 돼 보이는 아이를 한참 혼내다가

혼자서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갑니다.

 

아이는 뒤에 남겨졌고 얼떨결에 제가

그 아주머니 뒤에 서게 됐습니다.

 

분이 안 풀린 그 아주머니

뒤도 안 돌아보고 계속 소리칩니다.

 

"그러니까 너 이 자식 오밤중까지 텔레비 틀어 놓고 있으면 죽을 줄 알어~~"

괜히 제가 혼났습니다.

 

속으로 얘기했습니다.

'우리집은 텔레비젼 안 보는데요~~'

 

'적극적 듣기'와 함께 '뒤에 누가 있는 지 보기'의 중요성이

확인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미루 말을 잘 들을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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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고민과 경쟁심

집에 장난감이 몇개 있습니다.

각종 딸랑이들과 애벌레 인형

미루는 요새 들어서야 이런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아기 체육관'이란 것을 선물 받았는데

이것도 최근들어서 제대로 가지고 놉니다.

 

그전까지 미루는 

주선생님이 어릴적부터 각광받던 바느질 솜씨로 만든 모빌을

제일 신나했습니다.

 

좀 높은 곳에 달아주면 그냥 보면서 놀고

낮게 달아주면 발로 뻥뻥 차면서 놉니다.

 

사람들한테 들어보니까

애가 좀 크면 가장 좋은 장난감은

집안의 살림살이들이랍니다.

 

'락액락'용기 같은 거 하나 주면

그걸로 한참을 논다고 합니다.

 

어떤 장난감을 언제 사줘야하나

고민했는데 잘 됐습니다.

 

우리 집엔 평소에 제가 열심히 닦아놔서

윤기가 좔좔 흐르는 주방용품들이 많습니다.

 

사실은 그때 가서 다시 닦을 생각입니다.

 

그런데 주변의 엄마들은

벌써 아이 교육에 관심이 지대합니다.

 

어떤 장난감을 사줘야 하는 지

낱개로 살 지 셋트로 살 지

언제 사줄 지 고민이랍니다.

 

우리 한테도 장난감 얘기를 물어 봤는데

 

"미루 장난감으로는 락앤락을 준비하고 있어요" 라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집안에 돌아다니는 물건 주면 된다던데요"

라고는 말했습니다.

 

근데 장난감 얘기 하는 엄마들의 눈에서

불꽃이 튑니다. 묘합니다.

경쟁심입니다.

 

아무래도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라는 말은

막 애를 나았을 때만 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대신 "장난감을 잘 사줘서

아이 두뇌 발달에 도움이 되게 하고, 그 다음엔..."

등등의 구상을 하는 듯 합니다.

경쟁의 시작입니다.

 

기분이 좀 그렇습니다.

안 그래도 경쟁이 사람 잡는 시대입니다.

경쟁이 중요했으면 육아휴직도 못했습니다.

빨리 출세해야지 한가롭게 애나 키울 시간은 없습니다.

 

중요한 건 남보다 잘난 애를 만드는 게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걸 실컷 하면서 살도록 도와주는 겁니다.

 

주선생님과 저는

미루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이 되도록 돕기로 했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과의 경쟁이 아닌 연대의 정신은 기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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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가 부족할 수 밖에 없다

주선생님은 아무한테나

말걸기의 일인자입니다.

 

요즘은 애하고 같이 있는 엄마한테

"몇 개월 됐어요?" 라고 묻는 게 취미입니다.

 

얼마전에는 딱 보기에도

3살이 넘어 보이는 애 엄마한테

"몇 개월 됐어요?" 했다가

그 애 엄마가 눈을 위로 굴리면서

자기 애 나이를 개월수로 환산하느라고

고생하는 것을 옆에서 보기도 했습니다.

 

잠깐씩 혼자 외출할 때마다

밖에서 만난 엄마들한테 들은 이야기를

꼬박꼬박 해줍니다.

다른 데 이야기할 데도 없습니다.

 

"땀띠분 열심히 발라주세요~"

"소금물로 씻어주라던데요~"

 

미루 땀띠 이야기를 하니까

다른 엄마들이 했다는 얘기입니다.

 

근데 이 두가지는

의사들이 대표적으로 하지 말라는 것들입니다.

 

특히 땀띠분은 땀띠 난데 바르면

땀구멍을 막아서 상황을 더 악화시킨답니다.

 

병원에 갔는데 21일된 애를

엄마가 유모차에 묶어서 데려 왔습니다.

원래 이러면 안됩니다.

 

목을 못 가누는데도

애기띠 하고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엄마들을 그냥 '육아의 전쟁터'에 던져 놓고 신경 안써버리니까

연구가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언젠가 어느 글에서 읽은 감동적인 문구가

지금 이 순간 떠오릅니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한 마을이 필요하다'

 

저녁 7시쯤

집앞 공원에 나가면

동네의 유모차들이 다 나와서

바다를 이루고 있습니다.

 

쌍둥이 하고 씨름중인 엄마

미루보다 더 된 애를 데리고 있는데 아직 부기가 안 빠진 엄마

유모차 옆에서 우는 아이 달래주는 임신한 엄마

 

이 모든 사람들은 낮시간 내내 집안에서 혼자

애들하고 실랑이 하다가 나온 사람들입니다.

 

모두 마을의 도움, 그러니까 사회의 도움 없이

개별적으로 알아서 애를 키우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 마을도 아직

애를 키울 준비가 안 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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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빨리 예전처럼2

"몸이 예전으로 안 돌아가요...

배에 힘이 안 들어가는데...

헬스를 할까, 에어로빅을 할까 고민 중이에요.

아니면 그냥 걷기를 할까..."

 

마사지 수업에서 만난 한 엄마분의 고민입니다.

 

저는 갑자기 전문가의 표정을 하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무래도 걷기가 좋아요.

시선은 정면을 바라보고 허리 세우시고,

보폭을 넓게 해서....

내가 언제 이..이렇게 빨리 걸었나 싶을 정..정도로.."

 

주위 사람들이 갑자기 다 저를 쳐다 보는 바람에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습니다.

 

"30분쯤 걷다 보면 배 근육이랑

등 아래쪽 근육이 쫙 조이는 기분이 들거예요~

그게 에어로빅 같은 것 보다 몸에..꿀..꺽..무리도 안 가고 좋죠~"

 

주위가 점점 적막해지면서

제 말만 울려퍼졌습니다.

말을 하다가 호흡곤란이 왔습니다.

 

산모들은 모두 몸이 어서 빨리 예전으로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주선생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임신했을때, 몸무게가 심하게 늘면

여러모로 안 좋다고 해서

 

우리는 아예 표를 만들어서

아침 저녁으로 몸무게를 재서 적어놨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체중관리가 됐었는데

 

애를 낳고 나서는

주선생님 혼자서 몸무게를 신경씁니다.

산모가 임신부보다 대우를 덜 받습니다.

 

그래도 65kg까지 나갔던 몸무게가

지금은 53kg대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어...인제 이 바지도 맞네...

그 동안 입을 것 없어서 힘들었는데...

이야~ 인제 임부복 안 입어도 된다~~~"

 

웬만큼 몸이 예전으로 돌아가자

주선생님 굉장히 좋아합니다.

 

오른손과 오른발을 동시에 올리고,

또 왼손과 왼발을 동시에 올리는 동작을

번갈아가면서 합니다.

 

즐거움을 꼭 몸으로 표현하는 주선생님입니다.

 

이 바지 저 바지 입어보고..

"나 어때?"  합니다.

 

그러더니 기분이 좋은지 외출하면서

선글라스를 낍니다.

 

7시도 훨씬 지나 해가 다 진 시간이었습니다.

그냥 놔뒀습니다.

 

산후조리를 잘못하면

예전 몸매를 못 찾습니다.

 

옆에서 신경을 써줘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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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은 힘들어

두 명이었다 세 명이 되고 나서는

어디 한번 나가는게

완전히 일입니다.

 

나갈땐 한 명만 나가거나

아니면 세 명이 같이 나갑니다.

저와 주선생님 둘이서만 집밖에 나갔던건

미루 낳던 날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오늘은 미루 마사지강좌를 들으러 가는 날이었습니다.

어쩌다가 이런 것도 듣습니다.

 

10시 시작 시간에 맞추려면

새벽부터 정신이 없습니다.

 

"거즈 챙겼어~?"

"응..."

"비닐봉지는?"

"챙겼어~"

"거즈, 비닐봉지, 물티슈, 기저귀, 마사지 오일, 로션, 큰수건...다 챙긴거지?"

 

예전에 몸만 달랑 나가던 시절에는

상상도 못하던 많은 물건들이

'이동시 기본물품'이 됐습니다.

 

자기짐은 자기가 들어야되지만

미루는 불쌍하니까 봐주고

그 많은 짐을 또 두사람이 듭니다.

 

오늘은

맨날 부시시한 미루 머리를

꽃미남형으로 만들어서 갈 생각으로

목욕까지 시켰습니다.

 

강의실에 도착할 때쯤 보니까

미루 머리는 평소와 똑같았습니다.

괜히 목욕시켰습니다.

 

이래저래,

준비하는 시간, 이동하는 시간이 두배는 들고

힘은 세배나 네배쯤 더 듭니다.

 

외출이 힘드니, 집에 돌아오면

꼭 쓰러져서 잠을 잡니다.

 

미루도 나름대로 힘들어서

한바탕 보챈 다음 자고

우리는 그것 땜에 더 힘들어서

완전히 뻗어버립니다.

 

한참 자는데

주선생님이 말씀하십니다.

 

"나 배고파~"

"그래? 간식 먹어야겠네"

"자장면 같은 거 시켜 먹자"

"그러자"

 

저는 계속 잡니다.

 

"자장면 시켜먹자아~"

"그냥 조금만 더 자고 먹으면 안돼?"

 

계속 잠만 자는 저에게

주선생님은 매우 적절한 비유로

일격을 가합니다.

 

"너, 배고픈데 자꾸 자라고 하면

미루가 어떻게 하지?"

 

한 살이나 어리면서 맨날 반말입니다.

 

"막 울지..."

"거봐, 근데 나한텐 왜 그래?!

내가 막 안 우는 걸 다행으로 알아~"

 

괜히 기분이 살짝 나빠질려고 했습니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중국집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찾긴 했지만

순순히 자장면을 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나도 자존심이 있지, 할 말은 좀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얘기는 생각날때 해야지

참으면 두고 두고 후회합니다.

 

주선생님한테 다가가서 말했습니다.

 

 

"니가 시켜~"

 

...

 

 

자장면 하나 시키는 것도 참 힘듭니다.

 

이건 다

외출이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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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여름이 갔으면...

여름은 우리 세명 모두에게 참 힘든 계절입니다.

 

일단 저와 미루는

피부와 체질이 같습니다. 땀을 많이 흘립니다.

여름만 되면 하루 종일 몸이 끈적끈적해집니다.

 

미루와 주선생님에게는

모기 문제가 심각합니다.

 

우리는 미루 전용 모기장으로

완벽 방어를 이미 마쳤습니다.

 

일본 뇌염 예방 주사를 돌 이후에

맞히도록 되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전에는 모기에 물려도 괜찮은가 하는 생각도 조금은 있습니다.

 

문제는 주선생님입니다.

어제 밤에도 다섯방을 물린 주선생님은

거의 노이로제에 걸렸습니다.

 

책상에 앉아 있는데

모기가 날라갑니다.

 

두 사람은 마구 날뛰었지만

모기를 놓쳤습니다.

계속되는 노력도 모두 실패합니다.

 

그리고 결국 자야하는 시간이 됐습니다.

 

주선생님은 잔뜩 풀이 죽은 얼굴입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어깨는 쳐진 체로

방으로 들어갑니다.

 

왼손에는 '버물려'가 들려있습니다.

'버물려'는 모기 물렸을 때 바르는 약입니다.

처절합니다.

 

어서 여름이 갔으면 좋겠습니다.

 

근데 사실

여름이 곧 끝날 조짐이 보이긴 합니다.

 

요즘 저는

유난히 주선생님이 이쁩니다.

미루를 낳은 게 정말 대견한 모양입니다.

 

같이 앉아 있다가

괜히 손을 잡았습니다.

마음을 이야기해줘야겠다 싶습니다.

 

"요새 부쩍 이뻐보이네...

왜 그런지 알아?"

 

"알지."

 

"왜 그러는 거 같은데?"

 

주선생님이 대답하셨습니다.

"여름 다 갔잖아...너는 날씨만 선선해지면 나 이뻐해~

더울때는 끈끈하다고 근처에도 못 오게 하잖아. 몰랐어?"

 

확실히 여름이 다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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