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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0월호][국제] 분노한 사람들, 광장으로 나오다

  • 분류
    국제
  • 등록일
    2011/10/07 13:41
  • 수정일
    2011/10/07 13:55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시위 텐트’라는 새로운 현상이 등장했다. 정부의 긴축조치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텐트를 가지고 하나둘씩 광장으로 모여들어 텐트촌을 형성했다. 이러한 흐름의 시작은 이집트의 타흐리르 광장이었다. 2011년 초 무바라크의 퇴진을 요구했던 이집트인들은 타흐리르 광장을 중심으로 텐트를 치고 격렬한 거리시위를 이어나갔다.
최근 몇 달 사이에 이러한 형태의 투쟁은 독재 국가가 아닌 소위 ‘민주’적인 국가들까지 확산되고 있다. 스페인, 이스라엘, 그리스 심지어 미국의 맨해튼에서도 이러한 시위텐트가 등장했다. 그 중에서도 스페인과 이스라엘에서는 이러한 시위가 가장 대중적으로 벌어졌다. 이들 투쟁은 아랍의 봄 이후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대중투쟁의 한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광장, 새로운 정치의 장이 되다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대중시위가 매우 드문 나라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 드문 일이 이스라엘의 최대도시이자 경제 중심지인 텔아비브에서 벌어졌다. 지난 8월6일에는 이스라엘 인구의 4%인 33만여 명이 물가와 집값인상에 항의하면서 전국 곳곳에서 시위를 진행한 것이다. 시위대는 “정권 퇴진, 이집트가 여기 있다”, “이집트인처럼 걷자”는 문구가 쓰여진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했다. 또한 텔아비브 로스차일드 거리를 중심으로 100여개의 시위텐트가 세워지기도 했다. 이는 이집트에서의 대중투쟁이 이스라엘에 미친 영향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시위는 스페인에서도 벌어졌다. 타흐리르 광장을 모델로 한 스페인의 시위는 광장을 정치적 토론의 장으로 만들면서 대중들의 정치적 급진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지난 5월15일의 대규모 집회를 계기로 터지기 시작한 대중들의 시위는 도시 중심광장을 점거하고 해방구로 만드는 데까지 나아갔다. 마드리드에서는 푸에르타 델 솔 광장이, 스페인 제1의 산업도시인 바르셀로나에서는 카탈로니아 광장이 해방구가 되었다.
이들 광장은 정치적 토론과 참여, 그리고 실천의 장이 되었다. 광장 곳곳에서는 아이디어 상자들이 마련되어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그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적어서 표현할 수 있었다. 모든 종류의 문제들에 대해 자치적인 위원회들이 만들어졌다. “혁명은 곤드레 만드레 취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기치 하에 금주에 관한 자치규율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또한 투쟁의 향방은 참가자들의 총회를 통해 결정되었다. 이는 마드리드에서만 벌어진 일은 아니었다. 스페인의 산업중심지인 바르셀로나 카탈로니아 광장에서는 시위가 시작된 지 이틀 후인 5월19일부터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의 총회가 즉석에서 만들어졌고 마드리드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총회에 참가했다.
집권당인 사회당에 큰 타격을 준 지방선거 이후에도 광장점거를 유지하기로 결정한 것도, 6월12일에 광장점거를 해산하기로 한 결정도 참여한 사람들의 토론과 총회를 통해 형성된 것이다.
총회와 각종 위원회에서 벌어진 투쟁의 성격과 지향점에 대한 다양한 토론은 집회참가자들의 정치적인 급진화를 낳았다. 광장 곳곳의 플래카드에서는 ‘혁명’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분노한 사람들과 새로운 이스라엘인

 

이렇게 광장에 모이고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분노한 사람들’, ‘새로운 이스라엘인’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이 집단에는 상당히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스페인과 이스라엘에서의 시위 양쪽 모두에서 청년층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특히 스페인의 경우 청년실업자들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스페인의 청년실업의 심각한 상황을 반영한다. 스페인의 청년실업률은 45.7%로 15세에서 24세 사이의 청년 두 명 중 한 명이 실업상태에 있다. 일자리를 구했다고 할지라도 이들은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하고 있으며 한 달에 600유로(약 96만원)로 살아야 한다. 남한의 88만원 세대와 같은 꼴이다. 광장점거의 현장에는 “직업도 집도 연금도 없다, 대신 두려움도 없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리기도 했다.


 

이스라엘의 하이파 지역에서 벌어진 시위

 

이스라엘에서 높은 물가와 집값에 항의하면서 벌어진 시위 역시 200여 명의 청년들이 청년층을 위한 임대주택을 요구하면서 시작되었다. 시위참가자 중 젊은 층의 비중 역시 높다. 그러나 청년들 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경제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도 함께 하고 있다. “세 가지 일을 해도 먹고 살기 어렵다”는 구호를 통해 이 시위에 불안정한 저임금 일자리에 종사하는 노동자도 함께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반면 여러 언론매체에서 서술한 것처럼 중산층의 참가 역시 두드러진다. 의사와 같이 전통적으로 중간계급이라고 여겨졌던 사람들도 현실적인 임금과 적절한 휴식보장을 요구하며 시위에 함께하고 있다.
2008년부터 이어진 긴축조치 반대운동과 달리 스페인과 이스라엘의 시위가 기존의 노동운동과 결합하는 모습은 아직 찾기 어렵다.
2008년부터 유럽 곳곳에서는 정부의 복지재정 삭감과 긴축조치에 반대하는 여러 투쟁들이 있어왔다. 이러한 투쟁들은 상당 수 노동조합을 통해서 조직되었고, 총파업과 같은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드러났다.
가장 대표적으로 2010년 프랑스에서 벌어진 연금법 개악 반대 시위에서는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노동자 모두가 참여하는 총파업이 벌어졌고 정유노동자들의 공장점거도 이루어졌다. 또한 영국에서도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노동조합이 조직한 투쟁과 파업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이들 나라에서 노동조합연맹체들은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확대시키기보다는 몇번의 보여주기식 시위로 마무리하려는 양상을 보였다.
반면 스페인과 이스라엘의 시위는 노동조합 조직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개인들이 조직되는 이러한 시위에서 노동현장을 기반으로 한 행동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들은 스스로를 노동자 계급의 일원이라기보다는 ‘분노한 자들’이나 ‘새로운 이스라엘인’이라고 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편으로는 이들 시위의 집회가 생산현장이 아닌 온라인을 통해 조직되는 것과 관련있어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의 요구가 현장을 중심으로 한 요구를 거치지 않고 국가 자체에 대한 요구로 표출된 것과 연관이 있다.

 

SNS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잇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이하 SNS)는 사람들을 광장으로 이끌어 내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SNS의 대표주자인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이미 튀니지 혁명과 이집트 혁명에서 발빠른 전령사 역할을 해냈다.
예전에는 공동의 공간(생활공간인 지역이든 생산의 공간인 현장이든)을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를 뛰어넘어 개인들이 직접 소통하며 시위에 참가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SNS의 발달은 개개인이 직접 다른 개인들과 투쟁 소식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물론 온라인에서의 행동들이 현실의 시위와 투쟁을 대체할 수는 없다. 하지만 SNS가 현재 상황에 불만을 가진 개인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는데 있어 공간의 장벽을 낮추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스페인에서 '분노한 사람들'이 모이게 된 최초의 시위인 지난 5월15일의 시위에서도 <미래 없는 젊은이들(호베네스 신 푸투로)>이라는 조직이 온라인상에서 시위를 조직한 것이 큰 호응을 얻으면서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또한 SNS는 쌍방향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공권력의 혹독한 탄압이 있었던 5월15일 저녁, 트위터에서는 스페인 마드리드의 푸에르타 델 솔 광장점거를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오갔고 푸에르타 델 솔 광장의 시위텐트촌에는 그러한 아이디어들이 반영되었다. 온라인에서 시작하여 오프라인에서 만난 사람들은 총회를 통해 새로운 정치의 장을 만들어냈다.
이스라엘의 '사회정의를 위한 시위' 역시 SNS를 통해 조직되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대중운동이 벌어지기 한 달 전, 이스라엘에서는 커티지 치즈 불매운동이 있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김치처럼 매일 먹는 커티지 치즈 가격 급등에 항의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은 치즈불매운동을 시작했다. 이 시위에는 2주 만에 10만여 명이 참가했고 이 불매운동의 성과로 치즈의 소매가가 250g당 0.6달러 하락했다. 이러한 치즈 불매 운동이 확산된 것은 바로 페이스북을 통해서였다.
그 뒤에 이어진 사회정의를 위한 대중시위 역시 페이스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3년 간 살던 건물에서 쫓겨나게 된 25세 청년 다프네 리프는 텔아비브의 엄청난 집값으로 인해 살 곳을 구하기 어려웠다. 그녀는 하비마 광장에서 소규모 텐트농성을 시작했고, 집값 상승에 항의하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다. 이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온라인상의 사람들의 호응이 이어졌고 텔아비브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도 텐트 시위가 벌어졌다.
이처럼 SNS가 대중운동에 활용되는 양상은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SNS는 물리적 공간을 뛰어넘어 참가자들이 직접 다양한 사안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를 통해 투쟁이 조직되고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는데 있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의 요구 - 진정한 민주주의

 

스페인의 ‘분노한 사람들’이나 ‘새로운 이스라엘인’들은 모두 현 집권세력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면서 국가적 차원의 대안을 요구하고 있다. 두 시위에 참가하는 대중들은 공통적으로 긴축조치, 복지삭감에 반대하고 복지의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구체적인 요구는 복지의 확대로 드러나고 있으나 시위대의 플래카드나 피켓, 발표되는 선언문을 보면 복지 요구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스페인의 시위참가자들이 담벼락에 붙은 글들을 유심히 보고 있다

 

대중들의 불만은 ‘진정한 민주주의’라는 말로 표현되고 있다. 현재 구조 자체가 형식상 민주주의적일지라도 본질적으로 소수 정치엘리트와 자본을 위한 과두제에 불과하다고 판단하고 이를 넘어서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이스라엘 시위보다는 스페인의 시위에서 잘 드러난다.
<데모크라시아 레알 야>라는 단체는 스페인의 5월15일 시위를 조직하는데 큰 역할을 한 시민단체들의 연합체로 이들의 선언문에서 현재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만과 ‘진정한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를 엿볼 수 있다.
이 선언문에서 시민들은 소수의 부를 축적시키기 위한 기계의 부품역할을 하고 있을 뿐 정치적 의사결정에서 배제되어 있다고 보고 있다. 이 선언문은 정치인 ‘계급’ 역시 대중들의 의견을 정치에 반영시키기 보다는 소수의 경제적인 힘이 있는 사람들의 이해만을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대중을 외면하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소수만을 대변하는 시스템을 유지하는데 사회노동당과 인민당의 양당제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스페인 시위의 핵심쟁점 중 하나인 선거제도 개정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제기된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은 사민주의적인 사회노동당과 우익인 인민당으로 이루어진 양당제가 형성되어 있으며 현재 집권당은 사회노동당이다. 하지만 사회노동당 역시 긴축조치를 밀어붙이면서 복지를 축소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스페인의 ‘분노한 사람들’은 사회노동당이든 인민당이든 대중들의 이해를 대변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현재 존재하는 양당제에 대해 부정적이다. 이러한 대중의 불만은 시위뿐만 아니라 선거에 무효표를 던지는 방식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특히 시위가 한창이던 5월22일 치뤄진 지방선거에서는 야당인 인민당이 승리하기는 했으나 이와 동시에 역대최대의 무효표가 나오기도 했다.

 

분노의 세계화

 

스페인의 ‘분노한 사람들’과 ‘새로운 이스라엘인’들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은 즉각적인 복지의 확대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유럽의 경제가 휘청이고 있는 상태에서 국가재정의 확충을 통해 복지를 확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대중의 불만이 해결되기 위해서는 자본의 이해가 아닌 사회구성원들의 이해가 반영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지만 이에 대한 대안은 아직 불분명한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
비록 대안을 분명하게 내세우고 있지는 못하지만 대중의 분노와 직접적인 행동은 온라인을 통해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다.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이 최근 여러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중적인 투쟁의 흐름을 ‘분노의 세계화’라는 말로 표현했을 정도다. 다른 나라의 투쟁에 대한 동조시위 역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며 아랍의 봄은 이후에 벌어지는 시위에서 끊임없이 변주되고 있다. 스페인의 시위가 한창일 때, 프랑스 곳곳에서는 동조시위가 벌어졌으며 이집트 혁명에서 보여준 광장점거는 대서양을 건너 미국 월스트리트 시위의 모델이 되었다. 최근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투쟁들은 ‘아랍의 봄’ 이후 일련의 새로운 흐름으로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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