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칼럼

한쪽에는 보수가, 다른 한쪽에는 진보가 있다. 무엇을 보수로, 무엇을 진보로 정의할 것인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필자는 이렇게 정의한다. 보수는 기존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쪽, 진보는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로 갈아타려는 쪽이다. 보수는 기존 질서에서 최고의 기득권을 누린다. 그런데 이 기득권은 불로소득을 바탕으로 한다. 불로소득은 일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의 노동대가를 빼앗은 것이기 때문에 정당하지 않은 것이고 개혁해야 할 대상이 된다.

여기서 가장 미스테리한 점은 보수가 진보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것이다. 보수는 사실 소수다. 한 줌도 안되는 인간의 무리가 거대한 군중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사실 이것은 단순한 메커니즘에 근거한다.

보수의 운동방향은 하나로 통일된다. 변화를 거부하고 저항하는 것. 하지만 진보를 보자. 진보는 그 운동방향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찢겨져 있다. 케인지언, 맑스주의자, 사민주의자, 환경운동가, 민족주의자, 러다이트주의자, 테러리스트1, 페미니스트, 종교인들, 신흥영성주의자들, 무신론자, 예술가, 성소수자, 인권단체, 몽상가들 그리고 현실도피자들까지...

진보는 각자의 취향과 관심사와 자기도취적 심리에 의해 분열되어 있다. 보수가 그 적은 수에도 불구하고 진보를 이기는 것은 진보가 분열하여 얻는 어부지리漁夫之利다. 보수가 강한 게 아니라 진보가 약한 것이다. 분열되어 있기에. 이 분열의 실상을 먼저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때때로 진보세력들은 선거에서 이기려고 뭉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결속은 느슨하다. 그들은 통일된 하나의 정치경제 패러다임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정치적 이득을 계산하여 연합하는 것이기 때문에 옆구리만 살짝 찔러도 그 대오는 무너지고 만다.

진보는 다들 잘났고 다들 똑똑하고 그래서 각자 갈 길을 가기 때문에 늘 진다. 그렇게 똑똑하고 잘났으면 자기들끼리 붙어서 진보의 방향에 대해서 최종합의를 봐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결론이 나왔으면 그대로 밀고 가야 한다. 그런데 그것도 아니다. 그냥 각자의 보잘것없는 견해를 소중히 간직한 채 사회운동가의 로망을 꿈꾸며 낮잠을 자고 있을 뿐이다.

각자가 자기 우상의 방에서 무엇을 하는지 보았느냐? (에스겔 9:12)

 

진보세력의 목표는 모두 실비오 게젤의 <자연스러운 경제질서>로 가장 쉽고, 가장 간단하고, 가장 근본적으로 이룰 수 있다. 붙어 볼 용기가 있으면 논쟁을 해보자. 뒤에서 쑥덕거리지만 말고.

보수는 백 보 물러설 것을 한 보 물러선 뒤에 "너무 많은 것을 양보했다"며 엄살 피우는 것이 고작이다. 아쉬운 쪽이 움직여야 한다. 아쉬운 건 진보세력이다. 따라서 필자는 보수를 비판하지 않고 진보를 비판한다. 진보를 더 강하게 만들려고 진보를 비판한다. 진보의 운동방향을 통일하려고 진보를 비판한다.

진보세력을 자처하는 여러분들이 지금 쥐고 있는 패를 놓아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보수의 포지션이 더 강해질 것이다. "가짜 진보"를 버리라. 그걸 붙잡고 있기 때문에 사태가 악화되는 것이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낡은 부대에 담으면 그 부대가 찢어져 버릴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세상을 낡은 경제질서 안에서 빚어낼 수는 없다. 이것이 바로 경제질서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하는 이유다. 낡은 질서를 버리라. 그리고 새로운 질서를 맞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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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폭력은 합리화할 수 없는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그들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수단"으로 폭력을 선택한다는 의미에서 포함시켜 두었다.텍스트로 돌아가기
2015/07/25 21:17 2015/07/25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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