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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장애인'과 '깡패'가 만나다

썩 유쾌한 기사

 

 

'불량장애인'과 '깡패'가 만나다
장향숙 의원과 개그맨 박대운씨... "뒤로 밀리지 않기 위해 도전"
텍스트만보기   구영식(ysku) 기자   
▲ '제1호 여성장애인 국회의원' 장향숙 열린우리당 의원(왼쪽)과 '제1호 장애인 개그맨' 박대운(오른쪽)씨.
ⓒ2005 오마이뉴스

24일 오후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진 장애인 두 사람이 KBS 개그맨실에서 만났다. 한 사람은 최초의 장애인 출신 여성 국회의원이고, 다른 한 사람은 최초의 장애인 출신 개그맨이다. 장향숙 열린우리당 의원과 개그맨 박대운씨가 그들이다.

휠체어는 신체 장애를 갖고 있는 두 사람에게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 동등한 눈높이로 눈을 마주치며, 때론 진지하게 때론 유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KBS의 <폭소클럽>의 '바퀴달린 사나이' 코너에 출연하고 있는 박씨는 "장애인이라는 소재가 무겁기 때문에 적당한 수위 조절이 관건"이라며 "너무 가벼우면 장애인을 비하하게 되고 무거우면 코미디가 아니게 된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이에 장 의원은 "장애인을 불완전하다고 보는 것은 왜곡된 시각"이라며 "저나 박대운씨가 스타가 됐다는 것은 그런 왜곡된 시각을 교정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격려했다.

두 사람은 모두 재미있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박씨는 '불량장애인', 장 의원은 '깡패'다.

박씨는 "장애인 하면 약하고 불쌍하고 착하다는 이미지가 있다"며 "'불량스럽다'는 건 어떤 싸움에서든 밀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아주 마음에 든다"고 설명했다. 이어 장 의원은 "저는 오히려 지나치게 강한 사람으로 본다"며 자신이 겪은 일화를 들려주었다.

17대 총선 전 여성단체들이 장 의원에게 정계진출을 권유했다. 그가 이유를 물었더니 그들은 "정치인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 깡패기질인데 그걸 갖추고 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장 의원은 "어디 가서든 자신의 위치를 분명히 찾을 수 있는 기질이 있다는 의미"라며 "그런데 여성운동가들은 제가 국회에서도 야생의 기질을 나타낼까 봐 주의를 많이 줬다"고 말해 개그맨실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장 의원의 또다른 별명은 '만리장성'에서 따온 '만리장서'다. 그만큼 책을 많이 읽었다는 얘기다. 그는 "(밖에 나갈 수 없어) 방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독서였다"며 "신문쪼가리에서 야한 잡지와 위대한 책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읽어야 했던 것이 장애인의 현실이었다"고 고백했다.

박씨도 '슬픈 기억'을 끄집어냈다. 그가 초등학교에 입학원서를 제출하려고 했을 때 학교쪽에서는 특수학교에 가라며 입학을 거부했다. 장애인은 지능이 낮을 거라는 편견이 크게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잘 할 수 있다는 걸 입증하고서야 정식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박씨는 "그냥 할 수 있는 것도 항상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야만 할 수 있었다"며 "다른 분들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도전하지만 저는 뒤로 밀리지 않기 위해 도전했다"고 말해 주위를 숙연케 했다.

이어 장 의원은 "모든 사람들이 불리하다고 생각한 조건이 나에게는 모두 유리한 조건이 되었다"며 "무학력이 저에게 더 많은 독서를 하게 한 것처럼 장애로 인해 인간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박씨는 "내가 무대에 서는 이유는 장애인 사회를 비판하기 위한 게 아니다"라며 "(장애인인) 내가 처한 상황과 (비장애인인)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서로 이해하고 타협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한 민병두 열린우리당 전자정당위원장은 "<폭소클럽>에 나온 박씨를 보고 장 의원과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한편 장 의원은 요청이 온다면 박씨가 출연하는 <폭소클럽>의 '바퀴달린 사나이'에 우정출연하기로 약속했다.

다음은 장 의원과 박씨가 나눈 60분간의 대화록이다.

박대운 "나는 불량장애인 별명이 좋다"

▲ 지난 11일 KBS별관에서 <폭소클럽> 녹화중인 박대운씨.
ⓒ2005 오마이뉴스 안홍기
민병두 의원 "오늘 아주 특별한 만남을 준비했다. 장애인 출신 최초 여성국회의원 장향숙 의원과 장애인 출신 최초 개그맨을 만나보자. 박대운씨는 최근 총각딱지를 뗐다고 하는데 축하한다."

장향숙 의원 "장가를 가셨다고 들었는데 축하한다. 전 시집을 못갔는데 참 유감스럽다.(웃음) 앞으로 저같은 사람도 제 때 시집가는 사회를 기대하고 있다."

민병두 "<폭소클럽>의 '바퀴달린 사나이'가 장안의 화제다. 보람과 느낌이 각별할 것 같다."

박대운 "장애인이 개그맨으로 무대에 서는 것은 쉽지 않다. 아직도 장애인을 어둡게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 장애인은 힘들고 외롭고 고통받고…. 하지만 저는 장애인들이 우울한 존재가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내 옆에 살고 있을 뿐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장향숙 "장애인도 모든 사회활동을 할 수 있다. 장애인을 불완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왜곡된 시각이다. 저나 박대운씨나 스타가 되었다는 것은 그러한 시각을 교정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민병두 "전문연기인이 아니기 때문에 더 감동을 주는 것 같다."

박대운 "장애라는 소재가 무거울 수 있다. 적당한 수위조절이 관건인 것 같다. 무대 위에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지가 쉽지 않다. 너무 가벼우면 장애인을 비하하게 되고, 무거우면 코미디가 아니게 된다. 수위를 맞추는 부분이 가장 어려운 것 같다.

혼자서 1000명을 앞에 두고 이야기하는 것이 힘들었다. 비장애인들이 무대에 서면 무언가 웃길 것이라 기대하는 반면 휠체어를 탄 내가 무대에 서면 긴장을 한다. 서너회 계속 무대에 서면서 점차 관객과 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왜 나왔을까 의심하지 않는다."

민병두 "박대운씨 별명이 '불량장애인'이라 하던데."

박대운 "장애인을 약하고 불쌍하고 착하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그런데 '불량스럽다'는 것은 어떤 싸움에서든 힘으로 눌리지 않는다는 의미다. 저를 장애인이 아니라 정상인과 대등하게 바라본다는 점에서 그 별명을 좋아한다."

장향숙 "저는 오히려 지나치게 강한 사람으로 본다. 여성인권운동과 장애인인권운동하면서 줄곧 따라다닌 별명이 '깡패'였다. 여성계에서 저에게 정치진출을 권유했을 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정치인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 깡패 기질인데 당신이 그걸 가지고 있다'고 대답하더라. 어디서든 자신의 위치를 분명이 찾을 수 있는 기질이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여성운동 하신 분들이 제가 국회에 와서도 야생의 기질을 나타낼까 봐 주의를 많이 주셨다.(웃음)"

장향숙 "천국과 지옥도 장애인은 따로 가는가"

▲ 국회 본회의에서 대정부질의를 하고 있는 장향숙 의원
ⓒ2005 오마이뉴스 이종호
박대운 "초등학교에 입학원서를 제출하는데 학교쪽에서 거부를 하더라. 장애인 시설이나 여건이 안되므로 특수학교로 가라고 했다. 장애인은 지능이 낮을 거라는 편견이 있었다. 3개월 동안 장애가 있지만 학교에서 다닐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해야 했다. 또 체육시간에 밖에 나가겠다고 했더니 반대했다. 죽어도 상관없다는 각서를 쓰고서야 나갈 수 있었다. 그냥 할 수 있는 것을 항상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야만 할 수 있었다. 다른 분들은 앞으로 나가기 위해 도전하지만 나는 뒤로 밀리지 않기 위해 도전했다."

장향숙 "사회가 얼마나 잔인한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학교는 최선을 다해서 (장애인을) 도와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본인에게 바보가 아님을 증명하라고 한다. 정신지체장애인들은 더 살기 어렵다. 교단과 교회에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많다. 천국과 지옥도 장애인은 따로 가는가?"

민병두 "장 의원은 책을 많이 읽어 화제가 됐는데."

장향숙 "방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독서였다. 신문쪼가리에서 야한 잡지와 위대한 책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장애인의 현실이었다. '만리장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 있고 싶은 위치에 있고 그것이 허용되는 사회가 진정한 가치가 있는 사회다."

민병두 "장 의원이 봉숭아학당 일일교사로 출연해 그걸 이야기해야겠다."

박대운 "노력하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고 멋있다. 내가 장애인 사회를 비판을 하기 위해 무대에 서는 것은 아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융합하기 위해서는 서로 비판만 해서는 안된다. (장애인인) 내가 처한 상황과 (비장애인인) 당신이 아는 것에 대해 서로 이해하고 타협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장향숙 "모든 사람들이 불리하다고 생각한 조건이 나에게는 모두 유리한 조건으로 바뀌었다. 장애로 인해 인간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됬다. 무학력이 나에게 더 많은 독서를 하게 한 것처럼."

▲ 장향숙 열린우리당 의원과 개그맨 박대운씨가 만나 악수하고 있다.
ⓒ2005 오마이뉴스 이종호
2005-06-25 15:42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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