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편지를 씁니다. 그 동안 노동자대회 같은 주말행사도 있었고 해서 조금 바빴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무엇보다 지난 주에 있었던 사상 초유의 대규모 단속 소식으로 인해 무언가를 쓴다는 것이 참 어렵게 느껴지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언론에는 거의 보도가 되지 않았지만 지난주 목요일(13일) 남양주 마석의 가구공단에서 경찰과 법무부의 합동단속이 벌어져 100명이 넘는 이주노동자들이 잡히고 그 과정에서 10여명이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 동안 출입국의 단속이 여러 번 있어왔지만 이런 식의 단속은 규모에 있어서나 방법에 있어서나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전경을 동원해 미리 가구공단의 입구를 봉쇄하고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한 후에 단속반들이 공단전체를 훑듯이 지나가며 ‘싹쓸이’하는 마치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것이었습니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단속반들은 정말 ‘점령군’처럼 행동하며 한국인들에게도 매우 불손한 태도였다고 합니다. 지금 ‘살아남은’ 노동자들은 무서워서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인근 교회나 성당 등지에 흩어져 밤을 지새우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번에 단속된 노동자들은 대개 5~6년 이상 많게는 10년 이상 한국에서 일해 온 노동자들입니다. 마석 가구공단 같은 중소영세사업장들이 내국인 일손을 구하지 못해 애태울 때 그 자리를 메우며 묵묵히 일해 온 사람들입니다. 열심히 일하면 한국사람처럼 살 수 있다는 ‘코리안 드림’을 품고 한국에 왔지만, 한국은 이들을 결코 한국사람과 동등하게 대우하지 않았습니다. 경기가 좋을 때는 별 문제삼지 않지만 경기가 나빠지면 제일 먼저 쫓겨나야 하는 값싼 도구로만 생각했을 뿐입니다. 이들이 가족과 헤어져 얼마나 외롭고 힘든 나날들을 보냈는지, 한국인들의 값싼 동정이나 차별대우에 얼마나 마음 아팠는지 아무도 헤아려주지 않습니다. 그는 오로지 ‘불법체류자’일뿐 일말의 동정도 받을 수 없는 ‘범법자’인 것입니다.
이 단속의 불똥은 아직 파주까지는 튀지 않았으나 머지않아 곧 다가올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법무부는 연말까지 이런 식의 대규모 단속을 계속할 거라고 밝히고 있고 전국의 52개 지역을 대상 지역으로 꼽고 있다고 합니다. 벌써부터 머릿속에 친구들의 모습이 떠오르며 걱정이 되네요. 이번 겨울은 정말 추운 겨울이 될 것 같습니다.
지난주 한국어교실은 선생님들은 조금 적었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많이 나왔습니다. 오랜만에 이재훈 선생님이 나오셔서 한국의 새들에 대해서 열띤 수업을 해주셨습니다. 이혜정 선생님은 국경일을 비롯해 여러 의미가 있는 날들을 소개해주셨는데 저도 그 의미를 잘 모르는 날들도 많더군요. 김문희 선생님이 주신 김장김치 덕분에 모두들 컵라면을 맛있게 끓여 먹을 수도 있었구요. 참, 국립중앙박물관 견학 때 만들었던 도자기가 드디어 도착해 각자의 작품을 사람들 앞에서 뽐내기도 하였지요.
이번 주에는 2부 수업시간에 문집에 넣을 글들을 쓰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올해는 어떤 작품들이 나올지 사뭇 기대되네요. 그리고 연말 송년회 준비도 슬슬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시절이 어수선해도 할 건 해야겠지요? 모두들 건강한 모습으로 일요일 날 뵀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