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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시'자도 모르는 '한국판' 시장주의자

아주 좋은 글

시장의 '시'자도 모르는 것들이 경제원론 1장 수요-공급만 떠들고 있다.

1장 벗어나면 바로 빨갱이

 

 

시장의 '시'자도 모르는 '한국판' 시장주의자
[주장] 높은 토지 보유세는 자유주의의 상식...한국 시장주의자만 거부·반발
텍스트만보기   전강수(gsjun) 기자   
▲ 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 시카고대 교수(왼쪽)와 로버트 솔로우 MIT 교수
"세금 가운데 가장 덜 나쁜 것('모든 세금은 나쁘다'는 전제가 깔려 있음: 인용자)은 오래 전 헨리 조지가 주장한 바, 미개량 토지의 가치에 부과되는 재산세이다."

"토지 사용자가 단 한 번 값을 치르고 무한정한 기간의 권리를 획득하도록 허용해서는 안된다. 효율성을 위해, 적절한 세입을 위해, 그리고 정의를 위해, 모든 토지 사용자는 다른 사람들이 그 땅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혼자 점유한 토지의 현행 임대 가치만큼의 값을 지역 정부에 매년 납부하도록 해야 한다."


누구의 말일까?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이와 유사한 말을 하면서 토지의 공공성을 주장하고 토지보유세를 강화하자고 제안하면, 보수 언론들이나 자칭 ‘시장주의자’(?)들은 당장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느니 자본주의 질서를 부인하는 주장이라느니 하면서 들고 일어날 것 같다.

그런데 앞의 말은 밀튼 프리드먼의 말이고, 뒤의 말은 로버트 솔로우의 말이다. 두 사람 모두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특히 프리드먼은 정부의 개입을 극도로 싫어하는 시카고 학파의 거두이다. 이들의 주장을 종합하면, 토지가치에 부과되는 보유세가 가장 나은 세금이며 이를 제대로 부과하는 것은 효율성과 정의, 그리고 세입 확보 등의 측면에서 바람직하다는 말이 된다.

고전파 경제학자 "토지가치 증가분 사회에 귀속돼야 한다" 강조

좀더 거슬러 올라가서,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의 이야기를 보더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 근대 경제학의 창시자 아담 스미스(왼쪽)와 영국의 자유주의 경제학자 존 스튜어트 밀.
"지대(rent)는 많은 경우 그 소유자가 관심이나 주의를 전혀 기울이지 않고도 향유할 수 있는 수입(즉 불로소득: 인용자)이다. 따라서 지대는 그 위에 부과되는 특수한 조세를 가장 잘 감당할 수 있다."

시장주의의 원조, 아담 스미스의 말이다. 분명히 토지 불로소득에 과세하는 것을 지지하고 있다. 고전학파 경제학을 집대성한 것으로 평가받는 존 스튜어트 밀은 스미스보다 더 적극적이다.

"사유재산의 신성함을 이야기하지만 이러한 신성함이 토지재산권에도 같은 정도로 해당되는 것이 아님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토지는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다. 토지는 모든 생물이 생래적(生來的)으로 물려받은 유산이다."

"지주들은 일하지 않고도,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도, 혹은 절약하지 않고도 잠자는 가운데도 더 부유해진다. 전 사회의 노력으로부터 발생하는 토지가치의 증가분은 사회에 귀속되어야 하며 소유권을 갖고 있는 개인에게 귀속되어서는 안된다."


토지는 천부 자원이라서 일반 생산물에 적용되는 사유재산의 원칙을 적용하기 곤란하고, 토지 불로소득은 공적으로 환수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당대 세계적 거부 카네기·포드도 "모든 땅에 높은 세금 매겨야 한다" 주장

그런데 경제학자들만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다.

▲ 미국의 거부 앤드류 카네기와 헨리 포드
"자본가가 수고하지 않고 가장 쉽게 자기 재산을 증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자기 돈을 모두 털어서라도 땅을 사 놓은 뒤에, 땅 부족에 시달리는 사회가 어떤 값을 치르고서라도 땅을 사려 덤벼드는 그 시점까지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헨리 조지가 지적한 대로 놀리는 모든 땅에 높은 세금을 매겨야 한다. 그래야 땅 소유자들이 땅을 가지고 생산적인 일을 하기 시작할 것이다."


앞의 이야기는 미국의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의 말이고, 뒤의 이야기는 자동차왕 헨리 포드의 말이다. 생산적인 투자를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가라면 이들처럼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 밖에 로크, 루소, 스펜서, 러셀 등의 뛰어난 철학자들과 링컨과 처칠, 손문 등의 위대한 정치인들도 이와 비슷한 신념을 토로한 적이 있다.

토지는 천부 자원으로서 다른 생산물과는 달리 공공성을 가진다는 것과, 토지 불로소득은 공적으로 환수되어야 한다는 것, 이는 자유주의 계열의 지성사에서 상식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이 상식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자유주의자, 시장주의자를 자처하고 있으니 문제가 심각하다.

부동산 정책의 방향을 둘러싸고 '세금 강화를 통해 투기를 잡으려는 것은 잘못'이라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다. 이 말이 작금의 투기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세금 강화와 함께 다른 효과적인 수단이 동원될 필요가 있다는 의미라면, 얼마든지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토지보유세 강화를 통한 불로소득의 차단이라는 정책 목표가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것이라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부동산 투기는 부동산을 통해 정상적인 수익 이상의 투기적 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있을 때 일어난다. 따라서 부동산 불로소득을 근원적으로 차단하지 않으면 어떤 방법으로도 투기를 막을 수 없다.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하는 데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다. 토지보유세를 강화하고 개발이익 환수장치를 정비·강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보유세는 너무 미미하고 개발이익 환수장치는 사실상 전무하다.

지난 5월 정부는 '5·4대책'을 통해 보유세 강화의 장기 로드맵을 발표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볼 때 그것은 시장참가자들에게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 임기 중에 보유세 실효세율을 2배 수준으로 올리고 2017년까지 선진국 수준인 1%로 끌어 올리겠다는 내용이 투기심리를 잠재우기에 미흡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작년 연말의 보유세 강화 정책의 결정적 후퇴와 최근 여권의 분열 등이 '5·4대책'의 법제화 내지 정책화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심어주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정부, 종합부동산세·보유세 후퇴 반성에서부터 출발하라

어려울 때는 지난 잘못을 반성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 옳다. 작년 연말 종합부동산세법 제정시 과세 기준을 너무 높여 잡아서(주택의 경우 국세청 기준 시가 9억원 이상) 과세 대상을 축소시켰던 일, 세부담의 급증을 염려해서 보유세 세율을 낮추고 세부담 상한제를 도입했던 일 등은 모두 바로 잡아야 한다. 그리고 ‘5.4대책’의 일정을 앞당기고 장기 목표도 더 높게 잡아야 한다. 보유세 강화가 진행되는 동안 과도기적으로 부동산 불로소득의 환수를 담당할 개발이익 환수제도의 정비․강화도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시가 상응 과세를 위해 성질이 전혀 다른 토지와 건물을 통합평가․통합과세하기로 한 것도 이번 기회에 바로 잡아야 한다. 보유세 강화는 토지세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보유세를 획기적으로 강화하지 않고서는 투기를 잡을 수 없다고 말하면, 마치 서민들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정책을 제안하는 것처럼 호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입을 막기 위해서라도 일정 가액 이하(시가 기준으로 1세대 2억 내지 3억 정도)의 부동산 소유자들은 보유세를 아예 면제시켜 주는 것이 좋겠다. 사실 이것은 손문이 말하는 평균지권(平均地權)의 원리(‘모든 사람은 평등한 토지권을 갖는다’)를 인정하는 의미를 갖는다.

1세대 1주택, 2주택 등 보유 주택 수를 기준으로 과세 방법을 달리하자고 주장하는 견해들이 많은데 이는 잘못이다. 1주택이라도 서울 강남의 1주택과 지방의 1주택은 그 가액 면에서 엄청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부동산 정책의 정답은 있다. 문제는 참여정부가 국민들의 동의를 얻어서 흔들림 없이 그 정답을 밀고 나갈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지금 언론사 안에, 정부 안에, 야당과 여당 안에 이 정답에 재를 뿌릴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즐비해 있으니, 어찌하면 좋은가?
2005-06-26 10:30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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