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첫째 주 파주에서 보내는 편지

 

어느덧 2008년도 두 달 밖에는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지나온 그리고 앞으로 지나게 될 많은 시간들 속에 2008년도 그 어디쯤 자리잡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소중한 시간들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고 나와 연결되어 있는 또 다른 나,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거창하게 편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지난 일요일 낮에 함께 보았던전태일영상의 영향인 것 같습니다. 우리를또 다른 나라고 표현한 것도 사실 전태일의 것입니다. 전태일은 중학교를 중퇴한 짧은 학력이었지만, 그가 남긴 일기와 글들을 보면 그의 고민과 사색의 수준은 왠 만한 실존주의 철학자 이상이었습니다. 사람이 어떤 문제를 깊이 고민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의 진리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나 봅니다. 물론 38년 전 전태일이 빠져들었던 주제는 평화시장의 나이 어린 시다 들을 돕고 싶다는 것이었죠. 그 문제에 골몰하다가 그는 우리가 개별적인 개인들이지만 또한 서로가 연결되어 있는또 다른 나라는, 그래서 시다 들을 돕는 것은 남이 아닌 바로 나를 돕는 것이라는 인식에까지 이르렀던 건 아닐까요?

 

오는 1113일 전태일 분신항거 38주기를 맞아 지난 일요일 한국어교실 2부 수업에서는 전태일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국노동운동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삶을 소개하면서 지금 한국 노동자들에게 보장된 권리들이 그냥 주어진 것은 아니라는 걸 우리 친구들에게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친구들이 본국으로 돌아가서도 노동자들의 권리가 잘 지켜지는 사회로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는 친구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었습니다.

내용을 100% 알아듣지는 못했겠지만, 70년대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많은 친구들이 눈을 반짝이며 집중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평화시장 노동자들과 똑 같지는 않지만, 밤에도 일하고, 토요일도 일하고, 일요일에도 일해도 손에 쥐는 것은 얼마 되지 않는, 게다가 외국인이라는 차별까지 받는 우리 친구들의 처지가 개선되기까지 앞으로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번 주 한국어교실에는 그 동안 뜸했던 태국 친구들이 오랜만에 나왔습니다. 요즘 들어 단속이 너무 심해 밖에 나가는 것을 자제하고 있어서 오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학기 모범생이었던 버니 씨도 거의 두 달 만에 다시 나오셨습니다. 일이 너무 많았고 지난주에는 서울을 다녀오셨다는 군요. 최근 자주 나오지 않아 걱정이 되었던 스리랑카 친구들도 오랜만에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한동안 검정고시 준비로 나오지 못했던 이진호 학생도 정말 오랜만에 왔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에도 선생님 한 분이 더 늘어났다는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지난 주에 새로 오신 윤정실 선생님이 회사동료인 이원휴 씨를 모시고 오셨습니다. 그런데 집이 분당이라고 하시네요. 너무 멀리서 오는 것이어서 걱정했더니 앞으로 사모님도 모시고 오시겠다고 한 술 더 뜨셨답니다.^^ 어쨌든 우리 주변에는 정말 좋으신 분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황금 같은 주말을 언제나 반납하고 일요일마다 나오시는 우리 선생님들이야말로 살아있는 전태일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주말에는 전국의 노동자들이 모여 전태일의 정신을 기리고 노동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결의하는 커다란 행사가 있습니다. 전국노동자대회라고 불리우는 이 행사는 1987년부터 매년 서울에서 치뤄져왔습니다. 아친에서도 토요일 전야제(서울역)와 일요일 본행사(대학로)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토요일 전야제에서는 특히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을 후원하기 위한 후원주점행사도 열립니다. 전태일이 죽은 지 38년이 지나 많은 것이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이주노동자들 등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번 주말은 이들의 목소리에 한 번 귀를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요? 혹시 서울로 오실 분은 저에게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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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7 20:15 2008/11/07 20:15

경인방송 인터뷰

from 아무그리나 2008/10/09 22:55

경인방송에서 이주민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데 인터뷰가 필요하다고 해서 오늘 인터뷰를 하였다. 원래 라디오 다큐멘터리만 제작한다고 했는데 도중에 계획이 변경되어서 TV다큐도 함께 제작한다고 한다. 그래서 카메라 감독님도 함께 우리 사무실을 방문하였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담당PD는 매우 열정적으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미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도 다녀왔고 곧 일본도 다녀올 예정이다. 그리고 이주민단체들 뿐 아니라 불법체류자추방운동본부와 같은 대척점에 있는 단체도 만났다고 한다.

인터뷰는 아시아의 친구들에 대한 소개와 이주민들이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해 그리고 미등록문제에 대해 주로 진행되었다.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유럽에서도 소위 불법체류자 단속이 무척 심한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였다. 유럽하면 인권선진국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있는 한국에서 유럽의 사례는 종종 모범적인 사례로 인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유럽에서조차 단속이 강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은 단속이 마치 인권과는 무관한 문제인 것처럼 느끼게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다만 이민의 역사가 오래된 유럽과 한국을 단순비교하기는 어렵다는 정도였다. 그리고 유럽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데 유럽이라고 해서 무조건 따라할 수는 없는 법이라는 원칙적인 대답뿐이었다. 이민규제에 반대하는 유럽의 다양한 목소리들이 한국에 좀 더 소개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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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9 22:55 2008/10/09 22:55

유엔에서 정한 구금자인권개선주간을 맞아 국가인권위에서 '이주민과 구금'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연휴를 하루이틀 앞두고 갑작스레 토론자로 나와줄 것을 제안받아 참여하게되었다. 발제는 공감의 황필규변호사가 이주민과 구금에 대해서, 법무법인 소명의 김종철변호사가 난민과 구금에 대해서 그리고 캐나다에서 변호사활동중인 한태희변호사가 캐나다의 이주민구금관련 제도에 대해서 각각 발제를 하였다. 토론자로는 한양대 박찬운교수와 내가 이주민과 구금에 대해 토론자로 지정이 되었고, UNHCR한국사무소의 마마두 디안 발데씨가 난민과 구금에 대한 토론자로 나왔다. 사회는 김칠준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이 직접 보았다.

 

 

 

 

 

 



이날 토론회에 법무부는 참여하지 않았다. 인권위 쪽에서 계속 요청하였으나 끝내 거부하였다고 한다. 출입국관리법 입법예고를 앞두고 국민여론 수렴에 적극 나서야할 주무부처가 이런 좋은 기회를 스스로 거부하였다니 통탄할 일이다. 공개적인 토론의 자리에 나서지 못할 만큼 자신없는 일을 도대체 왜 밀어부치려는 것인지...

 

법무부의 불참으로 토론이 활기있게 진행되기는 애초부터 어려웠다. 그럼에도 몇가지 쟁점이 형성되기는 하였는데 특히 영장주의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황필규 변호사는 발제를 통해 행정구금일지라도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점에서 기본권에 대한 본질적 침해가 이루어지므로 사법부의 통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한양대 박찬운교수는 형사피의자는 사건의 성격상 인권침해가능성이 높으므로 영장주의가 필요하지만 비형사적인 사건의 경우에는 그렇지않다고 주장하였다. 대신 박교수는 영장주의에 준하는 제도의 도입 필요성은 인정했는데, 검찰과 법원이 아니더라도 행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캐나다의 이주민구금에 관한 위원회와 같은 외부 통제를 검토해 볼만하다고 하였다.

 

법률 전문가가 아닌 내가 보기에 영장주의와 영장주의에 준하는 제도의 차이가 얼마나 큰 것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비형사적인 구금의 경우 인권침해 가능성이 형사적구금보다 더 적다는 박교수의 주장에는 동의가 되지 않았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실은 단속과 보호과정에서 나타나는 행태가 형사피의자 구금보다 더 열악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물론 박교수의 말은 형사피의자의 경우 유무죄를 따지는 것이 매우 복잡하고 그 결과에 따라 피의자에게 지워지는 부담의 차이가 매우 큰 반면, 출입국위반의 경우 위반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이 훨씬 단순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음이었을 것이다. 그렇더라 할지라도 구금된 외국인의 대부분이 받게 되는 최종적 결과가 강제출국이고, 이는 당사자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수반할 수 있는 가혹한 처벌의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형사피의자보다 더 수월히 다루어도 된다는 주장에는 선뜻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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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7 00:39 2008/10/07 00:39
밤사이 잠겼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제 제법 서늘할 공기를 느끼게 됩니다. 오늘은 법률봉사를 나오는 사법연수원생 박원아 선생님이 사무실을 방문하는 첫번째 손님입니다. 다른 일정이 일찍 끝나 약속보다 이른시간에 사무실에 나와 오늘 상담활동을 준비하십니다. 그리고 요즘 밀린임금 문제로 고민이 많은 태국에서 오신 W씨가 들어오십니다. 김대성 선생님이 이 분을 돕기 위해 결혼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짬을 내어 오랜만에 사무실에 오시기도 하였습니다. 김대성 선생님의 도움으로 그동안 짐작만으로 추정해오던 여러가지 사실들이 밝히 드러나게 되어 많은 진전이 있었습니다. 김준휘 선생님도 오랜만에 오셔서 앞으로 상담활동에 도움을 주시기로 하였습니다. 이런 노력들이 헛되지 않게 W씨가 빨리 밀린 임금을 받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한국어교실에는 새로운 얼굴들이 많이 오셨습니다. 요즘에는 베트남 친구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낯익은 얼굴들 몇몇이 보이지 않습니다. 연휴가 끝난 뒤라 오늘도 일하는 사업장이 많기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애타게 찾던 자원활동교사도 오늘 두 분이나 새로 오셨습니다. 두 분다 남성 분이신데 이제야 교사들 성비불균형 문제가 해결되려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두 분 선생님들의 멋진 활약을 기대합니다~

한국어수업 2교시는 초급과 중급반으로 나눠서 진행하였습니다. 초급반은 김문희 선생님이 지도하셨고, 중급반은 제가 했습니다. 제가 진행한 내용이 법률용어등이 많은 어려운 내용이라 아무래도 초급수준의 학생은 어려울 것 같아 초급반은 여러가지 한국어표현등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리고 제가 진행한 중급반은 최근 이주민과 관련된 시사뉴스를 공부하였습니다. 얼마전 정부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들의 숙식비를 사업주가 아니라 이주노동자들에게 비용부담하도록 바꾸고 최저임금도 6개월간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등의 '개선방안'을 정부가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뉴스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하고 몇가지 단어들에 대해서 테스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연말까지 목소리를 많이 내야 지금보다 더 나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소식에 의아스런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는 친구들을 보고 있자니 제 얼굴이 다 화끈거려왔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들과 다과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아루마씨는 직장에서 일이 너무 많고 힘들어서 고민이 많습니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갈지 아니면 좀 더 돈을 벌지도 고민중입니다. 네팔에서 오신 기론씨도 참으로 오랜만에 찾아오셨는데 요즘 요로결석으로 병원에 다니고 계시답니다. 태주씨는 한달정도 일본을 여행하고 돌아왔는데 언제나 그렇듯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태주씨가 만든 짜파게티를 먹고 기론씨가 만든 짜이를 마시고 나니 뱃속이 따뜻한게 아주 든든했습니다.

모두가 돌아갈 무렵 자야씨가 한 친구를 데려와 밀린 임금을 상담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야씨는 지금 스리랑카에 잠시 돌아간 친구에게 보낸다며 핸드폰을 하나 사왔는데 중국산 '짝퉁' 같았습니다. 한국사람들은 보기 힘든 물건인데 이 친구들은 이런 것들을 잘도 구합니다. 참 오늘은 인근 고양시에 있는 항공대 학보사에서 기자분이 오셔서 아친을 취재해가셨습니다. 마지막엔 얼결에 저도 인터뷰를 하게되었는데 항공대학생들이 이주민들을 더 가깝게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었길 바랍니다.

오늘도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나가버렸습니다. 황금같은 휴일을 반납하고 나와서 자원활동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수고하셨다는 말밖에는 드릴 게 없네요. 그리고 장시간 고된 노동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한국어수업을 받기 위해 나온 우리 친구들에게도 오늘 하루가 값진 시간들로 채워졌길 바라겠습니다. 다음주에 또 만나요, 그리고 그 다음주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가을소풍가는 것 잊지 마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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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5 23:37 2008/10/05 23:37

금정굴 위령제

from 아무그리나 2008/09/29 00:04

금정굴 위령제에 올해도 참석했다. 고양시에 와서 얼결에 처음 참여했던 회의가 금정굴공대위 회의였고 그 회의가 끝나고 이춘열 회장님을 따라 사진판넬을 옮기기 위해 한밤중에 금정굴 현장까지 올라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금정굴 사건은 나에게 커다란 충격이었고 내가 살게 된 동네에서 벌어진 일을 직접 현장까지 방문하고 보니 더욱 마음에 와 닿았던 듯하다. 하지만 어느 해부턴가 금정굴 위령제라는 것이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기 보다는 행사 그 자체를 위해 준비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아마도 행사의 내실보다는 외형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은 준비주체들의 모습에 실망해서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한 행사의 내실이란 금정굴 사건과 오늘을 사는 우리들을 연결하는 것이다. 금정굴 사건이 나와는 상관없는 58년전 전시에 벌어진 일이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 자리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은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을 이번 행사에서 깨달았다. 금정굴사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운동의 중심인 유족들이 바라는 것은 오늘 하루만이라도 기를 펴고 살 수 있도록 거창한 위령행사가 치뤄지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부지원을 우리는 백안시하지만 정부가 공식지원하고 고위관료와 정치인들이 참여하는 그럴듯한 위령행사를 올리고 싶다는 것은 유족이라면 당연한 바램일 것이다. 운동권들만 모여서 결의대회식으로 진행되는 행사는 유족들에게 그다지 큰 힘을 주지 못하는 것 역시 당연하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이 왠지 허전한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유족들이 바라는 행사는 그대로 하더라도 인권과 평화라는 화두를 매개로 금정굴의 의미를 오늘의 언어로 되살리는 행사를 별도로 할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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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9 00:04 2008/09/29 00:04
사실 '선전'이라고 말하기는 좀 낯뜨겁지만...-_-;; 첫 출전이었고 급조된 팀, 게다가 국적도 서로 다른 '인터내셔널 팀'으로써 여러가지 불리한 점이 많아음을 감안한다면 그다지 나쁜 성적은 아니었슴다.
21일 일요일 오전9시부터 오후5시까지, 가을운동회라는 이름을 무색케하는 무더위 속에서 300여명의 노동자들이 서로 어우러지는 민주노총 고양파주지구협의회 체육대회가 있었습니다. 벌써 6회째를 맞는 행사이지만 아시아의 친구들은 올해 처음으로 팀을 꾸려 참가하였습니다.

개회식과 선수선서, 그리고 파주무건리투쟁에 대한 소개를 듣고 드뎌 첫경기 세일자동차학원 노동조합과의 족구경기를 치뤘습니다. 세일자동차학원노조는 올해 노조를 결성하자 마자 사측이 직장을 폐쇄해버려 어려운 상황에서 오랫동안 싸우고 있는 노조입니다. 어려운 상황을 보여주듯 참가자들도 4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세일노조의 어려운 상황에 마음이 아팠으나 족구실력이 별로인 것 같아 한편으로는 '이길 수 있겠다'며 안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안일한 생각은 경기가 시작되자 마자 금방 깨져버렸습니다. 입국한지 3개월도 안된 선수가 2명이나 포함된 우리팀은 규칙도 익숙하지 않아 계속 실점을 거듭하였습니다. 믿었던 한국인선수도 초반 급격한 체력저하로 아웃되어 버리고 막판에 감독이었던 칸반장까지 투입되어 사력을 다했으나 2셋트를 내리내주며 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경기 후 비디오분석을 해본 결과 네트 앞에서의 플레이 미숙으로 실점을 많이 하였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초반 탈락한 팀들에게는 매우 가혹한 대우를 하는 체육대회였습니다. 오후늦게 치뤄진 단체전때까지 먹고 마시고 누워서 노는 것 밖에는 할일이 없었습니다. 라마단 기간이라 물조차 먹지 못하는 칸반장때문에 옆에 있는 사람들도 눈치보여 잘 먹지 못하고...날씨는 뙤약볕이 내려쬐고 있고....정말 잠시나마 주최측이 원망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긴 기다림 끝에 출전한 단체전에서 우리팀은 의외의 성과를 올릴 수 있었습니다. 집단줄넘기는 최저신기록(1회)으로 또 꼴지를 했지만, 줄다리기는 예선을 통과하여 준결승까지 올라갔습니다. 물론 예선통과는 상대팀이 기권하는 바람에 부전승으로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준결승 상대인 우승후보 지하철노조를 맞아 치열한 접전을 펼쳤습니다. 상대팀은 "영차"소리를 박자에 맞춰 지르며 힘을 모았지만, 우리팀은 서로 공통의 구호가 없는 관계로 그냥 이를 악물고 신음소리를 내며 줄을 끌어당겼습니다. 이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지하철노조는 우리팀을 아주 간발의 차로 간신히 이길수 있었습니다. 우리팀은 경기가 종료되었을때 우리가 이긴 줄 알았을 정도였습니다. 경기를 지켜보던 다른 팀들도 우리의 선전에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초반탈락의 아픔과 가혹한 대기시간의 고통이 한순간에 날아가버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우리팀도 서로를 격려하며 잘했다고 박수를 쳤습니다.

올해 처음 참여하는 거라 준비도 부족했고 많은 사람이 함께하지도 못했지만 참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주노동자들 역시 고양파주 지역에서 함께 살고 함께 일하는 같은 노동자라는 것을 체육대회에 참여한 한국인노동자들도 느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번을 계기로 한국인노동자들과 이주노동자들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합니다. 그런데 내년에는 왠지 아친이 종합우승할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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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2 21:28 2008/09/22 21:28

2008/09/08

from 아무그리나 2008/09/08 00:17

오랜만에 한국어교실 교사회의를 하였다. 덕성원에서 중국음식을 시켜 함께 먹으며 2학기 한국어교실 운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생들이 오기전에 교사들이 미리 모여 고민을 하니 좋은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왔다.

2학기부터는 학생들이 많이 나오지 않을까봐 걱정했는데 오늘도 학생들이 많이 왔다.

태국에서 온 수찻씨도 오랜만에 왔는데 완나폰씨랑 함께 들어오는 걸 보니 둘이 사귀는 눈치다.

그런데 완나폰씨가 월급을 받지 못해 상담을 요청해왔다. 완나폰씨는 타이맛사지 업소에서 일했는데 사업주에게 말하지 않고 그만두었다는 이유로 사업주가 한달 반 동안 일한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었다. 맛사지 업소에서는 한 시간에 2만원, 두 시간에 3만5천원을 받는다고 한다. 손님이 내는 돈을 사업주와 반반씩 나눠갖는 식이다.

이번주부터 사법연수원생들이 2명씩 찾아와 법률상담을 도와주었다. 오늘은 파주병원에서 하는 무료진료장소로 가서 법률상담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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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8 00:17 2008/09/08 00:17
사회주의정치연합이 서울시경 보안수사대에 털렸다. 오세철 교수와 오민규도 잡혀갔다. 요 몇년 사이 거의 일어나지 않던 일들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7~8년 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버젓이 일어났다.
사정련 같은 단체가 과연 얼마만큼의 영향력이 있는지 그 실체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경찰이 발표한 혐의사실이 엄청난 과장임을 알 것이다. 경찰은 이 단체를 과대광고해주는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단체를 공격하였으니 그 보다 더 큰 이득이 있다고 판단했음이 틀림없다. 그것은 아직도 이런 '빨갱이'들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으니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필요하고 촛불집회같은 건 빨갱이들이 개입해서 만든 작품이라는 걸 국민들에게 선전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물만난듯 하고 있는 놈들이 있는가본데...이런 분위기에서 흔히 나타나는 오버맨들이 또 위대한 역사를 만들려하는 것 같다. 나 같은 미천한 민중들은 그들의 위대한 역사창조가 시작되면 액스트라 역이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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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6 23:19 2008/08/26 23:19
나이 40을 바라보게 되니 슬슬 건강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40대인 차미경대표가 몸이 아파 고생하는 걸보니 더더욱 경각심이 생긴다. 그래서 오늘은 참으로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고 사무실로 나갔다. 한 6개월만인 것 같다. 그동안 자전거를 타지 않았더니 기본적인 장비들 - 장갑, 화이바 - 도 잘 보이지 않았다. 타이어도 바람이 빠져있어 다시 채워야했다. 탄현쪽으로 나가서 교하신도시 건설현장을 거쳐 금촌까지 1시간 2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금촌까지 대략 12km 정도니까 10km/h 정도의 평균속도로 달린 것 같다. 중간에 두 번 정도 쉬어 가야할 만큼 나의 체력은 많이 저하되어 있었다. 그래도 갈때는 괜찮은 편이었고, 돌아오는 코스가 훨씬 힘들었다. 올때는 2시간 가까이 걸린 것 같다. 체력저하도 문제지만 더 고통스러운 것은 엉덩이쪽 고통이다. 그래서 남성자전거 선수들에게 고환암 발병률이 높다고 한다.

사무실로 오후에 방글라데시 가정이 찾아왔다. 남편과 부인 그리고 3살짜리 남자아이였다. 부인이 둘째 아이를 임신했는데 병원비가 많이 나와서 의료공제회에 가입하려고 온 것이다. 아이까지 있는 방글라데시 부부를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이는 우리 산이 동갑이었는데 너무나 이쁘게 생겼다. 하지만 좀 마른편이라 약간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이 부부는 둘째 뿐만 아니라 셋째도 나을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아기가 세 개는 되어야 한다"고 남편이 힘주어 말했다. 한국말을 못하는 부인은 그냥 웃고만 있었다.
한국사람들은 아이 하나도 키우기 힘들어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도 늘고 있는데, 팍팍한 타향살이를 하면서도 아이를 셋이나 나을 생각을 한다는 것이 내 가치관으로는 얼른 이해되기 어려웠다.
그래도 이 부부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은 끔찍해서, 한국으로 이주하게 된 이유도 방글라데시에 물이 많아 아이들이 자주 빠져 죽기때문에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겠지만, 이주의 이유를 이렇게 이야기하는 사람 또한 처음 보았다.
내 눈에는 이 부부의 앞날에 드리워져 있는 온갖 어려움들이 보였으나, 이 부부에게는 희망만이 가득한 듯 하였다. 어쩌면 내가 부정적인 생각을 너무 많이 하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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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5 23:13 2008/08/25 23:13
서울 도심에서 오랜만에 이주노동자집회가 있었다. 지난2월 이명박 취임 전날 있었던 집회가 가장 최근에 열린 집회였다. 물론 그 사이에 외노협에서 노동절기념 실내집회를 한 적이 있긴하지만 실외집회로는 그 이후 처음이다.
고용허가제 시행 4년이 되는 8월17일이 마침 일요일이어서 이날 대학로에서 집회가 있었다.
집회를 조직하는 것이 처음부터 만만치않은 집회였다. 8월15일은 촛불100일 기념집회가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연행되었다. 오랫동안 계속된 촛불집회와 최근 기륭노동자투쟁으로 연대단위들을 조직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다. 게다가 이주노조 역시 활동이 많이 약화된 터라 이주노동자들의 참여 역시 적을 것으로 예상되는 집회였다.
예상대로 집회에는 200여명만이 참여하였다. 그 중 절반이 전철연 회원들이었다. 그동안 이주집회에 적극적으로 연대해오던 다함께 동지들이 맑시즘2008행사와 겹치는 바람에 참여하지 못한 것이 무척 크게 느껴졌다. 전철연을 제외하면 학생동지들과 동인연 정도가 조직적인 참여를 하였고, 나머지는 대체로 개인수준이었다.
반면 서울출입국은 집회 시작전부터 주변 곳곳에 도사리고 있으며 우리를 감시하였다. 눈으로 확인되는 인원만 10명 정도였다. 오반장이라는 단속반 반장과 부하직원 한 명만이 자신이 출입국이라는 것을 확인해주었다. 나머지는 시민을 가장하고 앉아 있었다. 어떤 몸이 무척 건장한 인간 하나는 시민단체에서 나왔다고 해 꼬치꼬치 묻자 대한체육회에서 나왔다고 답하기도 했다. 그들의 비겁함과 치졸함에 헛웃음이 나왔다.
이들만이 아니었다. 불법체류자추방운동본부 회원들도 이들 사이 사이에 함께 있으면서 틈만 나면 끼어들며 시비를 걸거나 사진을 찍는 등 대담하게 행동하였다. 이들은 행진도 따라다니며 시비를 걸었고 정리집회 장소였던 종로타워 맞은 편에서 불법체류자추방촉구 집회를 열기까지 하였다.
대오도 많지 않고 위험한 변수들이 곳곳에 있어 거리행진을 강행할 것인지 고민이 되었으나 결국 거리행진은 그대로 진행되었고, 다행히 별다른 사고 없이 정리집회까지 마칠 수 있었다.
이명박 정부의 등장으로 자신감을 얻은 한국사회의 극우집단들이 점점 더 우리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 하루였다. 그에 비해 우리편의 힘이 예전보다 오히려 위축되는 것 같아 앞으로의 일이 무척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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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8 00:33 2008/08/18 00:33