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서울을 다녀왔다. 민주노총에서 "건설현장 이주노동자 조직화 사례와 방향"이라는 기특한 토론회를 한다고 해서 말이다. 원래 하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부산에서 이 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해 올라온 지인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이 토론회에는 "베트남 이주노동자 투쟁으로부터 배운다!"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이건 베트남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으로부터 배우겠다는 말이 아니다. 올해 있었던 국내에서 일하는 베트남노동자들이 자생적으로 일으켰던 파업투쟁에서 배우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파업투쟁이 알려지게 된 것은 10명의 베트남 노동자들이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된 것을 뒤늦게 나마 인권단체 등에서 알게되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세상사라는 것이 우연과 필연의 결합이라는 것이 구속된 베트남 노동자의 여자친구가 한 이주인권단체에 가서 상담을 의뢰하지 않았다면 이 사건은 어쩌면 영원히 알려지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이날 토론회는 민주노총이 주최하고 주발제자와 토론자가 대부분 건설연맹 조합원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론회에 참석한 민주노총 조합원은 10명이 되지 않았다. 인권단체 등에서 10명 정도 참여해서 총 20명 정도가 참여한 조촐한(초라한?) 토론회였다. 이주노동자 조직화 문제에 대한 민주노총내의 관심정도가 어떠한 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도 이런 토론회라도 민주노총이 개최한다는 것 조차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니 긴 호흡으로 바라보면 조금씩 발전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주발제는 건설연맹 유기수 정책실장님이 하였다. 지역에서부터 알고 지내던 분이라 더욱 반가웠다. 발제문의 내용은 베트남이주노동자 파업사건과 관련한 사건경과와 평가가 주된 내용이라 살짝 지루하였다. 하지만 발제문과 상관없이 발언으로 정리하신 내용이 더 좋았다. 발언하신 내용을 살짝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얼마전에도 언론에서 보도된 바 있듯이 한국의 노조조직률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고 최근에는 드디어 10% 이하로 떨어지기에 이르렀다. 건설연맹도 200만 건설노동자 중 2.5% 정도 밖에 조직하고 있지 못하다. 노동자 조직화가 노동조합의 가장 큰 과제인데 현재 건설현장의 이주노동자 비율이 수도권 같은 경우는 거의 8~90%에 이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들을 조직하지 못하면 노조조직률을 높일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현장 노동자들의 정서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최근 건설플랜트노조에 가입한 여수지역건설노조의 경우 이주노동자 도입반대가 공식요구사항이다. 현장 노동자들은 이주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뺏고 임금과 근로조건을 저하시키는 주범이라고 여기고 있다.
이주노동자들 내에서도 한국어의사소통이 가능한 중국동포들은 사정이 좀 나은 편에 속한다. 이번에 베트남 노동자 투쟁을 함께 하면서 다른 아시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이 얼마나 열악한지에 대해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들의 열악한 상황을 모른채 한 상태에서는 전체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향상시킬 수 없다.
주 발제가 끝나고 첫번째 토론자로 발표한 건설노조 대구경북 지부장의 발표 내용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발제자는 자신을 이주노동자 내쫓기 사업의 주도자였다고 소개했다. 대구지역 건설노조는 2006년 30일 파업이 끝나고 현장에 복귀하려고 했더니 그 자리에 이미 이주노동자들로 채워져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주노동자 완전히 몰아내기를 요구로 싸웠고 나중에는 지역주민 80%이상 고용이라는 좀 완화된 요구사항을 내걸었다.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 이 땅에 온 이주노동자들을 내쫓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걸 점점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함께 일하고 있는 조선족 출신 조합원 한명과 함께 현장을 다니며 간담회를 개최하며 노조가입을 독려하였다. 하지만 이미 이주노동자들은 노동조합에 대한 불신을 넘어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고 노조가 나타나기만 하면 숨기에 바빴다. 정말 어려운 과정을 겪으며 조금씩 마음을 돌려놓는데 성공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우선 내국인조합원들의 동의를 받기가 너무 힘들다. 내국인들 조직화하기도 벅찬데 이주노동자들까지 조직화하려면 배로 힘들다. 상근자 3명인 역량으로 내국인조직화에 집중하는 것도 어려운 현실이다. 그리고 조합원보다 훨씬 다수인 비조합원들은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더 적대적이다.
하지만 지금 내국인 조합원 평균나이가 52세이다. 이들만의 힘으로는 현장의 노동강도가 점점 강화되고 근로조건이 열악해지는 것을 막아내기가 솔직히 힘들다. 그런데 이주노동자들의 상황도 조직화가 쉬운 게 아니다. 지금 건설현장의 이주노동자 중 90%가 한족이다. 말이 통하는 중국동포는 10% 정도 밖에 안된다. 90%한족들이 주로 고용되는게 중국동포가 팀장으로 있는 불법하도급업체들이다. 그런데 중국동포팀장들이 한국에서 배운 못된 관습을 그대로 써먹으면서 한족노동자들의 임금을 중간에서 착취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현장을 조직하려면 말이 안통하기 때문에 이 조선족팀장들을 통해서 노조의 입장을 전달한다. 그래서 우리입장이 제대로 전달되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이주노동자 조직화 문제를 지역차원에만 맡겨놔선 안된다. 건설노조 차원의 명확한 입장이 없다.
두번째 토론은 경기중서부 건설지부의 이주노동자 조직화 사례와 교훈 발표였다. 경기중서부 건설노조의 이주노동자 조합원은 현재 50여명 정도고 2명의 한족을 제외하면 100% 중국동포들이라고 한다. 경기중서부 건설지부는 건설노조 전체에서 이주노동자 조직화에 가장 먼저 나선 지부이고 대구경북 지부가 이주노동자 쫓아내기 사업을 하는 것을 강하게 비판했던 곳이다. 경기중서부 지부의 발표는 이주노동자 조직화의 어려움에 대해서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1. 이주노동자들의 심리불안 : 정부와 사용자들이 입국할 때부터 각종 교육과 의식화를 통해 노조가입을 못하도록 협박하고 있다.
2. 단기성체류로 인한 관심저하 : 단기성체류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에 '나는 여기서 평생 살 사람이 아니다'라는 의식이 강하다.
3. 이미 나름대로 조직화 되어 있다. : 도급화되어 있고 중간모집책들에 의해 조직화되어 있다. 이들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현실적인 조건들이 있다.
4. 언어장벽 : 한족노동자들의 수가 훨씬 많아졌다.
5. 행정절차 : 취업자격취득 등 각종 행정절차가 걸림돌
6. 숙소의 문제 : 대부분 프로젝트성 사업에 속해 사업완성 후 이동하므로 주거가 불안정
세번째 토론은 이주노조 미셸위원장의 토론발표였다. 하지만 이 토론은 중간에 나와야해서 끝까지 듣지 못했다. 미셸위원장 토론의 주된 내용은 이주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뺏고 근로조건을 저하시킨다는 것에 대한 반박, 한국노조들이 이주노동자 조직화에 미온적인 것에 대한 유감, 그리고 조직화를 하는데 있어서 이주노동자들을 대상화하지 말고 주체화시키는 방향으로 조직해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이었다.
토론회를 나오면서 예전에 한국 석탄광업노조가 이주노동자 유입에 반대해서 싸웠던 게 생각났다. 그때 민주노총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전노협도 이주노동자유입을 반대한다는 입장이었다. 한국의 석탄산업은 정부의 석유화학중심의 정책때문에 결국 사양산업이 되었고 지금은 명맥이 거의 끊겨버렸다. 하지만 석탄산업 내부적으로도 당시 제조업이 활황이었고 임금단가가 쌨기때문에 노동자들이 더 이상 광산으로 가려고 하지 않았다. 광산노동자들의 숫자는 줄고 연령은 높아졌으며 당연히 생산성도 따라서 낮아졌다. 결국 정부가 석유중심의 산업구조로 재편하는 것의 정당성에 빌미를 제공한 측면도 있다. 만일 그때 이주노동자유입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임금과 근로조건보다 낮은 조건으로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에 반대하고 이주노동자들을 노조로 조직하는 방향으로 나갔다면 어땠을까?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오늘의 현실에 빗대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simon/trackback/303
-
Subject: 노동의 미래
Tracked from reminiscence 2011/12/08 13:21 deletenoii님의 [건설현장에서 이주노동자 조직화하기] 에 관련된 글.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당시 나는 필리핀 공동체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그 때 외노협에서 주최하는 토론회에 참석한 일이 있다. 고용허가제를 시행하기 훨씬 전의 일이다. 토론회 패널로 민주노총에서도 참석했고 굉장히 성의 없는 발제를 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토론회를 보러 온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외노협 산하 단체에서 일하는 상근자들이었는데 한 명이 일어나 민주노총에서 온 발제자...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정리해 주신 덕분에 잘 읽었네요. 이래저래 새끼치는 생각들이 있긴 합니다만,, 암튼 고맙습니다.
도움이 되셨길 바랍니다^^
제가 이 부분을 예전에 조사해본 적이 있어서 몇 말씀 덧붙입니다. 전노협 기관지 '전국노동자신문'과 민주노총 기관지 '노동과 세계'를 비교해보면 아주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전노협 시기에는 이주노동자 유입 반대와 이주노동자 조직화라는 대립적 주장이 존재하면서 이주노동자 자체가 전노협 등 노동운동의 중요 의제였지만, 민주노총 시기가 되면 거의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민주노총은 실질적으로 이주노동자 의제를 노동운동 외부의 인권운동에 전가한 측면이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전노협에서 민주노총으로 질적/양적 전환을 하게 된 주/객관적 조건에 대한 분석이 필요합니다. 그 안에서 조직화의 노선이 어느순간 폐기되고 그 노선은 민주노총 외부에서 계승되게 됩니다. 이노투본에서 지금의 이주노조로의 성장전화는 이러한 민주노총과의 갈등 속에서 거두어낸 의미있는 성과인셈이지요. 이주노조는 한편으로 인권운동 내부에서 일정한 긴장을 형성하면서 독자성을 유지해왔고, 다른 한편으로 민주노총 등 국민적 노동운동과의 갈등 속에서 그 독자성을 노동운동 내부에 관철해온 셈입니다.
원래 외노협에 민주노총도 들어와있었지요...암튼 길게 보면 발전이 있었던 건 분명한데 그 사이 이주노동자 활동가들이 너무 많이 추방당하는 바람에 지금은 그 동력의 일부가 약화된 것도 사실인 것 같아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