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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호][Focus]대공장, 의회주의를 벗어나라

  • 분류
    The FocuS
  • 등록일
    2011/06/10 14:27
  • 수정일
    2011/06/10 14:27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민주노총, 민주노동당이 가까운 미래에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치적 대안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민주노총이 대공장 정규직 노동조합의 이해를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고, 민주노동당이 모든 노동자들의 문제를 의회주의 전략으로만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제조업이 남한 경제의 중심이었던 8~90년대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90년대 중후반 이후 비제조업, 그 중에서도 서비스업에 고용된 노동자의 비율이 제조업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비율을 압도했다. 제조업에 비해 서비스업의 생산성은 높지 않았기 때문에 서비스업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고용형태 또한 안정적이지 않았다. 비제조업에 비정규직으로 고용된 노동자들은 제조업 정규직 노동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임금, 상시적 해고에 빈번하게 노출되었다. 
이에 반해 고임금에 의해 물질적으로 포섭된 민주노총 대공장 정규직 조합원들은 이미 투쟁전선에서 이탈한 상태였다. 정규직 노동자 중심의 민주노총이 비제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길 원했다면 정규직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의 체질을 바꿨어야 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기존에 조직된 노동자들의 이해에 사로잡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를 사실상 외면했으며정부에게 대화상대로서 파트너십만 강조했을 뿐 사회변혁적인 성격을 잃어갔다.
민주노총이 기존의 기반을 유지하는 데에만 골몰하고 있을 때 민주노동당 역시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의회로 진출하면서 체제내로 안착하고자 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민주노동당은 그동안 국회에서 어떤 활동을 벌여왔는가?
민주노동당의 국회의원들은 노동법 개악이나 한미 FTA등 대중들의 삶을 좌지우지할 만큼 굵직굵직한 사안들의 국회통과를 막아내지 못했다. 비정규직 권리입법을 제안하기도 하고  몇 차례 국회 단상을 점거하기도 했지만 이는 역부족이었다. 민주노동당은 자신의 그러한 처지에 대해 항상 의석수가 적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이야기했다. 물론 맞는 말이긴 하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의 결론은 의석수가 적어서 국회에서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으니 다음 선거에서 대중들이 더 많은 표를 민주노동당에 찍어줘야 된다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귀결된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을 비롯하여 진보정당들이 고민해야 할 부분은 ‘다음 선거’가 아니라 왜 ‘지금’ 의석수가 적을 수밖에 없냐는 것이다.

 

민주노총, 민주노동당이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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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 처음 국회에 진출한 민주노동당은 더많은 의석수를 얻기 위해 자신의 정치를 희석시켜가며 생명력을 연장해가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출범 이후부터 계속해서 민주노동당만이 진짜 노동자들의 정당이라고 소리 높여 왔지만 대다수 남한의 노동자들은 각종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을 찍지 않았다. 진보정당을 자신의 정당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대개 노동자들은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에 투표를 한다. 대중들이 자신의 이해와 무관한 민주당과 한나라당에 투표를 하는 것만이 문제라면 진보정당이 더욱 더 제도권 정치로 깊숙이 들어가 이들 주류 정당들과 경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순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대중들이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에 투표한다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선거’라는 정치적 행위에 참여하는 대중들의 비율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진보정당 지도부들이 무슨 일이 있어도 기필코 진입하려고 기를 쓰고 있는 의회정치 자체에 대해서 대중들의 무관심과 불만이 쌓여가고 있다는 것을 먼저 포착해야 하는 것이다.  얼마 전 4.27 재보선에서 분당 을의 투표율이 49%로 매우 높게 나왔다고 이슈가 된 적이 었다. 그러나 49%라는 선거 참여율을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선거에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절반이 넘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남한의 국회는 어떠한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가? 한 마디로 말해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고 있다. 지연과 학벌, 재력을 갖춘 정치 엘리트들에 의해 장악된 국회는 대중의 뜻과 무관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럼에도 대중들이 국회에 직접 참여할 길은 막혀있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대중들의 정치참여기회는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등 몇 년에 한번 씩 치러지는 선거절차로 한정되어있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선거 참여율이 갈수록 낮아지는 현상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아무리 참여를 해봐도 크게 바뀌는 것이 없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중들의 선거 참여율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것이 남한만의 일은 아니다. 의회제도 하에서 정기적으로 선거를 실시하는 모든 나라들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전 세계적 현상이다.
선거에서 이기지 못하더라도, 의석수를 늘리지 못하더라도 다른 정당들과 영합하지 않고 독자적 행보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일부 진보신당 당원들의 의견 또한 이러한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국회로의 진입만이 진보정당 당원들의 정치활동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보정당의 활동범위를 의회제도 안으로만 한정지으려 하고,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만을 우선적으로 여기는 기존의 진보정당 지도부들은 대중들의 정치적 활동의 폭을 대단히 좁게 제한하는 데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진단하지 않은 채, 대중들의 정치적 활동의 폭을 넓히기보다 대중들을 이용하여 부르주아 정치권 내에서의 입지만을 강화하려 하고,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부르주아 의회체제에만 기대어 활동하려고 한다면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이 제아무리 통합을 한들 기존의 진보정당, 노동운동에서 배제되어있는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결코 끌어들일 수 없을 것이다.
민주노총 역시 마찬가지이다.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을 기준으로 하고 있는 기존 노동조합운동의 중심축을 옮기지 않는 한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민주노총을 자신의 조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남한 사회엔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자본가의 착취만 존재하고 있는 게 아니다. 여성노동자들의 문제, 이주노동자들의 문제, 성소수자들의 문제, 저임금 노동자들의 문제 등 다양한 억압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는 기존의 노동운동이 포괄하지 못하고 있는 영역들이다. 기존의 노동운동이 현장의 다양한 억압들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끌어안지 않는 한 민주노총은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으로, 민주노조운동으로, 정치 활동의 무대로 확대되지 못할 것이다. 

 

다양한 정치적 활동방식이 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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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자 정치세력화 작업은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등 ‘조직노동운동’이라고 통칭되는 것들을 남겼다. 그러나 조직노동운동은 과거의 화려한 유산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남한 운동의 역사에 또 하나의 다른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2008년 촛불집회 때 이들이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민주노총, 민주노동당에 포함되지 않은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투쟁의 장으로 이끌어내기 위해선 먼저 현재 이들이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불만을, 정권에 대한 불만을 어떠한 형식으로 외화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중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정치적 의사표현을 하고 있는가? 제도권 내 정당이나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가? 아니면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가? 지금의 선거나 정당, 노동조합은 대중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회변혁을 이끌어 갈 수 있을 정도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가?
의회정치는 날로 대중과 괴리되고 있다. 현실정치에서 배제된 대중들은 정기적으로 치러지는 선거에 무관심한 경향을 보이거나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선거, 의회제도로의 진입이 아닌 ‘다른 방법’을 선택하기도 한다. 국회의 입법절차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대중들의 투쟁의지가 어느 한 지점에서 집중적으로 분출하게 되었을 때 2008년 촛불집회처럼 사람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진 대중들이 무엇을 중심적 매개로 하여 새롭게 정치적으로 결집하게 될 지, 그 ‘다른 방법’이 정확하게 어떤 형태일 것인지 결론을 내리기 힘든 상황이다. 인터넷의 변화에 따라 트위터 등이 등장해 이슈가 되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진 영향력이 그렇게까지 크지 않아 그 누구도 자신 있게 이것이 대안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확대하기 위해 분명히 알아두어야하는 것은 의회제도로 해소되지 않는 대중들의 불만을 견인해낼 수 있는, 의회제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정치적 전략과 구심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의회제도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은 대중들의 정치활동이 기존의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존재하는 정당의 형태에 갇히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정당, 대중들의 정당이 반드시 의회제도 내의 정당일 필요는 없다. 체제 내적 정치 질서에 구애받지 않는 새로운 활동방식을 구상해야 한다.
이것은 반드시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가 알게 모르게 다양한 형태의 모임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나름의 정치적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2008년 촛불집회에서 알게 된 대중들끼리 만든 소모임이나 올해 초 홍대 시설노동자 투쟁 때 만들어져 지금까지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날라리 외부세력' 같은 경우를 보면 단기적이긴 하지만 각종 사회적인 이슈들을 중심으로 하는 모임들이 만들어졌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의 대중들은 굳이 기존의 진보정당, 노동운동에 접근하지 않아도 거리 투쟁에, 노동자들의 투쟁에 쉽게, 직접 접근할 수 있고,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대중들은 직간접적 경험들을 통해 온라인에서 오프라인,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을 넘나들며 때에 따라 기존의 정치조직을 선택하거나 혹은 기존의 정치제도, 노동운동에 편입되지 않는 모임들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형태의 정치활동들은 제도화된 정치 질서 바깥에 존재하고 있는 결사체 활동으로 통칭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법제도망 외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다양한 결사체들이 기존의 운동 진영과 뚝 떨어져서 존재하는 것만은 아니다. 개별적으로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진보신당 등의 조직과 겹쳐져 존재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결사체들의 활동방식이 기존의 운동질서에 부합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노동운동조직의 체계에 익숙한 사람의 눈으로 봤을 땐 ‘저게 조직인가’ 싶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흐름이 아직은 미약하고 때로는 권위주의적 관성을 온전히 벗어버리지 못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미약하고 미숙하지만 그럼에도 기존 운동조직의 활동방식에서 벗어난 좀 더 다양한 형태의 모임들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사회적인 이슈를 주도하거나 투쟁의 현장에 연대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모임들이 질적 비약을 이루려면, 보다 장기적인 정치적 전망을 가지고 가려면 결집의 기준인 ‘반MB'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그러므로 ‘반MB'를 넘어설 수 있는, 의회제도를 넘어설 수 있는 정치적 대안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노동운동, 진보정당 진영과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치활동은 더욱 괴리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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