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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소박맞은 ‘연정’…진보학자들은 눈길?

 

 

한나라 소박맞은 ‘연정’…진보학자들은 눈길?
[분석] 유시민 연정론 옹호에 대한 진보학자들 논리대결
최장집, 김동춘, 손호철, 강준만 등…정치개혁 논쟁 피할 수 없어
박종찬 기자
▲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7일 오후 청와대에서 대연정 문제와 민생경제 등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만나,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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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다른 의도를 가진 정치적 알리바이일 가능성이 크다.”(최장집) “지역주의는 정치적 목표를 이루는데 걸림돌일 뿐이다. 연정 제안은 목표와 수단이 전치됐다.”(김동춘) “연정보다는 차라리 합당을 하는 것이 낫다.”(손호철) “노 정권의 핵심부를 이루고 있는 영남 민주화 세력의 소외감과 한이 무서울 정도로 삼각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강준만)

대표적 진보·개혁성향의 학자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론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노 대통령은 지난 7월초 연정과 관련한 말을 처음 꺼낸 뒤 “권력을 통째로 내놓겠다”거나 “대통령직을 내놓을 수도 있다”는 등 발언의 수위를 점차 높여왔다. 노 정권에 애정과 지지(비판적 지지도 포함)를 보냈던 개혁·진보성향 지식인들은 엄청난 충격속에서도 발언을 자제하고 지켜보는 분위기였다. 더러는 언급할 가치를 못 느끼거나, 할말을 잃어거나, 대통령의 정확한 의도를 몰라 고개만 갸웃거렸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박근혜 대표와 단독회담을 갖는 등 연정과 관련한 정치적 행보를 본격화하려는 움직임과 함께 진보 학자들의 연정비판도 줄을 잇고 있다. 그들의 연정비판의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 그들은 왜 연정비판에 나섰나?

논쟁의 1라운드, 최장집-유시민




연정론 비판의 포문은 대표적인 재야 정치학자인 최장집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장(정치외교학과 교수)이 열었다. 최 교수는 2일 출간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후마니타스) 개정판 후기에서 지역구도 극복 연정론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최 교수는 “지역갈등 극복을 최우선 의제로 삼고 선거제도를 바꾸게 된다면, 기존 거대정당들은 규모의 잇점을 나눠 갖게 되고 보수독점적 양당체제는 강화되며, 약화되고 있는 지역갈등구조를 다시 불러들이면서, 보다 중요한 민주적 제도개혁의 가능성은 사전에 봉쇄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한국정치가 갖고 있는 문제의 궁극적 원인을 지역주의라고 말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집권정부이기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태도는, 현실로 존재하는 사회갈등과 균열요인에 제대로 대면하지 않으려는 것”이라며 “뭔가 다른 의도를 가진 정치적 알리바이일 가능성이 크다”고 비판했다.

최 교수에 이어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가 연정론 비판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김 교수는 4일 신진보연대 출범 기념강연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지역주의 극복이 트레이드마크인 것 같다”며 “정치의 최종 목표는 지역주의 극복이 아니라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지역주의는 정치의 최종목표를 이루는 데 걸림돌일 뿐”이라며 “연정론은 목표와 수단이 전치된 것”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와 김 교수의 연정론 비판에 ‘연정론의 전도사’를 자임한 유시민 의원이 반박에 나섰다. 유 의원은 “정당체제의 이념적 협애성이 지역주의의 위력을 키운 것이 아니라 지역주의적 정당구도와 거대정당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선거제도가 한국 정당체제를 보수일색의 협애한 공간에 묶어둔 원인이요 제도적 환경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하다”며 “최교수의 주장은 원인을 그대로 둔 채, 어떤 알 수 없는 신묘한 방법으로 결과를 개선함으로써 원인을 없애라고 하는 도착된 논리가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라고 반박했다.

유 의원은 연정 비판론자들을 겨낭해 “당신의 확고부동해 보이는 그 논리도 알고 보면 분열이라는 질병의 한 증상에 불과할 수 있다”고 일갈했다. 이처럼, 최 교수와 김 교수의 연정론 비판과 유시민 의원의 반론은 그 동안 대통령의 ‘입에서 시작해 입에서 끝난’ 연정론이 사회적 의제화하는 계기였다.

연정론에 대한 정서적 반발…정혜신, 김어준, 김두식의 감성화법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씨, 김어준씨, 김두식 변호사 등은 참여정부의 지지자들임을 스스로 밝히고 연정에 대한 정서적 반감을 토로한다.

정씨는 <한겨레> 칼럼(‘정신분석학으로 본 노 대통령’ 8월30일치)에서 “노대통령의 자기인식은 대통령이 되기 전 정치인 노무현의 ‘선구자적 모습’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지만 지금 국민들의 눈에 비친 노대통령은 선구자가 아닌 계몽군주에 가깝다”며 ‘민심과 동떨어진 대통령’의 연정 주장을 비판했다. 정씨는 5일자 <오마이뉴스> 칼럼(천하의 유시민을 어찌 당하랴마는)에서 ‘연정론의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는 유시민 의원을 향해 “‘지적 권위주의’가 지나치다”는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김어준씨는 ‘연정이 정치인생을 최종 마감하는 마지막 봉사’라고 말한 대통령을 향해 “누구 맘대로. 대통령이 자기 껀가. 노무현 끝까지 우려먹고 벗겨 먹어야겠다”고 일침을 놓는다.

“노무현이 대통령 된 사연 딴 거 아니다. 시스템의 관성과 관습 내에서만, 미국의 허락 범주 내에서만 사고하는 사람들은 못하는 거, 그거 해 달란 거였다. 임기가 어쩌고 2선이 저쩌고, 턱도 없다. 노무현 아직 할 일 다 안 했다. 나, 노무현 같은 스타일의 대통령 다시 만나긴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불가능하다는 거 안다. 그래서 난, 씨바 내 표 값 다 받아내야겠다. 노무현 끝까지 우려먹고 벗겨 먹어야겠다.”(<한겨레> 김어준의 세설 9월4일자)

김두식 변호사는 7일자 <한겨레> 칼럼 ‘29%를 잊지 마세요’에서 “‘29% 지지 대통령’의 한탄을 ‘듣는 29%’의 가슴, 참 쓰리더라”며 “알 수 없는 불편함이 가시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김 변호사는 “대통령께는 아직 절반의 임기, 방향만 제대로 잡으면 언제든 돌아올 지지층과 동지들, 그리고 지난 2년 반의 무시 못할 경험이 남아 있다”며 “참여정부가 잘 해주기만 기대하고, 기도하며 기다려온 29%의 존재를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정혜신, 김어준, 김두식의 연정과 대통령 비판은 매서운 논리보다 궤도를 이탈한 ‘개혁기관차’에 대한 지지자들의 안타까운 감정이 절절하다.

손호철 “차라리 합당하라. 이번 기회에 초지역적 계급연합 만들자”

서강대 손호철 교수의 연정론 비판은 “차라리 한나라당과 합당하라”는 극단적인 주장으로 나아간다. 손 교수는 그 동안에도 노무현 정부의 개혁 후퇴를 강하게 비판하고, 양극화 문제 해결 등을 참여정부 개혁의 화두로 제시했었다. 한나라당과 ‘보수 대연정’보다는 민주노동당 등과 ‘개혁 소연정’을 주창했다.

손 교수는 6일 <프레시안> 기고글에서 “대연정을 할 경우 가뜩이나 별로 없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이념적 차이가 더욱 없어져 차별성이 지역밖에 남지 않는 방향으로 나가게 될 것”이라며 “차라리 합당을 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했다.

“어쩡쩡한 연정보다는 합당을 통해 본격적인 보수 대 진보의 정치구도로 나아감으로써 지금처럼 부자건 가난뱅이건, 같은 지역이면 무조건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초계급적 지역연합’을 호남이건, 영남이건 부자와 보수세력은 보수정당을, 노동자와 진보세력은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초지역적 계급연합’으로 나가야 한다. 그것이 지역주의를 깨는 비결이다.”

강준만의 ‘7대 의문’에 누가 답할 것인가?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연정론에 대한 7개의 의문을 제기하며 “연정론 주창자·지지자들이 논리를 정교하게 가다듬거나 답할 자신이 없으면 하루 빨리 연정론을 포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한국일보> 칼럼을 통해 연정론에 대해 7가지 질문을 던졌다.

“첫째, 노무현 대통령이 선포한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은 어떻게 되는가? 둘째, 국가보안법은 박물관이 아닌 할인점으로 가는가? 셋째, (4대 개혁입법에 목숨을 걸겠다던 유시민, 이해찬, 천정배 등) 여당 정치인들의 신뢰 추락은 어찌할 것인가? 넷째, 아직도 박정희 모델이 필요한가? 물리적 폭력의 유무라는 차이만 있을 뿐 스스로 ‘선지자’ 노릇을 한다는 점에선 박 전 대통령이나 노 대통령이나 다를 게 없다. 다섯째, 국민은 겨울·붐엔 위대하지만, 여름·가을엔 멍청한가? 여섯째, 호남과 한나라당의 화해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 일곱째, 한나라당의 ‘대통령 무시’가 연정을 하면 달라지는가?”

강 교수에게 연정론의 숨은 의도로 지목되는 선거제도 개편, 개헌론 등은 논의의 대상이 아닌듯 하다. 다만, 당장 연정이 성립하기 위해 한나라당과 개별정책에서 발생할 충돌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아직까지 대통령이 연정론과 관련해 “권력을 통째로 내놓겠다”고 하는 등의 ‘깜짝’ 선언은 있었으나 어떻게 연정을 추진할 것인가라는 방법론은 밝히지 않았다. 강 교수는 그것을 묻고 있다. 누가, 어떤 논리로 강 교수에 대답할 것인가?

선거제도·개헌론 정치개혁 논쟁으로 이어지나, 가라앉나?

연정 비판에 합류한 강준만 교수는 <한국일보> 칼럼에서 연정론 논쟁은 정치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정치발전에 기여할 수도 있다고 전제했다. 진보적 학자들이 그 동안 연정이라는 실현가능성이 희박한 정치적 논제에 무시로 일관했던 태도를 바꾼 원인이 될 수도 있는 언급이다. 즉 연정론을 연결고리로 지역주의 극복이나 선거제도 개편, 나아가 개헌론으로 이어지는 정치개혁 논쟁을 외면할 수 없었던 탓이다.

한나라당을 향한 열린우리당의 ‘연정 제의’는 7일 열린 노대통령-박근혜 대표와의 회담에서 일단 정치적 무대에서는 ‘사망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연정’이 아니라 ‘지역구도 극복을 최우선과제로 삼은 정치개혁론’은 정치권을 넘어 학계와 시민사회 일반으로 논쟁의 지평을 넓혀나가고 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박종찬 기자 pj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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