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한국영화 없다면 세상은 덜 아름다울 것"

 

 

 

한국영화 없다면 세상은 덜 아름다울 것"
[해외리포트-인터뷰] 장 자크 아야공 전 프랑스 문화장관
텍스트만보기   박영신(jocaste) 기자   
▲ 프랑스 전 문화장관 장 자크 아야공.
ⓒ 안병규
지난 달 26일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스크린쿼터를 기존의 146일에서 73일로 대폭 축소할 것을 미국과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10월 파리에서 열린 제33차 유네스코(UNESCO) 총회 본회의에서 찬성 148표, 반대 2표(미국, 이스라엘)라는 회원국의 압도적인 지지로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을 위한 협약(이하 문화다양성 협약)'이 통과된 지 불과 3개월여 만의 일이다. 우리나라도 물론 찬성표를 던진 국가 중 하나였다.

전후 몰려오는 미국영화로 인해 침체기를 겪은 바 있는 영화의 고향 프랑스도 한국처럼 적극적인 자국영화 보호정책을 실시하는 대표적 국가다. 한국에 스크린쿼터제도가 있다면 프랑스는 국립영화센터(CNC) 위주로 광범위한 자국영화 지원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

프랑스에서 개봉되는 영화의 입장권에는 10.6%의 특별부가세(TSA)가 포함돼 프랑스 영화, 특히 독립영화의 제작·배급·상영을 지원한다. 이로 인해 막강한 관객 동원력을 자랑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한 편의 성공은 곧 프랑스 영화 제작으로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는 관객 비율이 높은 영화, 또는 뛰어난 시나리오 및 영화 등을 선발해 다음 영화 제작비를 지원한다. 그 결과 지난 2004년 CNC통계에 따르면 그 해 프랑스에서 개봉된 영화 총 560편 중 프랑스 영화가 239편에 달했다. 프랑스 영화는 매년 평균 200여 편이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협적인 할리우드 영화에 맞선 프랑스 영화의 위기는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유럽에서 자국 영화 발전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프랑스와 아시아의 한국은 이 지점에서 만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13일 현재 프랑스의 불어권 공영 위성TV 채널 <테베5몽드(TV5 Monde)>의 사장인 장 자크 아야공 전 장관을 만났다. 지난 2002년 5월~2004년 3월까지 프랑스 문화통신장관을 지낸 바 있는 아야공은 장관 재임시절 '문화다양성 협약' 초안 마련에 직접 참여했다. 국립 조르주 퐁피두 예술문화센터 관장을 역임하는 등 프랑스에서도 문화와 떼어놓을 수 없는 인물로 자리매김한 아야공은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 "자국의 영화를 보존하는데 가장 성공한 아시아 국가인 한국이 이제 와서 자국 영화에 대한 의욕을 포기한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나는 인류의 미래에도 우리가 여전히 한국영화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영화가 없다면 세상은 덜 아름다울 것이기 때문이다."
ⓒ 안병규
"스크린쿼터제도와 같은 자국 영화 보호정책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영화가 생존했고 걸작들이 제작되는 것이다. 나는 인류의 미래에도 우리가 여전히 한국영화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영화가 없다면 세상은 덜 아름다울 것이기 때문이다."

'스크린쿼터제도 덕분에 한국은 자국의 영화 보존에 성공한 나라'라고 평가한 아야공은 "한국이 이제 와서 영화에 대한 모든 의욕을 포기한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한국 정부가 스크린쿼터제도를 포기하지 말 것을 간곡히 당부한다"고 말했다.

아야공은 문화인이기에 앞서 한-불 양국의 외교 문제에 민감한 프랑스 현 집권당 대중운동연합(UMP)의 대표적 정치인이다. 때문에 그는 자신의 발언이 내정간섭으로 비쳐질까 우려하며 조심스럽게 답변했다. 그러나 아야공은 일선 정치인으로서 자유무역주의에 대한 호의적 견해를 밝히면서도 영화를 비롯한 문화 분야에 관해서는 '프랑스적 입장'을 강하게 피력했다.

다음은 아야공 전 장관과 나눈 대화를 요약 정리한 내용이다.

"스크린쿼터제도를 왜 포기하려 하나?"

- 프랑스에서는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는 말, 그리고 문화를 말할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어 '문화다양성'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문화다양성은 전 세계의 문화가 획일화된 실재가 아니라는 기본적인 인식에서 출발한다. 세계의 미래에 단지 미국영화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영화 또한 존재한다, 이렇게 문화를 생산하는 각각의 민족이 그들의 문화를 끊임없이 주장하는 게 문화다양성이다. 이것은 프랑스 문학과 한국 음악, 인도 예술에도 적용된다. 각각의 문화가 그들만의 문화 속에 갇히지 않는 가운데 전 세계가 즐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문화다양성은 고유한 문화의 병렬이며 문화적 경험의 교류인 동시에 전 세계에 존재하는 각 개인의 시각과 호기심을 향한 개방이다. 모두가 같은 이미지, 같은 영화만을 보게 될 때 더 이상의 호기심은 존재할 수 없다. 호기심과 지적 자극은 다양성을 필요로 한다."

- 한국의 스크린쿼터 제도는 '문화다양성 협약' 채택의 견인차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유네스코에서 '문화다양성 협약'이 채택된 지 3개월여 만인 지난 달 26일 한국 정부는 스크린쿼터를 현행 146일에서 73일로 줄일 것을 미국과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한미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개시를 위한 선결 조건으로 한국 정부에 스크린쿼터 축소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일반 공산품에 관한한 자유무역은 긍정적 원칙이라고 생각하나 문화자산은 일반 공산품이 아니다. 자국의 문화에 충실한 국가는 그들의 문화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 한국이나 프랑스와 같은 문화대국이 그들의 문화자산을 양성하고 보급하기 위해 보호정책을 수립하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세계의 다른 문화를 무시하면서 자국의 문화 속에만 갇혀서는 안 되는 까닭에 자국 문화 보호정책이 너무 과도하면 안 되지만 문화 영역에서 자유무역의 원칙은 문화의 평준화, 독창적이고 고유한 문화의 소멸을 의미한다는데 주의해야 한다. 전 세계 막대한 대중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미국 문화는 엄청난 특권을 갖고 있다. 미국의 언어는 물론 전 세계 제1의 언어인 까닭에 미국 작품의 관객은 필연적으로 미국 땅 밖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반면 한국, 프랑스의 문화를 보급할 수 있는 지역은 한정돼 있다.

자국 문화 보호정책이 그들 자신에 함몰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는 가운데 우리는 우리의 창작물을 보호하기 위해 전력을 쏟아야 한다는 말을 되풀이 하고 싶다. 자국 영화 보호정책인 스크린쿼터제도 덕분에 한국은 자국의 영화 보존에 성공한 나라이다. 한국 정부가 스크린쿼터제도를 포기하지 말 것을 간곡히 당부한다."

"한국영화가 없다면 세상은 덜 아름다울 것"

▲ 영화배우, 감독, 제작자 등 영화산업 종사자들은 1인 시위 및 대규모 장외집회를 통해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열고 있다. 사진은 지난 2월 8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집회.
ⓒ 오마이뉴스 남소연
- FTA를 보는 프랑스의 입장은?
"프랑스는 세계무역기구(WTO)의 회원국인 까닭에 자유무역의 원칙에 개방적이다. 그러나 프랑스는 음악이나 시청각물에 관한 예외 조항을 설정했으며 이것은 특히 문화적 예외로 보호하고 있다. 유럽연합(EU) 내에서조차도 유럽의 제작물을 보호하는 규약이 있다.

자유무역의 원칙에는 동감하지만 문화는 냉장고나 자동차와 같은 성질의 공산품이 아니라는 기본적인 인식이다. 영화는 언어의 상징이며 한 민족의 정신인 동시에 세상을 보는 독자적인 방식이다. 세상을 보는 이 같은 독자적 방식이 사라진다면 인류전체가 빈곤해질 것이다.

문화를 다루는 부분은 매우 신중해야 하며 이 규칙은 특히 개발도상국의 입장에서도 공평해야 한다. 영화, 음악, 시청각 프로그램과 같은 지적 활동과 연관된 경우 '대단히 대단히' 신중해야 하며 이들을 보호하는 정책은 반드시 필요하다."

- '문화다양성 협약'은 지금까지 상업적 시각 아래 교역의 대상으로 인식돼온 문화의 가치와 상징성을 인정하고 국제법으로 보호하자는 것이 그 골자다. '문화다양성 협약'의 직접적 근간이 된 스크린쿼터제도를 축소한다는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나는 문화장관 재임시절 '문화다양성 협약' 초안 마련에 심혈을 기울였다. 칸 영화제를 계기로 당시 한국 문화부장관이었던 이창동 감독을 만난 적도 있다. 이 전 장관과 나는 '문화다양성 협약'에 대해 토론을 했고 한국 문화를 위해 '문화다양성 협약'의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함께 공감했다.

나는 한국의 내정에 간섭하거나 한국 책임자들의 대리인이 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자국의 영화를 보존하는데 가장 성공한 아시아 국가인 한국이 이제 와서 자국 영화에 대한 의욕을 포기한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스크린쿼터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한국영화가 생존했고 걸작들이 제작되는 것이다. 나는 인류의 미래에도 우리가 여전히 한국영화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영화가 없다면 세상은 덜 아름다울 것이기 때문이다."

"프 영화의 국제배급 난항은 전 세계 극장이 미국영화에 지배돼온 탓"

▲ "프랑스 영화의 약점은 국제적 배급의 어려움이다. 국제적 배급의 어려움은 세계 많은 나라의 극장이 다른 영화에 자리를 거의 남겨주지 않는 미국영화에 의해 지배돼온 결과다."
ⓒ 안병규
- 프랑스 영화 보호 정책을 간단히 설명한다면?
"프랑스 관객의 50%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영화는 프랑스에서 매우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프랑스 극장에서 미국영화를 몰아내자는 말은 물론 아니다. 무엇보다 미국영화에도 걸작은 많다. 20세기의 수많은 위대한 걸작들은 미국에서 제작됐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단지 프랑스와 유럽 영화를 배려하는 조치 즉 프랑스와 유럽 영화들을 TV와 극장에 배급하는 적절한 권리를 보장하는 조치를 수립하고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비용이 많이 들지도 않으며 더욱이 극장이나 TV에서 프랑스와 유럽 영화의 독점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전 세계를 향해 열려있으나 프랑스 또한 영화 제작 대국이라는 사실을 관객들이 망각하지 않도록 보호의 작은 틀을 준비하자는 것이다."

- 프랑스의 자국영화 보호정책이 확고하다고 강조했는데, 프랑스 영화가 건강하다고 자부하는가.
"그렇다. 프랑스 영화는 건강하다. 매년 무시할 수 없는 수의 영화를 제작하며 프랑스 영화는 프랑스 내에서 입지를 확고히 다져왔다.

프랑스 영화의 단 한 가지 약점은 국제적 배급의 어려움이다. 하지만 정부 차원뿐만 아니라 '유니프랑스'처럼 영화 제작자, 감독, 배우들이 집결한 기구를 통한 노력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국제적 배급의 어려움은 세계 많은 나라의 극장이 다른 영화에 자리를 거의 남겨주지 않는 미국영화에 의해 지배돼온 결과다.

우리는 전 세계의 관객이 모든 종류의 영화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할 의무가 있다. 관객의 흥미를 배양하고 가꾸는 것이 바로 문화다양성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2006-02-21 11:46
ⓒ 2006 OhmyNews
내가 편집국장이라면...?
이제 네티즌들의 추천으로 오마이뉴스가 바뀝니다.
를 통해 기사를 추천하시면
추천점수에 따라 네티즌 편집판이 만들어집니다.

나에게 감동을 주는 기사, 함께 나누고픈 기사를
추천해보세요!
///////// [현재 0건]
기사가 맘에 드시나요? 좋은 기사 원고료는 기자 개인의 추가원고료 및 기자회원 지원비로 쓰입니다.
////// 22(5+17)
추천 반대
5. 김시진 같은 딴나라 극우 파시스트들에게 문화/... 루시스카이다이아몬드 02-21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