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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동 화백 "청계천 도시형 개천, 자연이 없다"

 

 

박재동 화백 "청계천 도시형 개천, 자연이 없다"
양재천 너구리 사랑 작은 음악회 열어... "사람과 동물의 교감 경이로운 일"
텍스트만보기   나영준(nsdream) 기자   
▲ 열창을 해 준 듀엣, '데자부'
ⓒ2005 나영준
"너구리 한 마리 몰고 가세요."

귀에 익숙한 문구지만 어디까지나 광고 속 이야기다. 그러나 서울 양재천 부근 시민들에겐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저녁 무렵 산책을 나와 걷고 있노라면 먹이를 달라고 조르는 눈빛의 너구리 가족들과 종종 마주치기 때문이다.

7일 저녁 6시 양재천 수변무대 '너구리 사랑 작은 음악회' 현장. 낯익은 얼굴의 중년신사가 부드러운 음악에 맞추어 몸을 흔들고 있었다. 다름 아닌 박재동(53) 화백이었다. 그러나 이날만큼은 만화가가 아닌 너구리 지킴이로서 사람들에게 다가섰다.

이날 행사는 박 화백이 사회를 맡고 남녀혼성 듀오 '데자부'와 기타리스트 '고무밴드', 가수 신용택, 이성원씨, 가야금 연주가 이예랑씨 등이 힘을 보탰다. 또 공연 중간 중간 친화경적인 단편 애니메이션이 상영됐다.

우리 삶과 자연을 돌아보는 작은 축제

▲ 재미있고 푸근한 입담으로 지역주민을 즐겁게 해 준 박재동 화백.
ⓒ2005 나영준
"제가 사무실이 이 근처거든요. 저녁 먹고 산책을 하는데 너구리들이 나타나더라고요. 이 녀석들이 먹이를 주고 하다 보니 매일 나타나는데 참 귀엽더군요. 그래서 사무실 식구들이 사진을 찍어 여러 사람과 나누게 된 게 계기가 됐습니다."

마침 그 사진을 보게 된 기타리스트 '고무밴드'가 너구리 지키기 콘서트를 열자고 제의해왔고 소식을 들은 사람들 중 평소 환경과 자연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너도나도 와 주었다며 박 화백은 고마움을 전했다.

- 축제의 취지는.
"순수하게 너구리가 예쁘고 양재천을 사랑하는 작은 마음에서 출발했습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작은 축제라고나 할까요. 이런 기회를 통해 자연, 환경, 자기가 사는 곳 등 우리 스스로의 삶을 소중하게 돌아보는 자리가 되면 바랄 나위가 없겠지요."

박 화백은 도시에 사는 야생동물들에게 먹이를 줄 것인지, 주지 말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시기가 됐다고 진단했다. 단순히 한 쪽 주장이 일방적으로 옳다고 볼 수 없다고 한다.

"다 일리가 있어요. 먹이를 주지 않고 스스로 힘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 원래는 바람직하겠지요. 하지만 이곳에서 먹이를 안 주다보면 얘들이(너구리) 민가로 가서 쓰레기통을 뒤지다가 개한테 물리기도 하고 길을 건너다 교통사고가 나서 처참하게 죽음을 당하기도 하지요. 그래서 어느 한 쪽이 무조건 '맞다'가 아니라 생각하는 논의의 장을 열어 보자는 거지요."

- 서양의 경우 먹이를 주지 않는 것이 원칙인 곳이 많은데.
"그것도 한번 생각을 해 봐야 해요. 그건 그 사람들의 생각이고, 그렇다면 개나 고양이도 원래 자리로 되돌려 놓아야겠지요. 동물과 사람이 먹이로 친해지고 경계를 허물 수가 있거든요. 그렇게 서로 교감한다는 건 정말 경이로운 일이죠."

"청계천은 도시형 개천일 뿐, 자연이 없다"

▲ 안내판에 그려진 귀여운 너구리들.
ⓒ2005 나영준
그는 그런 관심 때문에 극장용 애니메이션 <오돌또기> 제작과 학교 강의 등으로 바쁘지만 자리를 준비하게 되었다고 한다. 대화를 나누다보니 이번 행사도 인간과 환경에 천착하던 그의 작품세계와 삶의 궤적에서 벗어나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문득 얼마 전 복원한 청계천에 대한 그의 평가가 궁금해졌다.

- 복원한 청계천에 대해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자연과의 조화에 대한 의견은.
"전체적으로 물길을 낸 것에 대해선 좋다고 봅니다. 그러나 예전 문화를 제대로 복원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중요한 것은 강이라는 것은 울퉁불퉁해야 물도 천천히 흐르고 고기도 숨을 데가 있거든요. 그걸 길을 내듯이 똑바로 해 놓았으니…. 그게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에요, 똑바로 하는 게 아름다운 것이라는 것. 물고기가 살 수가 없잖아요."

박 화백은 양재천도 근래 손을 본 곳은 도로를 내듯 일자로 뚫어버려 물고기가 못 사는 것은 물론 빠른 물살에 사고위험까지 생겼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어 "(청계천은) 시각적으로도 단조로울 뿐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도시형 개천을 보고 고향 정취를 찾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잠시 뒤 앞으론 나간 박 화백은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사는 왜가리, 이름 없는 들풀, 딱정벌레, 메뚜기, 여러 물고기들 모두 반갑습니다. 양재천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구름 속에 가려진 달과 별을 느끼는 이런 날이 있어 기쁩니다. 그럼 '너구리 사랑 작은 음악회'를 시작하겠습니다."

비가 그친 후 다소 쌀쌀한 날씨, 스무 명 남짓한 이들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그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온기를 찾아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곧 이어 많은 이들이 동화 같은 그의 이야기에 이끌려 발길을 멈췄다.

"얼마 전 밥먹고 산책을 나왔을 때였습니다. 누군가 '앗, 저것봐라!'고 하더군요. 너구리였습니다. 꼬마 너구리가 살짝 숲에서 나왔다가 싹 사라지더군요. 요 꼬마 녀석들이 처음엔 세 명이었다가 먹이를 주니까 네 마리 다섯 마리, 나중엔 열두 마리까지 늘어나더군요. 한 가족이 모두 우리를 반겨주었습니다. 사진을 찍어도 도망을 안 가더군요. 얘들이 그새 많이 컸습니다. 이 녀석이 이젠 중학생쯤 되겠군요. 참, 초등학생도 있답니다."

그렇게 지역주민 모두 너구리 가족 이야기를 통해 천일야화의 꿈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어 멋진 노래가 울려 퍼지고 통기타와 가야금의 아름다운 선율이 물을 타고 흘렀다. 공기는 맑았고 자리에 모인 이들은 천천히 가을밤의 향기에 취해 가고 있었다.

어디선가 그가 사랑하는 너구리 가족이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이 재미난 구경거리를 바라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 쌀쌀한 날씨에도 많은 지역주민이 함께 했다.
ⓒ2005 나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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