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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386, 너무 일찍 정권 잡았다고?

덧붙이는 글

일정 정도 타당하다.

현 유럽 정권 장악한 68세대는 욕 안먹나!

일단 초딩들은 68혁명이 뭔지부터 알아야한다.

 

 

한국의 386, 너무 일찍 정권 잡았다고?
노무현 정권의 본질에 대한 연구 서설
2005-06-24 22:47 서영석 정치전문기자 (du0280@dailyseop.com)
시대를 막론하고 주류의 교체는 저항을 유발한다.

그 저항으로 인해 유혈사태를 빚었던 일도 역사를 뒤져보면 비일비재하다.

우리 사회에서 그간 주류를 자임해 왔던 세력들도 이러한 역사적 흐름과 추세에서는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러나 그 양상은 대단히 다르다.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으로 인해 이뤄지고 있는 주류 교체는, 비유하자면 가장 낮은 수준의 ‘저강도 전쟁’에 불과하다.

개혁은 혁명보다 수십 배나 어렵다. 개혁의 기치를 내걸었던 역사상의 신흥세력들이 곧바로 유혈혁명으로 치달았던 것도, 기왕에 주류를 교체하는 일에 효율성을 기하자는 지극히 단순한 사고가 그 출발점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싹쓸이하면 쉬운데 왜 힘들고 어려운 길을 가느냐는 회의는 언제든 있을 수 있다.

그럴 수는 없난, 말하자면 일종의 저강도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노무현 정권의 개혁은, 따라서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우선은 개혁돼야 할 대상들의 오판을 들 수 있다. 저강도로 진행되는 개혁이기 때문에 저항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혁명의 그것 보다 훨씬 넓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잘 하면 좌절시키든가, 최소한 타협은 가능할 수 있겠다”는 오판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이 정권의 개혁의지를 좌절시키기 위한 시도의 절정은 탄핵이었다. 조선일보가 중심에 서 있는 수구세력 연합진영의 경우 이 정권 어딘가에 빈틈을 만들기 위한 총력전이란 점에서는 대오가 놀라울 만치 일사불란하다.

386에 대해 증오심과 적개심을 감추지 못하는 것도 우회로적인 공격을 통해 빈틈을 만들어내기 위한 전략의 산물이다. 수구세력들의 권력 그물망은 여전히 강력하다. 마치 코어 그룹이 있어 수시로 전략회의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노무현 정권의 본질에 대한 연구의 서설 격인 나의 얘기는 한마디로 끝낼 성질은 아니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386에 대한 증오심의 표출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청년연구재단과 아시아재단 주최로 24일 고려대 국제관에서 열린 ‘한국사회의 권력이동’ 심포지움은 기성세대의 386관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결론부터 얘기한다면 유수한 교수들로 이뤄진 심포지움 발제자와 토론자들의 386에 대한 논고는 단 하나의 진실도 보지 못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완전히 엉터리다.

김선혁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권력이동의 국제비교’란 주제 발표에서 “권력을 얻기 위해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은 50년, 중국의 개방개혁주의자들은 35년의 세월이 필요했으나 한국의 386 세대들은 15년 만에 권력을 잡았다”고 밝혔다고 한다.

노 대통령이 집권한 뒤 과연 386이 권력을 잡았는가.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386이 상징이 된 것은 사실이다. 노 대통령의 측근그룹에 386이 포진했기 때문이었고, 다른 무엇보다 노 대통령의 의식 구조가 386에 대단히 가깝다는 것 때문이었다.

노 대통령의 의식구조에 386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거의 정설로 굳어져 있다. 나도 사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 대통령이 부림사건 변호인이 되면서 386운동권과의 교류가 시작됐고, 그 전까지는 잠재의식 속에 머물러 있었던 사회변화의 의지를 끄집어 내는 계기를 제공한 것도 386세대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행정학적인 의미에서 권력의 주체로 386이 섰다는 주장은 거의 어거지에 가깝다. 노 대통령이 집권한 후 386이 권력의 주체로 선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노 대통령의 최측근이라고 조선일보 등에서 레테르를 붙인 이광재 의원, 안희정 씨는 청와대에서건, 당에서건 책임있는 자리에 앉은 적은 없었다. 이광재 의원이 국정상황실장으로 일했던 것이 최고위직이었다. 그밖의 386세대들은 항상 권력의 주변부에서 맴돌았다.

물론 과거 이 나라의 권력은 외부적인 지위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었다. 최고권력자인 대통령과 얼마나 쉽게, 얼마나 자주 만날 수 있느냐가 권력의 척도였다. 그런 면에서 노 대통령의 386 측근들 가운데 극히 일부는 권력 속으로 들어갔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386이란 집단으로서는 여전히 권력의 주체로 아직 서지 못하고 있다. 386세대보다 연령적으로 조금 빠른 열린우리당 유시민 상임중앙위원이 나름대로 권력서열 측면에서는 가장 권력에 근접해 있다. 하지만 여전히 유시민 상임중앙위원은 구상유취로 여겨지고 있다. 김선혁 교수는 이미 전제에서부터 틀린 주장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또한 김선혁 교수는 “386세대는 중장기적 대안을 모색하기에는 지나치게 정치지향적이다. 386이 안정적인 권력 집단으로 위치를 확보하려면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이나 중국의 개혁개방주의자들에 버금가는 실력과 내용을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전제가 틀렸기 때문에 언급할 가치도 없지만 일반론적인 측면에서 말한다면, 권력 주체로 서지 못한 386, 그리고 권력주체가 될 가능성을 가장 크게 가지고 있는 386이 지나치게 정치지향적이 아니라면 이상한 것이다. 그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다면 정치지향적일 이유가 없다. 전제가 틀리면 그 다음의 논리 전개가 아무리 정교해도 엉뚱한 얘기를 늘어놓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김교수는 웅변해 주고 있다.

386은 이제 권력의 주체로 들어설 채비를 하고 있다. 아마도 다음 정권에서는 386과, 그들보다 조금 앞서 있는 475세대들이 권력의 주체로 설 것으로 생각된다. 이 과정에서 386은 미국의 신보수주의들이나 중국의 개혁개방주의자들에 버금가는 실력과 내용을 갖출 수 있을 것이란 사실은 너무나 명백하다.

386세대는 돌출한 세대가 아니다. 4·19부터 시작된 이 나라 민권운동의 유구한 역사가 집적돼 나온 산물이다. 그들은 자신의 위상보다 조금 빨리 나가는 바람에 아래 위로부터 견제 당하는 이상한 모양새가 돼 있지만, 다음 정권이면 그들도 40대중반에서 50대 초반에 이른다. 비로소 권력의 주체로서 실력과 내용을 겸비하면서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연배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시대는 차차기 정권까지 이어질 것이다.

그밖에 다른 인사들의 주장은 언급할 가치가 전무할 정도로 피상적인 얘기들의 나열에 지나지 않는다. 세세히 분석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자, 그렇다면 왜 이런 엉터리 주장들이 난무할까. 그것은 실현되지 않은 미래가 현실에 투영돼, 그 미래를 일그러뜨려 현실의 신화로 왜곡해 내는, 저 유명한 아서 클라크의 명저 ‘지구 유년기 끝날 때”에 나오는 선(先) 미래적 공포를 연상시킨다.

다른 무엇보다 이 정권은 민주화와 자유의 확대라는 새로운 인터넷 시대의 이념을 실현시키는 과정에서 탄생됐던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민주주의와 자유의 확대는 기득권의 반발을 현재화시키는 가장 훌륭한 도구다. 뭐랄까, 밴드왜건 효과라고나 할까, 새로운 시대의 탄생에 무임승차한 기득권 수구세력들이, 그 민주화된 현실을 그들의 저항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도구로 만드는데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수십년간 유지해 왔던 기득권의 상실 정도가 아니라 거의 생존의 위험을 느끼고 있다. 유혈의 시대라면 유혈적 저항이라도 마다치 않아야 할 판이다. 그런 상황에서 개방과 민주주의란 환경이 얼마나 좋을까. 제멋대로 지껄일 수 있는 자유를 거저 얻은 격이기 때문이다.

이런 속에서 왜곡이 탄생한다. 주류언론 뿐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인터넷 매체들도 이에 편승하거나, 편승 정도가 아니라 아예 주류언론 찜쪄 먹을 정도로 광분하는 곳도 있다.

어쩔 것인가. 이것도 과정의 고통이라고 생각해야 할 수 밖에 없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아무리 카멜레온처럼 변신한다 하더라도 그 수명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변화의 시대에 그 근본이 틀려먹고서야 생존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자명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 서영석 정치전문기자 
덧붙이는 글...

우연히 독일의 역사학자 페터 벤더가 엮은 ‘혁명의 역사’를 읽다가, 그 가운데 밀터 키네스 개방대학의 아서 마윅 교수가 집필한 68혁명 부분에서 아주 흥미있는 대목을 발견했다. 안티조선운동은 한국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유럽을 휩쓴 68혁명의 전야라고 할 수 있는 1966년 독일의 보수언론도 국민들의 표적이 된 일이 있었다.

보수적 일간지 벨트(Die Welt), 타블로이드 판 일간지 빌트 차이퉁(Bild Zeitung) 등 여러 신문을 발행하고 있었던 우익 경향의 슈프링어 소유의 언론들이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 언론재벌은 “슈프링어 재산을 몰수하라”는 구호를 외치는 연합 시위의 표적이 됐었다고 한다.

참으로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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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일리서프라이즈 < 서영석 정치전문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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