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에 해당되는 글 7건
- 10월 넷째 주 파주풍경 2008/10/28
- 아시아의친구들 가을소풍 - 국립중앙박물관견학 2008/10/20
- 10월 둘째 주 파주풍경 2008/10/13
- 경인방송 인터뷰 2008/10/09
- 이주민과 구금 토론회 2008/10/07
- 10월 첫주 금촌사무실 풍경 2008/10/05
- 영화 '하디타 전투' 소개글 2008/10/02
주중에 비가 온 뒤로 기온이 부쩍 떨어짐을 느낍니다. 파주사무실도 지난 겨울 이래 처음으로 바닥의 전기판넬을 켰습니다. 날씨가 쌀쌀해서인지 한국어교실을 나오는 친구들의 숫자도 조금 줄어들었습니다. 이번 주는 지난주에 소풍을 함께 간 친구들이 거의 그대로 나왔습니다. 월말이 가까이 왔고 조금 있으면 연말이다 보니 주말특근을 하는 사업장도 많은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지난 한 주 사이에도 수요일과 금요일, 토요일에 각각 단속반이 나와서 많은 사람들을 잡아갔다고 합니다. 한국어교실이 끝나고 파주병원에서 하는 무료진료소에 가보았는데 그 곳도 지난번과 달리 무척 썰렁하더군요. 이래저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입니다.
그래도 기쁜 소식도 여전히 있습니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퇴직금을 받지 못했던 방글라데시에서 온 슐레만 씨가 퇴직금을 지급받았습니다. 사장님은 슐레만 씨를 고용한 적이 없다고 계속 부인하였지만 사법연수원생들의 도움으로 관련서류자료를 들이밀자 결국 지급을 하였습니다. 스리랑카에서 온 디론 씨도 퇴직금을 받았습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이끄람씨도 그만둘 때 받지 못했던 임금과 퇴직금을 지급받았습니다. 태국에서 온 완나폰 씨도 노동부 진정까지 간 끝에 밀린 임금을 지급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어교실에 선생님이 또 한 분 늘어났습니다. 성함은 윤정실 선생님이시고 구로에 있는 한국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에서 자원활동을 한 경험도 있으십니다. 일요일 날 직접 찾아오셨었는데 다행히도 아담한 분위기의 아친 사무실이 마음에 드신다고 합니다. 한국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처럼 역사도 깊고 규모도 큰 곳에 비한다면 아친은 조그마한 구멍가게 같을 텐데 오히려 이런 공간의 필요성을 더욱 공감하신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앞으로 좋은 인연을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사무실에는 조그만 서명용지가 놓여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서명”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최근 정부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임금과 복지수준을 낮추겠다고 하고 있고 12월 국회에서 출입국관리법과 고용 허가제 법을 더욱 안 좋은 방향으로 바꾸려 하는 거 혹시 알고 계시나요? 경제가 안 좋아진 건 알겠는데 그 책임을 왜 이주노동자들에게 지우려 하는 건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전국의 이주민인권단체들이 연대해 이런 정부의 움직임에 “NO”라는 여론을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서명운동인데 한국인과 이주민들을 합해 1만 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 12월초에 정부와 국회에 제출할 예정입니다. 선생님들께서도 서명에 꼭 동참해주실 것을 부탁 드립니다. 그리고 혹시 주변에 서명을 하실 만한 분이 있다면 받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물론 학생들에게도 설명을 해주시고 서명하도록 도와주시고요.
이래저래 이번 일요일에는 한국어교실 교사회의가 있을 예정입니다. 10월 달 활동을 돌아보고 11월을 준비하는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모두들 오후1시까지 나오실 수 있는지요? 선생님들, 답장 부탁 드립니다.
역시 박물관견학이 그리 매력적이지 않아서일까요. 출발시간까지 모인 참여자수가 평소 공부하러 오는 숫자보다 조금 적습니다. 그리고 재작년에 갔었던 친구들은 다들 오지 않았네요. 게다가 뉴스에서 불경기라고 떠드는데도 요즘 일요일 특근하는 친구들도 부쩍 많아졌습니다. 결정적으로 오늘 봉일천에서 크리켓 시합이 있다네요. 결국 13명의 학생들과 8명의 교사들이 '최종 엔트리'로 확정되었습니다. 학생들은 요즘 한국어교실의 다수를 차지하는 베트남친구들이 역시 다수(10명)였고, 스리랑카와 태국친구가 함께 갔습니다.
20명 남짓한 규모도 단체는 단체인지라 이동하는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기차시간에 맞춰 허겁지겁 표를 끊고 어렵사리 기차에 탔는데 베트남 친구 한 명이 기차를 못타는 불상사가 벌어졌습니다. 다행히 버스를 타고 서울역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지만 아차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나 그냥 집에 갈께요"라는데 어찌나 미안하던지...
박물관에 도착하자 마자 야외공원에 앉아 점심부터 먹었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니까요. 원래 각자 도시락을 싸오기로 했는데 언제나 그렇듯 대부분 그냥 왔습니다. 토요일도 늦게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으니 아침 일찍 나오면서 도시락까지 싸오는게 쉽지는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다행히 유현순 선생님이 새벽부터 일어나 잡곡밥을 두 번이나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참치잡곡김밥을 넉넉히 싸오셔서 모두들 푸짐히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선생님들도 조금씩 먹을 것들을 가져오셔서 이것저것 나눠먹으니 오히려 음식이 남을 정도였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교육프로그램을 먼저 듣기 위해 박물관 지하에 있는 교육관으로 이동하였습니다. 프로그램의 내용은 화폐를 이용한 문화이해교육과 도자기채색체험이었습니다. 생각보다 강의가 길지 않고 체험 중심이다보니 친구들도 많이 흥미있어했습니다. 특히 도자기체험은 모두들 자기만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열중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몇몇 친구들은 처음하는 것임에도 꽤 훌륭한 그림솜씨를 보여주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공장에서의 반복되는 노동이 아닌 창조적인 활동을 하는 친구들의 얼굴에 웃음과 생기가 넘쳤습니다.함께 참여한 자원활동선생님들 역시 자신만의 작품세계에 푹 빠진 모습이었습니다.^^
교육프로그램을 마치고 전시실 관람을 하였습니다. 돌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꼼꼼히 전시물들을 볼 수는 없었습니다. 우선 아시아전시관으로 가서 베트남과 중앙아시아 등의 유물을 보았습니다. 베트남에서 온 유물들이 보이자 베트남친구들이 아주 반가워했습니다. 시간이 많았다면 천천히 보면서 이야기도 나눠보면 좋았을텐데 그러지 못해 좀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같이 온 태국과 스리랑카의 유물들은 보이지 않아 그것도 좀 아쉬웠습니다.
아시아관을 보고 나서는 전시된 유물 중에서 박물관에서 추천하는 10가지의 유물만 둘러보기로 하였습니다. 전체유물을 다 보려면 하루가 아니라 며칠은 걸릴 것 같았으니까요. 주되게 국보급 중요문화재들로 선정된 유물들이었는데 티브이나 사진으로만 보던 것들이어서 감흥이 새로왔습니다. 특히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조명이 잘 갖춰진 특별전시실에서 따로 전시를 하였는데 문외한인 저 조차 순간 숨이 멎는듯한 감동이 느껴질 정도였답니다.
관람을 마치고 그 여운을 즐길새도 없이 기차시간을 맞추기 위해 우리는 또다시 서울역을 향해 달려야했습니다. 나들이를 나간다고 한껏 멋부리고 하이힐까지 신은 친구들도 있었는데 내일 아침이면 발목이 퉁퉁 부어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올때와 마찬가지로 만원인 기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이 친구들에게 오늘 어떤 추억이 남겨졌을까 잠시 궁금해졌습니다. 혹시 하루종일 서서 걷다가 뛰다가 한 다리아픈 기억만 남은 건 아닐까? 그 대답은 아마도 내년에 다시 국립중앙박물관을 가자고 이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알게될 것 같습니다.^^
10월 둘째 주 파주사무실 풍경
오늘도 한국어교실에 찾아올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생각하며 사무실을 최대한 깨끗하게 치워놓으려고 생각합니다. 진공청소기로 이곳저곳을 청소하는데 텔레비전 밑에서 쥐똥을 발견! 한 동안 보이지 않던 쥐똥을 보고나니 요즘 들어 이상하게 온몸에 힘이 없던 것이 새삼 생각나며 전의가 불탔습니다. 그리하야 참으로 오랜만에 걸레를 빨아 구석구석을 닦았습니다. 닦다보니 구석에서 또 쥐똥발견! 항상 쥐가 먹을 만한 것들은 철저히 치웠는데 어째서 이 놈이 출몰하는지 도대체 뭐 먹을 게 있다고...아마도 날씨가 추워지니 이놈들도 따뜻한 곳을 찾아다니나 봅니다.
오늘도 한국어교실은 학생들로 넘쳐났습니다. 한동안은 스리랑카 친구들이 많이 찾아왔는데 요즘은 베트남 친구들이 많습니다. 체육대회와 무료진료 등으로 몇 주 정도 한국어교실을 잘 살펴보지 못했더니 얼굴 모르는 친구들도 많습니다. 입회원서를 쓰며 나이들을 보니 대부분 82년 83년생들입니다. 가끔 85, 86년도 있습니다. 스무 살을 갓 넘긴 친구들이라 휴일이면 놀고 싶고 가보고 싶은 곳도 많을 텐데 일요일을 반납하고 공부하러 오는 모습이 대견합니다. 그런데 이 어린 친구들이 일하는 작업장의 환경이 매우 좋지 않아 걱정입니다. 목재가공공장에서 일하는 R씨와 M씨는 합판 접착일을 하는데 작업장에 본드냄새가 심하게 나는데도 마스크조차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일을 하다보면 머리가 아프다는데 사장님께 마스크 달라는 말도 해 본 적 없다고 하였습니다.
오늘은 선생님들 중에 못 나오신 분들이 많아 사법연수원에서 법률 봉사하러 오신 정병록, 이일 두 분 선생님들까지 교사로 투입되었습니다. 갑작스런 부탁에도 불평 한 마디 없이 열심히 수업을 진행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파주의 터주대감 칸반장도 오늘은 선생님이 되어 수업을 하였답니다. 새로 온 스리랑카 친구를 위해 열정적으로 가르치는 모습이 너무 멋졌습니다. 또 그동안 거리가 멀어 오지 못했던 고등학생 자원봉사자 준한이도 오랜만에 오자마자 수업을 하였습니다.
2부 수업은 이혜정 선생님이 한국의 대표적인 민요인 ‘아리랑’에 대해서 강의하셨습니다. 저는 상담오신 분이랑 대화하느라 강의를 잘 듣지는 못했지만 학생 한 분이 아리랑을 능숙하게 부르시는 소리를 감동적으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2부 수업을 하는 동안 귤과 바나나와 같은 과일들을 맛나게 먹을 수 있었는데 얼마 전 고향에 다녀온 루완 씨가 사온 것이었답니다.
오후4시부터는 파주병원에서 매월 2, 4주에 하는 무료진료가 있어 사법연수원생 선생님들과 함께 그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아친은 무료진료하는 장소에서 임금체불과 산재 등에 대한 상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9월부터 시작된 무료진료가 처음에는 찾아오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오늘은 꽤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번호표를 받아서 기다릴 정도인 걸 보니 이제 이주민들 사이에도 제법 알려진 듯 했습니다. 그런데 파주병원 담당자 분께서 오시더니 걱정스런 표정으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상담하는 것에 대해서 인근지역 사업주들이 부담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기가 막혀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법에도 없는 이상한 편법을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법에 나와 있는 최소한의 기본권에 대해 상담하고 있는데 도대체 무엇을 걱정하는 것인지... 아직도 사업주들의 인식이 바뀌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무료진료에는 아친에 찾아오는 친구들 모습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한국어교실이 끝나고 이리로 바로 온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전에 상담을 했던 친구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언제나 한산했던 일요일 오후가 이주민들로 북적이는 모습을 보니 조용했던 파주가 아주 활기차진 느낌이었습니다. 우리를 찾아온 이 ‘젊은 피’들과 더불어 함께 사는 것, 멋지지 않은가요?
경인방송에서 이주민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데 인터뷰가 필요하다고 해서 오늘 인터뷰를 하였다. 원래 라디오 다큐멘터리만 제작한다고 했는데 도중에 계획이 변경되어서 TV다큐도 함께 제작한다고 한다. 그래서 카메라 감독님도 함께 우리 사무실을 방문하였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담당PD는 매우 열정적으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미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도 다녀왔고 곧 일본도 다녀올 예정이다. 그리고 이주민단체들 뿐 아니라 불법체류자추방운동본부와 같은 대척점에 있는 단체도 만났다고 한다.
인터뷰는 아시아의 친구들에 대한 소개와 이주민들이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해 그리고 미등록문제에 대해 주로 진행되었다.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유럽에서도 소위 불법체류자 단속이 무척 심한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였다. 유럽하면 인권선진국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있는 한국에서 유럽의 사례는 종종 모범적인 사례로 인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유럽에서조차 단속이 강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은 단속이 마치 인권과는 무관한 문제인 것처럼 느끼게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다만 이민의 역사가 오래된 유럽과 한국을 단순비교하기는 어렵다는 정도였다. 그리고 유럽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데 유럽이라고 해서 무조건 따라할 수는 없는 법이라는 원칙적인 대답뿐이었다. 이민규제에 반대하는 유럽의 다양한 목소리들이 한국에 좀 더 소개되어야 할 것 같다.
유엔에서 정한 구금자인권개선주간을 맞아 국가인권위에서 '이주민과 구금'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연휴를 하루이틀 앞두고 갑작스레 토론자로 나와줄 것을 제안받아 참여하게되었다. 발제는 공감의 황필규변호사가 이주민과 구금에 대해서, 법무법인 소명의 김종철변호사가 난민과 구금에 대해서 그리고 캐나다에서 변호사활동중인 한태희변호사가 캐나다의 이주민구금관련 제도에 대해서 각각 발제를 하였다. 토론자로는 한양대 박찬운교수와 내가 이주민과 구금에 대해 토론자로 지정이 되었고, UNHCR한국사무소의 마마두 디안 발데씨가 난민과 구금에 대한 토론자로 나왔다. 사회는 김칠준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이 직접 보았다.
이날 토론회에 법무부는 참여하지 않았다. 인권위 쪽에서 계속 요청하였으나 끝내 거부하였다고 한다. 출입국관리법 입법예고를 앞두고 국민여론 수렴에 적극 나서야할 주무부처가 이런 좋은 기회를 스스로 거부하였다니 통탄할 일이다. 공개적인 토론의 자리에 나서지 못할 만큼 자신없는 일을 도대체 왜 밀어부치려는 것인지...
법무부의 불참으로 토론이 활기있게 진행되기는 애초부터 어려웠다. 그럼에도 몇가지 쟁점이 형성되기는 하였는데 특히 영장주의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황필규 변호사는 발제를 통해 행정구금일지라도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점에서 기본권에 대한 본질적 침해가 이루어지므로 사법부의 통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한양대 박찬운교수는 형사피의자는 사건의 성격상 인권침해가능성이 높으므로 영장주의가 필요하지만 비형사적인 사건의 경우에는 그렇지않다고 주장하였다. 대신 박교수는 영장주의에 준하는 제도의 도입 필요성은 인정했는데, 검찰과 법원이 아니더라도 행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캐나다의 이주민구금에 관한 위원회와 같은 외부 통제를 검토해 볼만하다고 하였다.
법률 전문가가 아닌 내가 보기에 영장주의와 영장주의에 준하는 제도의 차이가 얼마나 큰 것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비형사적인 구금의 경우 인권침해 가능성이 형사적구금보다 더 적다는 박교수의 주장에는 동의가 되지 않았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실은 단속과 보호과정에서 나타나는 행태가 형사피의자 구금보다 더 열악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물론 박교수의 말은 형사피의자의 경우 유무죄를 따지는 것이 매우 복잡하고 그 결과에 따라 피의자에게 지워지는 부담의 차이가 매우 큰 반면, 출입국위반의 경우 위반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이 훨씬 단순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음이었을 것이다. 그렇더라 할지라도 구금된 외국인의 대부분이 받게 되는 최종적 결과가 강제출국이고, 이는 당사자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수반할 수 있는 가혹한 처벌의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형사피의자보다 더 수월히 다루어도 된다는 주장에는 선뜻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오늘도 한국어교실에는 새로운 얼굴들이 많이 오셨습니다. 요즘에는 베트남 친구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낯익은 얼굴들 몇몇이 보이지 않습니다. 연휴가 끝난 뒤라 오늘도 일하는 사업장이 많기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애타게 찾던 자원활동교사도 오늘 두 분이나 새로 오셨습니다. 두 분다 남성 분이신데 이제야 교사들 성비불균형 문제가 해결되려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두 분 선생님들의 멋진 활약을 기대합니다~
한국어수업 2교시는 초급과 중급반으로 나눠서 진행하였습니다. 초급반은 김문희 선생님이 지도하셨고, 중급반은 제가 했습니다. 제가 진행한 내용이 법률용어등이 많은 어려운 내용이라 아무래도 초급수준의 학생은 어려울 것 같아 초급반은 여러가지 한국어표현등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리고 제가 진행한 중급반은 최근 이주민과 관련된 시사뉴스를 공부하였습니다. 얼마전 정부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들의 숙식비를 사업주가 아니라 이주노동자들에게 비용부담하도록 바꾸고 최저임금도 6개월간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등의 '개선방안'을 정부가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뉴스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하고 몇가지 단어들에 대해서 테스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연말까지 목소리를 많이 내야 지금보다 더 나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소식에 의아스런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는 친구들을 보고 있자니 제 얼굴이 다 화끈거려왔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들과 다과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아루마씨는 직장에서 일이 너무 많고 힘들어서 고민이 많습니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갈지 아니면 좀 더 돈을 벌지도 고민중입니다. 네팔에서 오신 기론씨도 참으로 오랜만에 찾아오셨는데 요즘 요로결석으로 병원에 다니고 계시답니다. 태주씨는 한달정도 일본을 여행하고 돌아왔는데 언제나 그렇듯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태주씨가 만든 짜파게티를 먹고 기론씨가 만든 짜이를 마시고 나니 뱃속이 따뜻한게 아주 든든했습니다.
모두가 돌아갈 무렵 자야씨가 한 친구를 데려와 밀린 임금을 상담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야씨는 지금 스리랑카에 잠시 돌아간 친구에게 보낸다며 핸드폰을 하나 사왔는데 중국산 '짝퉁' 같았습니다. 한국사람들은 보기 힘든 물건인데 이 친구들은 이런 것들을 잘도 구합니다. 참 오늘은 인근 고양시에 있는 항공대 학보사에서 기자분이 오셔서 아친을 취재해가셨습니다. 마지막엔 얼결에 저도 인터뷰를 하게되었는데 항공대학생들이 이주민들을 더 가깝게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었길 바랍니다.
오늘도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나가버렸습니다. 황금같은 휴일을 반납하고 나와서 자원활동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수고하셨다는 말밖에는 드릴 게 없네요. 그리고 장시간 고된 노동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한국어수업을 받기 위해 나온 우리 친구들에게도 오늘 하루가 값진 시간들로 채워졌길 바라겠습니다. 다음주에 또 만나요, 그리고 그 다음주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가을소풍가는 것 잊지 마시고요~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전쟁이 일어나길 바라느냐?"고 물어보면 백이면 백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누구나 전쟁을 반대한다. 하지만 인류가 그동안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수많은 전쟁이 있어왔고, 독재자나 소수지배자들의 의지로 일어난 전쟁들도 있지만 백성, 국민, 시민, 민중...무엇으로 불리던 다수 대중들의 지지 속에 벌어진 전쟁도 적지 않다. 특히 가장 최근에 인류가 치룬 두 차례의 세계대전 경험은 가장 비극적이고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전쟁의 역사에서 전쟁을 통해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항상 정해져있었다. 권력이나 부를 소유한 소수만이 수혜자였다. 반면 권력과 부에서 소외되어 있는 다수대중들은 전쟁을 통해서 자신들도 이득을 얻을거라고 믿었지만 그런 믿음은 언제나 배신당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대중들이 깨달을 즈음에야 전쟁은 끝이 났다. 하지만 깨달음의 시간이 길면 길수록 깨닫지 못함에 대한 댓가는 가혹하리만치 커져버린 이후이곤 했다.
2004년에 '국익'이라는 이름하에 이라크로 파병된 자이툰부대는 여전히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다. 시민사회진영의 끈질긴 반대투쟁이 있었지만 국회와 대다수 국민은 '전쟁참여'를 선택하였다. 그 후 고 김선일씨와 윤장호하사의 죽음이 있었고 지난해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된 기독교인들이 희생되었지만 아직도 다수의 국민들은 참전을 통해 자신들이 모종의 이득을 얻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정부와 조중동이 선전하는 '대규모 건설사업 수주'운운하는 기사를 보며 '거봐 전쟁하기 잘 했지'라며 뿌듯해하는 국민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세계에서 전쟁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 미국의 평범한 국민들을 보더라도 전쟁이 평범한 대중들에게 가져다준 것은 더 위험해진 세상과 더 어려워진 살림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시는 이라크를 점령한 후에 이라크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가져다주었다고 선언했지만, 정작 미국은 '신자유주의'가 가져다 준 경제위기에 휘청거리고 있다. 미국이 가지고 왔다는 '자유'와 '민주주의'는 자본을 위한 것이지 평범한 사람들의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 상영하는 '하디타 전투'는 이라크에서 일어난 미군의 민간인 학살을 다룬 영화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학살자로 등장하는 미군들은 단지 가해자가 아니라 또 다른 피해자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한 미군병사는 이렇게 외친다. "우리를 이곳으로 보낸 장군들과 정치인들이 죽이고 싶도록 원망스럽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평범한 삶을 살았을 20살 전후의 젊은이들... 그들은 전쟁의 비극적인 상황을 견뎌내기에는 너무나 어린나이들이었다.
미국은 이미 전쟁이 아니고서는 제국을 유지조차 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들이 세계를 향해 윽박지를 수 있는 유일한 힘은 경제력도, 문화적인 힘도 아니고 B-29 스텔스전폭기와 해병대에 달려있다. 그런데 미국을 추종하며 따라 배워온 한국도 요즘은 방위산업청을 만들고 무기수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지에 국군을 파병해 제국을 흉내내기 한창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내 재산을 부풀릴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있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지난 대선과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확인한 것이다. 이런 상황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면, 경제를 살리기 위해 다른나라와 전쟁을 벌이는데 다수 국민이 찬성표를 던지는 날이 오지말라는 보장이 있을까? 결국 평화를 원한다면 극단적인 경쟁으로 모든 사람들을 몰아가는 경제구조와 교육제도를 바꾸는 방법 밖에는 없다. 군사전략가 클라우츠제비츠의 유명한 말 -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틀렸다.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를 준비하라!"
* 이 글은 금정굴인권평화영화상영회 자료집에 싣기 위해 기고했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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