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 순서 (새로운 버전)

칼럼

필자는 실비오 게젤 개혁의 순서에 대해서 이미 아래와 같이 다룬 적이 있다.

 

실비오 게젤의 <자연스런 경제질서>를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돈을 순환하게 하라. 그리고 돈이 상품·노동 외 다른 곳으로 새지 못하게 하라."

우리는 우선 돈이 상품·노동 외 다른 곳으로 새지 못하게 미리 조치해야 한다. 돈을 순환시킨 다음에 엉뚱한 길로 새지 않게 막으려고 하면 순서가 맞지 않다. 미리 돈이 흘러가는 길을 상품·노동으로 한정지어 놓고 돈을 순환시켜야 한다.

첫째, 돈이 나라밖으로 새면 안된다. 다시 말해, 한 나라의 돈이 다른 나라의 돈과 직접 교환되면 안된다. 그러면 한 나라의 부가 나라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고, 그 돈이 빠져나가거나 다시 밀려올 때 물가·환율이 불안정해진다. 경제의 기본바탕이 흔들린다는 얘기다. 실제로 투기꾼들은 이런 허점을 공격한다. 그리고 각국 정부는 여기에 대비하려고 실제 국제무역에 필요한 것 이상으로 달러를 보유해야만 한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그래서 국제무역은 제3의 통화를 만들어서 해야 한다. 새로운 국제무역구조로 실비오 게젤이 제안한 국제통화협회(IVA)를 채택해야 한다.(케인즈가 브레튼우즈에서 제시한 ICU는 이 시스템을 모방 또는 표절한 것이다.) 국제통화협회는 국제통화 이바를 협회가입한 나라들한테 발행한다. 발행량은 각 나라 돈의 20%씩이다. 한국이 미국한테 수출을 많이 하면 이바가 많이 들어오고 그러면 한국은 그만큼 원화를 발행한다. 돈순환이 완전한 상태에서 통화량이 늘었으니 물가는 오르고 물가가 올랐으니 수입이 촉진되어 이바는 다시 빠져나간다. 그런 식으로 이바의 넘침·부족이 자동으로 조절되어 무역수지균형을 이룬다. 게젤의 해법대로 국제무역구조를 정상화시키려면 기존 미 달러 기축통화제를 무너뜨려야 한다. 달러의 위상은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경제담론은 달러 대신 유로나 위완화를 기축통화로 세우는 걸 고려할 뿐, 기축통화제 자체의 문제는 간과하고 있다. 세계경제가 연결되어 있어서, 기축통화제를 그대로 놔두면 모든 개혁이 물거품이 된다. 국내에서 의미있는 개혁을 추진해도 더 큰 외부의 불균형에 의해 교란될 수 있다. 따라서 기축통화제를 무너뜨리고 IVA로 갈아타는 것이 개혁의 1단계다.

둘째, 이제 돈은 외국으로 빠져나가지는 못한다. 하지만 자국의 땅으로 쏠릴 수 있다. 따라서 국제통화협회 가입국들은 자국의 땅을 국유화해야 한다.(천연자원 포함) 정부는 땅주인들한테 정부증권을 주고 땅을 매입한다. 그 정부증권의 이자는 그 땅의 임차인한테 받는 세로 충당한다. (이 정부증권이자는 돈이 낳는 이자와 연동되게 해둔다) 이 개혁을 공짜땅(Free-Land)이라고 한다.

셋째, 돈이 더이상 이자를 낳지 못하게 하고 정기적으로 감가상각시킨다. 실비오 게젤은 이것을 스탬프머니라는 형태로 실현한다. 이것으로, 정부는 땅주인이 가진 정부증권에 대한 이자를 더이상 부담할 필요가 없어지고 원금만 갚으면 된다. 원금은 그 땅을 임대하여 받는 세로 충당한다. 그 세는 원금을 모두 갚은 다음에 모두의 복지에 쓴다. 쌓여있던 돈이 순환하면서 통화량을 줄여야 한다. 물가를 고려하여 통화량을 적절히 조절한다. 이 개혁을 공짜돈(Free-Money)이라고 한다.

국제통화협회IVA,   공짜땅Free-Land,   공짜돈Free-Money
<자연스런 경제질서>의 제안은 이 세 가지다.

사실,  이 세 가지 개혁이 어떤 순서로 진행되어야 할지에 대해 실비오 게젤의 <자연스런 경제질서>는 명확하게 애기하고 있지 않다. "파트Ⅱ.공짜땅 2.공짜땅 재정"에서 언급한 내용을 통해 공짜땅을 공짜돈보다 먼저 해야 한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다.

국제통화협회를 공짜땅보다 먼저 해야 하는 이유는, 그 반대로 하면 돈이 해외로 샐 수 있기 때문이다. 불균형상태 조율은 큰 범위에서 점점 세세하게 들어가야 한다. 악기 조율할 때를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강이나 바다에서 물고기를 몰아서 잡는 것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돈”이라는 물고기를 자국의 상품·노동으로 몰아가기 위해 나라와 나라 사이에 그물을 먼저 친 다음, 나라 안에서 땅으로 쏠리지 못하게 다시 그물을 치는 것이다. 이러면 물고기는 계속 움직이겠지만 그 범위가 상품·노동에 한정될 것이다.

 

하지만 최근 개혁의 순서에 대해서 다른 견해를 갖게 되었다. 예전에는 국제통화협회-공짜땅-공짜돈의 순서로 가는 게 안전하다고 보았다. 그 이유는 돈이 미리 엉뚱한 곳으로 새지 않게 하고 순환시키는게 맞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공짜돈은 이미 순환해야 하는 강제에 종속되므로 외국으로 빠져나가더라도 곧 다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액면가가 정기적으로 감가상각되기 때문에 외국이 그 돈을 쌓아두면 손실을 입기 때문이다. 게다가 게젤에 따르면, 환율안정은 각국 물가안정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다.

각국 물가가 안정되고 그 물가를 표시하는 통화들끼리 만나야 환율이 안정된다는 것은 자명하다.

The aim in every country must therefore be the stabilisation of home prices in order to obtain a stable rate of exchange. - Silvio Gesell: The Natural Economic Order Part 4: Free-Money or Money as it Should Be 5. HOW FREE-MONEY WILL BE JUDGED C. The Exporter

물가안정은 공짜돈으로만 이룰 수 있다. 따라서 공짜돈을 국제통화협회보다 먼저 해야 한다. 그리고 게젤에 의하면 공짜땅 개혁을 먼저 하고 공짜돈 개혁을 한다. 땅을 국유화하면 빚이 생기는데 그 빚을 공짜돈 개혁을 통해서 갚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혁의 순서는 공짜땅-공짜돈-국제통화협회가 된다.(이 순서는 <자연스러운 경제질서> 파트의 배열 순서와도 일치한다. 게젤은 아주 정교하게 이 텍스트를 구성하였다.)

공짜돈 개혁을 국제통화협회보다 먼저 해도 된다는 것은 이 개혁이 세계 여러 곳에서 국지적으로 진행되어도 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여러 나라의 합의를 얻어야 하는 국제통화협회보다 훨씬 쉽다. 경제가 가장 어려운 나라들이 시도해야 한다. IMF에서 돈을 빌리려고 국가재산 다 팔아먹을 게 아니라 먼저 기존 통화를 개혁해서 순환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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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1 14:49 2015/05/21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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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방문자 2014/10/30 18:03 URL EDIT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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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홀씨 2014/10/30 23:01 URL EDIT REPLY
개혁순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추진할 세력이 누구인가가 중요할 듯 합니다.
레인메이커 | 2014/10/31 16:27 URL EDIT
누가 되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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