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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와 북한, 다른 시선이 꿈틀대다

 

 

누드와 북한, 다른 시선이 꿈틀대다


 

 
[한겨레] 패션사진가가 찍은 누드, 전직 기자가 찍은 북한 등 경계와 거리를 허문 사진전들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11월 미술동네의 한쪽에서 사진가들이 꿈틀거린다. 세상을 늘 배회하면서 오직 타자로서 이미지를 건드려야 하는 숙명을 생각하는 그들이 자기 존재의 비애를 한껏 사진으로 풀어낸 수확물들을 내보였다. 발레리나의 누드를 찍어 논란을 빚었던 패션사진가의 몸 사진은 순수와 통속의 경계 허물기인가. 거울 같은 앵글에 실체로 찍어낸 북한 집단주의의 진실은 무엇인가. 전시의 덩치나 작품값이 아니라 장르와 미학의 맥락에서 이야깃거리를 던지는 마당들이 지금 차려졌다.

전시 화두는 순수사진 vs 상업사진?

대중적 화제의 중심에 패션사진가이자 청담동 문화의 스타일리스트로 알려진 김용호씨가 있다. 국립발레단원 김주원씨 누드사진을 찍은 그는 11월17일 시작한 서울 통의동 대림미술관(02-720-0667)의 사진전 ‘몸’(mom)에서 더욱 밀착된 시선으로 찍은 유명인사, 보통 사람들의 누드 140여 점을 내걸었다. 등장인물은 30여 명에 달한다. 예술가와 연예인, 체육인, 미술인, 오르간 연주자, DJ, 트랜스젠더 등을 찍었다. 사람 몸의 한 부분을 확대해 찍은 ‘신대륙’ 연작, 뒷모습 누드만 골라낸 ‘채집된 몸’ 연작, 악어가죽 여행가방에 몸의 부분 사진을 합성해 넣은 ‘신대륙용 여행가방’ 연작이 나와 있다.

가슴을 살짝 가린 채 수중에 자맥질했던 육체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틀어 보여주는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 선수, 남성적 관능미가 물씬 풍기는 남성 배우 알몸 상체, 쪼그린 패션디자이너가 보여주는 중년의 육체, 앵글에 괴상한 물체처럼 잡힌 신대륙 같은 인간의 엉덩이, 등짝, 오리의 물갈퀴 같은 발레리나의 맨손, 맨발의 예민하게 곧추선 굴곡선 등…. 흑백 누드사진에서 우리 육체 이면의 온갖 슬픔과 격정, 환희들이 오버랩되면서 엉킨다. 포르노나 몸짱 이미지만 강조되는 비뚤어진 육체와 달리 신대륙과 같이 경이롭고 다양한 몸의 세계를 보여주겠다면서 김씨는 말했다. “자연 속에 순환하는 육체를 보여주고 싶다. 에로틱한 상상은 보는 사람의 주관에 따른 것일 뿐이다.”

그런데 전시의 화두는 기실 좀 다른 지점에 걸치고 있는 듯하다. 인기 명사들의 누드가 에로틱한지를 따지기보다도 이른바 순수사진과 흔히 ‘꾼’으로 낮춰 부르기도 하는 상업사진과의 경계를 허물어냈는지가 사실 전시의 성패를 가르는 열쇠로 비친다. 작품들은 기존 사진 거장들의 몸 사진 유형을 조합하거나 증폭시킨 느낌으로 와닿는 것이 많다. 몸을 낯선 사물이나 자연으로 응시한 에드워드 웨스턴, 디자인 미학으로 육체를 조망한 만 레이, 육체의 선과 질감을 영기처럼 부각시킨 호소에 에이코 등의 시선과 구도가 그의 작업에 유려하게 녹아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상업사진가의 강점은 고객의 주문에 맞춰주는, 단순명쾌한 전달력, 호소력이다. 경계가 부질없다면서 굳이 예술사진의 구도를 뒤쫓는 상업사진가들의 이분법적 구태들을 김씨가 얼마나 극복해 보여줄까. 2004년 이혜영 누드 모바일 화보를 찍기도 했고, 패션사진에 관한 한 일류로 평가받는 그가 경계 허물기의 공력을 얼마나 발휘해낼까. 성기의 털을 당당히 드러내고 사지를 쩍 벌리는 모델 누드를 찍으면서 ‘뻔뻔스럽고 세련된 포르노 작가’라고 자처했던 패션사진 거장 헬무트 뉴튼의 경지에 얼마나 근접해 있는지를 되짚어보는 것도 감상의 재미가 된다. 누드 파문 주역이었던 김주원씨의 또 다른 전신 누드, 유방 절제 수술을 한 여성 가슴 등을 담은 10여 점은 당사자들의 요청으로 전시에서 빠졌다. 내년 1월27일까지 전시한다.

아리랑의 일사분란함 속 다른 표정들

분단이 남한의 일상과 사회에 남긴 생채기에 천착해온 사진기자 출신의 노순택씨는 올해 국내 사진계에서 괄목할 만한 평가를 받은 작가 중 하나다. 2005년 북한을 방문했을 당시 평양의 일상과 <아리랑> 집체 공연을 찍은 사진들로 사진집 <레드 하우스>(청어람미디어)를 발간했다. 또 12월2일까지 경기도 파주 출판도시 내 열화당 사옥의 로터스 갤러리(031-955-7000)에서 자신의 근작들을 정리하는 작은 개인전을 열고 있다. 2005년 <분단의 향기>라는 사진집을 낸 그는 분단, 그리고 50여 년 전의 전쟁이 남한에 남긴 생채기를 매향리, 대추리 등의 미군기지 반대투쟁 현장에서 신문사진 같은 구도로 찍어왔다. 반면 사진찍기가 제한된 북한에서는 2000년과 2005년 방문 당시 집요한 관음적 시선으로 집단 공연 장면을 찍었다.

출품작들은 그만의 북한 바라보기 방식이 깃든 두 번째 방문 당시의 사진들이 중심이다. 독특한 연속 문양 같은 노씨의 <아리랑> 사진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보여주는 곳에서 작가가 원하는 것을 보려는 욕망이 부딪힌 산물이다. 그 결과 나온 역작이 매스게임이나 집체 움직임을 보여주는 <아리랑> 공연의 세부 모습들이다. 총검술하는 군인이나 전통 군무를 추는 소녀들이나 자세히 보면 하나같이 동작이 다르고 표정도 다르다. 일사불란한 군악대의 연주 장면도 노씨의 미세한 앵글에서는 카오스적인 춤처럼 보인다. 북한의 집단주의 질서 사이사이를 오가는 현지 사람들의 모습은 그들이 결코 기계가 아니라는 사실까지도 보여준다. 현장 고발 혹은 풍자 스타일의 사진을 찍던 그는 2005년의 북한 작업 이후 진일보한 작가적 시선을 보여주었다. 남북 양 체제에 객관적 거리를 두고, 북한 집단주의는 아름다운 붕어빵 무늬 같은 <아리랑> 공연의 이미지로 실체화시켰다. 남한 극우단체의 드라큘라 같은 김정일 초상 사진과, 북한에만 가면 열렬 사진사로 변신하는 남한 방문객들의 디카 행태를 찍은 사진은 북한과 남한이 서로의 거울임을 드러낸다. 그와 2인전을 했던 사진가 주명덕씨는 “그의 성취는 북한 기행 사진에만 제한된 것이며, 다른 유형의 사진에서도 앵글 자체로 이야기할 수 있는 힘을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한다. 노씨는 내년 2~4월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유명 미술관인 쿤스트페어라인에서 파격적인 회고전 형식의 초대전을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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