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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자동차 비정규직 투쟁을 다시 희망의 투쟁으로

  • 분류
    노동
  • 등록일
    2012/08/03 15:35
  • 수정일
    2012/08/03 15:45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정규직노조의 통제를 뚫고 사회적 연대와 주체적 투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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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21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포위의 날 행사>가 열렸다. 울산지역 뿐 아니라 전국에서 연대하러 온 2천 여 명의 동지들이 태화강역 광장에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정문까지 도로를 행진하고, 7시부터 열린 금속노조 주최의 <원하청 연대투쟁 한마당>에 참여했다.

 

<원하청 연대투쟁 한마당>이 끝나고 밤 9시부터 본격적으로 <포위의 날> 행사가 진행되었다. 시간이 늦어지면서 참여인원이 많이 빠져나갔지만 그래도 천명 가까운 동지들이 남아 공장 주변을 돌면서 가로수에 만장을 묶는 행사를 진행하고 새벽까지 문화제를 즐겼다. 


정규직 없는 원하청 연대 한마당


<포위의 날> 행사 앞에 열린 <원하청 연대투쟁 한마당>에서 문용문 현대자동차 지부장과 박상철 금속노조 위원장은 현대·기아자동차 비정규직노조 위원장들과 함께 원하청 공동투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다짐 했다.


하지만 이런 발언에 무색하게 울산공장 앞에서 집회가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자동차 정규직노동자들의 참여는 간부 중심의 형식적인 참여 이상을 넘지 못했다. 집회 대오는 대부분 현대자동차의 세 비정규직지회(아산·울산·전주)와 연대 단체들이 채웠다.


정규직노조인 현대자동차지부와 금속노조는 애초부터 비정규직 3지회와 연대 단체들이 추진한 1박2일 행사를 반대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3지회는 최근 한시하청노동자들에 대한 직고용 계약직으로의 전환과 해고, 공정분리와 전환배치 등 사측의 공세에 맞서 전국노동자들의 단결투쟁과 사회적 연대의 힘을 모으기 위해 7월21일 1박2일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포위의 날> 행사를 기획했다.


그러나 이 기획에 대해 금속노조는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하는 행사가 되어야 한다는 근거로 원하청 공동사업으로 안건으로 올려 3지회가 제기한 1박2일 안을 기각하고 당일치기 안을 결정했다. 그리고 금속노조의 결정이기 때문에 3지회가 독자적으로 야간행사를 추진할 경우, 지침 위반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금속노조의 이러한 결정에 대해서 지역의 연대단체들이 연서명으로 항의하기도 했으나 금속노조 결정은 변하지 않았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금속노조가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은 현대차지부 문용문 집행부의 요구 때문이었다고 한다. 아마도 비정규직지회의 독자적인 행사가 임협을 앞두고 사측을 자극할 수 있고 비정규직지회와 연대 단위들의 행사가 자신들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비정규직 3지회의 사정은 아랑곳없이 정규직노조의 요구를 받아 안은 금속노조는 행사 며칠 전까지 야간 행사 중지를 요구했을 뿐 아니라, 행사를 공동으로 기획한 연대 단위에 항의 의사를 전달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금속노조와 현대자동차 지부는 비정규직지회에 대해 장비와 운송수단 등 지원을 거부했다. 이를 볼 때 <원하청 연대투쟁 한마당>은 이름과 달리 비정규직지회의 독자 사업의 발목을 잡기위한 형식적인 행사에 불과했다.


방해공작이나 다름없는 금속노조와 현대차지부의 행태는 이런 행사가 제 2의 희망버스 운동처럼 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금속노조는 겉으로는 희망버스를 찬양하지만 실제로 연대 단위들이 자기들의 통제에서 벗어나 공장 내로 진입하는 등의 행동으로 자본과 갈등을 격화시키는 것을 전혀 바라고 있지 않다. 사회적 연대를 적극적으로 확대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고 쌍용차나 비정규직 문제를 통해 혹시라도 다시 그런 일이 벌어질까봐 전전긍긍하는 것이 금속노조와 대공장 관료들의 실상이다.
 

정규직운동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이번 행사에서 나타난 모습에서 보여지듯 집행부가 민주파로 바뀌었다지만 비정규직투쟁에 대한 정규직노조의 태도는 별반 달라진 것 같지 않다. 노동운동진영은 재작년 현대차비정규직노조의 공장점거 투쟁 당시 어용인 이경훈 집행부에 대해서 많은 비판을 쏟아냈다. 하지만 문용문 집행부에 대해서는 매우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번 행사를 두고 “정규직-비정규직 단결의 기운이 후끈”했다는 금속노조는 그렇다 치고, 진보언론이라는 <레프트21>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형제”임을 강조하면서 “금속노조와 현대차지부가 한마당 행사뿐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특근을 거부하며 밤샘 집회를 한 <포위의 날> 행사까지 함께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알 듯 모를 듯한 지나가는 말로 언급했을 뿐이다.
 

대공장정규직노조들이 비정규직노동자 투쟁에 보이는 배제적인 태도는 집행부가 어용이냐 민주파냐 하는 것과 무관하다. 자동차·조선 등 수출산업의 정규직노동자들은 지난 십 년 간 하청노동자들을 고용의 방패막이 삼아 왔다. IMF 이후 현장에서 상시적으로 구조조정이 벌어져 왔지만 정규직노동자들은 현장 단위의 합의구조를 통해 하청 인력의 조정에 합의를 하며 자기 고용을 방어해왔다. 이런 구조 속에서 원하청 단결은 공문구에 불과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대다수 운동진영은 여전히 원청과 하청의 계급적 단결을 당위적으로 외치고 있다. 하지만 계급적 단결이라는 환상에 기초한 당위적인 주장들은 현실에 있어 오히려 정규직노조의 문제를 은폐하고 실천에 혼란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런 문제는 최근 1사1조직 문제에 대한 혼란으로 불거진 바 있다. 

 

 

문용문 집행부는 지난 6월 비정규직노조와 조직 통합을 대의원 대회에 안건으로 올리겠다고 공표했다. 2008년 세 번 째 부결 이후 4년 만의 일이었다. 비정규직지회는 조합원 범위를 모든 사내하청노동자로 하며 독자적인 교섭권·쟁의권· 체결권을 보장하는 안을 제기했으나, 정규직 집행부는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지부와 비정규직노조의 입장이 평행선을 이루면서 일단 안건 상정은 미루어졌다. 그러나 현대자동차 지부는 올해 임협이 끝나고 나면 다시 조직통합을 추진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에 대해 <다함께>나 <노건투> 같은 단체들은 비정규직노조가 적극적으로 조직 통합을 주장하고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파 집행부가 조직 통합을 제기한 것은 패배 이후 정체된 비정규직노조의 조직 확대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조직통합의 상을 밝히지 않고, 조직통합 자체에 대한 기대와 환상을 퍼뜨리고 있다는 점에 매우 위험천만한 주장이다.


2008년 조직통합이 된 이후 기아자동차 비정규직분회는 기존 조합원이던 2·3차 하청노동자들을 조합원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고 있으며 정규직노조의 완전한 통제에 종속되어 있다. 잘 알려진 대로 기아자동차에서 조직통합은 정규직노조에 의해 폭력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1사1조직을 추진한 기아자동차 노조집행부는 어용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용이 아니라 민주파라는 것이 이들이 추진하는 조직통합의 폭력성에도 불구하고 운동 단위들의 애매한 태도를 정당화시키는 이유가 되었다.


1사1조직에 찬성하는 단체들 중에는 기아에서 비정규직노조가 조직통합에 소극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되었다는 왜곡된 주장을 펼치는 이들조차 있다. 정규직노조의 조직통합 요구에 기아비정규직노조는 되려 총회를 통해 “비정규직의 자주적 요구안의 수립과 현장파업권 인정, 2·3차 하청노동자 가입인정, 비정규직 대의원 할당제 30%”를 요구하는 계급적 조직통합안을 88%의 높은 찬성률로 가결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였다. 비정규직노조가 제시한 조직통합안은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이해와 자주성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였다.


그럼에도 금속노조와 정규직노조는 이를 논의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비정규직노조 파괴행위에 나섰다. 집행부 뿐 아니라 우파에서 <금속노동자의 힘> 같은 소위 현장파·전투파라고 하는 세력에 이르는 모든 정규직 운동질서가 하나 되어 비정규직노조에 조직통합을 종용했다. 이런 압박을 이기지 못한 비정규직노조가 조직통합을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정규직노조는 조직통합의 형태를 취하지도 않았다. 조합원 원서를 새로 쓰게 하고 2·3차 노동자들을 배제함으로써 기존 비정규직노조의 존재자체를 부정한 것이다. 
 

심상치 않은 자본의 노림수

최근 완성차 공장, 특히 현대·기아 공장에 주간연속2교대제 도입을 앞두고 자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작년 유성기업에 이어 SJM, 만도 같은 자동차산업의 1차 부품업체에 강력한 노조탄압이 가해지고 있다. 기아자동차 소하리 공장에서는 노조가 비정규직 공정 도입을 합의한데 항의하여 일단의 활동가들이 점거투쟁에 들어갔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은 한시하청노동자들에 대한 해고와 직고용 계약직으로 전환을 밀어붙이고 있다.


모두 별개로 보이는 이 사건들은 사실 모두 주간연속2교대제의 도입과 공장체계의 재편에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산업은 98·99년 구조조정 이후 사내하청과 모듈공장을 매개로 한 착취체제를 통해 세계시장에서 승승장구 해왔다. 그러나 2004년 자동차 사내하청에 대해 불법판정이 내려지고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이 반복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하청노동자들의 노조결성이 진행되어 적어도 1차 하청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자본의 입장으로 볼 때 99년 이후 형성된 사내하청 중심의 착취체제가 한계에 봉착했음을 의미할 것이다. 노동시간의 변화로 공장 전체 고용의 조정이 불가피한 주간연속2교대제의 도입은 자본의 입맛에 맞는 공장체제의 재편이 이루어지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불법파견 판결이 내려지던 시기와 주간연속2교대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가 비슷하게 겹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참고 기사 : “복수노조와 주간연속2교대제는 대공장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http://sanosin.jinbo.net/Publish/magazine.php?ex=article&b_fn=RD&gotopage=1&pkno=675, 
“현대차 그들이 노리는 두 마리 토끼는 불법적 요소 제거와 고용의 유연성” 
 
http://sanosin.jinbo.net/Publish/magazine.php?ex=article&b_fn=RD&gotopage=1&pkno=715)

 

 


특히 세계경제 위기가 심화되면서 이런 재편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지난 몇 년 간 지지부진하던 주간연속2교대제 논의가 최근 들어 급물살을 타고 있으며, 앞서 언급한 최근의 사태들은 그러한 변화의 일환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모듈공장에 소속되지 않은 부품사 노조에 대한 공격과 공장 내부 체계 개편에 따른 비정규직노동자들에 대한 전환배치, 해고가 잇따를 가능성이 높다.

  

자본은 이를 통해 정규직 임금을 일정 삭감하고 하청중심의 체계에서 벗어나 불법성에 제약되지 않는 더욱 불안정한 체계로 유연인력을 편성하려 할 것이다. 이러한 체계 재편에 있어 사측은 정규직의 고용보장과 임금보전을 미끼로 정규직의 묵인을 요구할 것이다.
 

올해 3월26일 기아자동차에서 2주 동안 주간연속2교대제가 시범 실시되었다. 정규직조합원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정규직조합원들은 대부분 임금을 비롯한 노동조건이 어느 정도 후퇴하더라도 주간연속2교대제를 조속히 시행했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런 상황은 정규직노동자들에 있어 주간연속2교대제가 실제적인 투쟁 사안이 되기 어려움을 보여준다.


주간연속2교대제의 도입은 비정규직과 부품사 노동자들에게 노조탄압과 구조조정의 빌미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지만 조합원들에게 등을 떠밀린 정규직 노조가 이를 방어하는 투쟁에 나설 리는 만무하다.

오히려 그동안 현대자동차에서 계속 부결되거나 미루어져 온 비정규직노조의 조직통합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소지가 있다. 정규직노조가 원하는 것은 주간연속2교대제 도입과 공장 재편 속에서 작업장 내 내 위험요소를 통제하여 자신들에게 협상력을 집중하는 것이다. 문용문 집행부가 조직통합 논의를 계속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 심상치 않게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짝사랑은 이제 그만!


금속노조와 정규직노조의 냉담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야간 행사는 꽤 많은 인원이 참여하며 흥겹게 끝났다. 이번 행사는 일단 성사 자체에 의미가 크다.


지금까지 자동차 대공장에 건설된 비정규직노조들은 원하청 연대투쟁을 명분으로 내세운 정규직노조의 통제에 끌려 다녀왔다. 취약한 하청노조들로서는 정규직노조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정규직 운동질서에 대한 의존성을 강화하고 주체적 투쟁의지를 약화시켜 왔다. 하청노조들 중에서 가장 조직력이 좋다고 평가되었던 기아비정규직노조가 1사1조직 공세에 쉽게 무너진 것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일부 단체들이 주장하는 대로 조직통합에 대한 기대로 조합원이 증가한다 해도 그렇게 늘어난 조합원들로 정규직운동질서에 종속되지 않는 자주적이고 투쟁적인 의식들을 만들어내기는 어렵다. 아니, 오히려 정규직에 대한 의존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정규직 운동에 대한 기대와 짝사랑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지금 들어오고 있는 공세에 대해 투쟁을 조직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비정규직노조들의 힘만으로 공장 내 고착화된 정규직중심 질서를 깨고 나가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촛불투쟁, 희망버스 운동 등 최근 들어 등장하고 있는 사회적 연대의 흐름은 공장 밖의 힘으로 공장 내부를 압박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아직 부족하지만 7월21일 <포위의 날>은 그런 가능성을 어느 정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행사가 1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비정규직노조들과 사회적 연대흐름의 독자적인 사업이 계속 추진되어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조 문제를 이슈화 시키고, 정규직 운동질서의 부당한 압력에 맞서 투쟁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공장 외부로 연대를 확산하는 것을 통해 정규직 운동세력을 압박하고 그 힘으로 자본의 공세에 올곧게 맞서나가며, 비정규직 문제를 다시 사회적 투쟁의 이슈로 만들어나가야 한다. 

                                  이태영 (wjddls72@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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