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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무죄 무전유죄’ 지강헌 사건, 17년만의 또 다른 증언

왜 스콜피온스의 ’홀리데이'가 아니라 팝 그룹 비지스의 ‘홀리데이'인지 제대로 알았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지강헌 사건, 17년만의 또 다른 증언
이성재 최민수 주연의 영화 ‘홀리데이’…픽션과 논픽션 분석
입력 :2006-01-11 10:28   조은영 (helloey@dailyseop.com)기자
▲ 영화 <홀리데이> ⓒ현진 시네마 

1988년 10월, 국민 모두가 88서울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로 들떠 있을 무렵, 교도소로 이송 중이던 호송버스에서 12명의 재소자들이 치밀한 사전 계획 하에 교도관들을 급습, 총과 실탄을 빼앗아 탈출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한다.

주범인 지강헌을 포함한 6명의 탈주범은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비상계엄을 방불케 하는 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8박 9일 동안 숨 막히는 탈주극을 벌인다. 이들은 도주 도중 원정강도를 비롯, 다섯 차례에 걸쳐 가정집에 침입, 인질극을 벌이는 등 서울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이들은 인질들에게 존댓말을 쓰고 손끝하나 건드리지 않는 정중한 태도로 호감을 사 스톡홀름 증후군(인질사건에서 인질로 잡힌 사람들이 인질범들에게 정신적으로 동화되어 오히려 자신들을 볼모로 잡은 법인들에게 호감과 지지를 나타내는 심리현상)을 유발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탈주범들은 그물 같은 경찰의 포위망을 쉽게 빠져나갈 수 있었다.

당시 사건의 인질 모두 생존, 관계자 인터뷰를 통한 팩트에 기초

‘유전무죄 무전유죄’ 지강헌 사건으로 불리는 이 비극적 탈주극은 그동안 수많은 영화사에서 앞다투어 영화화를 추진했을 정도로 매력적인 소재였다. 하지만 자료수집 과정에서 많은 장벽에 부딪히며 이 사건을 영화화 하는 것이 요원해 지기도 했다.

이 때문에 영화 ‘홀리데이’의 제작사인 현진시네마는 2년여에 걸친 준비기간 동안 주범인 지강헌의 교도소 감방 동기, 사건 담당 경찰 그리고 지강헌이 경찰에 사살되기 직전까지 전화로 인터뷰를 했던 모 일간지 기자 등 수많은 사건 관계자를 만나 직접 인터뷰를 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당시 인질이었던 사람들 모두 생존해 있어 이 사건을 영화화한 ‘홀리데이’에 많은 관심을 보였으며 10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시네마에서 열린 언론 시사회에는 당시 이강헌 일당과 함께 생활했던 인질 중 한 사람이 영화를 보고 갔다는 후문도 들렸다.

영화와 실제 사건의 다른 일곱가지 이야기

▲ 영화 <홀리데이> ⓒ현진시네마 

하나 - 6인의 빠삐용 왜 실명을 사용하지 못했나?

지강헌을 비롯해 마지막 인질극에 가담한 6인의 탈주범들과 마지막 인질이 되었던 사람들의 이름은 영화 속에서 모두 다르게 나온다. 그 이유는 영화 ‘홀리데이’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영화적 재미를 위해 일정부분 픽션을 가미해 영화를 재구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름만 다를 뿐 그들이 죄를 짓고 형을 산 것은 실제 인물을 기초로 해서 구성되었다.

둘- 교도소 부소장 김안석, 실제 인물인가?

지강혁(이성재 분) 일당을 쫓으며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악랄한 교도소 부소장 김안석은 영화의 극적 긴장감과 탈주극의 묘미를 두기 위해 가공되었다. 김안석 역을 맡은 최민수는 8Kg의 살을 빼고 금니를 해 넣으며 소름 끼칠 정도의 모습으로 등장해 탈주범들을 하나 하나 제거해 나간다.

그러나 솔직히 노력한 최민수에겐 미안하지만 팩트에 섞인 픽션인 김안석 캐릭터는 영화 전반에 녹아들지 못하고 시종일관 기름의 물처럼 느껴졌다.

셋- 홍콩으로의 밀항

지강혁과 함께 탈주에 성공한 교도소 방장 대철과 그의 오른팔 광팔이 지강혁 일당과 떨어져 홍콩으로 밀항을 시도하려다 안석이 이끄는 경찰에게 죽음을 당하는 장면은 수많은 사건관계자를 만나 인터뷰 하는 과정에서 알게 된 이야기에 기초해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해 재구성하였다.

특히 교도소에서 강혁을 괴롭히던 대철이 광팔과 함께 몰래 밀항을 결심하고 나머지 일행들이 잠든 새벽녘에 자신들의 가방을 들고 나오는데 그 속에는 이들의 작전을 눈치챈 강혁이 도박장에서 훔쳐 밀항을 할 수 있도록 넣어준 돈이 들어있다. 강혁의 따뜻한 마음을 알게 된 대철과 광팔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들의 배신에 대해 자책한다.

넷- 전직 대통령 항의 시도

탈주에 성공한 지강혁은 일당을 이끌고 연희동으로 향한다. 목표는 영화 속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하는 ‘대머리’로 지칭된 전직 대통령.

이들의 탈주 계기는 잡범인 자신들이 보호감호 때문에 17년 이상을 교도소에서 수감 당하고 있는데 전직 대통령의 친인척은 비리로 수백억을 횡령하고도 7년형을 선고 받고 이후 형 집행 정지로 풀려나온 것에 격분한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희동 근처인 북가좌동에서 마지막 인질극을 벌인 것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추측에서 픽션으로 삽입되었다.

▲ 영화 <홀리데이>의 한 장면 ⓒ현진시네마 

다섯- 지강헌 자살인가, 사살인가?

지강헌 사건의 당시 신문기사를 보면 '1명 사살, 2명 자살'이라는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온다. 당시 지강헌은 동료 탈주범들이 총으로 자살을 하자, 깨진 유리로 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하던 중 특공요원 5명이 쏜 총에 맞아 숨진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하지만 당시 관계자들의 증언들은 언론의 보도와 상반된 주장이 대두되었으며, 지강헌의 죽음에 대한 결론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여섯- 스콜피언스의 ‘홀리데이’가 아닌 비지스의 ‘홀리데이’인 까닭은?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지강헌은 시인이 꿈이었으며, 설득력 있는 말솜씨를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수차례 인질극을 벌이는 동안 정중한 태도로 인질들에게 손끝하나 대지 않았던 점, 동료 탈주범에게 자수를 권고한 것 그리고 마지막 인질이었던 고모 씨가 오히려 지강헌을 보호하려 든 것 등은 세간의 커다란 화제가 되었다.

10월 16일 북가좌동의 한 가정집에서 인질극을 벌이며 경찰과 대치하던 그는 경찰에 팝 그룹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틀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경찰이 지강헌에게 들려준 노래는 스콜피온스의 ’홀리데이'였다.

지강헌은 왜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틀어 달라고 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단 1초라도 맑은 공기를 마시며 죽고 싶다"고 절규했던 그의 말처럼 ‘홀리데이'를 들으며 단 한 순간만이라도 자유를 꿈꾸고 싶어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 때문에 영화는 지강헌의 마지막 소원이었던 비지스의 ‘홀리데이'를 원곡으로 삽입하였다.

일곱- 어떻게 거대한 조직도 아닌 일개 잡범들이 8박 9일간 잡히지 않았는가?

교도소를 탈옥한 지강헌과 일당들은 8박9일 동안 서울 시내를 활보하고 다녔다. 이들은 ‘실미도’의 부대원처럼 훈련된 사람들도 거대한 조직들의 조직원도 아닌 일개 잡범들이었다.

당시 매스컴은 지강헌 일당들을 흉악범이라고 보도했지만 지강헌 일당에 인질로 잡혔던 사람들은 그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정중한 태도로 대하며 자신들에게 손끝하나 대지 않은 점, 그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부분에 감화되었다고 한다. 또한 지강헌과 일당들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해 당시 현대판 홍길동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결국 인질로 잡힌 사람들은 경찰에 신고를 미루었고 그 결과 지강헌을 비롯한 일당들은 8박 9일간 경찰에 잡히지 않을 수 있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이야기

미니 인터뷰 - 현진씨네마 대표 이순열

▲ 영화 <홀리데이>의 출연진들이 무대인사를 하고 있다. ⓒ2006 데일리서프라이즈 조은영 기자 

-‘지강헌 사건’이 일어난지 벌써 17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왜 이 사건을 영화로 만들려고 했는가?

“어느날 우연히 이 사건의 마지막 인질이 수기 형식으로 쓴 잡지의 기사를 보게 되었다. ‘충격과 혼란의 16시간, 그들은 인간적이었다.’로 시작되는 커다란 헤드카피와 당시 인질로 잡혀 있었던 여성이 말하는 지강헌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를 읽는 순간 머리 속에 한줄기 빛이 비치는 것 같았다. 이것이야 말로 내가 기다리고 있었던 바로 그런 소재였다. 마음속으로 언젠가 반드시 영화로 만들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


-사건 이후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영화화 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는가?

“수기를 읽자마자 곧바로 공식적으로 공개된 자료들과 신문기사를 토대로 검찰에 자료를 요청했지만 외부에 공개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그래서 당시 사건의 주범격인 지강헌의 교도소 감방 동기와 사건 담당 경찰 그리고 지강헌이 죽기전까지 전화로 인터뷰를 했던 모 일간지 기자 등 사건 관계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하면서 자료를 수집했다”


-인간 ‘지강헌’에 대해, 보호감호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강헌은 당시 560만원 절도로 징역 7년에 보호감호 10년이라는 중형을 받았다. 만약 살아있다면 영화가 제작되는 올해 출소 예정이었다. 물론 지강헌이 한 행동(560만원 절도)에 대해서는 충분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560만원 절도로 17년을 감옥에서 산다는 것은 너무한 것이 아닌가 한다.

살인이나 강력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은 그 범죄 하나만으로 중형을 선고 받기 때문에 동일범죄에 대한 재발의 우려로 인한 보호감호처분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결국 절도범 등의 잡범들이 대부분 보호감호처분을 받게 된다. 헌법에서도 명시했듯이 동일범죄에 대한 이중처벌은 위법이며 나 역시도 보호감호처분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지강헌이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 피해자이기도 하다”


- 영화 <홀리데이>를 어떤 영화인가?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치며 국민들에게 할 말이 있다며 TV 생중계를 요구했던 당시 자료화면들을 보며 많은 고민을 했다. 실제 있었던 사건을 소재로 하는 만큼 사건에 충실했지만 상당부분 픽션을 가미해 영화적 재미 또한 놓치지 않았다.

단언컨대 난 결코 탈주범들을 미화하거나 영웅화하지는 않았으며 그런 인질극을 벌일 수 밖에 없었던 인간 지강헌의 내면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인간 지강헌을 통해 지금도 변하지 않는 이 세상을 담아내고 싶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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