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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장군 심술... 그래도 봄은 성큼

 

 

 

동장군 심술... 그래도 봄은 성큼
[사진] 지금 재래시장엔 봄나물이 한창입니다
텍스트만보기   이승철(seung812) 기자   
▲ 길거리의 노점상 할머니가 펼쳐놓은 달래와 냉이
ⓒ 이승철
엊그제 지난 입춘이 무색한 날씨다. 봄의 문턱이라는 입춘을 비웃기라도 하듯 많은 눈이 쏟아지더니 기온까지 뚝 떨어져 다시 몸을 움츠러들게 한다. 그래도 눈 덮인 땅속에서, 싸늘한 추위에 떨고 있는 나뭇가지에도, 봄기운은 몰래몰래 싹트고 있을 것이다.

하얀 눈이 수북하게 쌓인 7일 오후. 산에 갔다 오는 길가에는 노점상 할머니가 벌여놓은 달래와 냉이가 상큼한 봄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이거 할머니가 직접 캐오셨나요?"
"아니요. 아직 서울에는 나물 안 나와요. 가락시장에서 받아온 겁니다. 저 남도에서 올라온 거지요."

▲ 채소가게가 있는 재래시장 풍경
ⓒ 이승철
▲ 돌나물
ⓒ 이승철
입춘이 지났다고 해도 서울은 아직 동장군의 심술궂은 추위 때문에 봄 처녀가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봄은 역시 남녘 들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지금쯤 남녘들의 논두렁 밭두렁에는 쌓인 눈 속에서 수줍게 자란 냉이며 달래가 한낮의 봄 햇살을 받으며 살포시 고개를 내밀고 있을 것이다.

봄 처녀 제 오시네.
새 풀 옷을 입으셨네.
하얀 구름 너울 쓰고
진주이슬 신으셨네.
꽃다발 가슴에 안고
뉘를 찾아오시는가.

- 이은상 시, 홍난파 곡, 가곡 '봄 처녀' 앞부분


▲ 취나물
ⓒ 이승철
요즘은 시골에서도 나물 캐는 처녀는 거의 볼 수 없다고 한다. 어쩌다 눈에 띄는 풍경은 할머니나 40~50대 아주머니가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펴고 들에 나와 쑥이며 냉이를 캐는 모습이라고 한다. 그러니 노래에 나오는 봄 처녀, 나물 캐는 처녀는 정말 옛이야기가 되어 버리고 만 셈이다.

남치마 걷어 안고 나물 캐는 아가씨야
달랑 달랑 달랑개가 제아무리 귀여워도
야월삼경 손을 비는 내 정성만 하오리까
아리아리 동동 스리스리 동동
아리랑 콧노래를 들려나 주소

- 가요 '아리랑 목동' 2절


▲ 채소가게
ⓒ 이승철
▲ 하루나라고 불리는 유채 잎
ⓒ 이승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근처의 재래시장에 들렀다. 재래시장 채소가게에는 거짓말처럼 봄이 한창이었다. 봄나물의 대명사격인 냉이와 달래는 물론이고 쑥이며 돌나물, 취나물과 참나물도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푸른 잔디 풀 위로 봄바람은 불고 아지랭이 잔잔히
끼인 어떤 날 나물 캐는 처녀는 언덕으로 다니며
고운나물 찾나니 어여쁘다 그 손목
소 먹이던 목동이 손목 잡았네.
새빨개진 얼굴로 뿌리치고 가오니 그의 굳은 마음
변함없다네. 어여쁘다 그 처녀

- 현재명의 가곡 '나물 캐는 처녀'


▲ 머위, 봄동, 참나물, 쑥
ⓒ 이승철
겨우내 추위를 견디며 눈 속에 묻혀 있던 배추의 노란 속잎은 꽃처럼 예쁜 모습이고 풋마늘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마침 저녁거리를 사러 나온 주부가 머위와 풋마늘을 산다.

"머위와 풋마늘은 어떤 요리를 하시려고요?"
"머위는 살짝 데쳐서 된장에 무치면 쌉쌀한 맛이 그만이랍니다. 풋마늘은 숭숭 썰어 넣고 된장찌개를 만들려고요. 고기 조금 넣고 된장찌개 끓이면 향기가 끝내주거든요."
"오늘 저녁밥상에는 봄 향기가 가득하겠는데요?"
"호호호 정말 그러네요. 봄 향기… 우리 신랑한테 자랑해야지."

무 잎 비슷한 채소가 보여 무슨 채소냐고 물으니 '하루나'라고 한다.

"저건 연해 보이는 것이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것 같은데, 하루나라는 이름은 아무래도 일본말 냄새가 나는 것 같고, 혹시 유채 잎 아닙니까?" 하고 물어보았다. 생김새는 무 잎 같았지만 이파리의 빛깔도 연하고 맛있어 보이는 채소였다.

"맞습니다. 유채꽃이요, 제주도의 명물, 시장에서는 그냥 하루나라고 부르는데 바로 제주도에서 올라온 거랍니다.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것이 아니고요."

겉절이로 무쳐먹으면 입맛을 돋운다는 것이다. 상자에 가지런히 담겨 있는 돌나물이 흡사 콩나물처럼 보인다.

▲ 원추리
ⓒ 이승철
▲ 쑥과 달래, 그리고 콩나물
ⓒ 이승철
다른 주부 한 명은 냉이와 달래를 샀다. 냉이는 냉이 국을 끓이고 달래는 달래무침을 만들 것이라고 한다. 채소가게에는 통이 굵은 김장배추와 무도 많이 있었지만 요즘은 잘 팔리지 않고 주로 봄나물들이 인기라고 하였다.

시금치도 여려 종류가 나와 있었다. 어떤 것은 옆으로만 퍼져서 넓적한 것이 있는가 하면 위로 날씬하게 곧게 자란 것들도 있었다. 가게 아주머니는 그중의 한 가지를 가리키며 "이것이 제일 맛있는 시금치"라고 말한다. 전라남도의 남쪽 섬에서 자란 것인데 날로 먹어도 달착지근한 것이 맛있기도 하지만 몸에도 좋은 보약이라는 것이다.

빈손으로 시장에 나온 할머니 한 분은 쑥 천 원어치를 샀다. 검정 비닐봉투에 담긴 쑥이 할머니의 작은 체구만큼이나 초라해 보인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둘만의 저녁식사라서 된장을 푼 쑥국으로 입맛을 돋워볼 요량이란다. 78세의 할아버지가 요즘 통 입맛을 잃고 있어서 걱정이라는 할머니는 봄 향기 가득한 쑥국으로 할아버지의 입맛에 자극을 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 장바구니에 담긴 봄나물들
ⓒ 이승철
잠깐 생선을 사러 간다며 맡기고 간 어느 주부의 장바구니에는 달래며 냉이, 봄동과 시금치 등이 담겨 있었다. 봄눈과 추위에 밀려 저만큼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봄이 주부의 장바구니에 먼저 담겨서 우리들 식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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