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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02/28
    2008/02/28
    파란달-1
  2. 2008/02/28
    양평
    파란달-1
  3. 2008/02/21
    변절..
    파란달-1
  4. 2008/02/19
    봄기운~
    파란달-1
  5. 2008/02/09
    기분전환(4)
    파란달-1
  6. 2008/02/08
    무자년..무자게 이상하다!!
    파란달-1
  7. 2008/02/06
    이중성..
    파란달-1
  8. 2008/02/06
    사랑니!!
    파란달-1
  9. 2008/02/05
    바부탱이~~
    파란달-1
  10. 2008/02/02
    울적한..
    파란달-1

2008/02/28

 

 

 

너 하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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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양평수련원...

2월말인데 눈이 엄청많이 왔다.

희끗희끗내리기 시작한 눈은

쌓이기 시작했구..

온 산이 하얗게 물들었다.

겨울산 속에 있었던것은 첨인듯!!

 

산속에서 진행된 회의..

우린 너무 준비가 덜 되었다.

이번 회의의 핵심은 뭐였을까?

 

10개월을 끌었던 하이닉스 매그나칩에 대한 매듭이 지어졌다.

한 동지가 줄기차게 부르짖었다.. 그 동지만..

그 동지의 발언을 들으면서 지난 청주대첩(?)이 생각났다.

주유소 습격사건이라고 불렀던 그 투쟁..

그날은 메이데이였고, 우리는 서울에서 평화적인 행진을 했다.

해가질무렵 연락이온 청주는 주유소를 배수진으로 치고,

투쟁이 전개되고 있었다.

급히 사람을 파견했었고,

난 상황만 확인하고 있었다.  

그날 그동지는 역시 가장 선두에 있었을거고,,

늘 그렇듯이 그 지역에서 그 동지만큼 싸움을 만드는 사람이 없으니..

그의 발언은 울부짖음이었다..그렇게..우리 충북동지들의 절규였다.

우리들도 하이닉스 투쟁을 격으면서 많이 배웠다.

지역본부가 이렇게 할 수 있구나...

지역연대투쟁이 이렇게 될 수 있구나..

그리고, 이렇게 망가질 수 있구나...

이렇게 끝났다.

 

임단투방침은 어떤 대응도 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준비 부족도 있지만, 산별노조와 현장은 너무도 괴리되어있다.

단사의 임단투방침이었다면, 다들 선수들인데,

사전준비와 무관하게 그리도 방관하고 있었을까???

중앙이 진행되는 것과 현장은 너무 멀다.

그 사이를 어떻게 줄여야 할까?

 

배타적지지방침에 대한 철회를 제대로 제기하지도 못했는데

논란만 무성했다.

뿌려진 유인물은 유아적이었다.

배타적 지지방침을 철회하는 것이 무색할정도의 수준이다.

같이 호흡을 맞출수 없는 지금의 조건..

정치적 판단은 사장되고,,,

현장에서 그렇게 매몰되어있는..

이 사이는 또 어떻게 줄여야 하는가?

 

1사1노조..

우리가 제안했던 그 1사1노조는 내부의 자중지란이었다

통일된 입장과 방침이 통용되지 못하는 우리의 수준을 확인한..

 

폭력적 회의진행과 이에 제대로 일격을 가하지 못했다.

이역시 한 동지만 주구장창 부르짖었다.

산별노조를 만들었는데...

이게 모냐고..

 

누구 탓을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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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절..

점심식사시간에 간만에 삼실에 들린 동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밥을 먹었다...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했는데..

 

어쩌다가 김영대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봤단다.

근데 그 김영대의 약력에는 출생이후에 바로 열우당 국회의원이 있더란다..

순간 피가 거꾸로 돌았다

..

청계피복, 전태일열사,,민주노총에 대한 그 어떤 단어도 보이지 않았단다.

그놈에게는 그렇게 부끄러운 역사였을까?

 

비록 지금은 변절을 했더라도 말이다.

그 과거. 그 역사, 자신을 부정하면서 그러고 싶었을까?

그때 자신이 한 일과 지금의 일이 다른방향을 가질 순 있지만,

그 객관적인 사실자체를 부정하면서 ...

그게 바로 '변절자'의 제대로된 모습이다..

 

그놈이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그놈은 그 역사를 부정하면서,

자신을 부정하고 있는거다..

 

 

진짜 나쁜놈이다..

우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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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기운~

제법 봄기운이 느껴진다.

아...

올해는 이상하게시리 겨울이 길게 느껴진다.

봄이 빨리왔으면 좋겠다

푸르른 봄이 오면 뭔가 삶이 달라질것같은..

아마도 착각이겠지만..

그런 간절한 마음뿐이다..

 

요몇일 바빴다..

간만에 수련회를 했고,.

전국의 동지들을 보니,,기분도 좋아지더군..

간만에 먹은 술은 너무 달았다..

막걸리는 2잔이상을 잘 못먹는데.

그날은 참 많이도 먹었던듯...

 

기억이 어슴프레하다.

그리고,, 멀쩡히 앉아있다가 넘어졌던거 같기도 하고..

뒷풀이 사회를 자청해서 본걸 보면 취하긴 많이 취했나보다

학생운동 마치고, 뒷풀이 사회를 본적이 없었는데...

푸하하!!

 

그냥 푸근했다..동지들을 만나니...

우리가 할 수있는게 많이 없지만..

그러나 '우리'가 있다는게 좋았다.

 

봄이 오나보다...

 

빼앗긴들에도 봄이 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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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전환

3일만에 집을 나섰다.

이가 아직 아물지 않아서..얼굴은 약간 부어있다.

어제까지는 한참 부어있었는데..

얼음찜질을 했더니, 확실히 효과가 있나보다..

입속에 있는 실밥이 자꾸 거슬린다..

 

사당동에서 약속을 잡고,,

신나게 수다를 떨면서 맛난것을 먹었다..

스트레스에는 역시 먹는것이 최고다!!

 

어제부터 좀 나아지기 시작한 내 입안의 상처에 대해

이젠 좀 더 대담하게 담배를 물었다.

사실 어제까지만 해도 담배를 아주 조심스럽게

5가치정도를 피웠던 것 같다..

첫날은 자기전에 한대로 마무리 하고..

담배를 피기 시작한 날 이후 가장 적게 핀것같다..

정말이지..

담배를 끊은 사람들은 진짜 '독한 것들'이다

 

사당동에서 있다가 한녀석이 더 와서 우리 집으로 왔다..

데려다 주러 왔다가 집에 들어와 커피한잔 마시고...

동원참치캔 한 상자를 차에서 내려

명절선물이라고 주고는...

 

참 간만에 받아보는 명절선물이었다.

예전에는 명절때마다 울집에 모여 음식도 해먹고,

화투도 치고는 했었는데...

갑자기 그때가 생각났다..

조만간 집들이를 하기로 하고,,헤어졌다..

 

아..

그친구가 와서 울집 침대의 위치를 드뎌 바꿨다.

집구조를 바꿀 생각은 계속 했었지만,,

혼자선 엄두를 못냈었다.

침대 위치만 바꿨는데도,

집은 훨씬 넓어보인다..

일단 기분전환엔 성공이다!!

 

 



그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맘이 움직였다면 이미..

용서해요..

억울하겠지만,,자꾸 억울하다는 생각하지말구..

지금의 모습은 그런 과거가 있었기에 있는거잖아요"

 

어쩜 나도 알고있었는지 모른다..

이미 용서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그런데

이 억울함은 모냔 말이다.

억울하다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수가 없다...

내 어린시절 피폐했던 삶에 대해

나는 어디서 위로를 받아야 하냔 말이다.

 

사람은 보상심리가 있나보다..

아니, 나는 그런가보다..

그걸 보상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 설움과 상처와 또렷한 기억들을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이냐..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웃으며 만나야 하는건가?

 

난 도저히

그렇게는 하기 싫다..

그렇게는 하기 싫단 말이야!!!

 

그렇다고 ...

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늘 감사하는 맘으로 살아가고,

평화를 기원하면서 삶은 보기엔,

 

난 너무 많은것을 잃었고,

너무 많은것을 버렸고,

너무 많은 것을 죽였다.

 

정말일까?

내가 버린것만 있는가?

내가 얻은것은 없는가?

 

그걸 잃었기때문에 그외의 것을 얻은것인가?

그런 댓가를 치룬것이었나?

 

정말 그런것이여??????

 

이..지랄같은 카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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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년..무자게 이상하다!!

무자년이 시작되었다..무자년 1월 1일이..

무자년이 되면서 무자게 이상한 일만 생긴다..

 

매번 명절때면 늘 그렇듯이

만화가게에 가서 만화책을 한웅큼 갖고왔다.

사랑니까지 뽑은터라

얼음찜질을 해대며,

티비를 틀어놓고,

만화책을 보다가, 티비를 보다가..

뭐 그러고 있었다..

 

핸펀이 울렸다.

내 핸펀의 특징은 빨간날 거의 울리지 않는다는거!!

근데 그것도 설날..

모르는 번호가 뜬거다..

이상한 국번으로 시작하는..

 

10년만에 듣는 목소리..

명절에 왜 혼자 있냐며 울었다..

난 늘 명절에 혼자있었는데...

갑자기 너무 새삼스러웠다..

사랑니를 뽑아서 오늘 신설동 큰이모네 가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나보다..

큰이모네 가지..왜 혼자 그러고 있냐고..

왜 하필 사랑니를 설날전에 뽑았냐고...

나에게 물어왔다..

 

너무 새삼스럽기도 하고, 당황도 하여,,

어찌어찌 이야기를 했다..

 

그냥 목이 메었다..

 

빨리 결혼하라구...큰이모한테 이야기 해놨으니 좋은사람

소개시켜 줄거라구..

늙어서 혼자살면 안된단다...ha!!

전화기 저편음성은 또 울먹였다..

 

그리고 우린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를 좀 나눴다..

 

나도 울먹였다..

울지 않을 줄 알았는데..

식도에서 욱하고 뭔가가 올라왔다...

 

왜 울었을까?

전화를 건 사람은 왜 울었을까?

갑자기 새삼스뤄웠을까?

10년을 이렇게 살았는데...

이제와서 난 또 왜 울었을까?

 

울먹이는 음성을 들으면서

분노는 동정으로 변했다..

 

멜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가 하고싶었던 이야기를 보내고 싶다..

이제는...

 

 

 



밤이 다되어 막내가 또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서울번호로 발신자 표시가 되더니,

받았더니 미쿡이다..

 

이런날도 있군..

하루에 두번이나 미쿡에서 나에게 전화를 하다니..

막내랑은 또 한참 수다를 떨었다.

3월 26일이 예정일이라면서..

출근길이라고 한다..

 

오늘 큰이모네라도 가지 왜 안갔냐고...

언니가 가면 맛있는거 많이해서

싸주라고 엄마가 말해놨다며..

그렇게 살지좀 말라고...

 

이렇게 사는게 뭘까?

 

남들 사는것 처럼

그렇게 살아질 수 있을까?

 

내 이 지랄같은 인생을 받아줄..

이 진절머리나는 과거의 상처를 안아줄..

그래서 우리가 정말 행복할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만날수 있을까?

 

내 과거로 인해 다른사람이 불행해지는 일은 싫다.

그리고 내 과거로 인해 내가 불행해지는 일은 더더욱 싫다.

 

그러나..

언제나..

그 언저리에서

맴돌기만 하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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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성..

이대 여성대학원에 다니고 있다는 그녀..

여성대학원에 입학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했었다..

 

 

여성운동을 하겠다던 그녀는..

자기 삶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자신의 문제에서는 어떻게든 비켜나갔고,,

무수한 논란을 남긴채 홀연히 떠났다..

 

 

그리고 그 여성운동을 더 해보겠다고 대학원에 입학..

 

이미 1년이 넘은 그녀는 여성대학원에 다니면서

지금도 여성운동에 대해 대단한 전문가인듯 이야기 하고 있을거다..

 

그런데

그녀가 모르는게 있다..

 

그녀가 그 여성대학원에서 여성운동의 뭣쯤 되보이는듯하게

수업을 듣고, 토론을 하고, 판단을 내리고, 입장을 낼때..

그때 말이다...

 

그 순간 그녀가 주는 진실성을 전혀 못느끼는

어떤 사람이 있다는것.

 

그 가증스러움으로 인해 결국 그 학생은

그녀가 그렇게 행동하는걸 차마 더 볼 수 없어서

학교를 그만두웠다는 걸...

 

그걸 그녀는 알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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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니!!

몇년전부터 벼르고 벼르던 사랑니를 뽑았다

강쌤 야그로는 대수술이어서 이뽑고 2-3일은 쉬어야 하니까

그렇게 날자를 잡아오라고 했었다. 이미 몇년전에..

 

사랑니를 3개는 다뺏고 마지막 남은 요놈은 오른쪽 아래에서

떡하니 누워있는거다! 제기랄!!

더군다나 뿌리도 깊어 신경이나 뼈를 건드릴 수 있다는 강쌤의 야그에

수술날짜를 잡는데 이리도 오래걸렸다..

 

이번 연휴때 하나는 해야겠다 싶어서..

큰맘먹고 지난주에 예약을 했고..

 

몇일전 후배녀석하나가 사랑니를 뽑았다가 피가 안멈춰서

베게가 빨간 피로 흥건했다는 이야기를 들은터라 너무 무서웠다.

 

막상 치과에 도착해서 순서를 기다리는데..

가슴은 콩당콩당..

 

마취를 하고, 수술이 시작됐다.

예상대로 쉽지 않았고, 수술중간에 엑스레이를 5번을 찍었다.

망치로 이빨을 깨는데..마취한 상황에서도 신경이 아팠다.

망치로 이빨을 두드리는건 생전 첨 경험이었다.

중간에 시간이 길어지니, 진통제를 먹으라고 했다..

치료하다가 진통제를 먹기도 첨이다..

장작 2시간에 걸친 대수술..

 

수술이 끝나고 물어보니,

잇몸을 칼로 찢고, 뼈도 갈았단다...

음메~~

 

실밥풀러 일주일 후에 다시 오라고 한다.

 

2시간동안 얼마나 몸에 힘을주었는지,

돌아오는 길에 진이 다 빠져 힘이없었다.

 

지랄같은 사랑니..

삐뚤어지고 비정상적인 사랑니를 뽑아내고나니,

후련하다...

 

2시간이고, 3시간이고 길어도 좋으니,

맘을 수술하는 병원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지랄같은 사랑니를 뽑아냈으니, 내 인생의 봄날은 올거다...

 

고생하신 강쌤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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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부탱이~~

이제서야 알았다..

나를 옥죄는 이 삶의 무게가 무엇인지를..

그동안 회피해왔던 이 지긋지긋한 원초적인 허기!!

 

은희가 싸이에 글을 남겼다..

아빠, 엄마, 민수, 은희 핸펀번호를 쭉 올려놓고는

'전화하는데 얼마나 걸리나 두고보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왜 하필 그날 그런 글을 올린거냐구...

내 감정상태가 최악일때..

정말 지지리도 궁상이던 날..그런날 그런 글을 올렸단말이냐...

 

10년이 지났다..

98년도에 헤어졌으니까..정확히 10년이 된게다..

그동안 한번도 전화를 하지 않았다.

 



'박'씨들을 만났다. 언니와 오빠..

이제 나이가 느껴지는 그런 날이었다.

가슴이 콩당콩당해서 찾아갔다.

언니가 역까지 마중을 나왔다.

언니와 오빠는 위아래층에 살고있었고,

내게 형부가 생겼다. 새언니도 생기고,

조카도 박씨남매에게 지지배, 머스매 한개씩..

 

낯설었다.

그리고, 행복했다..

그냥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것만으로도..

 

막한 밥이 먹고싶을때,

아파서 손하나까딱하기 싫을때,

갑자기 누군가 보고싶을때,

술한잔 묵고 목놓아 울고싶을때,

그럴때 전화할 사람이 생겼다.

 

이젠

용돈달라고 할 형부도 생기고,

서글서글한 새언니도 생기고,

명절에 갈 곳도 생겼다..

 

킁이모랑도 통화를 하고, 첫째 오빠랑도 통화를 했다

이번 구정때 꼭 오란다.

 

 

 

밥도 묵고, 술도묵고, 세월도 묵었다.

15년전부터 역순으로 우린 세월을 훑었다.

그래..그때 그랬지..

그래...그래서 그런거였구나..

 

근데 너무도 놀라운건말이지..

그녀가 노력이라는 걸 했더란 말이다..

 

노력이라는걸 한줄은 전혀 몰랐는데..

그사람이 이제 인간으로 이해되버렸다는게 날 미치게 한다.

그사람은 그냥 나쁜 사람으로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왜 날 이렇게 미치게 하냔 말이다.

 

왜 난 다 이해가 되냔말이다.

그 처지와 조건에서 각자 다 그럴 수 있었겠지라는 이해와 동의가 되는순간

난 투쟁의 대상을 상실하게 된거다.

 

10년간 한번도 전화하지 않았던 거..

연끊고 살아야지 했던거..

다시는 만나지 말자 다짐했던거...

절대로,,,절대로.. 무슨일이 있어도,.,,

용서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거...

 

이해와 동의는 다르다..

분명 동의가 되는건 아닌데..

98년 미아동 옥탑방에서 받은 편지를 붙잡고

미친년처럼 울었던 것은..

 

나에대한 다짐이었다.

살인을 한 뒤에 미안하다고 한다고 죽은사람이 살아나지 않듯이

그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걸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이제와서 아무리 미안하다고 해도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는...

 

근데 이제는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의 아픔을 알아버렸다..

오빠는 아주 조심스럽게 충격받지말라고 하면서,

아주 덤덤하게 이야기를 했다..

 

집에들어오는 시장통골목을 지나는데, 눈물이 마구마구 쏟아졌다.

시장통에서 울어보긴 또 첨이다..

미쳤다...미쳤어...

 

나 이제 정말 어쩌지???

 

감정조절이 안된다...

 

정말 어쩌야 하는건지..

10년간 깊이깊이 묻어놨던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잡고

새록새록 올라오고 있다..

 

 

왜?

왜!

왜?!

내 인생은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일들만 생기냔 말이다..

 

숨쉬기조차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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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적한..

#1.

총회가 끝났다.

1년에 한번하는 총회..

고거 준비한다고 눈코뜰새 없이 바빴지만..

정말 뭘준비했던 걸까 싶기도 하다.

행정적으로 늘 해왔듯이 그렇게 준비한 건 아닌지..

성원이 딱 찼다.

모두 내가 아니면 안되는 구나를 생각했을까?

모인 동지들중에 한명만 없어도 조직이 움직이지 않는..

그런 상태다..

우리는 아직 딱 이만큼이다.

 

 

#2.

'그런데에 갔다오면 한참을 앓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런데를 갔다오면 한참을 앓아야 한다는...

내가 바로 '그런데'에 오라고 했다...

내가 잘 못한걸까???

우린 참 질긴 인연이다..

 

 

#3.

가족을 만난다..

잃어버렸던 가족을..

사촌언니, 오빠를 찾았다..우연히..

 

어제 통화를 했는데..

'오빠는 한번도 널 잊은적이 없다...하나밖에 없는 동생인데..'

라는 통화음성에 덜컥 울어버렸다..

 

 

 

 



우리들은 실제 팔촌정도는 되는거 같다..

그치만 어렸을적 항상 같이 놀았고, 같이 다녔다.

한살위인 오빠와 3살위인 언니..

고3때인가 오빠는 재수를 했고, 언니는 대학을 포기하고

우리는 방학때면 늘 같이 다녔다

난 워낙 집을 싫어했던지라,,

신설동 언니집에서 학원을 다녔고,..

당시 신설동에 입시학원같은것들이 많았다.

오빠는 공부를 잘했었던것 같다. 공부를 잘했던 오빠덕에

오빠와 함께 학원을 다니는것에 대해 전폭적 지지를 했던것..

 

선명한 기억하나..

딱 요맘때였던 거 같다.

신정을 전후한 때거나, 구정을 전후한 때거나 암튼 설즈음이었으니

난 입시에 떨어졌고, 재수를 하겠다고 집에다 이야기 했다.

엄마는 반대를 했고,,,

친구와 신설동에 갔다가 큰이모 집에 들렀고,

친구는 밖에 카페에서 기다리고,,,

난 잠시 이모집에 들렀다.

그 잠시 동안 이모가 불러서 그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듣는내내 심장이 쿵쾅거리고, 세상이 노래졌었다.

방에 깔려있던 담요를 덮도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큰이모가 이야기를 했고, 언니와 오빠가 같이 앉아있었다.

그 상황이 지금도 너무나 선명하다.

그러나 큰이모앞에서 티를 낼 수가 없었다.

큰이모는 내가 다 아는줄 알고 한이야기였고,

난 그날 처음 듣는 사실이었고..

그리고 어떻게 그 집을 나왔는지 모르겠다.

친구가 기다리는 카페에서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곤 엄마와 극도의 상황으로 갔다.

결국 재수를 하게됐다. 아빠의 허락으로..

재수하는 내내 엄마는 한번도 도시락이라는 걸 싸준적이 없었고,

'그렇게 해도 나에게 나쁜년이라고 할 사람이 없다'는 엄포를 놓았다.

재수하는 동안 놀이터에서의 소주와 새우깡으로 간신히 재수생활을 버텼다.

인생의 낙오자라는 패배감..

내 삶에 대한 절망...

부모 복없다는 자학...

 

그러면서 연락이 끊겼다..

서로 바빠서겠지..

그 이야기를 했던 큰이모를 원망하진 않는다.

더군다나 언니, 오빠가 나에게 해준것은

친 남매, 자매 이상으로 나에게 잘 해줬었으니까..

 

'미국으로 간 줄알았어...'

 

'...'

 

'결혼했니?'

 

'아니..혼자야..'

 

'오빠는 결혼해서 아기도 있는데...

우리 와이프가 널 잘 알아..내가 매일 이야기 했으니까..'

 

'...'

 

이게 가족이라는 걸가?

 

살기 바빠서 그랬겠지...

아둥바둥 살아야 했으니까..

살아남아야 했으니까..

그땐 운동하느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지금생각해보면...

어찌 그리 억척같이 살았는지..

 

갑자기 지난 15년이 필름처럼 지나간다..

 

15년만에 만나서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할까??

그 세월을 다 어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그 세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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