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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투쟁단 릴레이 인터뷰] #2. 유성지회 이정훈 투쟁단장 - 투쟁의 꽃은 단시간에 피지 않는다 ②

  • 분류
    노동
  • 등록일
    2012/09/07 17:13
  • 수정일
    2012/09/07 17:20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7월4일부터 투쟁사업장들이 함께 모여 <정리해고·비정규직·노조탄압 없는 세상을 향한 공동투쟁단>을 꾸리고 대정부투쟁에 나섰다. 매주 수요일마다 투쟁사업장을 돌아가며 집중일정을 진행하는 공동투쟁단은 지난 희망발걸음과 희망광장을 통해 다져진 투쟁사업장들의 끈끈한 연대의식을 발판으로 더운 여름을 이겨내고 있다. 이에 공동투쟁단에 참여하는 사업장 동지들을 만나 각 사업장의 상황과 공동투쟁단에 함께하며 느끼는 소감과 문제의식을 들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두 번째로 금속노조 유성지회 이정훈 투쟁단장과 조합원들을 삼성동 농성장에서 만났다.

 

 

이 인터뷰는 ①편에서 이어집니다. http://blog.jinbo.net/sanonet/126

 

월급 받는 해고자? 현장주도권 싸움 때문

 

사측의 직장폐쇄와 용역폭력 사태 이후 각종 징계와 해고가 난무했고 어용노조가 들어섰다. 조합원들이 복귀한 이후 노동강도는 강화되고 어용노조와 금속노조 조합원들을 차별하는 등 사측의 현장통제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고 했다. 금속노조 조합원들에게는 잔업특근을 주지 않아 받아드는 임금이 줄어들었다.
유달리 더웠던 이번 여름의 폭염 속에서 에어컨은커녕 그나마 있던 선풍기도 빼앗아 갔다. 컨베이어벨트 라인 한쪽 구석에만 딱 한 대 있는 선풍기의 더운 바람이 노동자들에게 올리는 만무했다. 쉬는 시간은 노동자들이 자율적으로 가질 수 있도록 따내었던 성과도 이제는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정해진 10분 동안만 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영동공장 같은 경우에는 관리자들이 노조 간부들을 따라다니며 감시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금속노조 조합원들도 만만치 않다. 노무사에게 교육받은 대로 징계위에 대응하고 사측 관리자에게 당당한 태도로 맞서면서 아직 우리가 지지 않았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파업과 투쟁을 통해서 자본에 맞서는 노동자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부당해고에서 승소해서 회사에서 임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꼬박꼬박 잘 나오고 있나요?

삼성동 유성지회 농성장

그것은 안 나올 수가 없죠. 유성이 다른 사업장보다 조건이 좋은 투쟁을 하고 있어요. 노동조합이나 회사가 볼 때 아직 노동조합이 졌다라고 판단하지 않고 있거든요. 회사도 이겼다라고 판단하지 않고 있습니다. 비등비등합니다. 비록 어용노조가 생기기는 했으나 어용노조와 조합원 숫자도 비등비등하고. 전체 조합원들을 징계․해고 했지만 지노위나 중노위에서도 (부당징계, 부당해고) 승소를 했고요.
특히나 해고 같은 경우에는 대전 천안지원에서 유성문제를 어떻게 가져가냐면 원안소송이 있고 민사가 있고 가처분이 있고 3개가 같이 가요. 우리 담당 변호사가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영점 몇 프로라도 승소가능성이 있으면 한 번 해보자 라고 많이 대쉬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우리를 설득할 때도 있고. 우리도 역시 가능성이 작더라도 어쨌든 한 번 해보자 이런 심정으로 했는데 모든 재판이 다 이기고 가는 거에요. (근로자지위보전 및 임금지급가처분) 가처분과 관련해서 천안지원에서 해고자를 (본안소송) 원심판결 시까지 월급을 지급하라고 판결을 내려서 지금까지도 주고 있고 주면서 회사가 항소를 했는데 고법에서도 아직 판결문은 안 나왔지만 일방적 승소라고 판단을 하고 있어요.
지노위에서 이기고 중노위 이겼지만 행정소송 대법원 그것은 아직 시일이 남아 있어요.

 

해고자 복직과 관련해서 사측과 접촉이 있나요?

물밑으로 몇 차례가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이렇게 천막을 치니까 회사가 노동조합 집행부에 공문을 보냈어요. ‘천막을 철거하고 내려와라, 내려오면 서로 마주앉아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그건 립서비스라고 보고요. 우리가 판단하건데 만약 어용노조가 만도나 KEC, 상신브레이크처럼 어용노조가 굳건히 섰으면 우리 유성노조같은 경우에는 바깥에 빼지 않고 (현장으로) 들여보냈을 거에요.
생각해요. 해고자 27명이 들어가게 되면 어찌됐든 어용노조를 흔들어 재끼기 때문에 그런 위기감 때문에 아직 월급을 줘서라도 바깥에 빼고 있다, 이렇게 판단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후에 복귀를 시키더라도 단계적 복귀가 되지 않겠나, 이렇게 예상이 됩니다. 한꺼번에 집어넣지는 않겠죠. 내가 사장이라도. 27명이 뭉쳐서 흔들어 재끼니까.

 

현장에 복귀한 금속노조 지회 조합원들은 사측의 탄압을 많이 받고 있다던데요.

탄압을 많이 받고 있죠. 어떤 게 있냐면 금속노조 조합원들은 사실상 변방에서 허드렛일을 노골적으로 시키고 있어요. 개정되기 전의 단체협약에 재배치 문제와 관련해서 합의조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예 단체협약을 무시하고 바깥에 빼가지고 그런 부당노동행위 지배개입들을 하고 있죠.
부당노동행위와 지배개입 관련해서 수십 건이 고소고발이 되어있는 상태인데요. 참 답답한 게 노동부나 경찰이나 다 우리들이 고소고발 하는 건은 (증거가) 명확한데도 불구하고 질질 끌어요. (그런데) 회사가 얘기하는 것들은 빨리빨리 추진하는 거죠. 그게 고소고발 처리하는 부분만 보더라도 확연하게 보여요.

 

지회 조합원들은 사측의 탄압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요?

그러한 대응이 지노위나 중노위 대응으로 가면서 부당노동행위까지 승소했다고 봅니다. 가령 부당해고와 관련해서는 징계위 구성이 노사위원 5:5로 되어 있어요. (기존 단협에) 2/3(이상 찬성해야한다)라는 조항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위반한 해고는) 부당해고로 나올 수밖에 없고 부당징계 같은 것도 마찬가지지만.
조합원들은 하나같이 노무사의 지침과 교육을 받아서 징계위원회에 들어가서 그대로 했어요. 그러한 부분들을 통해서 대응을 했기 때문에 징계와 관련해서 승소한 거고. 요즘 기계가 좋잖아요, 핸드폰 같은 게. 8월22일날 우리가 단계적 복귀하자마자 전체조합원이 (사측의 부당한 탄압을) 채증, 녹취, 이걸 따가지고 법적 근거를 딱 잡았어요. 진술까지. 부당노동행위와 관련해서는 명확한 근거가 없으면 승소가 대단히 힘들어요. (그런데 ) 그것 때문에 부당노동행위까지 다 인정을 받았어요.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는데 다른 노동조합들도 자본에 너무 기죽지 말고 과감하게 ‘나 채증할 거야’ 이러면 자본에서 못 대들어요. 녹음기 앞에 들고 ‘너 나한테 얘기해라, 채증 하겠다, 사진 찍겠다’ (해야합니다). 그게 자신감과 용기가 필요하지 않겠어요? 우리조합원이든 다른 사업장 조합원들이든 내가 닿을 수 있는 사람들한테는 이렇게 얘기하는데. 좀 자신 있게 방어를 해야 된다고.

 

 

투쟁의 꽃은 단시간에 피지 않는다

 

지난 파업기간 동안 극악한 용역폭력에 의해 유성지회 조합원과 연대단위들은 엄청난 물리적‧정신력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당시 회사의 협박과 회유로 지회를 탈퇴하고 어용노조에 가입했던 노동자들도 복귀 직후 감금당하다시피 하면서 살인적인 노동을 해야 했고 구사대에 동원되면서 자책감에 시달렸다. 이 중 한 노동자는 수차례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기를 넘기고 지회의 도움으로 산재를 승인받기도 했다.
동료들과의 갈등, 가족과의 갈등 속에서도 이를 치유하기 위해 지회는 프로그램을 받고 있으며 주위의 연대단위들과 교류를 하면서 투쟁의 꽃을 피우기 위해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현장 밖에서 투쟁하면서 겪는 어려움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가족관계. 생계와 관련해서는 일정부분 월급이 흡족하지는 못해도 나오기는 하나 해고자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으니까 자식들이 ‘우리 아빠 해고야’ 마누라도 월급이 나와도 남편이 해고자가 되니까 스트레스가 쌓이고. 가족관계 속에서 어떻게 얘기해야 될까요... 그런 게 좀 있고요. 바깥에서 투쟁하고 이러면 우리 동료들끼리의 의리는 이렇게 커지기는 한데, 서로간의 가족관계 얘기를 해요, 누구는 어떻고 그런 얘기를 하면 상당히 좀 답답하죠.

 

작년 용역폭력 때 신체적 물리적으로 많은 상처를 입었는데 정신적 상처에 대한 치유 프로그램이 있나요?

유성도 있어요. 유성도 작년에 용역하고 공권력에 두드려 맞고 해가지고 우리 조합원들이 우울증 산재 받은 거 알죠? 산재환자가 스스로 목숨을 버리려고 하기도 했고, 실질적으로 산재로 인정이 되었는데. 그 정도로 심하지는 않지만 그런 환자들이 많아요.
(많은 조합원들이) 다혈질이 돼버렸어요. 상대방하고 얘기하다가 좀 말이 거칠어져요. 그냥 욕이 막 날라가고. 제가 나이가 50인데, 애들이 다 대학생이에요. 집사람이 노골적으로 그 얘기를 해요. ‘**아빠가 거칠어졌다, 말이. 뭔 욕을 그리 하냐’고. 테레비을 보다가도 막 욕이 나오는 거에요. 거칠어졌다, 이런 얘기를 해요. 나도 모르게 욕이 막 나오고.
그래서 아산지회 같은 경우에 심리치료 중이고. 영동지회 같은 경우는 아산의 심리치료를 보완해가지고 하려고. 가족들도 지원자가 있으면 하는 걸로, 같이 하고 있고.

 

‘투쟁사업장 공동투쟁단’에 참여하고 계신데요.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나요?

서울에 천막 내지 서울상경투쟁 사업장 숫자가 한 열 네 다섯 개인 줄 알고 있어요. 그 열 네 다섯 개와의 공동투쟁에 일정부분 서로 의미와 목적이 비슷하거든요. 올라와서 유성만의 투쟁이 아니다라는 것을 공감하고 정리해고, 부당해고, 용역깡패, 직장폐쇄 문제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돼서 공동투쟁단에 일정부분 같이 합류하고 있어요.

 

희망광장을 같이 하고 공동투쟁단으로 이어져 왔는데 이러한 공동투쟁의 흐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세요?

희망광장 당시 시청에 설치된 유성지회 텐트

그건 저 나름대로의 평가도 있는데 전체 평가도 있는 거죠. 전체적인 평가는 희망뚜벅이와 희망광장이 어쨌든 너무 확대되지 못했다는 것과, 제일 큰 쌍차에 일정정도 치우친 것, 물론 워낙에 쌍차 투쟁과 관련한다면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이 두 번 다시 그런 일들이 안 일어나야 하지만, 공동투쟁과 관련해서는 널리 알려지지 못했다고 이렇게 평가를 하더라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바라본다면 투쟁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단시일에 꽃이 안 핀다, 작은 것부터 알려서 확대되어야만 큰 싸움이 되고 많이 알려지고 이런 전초전이 라고 생각하거든요. 뚜벅이로부터 희망광장으로부터 그 다음에 공동투쟁단이 벌어지고 그 속에 쌍차투쟁이 확대되고 이런 게 결실을 맺지 않겠나, 이렇게 바라보고 있어요.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해요.

 

공동투쟁단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사업장을 돌아가면서 집회를 여는데 이러한 연대투쟁이 어떠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의미는 크죠. 대단히 커요. 저는 유성이 됐든 JW가 됐든, 쌍차는 워낙 인원이 몇 명 안 되고 싸움은 크고 해서 쌍차 동지들이 돌아다니지 못하는 부분은 있지만, 나머지 사업장에 재능이든 어디든 돌아다니면서 연대하는 게 의미가 크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학생연대가 너무 고마운데요. 학생들이 공부하기도 바쁜데 방학기간에 온갖 투쟁사업장을 돌아다니면서 연대한 것이 너무 가슴이, 감동을 받았어요.
현장에서도 연대투쟁이 많았죠. 우리 작년 투쟁만 보더라도 엄청 연대가 있었어요. 학생들이 자기네들이 알바해가지고 등록금을 마련해야됨에도 불구하고 재정사업을 해가지고 우리 투쟁기금을 전달해주고 그랬어요. 마음이 울컥하더라고요.

 

인터뷰 내내 그리고 마지막까지도 이정훈 단장은 모든 탄압의 배후가 현대차자본임을 반드시 밝히고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기아차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자동차산업에서 부품사,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투쟁에 전국 곳곳에서 투쟁하고 있다. 만도나 유성, SJM과 같은 부품사와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원청의 지배개입과 원청 사용자성을 밝혀 내었다. 이정훈 단장의 말대로 자신감 있게 사측에 저항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공감대를 가진 여러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함께 할 때 투쟁의 꽃을 피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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