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59주년]글로벌시대, 외국 이민정책은 어떻게…
[경향신문 2005-10-05 15:30]    

▲ 유럽에선…

-대거유입 막게 철저한 쿼터제-

이민은 유럽연합(EU)의 모든 국가들에게 민감한 문제다.

EU가 25개국으로 확대됐다는 것은 일자리를 찾아 국경을 넘는 일이 전보다 훨씬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불법이민의 기회도 확대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EU 전체의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이민은 긍정적 효과를 갖고 있다.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인한 노동인구 감소를 메워줄 대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인들은 불안해 한다. 이민을 대대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일자리가 줄어들고 유럽 국가의 최대 강점인 복지체제가 붕괴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EU 통합 헌법이 각국에서 부결되고 사실상 사문화되기에 이른 가장 중요한 이유도 이민에 따른 실업과 복지 위축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EU 각국의 이민정책은 나라별로 다를 뿐 아니라 한 나라 안에서도 개별적 사안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기 때문에 공통적 체계에서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모든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뚜렷하고 확실한 추세는 철저하게 국익에 부합하는 이민정책을 선택적으로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국들은 EU확대로 외국인 노동자가 대거 자국으로 유입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철저히 쿼터제를 적용하거나 일정 기간 유예기간을 두고 있다. 가장 보수적인 성향의 덴마크는 외국인들에게 이주 후 7년이 지나야 정부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EU확대 직전에 통과시켰다. 이 때문에 유럽 이주 노동자들은 대부분 불법 이민 상태가 된다.

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 유럽 선진국들은 EU확대 이전부터 불법이민으로 골머리를 앓아왔다. 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이주기구(IMO)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1991~2000년 사이 유럽의 불법 이민자 수는 해마다 80만명씩 증가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이들 국가에서는 출산율 감소에도 불구하고 인구가 늘어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들은 정치적으로 불안한 나라 또는 빈곤한 북아프리카에서 넘어오는 경우다. 이들이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망명 허가를 받는 것이다. 따라서 유럽에서는 불법 이민자들을 망명 희망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들이 망명허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관대한 망명 허가국이었던 독일은 90년대 초반 망명신청 건수가 1백만을 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이 정부 지원에 의존하면서 국가의 부담이 늘어나기 시작하자 이들에 대한 복지혜택을 줄이고 망명 허가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현재 독일에 망명신청을 하는 건수는 연간 5만건 이하로 줄었다.

독일은 최근 16개주 내무장관 회의에서 코소보·이라크·아프가니스탄 등에서 몰려온 망명신청자들을 돌려 보내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22만명에 달하는 외국인들이 추방될 위기에 처해있다. 이 중에는 독일에서 13년간이나 거주한 10대들도 포함돼 있다.

이같은 추세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네덜란드·영국·노르웨이 등도 망명신청이 거부된 이주자에 대한 정부혜택을 없애거나 줄였다. 프랑스도 불법이민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는 한편 출산 장려 등 장기적 계획으로 노동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국가재정을 쏟아붓고 있다.

다민족사회에서는 사회보장 등 국가안전망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시각이 존재하는 한 외국인 노동력을 철저한 관리하에 둠으로써 자국민의 불안과 노동력 부족을 동시에 해소하려는 유럽 각국의 시도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유신모기자〉

▲ 미국에선…

-9·11이후 이민제한 단속강화-

AP통신은 지난 14일 수확기를 앞두고 노동력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건포도농장들을 소개했다. 대표적인 노동집약산업인 포도농장은 여름철 6주 동안 집중적으로 포도를 따 햇볕에 말려 건포도를 생산하는데 이들 노동자의 대부분은 이민자들이며 그 중 절반은 불법체류자(불체자)다.

그런데 ‘9·11테러’ 이후 미국 당국이 외국인들의 미국 이민을 엄격히 제한하고, 불체자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면서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농장의 경우 지난해 110명이 동원돼 포도를 땄으나 올해는 51명만이 일하고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이런 현상은 비단 포도농장뿐만 아니라 식당이나 건축, 호텔 같은 업종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나고 있다.

이 보도는 오늘날 미국이 처한 ‘이중적 노동 현실’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민자들의 나라’인 미국은 지금까지 외국인들의 이민에 대해 관대한 입장을 취해 왔으며 필요한 노동력을 이민자들의 값싼 노동력으로 충당해 왔다. 특히 청소나 식당일, 건축 등 3D업종은 이들이 도맡고 있다.

그러나 2001년 ‘9·11 테러’ 이후 상황이 돌변했다. 미국 정책의 최우선 순위가 ‘국토안보’에 맞춰지면서 이민자와 불체자들에 대한 단속이 매우 까다로워졌다. 이민자들 때문에 미국인들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보수층의 불만도 한몫했다.

불체자들에겐 운전면허증을 발급해 주지 않는가 하면 이들이 자녀를 낳더라도 시민권을 주지 않는 법안도 상정돼 있다. 영주권을 신청하는데만 5년을 기다려야 하는가 하면, 수십년을 살던 사람이 불체자라는 이유로 하루 아침에 추방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불체자들을 고용하는 업소에 대해선 허가를 취소하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현재 미국내 불체자는 8백만~1천2백만명으로 추정되며 중남미계가 대부분이다. 이들의 입국 경로는 멕시코 국경을 넘는 육로와, 배편으로 남부해안에 도착하는 해상로가 대표적이다. 이 과정에서 숨지는 사람만도 연간 500명에 이른다.

이에 따라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노동력 부족이다. 각 산업체마다 인력부족으로 아우성을 치고 있다. AP통신은 “이같은 상황이 계속될 경우 미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연두 교서를 통해 대대적인 이민개혁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불체자에 대해 일정기간(3~6년) 합법적으로 일할 권리를 부여하고 그 기간이 끝나면 본국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한시적 노동허가제는 기간이 너무 짧다는 지적도 있지만 대체로 이민자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불체자들을 미국으로 쏟아붓는 꼴”이라는 보수층들의 반대에 부딪혀 아직까지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다. 김성환 이민전문변호사는 “불체자 문제의 심각성과 이민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이뤄져 있는 상태지만 미국사회의 보수성향이 너무 강해 좀처럼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워싱턴|정동식특파원〉

▲ 일본에선…

-노동력 수혈 급급 ‘인권은 없다’-

“문은 열었지만 너무도 좁은 문이다.”

도쿄에서 생활하고 있는 30대의 한 필리핀인은 일본에서의 외국인 삶을 이렇게 표현했다. 5년 전 일본에 건너온 뒤 컴퓨터 관련 일을 하고 있지만 제도적·비제도적 차별과 배타에 설움의 연속이라는 뜻이다. 사실 일본은 80년대까지만 해도 외국인 고용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단일민족·단일문화에 대한 자부심, 외국인은 믿을 수 없다는 불신감 때문이었다. 물론 이같은 상황은 최근 들어 많이 변했다.

일본의 외국인 정책은 거품 경제와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거치면서 크게 바뀌었다.

우선 1980년대 말 거품 경제로 임금이 높아지고, 인력난까지 겹치면서 중소기업들이 아우성을 쳤다. 이에 따라 92년 1차 출입국관리기본계획을 통해 ‘전문지식·기술을 가진 외국인’과 ‘연수생’에 한해 문호를 열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경제의 글로벌화, 인구감소로 인한 노동력 부족 문제가 사회 이슈화되면서 ‘영주를 전제로 한 이민’을 검토하고 있고 3D 업종 및 의료·복지분야에 대한 노동력을 외국인으로 충원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일본 전문가들 분석에 따르면 현재 외국인 노동자들은 ‘정문’ ‘연고’ ‘뒷문’ 등 흔히 3가지 방식으로 일본에 입국한다. 정문은 체류자격을 갖고 정식으로 들어오는 전문·기술직이다. 연수생 제도는 3D 업종 노동력으로 활용되고 있다. 연고 입국은 브라질, 페루 등의 일본계 외국인이다. 핏줄을 내건 친족 방문 형태지만 실제로는 노동력으로 활용되고 있다. 뒷문은 불법체류자들로, 최소 30만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일본이 다민족 사회로 접어든 만큼 외국인 노동자들의 일본 생활에 문제가 없도록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현실은 척박한 게 사실이다. 당장 일본은 선진국 중 유일하게 난민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전후 특수한 사정으로 일본에 정주한 재일한국인 역시 ‘소수 민족’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참정권 등 참여의 권리가 봉쇄돼 있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처우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에 체류하는 상당수 아시아 여성들은 사기, 폭력은 물론 인신매매의 피해를 입고 있다. 중소기업에 고용된 뒤 급여를 받지 못한 채 쫓겨나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적지않다. 법무성·경시청 등의 대대적인 불법체류자 단속도 일본사회의 외국인 멸시로 이어지는 부작용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출입국관리법·외국인등록법에 의한 외국인 관리와 추방을 기본으로 한 현재의 외국인 정책을 인권을 기본으로 한 정책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구체적으로는 2003년 국제조약으로 발효된 이주노동자권리 조약 비준을 촉구하고 있다. 이 조약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정치·사회적 권리 보장 등이 포함돼 있다. 동시에 소수 민족에 대한 아이덴티티와 지방 참정권 보장 등 다민족·다문화가 공생할 수 있는 사회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니와 마사오 일본변호사연합회 국제인권부장은 “국경을 뛰어넘은 생활공간과 다른 문화를 갖고 있는 외국인에 대한 비차별·평등권 보장을 강구하지 않을 경우 새로운 착취 구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도쿄|박용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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