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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4일부터 투쟁사업장들이 함께 모여 <정리해고·비정규직·노조탄압 없는 세상을 향한 공동투쟁단>을 꾸리고 대정부투쟁에 나섰다. 매주 수요일마다 투쟁사업장을 돌아가며 집중일정을 진행하는 공동투쟁단은 지난 희망발걸음과 희망광장을 통해 다져진 투쟁사업장들의 끈끈한 연대의식을 발판으로 더운 여름을 이겨내고 있다. 이에 공동투쟁단에 참여하는 사업장 동지들을 만나 각 사업장의 상황과 공동투쟁단에 함께하며 느끼는 소감과 문제의식을 들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첫번째로 공동투쟁단을 제안한 코오롱 정투위(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회) 최일배 위원장을 과천 농성장에서 만났다. |
원직복직을 넘어 정리해고법 철폐로 나아가는 코오롱 투쟁
코오롱 본사 앞에 다시 천막을 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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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오롱 정투위 최일배 위원장 |
(투쟁한지) 8년인데 저희들이 초반에 한 2년은 정말 치열하게 투쟁했었고 그 때도 과천 여기(농성장)에서 한 블록 돌아 맞은편이죠, 저기에 천막치고 2년 가까지 투쟁했었고. 그 이후에는 저희들이 전부 코오롱 구미공장에서 근무를 했기 때문에 코오롱 구미에서 일상적인 출퇴근, 선전전을 병행했죠. 그렇게 하다 보니까 투쟁이 소강국면으로 들면서 코오롱 투쟁이 끝난 것처럼 주위에서 그렇게 많이 알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올해 1월 달에 투쟁사업장들이 모여서 한 번 함께 투쟁하자해서 공동투쟁이라든지 희망발걸음을 통해서 ‘어, 코오롱 투쟁 아직 끝나지 않았느냐’, 또 3월 달에 희망광장하면서 다시 ‘코오롱이 투쟁이 안 끝났구나’ 이런 얘기들이 오고 갔어요.
그리고 올해 들어서 쌍용차 문제가 부각되면서 자동적으로 정리해고 제도 자체에 대한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면서 ‘그렇다면 더 이상 이렇게 흐지부지하게 어영부영,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이런 투쟁으로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계속 구미에서 투쟁을 하다보니까 (우리 투쟁이) 과천 본사에 제대로 보고도 되지 않았고, 또 한 가지는 71명이 정리해고 됐지만 50명이 정투위를 구성해서 투쟁을 시작했는데 지금 16명밖에 안 남았기 때문에 우리 내부적으로 대오들이 더 떨어지기 전에 지금 이 시기에 과천 본사에서 천막을 치고 본격적으로 다시 한 번 투쟁 선포를 해야 되지 않느냐, 이런 판단에서 5월11일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하게 된 거죠.
천막투쟁의 기조와 목표는 어떻게 되나요?
솔직히 그런 질문들을 많이 하세요. 원직복직 가능하냐. 그럼 저는 그런 얘기를 해요. 지금 실질적으로 16명이 남았는데 16명이 전원 원직복직 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 뭐 때문에 싸우느냐.
지금 정리해고라는 게 저희들이 부담과 죄의식이 있어요. 무슨 말이냐면 우리가 정리해고 됐을 때 정말 치열하게 싸웠더라면, 그래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코오롱이 아닌 다른 자본들이‘정리해고를 하니까 회사에 막대한 피해가 오는 구나’, 이런 경각심을 심어줄 정도로 투쟁을 했더라면 이후에 계속해서 정리해고가 진행됐겠느냐는 거에요. 어떻게 보면 너무 큰 부담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부담감이 있어요.
그렇게 되다보니까 우리의 투쟁이 단순히 우리만의 투쟁이 아니고 정리해고 제도 자체에 대한 문제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를 알려내는 것이 의미가 있다, 그래서 우리가 원직복직 하고 안하고의 의미에 못지않게 이후에 다른 정리해고 사업장이 발생되지 않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을 담아서 투쟁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정리해고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는 부분들이 너무 가슴이 아프죠. 그래서 공동투쟁을 제안하고 같이 하게 된 이유도 단사만의 빡센 투쟁만으로 한계가 있겠구나, 그래서 함께 모아내고 엮어내는 투쟁을 만들지 않으면 우리가 생각하는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화시키는 것이 단사만의 투쟁으로는 한계가 있는 거구나, 이런 걸 투쟁하면서 많이 느꼈죠.
방금 말씀하신 투쟁방향에 대해 정투위 16명의 동지들이 모두 동의한 내용인가요?
내부적으로 사실은 고민과 갈등이 많았죠. 왜냐하면 가정적으로나 너무 힘들고 지치니까. 그냥 적당히 해결하자, 어떤 방법으로든, 이런 얘기까지 있었어요. 그래서 사실은 그런 것들에 대해서 심각한 고민을 한 것도 사실이고. 어쨌든 간에 끝을 내어야 되겠다, 이런 마음을 먹을 정도의 안 좋은 상황까지 갔었죠.
근데 그 고비를 또 넘겼어요. 물론 우리의 근본적인 목적은 당연히 원직복직이죠. 원직복직이지만 그 고비를 지나고 지금은 우리 동지들이 원직복직에 너무 꽂혀있지는 않죠. 우리 투쟁이 지금까지 진행해온 과정, 여기에 큰 의미가 있기 때문에 ‘결과에 대해서는 너무 조급해 하지 말자, 하루라도, 내일, 오늘 당장이라도 싸움이 끝났으면 좋겠지만 거기에 대해서 너무 조급하다보면 그렇다고 해서 끝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우리만 더 비참해지는 거니까’, 이런 정도의 의견이나 얘기들을 모아나가고 있어요.
정리해고라는 것이 현장에 다시 복직해서 일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정리해고자라는 건 평생을 따라다니는 거거든요. 무슨 전과자처럼 평생을 따라가는 거기 때문에 그렇다면 현장에 다시 들어가서 다시 일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문제보다 더 급한 것이 정리해고 자체의 철회다, 그것이 가장 기본이다. 그러면 철회라는 것은 최소한의 면죄부인 거거든요. 그것이 명분쌓기든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정리해고자로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현장에 들어가서 일 하는 것은 2차적인 목적인 거고 1차적인 목표는 정리해고 자체가 철회되는 것, 그래서 내가 정리해고자가 아니라는 것, 이것이 가장 우선적인 거다, 그래서 정리해고를 철회시키는 이것이 1차적인 투쟁 목표라고 볼 수 있는 거죠.
현재 구미공장 상황은 어떠한가요?
저희들이 정리해고자로서 노동조합 선거에 출마해서 당당하게 당선까지 됐지만 2006년 4월 달에 중노위 (부당노동행위 및 부당해고 구제신청 판결에) 지면서 조합원 자격을 상실당하면서 공장 밖으로 내몰렸어요. 그해 6월 달에 저희들과 경선에서 붙었던 어용후보를 그대로 위원장 단독후보로 내세워서 그 자가 지금까지도 위원장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2006년 12월 달에 민주노총을 탈퇴하고 지금은 개별 기업별 노조가 되었죠.
현장은 조합원 1,400명이었다가 지금은 700명이고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에 대한 어떠한 얘기든 꺼내면 바로 다음 날 면담을 해야 된다든지 이렇게 귀찮고 피곤하기 때문에 아예 눈과 귀를 닫고 살고 있죠. 그리고 더 안 좋은 것은,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보니까 속된 말로 더럽고 치사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라도 먹고사는 게 어디냐, 지금 바깥에 나가면 이보다 더 못한데, 이렇게 안주를 하게 되는 거죠. 스스로가 그렇게 자학을 하면서 지내고 있는 거죠.
8여 년의 오랜 투쟁을 해왔지만 한 번도 투쟁을 멈추진 않았던 것 같아요. 그 속에서 상처나 피로가 많이 누적되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푸시나요? 쌍용차 동지들도 와락센터가 있어서 연계를 맺고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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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 다스지회 동지(맨 왼쪽)들이 1박 연대투쟁을 오면서 수박을 사왔다. 김혜란 동지(가운데)는 최일배 동지와 함께 천막을 꾸려나가고 있다. |
아쉬웠던 게 여기에 대해 사실은 제가 좀 왜곡된 시선을 가지고 있었어요. 한 2년 전엔가 이런 치유 프로그램을 제안 받았는데, 저는 정신병 비슷하게 (이해해서) ‘뭐냐, 우리는 정신 멀쩡한데, 왜 우리를 그런 취급하냐’ 이렇게 오해를 했었어요. 그래서 ‘이런 것은 필요 없다’ 그렇게 오판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좀 아쉽고.
지금은 특별하게 프로그램이나 이런 것을 하더라도 남아있는 16명이 참석할 수 있는 조건이나 여건이 잘 안되다 보니까 지금은 그런 게 좀 아쉽고. 그래서 혹시라도 다른 데에 그런 프로그램이 있으면 저하고 같이 투쟁하고 있는 우리 여성 동지하고 그런 프로그램을 한 번 받아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 개인은 오히려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사람에 실망한 것 보다는 오히려 사람에서 희망이나 에너지를 더 많이 얻거든요, 개인적으로는. 그렇다 보니까 너무 죄송스러운데 저는 지금 굉장히 행복하다는 생각과 얘기를 어디 나오면 굉장히 많이 해요. 가장으로서 금전적으로 가정에 제대로 해주지 못하는 것은 있지만 그것이 아니고 제 개인으로 봤을 때 정신적으로는 훨씬 더 건강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현재 상태는. 그런데 우리 함께하고 있는 여성 동지는 또 안 그렇거든요. 그 동지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이 동지와 함께 이런 프로그램에 진작에 참석했으면 하는 게 지금 많이 후회되고 아쉬워요.
지역과 연대로 힘으로 꾸려가는 천막농성장
천막 운영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안타깝게도 16명 중에 1명을 (화섬)연맹위원장으로 파견하고 있고 투쟁팀은 여성동지 하고 저하고 2명밖에 없어요. 그리고 나머지 13명은 생계팀으로 해서 한 달에 한 번씩 전체회의에 참석하고 투쟁기금을 10만 원씩 내는 쪽으로 운영해요. 실제로 이 천막에 저 혼자 고정적으로 말뚝이고 같이 투쟁팀인 여성 동지는 일주일에 삼일 사일 정도 여기 상주하다가 구미에 잠깐 내려갔다가 그런 식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화섬연맹 이상진 위원장은 일정 없을 때 수시로 왔다 갔다 하고 생계 나간 동지들은 가능하면 1박으로 해서 올라오고 그렇지 않은 동지들은 (일정) 당일 날 오전에 올라왔다가저녁에 내려가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죠.
운영비나 생계비는 어떻게 마련하나요? 연맹에서 지원이 나오나요?
금속 같은 경우는 신분보장기금이 나오는데 화섬연맹은 신분보장기금 같은 게 없어요. 그래서 처음 2년, 3년까지는 자체적으로 개개인들이 알아서, 대부분 정리해고 사업장들이 비슷한데 적금이나 이런 거 해약하고 보험같은 거 해약하고 그래서 자신들이 알아서 스스로 극복을 했고.
그 이후에는 정확하게는 기억이 안 나는데 2007년인가 2008년에 장투지원단 뚝딱이라는 게 처음 구성이 되었어요. 그 당시 장기투쟁사업장이었던 기륭, 코오롱, 하이닉스, 하이텍 이런 사업장들이 모여서 장투지원단 뚝딱이가 출범을 했던 거죠. 대부분이 금속 사업장이었기 때문에 신분보장기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코오롱에 최저생계비를 지원하는 것이 동의가 되어서 장투지원단 뚝딱이의 도움을 굉장히 많이 받았지요. 그것도 올해부터는 중단이 된 상태지만, 그리고 중간에 금액이 조금 줄어들었지만, 장투지원단 뚝딱이의 지원이 가장 컸고.
그리고 대부분 하는 거지만 재정사업, 일일주점, 이런 것, 그리고 우리 동지들이 내는 투쟁기금, 구미지역의 동지들이 조합원 1인당 2천 원씩 결의해서 주는 기금, 이런 것들로 지금까지 운영을 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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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24일 열린 문화제에는 와락센터에서 온 쌍용차 아이들이 공연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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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락센터 권지영 대표는 코오롱 정투위에 투쟁기금도 전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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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화요일 저녁 7시 반 코오롱 정리해고 철회와 원직복직 쟁취를 위한 문화제가 열린다. 연맹이나 큰 노조에서 대오를 동원하지 않지만 지역 노조와 단체, 촛불시민들이 자리를 가득 메운다. 농성장은 정부과천청사역 4번 출구로 나가면 바로 보인다. |
코오롱 농성투쟁을 지지하는 지역공대위가 꾸려졌다고 들었습니다.
지역공대위가 꾸려졌는데 그게 조금 소통적인 부분에서 아쉬운 것이, 기본적으로 과천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과 시민사회 단체, 그리고 노조 등 지역을 기본으로 지역공대위를 꾸리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데 그게 빠르게 진행되지 못하다보니까 범위가 좀 확대되었어요. 다른 지역의 노동조합과 단체들까지도 결합하는. 물론 어떻게 보면 범위가 커지면 좋다고 볼 수 있겠지만 여기 과천 지역에서 먼저 구성되고 확대되었으면 모양새가 좋았을 텐데. 지역이 속도가 안 붙다보니까 지역에서 만들어지기 전에 전체적으로 만들어져서 지역(단체들)이 그 속으로 들어와 버리는 요런 모양새가 되어서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어쨌든 지역공대위가 구성되어서 격주로 저희가 매주 화요일에 문화제를 하는데 2주에 한 번씩 여기서 문화제 끝나고 회의하는 걸로 정리를 했죠.
화요일 문화제 외의 공식적인 집회나 일정은 따로 없나요.
기본적으로 여기 상주하는 인원이 저하고 다른 1명밖에 안되다 보니까 집회신고는 돼있지만 방송차로 선전방송을 틀어놓고 1인시위 형태로 출퇴근 시간과 중식시간에 방송 틀고 피켓시위를 매일 진행하고 있고. 나머지 부분들은 천막 치면서 얘기를 했지만 실질적으로 지금 민주노총이 총파업 일정이나 이런 게 잡혀 있다 보니까 지역적으로 상경투쟁이라든지 집중해서 집회하는 시간이 굉장히 많아요. 그러다보니까 여기서 저희가 집회를 잡는다 하더라도 상당히 집중하기가 쉽지 않겠다, 현실적으로, 그래서 8월까지는 집중집회나 그런 것들을 계획하지 않는다, 그래서 천막을 치고도 한 달간은 문화제도 안 했어요. 왜냐하면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데가 너무 많아서. 대한문만 해도 재능과 마주보면서 매일 문화제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여기 천막치고 문화제를 매일 해버리면 결국은 인원이 분산되고 싸움이 분산되어 버리는 것이 결과론적으로 우리한테 전혀 좋을 게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굳이 집회 같은 것들은 만들어내려고 하지 않고. 문화제 같은 경우는 지역에서 요청이 있었어요.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문화제라도 해야되는 거 아니냐, 그래서 농성하고 한 달 이후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반에 문화제를 하고 있죠. 그래서 집회나 이런 부분들은 8월 이후에 고민하고 진행할 예정입니다.
천막 설치 후 사측 반응은 어떠한가요?
보는 관점에 따라서 약간 해석이 다를 수도 있겠는데. 일단 천막(농성)에 대해 계속해서 시청에 고소고발 하는데 그것이 안 되니까 수원지검에다가 업무방해 가처분을 신청했어요, 얼마 전에. 근데 문제는 2005년도에 코오롱이 업무방해 가처분을 신청해가지고 (그 해) 6월 달에 적용이 되었는데 그 가처분이 10년간 유효하다 그러더라고요. 그러면 지금도 그 가처분이 유효한 상태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가처분을 새로 신청했다는 것은 그만큼 부담스럽다는 것이 아니겠느냐, 우리 입장에서 봤을 때에는 그렇게 보는 거고.
그 다음에 지금 보시다시피 (코오롱 본사를 가리키며) 여기 4층에 지금 카메라가 저기, 실내에 유리창을 통해서 저렇게 설치된 전례가 없는데 저렇게 카메라를 설치하고 천막을 감시하는 거라든지, 그리고 집회신고를 내기 위해서 시도를 했던 것들, 이런 것들이 저희들 나름대로는 굉장히 부담스러워는 하고 있다, 이렇게 분석을 하고 있죠.
과천시에서는 강남구청이나 서초구청처럼 농성장에 대한 물리적인 위협은 아직 없는 건가요?
여기 과천에 저희들이 2005년 말부터 한 1년 반, 2년 가까이 천막농성을 했을 때에도 시청에서 계고장이 몇 번 날아왔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지금까지 물리적 충돌이 없었던 부분에 대해서 어쨌든 고맙게 생각하는데 이제 얼마 안 남았는데 우리도 내부적으로 결정을 해야 할 단계까지 온 것 같다, 지금까지 우호적으로 잘 지내왔던 것들을 훼손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해서 시청에서 한두 달 더 기다려줘 가지고 저희들이 내부적으로 결정해서 자진해서 천막 철거를 한 적이 있고.
지금 여기 천막 같은 경우도 시청에서 (하는) 얘기는 공간이 다행스럽게 넓고, 시민들의 통행에 전혀 불편을 주지 않고 천막이 깨끗하게 보이고 그러다 보니까 혐오감을 준다든지 이런 부분들도 없고. 그래서 민원이 들어오는 것은 코오롱에서 들어오는 것 외에는 없기 때문에 자기들이 굳이 물리력을 동원해서 이것을 강제로 철거할 생각은 없다, 이렇게 얘기하죠.
공동투쟁단을 꾸리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투쟁사업장 공동투쟁단을 가장 먼저 제안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나요?
없던 것을 갑자기 생각해서 제안한 건 아니고 올 1월 말에 희망발걸음을 했어요, 투쟁하고 있는 단위들이. 그리고 그 단위들이 희망발걸음을 통해서 ‘야, 괜찮다, 이거 계속 이어가자’ 이렇게 해서 3월 달에 그것의 연속성이라고 볼 수 있는 희망광장이 진행됐고. 두 차례 그런 일정을 진행하고 난 뒤에 어떻게 보면 그것의 또 다른 연장선이라고 보면 되죠. 해야 되는데, 해야 되는데 하다가 대한문에 쌍차 분향소가 생기면서 계속 시간만 지연되고 해야 된다는 생각만 하고 진행이 안됐죠.
그런 생각을 갖고 있던 차에 ‘계속 고민만 할 게 아니고 빨리 시작부터 한 번 해보자’ 해서 긴급하게 소집을 했고. 거기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나왔는데 거점별로 다 흩어져 있다 보니까 매일 모이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그거 고민하다가 세월 또 가니까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어렵지만 모임을 할 수 있다, 일주일에 한 번 모이는 것부터 시작을 해보자, 최대한 빠르게. 그리고 시작하는 과정에서 장단점은 하면서 우리가 바꿔나가자, 투쟁했던 동지들이 대부분 공감대가 형성돼 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쉽게 진행이 됐죠. 그래서 7월4일부터 시작했던 거고.
그렇다면 대정부투쟁의 내용은 무엇인가요?
저희들의 목표는 단순히 한 개 사업장의 정리해고를 철회하라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정리해고 제도 자체가 상당히 모순이 있는 거다, 이 정리해고 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 비정규직 법안도 실질적으로 비정규직을 위하는 법안이 아니고 오히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악법이다, 그러니까 정리해고법과 비정규직법은 악법이다, 그래서 이 악법은 폐지되어야 한다. 그리고 노조탄압이 자행되고 있는 투쟁을 보면 복수노조 교섭창구가 단일화 되면서 그것이 또 노동탄압의 주 핵심이 되기 때문에 교섭창구단일화를 하라는 것도 잘못된 시도다, 라는 것들. 그리고 투쟁사업장에 보면 용역깡패들이 수시로, 합법적으로 투입되는 것들에 대해서 컨설팅 회사라든가 이런 놈들이 쉽게 현장에 투입되지 못하도록 제도를 강화하는 것, 뭐 요런 것들을 기본적인 주장으로 대정부투쟁의 핵심요구사항이죠. 그런 것들을 규탄하고 잘못된 것을 바꿔라, 폐기하라고 요구하면서 투쟁을 전개하죠.
그렇다면 투쟁 방식에서 법을 바꾸는 투쟁, 입법 청원, 국회의원과 연계하는 활동내용이 있나요?
뭐든지 완벽하게 준비해서 출발하는 건 없거든요. 처음에는 저희들이 대정부투쟁을 목표로 하고 출발했는데 하는 과정에서 대정부투쟁이 구체적으로 뭐지, 약간의 혼선이 왔던 거고. 그게 일주일 전에 있었던 새누리 당 앞에 기자회견을 하면서 노동악법에 대해서 정부규탄하는 항의 기자회견이었는데 갑자기 면담이 이루어지면서 면담에 들어가 버리는 상황이 발생했거든요.
거기서 내부적으로 약간의 혼선이 있었어요. 뭐냐, 이 법을 만든 기득권 여당에게 이 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항의하는 기자회견이었는데 그들과 면담을 해버린다면 자칫 우리가 그들에게 이용당할 소지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평가가 있었어요.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법을 바꾸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 법과 관련됨 의원이나 이들을 만날 필요가 있겠지만 지금 국면에서는 그들을 만나는 것이 자칫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아닌 저들의 정치적인 공약에 전략에 말려들 수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당분간은 이 악법에 대한 규탄, 항의 이런 쪽에 포커스를 맞추고 갈 필요가 있겠다. 그래서 어느 시점에 무르익으면 법을 개선하고 제대로 바꾸는 투쟁을 그 때 배치를 하더라도 지금은 면담이나 이런 투쟁은 안 맞는 것 같다, 이렇게 내부적으로 토론, 평가를 통해서 얘기가 되었죠.
진화하는 공동투쟁
투쟁사업장 공동투쟁단 하면 이명박이 취임하던 시기인 2007년 말 2008년 초에도 이랜드, 코스콤, 기륭 등이 주축이 된 공동투쟁단 활동이 생각나는데 그 때에도 함께 하셨나요?
그 때 저는 완전히 집중했다기 보다는 잠깐잠깐씩 참석했는데. 그 때는 물론 너무 오래되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지금 공동투쟁단의 그런 느낌은 없었던 것 같거든요. 같은 공동투쟁이지만 조금조금씩 진화한다고 해야 될까, 그런 느낌이 있어요. 그 때 공동투쟁만 해도 동지들끼리 끈끈한 느낌, 이런 느낌은 사실 조금 부족했거든요.
이전에는 품앗이 투쟁이라고 많이 얘기했죠. 지금의 공동투쟁은 어떤 점이 진화한 건가요?
그 때는 말씀하신대로 단순히 잠깐 몸연대 해주는 정도, 이런 느낌이었고. 지금도 물론 방식은 그 방식하고는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아요. 하지만 예를 들어서 얼마 전에 jw 앞에 집회를 했는데 jw 앞에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자신의 문제인 것처럼 적극적으로 전면에 나서서 뒤로 빠지지 않고 그런 것들은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으면 그런 행동이 나오지 않거든요. 그래서 지금의 공투단은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고 저는 보는 거죠. 그런 것들이 예전의 공투단과는 조금은, 조금은 차이가 나는 것 아니냐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공동투쟁이 굉장히 많죠. 많지만 저희들은 기존의 공동투쟁과 다르다고 계속 주장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냐면, 기존의 공동투쟁을 보면 예를 들어 민주노총이든 금속이든 각 산별에서 투쟁하고 있는 단위들을 일 년에 한 번씩 이벤트 행사 비슷하게 모아서 ‘어, 공동투쟁 한 번 해야 되는데’ 이래가지고 5박6일이나 3박4일 이렇게 진행하는 형태, 말 그대로 이벤트성이거든요. 그러다보니까 아무래도 거기에 참석하는 주체들이 자신과 직결되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상부단체에서 정한 틀에서 본인이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듯한, 이런 게 되니까 힘들다, 피곤하다, 빡세다, 자기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얘기를 하는 웃기는 상황이 발생되는 거죠. 그래서 이런 방식은 아니다, 같은 공동투쟁이라도 주체들이 스스로 이것이 자신의 문제라는 것을 느끼고 할 수 있는 공동투쟁이 되어야 되겠다, 해서 공동투쟁단은 투쟁하고 있는 단위들이 주체가 되어서 만들어내는 그런 투쟁이에요.
그런데 실질적으로 그들만으로는 한계가 있거든요. 왜냐하면 내부적인 투쟁현실이 빤히 있는 상황에서 이것만 기획하고 몰입할 수는 없는 상황이니까요. 그래서 지원하고 도와주는 활동가 동지들이 좀 있어요. 문제는 그것을 자칫 잘못 판단해서 희망광장, 희망발걸음 할 때에도 그런 경우가 있었는데, ‘비없세(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에서 주도를 해서 투쟁사업장들이 거기에 따라서 움직인다, 이런 얘기가 좀 있었어요. 그래서 이번 공동투쟁도 그렇게 바라보는 시선이 좀 있었는데 그런 것들은 굉장히 아쉽죠.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그런 것들이 오해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것들도 사라질 거다. 그래서 그런 것들에 연연하지 않고 우리가 주체로서 지금처럼 계속해서 진행해 나가자. 오히려 우린 고맙죠. 함께 도와주고 지원해주는 동지들이 우리 입장에서는 굉장히 고마운 동지들이죠.
희망광장, 발걸음 할 때에도 물론 (투쟁사업장 동지들이) 기획단에 포함이 되어서 기획을 하고 했었지만 사실은 활동가 동지들이 주로 짜놓은 계획에 기획단으로 참가한 투쟁사업장들이 보고 뭐 특별하게 하자가 없으면 그 일정 그대로 가는, 물론 같이 고민하고 논의해서 만들어냈죠. 그 당시에도.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도 더 투쟁사업장들 자체에서 나온 의견들이 주죠. 진행하고 있는 방식이라든가, 지금 우리가 대정부투쟁과 투쟁사업장 공동투쟁을 하고 있는데 이런 것들이 전부다 투쟁하고 있는 사업장 대표자들이 대표회의에서 나온 것들이 주가 되어서 일정을 진행하고 있죠.
희망운동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있는데 동지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긍정적인 부분들을 더 많이 봐요. 왜냐하면 희망광장과 희망발걸음에 같이 해온 동지들이 단순한 연대, 예전에는 몇 년을 봐도 한두 시간 집회에서 보고 헤어지다 보니까 ‘어, 집회에서 많이 봤던 동지’ 이 정도 밖에 안됐는데 희망광장과 희망발걸음을 통해서 같이 부대끼면서 같이 싸우고 고생을 하다보니까 친근감이 굉장히 높아졌어요. 그래서 대한문에서 경찰과의 대치 상황이 발생했을 때 마치 자신의 문제인 것처럼 더 적극적으로, 물론 경찰하고 잘 싸운다고 해서 잘 하는 건 아니지만(웃음), 예전 같으면 멈칫멈칫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말 그대로‘ 난 연대만 간 거다’ 이렇게 생각하고 손님처럼 한 발 물러나 있었을 텐데. 그런 공동투쟁을 통해서 손님이 아닌 이것은 나의 문제다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던 거죠. 그렇다보니까 어떤 상황이 발생하면 그 사업장 동지들 못지않게 적극적으로 함께 싸우는, 몸을 같이 부대끼는 이런 것들이 공동투쟁의 성과라고 보는 거죠.
그리고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주체들의 의식이 높아지다 보니까 수동적이지 않고 적극적인, 물로 그 중에는 아직까지 따라오는 정도의 의식 수준에 있는 동지들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낸다, 그런 의미를 담기 때문에 굉장히 활동이나 행동이 적극적이고, 그것에 대해서 공동책임지는 구조가 되다 보니까 그런 의미가 크다고 봐요.
그리고 투쟁하는 동지들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이 동하는, 이렇게 되다 보니까 희망발걸음 때 세종호텔이 희망발걸음에 합류했다가 세종호텔에 긴박한 상황이 발생해서 그 때 다른 지역에 있었거든요, 우리 희망발걸음 동지들 전부 다 다시 그리로 한 번 집중했으면 좋겠다는 요청이 있다고 했을 때 그 자리서 바로 전체가 동의해서 버스로 이동해서 갔는데 마침 여러 가지 여건들, 조건들이 좋았겠지만 그 이후에 문제가 바로 해결이 됐거든요. 그런 것들에서 공투단 모두가 마치 자기의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너무 기뻐했거든요. 이런 부분들이 공동투쟁의 성과와 의미가 있는 거고.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예전의 공동투쟁은 사실은 비정규직 사업장 공동투쟁, 정리해고 사업장 공동투쟁, 뭐 이렇게 따로따로 놀았단 말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정리해고 비정규직 노조탄압 이것이 하나의 세트다, 정리해고된 사업장이 비정규직으로 전락하면서 민주노조가 무력화되는, 이런 것들이 같은 하나의 연결고리라는 것에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거죠. 그래서 같은 사안을 가지고 공동적으로 투쟁하고 있는, 그래서 이후에는 여기에 더 추가적으로 공무원노조라든지 이런 동지들도 연결고리를 같이 묶어서 엮어내는 (것을 고민해요).
그리고 지금 용산범대위나 강정마을도 마찬가지라고 저는 보는데 우리 편에 붙어라, 공동투쟁단에 붙어라, 이런 문제가 아니고 이왕이면 거기에 구성되어 있는 공동투쟁단과 여기의 공동투쟁단이 한 달에 한 번이 되든 하여튼 최대한 많이 모이는, 하루라도 같이 모여서 한 목소리를 내는 것들이 필요하지 않겠느냐. 물론 (우리가) 투쟁사업장의 공동투쟁이지만, 투쟁사업장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이후에는 점차적으로 확대해서 함께 각각의 공동투쟁 덩어리들을 하나로 만들어내는 공동투쟁, 이런 것들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8월까지 일정이 나와있던데 이후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이것이 한두 달 만에 끝날 문제가 아니잖아요. 지속될 수밖에 없는 문제이고. 그러나 싸움을 하면서 막연하게 계속 하자, 이러면 주체들이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지기 때문에 이 시한이라는 것은 딱 요때까지 하고 끝난다는 것이 아니라 1차적인 시한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가 전부 민주노총에 소속되어 있는 조합원인데 민주노총의 총파업하고 전혀 무관하게 갈 수는 없고. 민주노총의 총파업도 노동악법을 폐기하라는 것이 주요 핵심 요구안이기 때문에 저희들하고 다를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기본적인 것은 민주노총 총파업에 우리가 조금이라도 힘 있게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1차적인 목표로 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이것을 계속 진행할 지와 지금 방식처럼 1주일에 한 번만 할지, 아니면 더 자주 할지, 이런 것들까지도 이후에 토론해서 결정을 해야 할 문제이죠.
대선이라는 큰 이슈가 다른 사안을 모두 묻혀버리게 한다는 우려가 있는데 대선 시기 활동계획은 어떻게 잡고 계신가요?
묻힌다는 것에 저는 오히려 반대로 생각해요. 무슨 얘기냐면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고 보는 거에요. 총선에서 민주노총이 했던 일련의 투쟁에 대해서 아쉬웠던 것이 그 부분인데 분명히 시작할 때에는 민주노총이 총선 투쟁이다, 라고 선언을 했거든요. 그런데 실질적으로는 총선운동을 했거든요. 예를 들면 지난 총선국면에서 비정규직 문제와 정리해고제가 갖고 있는 사회적인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고 잘못된 것인지에 대해서 우리의 목소리, 투쟁의 목소리를 알려내면서 총선 후보에 나온 사람들이 이 목소리를 외면해서는 이후에 어려움이 있겠다고 판단해서 우리들 목소리를 듣지 않을 수 없게끔 투쟁의 강도를 높이고 포커스를 맞췄어야 하는데. 오히려 그 반대로 찾아가서 사정하는 형태의 선거운동의 형태가 되어버리다 보니까 죽도 밥도 안 되어 버리는 거죠. 그래서 딜레마에 빠진 거고.
그렇다면 이번 대선도 마찬가지로 후보를 찾아가서 면담을 해서 우리 사정, 문제 해결해주십시오, 하고 구걸하듯이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이 국면에서 노동자의 목소리를 더 많이 외쳐야 한다, 그래서 저들이 이 목소리를 외면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하죠. 그러면 결국은 촛불에서 봤듯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때 저들은 두려워하고, ‘아, 저것을 결코 경과시할 수 없다’고 판단될 때에만 그들이 움직이는 거기 때문에 1차적으로 그런 것들이 필요하죠.
그러면은 이 선거국면에서 계속해서 투쟁을 조직하고 만들어 내야 한다, 그래야만 대선에서 묻히지 않을 것이고 우리의 목소리가 저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받아들여 질 것이다라고 판단해요. 그래서 가장 시급한 것은 어쨌든 간에 많은 사업장들이 계속해서 결합하게 만드는 것, 그래서 대선투쟁에서 노동자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나와야 한다, 묻히지 않을 정도로, 오히려 대선에서 노동자의 목소리가 이슈화될 수 있도록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투쟁을 더욱 더 가열차게 조직해야 한다, 그래서 대선투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지난 총선 시기 진행한 희망광장이 기대보다 많이 안 알려졌는데 왜 그렇다고 생각하세요?
일단은 준비부족이었고. 사실은 저희들이 욕심냈던 것, 시청광장을 잡았던 것은 시청광장에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 이라도 시민들이 많이 모이게 하자, 이렇게 해서 홍보를 나름대로 하려고 했는데. 그 때가 안보회의가 겹치다 보니까 시청광장이 완전히 경찰로 둘러싸여 봉쇄돼 버리다보니까 저희들이 처음에 출발하면서 계획했던, 시민들을 조금이라도 모아내고 알려내는 그 자체가 불가능하게 돼버린 거죠. 그래서 거기에서 1차적인 우려가 있었던 거고.
두 번째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우리는 총선국면을 선거투쟁의 국면으로 만들기 위해서 희망광장을 했는데 민주노총은 투쟁이 아닌 선거운동 방식을 택했기 때문에 거기서 엇박자가 나버린 거죠. 그 두 가지가 실패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죠.
마지막으로 알리고 싶은 말씀해주면 있으면 해주세요.
총괄적인 건데. 우리가 흔히 보면 뉴스가 될 만한, 이슈가 될 만한, 자극적인 것에만 민주노총이든 언론이든 관심을 가지는, 그래서 극단적인 투쟁이나 뉴스꺼리가 안 되면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그런 상황이고. 그마저도 그 이슈가 되는 싸움마저도 반짝, 그냥 한두 번 나오고 마는 이런 상황이거든요. 그러면 투쟁하는 주체보고 속된 말로 매일 그렇게 하라는 건데. 이건 그들을 두 번 죽이는 거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 공동투쟁처럼 중장기적인 플랜을 가지고 가고 있는 취지의 프로그램에 대해서 민주노총도 중장기적으로 고민을 갖고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것과, 그리고 언론들도 너무 자극적인 것, 즉흥적인 것보다는 노동자들이 이렇게 장기적인 플랜을 가지고 하는 것을 기획시리즈로 계속해서 홍보하고 알려내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전반적으로 사회적인 인식변화가 굉장히 변화되고 있죠. 노동자들, 정리해고자들과 비정규직을 바라보는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선이 예전에는 굉장히 왜곡되었었는데 지금은 이들을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새롭게 희망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조직되어 있는 노동자들이 움직이지 않는다, 이런 잘 안 되는 것에 너무 몰입되어 있기보다는 지금 현재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작은 변화들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속도와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이것이 희망이다, 그것을 같이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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