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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통 대한변호사협회에 주느니 차라리…

사법부 종속 검사가 수사하고 사법부가 판단해? 열우... 가지가지

 

 

꼴통 대한변호사협회에 주느니 차라리…


△ 유전의혹특검 특별검사를 2명을 추천하게 최종영 대법원장. 이정용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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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장이 특별검사를 추천하도록 한다.’

    유전의혹 특검법안을 둘러싸고 지루한 줄다리기를 벌이던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29일 새벽 ‘최종 쟁점’으로 남아 있던 특검 추천권을 대법원장에게 주기로 합의했다.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한 이 특검법안은 6월 임시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열리는 30일 국회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법원장의 특검 추천은 전례가 없다. 기존에 있었던 다섯 차례의 특검은 모두 국회의장의 요청을 받은 대한변협(변협) 회장이 후보자를 복수 추천하는 형식으로 임명됐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는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이 특별검사 후보 2명을 추천하면 대통령이 이 가운데 1명을 특검에 임명하도록 한다는 게 여야 합의안의 골자다. 추천 주체가 변협회장에서 대법원장으로 바뀐 것이다.

    역대 특검은 모두 변협회장이 추천권 가져

    여야는 잘 됐다는 반응이다. 강재섭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의원총회 발언을 통해 “특검을 시작한 미국에서는 국회가 특검하자고 가결하면 고등법원 판사가 특별검사를 임명하도록 돼 있다”면서 “그러니까 굉장히 좋다”고 말했다. 이은영 열린우리당 제1정조위원장도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강 대표와 같이 미국을 예로 들며 “우리도 (미국식을) 도입하기로 했는데, 대법원이 국민에 대한 서비스 차원에서, 법률(특검법)에 부여된 임무를 해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대법원에 있는 '법의 여신' 상

    미국에선 연방 법무장관(검찰총장)이 ‘특별검사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 이유’가 있으면 연방대법원장이 지명한 3명의 판사로 구성된 콜롬비아특별구(DC) 항소법원의 특별검사부에 특검의 임명을 제청하게 되고, 이 재판부가 특별검사를 선임하도록 돼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과거의 일이다. 5년 한시법으로 운용되던 이 법률은, ‘지퍼 게이트’(클린턴 대통령과 르윈스키의 스캔들)로 잘 알려진 케네스 스타 특별검사의 활동을 끝으로 6년 전인 1999년 6월30일 실효됐다. 한마디로 말해, 특검의 발상지인 미국에서조차 소멸되고 없는 법을 한국 정치권이 뒤늦게 수입해온 일종의 ‘짝퉁’인 셈이다.

    법원이 임명한 사람이 수사한 뒤 법원 가서 재판받는 이상한 모양새

    더 본질적으로, 이번 특검법안은 특검의 추천기관과 특검이 수사한 사건의 재판기관이 같아진다는 문제가 있다. 대법원장이 추천한 2명 중에 1명은 반드시 특검에 임명될 텐데, 이 사람이 수사한 결과를 사법부가 다시 재판하게 되는 이상한 모양새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수사과정에서 청구될 구속영장이나 압수수색영장도 발부 여부는 사법부가 판단하게 된다.

    대법원도 이런 문제를 의식해 여·야 타결 전 “여러 모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국회 쪽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놓고 반대한다고는 못했지만, 곤혹스럽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대법원 관계자는 “국회 쪽에서 ‘대법원장에게 특검 추천권을 주려고 하는데, 그쪽 의견은 어떠냐’는 질의를 해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입법부에서 그렇게 결정한다면 따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재야 법조계의 견해 또한 ‘매우 부적절하다’는 쪽으로 모아진다. 평소 성향의 스펙트럼과 상관 없이 이번에는 다수의 반응이 같았다. 김주덕 변호사는 “정치적 사건을 다루는 특검 임명과정에 사법부를 끌어들인 것은 넌센스”라고 잘라 말했다. 김 변호사는 “정치적 사건에 독립성이 보장돼야 할 사법부를 끌어들이고, 행정권의 일부인 특검 임명 과정에 사법부의 수장이 관여하도록 한 것은 한마디로 넌센스”라며 “특검을 추천한 사법부가 그 특검이 수사한 사건을 다시 재판하도록 하는 것은 재판의 중립성을 해치는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야 법조계 “한마디로 넌센스”…대법원도 “여러모로 바람직하지 않다”

    백승헌 변호사도 “일부에서 주장하는 삼권분립 위배는 아닌 것 같다”면서도 “추천기관과 재판기관이 같아지는 문제를 (국회가) 제대로 검토한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민변의 다른 변호사도 “특별검사도 검사인데, 행정권의 일부를 맡게 될 검사를 사법부 수장인 대법원장이 추천하도록 하는 방안은 적절하지 않다”면서 “그러지 않아야 하겠지만, 실제로 특검 사건의 영장심사나 재판과정에서 판사들이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 천기흥 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그럼, 왜 대법원장에게 추천권을 주는 타협안이 나오게 됐을까. 열린우리당은 이런 문제를 몰랐을까. 여야의 협상 과정을 잘 아는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정말, 변협에는 (추천권을) 주기 싫은 것이 솔직한 우리 심정”이라며 “(비판적인) 말이 나올 것이라고 예측은 했지만, 대법원장 이외에 (변협 회장을 피해 갈) 대안이 달리 없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특검법을 6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한다는 전제 하에 타협을 모색했다는 얘기다.

    아이디어는 한나라당…완성은 우리당…합의하며 표정관리

    ‘대법원장 카드’는 여야의 대화 과정에서 우연히 나왔다고 한다. 다른 나라의 특검 사례를 놓고 얘기를 나누다, 어느 여당 의원이 “그럼 미국에서는 어떻게 추천하냐”는 질문을 던지자, 어느 한나라당 의원이 “법원에서 추천하지 않느냐”고 대답했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럼 우리도 대법원장에게 맡기자’는 식으로 타협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최초의 아이디어는 한나라당쪽에서 제공했지만, 그걸 완성한 것은 열린우리당이라는 설명이다.

    그 저간에는 변협 집행부의 교체라는 사정이 깔려 있다. 올초에 임기를 마친 박재승 회장은 송두환 특검(대북송금 사건)과 김진흥 특검(노무현 대통령 측근비리 의혹사건)을 추천했다. 특히 김 특검의 경우는 열린우리당이 집권 여당이 된 다음에 추천된 케이스다. 그 때에는 열린우리당 안의 어느 누구도 변협을 ‘이익단체’나 ‘임의단체’라고 폄하하지 않았다. 자신들과 ‘코드’가 맞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기흥 현 회장은 여러 모로 보수 색채가 뚜렷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열린우리당으로서는 천 회장이 거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임태희 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 이상열 민주당 정책위의장,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단수석부대표, 김낙성 자민련 원내총무(왼쪽 끝부터)가 지난 4월 철도청의 러시아 유전개발사업 의혹 조사를 위한 특별검사설치법안을 함께 제출하는 모습.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열린우리당, 결국 제 발목 잡게 될 것”

    실제로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이 ‘변협 추천’안을 내놓았을 때 “편파성이 우려된다”면서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변협은 본질적으로 이익단체이며, 임의단체에 불과하다”는 표현도 주저하지 않았다. 한편으론, 과거 ‘국민의 정부’ 때 이용호 사건을 맡은 차정일 특검 때문에 곤욕을 치렀던 ‘특검의 추억’이 이번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 당시 변협 회장은 현재의 천 회장처럼 보수 색채가 강한 정재헌씨가 맡고 있었다.

    이번 타협안의 한 축인 한나라당은, 이 사건으로 더 이상 얻을 것이 많지 않다는 계산을 한 것 같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솔직히, 특검을 한다고 해서 검찰 수사결과를 뒤집는 무엇이 과연 나오겠느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그러나 특검법안을 ‘치고 나갔던’ 한나라당으로서는, 스스로 먼저 거둬들일 수도 없는 처지에 있었다. 그러던 차에 열린우리당이 ‘미국식 추천’이라는 카드를 내놓자 곧장 합의하게 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와 관련해 민변의 한 중견 변호사는 “정략적 판단에 치우친 열린우리당이 몹시 나쁜 선례를 남겼고, 장기적으로는 스스로 제 발목을 잡게 될 것”며 “훗날 정권이 교체돼 여당이 이번과 같은 방식으로 특검을 임명하면 그땐 뭐라고 할 건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한겨레> 정치부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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