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둘째 주 파주사무실 풍경
오늘도 한국어교실에 찾아올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생각하며 사무실을 최대한 깨끗하게 치워놓으려고 생각합니다. 진공청소기로 이곳저곳을 청소하는데 텔레비전 밑에서 쥐똥을 발견! 한 동안 보이지 않던 쥐똥을 보고나니 요즘 들어 이상하게 온몸에 힘이 없던 것이 새삼 생각나며 전의가 불탔습니다. 그리하야 참으로 오랜만에 걸레를 빨아 구석구석을 닦았습니다. 닦다보니 구석에서 또 쥐똥발견! 항상 쥐가 먹을 만한 것들은 철저히 치웠는데 어째서 이 놈이 출몰하는지 도대체 뭐 먹을 게 있다고...아마도 날씨가 추워지니 이놈들도 따뜻한 곳을 찾아다니나 봅니다.
오늘도 한국어교실은 학생들로 넘쳐났습니다. 한동안은 스리랑카 친구들이 많이 찾아왔는데 요즘은 베트남 친구들이 많습니다. 체육대회와 무료진료 등으로 몇 주 정도 한국어교실을 잘 살펴보지 못했더니 얼굴 모르는 친구들도 많습니다. 입회원서를 쓰며 나이들을 보니 대부분 82년 83년생들입니다. 가끔 85, 86년도 있습니다. 스무 살을 갓 넘긴 친구들이라 휴일이면 놀고 싶고 가보고 싶은 곳도 많을 텐데 일요일을 반납하고 공부하러 오는 모습이 대견합니다. 그런데 이 어린 친구들이 일하는 작업장의 환경이 매우 좋지 않아 걱정입니다. 목재가공공장에서 일하는 R씨와 M씨는 합판 접착일을 하는데 작업장에 본드냄새가 심하게 나는데도 마스크조차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일을 하다보면 머리가 아프다는데 사장님께 마스크 달라는 말도 해 본 적 없다고 하였습니다.
오늘은 선생님들 중에 못 나오신 분들이 많아 사법연수원에서 법률 봉사하러 오신 정병록, 이일 두 분 선생님들까지 교사로 투입되었습니다. 갑작스런 부탁에도 불평 한 마디 없이 열심히 수업을 진행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파주의 터주대감 칸반장도 오늘은 선생님이 되어 수업을 하였답니다. 새로 온 스리랑카 친구를 위해 열정적으로 가르치는 모습이 너무 멋졌습니다. 또 그동안 거리가 멀어 오지 못했던 고등학생 자원봉사자 준한이도 오랜만에 오자마자 수업을 하였습니다.
2부 수업은 이혜정 선생님이 한국의 대표적인 민요인 ‘아리랑’에 대해서 강의하셨습니다. 저는 상담오신 분이랑 대화하느라 강의를 잘 듣지는 못했지만 학생 한 분이 아리랑을 능숙하게 부르시는 소리를 감동적으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2부 수업을 하는 동안 귤과 바나나와 같은 과일들을 맛나게 먹을 수 있었는데 얼마 전 고향에 다녀온 루완 씨가 사온 것이었답니다.
오후4시부터는 파주병원에서 매월 2, 4주에 하는 무료진료가 있어 사법연수원생 선생님들과 함께 그곳으로 이동했습니다. 아친은 무료진료하는 장소에서 임금체불과 산재 등에 대한 상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9월부터 시작된 무료진료가 처음에는 찾아오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오늘은 꽤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번호표를 받아서 기다릴 정도인 걸 보니 이제 이주민들 사이에도 제법 알려진 듯 했습니다. 그런데 파주병원 담당자 분께서 오시더니 걱정스런 표정으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상담하는 것에 대해서 인근지역 사업주들이 부담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기가 막혀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법에도 없는 이상한 편법을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법에 나와 있는 최소한의 기본권에 대해 상담하고 있는데 도대체 무엇을 걱정하는 것인지... 아직도 사업주들의 인식이 바뀌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무료진료에는 아친에 찾아오는 친구들 모습이 유난히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한국어교실이 끝나고 이리로 바로 온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전에 상담을 했던 친구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언제나 한산했던 일요일 오후가 이주민들로 북적이는 모습을 보니 조용했던 파주가 아주 활기차진 느낌이었습니다. 우리를 찾아온 이 ‘젊은 피’들과 더불어 함께 사는 것, 멋지지 않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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