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조선일보, 입술에 침이나 바르시지

울지아나, 썩 좋은 글...

미국식 자유주의와 유럽식 복지주의 사이의 기로에 선 대한민국 현주소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

그렇다. 교육이 곧 정치라는 것은 세상이 다안다

 

 

조선일보, 입술에 침이나 바르시지
2005-05-17 11:02 하재근 컬럼니스트
저녁나절, 외출 전에 한나라당이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내놓는다는 뉴스를 봤다. 대학에 학생선발권을 주도록 하고, 입시에 고등학교별 특성을 반영하게끔 한다는 내용이었다. 한나라당이 매를 버는구나 하며 집을 나섰다.

밤에 집에 들어와서 조선일보 사이트부터 접속했다. 교육분야에서 한나라당이 이 정도 들이댔으니 필시 조선일보에서 사설이나 칼럼으로 받쳐줬을 거란 생각에서다. 아니나 다를까. ‘교육 논쟁의 탈선’이라는 제목의 사설이 떡하니 걸려있다.

가끔 조선일보는 ‘성실’이란 단어의 의미를 다시 생각케 한다. 어쩌면 이렇게도 꾸준히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자기 할 일을 챙길까. 한발한발 내딛으며 악착같이 전진하는 조선일보. 교육 이슈를 누가 신경이나 쓴다던가. 그래도 조선일보는 교육을 놓치지 않는다. 교육분야 마스터플랜을 실현시키기 위해 조선일보는 10년째 뛰고 있다.

95년 벽두인 1월 11일자 칼럼에서 조선일보는 ‘세계화’에 걸맞는 교육개혁을 주문하고 나섰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이번 법안을 주도한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은 지난 10년간의 교육정책을 평가하며 교육개혁의 1단계는 완수됐다고 말한 바 있다. 이제 2단계로 간다. 바로 고교 평준화 폐지와 대학 자율화다.

한나라당과 조선일보 등 대한민국의 수구기득권집단은 지금 두 개의 떡을 양 손에 들고 있다. 하나는 ‘과거’, 하나는 ‘미래’다. ‘과거’는 박정희를 돌아보며 TK 군사독재 꼴통들을 껴안고 있고 ‘미래’는 자유주의에 입각한 국가 대혁신이다.

수구집단이 미래를 취한다는 건 모순인 것 같지만 그것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일 때는 인과율에 입각한 필연이 된다. 조선 봉권 지배층 --> 친일파 --> 숭미 군사독재 --> 자유주의 세력, 이런 수순으로 착착 진화하는 것이다.

과거에만 안주하던 수구집단이 미래의 도전에 직면한 것이 노태우 정권 이후다. 초유의 여소야대 정국에 그들은 정치권 민주세력의 한 축인 김영삼계와 제휴할 수밖에 없었다. 그 김영삼계가 문민정부를 세운 후 자유주의 개혁을 입안했다.

그것이 바로 ‘세계화’고 조선일보 95년 벽두의 칼럼은 박정희, 전두환의 나라인 대한민국을 ‘세계화’에 입각한 나라로 혁신하는데 가장 본질적인 관건이 되는 지점으로 ‘교육’을 지적한 것이었다.

문제의식은 간단하다. 과거엔 부귀를 정당화하는 기제가 봉건적 신분제였다. 해방 후 그것이 깨졌다. 그러자 등장한 것이 총칼로 사람을 쳐죽이고 군홧발로 짓이기는 박정희, 전두환의 군사파쇼기제다. 그런데 이 시스템이 87년 민중의 저항으로 깨졌다.

어떡하지? 기득권을 지켜야 하는데, 봉건적 신분제도 안 돼, 못사는 것들 때려죽일 수도 없어, 어떡하지? 이 때 이들은 미국을 떠올린다. 미국? 얼마나 좋아. 부자들의 천국. 군바리가 국민들 때려죽이지 않아도 부귀가 지켜지는 곳. 어떻게?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로.

사회체제를 사적경쟁의 원리로 싹 바꾸는 것이다. 수구기득권 집단이 이룩한 부귀권력은 경쟁원리에 의해 모두 정당화된다. “우리가 누리는 부귀? 우리가 경쟁해서 쟁취한 거야. 니네도 꼬우면 경쟁해서 이겨. 공동체? 내가 내 능력으로 경쟁해서 얻은 건데 공동체를 왜 신경 써?”

이렇게 병영사회에서 자유주의에 입각한 미국식 시장사회로 싹 바꾸려는 기획의 주체세력으로 나선 것이 김영삼 문민정부와 경실련이었다. 이들이 지금 한나라당이 쥐고 있는 ‘미래’라는 한 손의 떡이다. 공동체적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손학규와 박세일이 한나라당의 미래인 것이다.

수구기득권 집단의 목표는 첫째, 자신들의 부귀권력을 정당화하고, 둘째, 그것을 자식들에게 세습하는 거다. 어떻게 하면 가장 쉽게, 가장 안정적으로 이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 여기서 교육의 중요성이 등장한다.

철저하게 서열화되어 있는 한국의 대학체제를 이용해서 자유주의적 신분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고교평준화를 폐지하고, 공교육을 해체하며 대학을 사립화, 자율화하여 절반은 한국식(서울대의 존재), 절반은 미국식(사립학교)인 새 시대의 신분기제를 만든다. 그것이 박세일, 안병영 등이 입안한 5.31 교육개혁의 정신이고, 국민의 정부를 거쳐 참여정부까지 애매한 형태로 이어져오는 중이다.

원래 한나라당의 목표는 완전 자율화였으나(그래야 화끈한 돈지랄이 가능하니까),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최소한의 공공성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것이 이른바 3불정책의 의미다. 교육이 부모의 돈지랄을 통해 자식에게 부귀권력을 세습하는 신분기제로 전락하는 걸 막겠다는 최소한의 저항이 바로 3불정책인 거다.

그러나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극단적인 대학서열체제를 이대로 둔 상태에선 그 어떤 교육개혁을 해도 의미가 없다. 이것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도 교육분야가 파행에 파행을 치닫는 이유다.

내신 위주로 가면 아이들한테 뭐가 더 좋아질까? 내신이든 단판 시험이든 뭐가 됐든 간에 대학서열체제가 있는 한,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서열에 아이들을 편입시키기 위한 변별력이고 그 변별을 위해 아이들은 죽어나가게 되어 있다. 바로 부귀권력을 세습시키기 위한, 신분을 가르기 위한 변별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들고 일어났다. 그러나 아이들은 아직 세계를 과학적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저 즉자적으로 자신들이 당하는 고통만을 호소할 뿐이다. 그것을 교육부의 내신강화 정책에 대한 저항으로 호도하면서 수구집단은 이 틈을 타 2단계를 실행하려는 것이다.

조-한 기득권 카르텔에게 내신강화가 절대 안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신이 강화되면 귀족학교가 사라지고 강남의 집값이 떨어진다. 다시 말해 고교 평준화의 원칙이 강화된다. 이렇게 되면 교육을 신분세습의 기제로 쓰려는 목표에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명문고 주위에 잔뜩 몰려있는 이 땅의 지도층 나리들의 재산도 축나게 된다.

그래서 저들은 이번 혼란을 기민하게 이용 내신강화를 막고, 오히려 이 혼란을 고교서열화, 대학의 미국식 자율화의 기회로 삼으려는 것이다. 이것이 한나라당이 말하는 고교별 특성이란 말의 실체다. 수구집단이 사용하는 ‘특성’이란 말은 항상 ‘서열’로 번역해서 읽어야 한다. ‘특목’고가 현실적으로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웃기는 건 이번 조선일보 사설의 결론이다. 제목이 ‘교육논쟁의 탈선’인데, 뭔 소리인가 하면 작금의 교육논쟁이 교육자체가 아니라 사회개조논쟁으로 탈선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정치이슈’화 됐다는 거다.

교육 부문이 가장 적나라한, 본질적인 정치투쟁의 장이란 건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조선일보가 알고, 내가 안다. 교육을 부귀권력세습의 신분기제로 만들려는 자들과, 진정한 인간, 인재, 시민을 기르는 장으로 만들려는 집단간의 정치투쟁인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대한민국이 미국식 자유시장체제로 갈 것인가, 서유럽식 복지사회체제로 갈 것인가를 가르는 투쟁의 장이 또한 교육분야다.

야수의 사회로 갈 것인가, 인간의 사회로 갈 것인가. 입시기계인가 창의적 인재인가. 서열화인가 평준화인가. 돈지랄인가 공공성인가. 수직적 신분구조인가 수평적 다양성인가. 귀족인가 민중인가. 소수인가 다수인가.

문제의 본질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조선일보여. 교육문제는 교육문제일 뿐이라고? 입술에 침이나 바르시지.


외부 필자의 컬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본 사이트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 하재근컬럼니스트의 다른기사 보기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