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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24일,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무상급식 지원범위에 대한 의견을 묻는 주민투표(이하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진행되었다. 이번 주민투표는 ‘소득 하위 50%의 학생을 대상으로 2014년까지 단계적 무상급식’을 실시하자는 안과 ‘소득 구분 없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초등학교는 2011년부터, 중학교는 2012년부터 무상급식’을 실시하자는 두 가지 안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25.7%의 투표율을 기록하며 개표 유효 기준인 33.3%에 미치지 못해 투표함을 열어보지도 못한 채로 마무리되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시장직까지 걸겠다던 오세훈은 결국 서울시장직에서 물러났고, 이로 인해 10월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갑작스럽게 치러지게 되었다. 2012년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발생한 돌발변수로 정국은 또다시 술렁이고 있다.
이번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서울시에서 처음 치러진 주민투표였다. 주민투표란 ‘주민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거나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지방자치단체의 주요결정사항에 관해 주민의 직접참여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로 투표권이 있는 주민 총수의 20분의 1이상 5분의 1이하의 범위 안에서 각 지자체 조례로 정해놓은 인원 이상의 서명을 받아올 경우, 주민투표의 실시를 청구할 수 있게 되어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의미로 이번 주민투표가 민주주의와 지방자치 확대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서울시민의 손으로 서울시의 정책을 직접 결정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과연 단지 ‘무상급식’ 정책을 위한 투표였는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주민투표 기간 내내 ‘무상급식’이나 ‘주민투표’가 가지는 의미들이 핵심적, 정치적 쟁점으로 활발하게 논의되거나 부각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번 주민투표에서는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누가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될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직접민주주의의 파괴를 걱정한 한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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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민중언론 참세상 |
무상급식 주민투표 패배의 가장 큰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한나라당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주민투표를 처음 발의했을 때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일정하게 거리를 유지해왔다. 투표율이 33.3%에 미치지 못할 것을 염두에 두고 주민투표에서 패배할 경우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불어 닥칠 수 있는 역풍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및 소장파 일부 의원들 역시 전면적 무상급식에 반대하지만 주민투표는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거리를 두면서도 전면적 무상급식에는 반대하다던 한나라당은 투표일이 점점 가까워오자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보이콧해야 한다는 민주당의 전술에 대해 ‘투표장에 가지 말라는 것은 직접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시도’라며 이데올로기 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그러나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대한 한나라당의 이 같은 주장은 사실상 아전인수 격 해석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한나라당 역시 이미 지난 2007년 김황식 하남시 시장에 대한 주민소환, 2008년 김태환 제주도지사 주민소환투표에서 보이콧을 주장한 바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2007년 당시 김황식 하남시장과 2008년 당시 김태환 제주도지사는 모두 한나라당 소속으로 김황식 하남시장은 광역화장장 유치 문제로, 김태환 제주도지사는 강정마을 해군기지 추진 문제로 각각 주민소환투표가 실시되었으나 이 역시 투표율 미달로 무산되었다.
민주당은 왜?
무상급식 주민투표 보이콧이 직접 민주주의를 파괴할 것이라는 한나라당의 걱정(?)과는 다르게 보이콧이라는 말은 원래 1880년 영국의 한 귀족영지 관리인인 C. C. 보이콧이 소작료를 체납한 소작인들을 그 토지에서 추방하려다가 아일랜드 독립운동가 C. S. 파넬의 지도 아래 단합한 전체 소작인들의 배척을 받고 물러난 데서 생긴 말이다. 현재 보이콧이라는 말은 어떤 상품을 집단적으로 구매하지 않는 행위, 국제적으로 어떤 나라의 정책이나 행동에 대한 반대의사를 표현하는 행위 등 사회적으로 폭넓은 분야에서 ‘조직적 거부’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왜 이번 주민투표에서 보이콧 전술을 택한 것일까? 민주당의 보이콧 전술은 어떻게 가능했으며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가?
민주당은 이번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나쁜 투표’라고 규정하고, ‘나쁜 투표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거부할 수 있다’는 논리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러나 만약 이번 주민투표가 민주당 말대로 그저 ‘나쁜 투표’였다면, 민주당은 왜 투표장에 가서 전면적 무상급식을 선택하라는 말 대신 보이콧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인지 의문이 남는다.
민주당이 보이콧 전술을 선택한 이유에는 사실상 전반적으로 투표율이 낮아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계산이 깔려 있었다. 민주당의 보이콧 전술은 대통령 선거 투표율도 50%를 밑도는 상황에서 무상급식 주민투표의 투표율이 33.3%를 넘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에서 비롯된, 주민투표라는 형식의 ‘선거’에서 손쉽게 이기기 위한, 민주당 자신의 이해관계와 잘 맞아떨어지는 전술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민주당은 주민투표 기간 동안 소극적인 행보만을 거듭했다. 민주당이 2012년 차기 대선 전략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보편적 복지와 무상급식의 연관성이라든가 정당성에 대해서 대중들에게 적극적으로 호소하지 않았다. 어차피 투표율이 높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민주당은 서울 시내 300여 곳에 플래카드만 걸었을 뿐 거리유세는 하지 않았다. 서울시가 8월 초, 중순에 걸쳐 수해복구 작업으로 주민투표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자 굳이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투표율이 33.3%에 미치지 못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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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민중언론 참세상 |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에서는 투표율이 33.3%를 넘지 못한 것을 두고 전면적 무상급식과 보편적 복지에 대한 지지가 반영된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럼 과연 이번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은 야권의 해석대로 민주당의 보이콧 전술의 정당성에 대해 동의했기 때문에, 혹은 전면적 무상급식이나 보편적 복지에 찬성하기 때문에 주민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일까?
몇몇 여론조사 결과를 분석해보면 전면적 무상급식이나 보편적 복지에 대한 선호도와 주민투표와의 상관관계가 야권의 해석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8월 23일 미디어리서치에 의해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 무상급식 방식에 대해선 단계적 무상급식에 대한 지지도가 58.8%, 전면적 무상급식에 대한 지지도가 39.1%로 집계되었다. 그리고 주민투표 이후 (같은 기관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주민투표 결과는 민의를 반영하지 못한 것'(48.4%)이란 응답이 '투표율이 유효 기준인 33.3%에 못 미친 것은 전면적 무상급식 실시를 서울 시민이 동의해준 것'(32.0%)이라고 응답한 비율에 비해 다소 높게 나온 것이다.
뿐만 아니라 보편적 복지에 대한 지지도와 무상급식에 대한 지지도 역시 서로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한겨레>가 여론조사기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 의뢰해 지난 8월 22~23일, 19살 이상 전국 성인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전화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소득계층에 상관없는 '보편적 복지'에 대해서는 30.3%만이 동의한 반면, '선별적 복지론'에는 68.8%가 동의했다. 그럼에도 초중고 전면무상급식에 대해선 찬성(55.9%)이 반대(43.6%로)보다 더 많은 것으로 집계되었다. 즉, 대중들이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 투표율이 33.3%에 미치지 못한 이유는 전면적 무상급식이나 보편적 복지에 대한 선호도와 특별히 밀접한 연관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주민투표가 넘지 못한 벽, ‘정치적 무관심’
그렇다면 왜 서울시민들은 이번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것인가? 서울시민들이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일단 이번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사실상 ‘주민’에 의해 기획된 것이 아니라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 의해 기획되고 만들어진 것이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와 이해관계를 염두에 두고 이번 투표를 총지휘했으며 무상급식 주민투표 패배에도 불구하고 2017년 차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에서 1위를 기록하기까지 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흥행하지 못한 이유에는 이외에도 무상급식이라는 이슈 자체의 한계, 즉 무상급식이 전체 대중들의 정치적 참여를 이끌어내기엔 다소 뒷심이 부족한 이슈였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번 주민투표가 성사되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은 대중들의 정치적 무관심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단계적 무상급식에 대한 지지율이 전면적 무상급식에 대한 지지율보다 더 높았음에도 투표율이 33.3%를 넘지 못했던 것은 대중들이 이번 주민투표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중들이 무상급식이라는 이슈에 대해 관심은 많았으나 자신의 의견을 정치적 행동으로 관철시키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직접 민주주의의 위기를 보여준 것은 한나라당이 비판했던 민주당의 보이콧이 아니라 정치적 무관심이었다. 오히려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주민투표를 무상급식이라는 이슈와 복지정책에 대한 논의가 확대되는 장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막연한 반한나라당 정서와 무관심에 영합했을 뿐이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야권의 보이콧이 왜 정치적으로 초라해보였는지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이들의 보이콧은 전사회적인 대중의 동의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점차 심해지고 있는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에 그저 손쉽게 올라탄, 아무런 정치적 대안이 없는 소극적 보이콧이었기 때문이다.
제한된 권리로서의 주민투표
주민투표가 지방자치와 민주주의의 확대를 위해 고안된 제도임에도 대중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정치적 무관심을 넘어설 수 없었던 이유는 대중들이 ‘선거’나 ‘투표’라는 시스템에 참여하더라도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질서를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투표가 비록 지방자치의 원리를 실현할 수 있는 기제라고는 하지만, 지방자치의 전권을 주민이 행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몇 가지 정책의 가부만을 결정할 수 있게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사실상 제한된, 불완전한 권리일 뿐이다.
제한된 권리로서의 주민투표나 주민소환제 같은 몇몇 제도들은 법제도적으로 허용된 범위 내에서의 정치참여만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대중들의 전면적인 정치참여를 이끌어내기엔 역부족일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영향력도 미미하다. 그렇기에 정치적 무관심이나 참여율이 낮아지는 것을 막지 못하는 한계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과천시와 제주도에서는 각각 과천시장에 대한 주민소환투표, 제주도 해군기지 문제 해결을 위한 주민투표가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과천시에서는 주변 부동산 가격 하락을 불러올 수 있는 보금자리주택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과천시장에 대한 주민소환투표를 요구하고 있고, 제주도에서는 정부에 의해 강제로 추진되고 있는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을 막기 위해 제주도의회가 주민투표를 요구하고 있다.
앞서 밝혔듯이 주민소환제나 주민투표가 실제 지방정책의 집행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그리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인 정책집행에 대해 제동을 걸 수 있는 특별한 수단이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하나의 대안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포함하여 이제까지 시도되었던 모든 다른 주민투표 역시 참여율이 높지 않았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앞으로의 주민투표나 주민소환제 역시 얼마나 대중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실제 정책에 어떤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가속화되고 있는 민주주의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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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민중언론 참세상 |
그렇다면 ‘대체 누가 투표에 참여하고 있는가’라고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주민투표 이후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주민투표 결과에 대해 ‘이만하면 선전했다’고 평가했다. 홍준표의 자가당착적인 논평의 의도와는 별개로 이번 주민투표에서 한나라당에 대한 고정적인 지지층이 얼마나 되는지 적나라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번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확인된 25.7%라는 투표율은 어떤 상황에서도 늘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세력들의 숫자이며, 이들이 항상 적극적으로 ‘선거’라는 시스템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여러 언론에서 투표율과 각종 통계수치 등을 통해 이들이 주로 ‘강남3구’라 불리는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에 거주하는 부유층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부유층의 투표 참여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과 대조적으로 부유층을 제외한 대중들의 선거 참여 비율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그 이유는 자신을 대변해주는 정당이 없다고 느끼는, 이른바 ‘부동층’ 혹은 ‘무당파’라 불리는 대중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무상급식 주민투표 이후 민주당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음에도 반(反)한나라당 지지 세력의 정치적 선택이 민주당 지지로 이어지지 않고 대신 안철수나 박원순에게로 쏠리고 있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같은 ‘안철수 현상’이 단순히 서울시장 보궐선거만이 아니라 2012년 대선 판도까지 쥐락펴락하며 정치판을 흔들고 있는 이유는 선거를 통한 정당 정치에 대한 대중들의 지지도가 급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선거’와 ‘정당’이라는 제도정치는 민주주의 확대를 통한 대중들의 정치참여 확대에 일조하지 못하고 있으며 지배계급의 이해만을 위해 일하는 정치엘리트들에 의해 장악되어있다. 이처럼 제도정치의 근간을 이루는 민주주의적 원리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대중들의 삶과 괴리 될수록 정치적 무관심은 증대하고 전사회적 민주주의의 위기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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