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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같다가도 때로는 관대한 재판

 

 

추상같다가도 때로는 관대한 재판
창원지법 문형배 부장판사 판결, 왜 주목받나
텍스트만보기   윤성효(cjnews) 기자   
▲ 창원지방법원 전경.
ⓒ2005 오마이뉴스 윤성효

'명쾌하고 단호하고 추상같다가도 때로는 관대한 재판.'

이는 창원지법 제3형사부 문형배 부장판사의 판결을 두고 하는 말이다. 문 부장판사는 부정부패사범이나 선거사범에 대해서는 추상같은 판결을 내리지만, 딱한 사정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관대한 선고를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들어 문 부장판사의 판결이 자주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불구속 재판을 받던 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장을 법정구속시키는가 하면, 생계형 범죄이거나 단순 실수로 보이는 사건에 대해서는 선처해 주기 때문이다. 또 그는 판결 때 고사성어나 고전의 문구를 인용해 관심을 끌기도 한다. 최근 그의 판결을 다시 뒤돌아보자.

부정부패 불구속 기소자들 법정구속시켜 단호함 보여

"진보적 성향의 대법관도 나와야 한다"
문형배 부장판사의 '사법개혁론'

문형배 부장판사는 2003년 부산지법 판사로 있으면서 '사법개혁'을 주창해 관심을 모았다. 그해 1월 대법관 임명과 관련해 사법개혁 논란이 일어나자 그는 부산지법 판사로 있으면서 '사법개혁 논의에 즈음하여'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당시 글에서 그는 "이제는 대법관에 진보적 성향의 대법관도 진출해야 할 때"라며 "대법관 인사는 그 정치적 역할을 감안하여 지역별, 기수별, 직역별 안배가 이루어져 왔으나 이제는 성향별 안배도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창원지역 민변 소속의 한 변호사는 "최근 몇 차례 부정부패사건에 대해 법정구속 선고가 내려진 뒤, 변호사 사이에서도 의외라는 반응이 나왔다"면서 "일부에서는 소위 '사회적으로 힘있고 가진자들'에 대해서는 단호함을 보여주고, 대신 약한 자들에 대해서는 너그러움을 보여주는 판결을 한다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법정구속... 8월 31일 창원지법 315호 법정. 업자로부터 뇌물 1500만원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던 김종규 창녕군수에 대한 선고가 있었다. 내심 무죄 아니면 집행유예 정도를 기대했던 김 군수 측에 충격적인 결정이 내려졌다. 징역 2년6월의 중형이 선고되고 법정구속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6월 29일 같은 법정.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배영우 창원시의회 의장이 1년전 의장단 선거 때 부인을 통해 동료의원한테 돈을 건넨 혐의로 불구속 재판을 받아왔다. 배 의장측은 부인이 준 돈이기에 모른다거나 빌려준 돈 등의 주장을 폈다. 그런데 문 부장판사는 그에게 징역 1년에다 법정구속을 선고했다. 문 부장판사는 '선거 전날 준 돈이 뇌물 아니고 뭐냐'고 말했다.

8월 3일, 선거법 위반에다 1년 넘게 도피 중인 김정부 한나라당 의원 부인에게도 재판부는 단호함을 보였다. 문 부장판사는 김 의원 부인에 대해 당선무효형인 징역 2년을 선고했는데, 덧붙인 말도 의미가 있었다.

"이 자리에 피고인에게 재판부의 주문을 전달해줄 사람이 있을 것으로 안다. 피고인은 남편인 김정부 의원의 임기를 다 채우기 위해 불출석하고 있는 것이며, 헌법소원과 위헌신청 등을 통해 재판을 지연시키고 있다. 이것이 진실이 아니라면 피고인은 법정에 출석해서 해명해야 할 것이다."

김종규 군수와 배영우 의장은 모두 항소심 재판부인 부산고법에 낸 보석이 받아들여져 구속된 지 한 달께 풀려났다. 김정부 의원 부인은 도피 1년 5개월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곧 항소심 재판을 앞두고 있다.

"피고인은 우리 사회의 인재, 나가서 갚아라"

▲관대함 ... 지난 8월 말 문형배 부장판사는 중국음식점 배달원으로 근무하다 지난 3월 오토바이 사고를 내 피해자를 다치게 한 정아무개씨(42)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상대방의 피해 회복에 전혀 이바지한 바가 없는 만큼 본인과 본인의 양심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면서 "160시간 피해자의 의사에 따라 피해자를 위해 개호·업무 지원 활동을 하라"고 명령했다.

지난 9월 7일 무면허 음주운전으로 1심에서 징역 4월을 선고받았던 최아무개(24)씨에 대해 벌금형으로 풀어주면서 문 부장판사는 '갈치 가운데 토막론'을 들었다. "갈치가 긴 것 같지만 머리 떼어내고 꼬리 잘라내면 얼마 남지 않는다. 가운데 토막은 아주 짧은데 그조차 내장을 덜어내고 나면 정말 남는 것이 없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얼핏 보면 길다 싶지만 이래저래 빼버리면 갈치 가운데 토막보다 더하다."

흔히 갈치 가운데 토막에 비유되는 인생은 18~36살까지다. 24살인 최씨는 갈치 가운데 토막이라 할 수 있는 인생은 12년밖에 남아 있지 않는 셈이다. 문 부장판사는 최씨에 대해 새롭게 시작하라는 충고를 하면서 관대한 처분을 내렸던 것이다.

최근 문 부장판사는 화폐위조 대학생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해 눈길을 끌었다. 화폐위조범은 징역 5년 이상이거나 사형·무기징역을 선고하는데, 재판부는 이 대학생에 대해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3년)를 선고했다. 문 부장판사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학생이 경제적으로 곤궁해서 범행을 저질렀고, ㄱ대학 전기공학과에 수석 입학했고,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취업을 하려 했지만 청년실업 때문에 잘 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은 우리 사회의 인재다. 이제는 갚아야 할 차례다. 그래서 석방한다."

<목민심서>, 3·15의거 정신 등 언급하기도

▲인용문구... 문형배 부장판사는 고사성어나 고전의 특정 문장을 끌어오기도 하고, 역사적 사실을 언급하면서 판결하기도 한다. 김종규 창녕군수에 대해 선고하면서 문 부장판사는 <목민심서> 율기(律己)편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염자(廉者) 목지본무(牧之本務) 만선지원(萬善之源) 제덕지근(諸德之根)'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청렴은 목민관의 근본 의무로 오만가지 착함의 원천이며 모든 덕행의 뿌리라는 뜻이다. 군수가 업무와 관련해 뇌물을 받는다면 부하 직원도 받게 된다. 부정부패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하게 처벌되어야 한다."

문 부장판사는 김정부 의원 부인 선고 때는 '마산 3·15 의거'를 강조했다. "민주성지의 전통을 이어가려는 마산에서 이번 사건이 터져 참으로 유감이다. 마산의거 당시 고교 신입생으로 목숨을 잃은 김주열과 당시 고교생으로 뇌성마비를 무릅쓰고 시위에 참가했던 시인 이선관도 있다. 이번 사건은 '금권선거의 완결판'이다"고.
2005-10-03 15:46
ⓒ 2005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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