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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대처 수상 같은 지도자가 필요하다?"

 

 

우리도 대처 수상 같은 지도자가 필요하다?"
  [일과 희망·27] 노동개혁의 결과는 일자리 감소와 소득 불평등 심화
 
  2007-11-27 오전 6:39:51
 
   
 
 
  우리나라에서 노사관계의 고질적인 노사대립 문제, 특히 투쟁적인 노조 문제가 나올 때마다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보수적인 견해를 가진 분들로부터 듣는 말이 있다. "우리의 노사관계를 제대로 뜯어고치려면, 영국의 대처 수상 같은 분이 나타나서 노조를 제대로 손 좀 봐 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것도 한 번에 대대적인 개혁을 통해 노조의 버릇을 잡아줘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대처 수상이 영국의 노사관계를 개혁하면서 막강하던 노조의 힘을 뺀 것은 틀림없는 역사적인 사실이다.
  
  그러나 대처 수상의 영국 노사관계 개혁에 관해서는 잘못 알려진 사실들이 너무 많다. 문제는 그것이 마치 사실인 양, 영국의 정치경제적 맥락과 노사관계를 모르는 분들에 의해 너무 쉽게 그리고 자주 인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런 점에서 영국의 노사관계 개혁을 둘러싼 단순화된 오해를 바로 잡고 우리가 무슨 교훈을 얻을 것인가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영국의 노사관계 개혁은 1970년대말 경제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1970년대 말 영국의 전후 정치경제체제의 위기 속에서 노동당 정부에서 보수당의 대처 정부로 정권이 바뀌었다. 노사관계 개혁은 영국 체제 개혁과 함께 동시에 온 것이다. 대처 수상이 정권을 잡을 즈음에는 전후 영국의 정치경제체제는 경쟁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따라서 국가 보조금에 의해 지탱되고 있었던 민간제조업과 공공부문의 완전고용이라는 목표를 수정하고 개혁할 수밖에 없었다.
  
  영국의 자본주의는 이미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미국, 독일 등에 의해 밀리기 시작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은 전후 호황 속에서 서유럽 자본주의국가의 전후 3대 사회적 합의라고 할 수 있는 케인즈주의 경제정책, 완전고용, 복지국가에 기초하여 일정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더구나 과거 제국주의 유산, 런던 금융시장, 그리고 경쟁력이 약화되긴 했으나 여전히 제조업과 기초기술을 갖고 있었다.
  
  영국은 포드주의의 불완전한 도입, 1970년대 2차례 석유위기를 거치면서 높은 물가인상, 임금인상, 작업장 수준으로 분권화되어 갈등적 노사관계등이 겹치면서 위기를 맞이했다. 많은 제조업과 공기업들이 완전고용 유지를 위해 막대한 정부 보조금을 받아가면서 유지되고 있었으나 이미 경쟁력을 잃었거나 비효율을 안고 있었다.
  
  1970년대 말 캘러헌 노동당 정부는 전후 복지국가 모델에 기반을 둔 영국의 정치경제체제가 산업경쟁력의 상실로 위기에 봉착한 가운데 노정간의 사회적 합의를 통해 임금억제 - 물가인상 억제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아래 <표-1>에서 보는 바와 같이 1979년 노동당 정부 말기에 영국노조의 조직률은 53.0%로 매우 높았고 파업건수는 현장에서의 작은 분규를 제외하더라도 2000건을 넘고 있었으며 그로 인한 노동손실일수는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더구나 다른 나라들에서 2차례에 걸치는 석유파동 속에서 노사정타협을 통해 임금억제 - 물가억제를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영국에서는 높은 물가인상률과 높은 임금인상률이 상호 악순환 속에서 노사분규를 부채질하고 있었다.
  
▲ 자료: Office for National Statistics.

  대처는 한꺼번에 노조를 꺾은 것이 아니다
  
  영국의 대처 수상은 노조와 노사관계를 매우 서서히 개혁해 나갔다. 흔히 일부 언론이나 정치인 혹은 학자들조차도 영국의 대처 수상은 막강했던 노조를 한 번에 꺾은 것쯤으로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의 노동운동은 1970년대 초반에 에드워드 히스 보수당 정부와 대결하여 정부를 물러나게 한 적이 있고 1979년 불만의 겨울 때 공공부문 노조는 노동당 캘러헌 정부를 물러나게 하는 등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보수당의 대처 수상은 역사적 경험을 통해 자칫 노조와 전면전을 벌이다가 정권이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 보다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대처수상의 보수당 정부는 영국 노사관계의 개혁, 그리고 노조의 약화를 위해서 점진적인 개혁을 시도했다.
  
▲ 자료: Office for National Statistics

  위의 <표 - 2>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영국 노사관계는 하루아침에 개혁된 것이 아니다. 대처 정부가 집권한 뒤에도 탄광노조의 파업이 있었던 1984년과 1985년을 제외하고도 노동조합은 상당한 힘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표 -3>에서 보는 바와 같이 대처정부는 단계적으로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고 노사관계를 바꾸기 위해 노동관련법을 개정해 왔다. 노동당 정부 시절 그렇게 막강하게 보였던 노동운동은 높은 실업률, 노동당 정부 아래에서 노동조합의 무분별한 파업 등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고 출범한 대처정부의 점진적 노조약화와 노사관계 개혁 조치에 대해 효과적인 저항을 할 수 없었다.
  
  대처정부의 노조 약화와 노사관계 개혁은 아래와 같은 노동법의 개정을 주요 수단으로 추진되었다. (1)민법으로의 회귀를 통해 노조에 대한 면책특권 축소와 손해배상 청구 (2)단체교섭에 대한 지원수단 축소 (3)파업과 단체교섭의 대상 축소 (4)우편투표 도입 등 파업에 대한 절차적 규제 강화 (5)파업에 따른 해고요건의 완화 (6)클로즈드숍의 불법화 (7)노조의 내부 운영에 관한 직접적 개입 (8)부당해고요건의 완화 (9)최저임금제의 폐지 등이 그것이었다.
  
  탄광노조의 무리한 파업은 오히려 대처의 노조 개혁을 도와줬다
  
  대처수상의 탄광 구조조정과 노조약화에 대항한 탄광노조의 무리한 파업은 노조운동을 더욱 약화시켰다. 영국정부는 1980년대 초 당시 국제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으로 석탄을 생산하고 있었던 석탄 산업에 상당한 보조금을 주고 있었다. 1981년 대처 정부는 탄광노조를 비롯한 노조와의 전면적인 대결이 무리라고 판단하고 탄광노조의 파업에 부분적인 양보를 하기까지 했다.
  
  1983년 3월 국유화되어 있던 탄광을 관리하는 전국석탄위원회의 이안 맥그리거(Ian MacGregor) 의장은 전국탄광노조 지도부를 만나 석탄산업의 축소 계획, 특히 1984 - 1985년 400만 톤의 석탄 생산량을 줄이고 광부들의 일자리도 2만 개를 줄일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당시 강경 좌파였던 아서 스카길이 이끄는 탄광노조는 노동조합은 조직적인 투쟁력에 의거하여 탄광폐쇄를 반대하고 나섰다. 당시에는 이미 실업자가 300만 명에 이르고 영국노총 소속 조합원수가 300만 명이나 감소하고 있었다.
  
  대처 정부는 탄광노조와 전면대결을 위한 파업대비를 위해 미리 착실한 준비를 했다. 석탄재고의 확보, 싼 외국석탄 수입경로 확보, 석탄 비수기 선택, 석탄을 연료로 하는 발전소에 석유연료 사용시설 확보, 대규모 기동경찰대 창설로 피켓팅 방지 대비 등이었다. 1984년 대처정부는 탄광노조와의 전면대결을 의식하면서 석탄산업의 구조조정을 위해 비효율적인 일부 탄광을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다.
  
  탄광노조 지도부는 당시의 석탄산업의 구조조정의 필요성에 비해 역으로 채탄량 2배 증대, 30-40개 신규탄광 개발, 주4일 근무제, 주 100 파운드 최저임금, 연금수준 인상 등 위한 국가보조금 인상 등 무리한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파업에 들어갔다. 파업이 진행되는 동안 대처정부는 다른 공공부문의 파업에 대해서는 유화적인 태도를 보여 타협을 하면서 탄광노조를 고립화했다. 또한 석탄산업의 구조조정 필요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국민적 여론을 의식하지 않고 파업에 돌입한 탄광노조에 대해 영국노총을 비롯한 다른 노조들의 반응은 냉담하여 파업에 대한 연대의사나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탄광노조에서 파업찬반투표를 거치지 않고 파업에 돌입하여 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노조간부들은 불법파업에 중앙 노조기금, 지역 노조기금을 사용함에 있어서 신뢰와 신용의무를 위반했다며 고소를 당했다. 파업찬반투표를 거치지 않는 파업 때문에 5만 파운드의 벌금, 노조의 규약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원은 노조 기금의 몰수를 판결했다.
  
  정부와의 대결에 거의 1년을 끈 탄광노조의 파업이 패배로 돌아간 뒤 노동운동은 자신감을 상실했다. 파업 뒤 탄광노조 노조원 수는 6만5000명으로 감소했고 석탄산업 고용 광부들은 1983년 18만7000명에서 1989년 8만5000명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탄광노조가 고용유지를 위해 보조금에 의지하던 석탄산업의 구조조정을 거부하면서 오히려 정부의 보조금을 늘리라는 시대착오적 주장을 하면서 파업을 벌인 결과 대처정부가 노조정책에서 확고한 우위에 설 수 있게 해 준 전환점을 마련해 주었다. 이리하여 탄광노조의 무리한 파업이 노동운동의 자신감 상실과 약화로 이어지는 중요한 계기였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대처정부는 노조를 약화시키기 위한 입법을 더욱 본격적으로 도입할 수 있었다.
  
▲ 자료: Waddington 2003. Office for National Statistics.

  대처의 노동개혁은 개별 노동자들의 권리도 약화시켰다
  
  대처 정부는 노조 약화와 집단적 노사관계를 개혁했을 뿐만이 아니라 개별 근로자들의 권리도 크게 약화시켰다. 300만 명에 달하는 저임금노동자들에게 적용되고 있었던 업종별 최저임금제(wages councils)를 폐지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높은 실업률 속에 취약계층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수준을 더욱 낮출 수 있게 했다. 보수당 정부 아래에서 고임금소득자와 저임금노동자들 사이의 임금격차가 크게 확대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또한 보수당 정부는 사용자가 절차 미준수나 차별 등에 따른 부당해고라는 부담 없이 아무런 사유 없이도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는 대상자를 기존의 근속 6개월 미만의 근로자에서 2년 미만의 근로자들에게까지 연장함으로써 사실상 무제한 해고의 자유를 허용했다. 사용자의 특권을 보장하는 대신 근로자들의 고용안정을 무시하는 정책을 취한 것이다. 또 여성과 청년 노동자들에 대한 보호(갱내작업, 야간작업금지)조항이 제거되었다. 뿐만 아니라 보수당 정부는 유럽연합에서 1989년 12월 합의한 사회헌장 및 동일노동 동일임금, 집단적 정리해고, 사업의 양도, 비정규직, 노동시간 등과 관련되어 발효된 각종 법적 지침(directives)의 적용을 거부했다.
  
  이리하여 보수당 정부는 개별노동자들에 대한 보호나 권리 규정을 없애거나 유럽연합 회원국들에서 적용되는 지침들(노동자들의 사회적 권리)을 거부함으로써 결국 경쟁과 규제 완화라는 명분 아래 사용자 편향적인 정책을 편 것이다.
  
  영국경제의 부활 속 그늘…노조가 약화된 만큼 생산력은 강화됐다?
  
  이런 노동개혁, 민영화, 복지축소를 통해 전후 정치경제체제를 개혁하면서 노동시장의 유연화, 경제구조 개혁, 해외자본의 유치 등을 통해서 영국경제가 다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 자료: USDA

  위의 <표 -5>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영국은 1970년대 다른 경쟁 국가들보다 경제성장률이 뒤쳐져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 초 마이너스 성장에서 불구하고 1980년대 - 1990년대 동안 다른 나라가 성장률이 떨어지는 동안 영국은 1970년대 수준 혹은 그보다 약간 낮은 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음으로써 미국을 제외한 다른 경쟁 국가들보다 빨리 성장할 수 있었다. 2000년대 들어와서 영국은 성장률을 회복하여 유럽 다른 나라들보다 놓은 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평균 성장률이 2.5% 정도였다.
  
  영국경제의 비교적 높은 성장률에도 불구하고 영국 경제에 그늘은 남아 있다. 노동에 대한 규제완화, 노조의 현저한 약화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제조업은 보수당 정부 아래에서도 쇠퇴과정을 겪어 왔다. 대처 정부 아래에서 1979년 7백 만을 웃돌았던 영국의 제조업 고용인구가 1990년에는 4백 만으로 줄어들었다. 보수당 정부하의 영국 제조업은 상당수가 공장폐쇄, 생산축소, 해외시장의 상실 등 퇴보적인 구조조정 과정을 거쳤다.
  
▲ 주: 제품수출액과 제품수입액에는 석유와 불규칙적인 제품의 수출입액은 제외되었음, 자료: Office for National Statistics.

  뿐만 아니라 1997년 토니 블레어 총리가 집권한 뒤로도 제조업의 고용은 1백 만 개가 줄어들었다. 이리하여 제조업의 구조조정은 생산성의 높은 증가에 따른 전진적인 탈산업화의 결과가 아니라 생산성의 상대적 정체 속에 이루어진 퇴영적 탈산업화의 형태로 이루어져 제조업의 고용 인력이 대폭 감축되었다. 영국 자동차산업의 상징이었던 로버(Rover)자동차는 영국 환자(English Patient)가 되어 몰락한 것도 제조업 쇠퇴를 상징하는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토니 블레어(Tony Blair) 영국 총리도 2000년 12월 1일 연설에서 제조업의 낮은 생산성 문제를 제기했고, 미국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 교수도 영국 기업들이 기존의 비용위주 경쟁에서 부가가치, 혁신 중심의 전략으로 옮겨갈 필요성을 제기했다.
  
  제조업만을 본다면, 영국은 대처 정부에 의해 노조의 약화를 성공적으로 이루었으나 제조업의 부활 혹은 성공적 고도화를 낳지는 못했다. 그 결과 옆의 <표 - 6>에서 보듯이 상품무역에서 역조현상은 여전히 확대되어 2006년에는 상품무역 적자 규모가 709억 파운드(약 1400억 달러) 규모로 커졌다.
  
▲ 영국의 소득불평등도 (단위: 지니계수) 자료: Office for National Statistics.

  영국의 소득불평등도는 1970년대 노동당 정부 시절에는 완화되었다가 대처 정부가 주도한 노조와 노사관계의 개혁의 결과 그리고 사회복지제도의 개혁의 결과 지니계수 값이 급격하게 높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영국에서 대처 정부가 이미 위기에 봉착한 영국의 전후 정치경제체제를 신자유주의적 개혁으로 바꾸어 놓았으나 그 이면에 소득불평등, 임금불평등이 심화되는 사회적 양극화를 가져온 것이다. 노동당 정부는 보수당 정부의 주요 정책을 이어받아 추진한 결과 소득불평등도에서는 별다른 개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악화되기까지 했다.
  
  대처정부와 그를 뒤이은 존 메이저 보수당 정부에 의해 영국의 집단적 노사관계는 개혁되었으나 지나치게 신자유주의로 기울어 소득불평등, 근로자의 개별적, 집단적 권리의 제한 등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아래의 표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영국에서 1990년대와 2000년대 들어 노조의 약화와 노사관계의 개혁 이후 파업건수나 파업으로 인한 노동손실일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개별 노사분규(부당해고, 동일임금, 성차별, 인종차별, 근로계약 위반, 임금보호 등)의 발생빈도를 나타내는 알선중재위원회(ACAS)에 제소하는 건수 그리고 고용심판소(Employment Tribunals)에 제소하여 처리된 개별 노사분쟁 사건 수는 1980년대 보다 2.5배 가량 늘었음을 알 수 있다.
  
▲ 자료: ACAS Annual Report and Account 각 년도s. trade union statistics - Certification Officer Annual Reports. Office for National Statistics. Labour Dispute in 2006. Economic and Labour Market Review Vol 1(6) 2007년 6월호. Employment Tribunals Service. Annual Report & Account. 각 년호. Department of Trade and Industry.

  이것은 집단적인 노사관계가 약화되면서 개별적 노사갈등이 해결될 수 있는 채널이 없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개별적인 노사분규로 발생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1997년 노동당 집권 후 보수적 노동개혁은 완화됐다…앞으로 5년 우리는?
  
  보수당 정부의 지나치게 편향된 신자유주의적 노동정책은 1997년 토니 블레어가 집권한 뒤 일정하게 시정되고 있다.
  
▲자료: EIRR 2003. 12. p. 30. Department of Trade and Industry. 2007.

  특히 부활된 전국단일 최저임금제는 2006년 10월 시간당 5.35 파운드(1만700원)로 전체 노동자들의 10%인 약 240만 명에게 적용되어 저임금노동자들에게 적지 않은 혜택을 주었다. 여성 근로자의 14%가 이들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고 있으며 18-21세 청년 근로자의 40%가 최저임금 적용대상이고 65세 이상의 고령근로자의 23%가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고 있다. 최저임금제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사용자들이나 보수당에서 우려하던 일자리 감소는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다.
  
  또한 노조와 관련된 권리(일정한 요건 충족 시 사용자의 노조 인정 의무, 공공이나 노조의무를 위한 시간 공제, 노조활동 보호), 개별 근로자들의 권리(부당해고, 부당차별당하지 않을 권리, 남녀 동일임금, 출산유급휴가, 산후 직장복귀 권리, 정리해고 시 퇴직수당 수령 권리, 노동시간 보호, 단시간 근로자에 대한 동일 처우, 계약직 근로자들에 대한 보호)를 부활시키고 있다. 보수당 정부에 의해 노동자들에게 적대적이었던 정책이 노동당 정부에 의해 부분적으로 완화되어 왔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노동당 정부가 정책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선회한 결과라기보다 유럽연합이 유럽경제통합에 따르는 사회갈등을 완화하고 사회적 통합을 촉진하기 위해 추진해 온 각종 고용과 노동관련 지침을 영국에 적용함으로써 나타난 것이다.
  
  결론적으로 영국의 노동운동은 영국 경제가 경쟁력을 잃고 위기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노동당 정부 아래에서 사회적 타협에 의한 '협상을 통한 개혁'의 길을 반대하고 협소한 실리를 추구하다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보수당의 대처 수상을 맞이한다. 대처 수상이 점진적으로 노동법 개정 등을 통해 노동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전투성을 앞세운 탄광노조가 탄광의 구조조정에 반대하며 시대착오적인 요구를 내걸고 투쟁하다가 패배함으로써 오히려 대처 수상의 노조와 노사관계의 개혁은 가속도가 붙게 되었다. 이런 방식의 영국 노동개혁은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서 시장개방과 세계화에 따른 유연화 요구를 '협상에 의한 변화'를 통해서 수용함으로써 보다 점진적이고 각 이해당사자의 손익이 일정하게 고려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과 대비가 된다.
  
  보수당 정부는 영국의 전후 정치경제체제를 노조 약화, 노동법 개정, 사회복지 축소, 민영화 등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추구함으로써 개혁하여 1980년대 중반 아래 성장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불균등 성장 속에서 제조업의 경쟁력 약화와 일자리의 큰 감소, 소득불평등의 큰 증가, 임금격차의 확대, 개별적 노사분쟁의 증가 등 사회적인 그늘과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1997년 노동당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보수당 정부의 정책은 대부분 그대로 수용되었으나 지나치게 신자유주의적 요소들은 부분적으로 완화되었다.
  
  내년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양극화된 고용시스템을 개혁하는 노동개혁이 주요한 과제로 등장할 것이다. 새 집권세력이 노동개혁에 어떤 처방을 들고 나올 것인가는 집권세력의 청사진뿐만 아니라 노사 주체들의 전략이라는 변수에 의해서도 달라질 수 있다. 누가 집권하든 우리의 노동개혁 처방은 영국과 유럽의 사회모델 국가들의 중간쯤 될 것이지만 어느 쪽으로 기우는가는 집권세력의 철학만큼이나 노사주체들의 전략적 선택에 달려 있다고 생각된다.
   
 
  배규식/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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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와 북한, 다른 시선이 꿈틀대다

 

 

누드와 북한, 다른 시선이 꿈틀대다


 

 
[한겨레] 패션사진가가 찍은 누드, 전직 기자가 찍은 북한 등 경계와 거리를 허문 사진전들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11월 미술동네의 한쪽에서 사진가들이 꿈틀거린다. 세상을 늘 배회하면서 오직 타자로서 이미지를 건드려야 하는 숙명을 생각하는 그들이 자기 존재의 비애를 한껏 사진으로 풀어낸 수확물들을 내보였다. 발레리나의 누드를 찍어 논란을 빚었던 패션사진가의 몸 사진은 순수와 통속의 경계 허물기인가. 거울 같은 앵글에 실체로 찍어낸 북한 집단주의의 진실은 무엇인가. 전시의 덩치나 작품값이 아니라 장르와 미학의 맥락에서 이야깃거리를 던지는 마당들이 지금 차려졌다.

전시 화두는 순수사진 vs 상업사진?

대중적 화제의 중심에 패션사진가이자 청담동 문화의 스타일리스트로 알려진 김용호씨가 있다. 국립발레단원 김주원씨 누드사진을 찍은 그는 11월17일 시작한 서울 통의동 대림미술관(02-720-0667)의 사진전 ‘몸’(mom)에서 더욱 밀착된 시선으로 찍은 유명인사, 보통 사람들의 누드 140여 점을 내걸었다. 등장인물은 30여 명에 달한다. 예술가와 연예인, 체육인, 미술인, 오르간 연주자, DJ, 트랜스젠더 등을 찍었다. 사람 몸의 한 부분을 확대해 찍은 ‘신대륙’ 연작, 뒷모습 누드만 골라낸 ‘채집된 몸’ 연작, 악어가죽 여행가방에 몸의 부분 사진을 합성해 넣은 ‘신대륙용 여행가방’ 연작이 나와 있다.

가슴을 살짝 가린 채 수중에 자맥질했던 육체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틀어 보여주는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 선수, 남성적 관능미가 물씬 풍기는 남성 배우 알몸 상체, 쪼그린 패션디자이너가 보여주는 중년의 육체, 앵글에 괴상한 물체처럼 잡힌 신대륙 같은 인간의 엉덩이, 등짝, 오리의 물갈퀴 같은 발레리나의 맨손, 맨발의 예민하게 곧추선 굴곡선 등…. 흑백 누드사진에서 우리 육체 이면의 온갖 슬픔과 격정, 환희들이 오버랩되면서 엉킨다. 포르노나 몸짱 이미지만 강조되는 비뚤어진 육체와 달리 신대륙과 같이 경이롭고 다양한 몸의 세계를 보여주겠다면서 김씨는 말했다. “자연 속에 순환하는 육체를 보여주고 싶다. 에로틱한 상상은 보는 사람의 주관에 따른 것일 뿐이다.”

그런데 전시의 화두는 기실 좀 다른 지점에 걸치고 있는 듯하다. 인기 명사들의 누드가 에로틱한지를 따지기보다도 이른바 순수사진과 흔히 ‘꾼’으로 낮춰 부르기도 하는 상업사진과의 경계를 허물어냈는지가 사실 전시의 성패를 가르는 열쇠로 비친다. 작품들은 기존 사진 거장들의 몸 사진 유형을 조합하거나 증폭시킨 느낌으로 와닿는 것이 많다. 몸을 낯선 사물이나 자연으로 응시한 에드워드 웨스턴, 디자인 미학으로 육체를 조망한 만 레이, 육체의 선과 질감을 영기처럼 부각시킨 호소에 에이코 등의 시선과 구도가 그의 작업에 유려하게 녹아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상업사진가의 강점은 고객의 주문에 맞춰주는, 단순명쾌한 전달력, 호소력이다. 경계가 부질없다면서 굳이 예술사진의 구도를 뒤쫓는 상업사진가들의 이분법적 구태들을 김씨가 얼마나 극복해 보여줄까. 2004년 이혜영 누드 모바일 화보를 찍기도 했고, 패션사진에 관한 한 일류로 평가받는 그가 경계 허물기의 공력을 얼마나 발휘해낼까. 성기의 털을 당당히 드러내고 사지를 쩍 벌리는 모델 누드를 찍으면서 ‘뻔뻔스럽고 세련된 포르노 작가’라고 자처했던 패션사진 거장 헬무트 뉴튼의 경지에 얼마나 근접해 있는지를 되짚어보는 것도 감상의 재미가 된다. 누드 파문 주역이었던 김주원씨의 또 다른 전신 누드, 유방 절제 수술을 한 여성 가슴 등을 담은 10여 점은 당사자들의 요청으로 전시에서 빠졌다. 내년 1월27일까지 전시한다.

아리랑의 일사분란함 속 다른 표정들

분단이 남한의 일상과 사회에 남긴 생채기에 천착해온 사진기자 출신의 노순택씨는 올해 국내 사진계에서 괄목할 만한 평가를 받은 작가 중 하나다. 2005년 북한을 방문했을 당시 평양의 일상과 <아리랑> 집체 공연을 찍은 사진들로 사진집 <레드 하우스>(청어람미디어)를 발간했다. 또 12월2일까지 경기도 파주 출판도시 내 열화당 사옥의 로터스 갤러리(031-955-7000)에서 자신의 근작들을 정리하는 작은 개인전을 열고 있다. 2005년 <분단의 향기>라는 사진집을 낸 그는 분단, 그리고 50여 년 전의 전쟁이 남한에 남긴 생채기를 매향리, 대추리 등의 미군기지 반대투쟁 현장에서 신문사진 같은 구도로 찍어왔다. 반면 사진찍기가 제한된 북한에서는 2000년과 2005년 방문 당시 집요한 관음적 시선으로 집단 공연 장면을 찍었다.

출품작들은 그만의 북한 바라보기 방식이 깃든 두 번째 방문 당시의 사진들이 중심이다. 독특한 연속 문양 같은 노씨의 <아리랑> 사진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보여주는 곳에서 작가가 원하는 것을 보려는 욕망이 부딪힌 산물이다. 그 결과 나온 역작이 매스게임이나 집체 움직임을 보여주는 <아리랑> 공연의 세부 모습들이다. 총검술하는 군인이나 전통 군무를 추는 소녀들이나 자세히 보면 하나같이 동작이 다르고 표정도 다르다. 일사불란한 군악대의 연주 장면도 노씨의 미세한 앵글에서는 카오스적인 춤처럼 보인다. 북한의 집단주의 질서 사이사이를 오가는 현지 사람들의 모습은 그들이 결코 기계가 아니라는 사실까지도 보여준다. 현장 고발 혹은 풍자 스타일의 사진을 찍던 그는 2005년의 북한 작업 이후 진일보한 작가적 시선을 보여주었다. 남북 양 체제에 객관적 거리를 두고, 북한 집단주의는 아름다운 붕어빵 무늬 같은 <아리랑> 공연의 이미지로 실체화시켰다. 남한 극우단체의 드라큘라 같은 김정일 초상 사진과, 북한에만 가면 열렬 사진사로 변신하는 남한 방문객들의 디카 행태를 찍은 사진은 북한과 남한이 서로의 거울임을 드러낸다. 그와 2인전을 했던 사진가 주명덕씨는 “그의 성취는 북한 기행 사진에만 제한된 것이며, 다른 유형의 사진에서도 앵글 자체로 이야기할 수 있는 힘을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한다. 노씨는 내년 2~4월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유명 미술관인 쿤스트페어라인에서 파격적인 회고전 형식의 초대전을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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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 &quot;BBK, 조중동보다 <한겨레>·<오마이뉴스>가 정확&quot;

조갑제 "BBK, 조중동보다 <한겨레>·<오마이뉴스>가 정확"
"이명박과 한나라당 여기까지 온 것, 조중동의 감싸기 때문"
조은미 (cool)
 
 
  
조갑제 전 <월간조선>대표가 조중동의 BBK 보도에 대해 따끔하게 꼬집었다.
ⓒ 조갑제닷컴
조갑제

조갑제 전 <월간조선>대표가 BBK 의혹 사건을 보도하는 조중동 방식에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이명박 후보와 BBK 사건을 보도하는 데 있어 조중동보다 <한겨레>와 <오마이뉴스>가 더 정확하다고 말했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는 자신이 운영하는 홈페이지 '조갑제닷컴'에 24일, "BBK 의혹 사건에 관한 한 한겨레 신문과 오마이뉴스가 조중동보다 정확하더라"며, "이명박 후보의 해명이 거짓말로 밝혀지면 보수신문들이 함께 당할까 걱정"이라고 밝혔다. 조 전 대표는 보수 인사들로부터 되풀이해 들은 이야기라며 이처럼 전했다.

 

조갑제 전 대표는 1961년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쿠바 침공 작전을 폈다가 실패한 일화를 예로 들며 조중동을 질타했다.

 

조 전 대표는 "침공 작전이 준비 중임을 알고도 <뉴욕타임스>가 이를 쓰지 않았다"며 "급기야 쿠바  실패한 뒤 케네디 대통령이 <뉴욕타임스> 간부를 만나 '<뉴욕타임스>가 미리 알았을 때 기사를 썼더라면 침공 작전은 중단되고 실패도 없었을 것인데 왜 쓰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물론 <뉴욕타임스>가 기사화했더라면 성공할 수 있었던 침공 작전을 언론이 망쳤다고 해서 오래 오래 비난을 받았을 것이지만 혹시 이명박 후보가 BBK 사건으로 잘못 된다면 조중동 간부들에게 '왜 그때 진실을 보도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었다면 나도 억지를 덜 부렸을 것이고 파국까지는 가지 않았을 터인데…'라고 말할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이어 "이명박 후보와 한나라당이 여기까지 와버린 데는 조중동의 이명박 감싸기가 상당히 작용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조 전 대표는 또 이명박 후보측이 버티면 된다는 자신감을 키운 게 일부 보수 언론 때문일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조 전 대표는 "김경준씨와 이 후보가 맨 처음 만난 일자에 대해서 일부 보수언론은 이 후보 측의 거짓 해명을 충실하게 소개해주었다"며 "이명박 후보 측이 자신들의 반박을 엉터리까지도 잘 보도해주는 조중동이 있으므로 버티면 된다는 자신감을 가졌을지 모른다"고 질타했다.

 

또 "인터넷이 가장 큰 언론으로 등장하고 국민들 거의가 기자 역할을 하는 오늘날 우호적인 종이신문의 역할을 과대평가하면 큰 코 다치는 수가 있다"고 따끔하게 경고한 뒤 "어제 이장춘 대사의 폭로 사례처럼"이란 말로 말을 맺었다.

2007.11.24 12:56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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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강력 추천] [관전] BBK 자해쇼 관전기

 

 

대문 강력 추천] [관전] BBK 자해쇼 관전기
 
번호 157499  글쓴이 딴지일보   조회 5160  누리 1220 (1220/0)  등록일 2007-11-25 01:38 대문 27 톡톡
 
 
 
 


[관전]BBK 자해 쇼 관전기


2007.11.24. 토요일

지난 21일, 김경준 부인 기자회견 직후, 한나라당 클린정치위원회의 고승덕 변호사는 이명박후보가 BBK와 전혀 무관하고 BBK는 김경준이 주도했단 걸 입증하는 증거라며 김경준의 친필메모와 편지를 공개한다.

본지, 숫자 싫어한다. 골치 아프잖아. BBK 사건, 뭐가 이리 숫자가 복잡하냐. 해서, 구경만 했다. 근데 이 문건 공개 보고는 쫌, 웃었다.

왜.

자해하는 게 하도 웃겨서.

왜 자해냐. 그 많은 회사 이름들 날짜들 숫자들 관계도 따위들 끌어들이지 말고, 다른 주제로 새지도 말고, 그저 공개된 이 두 문건만을 기초로 해서, 전문지식이 아니라 그저 일상의 상식으로, 객관적으로 따져보자.

먼저, 간단하게 해석부터 하자. 메모는 판독이 어려운 글자도 있다. 그 경우 앞뒤 문맥으로 추정했다. 혹여 추정이 잘못됐다 싶으면 지적 바란다. 편지는 인사치레 빼고 핵심만 번역했다. 


1. 김경준이 자필로 썼다는 최초의 사업제안 메모


2/7 meeting w/ 김백준 회장님

1) 이름 바꾸기(Name Change) 2) (이름이)마음에 들지 않는다. (Nothappy - 불분명)

2) 스톡옵션 2) 설명했음 / 그(김백준)가 이명박에게 전할 것임

3) 도메인 네임은 ebank-korea.co.kr / ebank-Korea.com 로 예정

4) 이명박 also wants to be 대표이사

5) 20억 총 납입자본금 by 이명박씨

6) 한경이나 코리아 헤럴드 신문을 포함시킨다 (steet 부분 불분명)

7) 나 자신과 이명박 혹은 대리인이 참석해야 이사회가 유효하다는 문구가 회사정관(Art. of Inc.)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2. 김경준의 이명박후보에게 보내왔다는 편지


2/9/2000

이명박 회장님

(그 이후 진척을) 업데이트 해드리려 합니다.

월요일 김백준 부회장님과 만났고, 김백준 부회장님은 미팅 후 이어서 김희인 변호사님을 만나 회사정관과 주주계약의 세부사항을 논의했습니다. 김희연 변호사님이 회장님이 검토하실 수 있도록, 김백준 부회장님이 말한 조건들을 모두 반영하여 회사정관을 완료할 겁니다. 정관에 반영된 주요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머지 덜 중요한 조건들도 역시 포함되었습니다.)

1. 회사 이름은 공란으로 비워둡니다.

2. 직원 스톡옵션 최대치는 30%로 하고, 한 사람이 10%를 넘지 않도록 합니다.

3. 초기 200억 원을 회장님이 투입합니다.

4. 이사회는 회장님 혹은 회장님의 대리인이 참석하지 않으면 무효입니다.

다음의 사항들은 확인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1. 자본금 납입일정은 회장님이 정하실 것이고, 2000년 2월14일 경이 될 것이다.

2. 회장님의 초기 투자 후 에리카 김이 투자한다.

괜찮으시다면 이 사항들은 내일 만나 논의하고 확정하고 싶습니다.

김경준


이 두 문건을 근거로 한나라당은 크게 두 가지를 주장한다.

첫 번째. 2/7 meeting이라 써 있는 1번 메모를 근거로 이명박후보가 사업제안을 처음 받은 것은 2000년 2월 7일이라 주장한다. 고승덕 변호사의 말을 직접 빌리면 이렇다.

"2000년 초에 처음으로 사업상 접촉을 하기 때문에 BBK 투자자문의 설립에, 또 자본투자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김경준 씨 스스로의 메모에 의해서 객관적으로 증명됐습니다"

이 말을 해석하면 이런 뜻이다.

BBK는 이미 99년 4월 설립된 거 알지. 근데 이명박후보는 2000년 2월 7일에 가서야 처음으로 사업제안을 받았다니까. 거봐. BBK하고 이명박후보는 무관해요.

이어 고승덕변호사는 메모의 4번 항목인 '이명박씨 also wants to be 대표이사'라는 문구를 특히 강조하며 이렇게 주장한다.

"당초 김씨가 혼자 대표이사를 하려다 이 후보를 추가한 것으로 사실상 실무책임을 김씨가 지고 있었음을 스스로 자인한 것입니다"

이 말은,

이명박씨 also wants to be 대표이사'라는 문구는 원래는 김경준 혼자 하려고 했는데 나중에 이명박도 대표이사를 원했단 뜻이잖아. 그러니까 김경준이 이명박에게 사업제안을 한 거지. 즉 모든 일은 김경준이 주도해서 다 꾸민 거라니까. 이명박은 당한 거에요. 

요약하면, <이명박은 당한 거다> 딱 두 가지다. 그동안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걸 입증키 위한 물증 공개인 셈인데,

그런데 왜 이게 자해냐. 보자.


[ 한나라당 주장 ]

우선 이 제안은 LKe 사업을 최초로 제안한 메모라고 제시됐단 거, 이거 확실히 기억해두시라. 진도 나가다 보면 자꾸 헷갈린다. BBK가 아니라 LKe다.

1. 미팅일자

한나라당 주장은 뭐든 믿지 않는 일각에선 메모에 2/7로만 되어 있으니 2000년 2월7일이 아니라 1999년 2월 7일일 수도 있지 않느냐고 반론한다. 그럼 BBK 설립 전에 만난 게 되니까 그런 반론을 하는 건데. 그런데 이 메모는 한나라당 주장대로, 2000년 2월 7일 작성된 것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해 보인다.

왜냐.

편지 서두는,

라고 시작한다.

그런데 2000년 2월 7일을 확인해보면 마침 월요일이다. 그러니까 날짜의 앞뒤를 맞춰보면 2월 7일 월요일 만나 간단하게 메모했고 이틀 뒤인 2월 9일 수요일에는 당시 논의사항을 공식화해 비지니스레터를 보낸 것으로 보는 게 더 자연스럽다.

더구나 메모에서 언급됐던 내용들이 편지에서 구체적으로 정리되어 있고 또한 메모에 없던 몇 가지 내용도 update라는 표현으로 추가되어 있는 점을 볼 때 메모와 편지의 연속성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니 이 메모를 편지보다 무려 1년 전의 것으로 보는 건 무리가 있겠다.

물론 이 문건 공개 바로 다음날, 99년엔 한국에 있지도 않았다고 했던 게 에리카 김이 출입국기록만 떼봐도 간단하게 확인된다고 하자, 결국 한국에 몇 번 오긴 했다고 말을 뒤집긴 했다만, 오늘은 딴 길로 새지 말고 오로지 공개된 이 두 문건에만 계속 집중해 보자.

2. 이명박씨 also wants to be 대표이사

한나라당에선 이 문구 때문에 문건을 내놓은 거나 마찬가지다.

이 문구가 바로 김경준에 의해 사업이 주도됐단 증거란다. 그러니까 이명박씨도 또한(also)... 이란 표현에서 김경준이 이 사업을 자기 혼자 하려고 했었단 의미를 도출해 낸 건다. 그런데 이 문구에 대한 해석은 고승덕변호사의 이야기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물론,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문구는 김경준이나 김백준이(이명박 이외의 다른 사람들이) 이명박이 대표이사로 나서는 게 좋지 않겠냐고 하는 것에 이명박 본인 역시, 대표이사로 나서는 게 좋겠다고 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고승덕 변호사는 also의 의미를 이명박 '또한' 대표이사 '자리'를 원한다고 해석한 건데, 그게 아니라 이명박이 대표이사를 하는 게 좋겠다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동의'를 표시한 걸 수 있단 거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갑 : 이명박회장님이 대표이사 직접 하시는 게 좋지 않겠어.
을 : 글쎄 직접 나서는 건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을 텐데.
갑 : 아니 그래도 회장님이 직접 나서야 사업이 힘을 받지.
을 : 선거법위반 전력 때문에 금융사대표이사 하면 법적 문제 있지 않겠어.
갑 : 다른 사람들도 다들 회장님이 나서야 한데. 법적 문제는 내가 알아볼게.
을 : 알았어. 회장님한텐 내가 이야기해 볼게.

(며칠 후)

갑 : 그래 회장님한테 말해봤어?
을 : 회장님도 기왕 하는 거 직접 대표하는 게 좋겠다고 하시네.
갑 : OK... 그렇단 말이지. 메모 (회장님 also 대표이사를 원하신다... )

뭐 이런 상황에서 나온 메모일 수 있단 거다. 그렇게 해석하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이명박을 대표이사로 하네 마네 하는 이야기가 그 이전부터 있었단 소리가 되는 거다. 그리고 이렇게 해석하면 김경준이 원래 자기 혼자 대표이사를 하려고 했던 건지 아닌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러니까 이 문구 하나로 김경준이 모든 걸 주도한 거라고 단정하는 건 절대 객관적이지 않다.

그 문구 한 줄의 해석만을 가지고 따지자면 전혀 다른 해석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대표이사를 하고자 하는 여러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명박 본인이, 나도 거기 끼워줘 나도 대표이사를 하고 싶어..라고 말한 걸로 해석할 수도 있고, 대표이사는 이미 다른 사람으로 결정되어 있는 데 이명박이 나중에 아니야 나도 하고 싶어 했단 걸로 해석할 수도 있다. 


[ 오히려 의혹 ]

여기까지가 한나라당의 주장이다. 지금부터는 그런 주장을 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스스로 깨닫지도 못한 채, 스스로에게 가하고만, 자해를 살펴보자.

1. 설립일

한나라당 주장대로 2월7일 처음 LKe 사업제안 받고 이틀 후인 2월 9일, 이 편지를 받았다고 하자. 편지 맨 아랫부분을 보면, 이명박후보가 납입금 2월14일 준비하겠다고 했는데 확인해달란 문구가 있다.

사업 처음 제안하고 이틀 후에 정리해 보낸 편지에 이미 납입금 일주일 후 넣겠다고 했단 게 포함되어 있는 거다. 그럼 처음 사업제안 받자마자 20억 넣겠다고 했단 소리가 된다. 말이 되나.

월요일 만난 후, 메모나 편지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화요일도 만났고 통화도 했다고 치자. 그래도 사업제안 받고 하루 이틀 후 20억 넣는 거다. 제안받은 사업타당성 검토도 해야 하고 서로의 이해관계, 지분구조, 유상증자 일정 등을 따지고 조정하는 긴 과정을 거치기 마련인데, 처음 사업 제안받고, 바로 20억이나 넣겠다니. 게다가 최초 사업제안 받고 딱 열흘 만인 2월 18일 모든 걸 다 끝내고 회사정관까지 만들어 회사설립 마쳤다.

고승덕 변호사는 이에 대해서 비지니스 세계의 달인들이라서, 라고 해명했다. 그 해명을 듣고서 가만 생각해보면 더 웃긴 게 있다. 편지 첫 부분에,

"월요일 김백준 회장님과 만났다, 김백준 부회장님은 미팅 후 이어서 김희인 변호사님을 만나 회사정관과 주주계약의 세부사항을 논의했습니다."

라 되어 있다.

이 말은 첫 사업제안 받는 미팅 바로 뒤에, 무슨 제안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회사정관과 주주계약을 논의할 변호사 약속을 미리 잡아 뒀단 거다. 파하. 이건 비지니스 세계의 달인들이 아니라 예지 능력 갖춘 무속인들의 조우다.

더 웃긴 건 편지 그 뒷부분에,

변호사가 아예 회사정관을 최종 완성할 거란 문구가 나온다. 사업제안을 처음 듣고 아예 회사정관을 마무리해버리는 이 극강의 결단력.   

조금 더 웃긴 건 최초의 사업제안이란 게 찍찍 갈겨 쓴 종이 쪼가리 한 장이다. 하다못해 파워포인트 몇 장짜리 사업계획서라도 보여줘야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주지. 이거 보고 열흘 후에 20억짜리 회사 세웠단 걸 믿으라는 건가.

내 말 제발 믿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는, 자해지 이게.

2. Ebank-Korea

이게 또 재밌는 대목이다.

2월 7일 메모에 의하면 그날 도메인 네임이 정해졌다.

도메인 네임은 ebank-korea.co.kr / ebank-korea.com 으로 하기로.

한나라당 설명대로 첫 LKe 사업제안이라면, 김경준은 첫 사업제안 때 이미 도메인네임도 자기가 미리 정해 온 게 된다. 이명박 측이 사업제안도 받기 전에 도메인네임부터 정해서 자리에 나갔다는 건 말이 안되니까.

설령 도메인네임까지 정해서 사업제안을 했다 쳐도 그걸 듣고 일단 더 좋은 게 없는지 우리도 생각해보고 다음에 정하자고 하는 게 상식적이다. 그러니까 그 미팅에서 도메인네임이 정해졌단 건 그런 논의가 이미 이전부터 있어 오다가 그날 정했다고 보는 게 더 자연스러운 거다.

더 재밌는 건 회사 이름 바꾸자고 하는 메모다. 역시 이명박 측이 회사 이름 미리 정해갔다는 건 말이 안되니까 30대 젊은이가 한국의 유명 사업가에게 사업제안을 처음 하면서, 그것도 회사 자체를 상대방 돈으로 설립하면서, 회사 이름을 자기가 미리 정해 그 자리에 나왔다는 소리가 된다. 이 역시 상식적인 상황이 되려면 회사 이름에 대한 논의가 이미 그 전부터 있었는데 2월 7일엔 결정을 못 하고 일단 회사이름은 나중에 정하고 '공란'으로 두자고 한 것이 돼야 한다.

어쨌든 회사이름은 이 메모와 편지가 오갈 때까진 '공란'으로 두다가 최종적으로는 LKe로 결정되는 데, 여기서 조금 더 재밌는 건  LKe, EBK 등 모든 관계사를 아우르는 이명박 금융그룹의 명칭이 실제로 이 첫 사업제안 할 때 결정된 도메인네임처럼 Ebank-Korea가 됐단 점이다.

지금은 논란이 되자 바로 삭제되었지만 구글 검색페이지 캐쉬에 아직도 남아 있는 이명박후보의 공단선교센타에서의 프로필(새창으로 보기)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다.

이명박 장로

(사)아태환경NGO 한국본부 총재
(재)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
전 현대건설(주) 회장
제14,15대 국회의원
(주)eBANK-KOREA 회장
전 서울특별시 시장 

Ebank-Korea는 개별회사의 이름이 아니라 삼성그룹처럼 LKe, EBK 등을 계열사로 이명박후보가 추진했던 금융그룹 전체의 통칭이다.

이 금융그룹의 명함에, 자신과 절대 관계없다고 극구 부인하던 BBK가 명함 하단에 계열사로 기재되어 있어서 명함 논란이 일어난 것이고. (BBK를 본인이 세웠다고 하는 당시 이명박 인터뷰 기사 몇 개 있지만 그건 넘어가자. 당시 기자가 내 말을 오인했다, 소설 썼다 해버리면 입증방법이 없으니까.)

이명박후보의 LKe 비서, 서울시장 비서, 이명박 선거조직 안국포럼 출신인 이진영씨가 실제 사용됐다 증언한 영문명함

 

이진영씨의 증언기록

all the emplyee' business cards look like this. And these companies, that is to say BBK, LK ebank, ebank Securities - these companis - that is to say if you have a financial holding company, you have the securities company, the insurance company, and other financial companies under that holding company.

모든 사원들의 명함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이 회사들은 - BBK, LKe뱅크, e뱅크증권- 하나의 금융지주회사 아래 있는 증권사, 보험사, 금융회사입니다." - 2006년 8월28일 주한 미 대사관에서 미연방검사가 진행한 증인 심문내용

이장춘 전 대사가 2001년 5월 30일 이명박에게 직접 받았다고 주장하는 한글명함에도 BBK는 있다.

그러니까 도메인네임은 괜히 그렇게 된 게 아니라 Ebank-Korea라고 하는 전체 금융그룹의 이름이 정해졌기 때문에 도메인 네임도 그렇게 된 거란 소리다. 사실 이게 당연하다. 누가 도메인 네임 정하고 그룹 명칭 정하나. 그룹 명칭 나오고 도메인 네임 나오는 거지.

그러니까 여기서 갑자기 웃겨 지는 게, 사업제안 처음 하는 자리인데, 최종적인 그룹명칭은 그때 이미 정해졌단 거다. 하하, 웃기다. 그런데 여기서 더 웃긴 건 이 그룹명칭을 이명박후보가 정했단 기사가 존재한단 거다.


이 전 회장이 맡은 직함은 비상근 대표이사. 이전회장은 올 6월 설립 신청서를 내면서 상근직을 희망했지만 금감위가 "증권산업 인허가지침상 고객 보호를 위해 증권사 임원은 전문성과 건전성을 갖춰야 한다"며 제동을 걸었다.

이전회장이 증권사 경력이 없는데다 99년 7월 선거법위반으로 유죄(벌금 400만 원 형)가 확정돼 의원직을 잃은 점을 지적했던 것이다. 상근 대표이사는 지난 해 강원은행과 합병된 현대종금의 대표를 지냈던 김백준씨가 맡는다. 이전회장 주변인물은 "이회장이 e-뱅크라는 이름도 직접 짓는 등 증권업 진출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전했다. - <이명박씨 경제계 복귀, e뱅크 비상근대표이사 맡아> 동아일보 2000년 10월 13일


한나라당 주장이 맞으려면 첫 사업제안 때 김경준이 이미 최종적인 그룹명칭까지 정하고 그 명칭에 따른 도메인까지 정해와야 하는 건데, 어라 이걸 이명박후보가 정했다고 하네. 그럼 첫 사업제안 이전에 이명박후보가 텔레파시로 김경준에게 전해준 건가. 사업제안을 하려거든 이걸로 명칭을 정해 사업제안을 하거라... 여기서 그들은 비지니스들의 달인이 아니라 염력 비지니스의 달인이 된다. 어머 머쪄.

여기까지 진도 나가고 보면,

이 자리는 LKe 사업제안을 처음한 자리가 아니라 이명박 금융그룹 전체의 구도가 논의된 자리라고 추정하는 게 상식적이다. 첫 회사인 LKe의 이름은 그때까지 못 정한 채 공란이었지만, 금융그룹 전체의 명칭은 이미 나와 있었고 그 도메인도 정한 상태다. 그리고 금융그룹 전체의 명칭이 나와 있었다는 건, 금융그룹 전체의 구도를 이미 그때 논의하고 있었다고 봐야 하는 거고.

거봐, 자해 맞지.

3. 200억

그 다음이 더 이상하다.

편지 3번 항에서 이명박이 초기 200억을 투입하기로 되어 있단 말이 나온다. 20억이 아니다. 20억 이라면 LKe 자본납입급으로 이해하겠는데 200억이 무슨 말인가. 이게 20억의 자본납입금 총액을 의미하는 거라면 메모에서 흘려 쓴대로 paidin capital( 납입자본금)은 20억이라고 쓰면 간단하다.

그런데 여기선 당신이 200억을 투입하기로 했다고 썼다. 이거 투자전문가가 쓴 비지니스 레터다. billion 이란 단위를 잘못 알았단 건 말이 안 된다. 김경준, 영어 네이티브다. 더구나 투자제안과 회사설립에 관한 중요 내용이다. 읽어도 여러 번 읽고, 이 편지 보냈을 게다. 더구나 이 편지에서 딱 한 번 나오는 돈과 관련된 수치다. 

200억이 맞단 소리다.

그럼 한나라의 설명대로만 이해해보자.

월요일 김경준이 LKe 사업제안을 최초로 하는 자리에서 이명박 측에서 우리가 200억 투자할게, 했단 소리가 된다. 달랑 메모 쪼가리 한 장에 200억이라니. 화요일에 또 만나고 통화했다고 해도 사업제안 처음 받고 하루 만에 200억이라니.

이 미팅이 LKe 사업제안만을 하는 자리였다면, 200억이 아니라 당연히 30억 이야기가 나왔어야 정상이다. (LKe는 이명박의 20억으로 설립된 후, 이명박, 김경준 각각 30억씩 그리고 하나은행 5억으로 유상증자 된다)

그런데 30억 이야긴 없고 뜬금없이 웬 200억인가. 이 200억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진실은 당사자들밖에 모르겠으나 추정은 해볼 수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추정이란 걸 분명히 전제하자.

이 날 이후, BBK 관련해서 200억 규모의 돈이 실제 투자된 경우를 찾아보면 한 군데 나온다. 이명박후보의 형과 처남 소유 DAS가 BBK에 한 투자규모가 그에 근접한다. DAS는 LKe 회사설립 바로 다음달인 3월부터 총 190억을 BBK에 투자한다.

그런데 이게 또 참 재밌는 대목이다.

이명박후보는 이 DAS의 투자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나중에 문제가 된 뒤에야 알았다. 나중에 알아보니 김경준이 다스 사장과 직접 만나서 얘기를 했다고 한다. " -2007년 6월 10일 한겨레 인터뷰.


야, 이거 참 재밌다.

DAS는 이명박후보의 형과 처남이 소유한 회사다. 그런데 당시 이명박은 김경준과 동업을 막 시작한 시점이다. 종이쪼가리 한 장보고 20억을 열흘 만에 쏠 만큼 신뢰하는 동업자다. 

그런데 그 이명박 가족이 김경준 회사(BBK)에 무려 190억을 투자하는 데,

"매형, 요즘 김경준과 동업한다면서요. 그 사람이 우리한테 찾아 왔던 데 190억을 투자하래요. 그런데 그 김경준이란 사람 어떤 사람이에요? 믿을 만해요? 그 회사 괜찮은 거 맞아요?"

뭐 이런 거 한마디 이명박한테 물어보지 않고 이명박 동업자한테 투자했단 거다. 이게 말이 되나. 혹시 형과 처남은 김경준이 이명박과 동업하는 줄 몰랐다? 그럼 김경준이 DAS에 찾아가 자신한테 190억이나 투자하라고 하면서도 이명박과 동업사실을 일부러 숨겼단 건가. 미쳤나. 이명박과 이미 동업한다고 해야 더 신뢰를 얻을 텐데?

더구나 이명박후보가 말하는 "나중에 문제가 된 뒤.." 라는 건, 2001년 4월 허위공시 등의 혐의로 금감원으로부터 등록취소된 후를 의미한다. 그게 2001년 4월이다. DA가 BBK에 투자한 지 1년 1개월 후다. 그 긴 기간 동안 형도 처남도 김경준도 아무도 이명박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명박은 아무것도 몰랐다고 주장하는 거다.

이걸 믿으라는 건가 지금.

그래서,

DAS는 이명박 후보가 실소유주라는 의혹이 있는 거다. 하지만, 또 한 번, 여기서 멈추자. 거기까지 가면 조또 복잡해진다. 그러니 간단하게, 여기서 뜬금없이 등장하는 200억은 바로 이 DAS를 통한 BBK에 대한 투자규모라고 추정해 볼 순 있겠다.. 그런 추정도 불가능하지는 않겠다.. 그리고 만약 그런 추정이 맞다면, 이 LKe 사업제안 했단 날은 LKe 뿐 아니라 BBK에 대한 논의도 있었단 게 되는 거고. 하지만, 이 대목은 추정으로만 남겨두자. 검찰이 밝히겠지 뭐. 

어쨌거나 이 편지공개가 의혹해소는커녕 200억 이란 뜬금없는 액수를 등장시켜, 없던 의혹까지 만들어 내는, 매우 출중한 능력의 자해라는 것만은, 아주 분명하다.

4. 회사 정관

마지막으로 이상한 건 회사 정관이다. 이게 첫 미팅 이후 바로 결정됐단 건 그냥 넘어가자. 염력 비지니슨데 뭐.

주목할 건 메모 7번과 편지 4번.

메모와 편지에 동시에 등장하는, 이명박 혹은 이명박의 대리인이 참석하지 않으면 이사회가 무효라고 하고 조항이다. 이게 LKe 정관에만 등장한다면 하나도 안 이상하다. 이 날 그렇게 결정했으니까.

문제는 3개월 후인 2000년 5월 12일 BBK 정관도 이렇게 개정된다는 거다.

위 그림은 한겨레 2007.10.6일 기사로부터 쌔벼옴.

그동안 한나라당은 그 정관개정을 김경준이 혼자 위조했다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한나라당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증거라고 내놓은 문건에 이미 그 조항이 떡 하니 있는 거다.

어머 이거 자해잖아. 어떡해.

이 내용을 김경준이 처음 사업제안하면서 이명박 안심하라고 먼저 제안했을 수도 있고 거꾸로 김백준이 요구했을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이 내용을 둘이 함께 결정했다는 거다.

한나라당 주장처럼 김경준이 혼자서 3개월 후에 자기 회사의 정관을 자기가 위조했다면 김경준은 미친 거지. 아니 멀쩡한 자기 회사를 왜 이명박에게 의결권을 주는 걸로 바꾸냐고. 위조는 자신한테 이익이 있어야 하는 거다. 그런데 이 정관 개정은 이명박한테 이익을 주는 거다. 그런 위조를 왜 혼자 하고 자빠졌냐고. 당연히 이익을 보는 쪽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상식적인 거지. 그리고 BBK 정관이 그렇게 이명박 측 요청으로 바뀐 거라면 BBK가 이명박 소유라서 그랬다고 생각하는 게 상식적인 거고.

그게 아니면 혹시 2007년 대선승리를 위해 김대중정부가 2000년 5월에 BBK 정관에 그 문구를 심어 놓은 건가. 김경준을 포섭해서. 뭐 그럴지도 모르지.

종합하자면 김경준이 2000년 2월 7일에야 처음으로 LKe 사업제안을 했고 BBK는 이명박후보와 아무런 상관없단 걸 주장하려 내놓은 증거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금융그룹 전반에 대한 사업논의가 있었으며 이명박후보 또한 BBK와 연관, 매우 있어 보이더라.. 하는 물증 자해를 스스로 해버린 셈이 된 거라, 이거다.

거봐. 우끼잖아. 

오늘은 여기까지. 여기다 심텍이니 MAF니 옵셔널벤처스니 에이엠파파스니 하는 거까지 다루기 시작하면 훨씬 더 우끼기 시작하지만 그러자면 너무 복잡하게, 우끼다. 우끼는 건 최대한 심플하게 우끼는 게 예의다. 고로 여기까지만.

간만에 깔끔하게 우낄 수 있도록 전폭적 협조를 아끼지 않아 주신 한나라당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씀 전하고자 한다. 더 복잡하게 우끼는 건 또 상황 봐가면서 그때 가서.

자, 그럼, 오늘은 이만, 파하하.


원문링크 - http://www.ddanzi.com/articles/article_view.asp?installment_id=229&article_id=4112

 

'이면계약서' 액수, 李 계좌에 입급
  '49억9999만5000원'…끝자리까지 똑같아
 
  2007-11-24 오전 11:19:41
 
   
 
 
  "이명박이 LKe뱅크 대표이사 김경준에게 BBK 주식 61만 주를 49억9999만5000원에 판매한다"는 내용의 '한글 이면계약서'가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이명박 후보의 계좌에 같은 액수의 대금이 입금된 사실이 있어 파문이 예상된다. (관련기사 : 드러나는 'BBK 이면계약서', 그 내용은…)
  
  한나라당은 "한글 이면계약서는 위조된 것일 뿐"이라고 반박하고 있지만, 이는 김경준 씨 측의 주장에 더욱 힘을 싣는 것이라 주목된다.
  
  한나라 "경선 당시 의혹에 끼워 맞춘 것"
  
  '49억9999만5000원'을 둘러싼 논란은 지난 경선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근혜 전 대표 측 유승민 의원은 지난 8월10일 기자회견을 갖고 "BBK의 외환은행 계좌 입출금 내역에 의하면 이명박 후보 본인은 2001년 2월28일 BBK로부터 49억9999만5000원을 송금받았다"면서 "이 돈의 성격을 밝혀라"고 요구했었다.
  
  유 의원은 당시 외환은행 입출급 내역도 제시했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이 후보의 계좌에는 한글 이면계약서의 작성시점(2000년 2월21일)으로부터 1년 뒤 49억9999만5000원이 입금됐다. '한글 이면계약서'에 명시된 액수와 끝자리까지 똑같은 액수다.
  
  "송금자는 BBK, 송금시기는 2001년 2월28일, 이 입출금 내역은 김경준 씨와의 소송 과정에서 다스의 변호사(William Mills)가 2006년 10월30일 미국 법원에 제출한 것"이라는 것이 유 의원의 주장.
  
  이에 대해 당시 이 후보 측 박형준 대변인은 "BBK는 이 후보가 아니라 다스에 50억 원을 송금했을 뿐"이라며 "자료 자체가 조작된 것"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관련기사 : 朴측 BBK 논란 재점화..."李, 50억 송금 받아")
  
  그러나 이는 BBK가 다스의 투자금 190억 원 중 상환한 50억 원을 의미하는 것. 이 송금은 2001년 10월~12월 사이 이뤄졌던 것으로, 문제의 '49억9999만5000원'과는 성격이 달라 오히려 의혹을 키웠다.
  
  "다시 해명하라"는 유 의원의 재반박에 박 대변인은 "49억9999만5000원은 이명박 후보가 LKe뱅크 지분을 AM-papas에 양도하고 받은 대금으로 BBK와는 전혀 무관하다"면서 "BBK 계좌자료는 LKe뱅크 계좌를 사용해 합성한 조작"이라고 다시 해명했다.
  
  이 돈이 이 후보의 계좌에 입금된 사실은 맞지만, 송금주체는 BBK가 아니라 AM-papas라는 것이다. 그러다가 같은 시기 검찰이 '도곡동 땅'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논란은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은 채 유야무야됐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박형준 대변인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이미 경선 때 한 번 걸러진 문제가 아니냐"면서 "시기적으로 볼 때 김경준 씨 측이 억지로 경선 당시 나왔던 문제제기에 끼워 맞춘 것으로 보인다"고 해명했다.
   
 
  송호균/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0&uid=156947

네티즌이 만들어낸 BBK 총정리판
 
번호 156947  글쓴이 일산에서   조회 3215  누리 622 (622/0)  등록일 2007-11-24 09:25 대문 24 톡톡
 
 
 
 


이 글은 이런 분들을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1. 김경준의 BBK가 사기를 친 것은 알겠는데, 그게 이명박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궁금하신 분

2.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부인하고 있는데도 왜 BBK가 이렇게 시끄러운지 궁금하신 분

3. 이명박이 과연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궁금하신 분

간단히 말해, "BBK 주식 한 주도 없다"는 (이명박의) 주장과, "이명박은 BBK의 실소유주"라는 주장 중 어느 쪽이 옳은지 살펴보기 위한 목적입니다.

단, 이명박이 사기꾼이고 거짓말쟁이라 해도 무조건 찍겠다는 분들은 이 글을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평생 그렇게 사세요.

 

이 글은 각종 언론을 통해 공개된 자료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여기의 모든 그림과 사진은 인터넷을 통해 구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제시될 대부분, 아니 모든 자료가 이명박의 주장(또는 해명)과 상반됩니다. 따라서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나름대로 반박을 하거나 무시하고 있습니다. 가능하면 그 반박도 소개하겠습니다.

판단은 이 글을 읽는 분의 몫입니다.

 

이 글은 1차 자료의 제시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여기 실린 것들은 대부분 관련 서류에 대한 사진 자료입니다. 서류 자체가 조작되었을 가능성은 있겠지만, "그런 건 없다, 엉터리다."고 무시할 수는 없는 증거들입니다. 이들 자료 말고도 수많은 증거와 주장들이 있습니다만 (특히 투자 자금의 흐름) 그런 부분들은 다루지 않았습니다.

이 글이 모든 의문을 해결해 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직접 눈으로 보고, 판단하십시길 바랍니다.

 


1. BBK가 왜 문제가 되는가?

 

먼저 김연수님이 만든, "대통령 이명박, 괜찮을까" 의 BBK 부분을 대충 보시길 부탁합니다. BBK가 어떤 나쁜 일을 저질렀는지, 왜 이명박이 BBK와 연루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BBK 또는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사건에 대해 알고 계시다면 지나쳐도 상관없습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BBK 사건이란 김경준의 투자자문회사 BBK가 여러 곳으로부터 받은 투자금으로 MAF라는 펀드를 설립하고, 이 펀드를 동원하여 옵셔널벤처스를 인수하고 주가조작을 하다가, 김경준이 회삿돈 3백여억원을 횡령하여 미국으로 도주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수천명의 소액투자자들이 피해를 보았다. 그런데 이명박과 김경준이 공동으로 설립한 회사인 LKe뱅크가 BBK를 실제로 소유, 운영했다는 증거와 주장이 제기되는데, 이명박은 "나도 김경준에게 사기당한 피해자"라면서 "BBK 주식을 한 주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이명박은 BBK와 무관할까?


2. 이명박과 BBK의 관계

다음의 시간표를 살펴보자. 일차적으로 문제가 되는 시기는 LKe뱅크가 설립된 2000년2월부터 김경준이 미국으로 도피한 2001년12월까지이다.

참고: http://www.vop.co.kr/new/news_view.html?serial=91134

여러 가지 자료를 통해 이명박과 김경준, 그리고 BBK의 관계를 살펴보자.

 

(1) 이명박과 김경준

왼쪽은 김경준, 오른쪽 사진은 1994년4월, LA한인교회에서 찍은 이명박과 에리카 김(김경준의 누나)

 

김경준은 1999년4월 자산관리회사 BBK를 설립했다. 

이명박은 1999년12월 귀국하여, 2000년1월에 김경준을 처음 만났다고 한다. 다음은 한나라당이 공개한 그 증거자료들.

2000년2월7일 김경준이 김백준(이명박의 이른바 '집사')과 만나 작성한 메모라고 한다.

"4) 이명박씨 also wants to be 대표이사."라는 부분이 있다.

한나라당은 김경준이 이명박을 대표이사로 추천한 내용이라고 말하지만, 상식적으로 "이명박씨가 대표이사가 되고싶어 한다"는 내용으로 해석된다.

또한 인터넷 도메인명을 ebank-korea.co.kr과 ebank-korea.com으로 정하고 있다 (뒤에 이명박과 eBank-Korea의 관계를 밝힐 때 참고).

2000년2월9일, 이명박이 주장하는 김경준의 첫번째 사업 제안 메일

여기서 "20 billion KRW"(200억원)이 앞의 메모의 20억원과 다르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여기서는 다루지 않는다.

한나라당에서 이어 공개한 김경준의 편지이다. 2000년1월20일 이명박과 김백준이 BBK 사무실을 방문했다는 내용이 있다.

(앞서 2월7일 메모가 최초 사업제안이라면 이 편지는 무엇일까? 김경준이 김백준과 최초 사업제안을 두고 미팅을 하기도 전에 이명박, 김백준은 BBK를 방문했다는 얘기다.)

이들 편지를 근거로 이 때 (2000년1월) 이명박이 김경준을 처음 만났다고 하는데 사실 그런 내용은 없다. 다만 BBK 사무실을 처음 방문했을 가능성은 있다.

물론 이들 편지가 이명박과 BBK가 무관함을 증명하지도 않는다. 이명박과 BBK의 관계가 의심되는 부분은 이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어쨌든 그 결과 이명박과 김경준의 LKe뱅크가 2000년2월18일에 설립된다. 처음 만난지 겨우 한달 보름만이다.

참고: http://www.e-goodnews.co.kr/sub_read.html?uid=80294

그 뒤로 금감원이 BBK의 불법을 조사하면서 수사가 LKe뱅크로 향하던 2001년4월, 이명박이 LKe뱅크 대표를 사임할 때까지 이들의 '공식적'인 관계는 지속되었다.

2001년4월18일, 이명박이 LKe뱅크 대표이사를 사임하는 주총의사록.

신임 임원들은 명의가 도용되었거나 가공의 인물이다.

이명박은 이 의사록이 자신의 직인을 가지고 있던 김경준에 의해 임의로 작성되었다고 주장한다.

참고: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47526.html

 

2000년12월, MBC 경제매거진 - 김경준과 이명박, 이명박은 박영선 의원과 BBK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2) LKe뱅크와 BBK

BBK의 불법과 범죄에 왜 LKe뱅크가 관련이 될까? 그것은 (이명박 회장의) LKe뱅크가 BBK를 소유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증거는 2000년6월 하나은행의 LKe뱅크 투자 검토 문서이다.

LKe뱅크가 김경준, 이명박의 소유라는 것, 그리고 BBK를 100% 소유하고 있다는 내용이 있다.

여기서 "700억원 규모의 Hedge Fund"는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에 동원된 BBK의 MAF펀드를 의미한다.

그리고 투자계약서에는 이명박의 도장과 서명도 있다.

하나은행은 이에 대해 김경준의 설명만을 토대로 작성된 것으로 실제와는 다를 수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 계약 전 5월달 두 번(3일, 15일)의 투자설명회에는 김백준(당시 LKe뱅크 부회장)도 참석했다.

 

왼쪽은 김경준의 BBK 소유를 증명한다고 하는 문서로 한나라당이 내놓은 것이다.

2001년3월 금감원에 김경준이 답변한 것으로, BBK는 김경준이 100% 소유하고 있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이 자료는 (주)다스(이명박의 형 이상은과 처남 김재정이 대주주인 회사, BBK에 투자)에서 나온 자료임이 나중에 밝혀졌다.

금감원은 이 문서에 대해 확인을 거부했고, 미국 법원에서도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다.

(다른 사안에 대해 김경준의 주장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김경준의 답변을 증거로 들고 나온 점이 아이러니하다.)

참고: http://www.pressian.com/s/section/article.asp?article_num=20071029180257

 

LKe뱅크와 BBK, 즉 이명박과 BBK의 관계를 나타내는 자료는 더 있다.

 

(3) 이명박의 인터뷰에 나오는 BBK

이코노미스트 2000년10월22일

조인스 2000년10월

(4) eBank-Korea(회장 이명박)와 BBK
eBank-Korea는 LKe뱅크를 의미하며, 한나라당이 제시한 김경준의 2000년2월7일 메모에도 등장한다. 따라서 LKe와 eBank-Korea의 실체는 같다. 그런데 eBank-Korea라는 회사는 BBK와 eBank 증권중개 등을 묶어 부르던 것으로 지주회사와 그룹명으로 사용되었다.

매일경제 2000년10월18일

 

 

공단선교센타 홈페이지(http://www.izmc.net)에서 (주)eBANK-KOREA 회장이란 직함이 나온다.

그러나 오늘 오전경에 삭제되었다. 자문위원단 명단에도 아래와 같은 프로필이 적혀 있었으나 마찬가지로 11월21일 이전에 삭제됨.

 

eBank-Korea, 즉 LKe뱅크와 BBK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이명박의 명함이다.

 

이명박의 명함. BBK가 나온다.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장춘 전 대사가 2001년 이명박에게 직접 받은 명함.
참고: 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20674&C_CC=AZ
명함에 대한 이진영(LKe뱅크에서 이명박의 비서)의 증언
"그러나 모든 사원들의 명함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 회사들(BBK, LKe뱅크, e뱅크증권)은 하나의 금융지주회사에 속한 증권사, 보험사, 금융회사 같은 관계입니다."
이진영은 LKe뱅크 직원(2000년5월 입사)이면서 BBK, MAF, 옵셔널벤처스와 관련된 업무를 2001년12월까지 수행했다. 
각종 홍보책자를 보면 eBank-Korea와 BBK의 관계가 더 분명해진다.

다른 명함과 eBank-Korea 홍보책자(2000년11월13일). BBK가 자회사로 나온다. 가려진 부분은 다음과 같다.

MAF(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에 동원된 BBK의 펀드) 홍보책자에도 김경준과 함께 이명박이 나온다.

아래쪽 문답은 오른쪽 홍보책자(eBank-Korea 브로슈어)에 대해 이명박의 비서였던 이진영이 진술한 내용이다.

 

또다른 eBank-Korea 소개책자에도 이명박과 김경준의 LKe뱅크가 지주회사로 나와 있고,

자회사로 MAF(Millennium Arbitrage Fund)를 운영하는 BBK가 언급된다.

 

또한 BBK 정관에도 이명박의 의결권에 대한 언급이 있다.

2000년5월12일 BBK는 정관을 개정하여 이명박의 의결권을 명시한다.

이명박은 정관 개정을 위한 주총 관련 서류가 없으므로 이를 조작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제의 조항은 LKe뱅크와 e뱅크 증권중개의 정관에도 동일하게 존재하며 세 회사의 정관은 대부분 일치한다.

참고: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245874.html

 

(5) 기타 자료들 

 

2001년8월27일 김경준이 (주)다스(당시 대부기공) 김성우 사장에게 보낸 편지 (다스가 미국 법정증거로 제출)

"이명박은 그 펀드(MAF)에 큰 관심을 보였고, 그 펀드는 지금 이명박이 소유하고 있는 회사에 의해 직접 관리, 운영됩니다.

그의 요구에 의해 대부(다스)는 그 펀드에 가입했습니다. 펀드의 가입과 운영에 대한 모든 보고는 이명박에게 보고, 확인됩니다."

이 편지에 대해 이명박은 김경준의 일방적 주장일 뿐이라고 말한다.

참고: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245875.html

2001년11월2일 이명박이 김경준에게 보낸 서류. 왼쪽은 이명박의 재산에 대한 가압류 서류.

당시 BBK에 투자했던 (주)심텍의 소송으로 인해 법원은 이명박의 재산에 대한 가압류 결정을 내렸다.

(법원은 가압류 요청에 대해 BBK에서 이명박의 지위를 소명하라고 했고, 심텍이 자료를 보완하자 가압류를 받아들였다.)

이 가압류는 김경준이 미국으로 도주하기 전에 돈을 갚자 해제되었다.

이명박은 당내 검증청문회에서 서명 사실을 부인했다.

참고: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245871.html

 

2002년7월20일 김백준이 이명박을 대신하여("On behalf of M.B. Lee") 에리카 김에게 보낸 편지.

"이명박이 대부(다스의 전신)의 (MAF에 대한) 투자회수와 하나은행의 (LKe뱅크에 대한) 투자상환 때문에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이 표현은 이명박이 MAF를 운영한 BBK의 문제에 관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명박 측에서는 다스의 형(이상은)의 손실이 커 입장이 안타깝고 곤란하다는 뜻을 전한 정도일 뿐이라고 했다.

참고: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2755900

 

(6) 이면계약서?

김경준의 귀국과 함께 이명박의 BBK 소유를 증명할 이면계약서의 존재가 쟁점이 되고 있다.

위 사진의 한글 계약서는 아직 그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LKe뱅크가 설립되는 2000년2월경의 것이다.

만약 그 내용에 에리카 김의 주장대로 "이명박씨가 소유하고 있는 BBK 주식"이란 표현이 있다면?

물론 이명박은 자신의 서명이 위조되었다고 주장할 것이다.

참고 (에리카 김 인터뷰):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251920.html


3. 요약 및 결론

수많은 증거들은 이명박이 BBK와 무관하지 않음을 드러냅니다.

(1) 이명박은 LKe뱅크 설립을 준비한 2000년1월 이전부터 김경준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BBK 설립에 관여).

그리고 그 이후에는 BBK(옵셔널벤처스) 사건으로 김경준이 미국으로 도피하기 전까지 동업자였습니다.

(2) 이명박과 김경준의 LKe뱅크(eBank-Korea)는 BBK를 포함한 여러 회사들의 지주회사였습니다.

따라서 BBK와 MAF의 운영, 그리고 주가조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3) BBK 사건 이후 이명박은 주요 투자자들의 손해를 보상하느라 어려운 처지에 놓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런 사실을 뒷받침하는 모든 증거들에 대해 이명박의 주장은 간단합니다.

- BBK는 김경준의 것이고, LKe뱅크는 BBK와 무관하다.

- 인터뷰에서 (BBK를 설립했다는 등의)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 직인은 김경준이 가지고 있었고, 서류와 서명은 조작되었다.

- 명함과 홍보책자 등은 김경준이 임의로 만든 것이다.

- 김경준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

 

오늘(2007년11월22일) BBK의 진실에 대한 100분 토론이 한나라당의 거부로 취소되었다고 합니다.

MBC가 에리카 김의 인터뷰를 방송한 것에 대한 대응이라고 하네요.

한나라당은 앞으로도 BBK 관련 TV 토론에는 일체 응하지 않을 것이랍니다.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어느 쪽을 믿으시겠습니까?

 

출처 아고라 - http://docs.google.com/View?docid=dff9cdbg_36fjp2tr

 

ⓒ 일산에서

이명박 전과 및 고소 고발 기록 대공개 ! (펌)
 
번호 158420  글쓴이 상식과원칙   조회 4176  누리 860 (865/5)  등록일 2007-11-26 18:48 대문 10 톡톡
 
 
 
 


생각보다 별로 없네 라고 생각하는 나에 대해 깜작 놀랐다.


▣ 언론을 통해 본 이명박 후보의 범죄 기록 및 의혹들
 

1. 건축법위반 - 구속, 1972-06-19 (경향 7면)

매머드빌딩 불법건축 관련 공개 수배된 뒤 구속. 용산구 회사부지에 차고를 무허가로 건축한 혐의. (72.6.19 서울지검)

2. 건축법 위반 - 고발, 1990-01-07 (한국 14면)

울산 남구청, 무허가 건물 11동(연건평 2천5백평방미터)을 지어 사용해온 혐의로 고발. (90.1.6 부산지검 울산지청)

3. 도시공원법 도시계획법 위반 - 고발, 1990-09-05 (국민 14면)

전북 군산시, 아파트 공사하면서 인근 공원녹지 무단 훼손. (90.9.4 군산경찰서 고발조치)

4. 업무방해 및 폭력처벌법 위반 - 고소, 1990-12-06 (동아 15면)

현대건설 노조, 노조가 채용한 나기주(당시 30세) 노보편집위원의 노조사무실 출입을 현대건설 경비원과 청원경찰을 동원해 저지, 노조업무 수행 방해. 회사측은 나씨가 집단폭행 당했다고 주장. (90.12.6 종로경찰서에 고소)

5. 근로기준법 위반 - 불구속입건, 1991-06-14 (동아 14면)

부당하게 전직발령된 그룹통합홍보실 사보편집 담당직원인 김석기씨(당시 32세, 여)에 대한 노동부의 원직복직명령을 받고도 이를 이행하지 않은 혐의로 고발. (91.06.14 서울지방노동청) 

6. 건축법위반 - 약식기소, 1992-08-23 (경향 23면)

91년 12월부터 92년 4월초까지 서울 서초구 서초동 법원청사 앞에 있는 자신 소유의 영포빌딩 2층과 5층을 허가용도인 근린시설과는 달리 사무실로 임대, 지하주차장 2백평도 창고로 용도변경 불법 사용. (92.7.8 서울지검 형사1부 韓武根검사) 

7. 수뢰의혹, 1993-06-30 (연합)

검찰에 따르면 美林건설 대표 安씨는 지난 91년 당시 부산시 주택기획계장 朴昌範씨(40.구속.부산시의회 전문위원)에게 2천8백50만원, ㈜현대건설 부산지사장 金南鍾씨(48.구속.현대건설 총무이사)를 통해 부산시 주택기획과장 金性一씨(수배)에게 3천만원을 건넨 것 외에 부산시 柳모국장도 5백만원을 받은 혐의를 잡고 柳국장을 소환,조사키로 했다는 것.

검찰은 또 柳국장 등 고위 공무원들의 수뢰 근거로 지난 91년 6월 대표 安씨가 金이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현대건설 사장 李明博씨 등 명의의 통장에 2억여원을 온라인으로 송금했고 아파트 사업승인을 받기 위해 부산시 주택국장,주택과장 등에 모두 15억원 상당의 로비자금을 뿌렸다"는 내용을 공개. (93.06.30 부산지검 동부지청)

8. 범인도피/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위반 - 불구속 기소, 1996-10-10 (경향 0면)

김유찬씨 해외도피 전날 이광철 비서관을 통해 도피자금조로 1천5백만원을 제공한 혐의.

4·11 총선기간동안 모두 1억7천9백만원을 선거비용으로 사용, 법정선거비용보다 8천4백만원을 초과 지출한 혐의. (96.10.9 서울지검 공안1부 金在琪 부장검사)

9. 선거법 위반 혐의 - 검찰 구형, 1997-07-26 (서울경제 23면)

4·11 총선 당시 법정선거비용 초과지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이명박 피고인에게 공직선거 및 부정선거방지법위반 혐의를 적용, 2년 구형. (97.7.25 서울지검 공안1부 주성영검사)

10. 선거법 위반 혐의 1심, 1997-09-11 (연합)

15대총선 당시 법정선거비용을 초과지출한 혐의 등으로 불구속기소돼 징역 2년이 구형된 신한국당 李明博의원에게 공직선거및 부정선거방지법위반죄를 적용,벌금 7백만원을 선고. 판결문에서 "총선당시 여론조사 비용과 홍보요원및 자원봉사자들에게 지급한 금품 등 일부 비용 지출은 증거가 없어 무죄이나 나머지 법정선거비용 초과 지출 부분과 범인은닉 등의 혐의는 모두 유죄로 인정"(97.9.11 서울지법 형사합의23부 재판장 崔世模부장판사)

11. 선거법 위반 혐의 항소심, 1998-04-28 (연합)

- 지난 96년 4.11 총선 당시 선거비용을 초과지출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벌금 7백만원을 선고받은 한나라당 李明博 전의원에 대한 항소심에서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위반죄를 적용,벌금 4백만원을 선고

- 재판부는 이와는 별도로 李 전의원이 자신의 전 비서관 金裕瓚씨를 해외로 도피시킨 혐의에 대해 범인도피죄를 적용,벌금 3백만원을 선고 (1998.4.28 서울고법 형사10부 재판장 金大煥부장판사)

- 여론조사 비용을 형이 지출했다는 부분은 무죄

12. 선거법 위반 혐의 상고심, 1999-04-09 (연합)

지난 96년 4.11총선당시 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한나라당 이명박(李明博) 전 의원에 대한 상고심에서 벌금 4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총선당시 여론조사는 비록 이 전 의원의 형이 실시한 것이지만 이는 이 전 의원의 선거활동의 연장선상으로 선거비용 초과지출에 해당한다"며 "단지 이 전 의원의 형이 여론조사 비용을 지출했다는 점만으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의 판단은 잘못됐다"고 밝혔다. [ 대법원 형사2부 주심 이용훈(李容勳)대법관 ]
 
13. 선거법 위반 혐의 파기환송심, 1999-07-07 (연합)

한나라당 이명박(李明博) 전 의원에 대한 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원심대로 벌금 4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총선 당시 여론조사는 비록 피고인의 형이 실시한 것이지만 이는 선거활동의 연장선상으로 선거비용 초과지출에 해당하는 만큼 유죄"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자원봉사자들에게 줄 식비를 식당 주인에게 교부한 부분은 유죄 입증 자료가 부족하므로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여론조사 및 자원봉사자 식비 부분과 관련한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으로 형량은 그대로 유지 [ 1999.7.7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권남혁(權南赫)부장판사 ]

14. 사기혐의 - 고소, 2001-11-06 (서울경제)

심텍이 BBK투자자문에 맡긴 거액의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며 이명박 전 의원과 김경준 전 사장을 사기혐의로 고소
 
15. 선거법 위반 - 불구속 기소, 2002-11-20 (문화 0면)

02년 1월 말 '절망이라지만 나는 희망이 보인다'는 저서에 대한 출편기념회를 가진 뒤 자신의 친필 서명이 인쇄된 홍보 유인물 9만1천부를 측근 통해 불법 배부한 혐의. 6차례 소환통보에 불응해 결국 불구속 기소 (02.11.22 서울지검 공안1부 박철준 부장검사)

16. 선거법 위반 - 고발, 2002-12-16 (연합)

이 시장이 행정수도 이전 공약에 반대 입장을 천명하고, 시정연구원을 통해 행정수도 이전에 최소 54조원이 소요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게 하는 등 대선에 개입.

이낙연(李洛淵) 대변인은 "이 시장은 본인이 직접 나서거나, 시정연구원이라는 단체를 시켜서 선거에 개입했다"며 "서울, 경기, 인천에서 시도의원과 광역자치단체 의원들이 행정수도 이전 반대에 동원됐고, 전국적으로 지방자치단체 조직이 선거에 동원되고 있다"고 말했다.(민주당)

17. 선거법 위반 - 검찰 2년 구형, 2003-09-02 (연합)

2일 작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 사건에 대해 징역 2년 구형 (서울지검 공안1부오세헌 부장검사)

18. 선거법 위반 - 1심 무죄, 2003-10-07 (연합)

위 검찰의 구형에 대해 무죄선고 (서울지법 형사합의23부 재판장 김병운 부장판사)

19. 선거법 위반 - 항소심 무죄, 2004-02-03 (연합)

서울고법 형사10부 재판장 오세립  부장판사
 
20. 선거법 위반 - 상고심 무죄, 2004-10-15 (연합)

대법원 3부 주심 고현철 대법관

21. 무고 혐의 - 고소, 2007-03-12 (연합)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출생지 의혹을 제기하다 이 전 시장의 캠프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당한 지만원(시스템클럽 소장)씨가 12일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상대로 맞고소. (07.3.12 서울중앙지검)

22. 명예훼손 혐의 - 고소, 2007-07-10 (한겨레)

- 열린우리당 김혁규 의원과 김종률 의원은 10일 명예훼손과 모욕 혐의로 한나라당의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이 전 시장 캠프의 박형준 의원을 검찰에 고소

- 김종률 의원 "자신들도 인정한 자료를 근거로 이 전 시장의 위장전입 사실을 밝혔을 뿐인데, 허위사실을 폭로했다고 공개석상에서 김혁규 의원의 인격을 모독하고 명예를 훼손했다" (07.7.10 서울중앙지검)

23. 이명박 사조직 희망세상21 산악회 회장 등 - 구속영장 청구, 2007-07-31 (연합)

김 씨 등은 지난해 6월∼올해 5월 전국 10여 개 지부, 200여 개 지회를 가진 산악회를 결성한 뒤 회비를 납부하는 '책임회원' 6만 명을 모집했으며, 이 전 시장 지지를 위해 사전선거운동을 한 혐의
 
24. 공직자윤리법위반 - 검찰 내사중, 2007-08-16 (머니투데이)

박근혜측 ㈜다스 주식과 관련, 김재정 씨와 이상은 씨를 통해 차명보유하면서 '백지신탁'(공직자가 재산 관리·처분을 제3자에게 맡기는 것) 규정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 (서울중앙지검내사 중이라고 주장)
 
25. 명예훼손 혐의 - 고소, 2007-09-07 (연합)

한나라당이 국정원ㆍ국세청의 `이명박 후보 죽이기' 공작정치가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배후로 청와대를 지목한데 대해 이 후보와 이재오 최고위원, 안상수 원내대표, 박계동 공작정치분쇄 범국민투쟁위원장을 명예훼손 및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 (07.09.07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

26. 증권거래법 위반 - 고발, 2007-11-05 (연합)

이 후보가 김경준씨와 함께 지난 2000년에 설립한 LKe뱅크와 BBK, 역외펀드인 MAF 등의 법인계좌 38개를 이용, 107회에 걸쳐 가장매매와 고가매수 등을 통해 옵셔널벤처스코리아 주가를 2천원에서 8천원으로 올려 막대한 시세차익을 거둔 혐의 (07.11.5 대검찰청)
 
27. 증여세 탈루 의혹 - 세무조사 및 검찰 고발 요구서, 2007-11-14 (연합)

이원영.강기정.이상경 의원 등 대통합민주신당 의원들은 이날 국세청을 방문, "이 후보 자녀의 위장취업 의혹과 관련해 이 후보 소유의 서초동 건물 관리회사에 대해 현장 조사한 결과, 지하 3층에 위치한 관리 사무실은 비좁고 열악해 이 후보의 자녀가 실제로 근무했을 가능성은 없었다", "이 후보가 자녀를 빌딩관리 직원으로 위장 채용한 것은 전형적인 증여세 탈루 수단"이라며 "국세청에 세무조사를 요청한다"

28. 수뢰/직권남용 - 고발, 2006-03-22

- 열린우리당 ①"이 시장은 전 서울시테니스협회장 선모씨와 서울시 체육회 부회장 이모씨로부터 2003년 3월부터 작년 말까지 주말 황금시간대에 50차례에 걸쳐 남산실내테니스장을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부당 이익을 제공받은 뒤 선씨 등으로부터 청탁을 받은 혐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②"이 시장은 또 이씨를 서울시 체육회 부회장으로 임명하고 올해 서울시 지원금을 작년에 비해 82억원을 늘린 173억원으로 책정하고, 서울시체육회에 운영권을 맡길 의도로 학교용지인 잠원동 일대에 실내테니스장을 건축하는 등 부정한 행위를 한 혐의도 있다"고 덧붙였다.

③"이 시장은 학교용지가 해제되지 않은 상태인데도 실내테니스장을 마치 가건축물인 것처럼 둔갑시켜 서초구청장에게 테니스장 건축을 허가하도록 하는 등 직권남용을 한 혐의도 있다"고 지적했다.

- 민노당 ①서울시당 등도 별도로 제출한 고발장에서 "이 시장이 잠원동 테니스장 운영권과 관련한 로비의혹을 받고 있는 선 전 협회장측으로부터 남산 테니스장 사용료 2천만원을 대납받았다는 의혹이 있다. 이런 의혹이 사실이라면 특가법상 뇌물죄에 해당하므로 조사를 통해 직무관련성이 있는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②"서울시와 서초구가 세금 54억원을 투입해 잠원동 테니스장을 건립하는 과정에서 이 시장이 가설건축물 규정의 미비점을 이용, 학교 부지 해제절차를 피하도록 부하 직원들에게 부당한 명령을 함으로써 직권남용을 했거나 직무를 유기한 혐의도 있다"(서울중앙지검)

29. 성매매특별법 위반 - 여성단체 사퇴촉구 성명, 2007-11-21

- 전국여성연대는 "서울 서초구 양재동 이명박 후보 소유의 영일빌딩에서 여성 종업원을 고용한 유흥주점(섹시클럽)이 성업 중이며 관리업체인 대명통상 직원들이 여성 종업원들의 성매매를 협조하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성매매특별법에 따라 성매매 건물소유주나 토지주는 형사 처벌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 (※사퇴촉구 성명일뿐 아직 고소·고발하지 않았음)

 

ⓒ 상식과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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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리트 가든 단풍이 보고 싶어 눈물이 나요&quot;

 

 

시크리트 가든 단풍이 보고 싶어 눈물이 나요"
늦가을 단풍에 불타오르는 창덕궁과 비원
최오균 (challaok)
 
 
  
▲ 창덕궁 후원 애련지의 불타는 단풍 창덕궁 후원의 단풍은 그 어느 곳의 단풍보다도 곱고 아름답다
ⓒ 최오균
창덕궁의 단풍

 

돈화문과 삿갓 은행나무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보아도 우리나라 가을은 너무나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파란 물이 뚝 떨어질 것만 같은 하늘과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단풍! 해마다 보는 가을풍경이지만, 이번 가을은 우리나라와 계절이 정 반대인 호주의 최남단 태즈마니아 여행에서 돌아와서인지, 인천공항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사방에 활활 타 오르는 울긋불긋한 단풍에 취해 정신이 아찔할 정도입니다. 남극권에 있는 태즈마니아는 지금 봄이 한창인지라 꽃들이 천지를 이루고 있는 데 반해, 서울의 거리는 활활 타오르는 마지막 늦가을 단풍으로 뒤덮여 별천지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단풍의 진수를 더 느껴보기 위해 어디 멀리 갈 것도 없이 곧 바로 창덕궁 후원을 찾았습니다. 창덕궁 후원은 비원(秘苑-Secret Garden)이라 불려온 곳으로, 문화재청이 선정한 '단풍 아름다운 유적지 7곳' 중에서 최고로 꼽는 고궁입니다. 돈화문으로 가까이 갈수록 샛노란 은행잎이 금화처럼 거리에 뚝뚝 떨어지며 휘날리고 있습니다. 찻집에 걸려 있는 붉은 고추와 강냉이도 예사롭지 않게 보입니다.

 
  
▲ 돈화문 매표소 앞의 은행나무 마치 노란 삿갓을 뒤집어 쓰고 있어 궐 밖을 주유하는 김삿갓을 연상케 한다.
ⓒ 최오균
은행나무 단풍

 

돈화문에서부터 창덕궁은 한국 최고 고궁답게 사람을 압도하고 맙니다. 고풍스런 담장 너머로 붉은 단풍이 활활 타오르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큰 덕은 백성들을 가르치어 감화시킴을 도탑게 한다'는 중용의 돈화(敦化)사상을 지니고 있는 돈화문. 그 돈화문 매표소 앞에 서 있는 오래된 은행나무는 마치 삿갓을 뒤집어 쓴 것처럼 샛노란 은행잎을 덮어 쓴 채 궁궐 밖에 표표히 서 있습니다. 이 은행나무를 볼 때마다 궐 밖에서 주유하는 방랑시인 김삿갓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요? 카페에는 주막의 막걸리 대신 커피향이 물씬 풍겨나고 있습니다.


돈화문을 지나 금천교에 이르니 새빨간 단풍나무와 노란 단풍나무 두 그루가 극적인 대조를 이루며 진선문을 가리고 있습니다. 금천교는 돌다리 아래 비단 같이 맑은 물이 흐른다 하여 지어진 이름인데, 물은 흐르지 않고 대신 비단보다 더 고운 단풍들이 금천교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멀리 인정전과 선정전을 비단처럼 감고 있는 단풍 숲이 기와지붕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궁궐에 남아 있는 유일한 청기와 지붕인 선정전의 짙푸른 청기와가 단풍과 어울려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편전에서 일월오악도를 배경으로 중앙에 앉아 가을 단풍을 바라보며 국사를 논의하던 임금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용마루가 있으면 두 용이 충돌한다 하여 설치하지 않았다는 대조전 지붕도 결국 불에 타 버려 경복궁의 교태전을 옮겨다 지었다는데, 그 지붕 위에도 단풍이 활활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 금천교를 장식하고 있는 단풍나무 노랗고 빨간 두 그루의 단풍나무가 대조를 이루고 있다.
ⓒ 최오균
금천교의 단풍

 

정조의 개혁의지와 한이 서려 있는 부용지에는 낙엽만 휘날리고...


창덕궁 단풍은 후원에 들어서자 그 진가를 더욱 발휘하고 있습니다. 후원으로 통하는 길에 들어서니 붉은 단풍이 기염을 토하며 담장 위에서 붉게 타오르고 있습니다.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은 차마 입을 다물지 못하고 얼이 빠진 듯 타오르는 단풍을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뒤돌아보면 마치 불길이 하늘에서 내려와 모든 궁궐을 집어 삼킬 듯한 기세로 단풍의 물결이 출렁거리고 있습니다. 때마침 불어오는 가을바람은 단풍의 불길을 더욱 거세게 부채질 하고 있습니다.


안내원의 성화에 못 이겨 겨우 발길을 돌려 고개를 넘어서니 그곳엔 또 다른 별천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만치 너른 연못과 연못 주변을 감싸고 있는 고풍스런 전각들이 울긋불긋한 단풍에 휩싸여 눈 안 깊숙이 밀려듭니다.


'하늘은 둥글고 네모나다'는 동양의 전통적 우주관에 의해 조성된 '부용지(芙蓉池)'가 정사각형 형태로 각을 이루고 있습니다. 사각형의 연못은 '땅'을 의미하며, 가운데 둥근 섬은 '하늘'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맞은편의 부용정은 두 다리를 연못에 담그고 사방으로 돌출된 지붕이 열십자형으로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활활 타오르는 단풍의 불길이 부용지의 물에 겁을 먹은 듯 고요한 자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부용지와 규장각 '하늘은 둥글고 네모나다'는 우주관을 담은 부용지. 주합루의 규장각에는 정조의 개혁의지가 담겨있다.
ⓒ 최오균
부용지의 단풍

 

부용지 건너편에는 정조 즉위(1776)에 지어진 주합루(宙合樓)가 단풍에 휩싸인 채 고즈넉이 어수문(魚水門) 위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어수문은 임금을 물水에, 신하들을 물고기魚에 비유하여 군신의 융화적 관계를 함축해서 담고 있다고 합니다. 반듯하게 새겨진 '宙合樓'란 편액은 정조가 친필로 새긴 것인데, 그 건물 1층은 국내외 도서를 소장한 왕립도서관 격인 규장각(奎章閣)이었다고 합니다.


정조는 이곳에서 젊은 인재들과 함께 글을 읽고 정리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산실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정조는 이곳 규장각을 도서실에서 연구소로, 연구소에서 왕의 비서실과 정책개발실로 확장하여 부친인 사도세자를 모함하여 능멸하고 권력투쟁만을 일삼는 무리 배들을 제거하여 나라의 발전을 바로잡는 개혁의 불길을 당기고자 했습니다. 정조는 이곳에서 정약용, 이승훈 같은 깬 사고를 가진 젊은 미래학자들을 불러 모아 인재를 키우며 썩어빠진 정치의 늪을 새로운 연못으로 바꾸는 개혁의 불을 당기고자 했습니다.

 

  
▲ 애련지에 타오르는 단풍 애련지에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게 드리워진 단풍
ⓒ 최오균
애련지의 단풍

2007년 가을, 때마침 대한민국은 정조의 아이콘이 부용지에 붉게 타오르는 단풍처럼 활활 타오르며 되살아나고 있는 듯합니다. 마치 정조가 부활을 하듯 방송과 책들은 '이산 정조대왕 신드롬'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MBC의 사극 <이산>이 절찬리에 상영 중에 있고, 이상각의 <이산 정조대왕>은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라 있습니다.


"정조가 10년만 더 살았다면, 우리의 역사가 바뀌지 않았을까?" 역사학자 이덕일은 비운의 임금 정조가 10년만 더 살았다면, 정약용이나 이승훈 같은 반듯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을 정승이나 판서에 기용하여 개혁을 끝까지 몰고 나갔을 것이고, 그랬다면 조선의 운명, 아니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크게 바뀌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노론의 도도한 세력에 밀려 수차례 암살을 모면하다가 마침내 정조는 갑자기 개혁의 정점에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정조의 갑작스런 죽음을 두고 혹자는 독살이라고 하고, 혹자는 화병이라고도 말합니다. 어쨌든 정조는 개혁을 완수하지 못하고 한을 품은 채 부용지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사라져 가고 맙니다. 부용지에는 그런 정조의 개혁 불길이 아직도 살아 있는 듯 붉은 단풍이 수채화처럼 일렁거리고 있습니다.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애련지의 단풍


인재등용을 위해 과거를 실시했다는 영화당(暎花堂) 앞 매점에서 물을 한 병 사 마른 목을 축이며 낙엽 쌓인 길을 걸어갑니다. 담장 너머에는 창경원 단풍이 화려하게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애련지에 다가서니 통 돌을 깎아 세운 불로문(不老門)이 불타는 단풍 사이에 덩그러니 서 있습니다. 어떤 궁궐이든지 간에 궁궐은 문으로 시작되어서 문으로 끝이 납니다. 임금의 무병장수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는 불로문 사이로 낙엽이 불타고 있습니다.


'연꽃은 더러운 곳에 있으면서도 변하지 않고 우뚝 서서 치우치지 아니하며 지조가 굳고 맑고 깨끗하여 군자의 덕을 지녔기 때문에 이러한 연꽃을 사랑하여 새 정자의 이름을 애련정이라 지었다' 숙종은 '애련정기'에서 진흙 속에서도 아름답게 피어나는 연꽃을 사랑하여 정자의 이름을 애련정이라고 짓고 이곳을 수시로 산책하였다고 합니다. 애련지(愛蓮池)에는 붉은 단풍으로 둘러싸인 애련정의 그림자를 수채화처럼 담고 있습니다. 아, 자연이 그린 아름다운 한 폭의 수채화여!

 

  
▲ 꽃비처럼 휘날리는 단풍 가을 바람에 낙엽이 꽃비처럼 휘날리며 떨어지고 있다.
ⓒ 최오균
추풍낙엽

 

고궁의 청소원들이 애련지에 담긴 낙엽들을 긴 그물로 열심히 건져내지만 눈꽃처럼 떨어지는 낙엽을 당해낼 재간이 없습니다. 그대로 두어도 되련만 누구의 지시를 받고 저렇게 하릴없이 낙엽을 건져내고 있는지. 애련지 주변에 서 있는 단풍들은 붉다 못해 마치 고로 속에서 벌겋게 달아오르는 쇳물처럼 붉게 이글거리고 있습니다. 단풍의 색깔이 너무 붉어서 잠시 쳐다보는데도 금방 눈이 시려옵니다. 어쩌면 저렇게 빨갛게 달아오를 수 있는지. 이는 우리나라만이 가지고 있는 반도의 독특한 기후 탓이 아닐까요?


"가을이 오면, 한국의 시크리트 가든과 설악산의 단풍이 보고 싶어 눈물이 나요!"

 

  
▲ 관람정에 타오르는 단풍 배를 띄워 구경을 한다는 관람정에는 더욱 아름다운 단풍이 드리워져 있다.
ⓒ 최오균
관람정의 단풍

 

몇 해 전 미얀마를 여행 했을 때에 만난 '삐쇼'라는 미얀마 청년의 말이 생각이 납니다. 그는 한국에서 7년 동안 일을 했던 미얀마 근로자인데 해마다 가을이 오면 한국의 비원과 설악산의 단풍이 그리워 눈물이 다 날 지경이라고 합니다. 그는 자기들 나라에서는 도저히 그런 단풍은 볼 수 없는 한국의 단풍이 그리워 안달이 날 지경이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눈물이 다 날 지경에 이르렀을까!


그런 애련지에 소슬한 바람이 불어 닥치자 낙엽은 마치 붉은 눈처럼 우수수 떨어집니다. 추풍낙엽! 그대로입니다. 쌓이고 쌓인 낙엽으로 연경당 앞의 연못은 마치 낙엽이 뒹구는 펀펀한 뜰처럼 보입니다. 바람에 빙글빙글 돌아가며 떨어지는 낙엽에 가리어 연경당 건물이 마치 신기루처럼 아른거립니다. 아, 꽃비처럼 떨어지는 낙엽이란...

 

  
▲ 옥류동으로 내려가는 오솔길 창덕궁 후원의 가장 깊 숙한 옥류동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낙엽이 수북이 이 길을 걷는자는 쌓여있어 누구나 시인이 되고 만다.
ⓒ 최오균
옥류동 오솔길

 

점점 더 은밀해지는 비밀의 정원, 관람지에 배를 띄우고...

 

옥류천으로 가기 위해 애련지를 벗어나 몇 걸음을 숲 속을 향해 걸어가니 노란 배추 속 같은 단풍이 선연하게 나타납니다. 옥류천으로 가는 관람지(觀纜池) 부근에는 점점 더 은밀한 비밀의 정원 분위기가 극에 달한 듯한 느낌표가 그려집니다.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 있는 관람정(觀纜亭) 위에는 붉은 단풍나무 가지가 물결에 출렁거리듯 드리워져 있습니다. 관람지는 연못에 닻줄 즉 배를 띄워 구경을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참으로 옛 조상들의 상상력이 기발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관람정 위에 육각으로 되어 있는 존덕정(尊德亭)이라는 잘 생긴 겹 지붕 정자 하나가 보입니다. 존덕정의 기와지붕 골 사이에는 떨어진 낙엽이 수북이 쌓여 금물처럼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천정에는 청룡과 황룡이 어우러져 있는데, 그 아래로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란 정조의 글씨가 새겨 있습니다. '수많은 강을 비추는 달과 같은 임금'이 되고자 했던 정조. 그는 개울(백성)을 골고루 비추는 달이 되고자 했으나, 시대의 아픔을 안은 채 지금은 그 시대의  임금도 백성도 낙엽처럼 사라져 버리고 없습니다.

 

존덕정을 지나 다소 가파른 비탈길에 올라서니 언덕의 정점에 규성이 모였다는 취규정(聚奎亭)이란 정자가 서 있는데, 그곳에도 여지없이 단풍이 불타고 있습니다. 비탈길을 힘겹게 올라와 숨을 고르기에 딱 좋은 장소입니다. 별로 채색을 하지 않는 단아한 정자가 오히려 주변의 단풍과 어울려 자연미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 옥류천의 폭포와 단풍 임금과 신하들이 옥류천 맑은 물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지으며 읊었다는 소요암
ⓒ 최오균
옥류천의 단풍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워놓고 시를 읊다!
더욱 비밀스런 옥류천(玉流川)의 단풍


취규정 큰길에서 북쪽으로 좁은 오솔길이 하나 나 있는데, 이 길이 바로 후원의 가장 깊숙한 곳, 옥류천(玉流川)으로 가는 길입니다.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으며 걷다 보면 어느새 모두가 시인이 된 듯한 착각마저 느끼게 하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밟는 소리가..." 누군가의 입에서 구르몽의 시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시몬, 가자, 나뭇잎이 져버린 숲으로,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누구나 문학소년 소녀가 되어버리는 그런 정취가 물씬 풍겨나는 오솔길입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임금과 선비들도 이 길을 걸으며 그런 감정을 느꼈겠지요.

 

옥류동 골짜기는 비원의 절정을 이루는 비밀한 장소입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안내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일행을 앞질러 서둘러 옥류천으로 다가갔습니다. 옥류천에 가까이 다가서니 소요정 앞으로 떨어지는 폭포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듯 들려옵니다.


후원에 웬 폭포소리냐고 하겠지만, 소요암을 깎아 물을 고이게 하고, 마치 경주 포석정처럼 둥그렇게 홈을 파 만들어 옥처럼 맑은 물이 바위 둘레를 돌아 폭포처럼 떨어지게 만들어 놓고, 임금과 신하들이 그 주위에 둘러 앉아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짓고 읊으며 풍류를 즐겼던 곳입니다.

 

  
▲ 청의정에 불타는 단풍 창덕궁에서 유일한 초가지붕을 하고 있는 청의정에 낙엽이 불타고 있다.
ⓒ 최오균
청의정의 단풍

 

飛流三百尺 폭포는 삼백척인데
遙落九天來 멀리 구천에서 내리네
看是白虹起 보고 있으면 흰 무지개 일고
飜成萬壑雷 골짜기마다 우뢰소리 가득하네

 

소요암에는 '玉流川'이란 인조의 어필이 새겨져 있고, 바로 그 위에 숙종의 오언절구시가 새겨져 있어 당시 이곳이 얼마나 임금과 선비들의 사랑을 받는 운치가 있는 곳인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졸졸거리며 마치 처마 끝에서 흘러 떨어지는 물소리일지라도 고요하기 이를 데 없는 이곳 후원에서는 삼백척 높이에서 떨어지는 우뢰 같은 폭포소리로 들렸을지도 모릅니다.


단풍은 소요정을 뒤덮고 옥류천 앞으로 긴 혀를 내밀어 폭포를 넘어 소요암까지 뻗칠 듯 기염을 토하고 있습니다. 옥류천에는 때마침 새들이 푸드득거리며 목욕을 즐기고 있습니다. 새들이 알까봐 간격을 두고 망원렌즈로 몰래 새들의 모습을 담아봅니다. 단풍 사이로 날갯짓을 하며 물속을 유희하는 새들의 모습이 더 없이 평화로워 보입니다. 관람객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자 새들은 곧 숲 속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맙니다.

 

  
▲ 창덕궁 단풍을 보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드는 관람객들 능허정으로 가는 길에 수많은 관람객들이 창덕궁 후원의 단풍을 만끽하고 있다.
ⓒ 최오균
창덕궁의 관람객

 

옥류천 주변에는 소요정을 비롯하여 태극정(太極亭), 청의정, 농산정, 취한정 등 5개의 정자가 모여 있어 후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요암 뒤에는 천년을 족히 넘었을 주목이 속이 텅 빈 채로 살아 있고, 그 위로는 청의정이 후원 안에서는 오직 홀로 독야청청 초가지붕을 머리에 이고 불타는 단풍 속에 묻혀 있습니다.


'청의'는 '맑은 잔물결'이란 뜻인데, 과연 물 논이 청의정을 싸돌고 있고 물 논 가운데 볏짚으로 지붕을 얹어 주변의 자연과 소박하게 어울리는 건축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후원에 한 가닥 바람이 불 때마다 청의정의 초가 지붕 위로 낙엽이 우수수 떨어져 내려 가을 정취를 한껏 더해주고 있습니다. 사실 여기서 비원의 가을 단풍여행은 끝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비원에는 단풍 말고도 천년을 넘은 느티나무, 750년을 넘은 향나무, 650년을 넘은 다래나무, 400년은 족히 되었을 회화나무, 역시 400년 수령을 넘겼을 뽕나무 등 천연기념물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후원을 제대로 돌아보려면 하루종일도 부족한 시간입니다.


옥류천에서 다시 취규정으로 올라가 청심정을 돌아보고 능허정으로 가는 언덕에 올라서는데 관람객들의 물결이 무수히 떨어지는 낙엽처럼 붐비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 관람객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능허정 능선길에도 여전히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단풍들이 오색으로 숲을 물들이며 들어서 있습니다.

 

  
▲ 천년을 넘은 후원의 느티나무 창덕궁에는 느티나무, 향나무, 다래나무, 뽕나무, 회화나무 등 수백년을 넘은 천연기념물이 수두룩 하다.
ⓒ 최오균
창덕궁의 느티나무

 

한국 고유의 단풍나무들로 곱게 치장된 창덕궁 단풍은 어쩌면 설악산과 내장산 단풍보다도 그 색이 더 아름답게 보일 뿐 아니라, 고풍스런 정원과 연못이 함께 어우러져 전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멋진 경관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직했으면 미얀마의 삐쇼가 가을이 오면 비원의 단풍이 보고 싶어 눈물이 다 날 지경이라고 했는지 짐작케 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까이 있음에 귀하고 아름다운 줄을 모르기 십상입니다. 현재 남아 있는 조선의 궁궐 중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창덕궁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탁월함에서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최근에는 덴마크의 여왕 마르그레테 2세가 이곳을 찾아 그 아름다움에 원더풀을 연발했고, 한국을 찾는 귀빈들은 모두 아름다운 '시크리트 가든'을 찾아와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곤 합니다.


해마다 가을이 오면 '비밀의 정원'은 아름다운 단풍으로 활활 타오르며 그 진가를 더욱 값지게 빛나고 있습니다. 금호문을 통해 창덕궁을 나오면서 이 빛나는 보석이 오염으로 부서져 버리지나 않을지 걱정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비원의 단풍을 뒤돌아보는데,  미얀마의 그 어디선가에서 한국의 단풍이 보고 싶어 눈물이 날 정도로 안달을 하고 있을 삐쇼의 표정이 단풍과 함께 어우러져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가을이 오면 한국의 시크리트 가든 단풍이 보고 싶어 눈물이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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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리포트]연말 정산 ‘환급액 늘리기’ 비법

 

 

스페셜리포트]연말 정산 ‘환급액 늘리기’ 비법


성형수술도 소득공제 가능, 다자녀 추가공제 신설 … 정치자금 세액공제제도 개선

올해 연말정산 방식은 예년과 비슷하다. 그러나 새롭게 바뀌는 항목이 적지 않아 환급액을 늘리려면 달라지는 점을 꼼꼼히 따질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 확대 · 신설항목

확대·신설되는 항목을 살펴보면 우선 미용성형수술을 위한 지출비용 및 건강증진을 위한 의약품 구입비용이 의료비 공제대상 범위에 포함된다. 미용성형수술은 물론 보철비용, 스케일링, 모발이식, 비만치료 등도 해당되며 한의원에서 조제한 보약구입 등에 소요된 비용까지 공제 가능하다.

취학 전 아동의 체육시설 학원비도 교육비공제 대상에 새롭게 포함됐다. 체육도장이나 수영장 등의 체육시설이 추가 확대됐고, 요건도 최소 월 단위(주 1회 이상) 교습과정까지 인정됐다.
사진:이코노미21


방송통신대학 등 시간제 등록취득시 지급하는 수업료 또한 교육비 공제가 허용됐다. 구체적으로 근로자 본인이 학점을 이수하기 위해 대학(산업대학, 전문대학 및 방송통신대학 포함)에 시간제로 등록해 지급하는 수업료도 교육비공제 대상에 포함됐다.

혼인 및 장례비 소득공제시 직계존비속 연령제한을 폐지, 실질적인 공제가 가능해진 것도 달라진 점이다. 이번 개정으로 만 20세 초과 자녀의 혼인, 남60세(여55세) 미만 부모님의 장례나 혼인이 발생했을 때에도 사유 당 100만원의 소득공제가 허용됐다.

아울러 다자녀(多子女) 추가공제가 신설, 자녀의 수에 따라 추가공제가 가능해진 점도 주목할 만한 변동사항이다. 자녀가 2명일 경우 연 50만원, 3명은 연 150만원, 4명은 연 250만원씩 자녀가 1명 추가될 때마다 100만원씩 늘어난다.

◆ 일부 축소 · 폐지 항목

반면 공제에 포함되던 게 일부 축소되거나 폐지된 것도 있어, 납세자들의 꼼꼼한 주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다자녀 추가공제가 신설된 대신 소수공제자 추가공제가 폐지됐다. 기존 근로소득자 본인을 포함한 기본 공제대상자의 인원에 따른 추가공제를 앞으로는 받을 수 없게 됐다. 정치자금 세액공제제도 역시 기존 10만원을 기부했다면 11만원을 돌려받을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기부한 액수만큼 10만원만 세액공제 된다.

 
ⓒECONOMY21 한겨레 황석주

10만원 초과분에 대해선 기존과 똑같이 소득공제 된다. 또 지금까지 의료비 공제와 신용카드 소득공제의 중복공제가 가능했지만 올해부턴 신용카드 공제시 신용카드로 사용한 의료비 중 의료비 공제받은 금액은 공제대상에서 제외됐다. 다시 말해 의료비 지출액 중 총 급여액의 3%가 초과된 의료비를 지난 2006년 12월 이후 신용카드로 결제했다면 카드소득공제를 받지 못함을 주지해야 한다.

의료비 지출액이 총 급여의 3% 미만이라는 이유로 의료비 공제를 받지 못하는 근로소득자는 2005년 기준 전체 연말정산 신고자 1190만3039명 가운데 88%에 달한다. 이에 따라 신용카드로 결제한 의료비의 카드소득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의료비 지출 때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게 유리하다.

의료비공제를 받은 경우에도 총 급여의 3% 이하분과 의료비공제 한도(500만원)를 초과해 의료비공제에서 제외된 의료비 중 신용카드(현금영수증)로 지출한 의료비는 신용카드 공제를 받을 수 있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은 “매년 연말정산이 개정되면서 단서조항이 많아지고 이해하기 힘들다 보니 한 항목이라도 더 공제받기를 원하는 근로자들은 퍼즐 풀기를 하듯 어렵고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있다”면서 “현재 관련 전문가들마저 이해하기 어려운 연말정산 세법개정을 앞으로는 단순하고 쉽게 개정해야하며, 무엇보다 국세청 입장이 아닌 납세자의 입장에서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Tip1

연말 정산 주요 체크 리스트 7선


· 미용ㆍ성형수술비, 건강증진을 위한 의약품도 의료비공제 가능
· 정치자금 세액공제제도 개선
· 취학 전 아동의 체육시설 학원비도 교육비공제 대상에 포함
· 의료비공제와 신용카드 이중공제 배제
· 소수 공제자 추가공제폐지하고 다자녀 추가공제 신설
· 혼인 및 장례비 소득공제시 직계존비속 연령제한 폐지
· 방송통신대학 등 시간제 등록취득시 지급하는 수업료도 교육비공제 허용

Tip2

연말정산 유의사항 10계명


① 국세청 전산에서 자동으로 적발되는 아래 항목은 주의할 것
- 배우자 소득금액이 100만원(근로자 : 연봉 700만원)을 초과하는 배우자 공제.
- 맞벌이 부부가 자녀 기본공제를 이중공제 하는 경우 .
- 부모님 소득공제를 여러 형제가 이중공제 하는 경우.
(형제·자매, 사위, 며느리가 공제 받는지 확인 후 반드시 한명만 공제 받아야 함)
- 부모님이 사업자등록증이 있고 소득금액이 100만원을 초과하는 경우.
- 기부금 허위발행자에 대한 가산세 규정 신설되었고, 200만원 이상 기부금 공제는 특별관리.

② 직장은 옮겼어도 소득은 남아있다
연도 중 직장을 옮긴 경우에는 전 직장 소득을 합산하여 연말정산 하지 않으면 무거운 가산세가 부과되므로, 전 직장 근로소득 원천징수 영수증과 소득자별 근로소득 원천징수부를 현 직장에 제출할 것.

③ 건강한 한해 보냈다면, 의료비공제는 신경 쓰지 마라
의료비는 연봉의 3% 초과금액에 대해 공제되므로, 3% 이하로 의료비를 지출한 경우에는 다리품 팔지 말 것.

④ 국세청 연말정산 간소화 큰 기대하지 마라
안경구입비, 사립유치원, 보육시설에 낸 교육비는 조회 안 되고, 국세청 조회는 공인인증서를 통한 회원가입을 해야만 이용 가능하며(만 20세 초과 배우자 및 직계존속은 해당부양가족이 별도로 직접 공인인증서를 받아 회원가입을 해야 함), 올해도 의료비는 완벽하게 조회가 안 될 가능성이 크므로 간소화 시스템 금액에 의료비 누락이 있는지 반드시 확인할 것.

⑤ 면세점 이하 소득자, 다리품 팔 필요 없다
급여가 적거나 올해 입사하여 연봉이 면세점인 989만원(4인 가족 1646만원) 이하인 경우, 영수증을 챙기지 않더라도 떼인 세금 전액을 환급받으므로 다리품 팔지 말 것.

⑥ 면세점 이하 소득일 땐 배우자에게 공제 몰아줘라
배우자 한쪽의 연봉이 면세점인 989만원 이하인 맞벌이 부부의 경우는 자녀 및 부모님공제, 배우자 의료비공제 전액을 연봉이 높은 배우자 쪽에서 공제할 것.

⑦ 맞벌이 부부 배우자양쪽 과표 누진구간을 낮춰라
배우자의 연봉이 비슷하거나 가족 전체의 소득공제 금액이 많은 경우, 자녀 및 부모님공제를 적절히 나눠 부부 양쪽의 과세표준 누진구간 낮춰야 할 것.

⑧ 종신보험료가 100만원 초과하면 다른 보험 영수증은 챙길 필요가 없다
암, 종신보험, 자동차보험 등 보장성보험은 한도가 100만원이므로, 하나의 영수증이 100만원이 넘으면 다른 영수증은 챙길 필요 없음.

⑨ 기부금 공제는 본인 명의만, 한도는 소득금액의 10%임을 기억하자
기부금공제는 본인 명의만 공제되고, 한도는 연봉에서 근로소득공제를 뺀 소득금액의 10%이므로, 맞벌이부부는 기부할 때 공제받을 사람 명의로 기부하고, 한도초과 기부금은 다른쪽 배우자로 몰아주기.

⑩ 올해 놓친 소득공제 기회는 다시 있다
올해 바쁘거나 복잡한 세법을 몰라 소득공제를 놓친 경우에도 내년 2월 이후에 회사와 관계없이 추가로 환급받을 수 있으므로 걱정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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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개신교는 권력에 중독됐나?>

 

 

한국 개신교는 권력에 중독됐나?>


한국교회 보수성 파헤친 '정치교회'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연말 대선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파헤친 책 '정치교회'(교양인 펴냄)가 출간됐다.

정계와 종교계 등을 취재해온 국민일보 김지방 기자가 펴낸 이 책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로 대표되는 보수적 성향의 개신교회들이 어떻게 권력의지를 키워왔고 그 영향력을 어떻게 행사하고 있는지 분석했다.

저자는 "1970-80년대까지 한국교회는 몇몇 진보적 단체를 제외하고는 정교 분리의 원칙을 내세우며 민주화투쟁을 외면하거나 수수방관했다"면서 "그러한 보수 교회들이 민주화 이후 과거의 정교 분리와 사회적 무관심을 거듭 반성하는 과정을 통해 정치참여의 명분을 쌓아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민주화 이후 시민사회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교회의 사회활동이 일상적으로 가능해졌으며, 정권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이 가능해졌다"면서 "교회의 정치 참여 폭이 커진 것에는 한국교회가 태생적으로 지닌 반공이데올로기가 작용했으며, 2000년 이후 남북화해가 불러온 변화에 위기를 느낀 보수세력이 교회의 반공주의를 자극해 정치의 장으로 끌어낸 것도 중요한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저자는 "민주화로 정권교체를 당한 우파 보수세력이 교회를 이용해 보수 반공주의의 물적ㆍ인적 기반을 마련하고자 했다"면서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보수 우익단체와 교회들이 2003년 1월 19일 서울시청 앞에서 개최한 '나라와 민족을 위한 평화기도회'는 '한국 보수세력의 정치적 커밍아웃'이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정치세력화에 나선 보수적 개신교 목사들은 연말 대선을 앞두고 설교 등을 통해 특정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저자는 "주로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사회적 책무와 교회 내부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분열의 위험을 무릅쓰고 특정 후보의 대통령 만들기에 나서는 것은 정치적 힘을 갈망하는 권력의지에서 비롯된다"고 진단했다.

그는 "매주 수천 수만 명을 상대로 설교를 하는 대형교회 목회자들은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으며, 이 같은 교회의 힘을 이용하려는 정치인들을 통해 권력에 중독돼 갔다"면서 "영혼의 구원이라는 종교의 본분을 망각한 채 한낱 이익집단으로 변질한 교회의 타락은 기독교의 근본적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저자는 "한국교회는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정치에 참여해 왔다"면서 "다만 교회의 정치참여는 권력을 향한 질주가 아니라 권력에서 소외된 이들을 향한 섬김의 활동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328쪽. 1만3천원.

ckchung@yna.co.kr
이명박의 구애에 뜨거운 정치교회
 
번호 158716  글쓴이 풍경생태 (scapecology)  조회 661  누리 119 (119/0)  등록일 2007-11-27 02:37 대문 5 톡톡
 
 
 
 


한기총, 뉴라이트로 표면화된 보수기독교의 정치 진출은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정사실화되어 있고 이번 대선에 어떤 형태로든지 힘을 발휘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명박은 신앙을 잘 이용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어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이명박을 안찍으면 생명책에서 지워버린다'는 망언을 하는 전광훈 목사, "(한나라당을) 차떼기당이라고 하지만 공산당보다 낫다"는 김홍도 목사, 그 외에도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이명박의 구애에 온 몸이 달아있는 정치목사들이 줄을 잇고 있다.

종교인 개인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다. 하지만, 교회가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유발하기 때문에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헌법 20조
1.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2.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

서양의 경우, 기독교가 득세한 후에 중세 그리고 근대에 와서도 제정분리의 문제는 끊임없는 논쟁의 대상이었고 그 결과로 현재 영국과 미국의 종교와 정치는 어느 정도 구분이 되어 있다.


교회권력의 문제

교회사를 살펴보면 교회가 권력을 가질 때는 엄청난 문제를 몰고 왔다. 기독교가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이래 313년 콘스탄틴 대제에 의하여 공인되기 전까지 기독교의 정치적인 힘은 없었다. 거꾸로 핍박을 받으면서 목숨을 걸고 신앙을 지켜야하는 고난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때의 기독교 모습은 추하지 않았다. 로마의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키며 사랑으로 대하고 죽음이 몰려와도 초연히 당당하게 스러지는 모습에 로마가 거꾸로 무너졌다. 이 과정에서 물리적인 힘을 사용했다는 기록은 없다. 영적인 힘 외에 금력이나 권력이 동원된 것이 아니었다.

핍박이 끝나고 음지에서 양지로 교회가 나오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힘이 주어지자 정신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고 육체만 발달한 청소년처럼 사고를 치는 일이 늘어난 것이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 감동을 주어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강제로 믿게 하는 일이 발생했고 심지어 믿지 않은 사람을 죽였다.

원래의 신약성서에 기록된 교회의 속성과는 아무 상관없는 또라이들의 행진이 시작된 것이다. 요즈음 말로 하면 개독교의 조상들이 이때 탄생했다.


십자군과 종교개혁

예루살렘을 이방종교로부터 해방시키자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시작한 십자군은 그 속에는 썩어문드러진 생각으로 가득한 것이었다. 교회의 사명과 아무런 상관없는 이 싸움은 그릇된 욕망으로 시작되었다. 금전과 허상을 쫒는 마음, 엉뚱한 보상 등 달콤한 말로 싸움을 일으켜 인명을 손상시키고 그 와중에 약자들은 비참한 신세를 면할 수 없었다.

가는 길에 유대인을 만나면 우물에 집어넣어 죽였고 닥치는 대로 약탈, 방화, 살인과 강간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질러졌다. 제정신이 아닌 미친놈에게 기관총을 주고 마음대로 갈겨버린 참상의 현장과 같았다. 

개신교의 자랑인 종교개혁이 되었어도 권력의 문제는 해결이 되지 않았다. 캘빈은 제네바를 하나님의 도성으로 만들어 신정으로 다스렸다. 이 당시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구교가 신교인을 죽인 숫자보다 종교개혁이후 신교인이 신교인을 죽인 숫자가 더 많다고 역사학자들은 주장한다.

독일의 뮌스터 학살은 신교와 구교가 합하여 성에 모여 있는 신교인을 말살시킨 치욕적인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기독교인에게 힘이라는 문제는 양면의 성격이 있겠지만 지난 역사에 부정적인 사건이 많은 것을 역사를 유심히 살펴본 사람들은 확인할 수 있다.


이랜드와 아프카니스탄

이 두 사건은 대한민국의 개신교 역사에 치욕적인 행태로 기록되었다. 모두 금력을 가진 사람들이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해서 저지른 것으로 초기의 기독교는 물론 기독교의 본질과는 너무 거리가 먼 일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양심을 가지고 신앙과 복음을 위하여 살아가겠지만 욕심이 가득한 다른 많은 사람들은 금력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권력을 향하여 질주하고 있다. 그 목표의 지점에 이명박이라는 예정된 사기꾼이 꼬리를 흔들면서 유혹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노골적으로 개신교인이라고 표방했다. '서울시 봉헌사건', '대통령직보다 장로가 더 중요하다'는 발언, 경선에서 이기자마자 한기총 방문, 기독교로 배수진을 치고 깨끗하다고 부르짖음 등등 음탕한 종교 세력에 손짓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랜드 사건과 아프칸 피랍은 많은 기독교인에게 반성과 회개의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권력을 향해가는 마음은 이 두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믿는 모양이다. 그 본질이 성경과 관계없이 한국개신교의 역사에서 빚어진 특수한 권력욕이라는 지적은 김지방 기자의 '정치교회'라는 책에 잘 서술되어 있다.    

이명박의 어지러움은 정치교회의 욕망과 어우러져 돈과 권력이 있는 개판치는 세상의 도래를 열망하고 있다.


사족보다 좋은 족발

문국현 : 저는 개판치는 개신교인은 아닙니다.
답 : 제가 무어라고 했습니까?

이명박 : 기호 2번입니다. 2번에는 2번 2명박을 찍어주세요.
답 : 더러운 2를 탐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2재에는 밝은 것 같은데 2상한 냄새가 2에서 나는 것 같네요.

이회창 : 천주교는 우리나라에서 뭐 그리 심한 것은 아니지요. 흠흠
답 : 종교문제는 잘 모르겠습니다.

정동영 : 기호 1번입니다. 일번으로 몰아주십시오.
답 : 1번이 첫 번째로 도착하라는 법은 없지요.

 

ⓒ 풍경생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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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발표 대비 BBK 공부하기…알고 보면 쉬워요

 

BBK, 김경준, 공구리 관계사 간단정리
 
번호 156015  글쓴이 컨설턴트   조회 4639  누리 1183 (1183/0)  등록일 2007-11-22 21:26 대문 33 톡톡 [BBK] 
 
 
 
 


전주와 바지사장의 전형적인 관계다.


참 오랜만에 글을 쓴다. 미안 서프앙 여러분 ^^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비자금 사건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일부러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고 하기도 했다.

이 사건 처음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오늘은 작정하고 사건의 전말을 집중분석했다. 의외로 간단한 사건이네 하고 정리가 되었다. (욕하지 말라 경험자라서 이해가 조금 빨랐다는 의미다.)


- 사건의 간단한 개요(사전 설명)

본좌처럼(좀 쑥스럽다 이런 말) M&A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1999-2000년 사이의 코스닥 열풍은 일확천금의 기회였다. 좀 사기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유혹 견디기 어렵다. 그런데 본좌 가슴이 새가슴이라 그림만 그리고 실천을 못 했다.

주식투자로 돈을 벌어보자는 의기투합은 둘 사이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약간의 테크닉만 구사하면 일확천금을 벌 수 있는 시기였다.

돈이 매우 많은 공구리 선수와 이미 외국계증권사에서 8억 원의 연봉을 받고 있던 김경준의 조합은 환상 그 자체였다. 인재를 알아보는 공구리의 안목은 인정해줘야 된다.

일단 거액의 증권투자를 합법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투자자문사 설립이 필요하고 이를 소프트웨어적으로 실현해줄 수 있는 지주회사도 필요하고 투자자문사의 증권투자를 실행할 수 있는 증권사도 필요하다.

BBK 투자자문, 고객의 돈으로 주식투자를 통해 발생한 이득을 고객에게 돌려주고 자신(법인)은 수수료를 챙기는 회사다. 최소 설립자본금 30억 원.

주식투자방식, 주식투자 소프트웨어, 즉 투자기법을 제공하는 솔루션을 가지고 있는 회사가 LKe BANK다. 이 회사는 최소 자본금 같은 거 없다. 그래서 지주회사다.

다음 이를 실증적으로 주식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증권사가 필요하다. 그래서 설립한 회사가 LKe 증권중개 회사다. 최소 설립자본금 100억 원.

서로 각각의 역할이 필요해서 3개의 회사를 설립했지만 그놈이 그놈이고 한통속이라서 같은 사무실을 사용하고 회사 종업원들의 신분도 이리저리 이동을 하는 이유다.

위의 방법을 어떻게 실질적으로 구현하는지 알아보자!


- 시대적 배경

이익치 알지. 이 시기에(1999년-2000년) 바이코리아로 현대증권이 난리를 친다. 지금 미래에셋은 새발의 피다. 실업자인 이명박이 자극을 받는다. 미국를 오가면서 이미 알고 있던 에리카 김과의 관계로 유능한 증권전문가 김경준을 알게 된다. 벌써 김경준은 1998년에 외국계증권사 펀드매니저로 연봉 8억 원을 받는 금융의 귀재였다.


- 회사 설립 및 사채업자와 바지사장

김경준은 이명박을 만나고 나서 단돈 1원도 투자하지 않는다. 다만, 금융지식을 제공하고 명의를 빌려주는 바지사장이다. 돈의 출처는 모두 이명박, 즉 다스의 돈이다. 아래에 김경준 지분으로 나오는 것은 모두 이명박의 돈이며 이는 도곡동 땅 매도자금이고 다스를 통해 조달된다.

작당을 한다. 내가 돈을 대줄 테니까 증권으로 돈 좀 벌어보자 하고 사채업자와 바지사장의 관계를 맺는다.

여기서 BBK투자자문(자본금 5천만원, 이건 김경준 돈 맞다)을 이용하기로 하고 지주회사를 설립한다. 그것이 바로 LKe BANK다. 2000년 2월 자본금 20억 원으로 설립(100% 이명박지분)하고 그해 6월에 이명박 10억 원 김경준 30억 원(BBK에서 빌린 돈) 하나은행 5억 원을 증자하여 자본금 65억 원의 회사가 된다.

LKe BANK 자본금 65억 원의 일부인 30억 원이 BBK 투자자문회사의 자본금으로 들어간다. 그러니 100% 자회사 맞다.


- 회사 설립 일자별 정리

1. 1999년  4월 27일

  ※ BBK 투자자문 설립 [ 자본금 5천만 원, 주주 : BBK 캐피탈파트너(김경준 개인회사) ]

2. 1999년 11월 16일

  ※ BBK 투자자문 투자자문업 등록 (자본금 30억 5천만 원, 주주 : 이캐피탈 30억 원)
     - 이후 이캐피탈 자본금 회수하고 이를 모두 BBK 캐피탈파트너사가 매입
       (이때도 이명박 돈이 투입)

3. 2000년  2월 18일

  ※ LKe BANK 설립(자본금 20억 원, 주주 : 이명박 100% 지분)

4. 2000년  6월

  ※ LKe BANK 증자(김경준 30억 원, 이명박 10억 원, 하나은행 5억 원)
     - 여기에 들어간 김경준 30억 원은 BBK 투자자문 증자시 이캐피탈 증자금 30억 원을
       김경준이 회수하는  과정에 빌려준 돈으로 역시 이명박 돈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 벌써 여기서 지치는 분들은 포기하고 잠들 주무시라.

여기까지 만으로도 우리 공구리 선수 가장 납입, 이중기재 등으로 범법자다. 검찰이 의지만 있으면 언제든지 불러들여 콩밥 먹일 수 있다. 그러나 생략하고


- 투자자금으로 주식투자(사실은 주가조작)

세 개 회사를 설립하는 데 든 돈이 190억 원이다. 이는 다스가 투자한 190억 원과 일치한다.

이렇게 잘나가던 회사설립 및 조작에 금감원이 제동을 걸고 넘어진다. BBK 투자자문의 자본금을 가장 납입으로 보고 투자자문사 등록을 취소한다. 2001년 4월 28일의 일이다. 그래서 폐업을 한다.

BBK 투자자문이 폐업을 하니 EBK 증권중개회사도 증권중개업을 자진철회한다. 모회사가 폐업되었으니 자회사도 자동으로 영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폐업이 예정되는 시점인 4월 8일에 폐업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투자자문사로 들어온 투자사들의 돈은 그대로 있다. 이는 그 시기 유행했던 조세피난처에 펀드를 설립하고 투자하는 방식으로 소위 마프펀드로 이미 주식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 시기이다.

이때 이미 모아진 투자액이 483억 원이다. 포기할 수 없다. 갈 데까지 가보는 거다. 회장님 포기할까요, 더 갈까요. 야 이 씨바야 더 가보자.

여기서 삼성그룹이 편법상속으로 써먹는 전환사채 즉 CB가 발행된다.

CB로 투자금액을 보장해주고 본격적인 주식투자 M&A를 감행한다. 옵셔널밴처스(구 광은창투)를 인수하고 주가조작을 통해 졸라 돈을 번다.

2001년 12월 경준이는 회장님 저 미국으로 날아갑니다 한다. 근데 우리 착한 경준이 BBK투자자들에게 투자금 전액을 다 해결해주고 도망간다. (참 착한 사기꾼)

도망가는 전제 조건으로 '야 우리 야리끼리 하는거다.' 하고 약속을 했는데 이 용감하고 착한 바지사장이 욕심을 내고 공구리 회장님 몫을 안 준다. 환장한다.

몇 년을 끙끙하다가 소송을 한다.

이 소송 때문에 한국에 들어오고 싶어도 못 온다. 사실은 경준이도 들어오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결론

공구리 : 씨벌넘 전주는 난 데 이게 배신을 해. 야 소송해

경준이 : 이 개새끼 내가 몸종노릇 하면서 돈 벌어 줬는데 소송을 해. 한번 해보자

※ 바지 사장을 내세웠던 공구리는 법리적으로 경준이가 대표이사 책임자이니 나는 자신 있다.

※ 난 바지사장이니까 실질적인 전주인 이명박과의 이면계약서가 있으니까 난 책임이 없다는 것.

둘 다 사기꾼이고 책임을 묻자면 이명박 헤어나오기 힘들다.

 

ⓒ 컨설턴트

 


 


▣ 참고자료  이명박 관련 일지

[노짱토론방, 게시번호 155715, 오삼마 님 작성]


1994년             이명박, LA 한인교회에서 김경준, 에리카 김과 첫 대면
1995년             이명박, 한국에서의 에리카 김 자서전 출판기념회 참석
1995년  6월        도곡동 땅 포스코건설에 매각(263억)
1995년 12월        도곡동 땅 매각자금 생명보험사에 맡김
1997년  7월        김경준 귀국, 샐러먼스미스바니환은증권 펀드매니저 재직
1998년             이명박 후보 의원직 사퇴
1998년~1999년      이명박 후보 미국 워싱턴 연수
1999년  2월        김경준, 샐러먼스미스바니환은증권 퇴사
1999년  4월        김경준, 투자자문회사 BBK 설립
                   (자본금 김경준 5천만 원 + 투신사 30억)
1999년 11월 16일   김경준, 투자자문회사 BBK 등록
2000년  2월        삼성생명, BBK에 100억 투자
2000년  2월        이명박 후보 김경준과 동업, LKe뱅크 창업
                   자본금 62억 5000만 원(이 후보 30억, 김경준 30억)
2000년  3월~12월   다스, BBK에 190억 투자
2000년  8월        LKe뱅크, 자본금 대부분을 역외펀드인 MAF에 맡김
2000년 10월        심텍, BBK에 50억 투자(MAF펀드 투자 제의)
2000년 10월 10일   다스, BBK에 50억 송금(53억 어음할인)
2000년 10월 13일   이명박 후보의 중앙일보 인터뷰 게재
2000년 12월        주가조작 개시 월
2000년 12월 29일   생명보험 만기환급금 157억 4800만 원
                   이명박 후보의 형 이상은 계좌로 입금된 후 출금
                   (김재정 62억 8800만 원 포함)
2001년  2월  2일   EBK 증권중개 설립(대표 이명박, 김경준)
                   자본금 100억 5000만 원 (이명박 35억, 김경준 30억, 이상은 9억,
                   김재정 9억, 에리카 김 9억, 크리스토퍼 김 8억)
2001년  2월 21일   이명박 후보와 김경준의 "주식거래계약서"
2001년  2월        삼성생명 BBK 투자금 100억 반환 요청
2001년  2월?3월?   심텍, BBK투자금 (50억) 반환 요청
2001년  3월?       심텍, BBK투자금 50억 중 20억 회수
2001년 2월 28일,   LKe뱅크에서 EBK로 100억 이동
        3월 2일    LKe뱅크 주식을 A.M.Pappas로 매각(100억)
2001년  3월호      월간중앙 이명박 후보 인터뷰 내용 게재
2001년  3월        금감원이 김경준 사업 허가 취소
2001년  3월        삼성생명, 투자금액 123억 회수(투자수익 23억)
2001년  4월        김경준, 옛 광은창투 인수하여 옵셔널벤처스코리아로 상호 변경
2001년  4월 8일    EBK, 증권중개업 자진 철회
2001년  4월 18일   이명박과 김경준 동업 청산
                   LKe뱅크 대표이사 사임 (현 48% 지분 보유)
                   대표이사 래리 롱(가공인물)에 넘김
2001년  6월 21일   EBK에서 LKe뱅크로 96억 이동
                   A.M.Pappas와의 주식매매계약 해제로 매각 대금 100억이 환차손제외
                   96억으로
2001년  6월        사라진 도곡동 땅 매각금, 이상은 계좌로 재 임금(147억)
2001년  8월        김경준 (주)다스 측에 편집
2001년  9월        하나은행, LKe뱅크 투자금 5억 반환요구
2001년 10월 22일   심텍, 이 후보 재산 (부동산) 가압류 신청
2001년 10월 26일   다스, 김경준으로부터 39억 회수
2001년 11월        심텍, 김경준 + 이 후보 사기 및 횡령 혐의 고소
2001년 12월  4일   다스, 김경준으로부터 11억 회수(누계 50억)
2001년 12월 20일   김경준, 회사공금 384억 횡령 미국 도피
2002년  2월        주가 조작 종료 월
2002년  2월        옵셔널벤처스 소액투자자 27인 김경준 상대 소송
2002년  3월        하나은행, 이명박·김경준 주식대금 관련 고소
2002년  5월 6일    하나은행, 이명박 부동산 5억 근저당 설정
2002년  5월 14일   하나은행, 이명박 고소 취하(김경준 고소 유지)
2003년  5월        다스, 김경준에 투자금 반환 소송
2004년  1월        한국 검찰, 미국에 범죄인 인도 요청
2004년             이명박 후보, 미국 법원에 소송

명문입니다! 하지만 한가지 오류 수정 요청!

: 그래서 설립한 회사가 LKe증권중개 회사다.최소 설립자본금 100억원. -> 이뱅크증권중개네요 ^^

그리고, 다른 서프앙께서 이미 관련 일지를 쭉 적어주셨답니다. 같이 보시면 더욱 좋을듯!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uid=155715&table=seoprise_10&issue1=&issue2=&field_gubun=&level_gubun=&mode=&field=&s_que=&start=220&month_intval=0

 

 

검찰 발표 대비 BBK 공부하기…알고 보면 쉬워요
 
번호 153794  글쓴이 torreypine (torreypines)  조회 3557  누리 609 (609/0)  등록일 2007-11-18 21:02 대문 12 톡톡
 
 
 


BBK의 진실, 특히 이명박의 실소유 여부가 대선에서 아주 중요하다는 인식은 대부분 공유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해가 쉽지 않다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랬고요. 그러나 알고 보면 그렇게 어려울 것도 없고, 또 복잡한 것까지 다 알아야만 전체를 파악할 수 있는 건 아닌 거 같습니다.

머지않아 검찰의 조사결과 발표가 있을 텐데 발표 내용은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쪽이 전공은 아니지만 중요한 부분만 쉽게 한번 정리를 해 볼까 합니다. 전공인 사람들이 쓰면 더 어렵거든요. ㅎㅎ 고급반은 그냥 돌아 나가셔도 됩니다. 중급반은 아는 내용이긴 하더라도 요점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고요. 초급반도 차근차근 읽으면 이해가 충분히 되도록 써 보겠습니다.

서류상 김경준이 30억을 투자해 1999년 11월에 설립한 BBK는 2000년 초부터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삼성생명(100억), 다스(190억), 심텍(50억), 장로회신학대학(5억) 등의 투자자로부터 500억 원 가까운 투자금를 유치합니다. 당시 한국에 뿌리가 없던 32세의 젊은이가 대단한 초능력을 가졌던지 다른 사람이 유치한 거겠지요. 김경준은 이명박이 했다고 주장합니다.  어쨌든 BBK는 그 돈으로 MAF 펀드를 운영합니다. 우리에게 이제는 많이 익숙한 일반 펀드하고 같이 보시면 됩니다. 단 이 펀드는 나경원의 마포 해장국으로 유명하다는 점에서 좀 다르긴 하겠군요.

MAF 펀드는 나중에 옵셔널벤쳐스로 이름을 바꾸게 되는 광은창투를 적대적 M&A 하는 과정에서 주가 조작(2개월 사이에 2,000원에서 8,000원으로 뜀)을 합니다. 그리고 (AM파바스를 통해) 100억을 주고 이명박과 김경준이 50대 50으로 공동 설립한 LKe뱅크 주식을 액면가의 3배로 사들입니다. 초장부터 작전주를 통해 돈을 벌거나, 투자자한테 본인들의 지분을 비싸게 팔아먹은 거죠. 그러다 보니 이명박은 BBK 법인카드까지 사용하고 MAF 펀드의 홍보책자에 김경준과 나란히 찍은 커다란 사진까지 실려있는 데도 무조건 아니다 또는 위조다 하고 있는 거죠. AM파파스는 몰라도 됩니다.

그러다가 금감원의 감사과정에서 BBK의 위법 운영 및 MAF 펀드 서류 위조 사실이 발각되고, BBK는 2001년 4월 폐업 조치를 당하게 됩니다. 설립 후 1년 반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지요. 상황이 이렇게 되니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회수하려고 난리겠지요. 심텍과 다스만 제외하고 다 돌려받습니다. 나중의 소액 투자자들 피해 건과는 다릅니다.

심텍은 50억 중 20억만 먼저 회수하고 2001년 10월까지 나머지 30억을 돌려받지 못하자 김경준뿐 아니고 이명박까지 걸어 고소합니다. 법원은 고소인의 요청을 타당하다고 받아들여 이명박의 재산을 가압류합니다. 아주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이명박은 그동안 BBK는 본인과는 전혀 무관한 회사라며 BBK의 주가조작 등은 김경준이 한 짓이지 본인 회사도 아닌데 왜 자기한테 그러냐고 했거든요. 이명박 주장이 맞다면 법원의 가압류 결정은 잘못된 거죠. 아니면 이명박이 거짓말을 하고 있던지요. 어쨌든 이명박은 심텍에 돈을 물어 주고 가압류를 해지합니다. 결국, 심텍도 투자금을 다 회수했지요.

심텍 케이스가 재미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직 진짜는 시작도 안 했습니다. 다스는 190억 투자금 중 50억만 돌려받고, 투자한 지 7년이 지난 현재까지 140억을 못 돌려받고 있습니다. 지난 8월에는 미 연방법원으로부터 3년 전 김경준을 상대로 제기한 140억 반환소송에서 다스가 패소 판결을 받았지요. 판결문의 요지는 김경준의 사기성이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다스가 서류상으로는 이명박의 처남 김재정이 49%, 형인 이상은이 47%를 소유하고 있고, 실제로는 이명박의 소유가 아니냐 하는 의심을 받고 있는 회사인 줄은 알고 계시지요? 그런데 이 회사가 다른 투자자들 돈 다 회수해 가고, 이명박은 본인 책임도 아닌(?) 돈까지 심텍에 물어 주고, 김경준까지 미국으로 도피(2001년 12월) 하고도 1년 6개월이 지난 시점인 2003년 5월에 조금 전 말씀드린 그 140억 반환 소송을 제기합니다.

많이 이상하지요? 그 회사 대주주들의 매부이자 동생인 이명박이 소개해서 투자한 거고, 그가 누구보다도 더 투자금 회수의 위험성을 잘 알았을 텐데 왜 그랬을까요? 또 이명박이 돈에 대해 어떤 사람입니까? 무슨 말씀인지 잘 아시죠? 그러니 애당초 다스가 소송을 할 상황이 아니었는데 뒤늦게라도 소송을 하지 않으면 모양새가 너무 이상하니 할 수 없이 소송을 걸었고, 그러다 보니 증거 불충분으로 패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거지요.

그런데 애당초 다스가 소송을 할 상황이 아닌 게 어떤 걸까요? 이명박이 이미 다스 투자금을 회수했다면 그렇지 않겠습니까? 옵셔널벤처스는 2001년 증자를 통해 685억의 자본금을 늘렸으니, 소액투자자들은 큰 피해를 입었지만, 이명박이 투자금을 회수할 충분한 현금은 회사에 있었지요. 실제로 옵셔널벤처스와 MAF 펀드 사이에는 380억 이란 돈이 증발했고요. (그런데 BBK -> MAF 펀드->옵셔널벤처스 이거 기억하시죠?) 또 하나, 아까 말씀드린 다스의 회수금 50억도 2001년 2월 BBK 계좌에서, 다스 계좌가 아닌, 이명박의 계좌로 이체가 되었습니다. 상당히 재미있지요?

다스 소송과는 별도로 이명박도 김경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다스보다도 8개월이나 더 늦게요! 위에서 언급한 심텍에 물어준 돈 30억과 아직 언급 안 한 하나은행이 LKe뱅크에 출자한 5억 등 100억을 돌려 달라고 한 거죠. 물론 이 소송에서도 미국 법원은 김경준의 손을 들어줬고요. 그런데 이 하나은행 5억에도 재미있는 얘기가 하나 더 있습니다. 얼마 전에 2000년 당시 하나은행이 LKe뱅크에 지분 출자하면서 작성한 내부 문건이 공개가 됐는데 LKe뱅크가 BBK를 100% 소유하고 있다고 명시되어 있는 것이었죠. LKe뱅크는 이명박과 김경준이 50 대 50으로 출자해 설립한 회사라고 말씀드렸고… 문건이 사실이면 이명박과 BBK가 직접 연결이 되는 순간이고, 이명박의 일관된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가 되는 거죠.

김경준의 주장은 BBK는 물론이고 LKe뱅크의 경우에도 본인이 출자한 돈은 한푼도 없고 100% 이명박 소유라고 주장합니다. 다스 190억이 돈을 굴려 달라고 맡긴 투자금이 아니고 이명박의 출자금이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다스도 이명박 회사라는 거죠. 재미있는 사실은 공교롭게도 두 사람이 설립한 세 회사의 자본금 총액이 다스 190억과 일치합니다. BBK(김, 30억), LKe뱅크(이, 김, 60억), EBK증권중개(이, 김, 100억). EBK는 설립한 지 얼마 안 돼서 아까 말씀드린 금감원의 BBK 폐업 조치 후 바로 접었기 때문에 이 사건에서 별 역할을 못했습니다. 따라서 설명 안 했습니다.

이외에도 여기에 언급은 안 했지만 다스와 BBK가 이명박의 소유임을 시사해주는 물증과 정황들이 여럿 더 있습니다. 다스와 BBK가 이명박 소유가 아니라는 가정을 했을 때 앞뒤가 맞지 않는 여러 가지 상황들이 그의 소유로 바꾸어 가정을 해 보면 잘 맞는 퍼즐 맞추듯이 깔끔하게 맞아떨어집니다. 검찰이 정치적인 고려를 안 한다면 결론은 자명해 보이는 데…

워드 두 장 안쪽으로 막으려고 했는데 좀 길어 졌네요. 도움이 됐는지 더 헷갈리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긴 글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제 이해가 잘못됐거나 중요한 부분을 놓친 게 있으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수정해 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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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임기 여성의 음주와 흡연, 얼마나 나쁜데...

가임기 여성의 음주와 흡연, 얼마나 나쁜데...
[뉴스 속의 건강 25] 가임기 여성, 산모와 태아 위해 ‘계획 임신’해야
엄두영 (eomdy)
 
 
  
▲ 흡연중인 여성 지난 9월 조사에서 여성 흡연율은 3.7%로 조사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임기인 20대의 흡연율이 4.8%로 여성의 평균 흡연율을 넘어서고 있으며 그 비율도 증가추세에 있습니다.
ⓒ 엄두영
흡연

현재 우리 사회는 많은 부분에서 남녀관계가 많이 평등해졌습니다. 그러나 이번 주 <뉴스 속의 건강>에서는 다소 불편할 수 있지만 평등하지 말아야 할 남녀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하겠습니다.


바로 임산부의 흡연과 음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국금연운동협의회는 지난 9월 우리나라 20세 이상 성인 남성, 여성의 흡연율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성인 남성 흡연은 43.7%, 여성 흡연율은 3.7%로 조사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아직 월등히 남성의 흡연율이 높지만, 성인 남성 흡연율은 전년에 비해 2.2% 감소한 반면, 여성 흡연율은 0.9%로 증가했습니다. 특히 여성쪽에선 가임기인 20대 흡연율이 4.8%로 여성 평균 흡연율을 넘어서고 있어 그 주의를 요하고 있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도 지난 1999년 우리나라 20세 이상 여성의 음주율이 54.9%로 조사됐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우대 간호학과 양승희 교수가 지난 2003년 12월 여대생을 대상으로 음주에 관해 조사한 바에 의하면 92.4%가 술을 마신다고 답해 가임기 여성의 음주율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나라 가임 여성의 흡연과 음주율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임신시 태아와 산모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소홀합니다.


음주, 태아 기형의 주원인

 

  
▲ 태아알코올증후군 태아알코올증후군으로 태어난 아이의 특징적 얼굴입니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는 성장발육 부진, 정신 장애, 안구, 코, 심장, 중추신경계에 이상을 보일 수 있습니다.
ⓒ 미국가정의학회지
태아알코올증후군

'여성이 술을 한 잔 마시는 것은 퍽 좋은 일이다. 두 잔 마시면 그녀는 품위를 떨어뜨린다. 석 잔째는 부도덕하게 되고, 넉 잔째에서는 자멸한다.'


여성의 음주를 바라보고 있는 <탈무드>의 유명한 말입니다.


실제로 '프렌치 패러독스(French Paradox)'라는 표현이 있듯 동맥경화증의 예방을 위해서 소량의 알코올을 매일 섭취하는 것은 도움이 됩니다. 알코올 농도가 30g 미만이면 심장에 좋다고 하는데, 이와 같은 알코올의 양은 일반적으로 하루 3잔 미만의 술을 뜻합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가임기 여성에게는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알코올은 태반을 쉽게 통과할 정도로 분자가 작아서 임산부의 혈중 알코올 농도의 약 85% 정도는 태아의 혈액에도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반면 태아의 간은 아직 알코올 분해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태아에는 악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그리고 태아에게는 '태아알코올증후군(Fetal Alcohol Syndrome)'이라고 불리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안겨줄 수 있습니다.


김종화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태아알코올증후군은 신생아 성장장애, 안면기형과 신경기형 등을 일으키며 신생아 정신지체의 가장 큰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많은 약들도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술의 경우 임신 첫 3개월 기간 동안 태아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임신 초기에는 음주를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한의학적으로 술은 오곡의 정수(精髓)입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사람들에게 약간의 술은 몸에 좋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술은 몸에 열을 내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체력을 빨리 소진시킬 수 있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장준복 경희대 경희한방병원 부인과 교수는 "임산부들은 임신 중 더위를 탄다"면서 "이 상태에서 술을 먹는 것은 몸을 더 덥게 만들고, 체력소모도 촉진 시킨다"고 임산부들에게 술이 해가 된다고 조언합니다.


아직 어느 정도의 술이 태아 기형에 영향을 주게 되는지에 대한 정확한 결과는 없습니다. 그러나 임신 초기 폭음은 단 한번으로도 '태아알코올증후군'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특히 임신 초기 임신한지 모른 채 모임에서 폭음을 할 경우 위험할 수 있으니 가임기 여성들은 음주를 조심하셔야 하겠습니다.


흡연, 태아 기형과는 무관하지만 유산 확률 높여

 

  
▲ 금연포스터 태아에 대한 흡연의 영향을 경고하는 영국의 금연 포스터입니다. 흡연은 태아에게 발육부전, 저체중아, 태아 유산 등을 일으킬 수 있고, 출생 후 '영아 돌연사 증후군'과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 영국 국민건강보험(NHS)
흡연

'흡연은 폐암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되며, 특히 임신부와 청소년의 건강에 해롭습니다.'


이전 담뱃갑에 적혀있던 흡연 경고 문구입니다. 짧은 문구이지만 틀린 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담배가 '백해무익'하다는 말은 이제 누구에게나 상식입니다.


그러나 여성들에게 금연을 권유하다가 오히려 반 페미니스트로 오해를 받거나 남녀불평등의 주범으로 오해받는 상황에 맞닥뜨리기도 하는 등 여성들에게 금연을 권하는 것이 예전보다 힘들어진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현재 분위기를 반영하듯 매년 남성 흡연율의 감소와 달리 여성 흡연율은 증가추세입니다.


일반인들의 생각과 달리 임산부들의 흡연은 음주와 달리 태아의 기형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대신 임산부들에게는 임신을 유지시키는데 치명적 악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김종화 교수는 "임신 중의 흡연은 태아의 기형을 유발하지는 않지만, 발육부전과 저체중아를 출산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고, 태아 유산과 밀접하게 관련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출생 전후의 흡연을 통해 갓 태어난 아이들은 '영아 돌연사 증후군'을 겪을 수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임산부들에게는 흡연이 태반 조기박리(자궁 속 태반이 정상보다 일찍 원래 위치에서 떨어지는 것)나 전치태반(태반이 자궁 입구에 전부 혹은 일부가 놓여 있는 경우), 양막 조기파열의 가능성을 높이고, 조산을 유도하는 등 임신을 유지시키는 것을 힘들게 만드는 주원인이 됩니다.


그러나 담배가 임신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주장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태아의 기형 유발과는 무관하고, 임신중독증과 관련 있는 임신중 고혈압을 막는 등 일부 긍정적인 영향이 학계에 거론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김종화 교수는 "아직 모든 의사들이 이 부분에 있어서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고 잘라 말합니다.


한의학적으로 임신의 상황은 일종의 기(氣)가 울체(鬱滯, 순환하지 않고 머뭄)된 상황입니다. 기가 울체되면 빈혈이 자주 일어나는 등 모체의 혈액이 모자라게 되는데, 이때는 조혈 등을 통해 임산부의 체력을 보강해줘야 합니다.


장준복 교수는 "담배는 매우 조(燥, 마른 상태)하게 만드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더욱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서 건조한 성질의 담배가 피를 말려 여성들의 빈혈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담배의 해악에 대해 말합니다.


음주와 흡연을 한다면... '계획 임신' 생각해야

 

  
▲ 임신중인 여성 생명을 수태하는 것은 부모와 가족 모두에게 축복이지만, 수태된 생명을 태어날 때까지 잘 유지하는 것이 진정한 축복입니다.
ⓒ 영국의학저널(BMJ)
임신

생명을 수태하는 것은 부모와 가족에게 모두 축복이지만, 수태된 생명을 태어날 때까지 잘 유지하는 것이 진정한 축복입니다.


하지만 임신 중 음주와 흡연은 태아와 산모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모든 가임기 여성들이 절주와 금연을 하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모든 가임기 여성들에게 일괄적으로 절주와 금연을 권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이를 가질 계획이 있다면 적어도 임신 6개월 전부터 절주와 금연을 시작하는 '계획 임신'을 권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임신 후 담배를 끊겠다는 가임기 여성의 2/3 이상이 담배의 중독성 때문에 임신 중에도 계속 담배를 피운다는 보고가 있고, 임신의 자각증상이 없는 가운데 한 번의 폭음은 태아를 불행에 빠트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 엄두영 기자는 현재 경북 의성군의 작은 보건지소에서 동네 어르신들을 진료하고 있는 공중보건의사입니다. 많은 독자들과 '뉴스 속의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2007.11.17 11:23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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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당, '코리아연방공화국'이 뭐길래…

 

 

민노당, '코리아연방공화국'이 뭐길래…
  조승수ㆍ주대환 등 문제제기에 당내 자주파 징계 요구
 
  2007-11-18 오후 5:25:21
 
   
 
 
  "자녀교육비와 매달 돌아오는 카드비가 고민인 서민들에게 코리아연방공화국이 무슨 의미냐."
  
  "통일국가가 되지 않고는 민중의 삶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없다."

  
  민주노동당이 이번 대선에서 '코리아연방공화국'을 국가비전으로 내건 것을 놓고 뒤늦게 내부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출마로 이번 대선 구도가 보수간 경쟁으로 흘러가고 있는 가운데, 권영길 민노당 대선 후보의 낮은 지지율은 '코리아연방공화국'이라는 유권자들의 관심과는 거리가 먼 아젠다를 전면에 내세운 탓이라는 잠재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코리아연방공화국'은 당내 다수 정파인 자주파(NL)의 주장으로 이번 대선에서 국가비전으로 채택된 것.
  
  인터넷신문 <레디앙>에 관련된 글들을 기고한 조승수 진보정치연구소 소장의 '징계' 문제로 표면화된 이 갈등은 전부터 내재돼 있던 민노당의 고질적인 문제인 '정파 문제'가 그 뿌리라는 점에서 이번 파문이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된다.
  
  "코리아연방공화국, 난 선거운동 못 한다"
  
  조 소장은 지난 16일 <레디앙>에 '코리아연방, 난 선거운동 못 한다'라는 글을 기고해 "통일 방안이 아니라 한국사회 개혁의 총체적 상과 국가비전을 코리아연방공화국으로 하자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면서 "민생의 고통이 분단이 해소된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달라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통일지상주의에 매몰된 운동권 일부를 제외하고는 보지 못했다"고 자주파를 비판했다.
  
  조 소장은 "현 단계의 통일은 떡도 밥도 아니며 남북한 민중 누구도 원치 않는 재앙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훨씬 크다"며 "한국의 민중은 통일보다 자녀 교육비와 돌아오는 카드 결제일이 더욱 큰 관심사"라고 주장했다.
  
  조 소장은 앞서 같은 매체에 기고한 '당 혁신 첫 발 비례대표 후보선출 이렇게'라는 글에서 자주파를 겨냥해 "군사 왕조집단인 북한 지배세력을 추종하는 소수세력과 그들에게 이용당하는 이른바 자민통"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조 소장이 조직화된 당내 다수세력으로 지도부ㆍ후보 선출, 선거 및 당 운영 전략 등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쳐온 자주파에 대한 공격에 앞장 서자 자주파 내에서도 반격의 조짐이 보였다.
  
  지난 16일 있었던 최고위원회의에서 조 소장에 대한 '징계'가 논의됐다. 이날 김은진 최고위원은 조 소장이 "군사왕조 집단인 북한"이라는 표현을 쓴 것과 특정 정파를 과도하게 비난했다는 이유로 유감 표명과 경고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승수에 이어 주대환 전 정책위의장도 문제제기
  
  당 최고위원회에서 한때 조 소장에 대한 '징계'가 논의됐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그간 내재돼 있던 자주파의 당 운영에 대한 불만이 여기저기 터져나올 조짐이 보이고 있다.
  
  조 소장에 이어 주대환 전 정책위의장은 17일 <레디앙>에 글을 기고해 조 소장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주 전 의장은 "거대 정파들이 두려워 민감한 문제는 피하고 보는 당 간부들의 침묵의 카르텔을 깨고 나온 조 소장을 환영한다"며 "코리아연방공화국은 저질 정치 상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진지하지 않은, 공허하고 현실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가 대선 공약 전체를 설명하는 국가비전이 될 수 있겠나"고 거듭 코리아연방공화국에 대해 비판했다.
  
  앞서 정파갈등과는 무관하게 정책연구원 19명도 지난 9일 '코리아연방공화국'이라는 국가비전에 대해 반대하는 성명을 냈었다. 이들은 "세부 공약작업을 하는 연구원들은 코리아연방공화국의 '구체적 실체'가 무엇인지 어떠한 상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도 받은 바 없었을 뿐더러 의견수렴과정조차 밟지 않고 있다"며 "오랫동안 준비해온 각 부문의 공약들과 심각하게 충돌한다"고 반대하는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자주파가 지도부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선대위는 지난 12일 회의에서 '코리아연방공화국'을 국가비전으로 결정했다.
  
또 하나의 '뇌관', 비례대표선출안
  
  
또 다른 '뇌관'이 바로 내년 4월 총선에서의 비례대표 선출 방식이다.
  
  당 중앙위는 17일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비례대표 2번 순번을 주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비례대표 선출 개정안을 확정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출신의 국회의원이 탄생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에서 이번 개정안의 의의를 찾을 수 있지만, 일각에서는 1인 6표제의 현행 투표방식을 유지하고 있으며 비례대표 후보선출을 대선 직후인 내년 1월로 하기로 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특정정파가 다수인 당 지도부가 자신들의 정파에 유리하도록 하기 위해 비례대표 선출을 둘러싼 논의를 서둘러 봉합해 버렸다는 것.
  
  민노당 관계자는 "현행 투표방식은 특정 정파가 비례대표 의석을 독식할 수 있다는 문제제기가 있다"면서 "또 대선 직후인 12월 말부터 실제 비례대표 선출 준비에 들어가야 하는 '1월 선출안'은 대선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질 뿐 아니라 대선 결과에 대한 책임 등을 물을 수도 없게 된다"고 말했다.
  
  조승수 소장도 "비례대표의 본래 취지인 부문 대표성을 살리면서 당의 정체성을 구현하여야 한다"면서 "비례대표 선출 방안은 단순한 제도개선이 아니라 당의 혁신을 위한 중차대한 사안이다. 평당원들과 당 밖에서 어떤 주문이 있는지 귀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총선마저…
  
  그간 내재돼 있던 갈등이 대선을 한 달 앞둔 시점에서 불거질 조짐이 보이는 것은 현재의 '저조한 대선 성적표' 때문이다.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자주파는 조직적으로 권영길 후보를 지지하기로 결정해 권 후보의 승리를 이끌어냈고, 이후 선대위의 주요 요직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민생문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당 내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코리아연방공화국', '100만 민중대회' 등을 선거 아젠다 및 전략으로 내걸었다. 그 결과 권 후보는 2-5%대의 저조한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올초만 해도 '진보 대 보수 진검승부'를 자신하던 민노당은 대통합민주신당과 합당을 앞두고 있는 민주당 이인제 후보를 겨우 앞서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14일 김형탁 당 대변인이 전격 사퇴한 것도 이런 당내 분위기를 반영한다. 김 대변인은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당 지도부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잠재적 역량을 이끌어내지 못해 구도와 희망은 있었지만 전략은 없었다"면서 "전략만 없는 것이 아니라 당원들의 의지를 불러낼 실력도 없었다"고 '쓴 소리'를 했다. 김 대변인은 한미 FTA에 대한 미온적 대응, 한국노총에 대한 사과 파문 등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또 다른 민노당 관계자는 "많은 이들이 그간 정파구도가 민노당 내부의 소통과 의사결정을 왜곡시켜왔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지만 서로 쉬쉬하면서 이 문제를 덮어왔다"며 "당이 위기에 처하면서 모순들이 한꺼번에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이번 파문이 확산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이러다가 대선 뿐 아니라 내년 총선 전망도 불투명해지는 게 아니냐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며 "이에 따라 그간 덮어왔던 문제들을 드러내고 수술해야 한다는 인식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드러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권영길 후보는 당내 갈등 상황을 감안한 듯 지난 15일 인터넷신문협회 주최 토론회에서 "코리아연방공화국은 메인 슬로건이 아니라 통일 방안 중의 하나이고 통일 됐을 때 선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홍기혜/기자
 
 
 
 
권영길 "선군정치·북핵 옹호론 수용 못 해" 2007-11-15
한국노총-민노당, 화해 첫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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